그래비티 (Gravity, 2013)

당연하다고 여겼던 존재의 발견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그 외로움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국 모든 일들과 관계 속에서 혼자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신작 '그래비티 (Gravity, 2013)'를 보고 나니 외롭다고 느낀 다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무뎌짐 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수 많은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되면서 '처음'이라는 순간과 조우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참 어리석게도 시간이라는 무게에 휩쓸려 머지않아 처음 만났던 순간을, 그 순간의 희열을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더 새로운 것, 또 다른 것 만을 찾다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결국, 모든 것들에 대해 흥미를 잃고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영화 '중력 (Gravity)'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인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아주 전형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를 다시금 끄집어 낸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관객이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끈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SF로 오인하기 쉽지만 '그래비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에 가깝다. 그러면 과연 지구 밖 우주라는 배경은 그저 눈 요기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느냐 하면 또 절대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라는 질문의 답은 이 글의 제목과 맞닿아 있다. 흔히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근원에 대한 경우일 때가 많다. 이 영화 역시 일종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다. 근원에 대한 탐구는 결국 진리를 찾기 위한 질문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 작품이 찾고자 하는, 아니 말하고자 하는 진리란 무엇 인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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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우주에서 특수한 사고로 인해 한 인물이 겪게 되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평소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래서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 둘 씩 체감하도록 만든다. 일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력이라는 것이 없는 우주를 보여준다. 우리는 무중력 상태를 봐야만 현재 중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이 아닌 이해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상실해야만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들을 영화는 차례 차례 꺼내어 놓는다. 사실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우주에서 주목할 것은 무중력 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우주의 묘사는 바로 '소리'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의 타이틀과 함께 마치 극장 안의 소리를 모두 빨아들이는 듯한 커다란 소리의 소멸은, 앞으로 이 영화가 사운드에 있어서 어떤 현실성을 들려줄 지에 대한 일종의 선언처럼 들려왔고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중력 뿐만 아니라 소리마저 없는 우주를 통해 우리는 생활 속에서 반사되어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 들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비슷한 영화들이 그러했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는 건 결국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지구에 살면서 지구라는 행성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주로 나가 지구를 바라봐야만 내가 살고 있는 행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비로서 알 수 있게 된다 (이건 직접 경험할 수 없었으나 의심하지는 않는다). 극 중 코왈스키는 지구를 바라보며 여러 번 라이언에게 이야기한다. '정말 아름답지 않냐고'. 이는 곧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우리가 이런 지구에  살고 있는 거라고'


(중요하진 않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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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라 일컬어 지는 존재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극 중 라이언 (산드라 블럭)이 코왈스키 (조지 클루니)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한 것은 오히려 그가 떠난 이후였다 (난 이 라이언의 상상 장면이 만약 실제 장면이었다면 정말 실망했었을지도 모른다). 홀로 우주선에 남게 된 라이언은 통신 여부를 확인하던 중 알 수 없는 외국인과 무선 통신이 연결된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라이언은 저 멀리 지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 개가 짖는 소리 그리고 아이의 울음 소리에 감정이 터지고 만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지구에 두고 온 애인의 목소리도, 부모의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라이언은 그저 자신이 평소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던 이 소리 들에 감격한다. 라이언의 감격은 사실 감격 이라기 보다는 회환에 가까웠을 것이다. 평소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뒤늦게 깨닫고 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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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라이언은 중국 우주 정거장의 우주선에 탑승하면서부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겪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 자궁 속에서 유영하듯 한 모습의 라이언은 새로운 탄생의 신호를 알리는 듯 잠시 눈을 감고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탄생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니 아직 더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라이언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녀의 탈출 우주선이 지구 궤도를 향할 때의 모습은 마치 수 많은 정자들 사이의 경쟁에서 승리해 수정에 이르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글의 주제로 돌아와, 이 영화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의 발견에 관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중 우리가 가장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지구의 중력? 사람?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

바로 자신이라는 존재의 탄생 그 자체일 것이다. 결국 라이언은 가장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니 그 논의의 범주에 포함조차 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생명)에 대해 발견하고 다시 태어나 우뚝 서게 된다. 그녀가 지구로 무사 귀환 했을 때 다른 영화처럼 대규모 구조 작업에 의해 구조 된다거나 발견되기 이전에, 홀로 땅을 딛고 선 모습으로 끝내는 것은 그래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녀는 누군가 에게 구조됨으로서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고 쟁취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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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그렇듯이, '그래비티'의 은유는 매우 노골적이다. 글의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접적이고 단순하고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기원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에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라이언을 통해 이를 풀어낸 방식도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영화에 열광했을까. 그건 아마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너무 나도 당연한 것들의 진리가 새삼 가슴에 깊게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바쁘게 '그냥' 살면서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금 깨우치게 만든 이 이야기는, 너무 당연한 것들로 이뤄져 있기에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라이언처럼 저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도 있는데 나도 힘내서 살아야지!'가 아니라,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잊고 있었던 당연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발견해 낼 수 있다면 그 것 만으로도 이미 살아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새삼 느낀 내 삶의 중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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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화제가 된 글 '아닌강의 비밀' (http://magazine.movie.daum.net/w/magazine/film/detail.daum?thecutId=6589)

참 대단한 감독'들' 입니다!


2.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은 역시 인상적이네요. '트리 오브 라이프'의 촬영 감독이기도 한데, 두 작품의 주제의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고, 그러면서도 기술적으로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네요!


3. 전 이 멕시코 삼총사가 더 잘될 줄 알았어요. 처음엔 이냐리투가 주목 받는 모양새였는데, 이제는 그가 오히려 제일 덜 주목 받는 그림이 되었군요. 델 토로를 비롯해 이 삼총사가 계속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 예전에 봤던 '허블 3D'가 떠오르더군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5. 아, 왕십리 아이맥스 3D로 봤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삶은 우리를 가르칠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혼동하게 만들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바꿔놓을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상처 입힐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치유할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고무시킬 방법을 알고 있다."
 
Story...
 
17세의 동갑내기 테녹과 홀리오. 테녹은 멕시코에서 알아주는 갑부집 아들이고, 홀리오는 그저 그런 집안 출신이다. 하지만 그런 건 둘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막 섹스에 눈을 뜬 그들에겐 각자의 여자친구와 그걸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서로 못 만나는 동안 정조(?)를 지키기로 약속했건만 남겨진 테녹과 홀리오, 그 동안을 못 참고 터질 듯한 그것을 발산할 대상을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테녹의 집에서 성대한 결혼 파티가 열리고, 거기서 테녹과 홀리오는 아름다운 연상의 여인 루이자를 만난다. 둘은 그녀의 미모와 분위기에 반해 '천국의 입'이란 해변으로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알폰소 쿠아론의 재주는 인정해야 할 듯
 
에단 호크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위대한 유산]의 감독으로 우리에게 더욱 더 잘 알려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다시 한번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 바로 이 영화 [이투마마]이다. 원제목인 '너의 엄마도(And Your Mother Too)'에서도 감지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성(性)의 관한 이야기를 직설적이고도 대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전형적인 로드무비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성(性)에 관해 눈을 떠가는 두 십대 소년의 성장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구성원의 조합이 일단 심상치가 않다.



두 십대 소년은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이들과 함께 한 것이 그들의 친척의 아내이기도 한 유부녀라는 것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위에 이미 언급하였듯이 '너의 엄마도'라는 원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정상적이기보다는 혼음과 동성애 등 비윤리적인 코드들을 등장시키며, 반대로 인간의 윤리의 대한 문제에 대해 깊게 파고들고 있다.



[이투마마]는 일반 대중들보다는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는데, 겉보기엔 별 것 아닌 거 같지만 드라마적 요소와, 코믹, 에로틱, 도덕적 요소,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 관한 추억과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요소까지 모두 한 작품 속에 담아냈다는, 말 그대로 극찬을 쏟아냈다. 이러한 평론가들의 극찬은 그대로 각종 영화제의 수상으로 이어졌다. 2001년 베니스 영화제 각본상과 신인남우상을 수상하였고, 2002년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이 그 예이다. 평론가들에게 더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하였지만, 외국어 영화치고는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플 속에 단편 영화 한 작품이 더!
 
타이틀을 플레이어에 실행시키면,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메인 메뉴 화면이 일단 참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메인 메뉴의 디자인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 영화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돋보이는 타이틀 메뉴라고 생각된다. 화질은 16:9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제공하고 있고,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로 전해지는 라틴, 록, 힙합 등 다양한 음악들도 영화를 더욱 더 감각적으로 감싸고 있다. 서플먼트로는 삭제장면을 담은 'Deleted Scenes'과 제작 과정을 감독의 코멘트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TV와 극장용 예고편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카롤로스 쿠아론의 단편 영화 'Me La Debes'도 수록되어 있는데, 보시면 알겠지만 '나한테 빚진 거야'라는 말이 참 인상 깊게 남는 작품으로 쏠쏠한 재미를 준다.




2003.04.12
글 / ashitaka


플로리다 걸프 해안의 작은 마을에 사는 8살의 핀 벨(Finnegan Bell: 에단 호크 분)은 누나와 함께 산다. 가난한 집안형편이지만 화가가 꿈인 핀은 아름다운 바다를 그리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간다. 어느 날 그는 탈옥한 죄수 루스티그(Prisoner - Lustig: 로버트 드니로 분)를 우연히 만나 그의 발목에 찬 족쇄를 풀어주면서, 그의 단순하고 평화로운 생활이 깨어짐을 느낀다. 인근에서 가장 부자로 소문나 있는 노라 딘스무어 여사(Ms. Dinsmoor: 앤 밴크로프트 분)로부터 갑작스런 초대를 받게 된 핀은 그녀의 은둔자적인 비밀스런 삶에 두려워 하면서도 그녀의 조카인 에스텔라(Estella: 기네스 펠트로 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사랑으로 매일 그녀를 찾는다.



에스텔라는 그런 핀에게 상류사회 특유의 냉정함과 오만함으로 일관하지만 핀이 그녀를 그린 그림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에스텔라를 사랑한다면 그의 마음만 아플 거라는 노라의 충고에도, 어느새 커버린 그들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억누를 수 없다. 노라의 말대로 에스텔라는 홀연히 파리로 떠나버리고 절망에 빠져 헤매던 핀은 그림그리기를 포기한 채 나날을 보낸다. 갑작스런 익명의 후원자 덕분에 뉴욕에 보내진 그는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며 뉴욕 미술계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부와 지위, 명성을 한꺼번에 얻게 된 핀은 에스텔라와의 갑작스런 재회에 행복해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한마디 말로 그에게 또 한번 깊은 상처를 남긴다. 괴로워하는 핀 앞에 갑자기 나타난 루스티그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며 그가 누리는 위대한 유산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데.



[위대한 유산]을 보고 나서 머리 속에 가장 강하게 남는 이미지는, 영화 내내 스크린을 녹색 빛으로 물들였던, 녹색 그 자체의 색감일 것이다. 이러한 색의 이미지는 다분히 감독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온통 초록색의 나무들과 넝쿨 들이 어지럽게 감싸고 있는 딘스무어의 저택과 그녀의 화려한 초록색 옷차림. 그리고 어린 에스텔라의 초록색 원피스와 영화의 중반 뉴욕에서 다시 만날 때의 초록색 의상까지... 어찌 보면 원색 계열이나 우울한 정서를 한껏 담은 블루 톤에 비해 수수하고 무난한 것이 초록이라 하겠지만, [위대한 유산]에서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초록 자체의 느낌은 밝고 생동감 있는 것이지만, 영화의 쓰인 그린(Green)의 느낌은, 블루(Blue)보다 우울하고, 레드(Red)보다도 강렬하며, 어떤 컬러보다도 뇌리에 깊이 파고드는 인상을 준다.



이 영화는 알다시피 너무나도 유명한 찰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것이 리메이크가 되었던 처음이 건 간에,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엄청난 부담감을 지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리메이크 작품들은 원작보다는 못하다는 평을 듣는 경우가 지배적이었고, 평균적으로 보자면 [위대한 유산]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영화 [위대한 유산]은 분명 동명 소설에서 기초하고 있지만, 일련의 리메이크 영화들과 동등하게 분류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듯싶다. 감독인 알폰소 쿠아론은 원작에 기초하되 가능한 한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고, 이 같은 의도는 비교적 성공했다고 여겨진다. 멕시코 출신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 영화와 [이투마마]로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며 평단과 관객을 모두 만족시키는 감독으로 떠올랐고, 최근에는 줄곧 해리포터 시리즈를 감독했던 크리스 콜롬버스의 뒤를 이어, 3편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작업하고 있다.



[위대한 유산]이 헐리웃 적이고 대중적인 것은 아무래도 출연한 배우들의 영향력이 컸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배우들이 ‘즐비’까지는 아니나 ‘제법’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러브스토리의 남여주인공은 에단 호크와 기네스 펠트로가 맡았다. 상업영화에 출연하면서도 헐리웃 적이지 않고, 이지적인 매력을 풍기는 에단 호크는 이 영화에서도 그러한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혹자는 이 영화에서 에단 호크의 연기가 카리스마가 없고 이미지도 약하다고 평하지만, 그것이 연기를 잘 한 것이다. 극중 핀의 캐릭터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소심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여린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자신감이 없어보이던 핀의 얼굴은,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비로서 편안함과 여유를 찾게 된다.



[위대한 유산]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누가 뭐래도 기네스 펠트로 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과 행동으로 얄밉기까지 한 에스텔라 역을 맡은 기네스 펠트로는, 적역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한 열연을 펼쳤다. 신비스럽고도 도도한 에스텔라 역은 사실 다른 배우가 맡았으면 말 그대로 재수 없는(?)역할이 되었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대부분 배우들의 이름이 스크린에 오를 때 주연 배우들 외에 유명한 배우들이 조연이나 카메오 등을 맡았을 경우 'and'로 표현되곤 하는데, 위대한 유산에는 'with'가 추가되었다. [졸업]으로 많은 영화 팬들에게 인상을 남겼던 앤 밴크로프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멕시코만의 갑부인 노라 딘스무어 역할을 맡아 그야말로 관록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짙은 화장과 담배로 외롭게 살아가는 딘스무어 역은 두 주인공보다도 [위대한 유산]을 더 [위대한 유산]답게 만들어 주었다. 슬픈 눈으로 ‘배사매 무쵸’를 부르던 그녀의 연기가 인상 깊게 남는다.



그렇다면 'and'는 누구인가? 더 이상 연기력을 논할 여지가 없는 로버트 드니로가 그 주인공이다. 로버트 드니로는 이 영화에서 출연하는 러닝 타임은 길지 않지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위대한 유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중요한 인물로서 짧지만 강한 인상을 준다. [위대한 유산]은 이렇듯 젊고 색깔 있는 두 배우와 노련미가 저절로 느껴지는 두 배우가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의 완성도는 뒤로 하더라도 연기력만큼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영화가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 핀은 화가로 등장하는데, 그의 그림들을 보다보면 참으로 개성 있고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의 등장하는 모든 그림을 그려준 이는 프란치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라는 이탈리아의 실제 화가이다. 1952년 나폴리에서 출생한 클레멘테는 80년대 등장한 트랜스 아방가르드 계열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장 미셀 바스키아와 공동작업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화가이다. 처음 이탈리아 벽화를 그리는 화가로 알려졌던 클레멘테는 인물과 사물을 관찰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과 밝고 어두운 단면을 모두 잘 소화해 내는 능력을 톡톡히 인정받고 있다. 그러한 면을 반영하듯 영화 속 그의 그림들은, 물고기나 사물을 나타낸 그림들은 비교적 수채화 같이 밝게 느껴지지만, 에스텔라의 초상화라던가 조 삼춘의 초상화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슬픔이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필자도 그러하였듯 평소에 이러한 그림들과 화가들을 접할 기회가 드문 이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영화를 계기로 프란치스코 클레멘테 라는 화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 또한 될 것이다.



[위대한 유산]을 아쉽다고 말하는 이들의 공통분모는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구성이 엉성해지고, 느닷없이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구성에 엉성함이라고 얘기되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이렇다 저렇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세히 풀어놓으면 너무 자세하게 얘기해버려서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반응이 나올 것이고, 과감히 생략하게 되면 이번처럼 느닷없고 구성이 엉성하다는 반응이 나오듯이, 어차피 양면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피 엔딩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마지막 장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핀은 이혼하여 혼자가 된 에스텔라를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해피 엔딩’이란 말 그대로 영화가 다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마음이 ‘해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만의 생각이 될 지도 모르지만, 자막이 올라가고 음악이 흐를 때, 결코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슬픈 운명에 휘말려버린 주인공들이 안타깝게 느껴졌고, 인물들 하나하나를 떠올려 보니 더욱 더 그러한 마음은 배가 되었다. 핀은 오직 에스텔라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림에 정진했고, 성공적으로 개인전을 마친 뒤, 보란 듯이 부자가 되었다며 소리쳤지만, 오로지 성공에 집착하느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변해버린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에스텔라는 자신을 사랑하는 핀에게 확신을 주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멀리 떠났지만, 결국 돌아와 보니 남는 것은 후회 뿐 이였다. 딘스무어 역시 에스텔라를 위해 핀을 이용한 것에 대해 뒤늦은 후회에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루스티그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는 평생 도망자로 살아온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단 한 사람이 어린 핀을 위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후원을 하였고,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핀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정말 위대한 유산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루스티그에게는 그나마 편히 눈감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위대한 유산]의 아름다운 영상과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장면 장면을 더 인상 깊게 만들었던 음악이었다. 영화와 잘 맞아 떨어지는 팝과 락 넘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몇몇 아티스트들이 눈길을 끈다. 먼저 'Finn Runs'와 ‘Siren' 두 곡을 수록하고 있는 토리 에이모스를 들 수 있겠다. ’Siren'으로 에스텔라와 그림을 모두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가려는 핀의 마음을 빠른 리듬과 그녀만의 신비한 음색으로 전하고 있다. 그 다음 수록 된 곡은 모노(Mono)의 ‘Life is Mono'인데, 토리 에이모스와 마찬가지로 몽환적이면서도 신비스런 노래로 핀과 에스텔라의 묘한 관계를 역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최근 오디오 슬레이브(Audioslave)로 활동 중인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의 'Sunshower'과 펄프(Pulp)의 ’Like a Friend', 스톤 템플 파일러츠(Stone Temple Pilots)의 보컬이였던 스콧 웨일렌드(Scott Weiland)의 ‘Lady Your Roof Brings Me Down', 그리고 이기 팝(Iggy Pop)의 ’Success'까지 편안하면서도 강렬한 락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락 음악들보다 [위대한 유산]에서 더욱 기억이 남는 곡은 아마도 ‘Besame Mucho'일 것이다. 세사리아 에보라(Cesaria Evora)가 부르는 ’Besame Mucho'는 영화 속 딘스무어가 흥얼대던 그 느낌과 핀과 에스텔라의 슬픈 사랑, 그리고 핀의 성공과 그를 뒤에서 후원한 루스티그의 운명까지도 모두 포용해 버리는 원숙함을 들려준다. 또한 사운드 트랙의 맨 마지막에 자리하였듯, 이 한 곡으로 영화의 모든 감정을 모조리 정리해 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장면과 감정들을 스쳐가게 한다.


2003.06.13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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