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 2013)

다른 차원의 문을 열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신작 '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 2013)'을 보았다. 사실 스칼렛 요한슨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라 보는 내내 이 작품이 신작인지 아니면 예전 작품이 이제야 소개된 것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미헬 파버르의 동명 SF소설을 각색했다는 이유로 이 작품의 줄거리에 대해 미리 노출이 되고 있는데, 그 사실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더 폭 넓은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을 보는 내내 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어디에나 공개되어 있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쓰지 않을 것이다). 스포일러라 하기는 조금 애매한 그 시놉시스의 내용이 영화를 처음 보는 이들을 제한하고 있다고 느꼈던 건, 그 시놉시스의 내용 때문에 미리 짐작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짐작을 통해 영화를 감상해도 '언더 더 스킨'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묘한 작품이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더 깊은 심연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들었다.



ⓒ Film4. All rights reserved


독특한 이미지로 시작한 영화는, 여주인공 로라(스칼렛 요한슨)가 등장하여 어떤 여자의 옷을 모두 벗겨 다시 입는 것으로 또 한 번의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이후 등장하는 시퀀스에서도 반복되지만 여기서 인상적인 건 옷을 뺏는 행위 보다도 그 배경이 되는 공간의 이미지였다. 온통 검기만 한, 또한 마치 발을 딛고 서있는 지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하지만 마치 물 위를 걷듯 반사가 되는) 검은 공간의 이미지는, 마치 미술관에 걸려 있는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언더 더 스킨'은 쉽게 말하면 SF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한 편으론 공포스러우며 다른 한 편으론 다큐멘터리가 같다. 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각각의 장르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각 장르의 정반대에 서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장르 영화로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이미지를 실현함으로서 관객이 그 이미지가 주는 모호함의 끝에서 메시지를 발견하도록 만든 작품이라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앞서 미술관에 걸려 있는 예술 작품 (혹은 퍼포먼스)을 예로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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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이 작품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로라가 만나는 남자 배우들의 대부분은 전문 배우가 아닌 이들을 캐스팅하였으며, 몇몇 장면 역시 몰래 카메라 형태로 촬영되기도 했다. 이런 뒷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영화 속 영상은 로드 무비와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리고 의도한 바 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더 더 스킨'은 2013년 작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오해했을 정도로, 이전 시대의 영화의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다. 특히 영화에 사용된 음악이 그런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 영화는 거의 대사가 없고 영화 음악이 마치 대사 처럼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불안함과 기괴함의 선율은 앞서 언급한 온통 검게 둘러 쌓인 공간의 이미지와 그 장면에서 벌어지는 상황 보다도 어쩌면 더 강렬한 인상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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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이 되는 스코틀랜드의 정경도 무심하게 느껴진다. 스코틀랜드 라는, 세계인들이 그 존재와 이름은 잘 알지만 따지고 보면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알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곳을 배경으로 한 것은, 이 영화가 철저히 로라의 이야기 만을 다루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남자들이 살해 당하고 로라의 정체와 의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미스테리라 부르기는 어렵다. 즉, 이 영화는 '왜?' 그러했는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이 말이 맞다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 로라의 정체가 표면적으로 드러났을 때 비로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 마지막 순간에서 어떠한 반전의 느낌이나 충격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말 그대로 표면적일 것일 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로라라는 캐릭터의 껍데기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 스스로는 영화에서 그 껍데기를 입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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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을 보고 무엇을 보았냐고 누군가 묻는 다면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았고, 그 어둠에 이유 없이 빠져버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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