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클럽 (Deception, 2008)
끝까지 심심한 '스릴러'


국내에는 <더 클럽>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Deception'. 'Deception'이란 해석해보자면 사기, 속임 뭐 이런 정도의 뜻인데,
제목 자체가 좀 스포일러스럽기는 하지만, 반대로 '더 클럽'이라는 제목 때문에 영화를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로 알고
접하게 되었고, 나 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스릴러 라기 보다는 사교계의 비밀 클럽을 둘러 싼 섹스 스캔들을 다룬
성인 드라마로 알고 극장을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이것이 마케팅 적인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릴러 적인 재미보다는 배드씬이 자주 등장할 것만 같은 홍보 방법은 많은 '어른'분들을 당혹스럽게 했을 듯 하다
(실제로 <색, 계>나 <권태>같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나이 지긋하신 어른 분들이 극장을 오랜만에 찾으신 경우가 많았었는데,
아마도 영화 초중반부터는 적잖이 당황하셨을 듯 하다).

어떻게 보자면 제목에서부터 '속임'이라고 광고하는 것 보다는, 전혀 다른 제목으로 스릴러 본연의 재미를 100%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도적이진 않지만) 좋기도 했지만, 영화는 스릴러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부터 대략적으로
마지막까지 예상이 가능한 평범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 그 이상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심지어 장르가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은채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주연을 맡은 세 명의 배우 때문이었다.
이완 맥그리거와 휴 잭맨, 그리고 미셸 윌리엄스, 이렇게 세 사람을 한 영화에서 만나보는 것 만으로도 나름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영화는, 일단 그 뿐으로 마무리 된 듯해 아쉬움이 있다. 휴 잭맨의 경우 우디 알랜의 영화 <스쿠프>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를 맡은 적이 있는데, 선과 악을 모두 갖은 듯한 그의 양면적인 마스크는 분명히 매력적이기는 하나,
빈틈이 많은 영화에서는 그리 빛을 발하지 못한 것 같다. 휴 잭맨은 정작 액션 영화인 <엑스맨>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데,
이 영화처럼 일반 드라마에서 멀쩡히 정장을 입혀놓으면 그 엄청난 기럭지와 덩치를 실감하곤 한다. 이 영화에선 
그리 크지 않은 키의 이완 맥그리거와 작은 체구의 미셸 윌리엄스가 상대역으로 등장해서 더 그런지 몰라도, 그의 엄청난
덩치와 엄청난 손 크기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완 맥그리거 또한 그리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한다. 그 멋진 발성과 음색, 억양은 여전하지만, 별로 입체적이지
못한 캐릭터 탓에 그 만의 장점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미셸 윌리엄스의 출연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했던
부분이었는데, 캐릭터 자체거 너무 뻔한 터라 몇몇 장면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 그 자체 외에는 별 다른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배우들 만 믿고 보러갔던 영화인데, 역시 영화는 시나리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계기가 된 듯 하다.


스릴러임에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그렇다고 그 과정의 긴장감이 두근 두근 하는 것도 아니며, 이렇다할 볼거리가 있던 것도
아니라 아쉬운 점만 많았던 영화였다. 누가 배신을 하겠구나, 마지막엔 어떻게 되겠구나 하는 것이 너무 쉽게 예상되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 때문에 김이 쉽게 빠지는 식이었으며, 차라리 마케팅 차원에서 선택했던 바로 그 사교클럽에 집중한
다른 이야기였다면 오히려 더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도 싶다.


1. 샬롯 램플링과 매기 큐가 깜짝 등장한다. 두 캐릭터 모두 깜짝 이외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2. 낚이신 어른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대신하고 싶은 심정...;;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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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 1998)
촬영감독 유영길 특별전 - 허진호 감독 씨네토크


제가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를 본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된 것 같네요. 1998년에 개봉을 한 작품이었지만
당시에는 극장에서 보질 못했었고, 비디오로 출시된 다음에야 감상할 수 있었던 기억입니다. 당시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기 때문에 주인아저씨에게 비교적 싼값에 VHS 테입을 샀던 기억도 나네요.
그러던 어제 서울아트시네마의 시간표를 확인하던 중 '유영길 촬영감독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고,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인지한 동시에,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본 한국영화 중 하나인 <8월의 크리스마스>의 상영과
허진호 감독님의 씨네토크가 있다는 알게 되었고, 주저 할 것 없이 바로 극장으로, 극장으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DVD가 출시되었을 때 다시 한번 보았던 기억이 얼핏 나기도 하지만,
제대로 영화를 본 것은 사실상 비디오로 접한 뒤 처음이라, 러닝타임내내 심하게 몰두한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도 <8월의 크리스마스>는 상당히 슬픈 영화였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새로운 인연이 등장하고, 이 남자를 둘러싼 삶의 풍광을 담담히 그려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영화였죠.

그런데 거의 10년만에 이 영화를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보니 내가 머리로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한 슬픔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를 들자면 이 영화를 처음 비디오로 접했을 때에는 없었던 개인적인 아픔이
생겼기 때문에 더 깊이 공감하며 마음이 동요한 것도 이유겠지만, 좋은 영화들이 그렇듯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영화가 다르게, 혹은 감동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극중 한석규가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던가, 마루에 앉아 발톱을 깍는 장면, 천둥이 치는 밤 장면 등 장면 하나 하나가
깊이있게 다가오더라구요. 버스를 타고 오는 중에 열린 차창으로 바람을 맞으며 창밖을 보는데, 버스내 방송에서는 김창환의
노래가 흐릅니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에요' 이런 장면은 감정을
쥐어짜거나 극적인 장면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절제함으로서 깊은 곳에서 슬픔이 우러나오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는 했었지만, 이번에 느꼈던 이런 깊이는 아니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예전에는 한석규와 심은하의 관계에 대해 더욱 집중하며 보았다면, 이번에 다시 볼 때는 한석규와 그의 아버지로
출연하는 신구씨와의 장면이 더욱 깊이 다가오더군요(영화 상영뒤 갖은 씨네토크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유영길 촬영감독
역시 이 영화 촬영 몇년 전에 아드님을 먼저 떠나보내신 슬픔이 있어, 이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를 촬영하실때
가슴이 많이 아프시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이 떠나면 홀로 남을 아버지를 위해 매번 자신이 해오던
비디오 작동법을 아버지께 가르치는 장면에서 아버지가 잘 작동법을 익히시지 못하자 짜증을 내며 방문을 나서는 것은,
그냥 짜증이 아니라 자신이 없으면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가실까 하는 걱정과 죽음에 대한 또 한번의 인식 때문에
자신에게 화와 슬픔이 동시에 드는 장면이죠. 이런 장면이 얼마나 섬세하게 촬영되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세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꼭 유영길 촬영감독님의 특별전이라 카메라의 위치나 분위기를 특별히 보려하지 않아도, 절로 장면 장면 담긴 따듯함이
엿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여기에는
물론 통속적이지 않은 결말부분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감정을 과잉표현하지 않고 계속 절제하고 비워나가는 방식으로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여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거의 움직임이
없다시피한 장면이 3분 가까이 진행됨에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던 절제된 카메라의 연출이라고 생각되구요.

극중 한석규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올 때 마다 속으로 얼마나 울컥했었는지 모르겠네요.
쉽게 말해, 눈물 나는 슬픈 영화라는 사실은 이미 봐서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렇게까지 슬픈 영화일 줄은 몰랐다고 할까요.
2008년에 다시 보게 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참으로 슬픈 영화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허진호 감독님과 함께하는 씨네토크 시간이 있었습니다.
일단 개봉된지 10년이 된 작품이라 감독님께서도 기억을 더듬으며 친절히 답해주셨고, 이 영화의 오랜 팬들이 모인
자리답게 그 어느 자리 못지 않은 애정 가득한 질문들이 끊임없이 터져나왔습니다(거의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느낌이었는데
끝날 때까지도 계속 손을 드는 분위기였고, 손을 들었는데 질문을 결국 못하신 분들이 있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영화를 깊이 보게되면 영화 속에 소품이나 각종 장면들에 대해 어떤 의미나 상징을 부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경우 허진호 감독님은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오히려 피하려고 했다고 하시더군요.
곧 의도 되지는 않았던 의미들이었고, 가능하면 이런 것들을 빼려고 하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씨네토크 중에 가장 재미있던 것은 군산에서 촬영할 때 한석규씨가 탕수육을 좋아해 자주 먹곤 했는데, 영화 말미로 갈수록
얼굴에 살이쪄서, 그러니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얼굴에 살이 올라 클로즈업 촬영시에 곤혹을 겪었다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이 외에도 유영길 촬영감독님과의 추억, 그리고 <그 섬에 가고 싶다>에 참여한 많은 감독님들의 이야기(이 자리에서 이 영화에
참여한-지금은 다 이름있는 감독분들이 이 영화에 다 스텝으로 참여하고 있더라구요- 스텝들의 이름을 들으니 꼭 한번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리고 허진호 영화라 불리는 그의 네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짧게 코멘트 하자면 생각보다 의도되지 않은 것들이 많은 것이 허진호 감독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초등학생 일기에나 등장할 법한 표현이지만,

참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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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 (2008)

'두 번째 달'이라는 밴드의 음악을 몇번 인상 깊게 듣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 중 한 곳인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촬영한 다큐멘터리라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
6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의 다큐멘터리는 60분 내내 아일랜드의 이국적인 풍경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스크린 한 가득 담고 있었다.'바드 (BARD)'는 두 번째 달의 김현보와 박혜리가 주축이 되어 만든 아이리시 프로젝트 밴드인데,
임진평 감독은 이들이 아일랜드를 만나 연주하고 그 속에서 반응하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나레이션으로 다큐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아일랜드라는 국가가 언제부터가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나라이기도 했고, 각종 영화나 밴드 등을 통해 최근들어
더욱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킨 나라이기도 한데(아마도 <원스>의 영향이 가장 컸다 하겠다), 바드의 경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아일랜드 행을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화는 임진평 감독의 에세이집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와 패키지로 봐야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갈만한 작업으로 느껴졌다. 즉 아일랜드라는 곳에서 그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전통 음악을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 음악과 그들의 삶이 얼마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는 잘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이 다큐만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TV다큐를 통해 여러번 접했던 것들이기 때문에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시도였다고 하겠다(영화를 보는 내내 최근 EBS
에서 재미있게 보고 있는 '세계문화기행(?)'이 떠올랐다).


팜플렛에 담긴 감독의 말을 빌려오자면 '시나리오도 없고 생전 처음 가보는 나라 아일랜드. 하지만 뭔가 만들어 올 거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라는 말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결정적인 단서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아무리 다큐멘터리라도
어느 정도의 시나리오가 없었던 것은 결국 문제점으로 드러났으며, 막연한 기대는 결국 막연한 것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밴드 멤버들이 아일랜드에서 겪는 소소한 연주 장면과 이동 등, 그리고
인터뷰 등을 담고 있지만, 그저 그들의 여행에 동참한 것일 뿐 아무런 이유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더 중요하다, 나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왜 아일랜드처럼 전통음악을 계속 대중적으로 이어나가지 못하는가 라는
말들을 하고는 있지만, 정작 이런 얘기는 마지막에 듣기 좋은 마무리일뿐, 이런 말들이 나올만한 과정은 여행 속에 담겨있지
않았다. 그들이 왜 아일랜드까지 날아가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주어야 했는지에 대한 진정이 보이지 않았고, 그저 아이리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본토에 가서 직접 아이리시 음악을 느껴보고 싶다 그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는 그 이상의 것을 얘기하고 있다고 하는데, 60분 내에서는 그 과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뭐랄까 너무 추상적이며 감독의 말대로 무언가 만들어 올 거 같은 막연한 기대만이 존재하는
다큐로 마무리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차라리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Heima' 다큐처럼 단순히 연주하는 장면
만으로도 많은 의미와 진정을 전달하는 것을 본보기로 삼았어야 했을 것 같은데, 그저 개인적인 여행기로 그친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이 다큐는 소자본으로 이루어진 인디 영화라 좀 더 아쉬운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리시 음악을 하는 밴드가 직접 아일랜드에
가서 겪게 되는 변화라던가 진지함에 좀 더 가까이 카메라를 기울였더라면 좀 더 괜찮은 다큐멘터리가 되었을 것 같은데,
결국 다큐가 다 끝날 때까지 밴드 멤버들과 카메라 사이에는 계속 벽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소통도 잘 되지 않았던 것이고.
영화라는 포맷으로 만나기에는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던 다큐멘터리였다. 아마도 TV를 통해 방영되었다면 훨씬 더 좋은
감상평을 했을런지 모르겠다.


1. 포스터에는 대문짝만하게 '미로스페이스 개봉'이라고 적혀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맞지 않아 이대 후문쪽에 위치한
   필름 포럼에서 감상하였다.

2. 주말 오후임에도 나, 너, 어떤 남자, 이렇게 세명이서만 조촐하게 감상했다.

3. 잠시나마 오랜만에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하림의 모습이 반가웠다.

4. 아...TV용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만나보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5. 음악, 아일랜드, 여행 등 내가 너무 좋아하는 요소들만 있었던 영화였기에 더 아쉬움이 큰지도 모르겠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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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보이 2 : 골든 아미 (Hellboy 2: The Golden Army, 2008)
소박하고 사적인 영웅담


개인적으로 올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를 제외한다면, 가장 기대했던 블록버스터 영화는 바로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헬보이 2: 골든 아미>였다. 원래 주류보다는 비주류, 평범한 것 보다는 약간 이상한 것, 뻔한 것 보다는 특별한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요상한 것들을 창조해 내는 데는 장인 수준에 다다른 델토로 감독의 신작이 기대될 수 밖에는 없었고, <헬보이>가 기대보다는 조금 심심했던 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속편이 좀 더 기대되던 바였다.


1편에서는 뭐랄까 헬보이라는 캐릭터와 그 역사와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해야 되는 것도 있었고, 리즈 와의 관계 또한 처음 부터 보여주어야 했었기 때문에 재미 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 작품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기대되는 창조적이고 아름답기 까지 한 기이한 캐릭터들과 역시 어두움을 근본으로 하고 있음에도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디자인 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영화 자체도 무언가 심심하고 아쉽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런 면에서 <헬보이 2 : 골든 아미>는 기대했던 창조물들이 제법 등장해주어서 매우 반가웠으며, 내가 좋아하는
(특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영화에서 등장 할 때 더욱 반가운) 뻔하지만 눈물 나는 장면들이 포진되어 있어서, 기대하지 않았던 감성까지 자극 받았던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영화의 부제는 '골든 아미'인데, 이것은 마치 국내 개봉 시에 홍보 측면에서 떡밥을 강화 시키기 위해 추가한 제목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실제적으로 영화에서는 부제로 쓰일 만큼의 강력한 임팩트는 보여주지 못한 듯 하다)

사실 1편을 다시 떠올려 보면 주인공인 헬보이와 같은 편인 에이브, 그리고 몇몇 악당들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인상 깊은 캐릭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신화 속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뛰어 들지는 않고  그 신화 속 인물들이 현대의 도심에 나타나 벌이는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이렇다 할 아기자기함과 디테일은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이번 속편에서는 이런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다시 한번 헬보이의 출생 과정을 짧게 나마 설명해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번 영화의 주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과 요정(요괴?)들의 오랜 전쟁과 협약에 관한 전설, 그리고 여기에 연관되어 있는 바로 그 '황금 군대'에 관한 설을 풀어놓으며, 무언가 미지의 것들이 등장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깔고 시작한다.

이를 통해 이 오래된 요정의 왕조가  현대에도 도심 지하 어느 곳에서 계속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설정과 '당연히' 봉인된 골든 아미를 부활시키려는 누군가가 있어 이를 두고 헬보이 일당과 대결을 벌이게 된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사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등장했던 가장 뻔한 스토리이기도 하다. 특히나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인간들처럼 보이나 사실 알고 보니 트롤들이 인간 행세를 하고 다닌 다는 설정은 어렵지 않게 <맨 인 블랙>들의 외계인을 떠올릴 수 있으며, 왕이나 왕자 등 어떤 오랜 역사를 지닌 암흑 세계의 일파나 일족들이 도심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설정 또한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언더월드>나 <블레이드>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뭐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여기에 포함된 러브 스토리 요소는 더욱 뻔한 것이기도 하다.


(헬보이 2에는 길예르모 델토로 하면 떠오르는 아기자기하고 기이한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몇몇 캐릭터의 디자인은 감독의 전작 <판의 미로>를 떠올리게 했으며, 위의 스틸컷에 등장하는 캐릭터에서는 데이빗 보위, 제니퍼 코넬리 주연의 1986년작 <라비린스>를 떠올릴 수도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 자체가 그리 독특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님에도 <헬보이 2>가 달리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서도 언급했던 것 처럼 길예르모 델토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어둡고 기이하면서도 창조적인 캐릭터와 세계의 디자인을 들 수 있겠다. 이번 영화에서는 본격적으로 이 요상한 것들의 세계가 등장하는데, 단순히 도심으로 뛰쳐나온 소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들의 세계에 헬보이 일당이 쳐들어가는 시퀀스라, 델토로 만의 아기자기함을 여기저기서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길예르모 델토로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마음에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요상한 캐릭터들이 상당히 아날로그 적이고 마이너한 감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위의 스틸컷 설명에서 말한 것처럼 <라비린스>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 디자인도 엿볼 수 있었고, 아래 등장하는 대형 돌무대기 캐릭터나 몇몇 캐릭터들에서는 유명한 판타지 어드벤처의 고전인 <네버엔딩 스토리>의 분위기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그럼, 델토로의 캐릭터는 어차피 다 여기저기서 배껴온거라는 건가?'라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고전 SF영화들의 비주류 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는 것 뿐이지 절대 배꼈다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미믹>부터 시작해 <판의 미로>까지 델토로 감독의 작품들과 DVD의 서플먼트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바로 미뤄볼 때, 델토로 감독은 영화 자체를 완성 시키는 것 만큼이나 기이한 캐릭터들을 만드는데 신경을 쓰고 있고, 그것 자체에 희열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예전에 보았던 영화에 그 캐릭터 좋더라 는 식으로 쉽게 소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반대로 델토로 감독은 어떡하면 평범해 보이지 않고 좀 더 이상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까를 머리를 쥐어 짜며 고민하는 감독이며, 일부 배우들에게서는 '괴물에 너무 집착 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스토리텔링 만큼이나 디테일한 판타지 세계 구현에 애쓰고 있는 감독이라 하겠다(그래서 그의 차기작 <호빗>이 너무도 기대되는 바이기도 하고).

(로케이션 정보를 보면 북아일랜드에 위치한 'giant's causeway'에서 촬영한 것 같은데, 로케이션 촬영이 많지 않고 또한 있어도 거의 밤 장면이 대부분이다 보니, 환한 로케이션 촬영 장면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골든 아미'도 그렇고,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만약 헬보이가 TV시리즈라고 가정 했을 때,
매우 특별한 날에 방영되는 특집 에피소드라던가 아니면 극장용 버전에 지나지 않는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이 이야기는 헬보이 자신과는 직접적으로 별로 연관이 없고(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비밀 특수 요원으로서 헬보이가 또 한번 해쳐나가야 할 하나의 '껀수' 밖에는 되지 않는 다고 봐도 될 정도다. 뭐 이런 식으로 따져보자면 많은 시리즈물들이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를 극대화 화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겠지만, 헬보이라는 캐릭터의 특성으로 보았을 때 무언가 좀 더 전설과 신화와 연관되어 헬보이라는 캐릭터에 더욱 밀접한 이야기로 끌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3편에서는 1편부터 계속 암시를 주었던 헬보이의 운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 편으론 이런 에피소드식 이야기가 성에 안 차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이런 방식이 <헬보이 2>가 좋았던 다른 이유에 가장 근본적인 점도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여겨진다. <헬보이 2>에서 헬보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일반적인 영웅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그저 그가 모습이 이상하고 악마의 아들이라는 베이스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그가 악당을 물리치는 방식이나 그 마인드에 있어서는 기본적 영웅들과는 매우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이런 점을 숨기지 않고 겉으로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텐데, 정의감에 불타거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의 모습 이라기 보다는, 그저 '초자연 연구 방어국(BPRD)'에 속한 '직원'으로서 업무를 해결하는 것 정도의 느낌이 더 강하다. 이런 점에서 <맨 인 블랙>과의 비슷한 느낌도 받을 수 있겠는데, 헬보이는 이 영화에서 악당에 위치에 있는 누아다 왕자에게 어떤 원한이나 감정도 없으며, 오히려 동질감 마저 느낄 정도의 대화를 들려주기도 한다.  즉 '세상을 구해야지'하는 정의감 보다는 그저 '피하지 못할 바에야 즐기자'하는 식이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히어물에 비해서는 좀 더 절절함이 부족한 것도 사실인데, 오히려 그게 <헬보이 2>만의 쿨한 장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완전 소소한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마치 <다크 나이트>처럼 좋은 일을 하고도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헬보이는, 괴물을 죽이기 전에 왜 죽여야 하냐에 대해 고민도 하게 되고, 너도 어차피 인간들에게는 불청객일 뿐이다, 넌 우리과야 라는 식의 누아다 왕자의 말에 진심으로 흔들리기도 한다. 이런 정체성의 고민은 1편부터 계속 갖고 있던 것으로 나중에 어느 순간 이를 본격적으로 다룰 시점이 왔을 때를 위해, 짧은 분량이지만 가볍지 않게 다루고 있다.

(누아다 왕자와 골든 아미의 이야기는 제법 흥미로우면서도 뻔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반드시 서사적으로 헬보이 영화에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약간의 스포일러성 장면 묘사가 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

이렇듯 정의감 보다는 그저 즐기는 헬보이 이다 보니, 이 영웅담도 매우 사적으로 흐를 수 밖에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론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연출이 매우 마음에 들기도 하였고. 1편에 비해 헬보이와 리즈의 관계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으며, 전작에서는 그저 특수한 능력을 지닌 헬보이의 동료 중 하나 정도로만 그려졌던 에이브도 나름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비중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한 명은 악마의 아들 이고 또 한 명은 물고기의 특성을 갖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인 이들이, 매우 사적으로 돌아가 자신들만의 고민을 토로하는 장면이었다. 다른 타이틀 다 재치고 그저 남자라서 고민하는 것들. 좋아하는 여성과의 이들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겪게 되는 남자들의 고민. 이를 술로 달래며 동병상련을 겪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흐뭇하고 아름답게 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특히나 좋아하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스파이더 맨 2>의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그랬고, <월-E>의 등장했던 <헬로 돌리>속 'Put On Your Sunday Clothes'가 그랬듯이, <헬보이 2>에서도 사랑에 아픔과 설레임을 겪는 두 남자가 한껏 소리내어 부르는 베리 매닐로우의 'Can't Smile Without You'는 약간은 생뚱맞아 보이기도 하지만 아련하고 따뜻한 감성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어찌나 온몸에 소름이 돋던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절로 미소 짓게 될 정도로 따뜻하면서도 애잔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쿠쿵'하는 웅장한 음악이 아닌 이런 말랑말랑 팝발라드가 흐를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헬보이 2>를 보고 아련한 감성을 느껴 소름이 돋았다고 하면 어디 가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소리 들을지는 모르겠으나, 좋아하는 영화는 매번 영화적 감성을 120% 이상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ㅠㅠ

(저 갈퀴 달린 파란 손으로 '러브 히트송' CD를 야무지게 꼭 감싸 쥐고 있는 에이브의 모습을 보라. 그리고 동네 어르신처럼 건 하게 취해 벌건 얼굴이 더 벌게진 헬보이의 모습도 참으로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

예고편이나 제목에서 보았을 때, '와, 저 무시무시한 골든 아미와 헬보이가 신나게 한 판 벌이는 모양 이구나'하고 기대했었으나 뭐 그 정도로 기대할만한 액션은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다만 누아르, 아니 누아다 왕자와의 1:1 대결 장면이 사실상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홍콩 무협영화를 보는 듯한 대결씬을 연출하는 것이 흥미롭다. 특히나 헬보이라고 하면 빠른 몸 놀림 보다는 느리지만 강력한 파워 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결투 씬에서는 누아다 왕자의 빠른 몸 놀림 못지 않은 날렵한 몸 놀림을 선보여,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대결 장면을 선사하고 있다.

아까 베리 메닐로우의 곡 얘기를 하면서 영화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는데 추가해 보자면, 이 영화는 초반부터 상당히 의외로 최신 경향의 록 음악이 삽입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이런 블록버스터 히어로 물이라면 보컬이 포함된 록이나 팝보다는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위주가 된 영화 음악이 쓰이는 것이 대부분인데, 마치 트랜드 드라마에나 등장할 법한 록 음악이 사용된 장면들은 다소 의외였다. 아마도 이것 역시 '헬보이'라는 캐릭터와 영화를 거대하고 무거운 영웅담만으로 포장하기 보다는 쿨 하고 소박한, 다른 히어로물과는 차별 되는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사용된 것 같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헬보이'라는 이야기는 어차피 어두운 결말을 어쩌면 처음부터 준비해야만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막판에 몰아서 심하게 어두울 공산으로(1,2편에서 '그렇게 쿨 하던 헬보이가...' 하며 더 슬퍼질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12세 관람가라는 낮은 관람가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이라면  12세 관람가 보다는 더 높은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영화에서 좀 더 장기를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한데, 액션 장면 등에서도 낮은 연령대에 맞추어 이렇다 할 강한 표현이 없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판의 미로>의 '판'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죽음의 천사' 캐릭터의 모습. 이 캐릭터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독특하고 환상적인 모습 때문에 단번에 뇌리에 각인되고만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다)

헬보이 역할을 맡은 론 펄먼의 경우 <헬보이>이전에도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에이리언 4>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이 중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인상을 주었던 작품은 아무래도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였다)등 여러 영화들에서 인상 깊게 보았었는데 <헬보이>이후에는 저 벌건 분장이 너무 익숙해서 인지 원래 그의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매우 독특한 마스크를 지닌 배우임에도 불구하고)헬보이 캐릭터로 금새 깊이 각인이 되어버린 듯 하다. 1950년 생으로 나이도 많으신데 저런 분장과 액션 연기를 다음 작품에서도 소화해내실 수 있을지도 살짝 걱정이고. '죠커'에게서 히스 레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처럼, 어느새 부턴가 '헬보이'에서도 론 펄먼의 이미지를 찾아보기가 어려워 진 것 같다. <헬보이>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론 펄먼이 분장했구나 하고 바로 느꼈던 것과 비교하자면, 이번 <헬보이 2>를 보면서는 전혀 론 펄먼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 리즈 역을 맡은 셀마 블레어도 나쁘지 않았고(개인적으로 리즈 역을 아시아 아르젠토가 맡고 18세 관람가로 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해본다;;), 에이브와 챔버레인, 죽음의 천사까지 1인 3역을 맡은 더그 존스의 연기도 골룸 연기와 킹콩 연기로 이름을 알린 앤디 서키스에 버금가는 또다른 전문 연기자로 발돋움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존 허트는 전편에 이어 헬보이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브룸 교수 역할로 출연하고 있다.


<헬보이 2 : 골든 아미>는 분명 일반적인 블록버스터 히어로 물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12세 관람가라는 낮은 연령대에 맞추기 위해, 많은 것을 절제하고 있는 시리즈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지금의 버전도 매우 좋지만, 앞서 말한 두 가지 조건에 상관없이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에게 만들어보라고 하면 좀 더 마이너하면서도 더 농도가 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된다.

<헬보이 2 : 골든 아미>를 보러 극장을 찾으면서 기대했던 것은 델토로 만의 아기자기한 캐릭터의 맛, 그것 뿐이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짠한 감동마저 전하는 이야기에 더욱 반하게 되어버렸다. <헬보이 2 : 골든 아미>역시 남에게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는 못될지 몰라도, 나는 꼭 한 번 더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인 것 같다 ^^;


1. 필름 상영으로 보았는데 디지털로 상영하는 곳이 있나 한번 찾아봐야겠다.
2. 만약 3편이 나오고, 3편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라면, 아마도 3편이 가장 길예르모 델토로 스럽고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듯 하다.
3. 그래서 약간 심심하게 보았던 1편도 블루레이로 슬슬 구매를 알아봐야겠다 ;;
4. 지겹고 평소에 별로 안좋아하던 곡들도 영화에 잘 녹여내면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걸 또 한번 새삼 깨달았다 ㅎ
5. 취향이란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건 뭐 이래저래 아쉬운 점을 늘어놓긴 했지만 내 취향 --v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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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일본 TV애니메이션에는...

1967년, <갓챠맨> (국내 방영 제목 ‘독수리 5형제’), <신조인간 캐산>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타츠노코 프로덕션은 <마하 GO GO GO> (국내 방영 제목 ‘달려라 번개호’)를 선보이게 된다(제작 연도 상으로 보았을 때 <마하 GO GO GO>(1967)가 <독수리 5형제>(1972)나 <신조인간 캐산>(1973)보다 앞서 있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타츠노코 프로덕션의 이름을 널리 알린 첫 번째 작품은 <마하 GO GO GO>라고 해야 맞겠다). <마하 GO GO GO>는 자동차 경주를 주요 소재로 포뮬러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첫 번째 작품이었으며, 주요 인물인 레이서들의 개성적인 캐릭터 묘사라던가 차체마다 각각의 고유 기능이나 개성을 부여하거나,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 이후 만들어진 레이싱 관련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자적 작품이라 하겠다. 특히 최근 세대들에게 익숙한 레이싱 애니메이션인 선라이즈 제작의 <신세기 사이버포뮬러>의 아버지 격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역사과 전통을 갖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하 GO GO GO>가 미국에서, 미국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에는 일단 기대와 우려가 함께 들 수밖에는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매트릭스> 시리즈를 연출한 워쇼스키 형제(본 블루레이 타이틀 내의 서플먼트에서는 공식적으로 ‘형제’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여기서도 그대로 따르기로 하겠다)가 <마하 GO GO GO>를 영화화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우려보다는 기대가 앞설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누구던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쿵푸 등 동양의 정서를 헐리웃에서 영화화 할 때 우려되는 이른바 ‘양키 센스’를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통해 이미 완전히 불식시킨 감독이 아니던가.

<매트릭스> 3부작을 통해 그들이 보여준 확고함은, 이들이 동양문화에 대해 단순히 수박 겉핥기식으로 동경하는 정도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오타쿠’ 중에서도 최상위급 오타쿠라 할 만큼 원작과 문화의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그래,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다면 분명 다르겠지’ 하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 영화 <스피드 레이서>도 무한한 기대를 하게 되었던 것이고, 결과적으로 워쇼스키 형제는 오타쿠의 세계를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까지 올려놓는 금자탑(?)을 쌓고야 만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 그들이 만들면 다르다!

사실 필자는 <신세기 사이버포뮬러> 세대인터라 <스피드 레이서>의 원작인 <마하 GO GO GO>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는데, <스피드 레이서>를 보고나서 원작의 영상을 살펴보니, 원작의 캐릭터 묘사나 설정들을 놀랍도록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히 복고적인 느낌을 살리려거나 아니면 영화화 과정에서 좀 더 극적인 요소를 보강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줄로만 알았던 장면들은, 전부 원작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등장하는 것들이었으며, 굳이 재현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것들(원작의 골수팬들이나마 겨우 알아볼 정도의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영화로 옮겨온 워쇼스키 형제의 꼼꼼함(지독함)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캐릭터들의 묘사 같은 경우에도 성격적인 면은 제쳐두더라도, 만화의 캐릭터와 영화 캐릭터의 모습이 거의 흡사한, 정말 만화 속 캐릭터가 그대로 실사화 된 듯한 느낌을 줄 정도의 캐스팅과 의상 등 매우 싱크로율이 높은 캐스팅임을 나중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부모 역할을 맡은 존 굿맨과 수잔 서랜든의 캐릭터의 묘사가 특히 그러했으며, 개봉 시 많은 관객들의 불편함으로 지적되었던 스프리틀과 침팬지 침침의 개그 시퀀스 역시, 아주 생뚱맞은 것이 아니라 원작의 캐릭터에서 많은 부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전체 관람가 영화로서 좀 더 많은 연령대를 커버하려는 노력과 가족 영화로서의 재미를 주기 위한 설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스피드 레이서>의 화려한 액션을 감싸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가족 영화와 성장 영화의 구조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단순히 가족이 레이싱 가족인 배경 탓에, 그리고 동경하는 형이 레이서인 탓에 레이서가 되고 싶었던 스피드(에밀 허쉬)가 갖가지 사건들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유 없이 그저 좋았던 레이싱에 대해 마지막에 가서는 ‘왜 레이싱을 계속 해야 하는가?’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결국 그 해답을 찾게 되면서, 이 영화는 성장 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스피드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는 형 렉스에게 했던 실수를 스피드에게는 거듭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스피드를 둘러싼 가족들(스파키를 포함한, 스파키의 존재는 이 영화에 또 다른 생각해볼 거리라 생각된다)또한 한 걸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가족 영화가 들려주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만약 극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한 다면 이 같은 전형적, 신파적 설정들은 그저 코웃음 치게 하는 유치한 개그에 머물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같이 뻔한 스토리와 메시지에도 울컥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될 수도 있는 영화이다.

판타지 레이싱의 황홀경을 보여주는 카-푸(Car-Fu)액션

구구절절 말이 많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스피드 레이서>를 얘기할 때 가장 첫 번째로 거론 되야 할 것은 역시 눈이 황홀하다 못해 피곤해지기까지 하는 화려한 액션과 영상이다. <스피드 레이서>에 등장하는 레이싱 액션 장면들은 일반적인 실사 레이싱 액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액션이라 할 수 있다. 레이싱 카가 앞으로 달리기 보다는 옆으로, 뒤로 달리는 장면이 더욱 많을 정도다.


그리고 각종 무기들이 차안에 내장되어 있어 스피드를 괴롭히는 장면들도 등장하고, 차가 차 위로 점프를 하고 차를 날려 다른 차를 막아내는 등 실사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카 스턴트 액션을 강조된 컴퓨터 그래픽과 함께 만나보게 된다(혹자들은 이 같이 너무 비현실적인 레이싱 액션 장면 때문에 너무 만화 같다며 혀를 차기도 했었는데, 그도 당연한 것이, <스피드 레이서>는 그냥 ‘만화 같은’ 영화가 아니라 만화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면서 스크린으로 옮기려고 작정한 작품이니 뭐 말 다했다고 볼 수 있겠다).


'카-푸(Car-Fu)’ 액션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동차(Car)와 쿵푸(Kung-Fu)의 합성어로서 마치 자동차가 쿵푸를 하듯 액션을 벌이는 장면을 일컫는 말이다. <스피드 레이서>의 액션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카-푸’액션이라고 부르는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단순히 양옆에서 속도를 겨루는 것을 넘어서 경공을 펼치듯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날아다니다 못해 마치 날라 차기를 하듯 상대차를 쳐서 낭떠러지로 보내버리는 장면이 바로 ‘카-푸’액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화려한 CG영상

<스피드 레이서> 개봉 당시 가장 극렬하게 호불호가 갈린 부분은 바로 너무나도 만화적이고, 인위적인 느낌마저 드는 영상 때문이었다. 워쇼스키 형제는 원작인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주는 물론이고, 좀 더 애니메이션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화려하게 옮겨온 듯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CG를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만화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씬 시티>같은 작품과 유사점을 찾아볼 수도 있겠고, 실사로 표현된 인물들이 CG가 적극 활용된 배경에서 연기한다는 점에서는 역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 <스파이 키드>같은 작품들이 연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 초반 원색으로 표현된 동네의 디자인과 각각 원색의 옷을 입은 인물들의 모습은 팀 버튼의 세계를 떠올리게도 하고, 워렌 비티 감독,주연의 <딕 트레이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마도 다른 감독(오타쿠가 아닌 일반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CG를 사용하되 이렇게 과도하게 티가 날 정도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 같으면 어떻게 하면 더 실사 영화에 가까울까, 어떻게 하면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면서도 현실적인 자연스런 영상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했겠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애초부터 이 영화를 리얼리즘에 근거해서 만들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스런 작품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CG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아예 드러내 놓고 ‘즐겨 보시죠’하고 내놓은 경우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면 분할 시퀀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은 조금 과도한 감이 없지 않지만,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정보량을 담으려는 시도로서, 비주얼 적인 면에서도 멋진 장면들을 여럿 선사하였다. 특히 사막에서 펼쳐지는 레이싱 장면에서 레이싱 카들이 모래 언덕을 내려올 때 모래 연기가 만화처럼 ‘퐁퐁~’하고 표현된 장면들은 더도 덜도 없이 완전히 애니메이션 그 자체였다. 공격을 하거나 액션이 이루어질 때 마치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예전 대전 게임에서나 등장하는 촌스러운 전환 배경이 펼쳐지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성격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레퍼런스급 최고의 화질로 만나는 <스피드 레이서> 블루레이!

종종 극장에서 만족스러운 영화를 만나게 되면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 영화, 빨리 DVD나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블루레이가 미친 듯이 기다려진다!’라고 생각했던 영화는 아마도 <스피드 레이서>가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만큼 <스피드 레이서>는 러닝 타임 내내 눈이 즐겁고 황홀한 영화였으며, 화려한 볼거리와 색감으로 가득 찬 영화라, 좀 더 극대화된 화질을 경험할 수 있는 블루레이의 출시를 기다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1080p/VC-1 코덱의 BD영상은 감히 사상 최고 수준의 레퍼런스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아니 레퍼런스다. 사실 영상 자체가 워낙에 화려하니 화질 평가에 있어 다른 작품에 비해 평가가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스피드 레이서> BD의 풀HD 화질은 레퍼런스로서 손색이 없는 우수한 화질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실제 로케이션 장소를 360도 촬영한 사진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 외에 추가적인 배경이나 인물들 역시 렌더링 작업을 거친 뒤 레이어로 추가하는 방식의 영상을 수록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CG가 사용된 영화들의 경우 고화질인 블루레이로 감상할 경우 실사와의 이질감이 극장에서 볼 때보다 유난히 심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스피드 레이서>같은 경우는 오히려 CG가 전체적으로 겹쳐지게 사용된 경우라 초고화질의 BD로 감상하여도 이런 이질감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중의 렌더링을 거쳤기 때문에 실제로 촬영된 배우들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영상 간의 부조화를 찾아보기 어렵고(여기서 말하는 CG와 실사와의 부조화란 보통 CG가 사용된 영화를 BD로 감상할 때 겪게 되는 이질감을 뜻하는 것이지, 이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의도된 만화적인 영상과의 이질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원색의 색감이나 비현실적인 차체의 질감도 훌륭하게 표현되고 있다. <스피드 레이서>는 한 장면에서 레이어 방식을 통해 굉장히 많은 영상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블루레이만의 풀HD 고화질 영상이 감상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눈에 보이는 것만(실제로 느끼지 못하는 레이어 영상까지 더한다면 훨씬 더 많은 수의 겹쳐진 영상들로 이루어진 장면들이 가득하다) 따져보아도 네, 다섯 가지의 영상들이 좌우로 겹쳐 지나가는 장면에서도 배우들의 클로즈 업 디테일은 물론 레이어 화면 하나하나에 디테일이 살아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쉽지만 상당히 선전한 돌비디지털 5.1 사운드

<스피드 레이서> BD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이후 언급할 서플먼트의 SD화질 수록 보다도), 아마도 사운드 측면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상 매체가 차세대인 풀HD의 블루레이로 넘어오면서 사운드 스펙 역시 무 압축의 PCM 5.1채널이나 돌비 트루 HD사운드를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최상의 화질을 수록한 타이틀에 최상위 사운드 포맷이 수록되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극장에서의 흥행 성적이 기대치에 못 미친 것이 어느 정도 이유가 되기는 하겠지만, 앞서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극장에서 <스피드 레이서>를 외면했던 이들 가운데서도 <스피드 레이서> BD를 선택하게 될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으로 미뤄봤을 때, 좀 더 화끈한 스펙으로서 더 많은 새로운 팬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수록된 돌비디지털 5.1채널(640Kbps : DVD보다 높은 수치)의 음질은 이런 아쉬움을 어느 정도 잊게 할 만큼 의외로 아주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레이싱 카 특유의 엔진 굉음도 우퍼 스피커를 통해 잘 전달되고 있으며, 카-푸 액션을 벌일 때 발생하는 각종 효과음들과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TV시리즈의 주제곡에서 가져온 메인 테마도 극적인 순간에서 ‘탁’하고 치고 나오는 것을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판타지에 가까운 레이싱을 그린 영상과 더불어 사운드 적인 측면에서도 과장되고 애니메이션에나 등장할 법한 효과음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배경음악이 깔린 상태에서 이뤄지는 격렬(?)한 격투 장면에서도, 각종 격투 효과음의 채널 분리도가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 워너 타이틀은 기본적으로 타사 타이틀보다 사운드의 볼륨이 작게 설정되어 있는 경향이 있는데, 평소보다 좀 더 볼륨을 키워서 감상한다면 크게 감상에 부족함이 없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SPECIAL FEATURES


스페셜 피쳐는 총 4가지의 주제별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무엇보다 HD급 영상이 아닌 SD급 4:3 풀스크린의 영상이 수록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근작임을 감안했을 때 HD급 메이킹 영상이 수록되지 않은 점도 물론 아쉽지만, 와이드 영상이 아닌 풀스크린의 영상이 담긴 것은 엄청난 풀HD 화질을 자랑하는 본편과 비교해 봤을 때 더더욱 아쉬움으로 남을 수 밖 에는 없을 듯하다.

첫 번째로 수록된 ‘Spritle in the Big Leagues'에서는 영화 속 말썽꾸러기 동생인 스프리틀 역할을 맡은 폴리 리트가 촬영장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각 스텝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기술적 정보들을 들려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사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각각의 섹션에 대해 소개했던 픽사 애니메이션 타이틀의 서플먼트를 본 이들 이라면,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메이킹 영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아역 배우의 눈에서 본 기본적인 질문들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질문거리를 스텝들에게 던지고 스텝들은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영화의 한 장면이 만들어지기 까지 어떤 기술적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CG나 카메라 기법 등 기술적인 스텝들과의 만남은 물론, 스턴트 배우들, 디자인, 소품 등을 담당한 스텝들과의 만남까지 짧지만 다양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영화 한 편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이해하기 쉽도록 제작되었다. 단점을 꼽자면 스프리틀과 스텝들과의 대화 도중에 정보성 텍스트가 그림으로 제공되는데, 아주 쏠쏠한 정보임에도 그리 길지 않은 짧은 시간에 지나가버리는 데다가, 대화에 대한 자막 또한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가독성 면에 있어서는 그리 효율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Speed Racer : Supercharged!' 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레이싱 카에 대한 역사와 설계 도면을 통한 자세한 설명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부가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들은 그냥 겉만 보고 지나치는 레이싱 카의 디자인에 있어서, 설계 단계부터 매우 디테일하게 작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총 50대가 넘는 각각의 레이싱 카를 디자인하고 그 중에서도 비중 있게 등장하는 차체에 대해서는 세밀한 설계도까지 제작을 하여, 각각 어떤 무기를 내장하고 있고 이 무기가 사용될 때는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작동을 하게 되며, 어떤 종류의 엔진이 장착 되었는지까지 기획이 되었다는 것을 이 부가영상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치 실제 레이싱 카를 제작하듯(실제 모형으로 제작된 차체는 ‘마하 5’와 레이서 X의 레이싱 카인 ‘슈팅스타’ 뿐이다) 디테일하게 설계한 스텝들의 노력을 엿보고 나니, 영화 속에서 휙휙 날라 다니던 레이싱 카들이 새삼 다시 보이기도 한다.


'Speed Racer : Car-Fu' 에서는 쿵푸와 카 레이싱이 결합된 카-푸 액션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시작으로, 이 작품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어떤 점들을 가져왔고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인터뷰와, 이 작품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셀 애니메이션 기법에 대한 전문 스텝들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스피드 레이서>가 블루 스크린을 활용한 다른 CG 영화들과는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고전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들 수 있겠는데, 기법은 가장 고전적인 것이지만 여기에 첨단 기술을 접합시켜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하겠다.


블루 스크린을 통해 보여 지는 배경을 완전히 컴퓨터 그래픽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로케이션 장소에 가서 마치 '불릿 타임(Bullet Time)' 기법을 연상시키듯(불릿 타임을 만든 장본인인 시각효과 감독 존 가에타를 비롯해 <매트릭스>시리즈의 대부분의 기술 스텝들이 이 영화에도 그대로 참여하고 있다), 고화질 카메라로 360도의 사진을 모두 촬영해 소스로 사용함으로서, 블루 스크린에 투영된 배경이 좀 더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느껴지도록 하고 있다. '합성 기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만큼 거의 모든 장면에 이 같은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이 관련 영상을 보면서, 고전 영화에서 야외 배경을 처리하기 위해 사진이나 그림을 두고 촬영한 방식이 21세기에 와서 디지털로 업그레이드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Speed Racer : Ramping Up!'에서는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에 대한 세계관과 <스피드 레이서>가 다른 작품과 차별되는 이유에 대해 전해들을 수 있다. 주연을 맡은 에밀 허쉬는 물론이고, 레이서 X역의 매튜 폭스, 트릭시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 아버지 역의 존 굿맨, 어머니 역의 수잔 서랜든이 등장해 촬영장의 에피소드 보다는 영화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아쉽게도 태조 역을 맡은 비의 인터뷰는 만나볼 수 없었다. 참고로 비는 앞서 언급한 'Spritle in the Big Leagues'에서 액션 연습 장면을 통해 잠시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총평] <스피드 레이서>는 영화 자체의 강한 마니아적인(혹은 오타쿠적인)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이긴 하지만, 블루레이라는 매체 적 측면만 놓고 보았을 때는 거의 다수가 동의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레퍼런스 급의 BD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 새로운 풀HD 디스플레이를 테스트 할 때 화질 비교용으로 쓰이기에도 훌륭한 타이틀이며, 아직 블루레이를 경험하지 않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것이 블루레이다’ 라는 것을 설명 혹은 설득 시킬 때, 화질 면에서는 최우선적으로 추천할 만한 타이틀로 손색이 없다 하겠다. 결과적으로 사운드 스펙 면이나 서플먼트의 SD영상 수록이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극장문을 나서며 들었던 ‘블루레이가 미친 듯이 기다려 진다’라는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줄 만한 최강의 화질을 자랑하는 타이틀로 만족스럽게 나와주었다. 아마 아직도 ‘에이, 그래도 BD인데 돌비 트루 HD사운드 정도는 수록되었어야지’하고 구매를 보류하고 있는 분들이 계실 텐데, 유례가 없어 보이는 무시무시한 레퍼런스급 화질을 한 번 보고나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타이틀이라는 것을 단박에 깨닫게 될 것이다.



2008. 9. 16 | 신현이(a_shitak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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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5th EIDF _ 히어 앤 나우 / Hear and Now
삶의 적응 그리고 러브 스토리


제 5회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이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다큐멘터리 장르는 어느새 부턴가,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 만큼이나 좋아하는 장르가 되어버렸는데, 요즘 워낙 정신이 없는 탓에 날짜도 미처 기억 못하고 있던
이번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의 한 작품을 우연히도 TV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이래서 이번 페스티벌이 좋다. 잠시 신경을 못써 놓칠 수도 있는 작품들을 다행히 TV에서 방영하는 관계로 극장에서만
상영할 때 보다는 훨씬 놓칠 확률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오늘 감상한 <히어 앤 나우>같은 경우도 집에서 해야될 일이 있어서
컴퓨터를 하던 중 틀어놓은 EBS채널에서 다큐가 시작되었고, 바로 컴퓨터를 접어두고 TV앞에 집중하게 된 경우다.
(참고로 이번 EIDF 영화제는 EBS를 통해서 뿐 아니라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도 만나볼 수 있어,
TV뿐만 아니라 극장에서도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 시놉시스

감독은 청각장애인인 부모가 처음으로 소리를 경험하는 생애의 기념비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노부부는 65세의 나이에 내이(內耳)수술을 받기로 하는데, 고요함에서 소리로의 여정은 쉽지가 않다. 얻는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은 이들의 경험은, 다큐멘터리이자 한 편의 러브 스토리로 남는다. - 자료출처 : EIDF 홈페이지 (http://www.eidf.org/)

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단순히 '인간극장' 풍의 장애를 다룬 소소한 에피소드, 그 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치 애초부터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소스같은, 두 주인공 부부의 어린 시절 사진과 동영상들,
그리고 담백하지만 힘이 있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무언가 일반적이지 않은 색다른 느낌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65년이나 청각 장애를 갖고 살아온 부부가, 65세의 노년이 되어서야 내이(內耳)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여기서 이들이 겪는
감정과 변화에 다큐는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통 '인간극장'같은 형식의 일반적인 구성이었다면,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로
고통받는 부부의 삶을 조명하다가 마지막에가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예전에 장애를 소재로 다룬 영화를 리뷰하면서도 이야기 했던 말이지만, 이런 해피엔딩은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결말이라기 보다는, 비장애인이 장애를 갖고 있는 이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해피엔딩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가 없어지고 극복되어지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의 시선은 장애인이 반드시 장애를 극복해야만 하고
극복되었다 여겨지면(물론 일방적으로) 그걸로 바로 끝내버리려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장애를 다루었던 대부분의 영화들(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은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행복한 세계를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었다.

하지만 이 작품 <히어 앤 나우>는 수술이라는 것을 종점으로 선택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수술 전에 앞으로의 일들을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부부의 심정 만큼이나 수술 후의 그들의 겪고, 견뎌야만 했던 시간들에 대해 더욱 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시선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인 아이린 테일러 브로드스키(Irene Taylor Brodsky)가 바로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노 부부의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부모의 고단함과 두려움을 잘 알고 있고, 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가장 외곡없이 바라볼 수 있는 화자로서, 아이린은 이 다큐멘터리를 단순히 꿈만 같은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수술 이후에 이 노 부부가 겪는 일들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소소한 것부터,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애써 무시하려했던
중요한 이들까지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부부 역시 수술을 통해 들을 수만 있겠된다면 모든 것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들리지 않은 것에 익숙해진 이들은,
오히려 들리는 비장애가 장애로 다가와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되고, 그들이 그토록 바랬던 들리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는 행동까지 보이게 된다. 그 말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내이 수술은 부모님에게 그저 들리는 것만 주었을 뿐이라고'
'그저 들릴 뿐이라고'. 극중 어머니는 오히려 수술 이후에 더 큰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너무 많은 소리를 한꺼번에 접하다
보니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주의에서는 자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라며 기계를 착용하라고만 하는데, 이 어색하고
혼란스럽기만한 기계 착용이 어머니에게는 오히려 더 큰 부담과 장애로 다가오게 된다.
내이 수술을 한 뒤에도 보청기와 같은 기계를 귀에 착용해야만 듣는 것이 가능한데, 들리는 자유보다 들리지 않는 장애에
오랜 세월 익숙해진 부부는 오히려 이 자유를 만끽하기 보다는, 기계를 벗어놓고 있을 때 훨씬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그리도 바라던 출소를 했던 모건 프리먼이 너무도 오랜 세월 감옥에서 지낸
탓에 출소 후에도 다시 감옥을 그리워 할만큼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노 부부는 그토록 바랬던 들리는 환경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남편은 조금 더 환경에 빨리 적응해 기계에 익숙해지려고도 하고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되는데,
아내는 자신이 남편에 비해 적응이 느린 것 또한 스트레스고, 자신도 남편과 비슷한 속도로 적응을 해야만 한다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런 매우 현실적인 부분은 일반적인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에서도 잘 보기 힘든 디테일로서,
이 이야기를 단순히 장애에 관한 것으로 만들지 않고, 노년에 접어든 두 부부의 깊은 삶과 러브 스토리로 감싸 안고 있다.
남편은 이런 아내를 위해 너무 앞서나가지 않고 속도를 맞춰주고, 3개월, 6개월이 지나도록 쉽게 적응하지 못하던 아내는
1년이 지나고서야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것조차 '완전히 수술이후에 적응해 이젠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라는
식이 아니라, '그들은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 두 부부의 대화와 뒷 모습이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오랜 세월을 함께 겪어오며 깊어진 그들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저들처럼 오래 살지 않고서는,
저들처럼 오랜 세월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을 바로 '그것' 때문에, 한적한 길가에서 서로 '당신이 날 챙겨줘야지'
하며 서로를 툭툭 건드리며 장난치는 모습에서 깊은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나 다큐는 많이 봐왔지만, 단연코 이 다큐처럼 더도 덜도 없이, 하지만 따뜻한 심정으로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영화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것
같고. (최근 재미있게 보았던 러브 스토리라면 '월-E'가 있겠다 ;;;)

아내 - 경적을 울리는 것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편 - 그것도 대화지. 이쪽으로 비켜, 저쪽으로, 이렇게 경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니까.
아내 - 근데 이건 뒤 차에서 일방적으로 보내는 거 잖아요. 그러니까 대화라고 할 수 없죠.
남편 - 그렇네. 이건 대화라고 할 수 없겠네.


한 번 본 기억으로만 쓴거라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이런 대사는 절대 시나리오 작가는 쓸 수 없는 경지의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작품을 꼭 나중에라도 보여주고 싶다.


1. EBS Space 2008-09-25 10:00
   아트하우스 모모 2008-09-26 11:00
   아트하우스 모모 (2차) 2008-09-27 10:30   

  아직 못 본 분들 가운데 시간이 되는 분들은 EBS Space나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위와 같이 상영 예정이니 
  관람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시간대가 별로 좋지는 않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제5회 EBS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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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 미아! (Mamma Mia!, 2008)
아바(ABBA)라서 더욱 행복한 뮤지컬


뮤지컬 장르라 하면 그 어느 장르를 제쳐두고라도 무조건 보는 저로서도 이상하게 처음부터 끌리지는 않았던
영화가 바로 <맘마 미아!>였습니다. 뭐랄까 이건 정확한 이유를 대기는 어려운 좀 이상한 선입견이 있어서였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부모님과 오붓하게 볼 영화가 없을까 찾아보던 중, 딱 알맞은 시간대에 위치하고 있는
<맘마 미아!>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 아바의 음악이 잔뜩 들었다니까 음악만 듣다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겠지'하는 생각에 극장을 찾게 되었죠. 그런데 이런 설렁설렁한 관람 전 분위기는 영화가 시작되고
소피 역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스가 'I Have a Dream'을 부르는 첫 장면부터 바로 고조되고 맙니다.
'I have a dream~ a song to sing~'하고 아만다 사이프리스가 청량한 목소리로 별빛 쏟아지는 푸른 바닷가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 첫 장면부터, '아, 이 영화를 내가 왜 기대하지 않았던가. 다른 이도 아니고, 뮤지컬
영화에 광팬인 내가!'하는 뒤늦은 자책을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극장에서 관람하게 되었으니 너무 늦은
후회는 아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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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절대 스틸 사진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장면입니다)

뭐 일단 간단하게 그룹 아바(ABBA)에 관해 이야기해보자면, 스웨덴 출신의 4인조 혼성그룹으로서
Bjorn Ulvaeus, Agnertha Faltskog, Benny Anderson, Annifrid Lyngstad로 이루어져 있으며 잘 알려졌다시피
브요른과 아네타, 베니와 애니프리드는 각각 결혼한 커플이기도 했죠. '했죠'라고 한 이유는 역시 잘 알려진
것처럼 이후 두 부부 모두 이혼을 하게 되었고, 결국 팀 해체로까지 이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바(ABBA)라는 팀 이름은 각 멤버들의 영문 이니셜 앞 자리를 따서 만들어졌으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웨덴 그룹이긴 하지만 호주에서 워낙에 인기가 있던 탓에 몇몇 팬들은 호주 그룹으로 알고 있기도 한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사실 제 나이를 따져봤을 때 7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아바 음악의 세대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아바의 음악은 세대를 뛰어넘는 힘을 갖고 있었고, 특히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었기 때문에,
70년대를 살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그들의 음악은 자주 접할 기회가 있었으며, 가깝게는 직접적인 그들이
앨범과 DVD를 통해, 간접적으로는 CF나 다른 뮤지션들의 커버를 통해 매우 익숙한 그룹이 바로 아바였죠.
아마도 국내에 아바의 음반을 직접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 하더라도, 그들의 대표곡 몇 곡씩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그룹이 바로 아바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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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 사이프리스의 발견(혹은 재발견)은 영화 <맘마 미아!>의 가장 큰 수확이라 해야함이 마땅하다)

일단 이런 아바의 음악이 전체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 <맘마 미아!>는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작품입니다. 영국 출신으로 뮤지컬 <맘마 미아!>를 최고의 히트 뮤지컬로 만든 장본인인 필리다 로이드는
그 동안 무대에서만 보여주었던 <맘마 미아!>를 영화화 하기에 이르렀는데, 뮤지컬의 주요 스텝들을 그대로
데려와 만든 영화 <맘마 미아!>는 이런 그들의 장기와 손길이 짙게 묻어나는 뮤지컬 영화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무대에 익숙한 감독과 스텝들 답게 영화 <맘마 미아!>에는 다른 뮤지컬 영화들 보다 훨씬 더
공간을 활용하거나 대규모의 군중 씬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은 장점과 단점으로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데,
무대에서나 느낄 수 있는 화끈한 감동을 스크린에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아주 만족할 만한 장점으로 들 수
있겠지만, 군중이 동원된 장면에서는 다른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군중들이 노래에 참여하게 되는 동기가 살짝
부족한 점도 느껴지긴 했습니다(대부분은 아니고 초반 'Dancing Queen'을 때창하는 장면에서는 약간
생뚱맞은 군중동원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아주 사소한 개인적 단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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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뮤지컬 영화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초반 아만다 사이프리스가
또래의 여자 친구 둘과 함께 'Honey, Honey'를 부르는 시퀀스는, 뮤지컬 영화의 전형적인 구성 그 자체입니다.
대사를 주고 받는 노래하다가 완전히 노래로 빠져들었다가 장소를 이동해가며 노래는 이어지고, 이 과정
속에서 영화 초반의 스토리에 관한 소스와 캐릭터에 성격에 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구성을
갖고 있죠. 뮤지컬 영화에서는 구구 절절 스토리를 다 설명하거나(반대로 스토리가 매우 중요한 편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죠)할 시간적 여유도 없거니와 대부분 노래로 설명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구성은
아무리 전형적이라 해도 뮤지컬 영화로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예전
뮤지컬 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최근 뮤지컬 영화들에서 이런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설정들이 등장하고 할때면
오히려 아주 반갑더라구요 ^^; 영화 <맘마 미아!>만의 특징을 꼽자면 다른 뮤지컬 영화들보다는 조금 더
무대 뮤지컬에 느낌이 강한 작품이라고 할까요.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감독과 스텝들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전 좀 더 '뮤지컬 영화'스러운 영화들을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맘마 미아!>의 스타일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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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콜린 퍼스는 스물 넘은 딸을 갖은 아버지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도 아직 20대
여성을 딸로 두기보다는 꼬시려고 할 것 같구요 ㅎ)


뮤지컬 영화를 보다보면 단순히 그 노래가 좋아서인 경우도 있지만, 어느 순간 '찌릿'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노래의 감정선과 영화의 감정선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을 바탕으로 그 극점
역시 완벽하게 맞아 떨어질 때 느끼게 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를 꼽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에는 이름 만으로도 쟁쟁한 배우들이 제법 등장합니다.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아만다 사이프리스, 스텔란 스카스가드, 줄리 워터스 등. 일단 소피 역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스를
얘기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는 확실히 요즘 세대들 보다는 7080세대들에게 더욱 공감을
얻을 만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 주인공은 분명 딸인 '소피'가 아니라 엄마인 '도나'역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더 많은 세대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가 있다면 바로 아만다의 연기와
노래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가 직접 부른 영화 속 아바의 노래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완전히 신선한
뮤지컬 넘버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표현되고 있으며, 대사와 노래를 오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뮤지컬 연기를 선보입니다. 아직 85년 생으로 앞날인 창창한 여배우라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되네요.

이 영화에는 남자 배우 세 명이 누가 될지 모를 '아버지'가 되기 위해 경쟁합니다. 일단 메릴 스트립에 비해
남자배우들이 생각보다 별로 동년배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약간 몰입이 덜 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메릴 스트립은 49년생, 브로스넌은 53년생, 스카스가드는 51년생, 콜린 퍼스는 무려(?) 60년생이죠)
브로스넌은 실제로는 메릴 스트립과 나이차이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워낙에 젊은 여자를 유혹하는 본드 역할을
오래한 탓인지 왠지 메릴 스트립을  더 누나 벌로 느껴지게 했고, 콜린 퍼스는 아직 아만다 또래의 아이가 있는
아버지 정도의 연령대로는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래도 세 배우의 연기는 부족하지 않고 넘치지도 않고
딱 적당했던 것 같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노래가 아무래도 다른 배우들에 비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극에 빠지게 되면 모든게 다 이해되죠 ㅎ

많은 분들이 못 알아본 듯한 분위기였는데, 극중 도나의 친구 두 명중 한 명인 로지 역할을 맡은 줄리 워터스는
바로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에게 발레를 가르치던 그 선생님 역할로 열연한 배우입니다. <맘마 미아!>에서는
코믹한 조역을 맡아 감초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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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배우는 단연 메릴 스트립입니다.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모두
평균 이상으로 소화해내는 훌륭한 배우 메릴 스트립은 아바의 노래가 가득 담긴 뮤지컬 영화에서도 진면목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아만다 사이프리스처럼 정말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녀는 노래 실력
자체보다는 연기에 연장선에서 노래를 소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감정 연기에
아주 노련하기 때문에 그녀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노래 실력의 유무 따위는 이미 판단하기 어렵게 되죠.
'Dancing Queen' 장면에서, 어쩌면 메릴 스트립 답지 않은 활발함과 발랄함도 좋지만, 'The Winner Takes It
All'같은 장면은 그녀의 노래 실력보다는 연기력이 빚어낸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장면은 정말
그리스의 멋진 섬의 풍광과 함께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없이 딸을
키워온 어머니가 갖는 딸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딸을 정말 끔찍이도 아끼는 어머니의 마음이 정말 잘 표현되고
있죠(그래서 인지 제 옆 자리에 앉은 한 여성관객은 이 같은 장면이 나올 때 눈물을 훌쩍이기도 하시더군요).
메릴 스트립의 한창 젊었을 시절의 영화를 그리 많이 보질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더 멋진
여성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배우라는 점에서 아만다 사이프리스와는 다른 이유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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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만약 내가 어린 시절 아바를 듣고 자란 세대였다면 아마도
이 영화가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점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요즘 세대들 보다는 7080세대들에게 더욱
어필할 것이라고 했던 것은 단순히 아바의 음악이 수록되었다는 것을 넘어서서, 7080세대들에게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없는 아바와 함께한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한창 젊은이들이
아닌 이른바 '왕년에 잘나갔던' 중년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점도 있구요.
저는 아바 세대가 아님에도 만약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고 영화를 보니 조금 더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 가사 하나하나가 그리도 와닿을 수가 없더군요. 메릴 스트립을 비롯한 세 명의 여자 배우가
함께 부르는 'Dancing Queen'을 비롯한 모든 곡들은 정말 그 장면 만으로도 황홀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마도 1,20대 여자 배우들이 나와서 아바의 노래들을 불렀다면 이런 감동은 오지 않았을 것 같네요.
아바의 노래를 더 살아 숨쉬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 세대가 다시 들려주는 모습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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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내에는 중년의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분위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극장 분위기가 참 따뜻한게 느껴졌죠.
앞서 말한 그 '추억'이 있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단순히 뮤지컬 영화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지긋이 미소 짓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엔딩 크래딧과 함께 극중 배우들의
멋진 공연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메릴 스트립이 '한곡 더 할까요?'하자, 객석에 앉은 몇몇 관객분이 'yes!'하고
답하는 훈훈한 광경도 벌어졌습니다. 몇몇 분은 박수치며 노래를 따라하기도 하셨구요. 완전히 추억을 공유한
관객이 이렇게 영화와 하나가 된 광경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훈훈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른바 '아바'세대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겠지요. 아마도 나중에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주요 소재가 나온 영화가 등장한다면 저도 이런 추억을 공유하는 완전한 영화와의
물아일체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겠죠 ^^



1. 댄싱 퀸 시퀀스에서 피아노 치던 남자는 다름 아닌 아바의 멤버인 베니 엔더슨이며, 엔딩에서 월계관을
   쓰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습으로 꽃가루를 뿌리던 이는, 역시 아바의 멤버인 비요른 울바에우스
   입니다. 아바의 앨범 커버를 워낙에 많이 보았다보니 슬쩍 지나가는 장면이었음에도 이들이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 영화의 자막이 매우 휼륭했습니다. 일단 영화 속 노래의 장면은 물론이고, 엔딩 크래딧의 공연 장면,
   그리고 공연 장면이 끝나고 그냥 크레딧만 나올 때 흐르는 곡에 까지 완전한 자막이 제공되었습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비교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겠네요.

3. 개인적으로 'Dancing Queen'은 처음 들을 때부터 아련하고 애매한 감정이 들었었습니다.
   무언가 신나고 흥겨운 분위기인데요, 묘한 아련함이 느껴지는 곡이랄까요. 영화 속 '댄싱 퀸'도 역시
   마찬가지 더군요~

4. 씨네큐브 1관에서 관람하였는데, 사운드가 중간중간 들락날락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5. 물론 스토리상 약간 치밀하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뮤지컬 세상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더라구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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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워즈: 클론 전쟁 (Star Wars: The Clone Wars, 2008)
팬들에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에피소드 2.5


이 영화는 스타워즈의 연대기적 분류로 따져보자면 에피소드 2와 에피소드 3의 중간쯤에 처한 영화입니다.
제목은 2.5라고 했지만, 굳이 더 따져보자면 2.7,8 정도는 될 것 같네요. 에피소드 2의 마지막을 보면 대규모의
클론 부대가 양성된 모습을 보면서 '이제 본격적인 클론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라는 대사로 마무리를 짓는데,
그 '클론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막상 에피소드 3에서는 빠져있었기 때문에, 이 클론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이미 공개되기도 했던 2D 버전의 애니메이션 '클론 전쟁'에서 이 클론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주었었는데, 이 이야기를 좀 더 영화적인 구성으로 가다듬고 또한 3D 버전의 새로운 모델링으로
다른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으로 변모하면서 앞으로 시작될 100부작의 TV시리즈에 맛을 보여주는,
거대한 홍보 영화일지도 모르겠네요. 결론적으로 독립적인 영화로만 즐기기에는 아무래도 영화 속에서
별다른 부가 설명없이 기존의 스타워즈 세계를 이해하는 이들만 납득할 수 있도록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스타워즈 팬들만을 위한 또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는 한편, 스타워즈 팬이라서 아쉬움이 들기도 하는
영화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도 스타워즈니까 하는 전자였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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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가 가장 어색하게 느껴지는 첫 번째 포인트는, 스타워즈 만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그 특유의
오프닝 크레딧이 없다는 것입니다. 20세기 폭스가 아닌 워너브라더스가 배급을 맡게 되면서 폭스사의 팡파레가
곁들여진 로고를 볼 수 없게 되었으며, 또한 존 윌리엄스의 멋진 음악과 함께 우주 넘어로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에피소드 3의 오프닝 장면과 흡사한 우주선 전투씬을 배경으로한 내레이션을
통해 대체되고 있는데, 초반 루카스필름 로고와 함께 클론 들이 주고 받는 대사가 마치 전쟁영화처럼 삽입된
것은 새롭게 느껴졌지만, 무엇보다 스타워즈의 인장과도 같은 오프닝 크레딧과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 없는
것은 너무도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영화 <클론 전쟁>은 조지 루카스가 뒤에 버티고 있기는 했지만, 감독은 데이브 필로니가 맡았으며,
각본 역시 루카스가 아닌 헨리 길로이가 썼고, 음악 역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존 윌리엄스가 아닌 케빈 키너가
맡고 있습니다. 이렇게 때문에 <클론 전쟁>는 여전히 루카스의 영화이기는 하지만. 한 편으론 조금 이색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색다른 스타워즈 시리즈라는 점에서 일단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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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다른 부분은 말 그대로 '이색적'이라는 점에서 많이 희석이 되었으나, 음악 만큼은 이런 점을
감안한다하더라도 많이 아쉬움이 남더군요. 물론 오리지널 음악 작곡자로 존 윌리엄스가 기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케빈 키너가 만든 음악들은 '스타워즈'스럽다기 보다는 일반 액션 영화스러운 음악을 들려줍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영화가 기존 스타워즈들과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음악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음악 자체가 굉장히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을 많이 담고 있는데, 약간 아랍과 이슬람 풍의
전통음악 느낌이 나는 곡들도 수록이 되어 있고, 찐한 색소폰으로 연주되는 곡도 있으며, 오케스트레이션에
있어서 브라스 파트가 존 윌리엄스의 오리지널 곡들처럼 중점적으로 쓰이긴 하였으나, 아무래도 그 주요테마를
거의 들을 수 없다보니 아쉬움이 남더군요. 엔딩 크레딧 같은 경우도 기존 테마를 변형하기는 하였으나
(예를 들면 '빰 빰 빰빰빰 빠!' 하던 것을 '빰 빰 빰 빠바 빰!하는 식으로 약간 템포를 변형하여),
확실히 오리지널에 비하면 그 감동이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코디 대장이 성으로의 공격을 지시 받은 뒤 진격할 때 나오는 음악은, 완전히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음악이라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나에 스타워즈가 왠지 그냥 평범한 액션 영화가
되어버리는거 같기도 해서 말이죠 ^^ 메탈 사운드가 적극 도입된 곡도 있고, 전체적으로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는 사뭇 다른 음악을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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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에서 약간 낯간지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멋졌던 오비완의 저 포즈!
 이번 <클론 전쟁>에서도 무려 2번 씩이나 재현됩니다)


감독과 작곡가 얘기를 했으니 성우들 얘기를 해보자면, 일단 오리지널 영화에서와 똑같은 배우가 이번 영화에도
성우로 참여한 경우는 딱 세 명 뿐입니다. 두쿠 백작역의 크리스토퍼 리와 C-3PO역이 안소니 다니엘스,
그리고 마스터 윈두 역의 사무엘 L.잭슨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성우의 연기와 목소리에
의해 상당히 많은 부분이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단 오리지널 배우 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 성우들의 연기나 싱크로율도 괜찮은 편입니다. 특히 오비완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제임스 아놀드 테일러의 경우는 모르고 들으면 이완 맥그리거가 했나보다 하고 느낄 정도로
상당히 흡사한 목소리 연기를 들려줍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경우 가장 비중이 큰 캐릭터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목소리가 아주 특별한 경우는 아니었기 때문에, 맷 랜터가 연기한 목소리 연기도
이질감이 느껴진다거나 하지는 않더군요. 아미달라의 경우도 나탈리 포트먼과 상당히 흡사하기도 했지만,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경우라 큰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구요. 요다의 경우도 프랭크 오즈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흡사한 요다 특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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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된 구성 중의 하나는 새롭게 추가된 캐릭터인 아소카 타노 캐릭터와 아나킨이 티격태격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들 수 있겠는데, 기존 세계에서는 파다완이 없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던 아나킨에게
어린 여성 파다완이 있었다는 설정을 들고 나와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는 스타워즈 팬들에게도
신선한 재미를 주고 있고, 스타워즈의 기존 팬이 아닌 관객들에게도 영화를 통틀어 가장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관계를 통해서는 아무래도 아나킨과 오비완의 관계를 떠올릴 수 밖에는 없었는데,
아나킨은 아소카를 보고 가르치게 되면서 한편으론 오비완의 제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재능은 많지만 성질 급하고, 자신만만한
(하지만 아나킨 보다는 좀 더 현명하고 영리하게 묘사되죠)아소카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이 좀 더
배워나가게 되는(이런 의미로 요다나 오비완이 처음부터 아소카를 아나킨의 파다완으로 생각했던 것이었지만요)
계기를 갖게 됩니다. 특히 에피소드 2에서 파드메가 비행선에서 떨어졌을 때 구하러 가야한다며 임무가 더
중요하다는 오비완에게 대들던 아나킨은, <클론 전쟁>에서는 코디 장군과 같은 편들이 위험에 처해있음에도
구해야한다는 아소카의 말을 듣지 않고 임무가 중요하다며 자신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아나킨이 에피소드 2에 비해 얼마나 성장했고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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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타워즈>라는 시리즈에 있어서 새로운 캐릭터라는 것은 엄청난 부담감이 될 수 있는 캐릭터인데
(이미 자자 빙크스에서 그 부담감과 팬들의 평가가 냉혹하게 드러나기도 했죠), 그런 의미에서 아소카 캐릭터는
기존 팬들도 상당히 만족할만한 신선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나킨과의 관계를 통해 무언가
아나킨의 부족한 정서를 매꿔주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며, 또한 기존 관객들에게도 마치 10대 하이틴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어린 소녀 캐릭터에 흥미를 갖도록 하기도 했구요. 사실상 아나킨과 더불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소카 캐릭터는 실사 스타워즈에서도 만나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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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소카를 처음 보았을 때 바로 위의 캡쳐한 장면이 떠올랐는데, 얼굴의 문양 차이는 조금 있지만 붉은
피부색에 귀나 줄무니의 머리(?)를 보자면 상당히 닮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캡쳐 속 인물은
에피소드 2의 등장하는 캐릭터고, 아소카는 에피소드 2 이후의 인물이니 같은 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겠고,
따지자면 같은 종족 쯤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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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팬으로서 이 영화에서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부분은 바로
'I've got a bad feeling about this'라는 대사가 삽입되지 않은 유일한 극장용 스타워즈라는 점입니다.
근데 더 의아스러운건 우리말로 해석했을 때 '불길한 예감이 들어' '예감이 좋지 않아' 등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대사가 쓰일 만한 장면이 제법 있었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만 따져도 약 2, 3번 정도 이 대사를 충분히
쓸 수 있는 장면이 있었는데(극장에서 보면 우리말 해석으로는 동일한 대사가 등장하지만, 영어 대사로는 다른
대사가 나옵니다)쓰지 않은 것은 분명히 의도적으로 쓰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타워즈 팬으로서 새로운 스타워즈를 만날 때 마다 이 대사가 나올 때의 작은 희열을 느끼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는데 조금 아쉽긴 하더군요.

결론적으로 국내에서 흥행은 아무래도 어렵겠지만(평일 낮이긴 했지만 극장에 저포함 5명 --;),
스타워즈의 팬들이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앞으로 시작될 100부작의
TV시리즈의 파일럿 버전격이라는 점에서도 봐줘야할 작품이며, 극장에서 클론들의 화려한 액션을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화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겠구요.
'스타워즈'라 아쉬운 점들도 분명 있겠지만, '스타워즈'의 전체 세계를 이해하면서 감상한다면 작은 장면들도
쉽게 넘기기 어려운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1. 상당히 의도적인 개그 장면들이 많습니다. 특히 드로이드들은 거의 모든 드로이드들이 개그 한 토막씩은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의도된 개그를 선보입니다.

2. 디지털로 감상하였는데, 필름을 보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디지털의 쨍하고 선명한 화질로 보는 애니메이션은
   화려하더군요~

3. 애니메이터들과 특효팀에 상당히 많은 중국계 스탭들이 포함되어 있더군요. 조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은 수의 중국계 스탭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싱가폴 회사가 스탭으로 참여한것 같기도
   하네요.

4.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 추가 장면은 아니고, 루카스 애니메이션 사의 아기자기한 로고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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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와 다시마 (音符と昆布, The Musical Note And The Seaweed, 2008)
감성적 색감의 뮤직비디오


이 영화는 오로지 주연을 맡은 이케와키 치즈루 때문에 보게 된 영화입니다. 그저 그녀가 나온다길래
기대를 하게 되었고, 이번 충무로 영화제에서 영화 상영은 물론 감독인 이노우에 하루오와 이케와키 치즈루가
무려 직접 GV에 참가한다는 말에 뒤늦긴 했지만 부랴부랴 영화제 홈피에서 예매를 하고서, 영화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와 같이 전혀 습득하지 않은채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상당히 감성적인 영화이자, 뮤직비디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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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뮤직비디오라고 얘기한 점은 영화가 끝난 뒤 감독과 배우가 참여한 GV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음반사인 에픽 레코드(Epic)에서 영화와 음악을 접목시킨 새로운 형태의 장르를 만들고자 시작된
'시네뮤지카(Cinemusica)' 시리즈의 4탄 격인 작품이었습니다(그 전 시리즈들을 대충 제목만이라도 찾아보려고
했는데 찾지 못했네요;;). 음반사에서 기획한 시리즈 답게 단순한 뮤직비디오를 넘어서서 영화라는 매체의
기본 틀에 음악을 좀 더 효과적으로 녹여낸 또 다른 종류의 PV(Promotion Video)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나중에 이런 의도와 기획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알고 나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영화를 볼 때에는 영화 중간에 완전히 전형적인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어쩌면
약간은 쌩뚱맞게 삽입된 CHIX CHIKS의 노래가 너무 낯간지럽게 느껴졌는데, 노래가 나오는 장면이 내용이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이전에 보았던 장면들을(회상과는 다릅니다) 뮤직비디오화 하여
편집한 부분이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지긴 하더라구요. 영화 자체가 워낙에 감성적인 영상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조금 덜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갑자기 중간에 노래가 나오면서 한 번 휙 정리하는 구성은
PV라고 하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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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일종의 자페증을 갖고 있는 카린(이케와키 치즈루)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언니라며
모모(이치카와 유이)의 집에 들이 닥치면서 겪게 되는 이 둘 사이의 이야기와, 더 나아가 아버지를 포함한
세 사람의 관계를 통해 이해와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병을 갖고 있는 캐릭터를 통해 감독은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야만 진정으로 상대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보편적인 메시지와
이를 통해 성장해 가고,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아주 신파로 흐르거나 아주 슬프게 전개될 수 있는 확률이 높은데, <음표와 다시마>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종의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기획된 영화이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흐르기 보다는
1,20대의 감성에 기댄 아름답고 따뜻한 영상미로 메시지를 끌어 안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색감들로
치장한 주인공의 방 이미지도 그렇고,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것이나, 여자 캐릭터들의
의상에 있어서도 트랜드와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 특별한 기승전개의 구성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크게 지루하지 않게 1시간 20분 남짓의 러닝타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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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첫 장면부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 HD로 제작된 일본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라는 것이었습니다.
HD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은 굉장히 선명하면서도 한편으론 굉장히 감성적으로 뽀얀 화면을 선보이는데,
영화스럽다기보다는 HD 일본 드라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꼭 노래가 나오지 않더라도 뮤직비디오스러운
느낌도 받을 수 있었구요. 다른 일반적인 영화를 받아들이는 기준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무언가 부족하고
심심한 느낌이 들 수 밖에는 없을 듯 합니다. 영상은 무언가 아주 감성적이고 메시지도 나름 담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역시나 약간은 금방 끝나버리는 듯한 느낌도 있고, 너무 말하기를 아끼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거든요.
그렇지만 음악과 영화를 접목한 '시네뮤지카'라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이케와키 치즈루 양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스크린 가득 만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팬들에겐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되겠구요 ^^
묘함과 이상함과 귀여움을 넘나드는 치즈루 짱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1. 사실 이번 영화를 부랴부랴 보게 된 것은 앞서 말했던것 처럼 치즈루 양이 GV에 참석한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치즈루 측에서 요청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앞에서는 엄청난 프레스들이 플래쉬를 펑펑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어대는데, 정작 잔뜩 기대하고온 관객들에게는 사진 촬영이 금지된 것이 너무 아쉽더군요(일부러 무거운
   카메라 가방까지 챙겨서 갔는데 말이에여 ㅠㅠ).

2. 그리하여 사진 한 장 찍지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치즈루 양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감격적이었습니다. 친절하게 한국팬들을 위해 대답해주시는 치즈루 짱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더군요.
    (혹시나해서 조제 DVD를 가방에 넣고 갔었는데, 물론 싸인은 못받았습니다 ㅜㅜ)

3. 근데 PV라고 하는데, 정작 노래 자체는 별로 인상에 남질 않았네요.

4. GV의 분위기는 참 좋았습니다. 일반 관객들의 질문도 참 수준있고 애정이 느껴지는 질문들이었구요.
   충무로 영화제는 전체적으로 조금 번잡스러운 느낌은 있지만, 아직 2회이니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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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 2007)
멈추지 않고 구르는 빛나는 돌들!


롤링 스톤스 (The Rolling Stones). 그들의 이름이 록 씬에서 전설로 추앙받고 있고, 그들의 가치나 몇몇
유명한 곡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한참 활동할 때(물론 그들은 지금도 한참 활동중입니다!)
의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한 번 마음먹고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미처 아직까지
그럴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밴드 중의 하나가 바로 '롤링 스톤스'였죠. 최근엔 이렇게 이전 세대에 활동했던,
혹은 전성기를 보냈던 밴드들을 차근 차근 들어보는 기회를 못갖고 있는데, 아마도 몇 년전 도어즈 (Doors)를
이런 식으로 제대로 느껴보았던 뒤로는 없었던 것 같네요. 영국출신으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비틀즈와는
그 색깔을 달리하는 그룹으로서(재미있게도 실제 노동자 계급 출신인 비틀즈는 여성적이고 팝적인 음악을
선보였고, 중산층 출신으로 쉽게 말해 부유하게 자란 롤링 스톤스는 반대로 굉장히 반항적이고 남성적인
록음악을 들려주었죠), 개인적 취향으로로 그 간 롤링 스톤스를 제대로 들춰보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데,
이 영화 <샤인 어 라이트>를 보게 된 뒤로는, 이들의 발자취를 훑어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네요.
너무나 상투적인 표현이라 정말정말 쓰고 싶지 않지만 딱 한 번만 눈 딱 감고 써보자면,
이들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신화이며 전설입니다. 그들이 발표했던 주옥같은 앨범들이 신화와 전설을 말해주고,
무려 45년을 지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활동기간이 바로 '살아있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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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설명한 말들 가운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은 바로 '콘서트 영화 (Concert Movie)'라는 장르에 관한
설명입니다. 콘서트면 콘서트고 영화면 영화지 '콘서트 영화'는 무엇인가 싶기도 한데, 일단 가볍게 살펴보자면,
<샤인 어 라이트>는 뮤지션이나 음악을 다룬 여타 영화들과는 달리 다큐멘터리가 주가 된 영화가 아니라,
밴드의 콘서트 자체가 90% 이상 주를 이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초반 리허설 장면 몇 분과 중간 중간 예전
TV인터뷰 클립등이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마치 콘서트 실황 DVD의 서플먼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미미한 것이며,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롤링 스톤스의 '비거 뱅 투어(A Bigger Bang Tour)' 가운데
2006년 10월 29일과 11월 1일 뉴욕의 비콘 극장에서 가졌던 콘서트 실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밴드가 공연하는데에 있어 최대한 이질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배려하면서,
총 16대의 카메라를 공연장 여기저기에 배치하였고, 객석 가운데서, 드럼 가까이에서, 무대와 아주 가까이서
담아낸 그들의 공연 모습은 일반 콘서트 실황 영상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진짜 밴드의 모습,
진짜 '롤링 스톤스'의 모습을 체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초반 리허설 장면에서 공연 전에 민감해져 있는
믹 재거를 비롯한 밴드 멤버들이 스콜세지의 영화화 작업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물론 이것은 실제 상황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편집에 의해 연출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샤인 어 라이트>를 단순히 콘서트 영상이 아니라 '콘서트 영화'로 만들기 위해,
초반에 이런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자신이 감독의 역할로 직접 등장하여 영화의 시작과 마무리를
명확히 지음으로서 이것이 '콘서트 영화'임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주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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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라스트 왈츠>나 '더 블루스' 프로젝트의 <고향으로 가고 싶다>, 그리고 밥 딜런에 관한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뮤지션에 관한 깊이 있는 시각과 애정을 보여주었던
마틴 스콜세지이기에, <샤인 어 라이트>는 더 특별하면서도 의미있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잘 알려진대로 음악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영화 감독인데,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팬레터
성격에 그치지 않고 뮤지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상당히 전문적인
음악영화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예전부터 자신의 작품에서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자주 쓰기도 했었고,
오래전 부터 팬이었던 스콜세지는, 이번에도 색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애정을 갖고 있는 이 전설이 밴드를
그려냅니다.

45년에 활동기간을 굳이 감안하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더라도, 롤링 스톤스에게는 영화나 다큐로 만들 만한
무수한 이야기 거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화 작업에 있어서 단지 공연 실황만을 담은 것은,
어느 리뷰에서 보았듯 라이브 자체가 바로 롤링 스톤스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사건들과 일화들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릴 수도 있겠고, 전기영화 방식으로 좀 더 서사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겠지만, 마틴 스콜세지는 롤링 스톤스의 오랜 팬이었기 때문에 다른 거 다 재쳐두고 그들의
라이브 실황을 관객으로 하여금 2시간 동안 즐기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설명 방법인 동시에,
롤링 스톤스 멤버들에게도 가장 올바른 헌정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결국 그 방법은 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그 어떤 다큐나 음악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에너지와
진짜 '롤링 스톤스'를 만나볼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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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롤링 스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겠느냐만은)이
<샤인 어 라이트>를 본다며, 이들이 좀 나이 먹어 보이기는 하지만 45년을 활동해온 60대의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라고는 절대 생각지 못할 겁니다. 그 만큼 이들의 라이브는 '아직도'라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하고 미안할
정도로 너무 열정적입니다. 믹 재거는 여전히 섹시하며 젊은 여성들도 혹할 만한 몸매와 카리스마, 댄스 실력을
보여줍니다. 키스 리차드는 또 어떻습니까. 아마도 요즘의 어린 팬들은 거꾸로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페로우'
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키스 리차드를 알게 된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카리스마는 정말 무대를
압도합니다. 젊은 시절 무대 위나 인터뷰 시에 뿜어나오던 포스도 대단했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에 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연주는, 감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인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정말 대단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 콘서트에는 세 명의 게스트가 등장하는데(오프닝을 맡은 클린턴은 빼고요),
첫 번째는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s)의 잭 화이트(Jack White)가 등장해 'Loving Cup'을 함께
노래, 연주합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와, 잭 화이트가 게스트로 등장하다니!' 하고 좋아만 했겠지만,
이번 경우는 그저 '와, 믹 재거와 한 무대에서 함께 노래하고, 키스 리차드와 마주보며 연주를 하다니,
잭 화이트, 너무 부럽다' 뭐 이런 느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잭 화이트도 나름 카리스마와 포스를 갖고 있는
까칠한 뮤지션인데,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 앞에선 그저 착한 후배로 밖에는 보이질 않더군요 ^^;
두 번째로 등장하는 뮤지션은 바로 버디 가이(Buddy Guy)입니다. 앞선 잭 화이트의 출연에서 잭 화이트가
마냥 부럽기만 했다면, 버디 가이와의 협연에서는 정말 고수들의 엄청난 아우라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샤인 어 라이트>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버디 가이와 함께한 'Champagne & Reefer'를
꼽지 않을 수 없겠네요. 버디 가이와 키스 리차드가 함께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온몸에 절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우리만큼 강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스콜세지가 버디 가이를 오랜 시간 동안
클로즈업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롤링 스톤스와 버디 가이가 함께 연주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그 어떤 훌륭한 배우가 열연을 펼친다 하더라도 미처 도달할 수 없는 '실연'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경지에 다다른 두 팀의 뮤지션이 협연을 펼치는 장면은, 왠만해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동이었습니다(키스 리차드 역시 이 협연에 감동했는지 자신이 연주한 기타를 그 자리에서 버디 가이에게
선물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게스트는 의외일 수도 있으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길레라가
그녀의 실력에 비해 가쉽과 부수적 요소들에 의해 과소평가 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은데, 이번 공연에서는
믹 재거와 함께 'Live With Me'를 열창합니다. 믹 재거에 포스에도 주눅들지 않고 무대에서 자신만의 노래를
해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동년 배의 여자 가수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가창력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나이로만 보면 할아버지와 딸에 듀엣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공연을 본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믹 재거는 아직도, 아니 그냥 섹시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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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했던 거지만, 참 밴드 이름 잘 지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구르는 돌들이라. 영화 속에 삽입된 예전 인터뷰처럼 2년이나 활동할지도 몰랐던
이들이, 하지만 한 편으론 60대에도 당연히 노래하겠다라고도 했던 이들이, 진짜로 이렇게 오랫동안이나
활동하게 될 줄은 아마 그들은 물론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구르는 돌들이라는 밴드 이름이 처음 만들 떄는
그저 자신들이 존경하는 밴드의 곡 제목을 따온 것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고 이리도 오래
활동하고 있는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정말 운명적인 밴드의 이름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롤링 스톤스의 공연을 대한민국 땅에서 보기가 여간 힘든일이(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실감 나는 공연 실황을 단돈 7천원으로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기회이며,
롤링 스톤스라는 록 계의 전설적인 밴드에 관한 중요한 필름으로서 극장에서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소중한 기회이기도 한 것이 바로 이 영화 <샤인 어 라이트>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동안 롤링 스톤스 음악에 빠져 살 수 밖에는 없겠네요.




1. 극장에서 보는 내내 너무 답답했습니다. 이런 라이브를 딱딱한 좌석에 앉아서 2시간 내내 조용히 관람해야
   하다니 말이에요. 마음 맞는 록 팬들끼리 단관해서 함께 신나게 춤추며 보면 정말 좋을 것 같더군요.
   박수치며 환호하며 말이에요. 이런 '콘서트 영화'가 애니메이션 만큼의 비중만이라도 된다면 특별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바램이라도 가져보겠지만, 이런 영화가 워낙에 드물다보니 그것도 어렵겠네요.
   여튼 맘 속으로만 환호해야 하다보니 많이 아쉬웠습니다.

2.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이고, 특히 국내팬들에게 더욱 친숙한 'Paint Black'은 영화에는 누락되었습니다.
   사운드트랙에서는 만나볼 수 있구요.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DVD에는 수록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3. 블루레이가 이미 해외에서 출시된 거 같던데, 이 타이틀은 별다른 자막이 어차피 큰 필요없으니
   기회되면 질러봐도 좋겠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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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ㅡ)
바람만이 아는 대답


참 일본영화스러운 괴상한 제목.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그 괴상한 제목에 일단 끌리고, 그리고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 영화 <좋아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에이타가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영화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였고, 포스터나 전단지를 통해 영화 속에 밥 딜런의 'Blowin’in the wind'가 수록되었다는 것도 미리
알 수 있었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평범하고 잔잔한 가운데 '이야기'를 잘 끌어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잔잔한 것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더 큰 범위에서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정서는 소소함과 따뜻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라고 하는데, 소설을 미리
접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미스테리한 줄거리가 이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인지,
영화가 전개되면서 살짝 놀라게 된 부분도 있었다. 미스테리한 부분이 전개되기 전까지는 보통의 일본 영화들이
그렇듯, 일본 영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듯한 약간 괴짜 캐릭터와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영화겠구나 했는데, 즉 가볍게 슬쩍 즐기고 나오려고 했는데, 제법 짠한 감동마저
받고 극장을 나오게 되는 영화였다. 확실히 일본 영화는 포스터나 제목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아래부터 영화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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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멜로디가 흐르면, 2년 전 그날의 기억이 찾아온다.

대학 입학을 위해 센다이 시(市)로 이사 온 시이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흥얼거리면서 짐 정리를 하는데, 노래를 따라부르는 이웃집 청년 가와사키를 만나게 된다. 괴짜 같은 가와사키는 이웃에 사는 부탄 출신 유학생 도르지가 일본에서 처음 사귀게 된 친구 둘을 동시에 잃은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일본어대사전을 훔쳐 선물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얼떨결에 사건에 가담하게 된 시이나는 가와사키가 훔쳐 온 책이 일본어대사전이 아님을 알고 황당해하고, 우연히 알게 된 펫 숍 주인 레이코는 가와사키의 말을 믿지 말라고 시이나에게 경고를 한다. 그리고 시이나는 가와사키의 비밀 이야기를 알게 되는데…(보도자료)

사실 처음 '밥 딜런의 멜로디가 흐르면, 2년 전 그날의 기억이 찾아온다'라는 홍보문구를 보았을 때는,
너무 뻔하고 오버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저 문구만 본다면 너무 뻔한 홍보문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뻔하지만 노골적인 문구가 나름대로 영화의 분위기를 잘 함축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영화의 초중반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저 대학진학을 계기로 센다이로 이사온 주인공 '시나'의
하루하루를 조심스레 스케치 해 나가는 평범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하지만 바로 옆방에 살고 있는 '가와사키'와
알게 되면서 그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를 통해 약간은 이상한 주변 사람들과 동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와중에 알게 된 사람들을 통해 가와사키 역시 미스테리함이 많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알게 되고, 시나는
가와사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자 그의 뒤를 밟고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에 관해 묻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개된다. 그저 단순히 괴짜로만 보였던 가와사키가 보여지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미스테리한 인물임을 알게 되고, 시나가 그를 점차 알아가면서 이 영화는,
미스테리한 퍼즐을 한 조각 한 조각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한 편, 퍼즐이 하나씩 풀려갈 수록
감동의 조각도 하나하나 완성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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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가 원래는 가와사키가 아니었고, 옆방에 사는 부탄에서 온 학생 도르지는 그저 지방에서 온 일본 학생
이었으며, 부탄에서 왔다는 도르지는 다름아닌 가와사키 였다는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 영화는 왜 부탄에서 온
도르지가 가와사키라는 이름을 쓰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 플래시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저 괴짜스럽게만 보였던 가와사키의 행동과 대사들은 이후 진짜 가와사키가 등장하는 후반부를 위해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이 과정속에서 그 동안 에이타가 가와사키로 연기했을 때의 장면들을, 에이타가
도르지로 등장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보게 되는데, 이 장면들을 통해 모든 비밀이 풀리고 도르지가 가와사키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에 대한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있게 되지만, 거의 모든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일부
관객들에게 약간의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긴 이 영화의 전반부, 그러니까 에이타가 가와사키를
연기하는 부분은, 모두 이 후반부를 위한 도구이니 전부 다시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에이타는 기존에 출연한 작품들에서도 제법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었지만, 그것은 연기 외에 인상적인
외모가 한 몫을 했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을텐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에이타를 좀 더
배우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초반 가와사키로 등장할 때의 연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오다기리 죠가 계속 떠올랐는데, 무언가 괴짜스럽고 이상하면서도 남모를 포스를 풍기는 그의
연기는 오다기리 죠가 많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비슷한 캐릭터를 쉽게 떠올리게 했다. 후반부에 도르지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나이에 걸맞는 순수한 미소를 볼 수 있어 좋았고. 특히나 후반부에 시나가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이후의 그의 연기는 그 웃음, 표정 하나하나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영화가 너무 에이타에 의해 과대포장 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뭐 맞는말도, 틀린말도 될 수 있겠다. 영화는 에이타의 출연 하나만으로 설명되기에는 너무도 할 말이 많은
훌륭한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서 에이타가 차지하는 비중이라던가 그가 보여준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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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에이타 외에 마츠다 류헤이, 세키 메구미, 하마다 가쿠 등이 출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하마다 가쿠의 홍보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쉽다. 물론 기존의 국내 지명도에서는 조금 뒤쳐지는 배우일지는
몰라도, 엄연히 이 영화에서는 에이타에 버금가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내 전단지에는 이름 한 번
언급되지 않는 등 너무 홀대를 당하고 있는 듯해 동정심 마저 느껴졌다. 사실 국내의 전단지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똑같은 옷을 입은 에이타와 마츠다 류헤이가 떡 하니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리뷰 글에 메인 포스터로 일본 포스터를 가져왔다. 저 포스터 속 캐릭터의 비중이
영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밥 딜런의 'Blowin’in the wind'의 경우 뭐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곡이었지만, 앞으로는 이 곡을
듣게 될 때마다 이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유명한 팝송을 영화 속에
자연스레 녹이는 방법으론 이 영화같은 방식이 가장 영리한 방식이라 생각된다. 적절하게 스토리에 녹아들도록
만들어내서, 나처럼 이미 이전에도 수없이 들었던 노래가 새롭게 들리도록 만드는 방식말이다.




1. 일본어를 잘모르다보니 '코인로커'라는 한국어 제목을 보고는 도대체 뭔가 했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서야 '아, 코인 락커구나'했다는. 락커룸이라고 주로 하지 로커룸이라고는
   안하니까 --;

2. 제목을 보며 왠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스러움을 느꼈다.

3. 센다이는 마치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더라. 특히나 대형 서점의 경우 미국 서부의
   인적 뜸한 주유소를 연상시키는 포스를.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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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오타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07 수상작 모음

'세상의 모든 애니메이션'이라는 제목으로 8월 21일부터 9월 3일까지 이대 ECC 내의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제에 이제야 들러보게 되었습니다. 조금 늦은 탓에 처음 방문한 오늘은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과 '캐나다 오타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수상작 모음'을 연달아 관람하게 되었네요.
<귀를 기울이면>의 감상기는 이미 포스팅을 하였으니, 이번에는 짧게나마 오타와 영화제의 단편들에 대한
감상기를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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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타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모음집들에서는 총 8개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영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창조적인 독립 단편 애니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은,
정말 하나하나가 다 크리에이티브하고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이번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소개되는 오타와 영화제 수상작들은, 모모에서 처음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지난 2007년 애니충격전으로 열렸던 '2007 해외 수상작 초청전 오타와편'을 통해 소개되었던 단편들 가운데,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여덟 개의 작품을 모아 소개하고 있습니다.
종합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단편 이라는 특성과 독립적인 작품이라는 성격을 감안해봤을 때, 짧으면
3분, 길면 20분이 조금 넘는 분량의 단편을 보고, 정확히 그 작품의 성격이나 감독이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애니충격전'에서는 이런 면을 감안해 관객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하나의 단편이 끝날 때마다 감독과의 인터뷰 장면을 수록하고 있어, 바로바로 작품에 대한
감독의 의도를 전해들을 수 있습니다. 마치 DVD에 수록된 부가영상이나 코멘터리를 듣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개인 취향에 따라 감독의 의도나 설명보다는 자신의 주관적 해석으로 받아들이길 원하는(특히 작품이
끝나자마자 바로 설명이 따라나오는 부분이기 때문에)관객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감안하여 감독의 인터뷰가
나오기 전에는 양해를 구하는 일종의 경고 문구가 등장하고, 원치 않으면 잠시 눈을 감으면 되도록, 선택할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도 세심하고 귀여운 배려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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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 | A-Z

단편/영국/Sally Arthur/3분 20초
독립단편부문 본선초청
P부인은 런던 시내에서 자주 길을 잃고 헤맨다. 그래서 요즈음 우리는 길을 헤맬 필요가 없다.
P부인! 감사합니다!


첫 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은 영국 출신 여성 감독인 Sally Arthur의 'A-Z' 입니다.
아까 감독의 인터뷰를 얘기할 때 미처 얘기하지 못했었는데, 몇몇 작품의 경우 작품의 시작 전에
'알고보면 더욱 유용한 Tip'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단편 'A-Z' 같은 경우가 이런 Tip이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경우라 할 수 있겠는데, 극 중 주인공이 되는 P부인에 관련된 역사적 실제 사실을 미리 알려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좀 더 쉬운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실제 종이로 만든 애니메이션 느낌이 나는 3D와 2D 플래쉬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단순한 기법만큼이나 확실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영국 지도를 만든 그녀의 업적에 대한 소소한 재미와 존경에 메시지를 담고 있는 깔끔한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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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닝 두들 프로젝트 2007 - 번쩍번쩍2007 (Lightning Doodle Project 2007 - PIKA PIKA 2007)

단편/일본/Takeshi Nagata & Kazue Monno/5분
독립단편부문 본선초청
라이트닝 두들 프로젝트의 최신판. 이제부터 일본뿐이 아닌 세계투어다!


두 번째로 만나보게 되는 작품은 좀 더 색다른 단편입니다. 장시간 노출을 하는 방식을 통해 빛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글씨나 그림을 표현하는 이른바 '플래시라이트 애니메이션'인데, 일단 기법 면에서 다른 단편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기법이 완전히 생소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법을
통해 단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의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받을 만한 작업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것이 단순히 손전등이나 라이트닝 만으로 만들어낸 장면이가 싶을 정도의 디테일한
그림 묘사나 장면 묘사들도 등장하는데, 기술적인 것 외에도 편집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노력이 깃들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5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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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솔로지 (Doxology)

단편/미국/Michael Langan/ 6분 10초
학생작품부문 최우수 대학생작품상
테니스공을 통하여 이뤄지는 천상과 지상의 소통에 관한 탐구


이 작품 역시 애니메이션 기법들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실사 배경과 인물이 등장하는 독특한 단편입니다.
단순히 테니스 공을 우주로 날려버린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작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장면들과 연출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감독인 Michael Langan이 직접 출연을 하고 있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테니스 장면 못지 않게, 자동차와 탱고를 추는 장면이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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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카렌 (John and Karen)

단편/영국/Matthew Walker/3분 30초
커미션드필름부문 최우수 성인용 TV작품상
북극곰인 존은 지난 실수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펭귄 카렌의 집을 찾아간다.


개인적으로 이번 단편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두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 <존과 카렌>이었습니다.
뭐 단편이 대부분 그렇긴 하겠지만,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참 심플한 경우에 속합니다. 여기서 '심플하다'라는
것은 '단순하다'라는 것 외에 '깔끔하고' '집약적이다'라는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는데, <존과 카렌>은
비록 3분 30초 짜리의 단편이고, 이렇다할 사건도 없지만 그 분위기를 정말 잘 캐치하고 있는 작품이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큰 덩치의 북극곰 존과 작은 몸집의 펭귄 카렌이 연인 사이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나누는 대화나 그 표정 하나하나는 정말로 리얼합니다.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서로 부끄러워 하는
소심한 커플이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귀여운 커플의
일상의 에피소드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소소함을 아름답게 그려낸 연출력이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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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늙어 아주 늙은 노인 (The Old, Old, Very Old Man)

단편/영국/Elizabeth Hobbs/6분 38초
독립단편부문 본선초청
나이가 152세나 된 토마스 파(Thomas Parr)가 국왕 찰스1세를 영접하고 국왕은 그의 장수를 기념하여
축제를 베푼다.


이 작품의 작화 기법은 마치 동양화의 수묵화를 보는 듯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저 감독의 집에 있는
화장실 타일 위에 잉크를 풀어 만든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밑그림 원본이 남아있거나 하지도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약간 동양적이고 여백의 미가 강조된 형식은 작품의 내용인 노인의
모습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이 작품 역시 맨 처음으로 보았던 단편 'A-Z'와 같이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Tip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 주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152세의 토마스 파에 관한 일화를
미리 들려줍니다. 어찌보면 여덟 작품 가운데 가장 심심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 기법이나
인디스러움은 가장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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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t.o.m)

단편/영국/Tom Brown, Daniel Benjamin Gray/2분 57초
07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2개 부문(TV부문 특별상, 유니세프상), 07 선댄스 국제영화제 단편부문 특별상,
07 멜버른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부문상, 06 노리치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최우수 학생작품상
놀랍고 신비로운 한 소년의 여행 이야기


일단 이 작품 '톰'은 수상 경력부터가 화려합니다. 3분도 안되는 단편이 어떻길래 과연 그럴까 하는 기대에서
보기 시작했는데, 과연 짧은 시간내에도 독특한 그림체와 인상적인 이야기로 쉽게 빠져들고 말더군요.
얼핏보면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작품 <웨이킹 라이프>에서 쓰였던 로토스코핑 기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약간 기괴하게 생긴 인물들의 모습 또한 다른 작품에서 본듯한 그림체이긴 합니다(이렇게 생긴 인물들을 어디서
분명히 본적이 있는데 어떤 작품인지 생각이 잘 안나네요 ^^;).
<톰>은 왠지 의아스럽다가 '짠!'하고 끝나버리는 작품이지만, 메시지도 '짠!'하고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
됩니다. 이상해만 보이는 주인공 '톰'의 학교가는 길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톰'을 이상하게 여겼는지 아니면,
'톰'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겼는지를 묻기도하는 작품이죠. 짧지만 강렬한 작품이었습니다.
나중에 나오는 감독들의 인터뷰도 재미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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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지하르카 (Zhiharka)

단편/러시아/Oleg Uzhinov/13분 11초
어린이작품부문 최우수단편애니메이션상
러시아 우화에 기초한 애니메이션. 한 여우가 지하르카라는 어린 소녀를 잡아먹으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하지만 말괄량이 지하르카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번 단편들 가운데 가장 동화적이고 따뜻한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작품 <말괄량이 지하르카>를
꼽겠습니다. 마치 오래된 동화책을 한장 한장 넘기는 듯한 느낌의 작화는 러시아 고유의 느낌이 나면서도,
보편적인 동화적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러시아 우화에 기초하였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전 세계의
우화들은 전부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의 예전 우화들도 떠오르고,
영국이나 다른 나라들의 유명 우화들도 연상이 되거든요. 하지만 이 단편에만 있는 요소를 꼽자면
단연 지하르카의 귀여운 러시아 발음을 들 수 있겠네요 ^^ 애니충격전에서도 패밀리 섹션에서 소개되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온가족이 보기에 매우 안성맞춤인 따뜻한 감성이 담겨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이야기 구조는 우리가 이미 많은 우화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단순한 것임에도, 장면마다 웃으며
즐길 수 있었던 것이 아마도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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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황금기 (Golden Age)

단편/미국/Aaron Augenblick/23분
커미션드 필름부문 그랑프리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를 지냈던 여러 캐릭터들의 영광과 좌절을 그린 애니메이션.


<존과 카렌>을 설명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두 작품'이라고 했었는데, 그 다른 한 작품이 바로
<애니메이션 황금기>입니다. <존과 카렌>이 소소한 감성에 문을 두드리는 보석같은 작품이었다면, 이 단편
<애니메이션 황금기>는 그야말로 페러디와 페이크 다큐멘터리, 그리고 오마주와 독설이 한가득 맛있게
비벼진 걸작 요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무려 '23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통해,
각 캐릭터의 짧은 여러 에피소드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황금기'라는 제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미국이 애니메이션 황금기를 이끌었던 캐릭터들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그 궁상맞은 뒷 얘기까지
마치 실제 역사인듯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물론 이 단편을 보면서 '동킹콩이 진짜 나중에
그렇게 됐데?' 라던지 '그래서 그 캐릭터가 작품에서 빠지게 되었구나'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웃길려고 작정하고 만든 이 단편을 보면 절대 헛웃음이 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캐릭터를 통해 당시 애니메이션 사업의 흥망과 그 뒷면의 어두운 면까지 들춰내는 블랙 코미디로서
굉장히 의미도 있는 작품이고, 또한 여러가지 잡다한 것들을 풀어놓으면서 일일이 다 설명해 내고야 마는,
애니충격전 홈피 작품소개란의 프로그래머 평을 인용하자면 '미국산 오타구'라는 말이 정말 딱어울리는
감독의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극장에서는 내내 웃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기도 했죠.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작품이기도 하구요 ^^


이렇게 해서 짧게 나마 이번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여덟 편의 단편들을 리뷰해 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볼만한 참신한 단편들로 채워져 있으며, 지난번 애니충격전에서
아쉽게 놓치셨던 분들은 물론, 애니메이션에 크게 거부감만 없는 분들이라면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단편들에게서 눈을 떼기가 아마 쉽지 않으실 겁니다~



참고 사이트
씨네아트 홈페이지 - '세상의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제' 소개 페이지
http://www.cineart.co.kr/wp/movies/festival.view.php?&fid=158

애니충격전 홈페이지 - '2007 해외 수상작 초청전 오타와편' 소개 페이지
http://www.animpact.org/bbs/renew/html/2_program/pre/200711.htm


* 본문에 사용된 각 단편들의 이미지에 저작권의 대한 모든 권리는 애니충격전 연합사무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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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강풀의 원작인 <26년>은 너무도 인상적이고 감동적으로 보았었기 때문에,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큰 기대를 갖게 되었던 작품이 바로 영화 <29년>이었습니다.

예전에 변영주,김태용,이해영 감독이 시네마천국 MC를 볼 때, 이해영 감독이 차기작으로 <29년>영화화를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게 되었고, 얼마전 주요 캐릭터로 변희봉, 천호진, 류승범 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법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더욱 기대를 하게 되더군요.

최종적으로 세 배우 외에 진구와 한상진, 김아중 씨가 캐스팅 된듯 한데, 한상진 씨는 처음 스크린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고, 김아중 씨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과연 이 무거운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해집니다.

이들 외에도 <님은 먼곳에>의 주진모씨와 기주봉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2009년 개봉을 목표로 이제 캐스팅이 막 확정된 상태이니,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 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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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Whisper Of The Heart, 耳をすませば, 1995)
리얼리티로 살아나는 아련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전의 대부분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 <귀를 기울이면>
역시 용산에서 구한 일본에서 넘어온 불법 VCD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던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전에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이 작품이 지난해였나, 대원에서 <마녀 배달부 키키>와 함께 DVD출시를
하기 위해 메가박스에서만 단독으로 잠깐 개봉을 했었고, 그 당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키키'와 함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죠. 그 이후에 DVD가 결국 출시되긴 했지만, 이번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세상의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귀를 기울이면>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왠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요즘은 조금 시들해졌지만 한 때 지브리 하면 만사 재쳐두고 DVD며 피규어며, 디오라마며, OST며,
화보집, 설정집 등 닥치는대로 모으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모았던 각종 아이템들과 선물해주었던 피규어들을
다 모으자면, 조금 오버해서 지브리 스튜디오 서교분점 정도 될지도 모르겠네요.
메가박스에서 개봉했던 당시에는 너무 감상에만 젖어 제대로 된 감상기를 쓰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한 번 써보는데 까지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지브리 DVD타이틀이 출시되면
열심히 줄줄이 리뷰를 썼던 것에 반에 반만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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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베르트 폰 지킹겐 남작과의 첫 만남! 남작은 이후 <고양이의 보은>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일단 이 작품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지브리의 느낌과는 약간 틀린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콘도 요시후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부분의
지브리 작품들이 그렇듯 각본이나 기획 작업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콘도 요시후미가 연출한 영화의 분위기는
확실히 미야자키의 판타지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장면장면의
디테일은 매우 현실적이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인 '시즈쿠' 캐릭터는 정말 또래의 사춘기를 겪는 소녀의
미묘한 감정과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시즈쿠를 둘러싼 그녀의 가족들의
모습이라던가(도서관에서 일하는 아빠, 대학원 논문 준비로 시즈쿠 만큼이나 바쁜 엄마, 그리고 이제 막
사회로의 한 걸음을 내딛으려고 하는 언니까지), 시즈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유코와 스기하라의 알콩달콩
미묘한 사춘기의 감정 묘사도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전혀 밋밋하게 느껴지지 않는 연출력을 선보입니다.

특히 굳이 그런 설정들을 넣을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디테일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있는데,
시즈쿠가 유코의 집에 놀러갔을 때, 유코가 아버지와 다퉈 냉전중이라 이층으로 올라가는 중에도
아버지가 시즈쿠와는 인사를 나누지만 유코와는 냉랭하게 지나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이런 애니메이션에서는 좀 처럼 만나기 힘든 리얼리티라고 아니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굳이 극중 전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설정들을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외에도 부모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자녀가 빨래, 청소, 공과금 납입 등 집안일을 분담해야
하는 것이나, 여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의 방에 모여 선생님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 등,
소소하지만 현실적인 디테일들을 여럿 배치하면서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좀 더 이야기에 공감하고
몰입하도록 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즉 내 얘기, 혹은 우리 딸 아이의 얘기로 여기게끔 돕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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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브리 작품 가운데 명장면 베스트 5에 꼽힐 '컨츄리 로드' 연주와 노래 장면)

지브리의 작품들은 주인공이 현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 동네나 거리 모습의 작화에 있어 실제 있을 법한
(물론 이 가운데는 실제 있는 경우를 토대로 애니메이션화 한 경우도 아주 많죠, 이런 방법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된 경우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cm>같은 작품을 들 수 있겠네요) 분위기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어스름한 새벽녘의 장면이나 해지는 도시의 장면 연출을 볼 때, 거의 실사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전신주나 일상 풍경들을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이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실제로 예전에 어느 글에선가 이 작품에 배경이 된 실제 동네가
일본 내에서도 부자 동네에 속하는 동네이고 작품 속 처럼 아래로 훤히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길 본적이 있는데, 작품 속에서는 그리도 소박해보이던(신비스럽긴 했지만, 귀티나진
않았었는데 말이죠) 동네가 실제로는 부촌인 것을 확인한다면 실망하게 될까요? 그래도 언젠가 직접 일본에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좀 더 확인해보니 도쿄 교외의 타마시 라는 곳이 배경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 작품이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영화에 삽입된 노래 때문입니다. 존 덴버의 곡인
'Take Me Home Contury Road'가 바로 그 곡인데, 이 작품에는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른 버전이 초반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이 원곡의 느낌보다도 시즈쿠가 세이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친구들의 연주에 맞춰 수줍지만 열심히 부르는 그 버전이 더욱 깊이 가슴에 남을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네요. 거기에다가 이 작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콘크리트 로드'를 더하자면, 가끔 이 애니메이션의
영어제목이 'Contury Road'가 아닐까 하고 착각할 정도로, <귀를 기울이면>에서 이 곡이 주는 인상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중 'take me home county road')

<귀를 기울이면>하면 <고양이의 보은>이 절로 따라올 정도로 이 두 작품의 연관성은 이미 많이
언급되었지만, 그래도 나도 한 번 더 언급해본다면 (--;;),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심술쟁이 고양이 '문'과
('문'은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문'외에 여러 이름이 있다며 '무타'라는 이름이 후반부에 잠깐 언급되기도
하는데, <고양이의 보은>에서는 바로 이 이름 '무타'로 등장합니다)
영롱한 눈을 갖고 있던 훔베르트 폰 지킹겐 남작이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좀 더 비중있게 주연급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즈쿠가 극중에서 썼던 소설 '귀를 기울이면'의 내용을 보자면 <고양이의 보은>은
시즈쿠가 쓴 소설의 또 다른 버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현실적인 작품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스러운 설정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시즈쿠가 쓴 소설 속의 내용 뿐인데, <고양이의 보은>은
이 판타지스러운 요소를 전면으로 가져와 소녀의 사춘기와 성장기를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겠네요.
물론 두 작품의 원작이 모두 히이라기 아오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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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의 2002년작 <고양이의 보은>)        

잘 알려졌다시피 <귀를 기울이면>은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작이기도 합니다.
<빨강머리 앤>의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감독을 맡기도 했던 콘도는(그래서인지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시즈쿠의 친구인 유코의 모습에서는 얼핏얼핏 '빨강머리 앤'이 보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지브리 스튜디오에 가장 큰 기대주였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을 시작이자 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이 일로(직간접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불가피하게 은퇴를 번복할 수 밖에는 없었고,
지금까지도 지브리 스튜디오 내에서 미야자키를 이을 이렇다할 확실한 후계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많은 이들이 콘도 요시후미가 살아서 <고양이의 보은>을 연출했으면 어땠을까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고양이의 보은>은 캐릭터만 비슷할 뿐, 소소한 리얼리티보다는 더 지브리적인 판타지적 요소가 강조된
작품이라 콘도와는 잘 맞지 않는 작품인듯 하고, 정작 <귀를 기울이면>의 속편 격 작품은 따로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꼭 그 작품이 아니더라도 콘도가 만약 지금까지도 지브리 스튜디오에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남아있었다면,
지브리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너무도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가 떠난 이후로
지브리에 <귀를 기울이면>같은 색깔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다시 한번 그의 죽음이 너무도 아쉽다고 밖에는 할 수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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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92년작 <붉은 돼지>.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붉은 돼지>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고양이의 보은>의 경우 <귀를 기울이면>을 얘기할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작품인데 반해,
<붉은 돼지>와의 연관성은 그리 자주 언급되지 않는 것 같아 짧지만 정리해보자면.
세이지의 할아버지가 드워프 왕자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오래된 시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시계의 바늘이 자리한 곳을 보면 'Porco Rosso'라는 이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정도면 그냥 이름만 살짝 끼워 넣은 것이구나 할 수도 있겠는데, 그 다음 할아버지의 대사를 보면,
'이 시계를 만든 사람도 한 때 힘든 사랑을 했었던 것 같아'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붉은 돼지>에서도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지는 않지만, '포르코'와 '지나'가 한 때 결혼까지 하려고 했던 사이였다고 미뤄봤을 때,
세이지 할아버지의 저 대사와 <붉은 돼지>의 포르코 로소의 이야기는 정확히 매치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세이지는 바이올린의 장인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계획하는데,
<붉은 돼지>하면 '이탈리아'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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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코 로소가 만든 환상적인 대형 시계. 2008년 극장에서도 저 시계가 작동하는 장면에선
 관객들이 모두 탄성을 내지르더군요!)


마지막으로 이들 작품 외에 <귀를 기울이면>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른 작품의 흔적으로는 1989년작
<마녀 배달부 키키>를 들 수 있겠는데요, 시즈쿠의 책상에 정확히 키키는 아니지만 빗자루를 탄 검은 복장의
인형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팬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넣은 그림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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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사춘기의 미묘한 사랑에 관한 감정을 그린 것 만이 아니라,
청소년기에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진지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것을 친구들보다 더 좋아하고 글 쓰는 것(정확히 말해 번역일)을 단순히 좋아하던 시즈쿠는,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하나하나 노력하고 준비해 나가고 있는 세이지의 모습을 보고,
단순히 부럽다, 멋지다라고만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과 나태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러면서 세이지에게는 좋아하는 감정과 더불어 일종의 질투심 또한 느끼게 되는데, 이런 감정은
'나랑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나는 뭐하고 있었나'라던지, '세이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 같아서 저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현재 DVD가 없는 관계로
극장에서 본 기억만으로 대사를 쓰려니 정확하지가 못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

이런 설정은 적어도 지브리의 일반적인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TV 연속극에나
나올 법한 얘기에 가깝기도 하구요. 소녀가 진로를 고민하고, 자신보다 앞서서 한참이나 멀리 나아가고 있는
애정의 대상에게 지지않기 위해, 아니 자신이 생각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동등한 입장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 진로 상담을 하게 되고 여기서 일반적인
진학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무언가 꿈을 위한 도전을 하느냐에 대해 가족 구성원들과 자기 자신과도
깊은 갈등을 겪고,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가족이라는 자체가 성장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되는 이 이야기는, 앞서 자주 언급했던 것처럼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귀를 기울이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손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도 있습니다. 극중 시즈쿠가 겪는 고민들이 내가 겪었던 사춘기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죠. 시즈쿠를 통해 나의 사춘기를 돌아보는 한 편, 나는 왜 시즈쿠 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해보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되고,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사춘기 때 꿈꿨던 것들을
얼마나 이루었는가 하는 것도 되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니까요.
그래서 이 작품이 그저 소녀의 꿈같이 판타지스런 사춘기를 그린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더더욱 오랫동안 가슴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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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은 1995년 작으로, 만들어진지가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만), 극장에서 떠들거나 크게 웃는 것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작품을 볼 때 이 또래의 자식을 둔 어머니 분들이 장면마다 크게 웃으시는 것은 별로 불편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웃음에는 영화가 웃겨서 웃는다기 보다는 시즈쿠가 자신의 딸처럼 느껴져서,
귀여운 마음에 웃으시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거든요. 저는 아직 시즈쿠에게 감정 몰입을 더 하고
있지만, 한 10년 쯤 지나면 저도 오늘 극장에서 만난 어머니들처럼 시즈쿠를 제 딸 보듯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지브리와 대원 C&A 홀딩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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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Midnight Meat Train, 2008)
오랜만에 만나는 제대로 된 호러!


올 여름은 지난 해에 비해 호러 영화들이 많이 개봉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그다지 눈길이 가는 호러 영화들도
없어서 그냥저냥 흘러가나보다 했었는데, 그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포스터의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이 영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이하 MMT)이었다. 개인적으로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을
몇 편 보기는 했지만, 그의 소설을 아직까지 직접 읽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클라이브 바커'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이기 때문이거나, 혹은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작품이라 특별히 보게된
경우도 아니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호평들과 포스터와 예고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화 속 세계의 '때깔'.
그리고 늦은 밤 지하철에서 살인이 벌어진 다는 것 외에 무언가 더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가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요 근래 극장에서 본 호러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MMT'를 꼽게 될 것 같다.

(이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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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의 줄거리는 사진작가인 레온(브래들리 쿠퍼)이 전시회 데뷔를 하기 위해 도시에서 벌어지는 좀 더
리얼한 사건들을 찾아 셔터를 눌러대는데, 그 와중에 우연히 한 남자를 카메라에 담게 되고, 지난 밤 일어난
여성 모델의 실종 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깨닫고, 점차 전시회보다는 이 남자를 쫓는데에 집중하게 되고,
그를 추척한 결과 매일밤 그 남자가 지하철에서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사실 원작을 읽지 않았고, 영화의 초중반까지 분위기로 봐서는 그냥 일종의 '싸이코'가 살육을 저지르는 것
정도인가 보다 했었는데(뭐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MMT'에는 단순히 살인과 살육을 넘어서서
좀 더 미스테리하고 흥미로운 설정을 갖고 있었다. 특히나 살인이 단순히 살육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배달의 의미를 갖고 있고, 그 배달을 받게 되는 존재가 오랜 역사와 미스테리를 지니고 있는 인간 외의
존재라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극중 비니 존스가 연기한 '마호가니'의 캐릭터도 단순히 살육을 일삼는
도살자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제사장의 느낌을 갖게 하는 캐릭터로 느껴졌다.
이런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아무래도 '마호가니'의 코스튬에 있었다. 이걸 단순히 의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코스튬이라 표현한 이유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다 이해할듯.
깔끔하게 정리한 스포츠 머리에 알렉산더 맥퀸의 캐리백과 존 갈리아노의 회색수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마호가니의 이미지는, 호러 영화의 아이콘으로서 깊이 인식되기에 충분한 공포감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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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공포스러웠던데에는 미스테리 스릴러 형식으로 이야기를 천천히 전개시켜나가는 긴장감 있는
전개방식도 한 몫을 했지만, 그보다도 '마호가니'역할을 맡은 비니 존스의 그 무표정과 움직임, 걸음거리
때문이었다. 훤칠한 키와 UFC 파이터와 맞상대를 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듯한 체격, 그리고 바로 앞에서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만해도 오금이 저리는 그의 눈빛과 표정은, 이 영화를 가장 공포스럽도록 만드는
요인이었다. 비니 존스는 개인적으로는 2006년작 <엑스맨 - 최후의 전쟁>에서 주커노트 역할로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고, 가이 리치 감독의 <스내치>나 코미디 영화인 <그들만의 월드컵>같은 작품을 통해
짧지만 그 얼굴만은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였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앞으로 비니 존스하면 ㅎㄷㄷ한
공포스러움과 함께 'MTT'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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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언급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을 읽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른 작품, 아니 다른 게임이 연상이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엑스박스 360용으로 국내에도 라이센스되어
소수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반짝하고 사라진 호러 액션게임 <다크나스 (The Darknes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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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BOX 360용으로 출시되어 개인적으로도 한 동안 몰입해서 싱글플레이를 즐겼던 <다크니스>)

일단 <다크니스>의 세계도 전체적으로 어둠고 암울한 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영화 속 처럼 지하철이 등장하기도
하고, 액션 장면 중에 볼 수 있었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게임이기도 하며(영화 속 중간중간 장면들은
정말 게임 속 장면과 흡사했다), 무엇보다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악마(혹은 다른 악한 어떤 존재)에
힘을 얻고 그들의 하수인으로 일하게 되는 설정은 몹시도 닮아있었다. <다크니스>는 그야말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매우 영화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어서 게임을 하는 중에도, '이거 나중에 영화화하면 참 재미있겠다'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는데, 'MMT'가 <다크니스>의 영화화 버전은 물론 아니지만, 영화 속 지하철의
느낌이나 어두운 세계의 분위기, 주인공 레온의 이미지 등은 게임 속 그것과 너무도 유사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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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비니 존스보다 더욱 반가웠던 배우는 주인공 '레온'역할을 맡은 브래들리 쿠퍼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브래들리 쿠퍼는 제니퍼 가너 주연의 미드 <앨리어스>에서 '윌 티핀'역할을 맡기도
했었는데, <앨리어스>끝까지 나름대로 재밌게 본 입장에서는(많은 이들이 실망했음에도 ;;)윌 티핀을
스크린에서 주인공으로 만나게 되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확실히 공포에 질린 듯한 브래들리 쿠퍼의 표정에서는
<앨리어스>에서 여친과 그 숨겨진 세계를 알게 되었을 때의 표정이 얼핏 비쳤다. 비니 존스의 카리스마가
워낙에 강한 영화이기 때문에 자칫 주인공임에도 비중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레온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한 듯 하다. 물론 극중 레온이 점차 거칠게 변해가는 과정이 좀 더 섬세하게 묘사되지는 못했지만
(채식주의자인 레온이 스테이크를 먹게 된다던가, 여자친구와 관계를 맺을 때 거칠게 변한다던가 하는 장면으로
레온이 마호가니를 쫓게 되면서 점차 그 처럼 변해간다는 설정은 충분히 이해할만은 했으나, 시간 상으로
약간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았다),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문제라기 보다는 영화의 구성상의 약점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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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인 기타무라 류헤이는 이 영화가 호러이고 미스테리 이기도 하지만,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물론 레온의 여자친구가 등장하고 사건에 깊게 개입하기는 하지만, 러브 스토리로 까지 이해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수잔 호프 역으로 등장한 브룩 쉴즈는 그다지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등장하는 것
자체로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고,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머혼과 호흡을 맞추었던 바바라 이브 해리스의
모습도 반가웠으며, 깜짝 등장이라 할 수 있는 퀸튼 '램페이지' 잭슨의 등장도 흥미로웠다(아까 비니 존스의
체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UFC파이터를 언급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 ^^;).

결과적으로 이 영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그 세계의 색감도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영화가 마지막으로
갈 수록 점차 드러나는 미스테리의 실상도 개인적으로는 매우 흥미로웠던 호러 영화였다.
새로운 연쇄살인마 캐릭터의 등장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고(이것이 진정 시리즈화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3편 정도의 시리즈물로 전개된다면, 2편에는 역할을 물려받은 레온이 마호가니 보다 더욱 잔인하고 화려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면 좋겠고, 3편에는 우여곡절 끝에 자각하거나 아니면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처럼 엄청난 힘을 갖게 되어, 단순히 그들에게 배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 그들을 모두 소탕한다거나, 아니면 그들과 인간들 사이에 이 경계가 깨져버려, 인간 세상으로
나와 혼란을 일으키는 그들을 물리칠 이가 '레온'밖에 없다는 설정으로 최후의 전투를 벌이는 영화도
재미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3편까지는 너무 길 것 같으니, 2편 정도로 축약해서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무엇보다 21세기에도 잘 어울리는 스타일리쉬한 호러, 그렇지만 정통호러의 느낌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오래만에 만나는 제대로 된 호러 영화였다.



1. 영화 속 '마호가니'의 대사는 단 한 마디 뿐이다.
2. '마호가니'라는 것이 어쿠스틱 기타에 사용되는 나무 재질이다보니 자꾸 딴 생각이;;
3. 근데 그 코스튬과 헤어스타일은 누가 정해준거지? 배달 받는 그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인가?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Lionsgate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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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 (Wall - E, 2008)
우주 최고의 러브 스토리


픽사의 작품은 언제부턴가 그 어느 영화사의 작품들보다 믿고 관람할 수 있는 완성도를 보여주었었다.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따뜻한 가족애에 감동할 수 있었고, <카>에서는 한 때 잘나갔던
주인공이 사고를 겪으며 자신이 몰랐던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통해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라따뚜이>는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다는 진리를 쥐가 요리를 한다는 설정을 통해 완벽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역시 감동할 수 있었다. 이번에 개봉한 <월-E>역시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파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로봇보다도 로봇 같은 인간들의 획일화된
모습과 인간보다 인간적인 로봇들의 모습에서, 획일화되고 규격화 되어가는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동시에, 무엇보다 '우주 최고의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근데 이 러브 스토리 역시 신파에 가까운
멜로 영화의 클리셰를 모두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픽사의 작품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신작 <월-E>의 경우도 그렇고, 픽사의 작품들은 사실상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극 영화들과 비교해도 항상
그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픽사의 영화를 꼽게 되는 이유는, 뻔한 이야기와 주제를 가지고도,
디테일한 스토리텔링과 볼거리, 아이디어로 관객들을 완전히 빠져들게 만들고, 그 속에서
어느덧 자신들이 하려는 진리에 가까운 주제를 관객에게 자연스레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으며,
캐릭터가 인간에서 로봇으로 바뀐 것 뿐이지 뻔한 러브 스토리임에도, 결국 매 순간순간마다 울컥울컥하게
만드는 놀라운 영화적 기술을 선사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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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쌍안경에 가까운 저 렌즈로 표현된 눈이, 인간의 눈의 묘사보다도 더 많은 감정과 애틋함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계속되는 발전을 통한 환경파괴로 지구는 더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초대형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려, 인간들은
대형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게 되고, 지구상에는 쓰레기 청소로봇 '월-E'만이 남아 약 800년 동안 홀로
지구별을 지키고 있다. 초반 장면에서 느낄 수 있듯이 청소로봇으로서 살아가는 '월-E'에게는 이미 800년이나
지속적으로 해온 업무 탓에 단조로움이 묻어있긴 하지만, 그 속에서도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쓰레기 속에서
찾아내 자신의 아지트로 가져와 마치 '인간처럼' 방을 꾸며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속 '월-E'의 초반 이런
묘사를 통해 영화는 '어떻게 로봇이 감정을 갖는가?'라는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설명해 버린다.
오래된 뮤지컬 영화(헬로 돌리)테입을 보며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춤과 로맨스에 감동하고, 낡은 아이팟으로
(낡았다 하더라도 800년을 버텼으니 이 정도면 내구성은 최고인듯. 알다시피 픽사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 이런 설정들은 귀엽게 봐줄 수 있었다 ㅎ)오래된 팝송을 들으며
마치 '낭만'마저도 즐기는 듯한 '월-E'에게 어느 날 대형 우주선과 함께 하나의 새로운 로봇이 등장하면서
이 한가로운 청소로봇에 일상에는 커다란 변화가 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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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EVE)'라고 불리는 이 로봇은 일종의 탐사로봇으로 지구에 생명체 여부를 탐사하러 온 로봇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지구에서 따분한 생활을 홀로(물론 귀뚜라미? 친구는 있지만)해온 월-E는 이브를 보는 순간,
그야말로 '첫눈에 반하게'되고 그때부터 이브에 대한 짝사랑이 시작된다.
이브를 쫓아다니면서 결국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킨 월-E는 자신의 아지트로 이브를 데려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영화도 보여주고, 직접 춤도 춰보이고, 자신이 모아둔 여러가지 것들을 구경시키는데, 나는 여기서부터
뭉클하기 시작했다. 800년 동안이나 홀로 있었으니 무언가 새로운 존재가 등장했을때 얼마나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았을까. 이 과정에서 자신이 구해온 식물도 자랑하기에 이르는데, 바로 이 새로운 생명체를 조사하러
온 이브는 식물을 보는 순간 명령어에 따라 자신을 보낸 우주선에 신호를 보내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은 모두
정지되는 상태가 된다. 월-E는 처음에는 놀라지만 나중에는 이미 사실상 작동을 하지 않고 있는 이브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좋은 것도 보여주고,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면 파라솔을 펴주고, 비가 세차게 내리면
우산도 받쳐주고 하며 계속 이브가 께어나기만을 기다린다. 이 시퀀스에서 월-E가 이브를 대하는 모습은
마치 <그녀에게>가 떠오를 정도로 애틋하고 감동적이었다(흐르던 음악도 기가 막힌 싱크로율을!).
결국 이브를 회수하러 온 우주선이 도착하고, 이 우주선을 월-E도 따라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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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장애에 가까운 청소 본능을 갖은 로봇 '모 (MO)' 캐릭터는 <월-E>를 보는 또 다른 재미거리다)

인간들이 버려진 지구를 떠나 생활하고 있는 우주선의 모습은 그야말로 '로봇'스럽다. 모두들 자동 의자+침대쯤
되는 기구를 타고 이 위에서 모든 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모든 구성원들의 체형은 다들 몹시도 살찐 모습이며,
각자 모니터에 나타나는 동일한 영상을 보고 있으며, 우주선에서 제공하는 화면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미 루트도 다 정해져있어서 다니던 길로만 다니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건 얼마나
로봇스러워졌는지(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나면 이 '로봇스럽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 말같다. 이리도 인간적인
월-E나 이브 같은 로봇들이 있으니 말이다 ^^), 보여지는 영상 외에 다른 곳은 아예 볼 생각도 하지않고(그저
고개만 돌리면 되는데도!), 새로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지고 나태해져 아예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월-E가 이 우주선에 나타나서 작은 사고를 통해 2명의 인간이 기기에서 떨어지게 되고, 이들은 처음으로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 없던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계속 그대로 있었으나
한번도 고개를 돌려 보려고 조차 하지 않았던 바로 그 세상이다. 이 2 명의 사람들은 여기서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점차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된다. 이 배의 선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기계화된 하루하루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브가 가져온 생물체로 인해 지구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고, 점차 알아가게 되면서 그 동안은 하지 않았던
새로운 생각들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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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가 월-E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면 우주선에서 이브가 깨어나게 되면서 부터는 본격적인 쌍방향(?)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다. 지구에 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선장은 이브에게 영상장치를 연결해 이브가 지구에서
보고 온 것들을 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브는 자신이 우주선에 신호를 보내느라고 정지되었을 때의 영상들을
처음 보게 된다. 바로 월-E가 작동이 멈춘 자신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을 시켜주고 돌봐주었던
것들과 손 한번 잡고 싶어서 마음 졸이던 그 애틋한 심정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월-E를 급하게 찾게
되지만 월-E는 사고를 겪으면서 거의 죽어가게(로봇에게 죽어간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되면서 이브는 월-E를 구하기 위한 방법은 지구로(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우주선의 귀환 작전을 돕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획일화된 시스템 속에 길들여져 있던 인간들은 월-E와 이브의 활약에 조금씩 자신들이
해야할 바를 깨닫고 도움을 주기에 이른다. 결국 거대 시스템과 인간 스스로가 만든 이 현상유지와 안주함을
깨고 황폐화된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번 눈물이 왈칵 쏟아지게 만드는 설정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돌아와 월-E를 새로운 부품들로 교체하여 완벽하게 고쳐냈지만, 주요 부품을 바꿔버린
탓에 월-E는 쉽게 말해 '초기화'가 되어 이브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저 청소 로봇으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로봇'으로 돌아가고야 만다. 사실 이것보다 신파적이고 뻔한 줄거리는 또 없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제야 드디어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한 명이 기억상실이라니....)나는 여기서 거의
울먹 거릴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이브를 알아보지 못하는 월-E의 표정(이미 월-E에게는 표정이란 것이
느껴진지 오래다)을 보면서 어찌나 슬프던지. 이브는 이런 월-E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월-E가 그렇게도
하고 싶어하던 손을 잡아주게 되고 서로 머리를 맛대는 순간 스파크가 일어 월-E는 기적적으로 기억을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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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의 로맨스는 가히 지상 최고, 아니 우주 최고의 러브 스토리이다!!)

디지털화가 지속될 수록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감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 되는 듯 하다.
이제는 로봇이 인간을 계몽시키는 수준까지 와버린 것 같다 ㅎ
<다크 나이트>때문에 흥행면에서는 완전히 참패를 거두고 있는 <월-E>지만, 2008년 들어 지금까지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올해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다크나이트>와 심각하게 고민해볼 정도로 <월-E>는
또 한 번 픽사의 위대함을 보여준 픽사 최고의 작품이었다.
전 연령이 모두 즐겁게 즐길 수 있으며, 나 같이 다 큰 어른도 어느 정도의 감수성만 있다면(감수성이 폭주하는
나 같은 경우는 눈물 바다를 준비해야함 ㅠㅠ)그 어떤 극 영화보다도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월-E>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얼마나 행복해짐을 느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얼마나 '이~~~~~브아~~~~'를 따라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




1. '이~~~브아~~~'라고 이브를 부르는 월-E의 음성은 흡사 E.T의 목소리를 연상케 했다.
2. '워~~리~~~~~;라고 월-E를 부르는 이브의 음성도 기억에 남고, '모!'라고 자신의 이름을 외치던 모 역시!
3. 개인적으로는 뮤지컬을 좋아해서 그런지 오래된 <핼로 돌리>를 보며 감상에 빠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4. 엔딩 크래딧 이후에 특별한 쿠키 영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쿵푸 팬더>의 경우처럼 엔딩 크래딧의
    장면들이 영화의 에필로그 겪인 영상이라 이것도 절대 놓치면 안되겠다.
5. 픽사의 작품 가운데 실사가 등장하는 처음 영화가 아닌가 싶다.
6. 디지털 자막 버전으로 보았는데, 디지털-자막으로 상영하는 상영관이 많지 않음으로 찾기 어렵다면
   그냥 디지털-더빙으로 봐도 아주 나쁘진 않을 듯 하다. 이 영화는 원채 대사가 별로 없음으로 ^^
7. 우주선에 방송으로 들려주는 목소리는 시고니 위버가 연기했다.
8. 지상 최고의 천재 집단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픽사를 꼽겠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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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컨피덴셜 (The U.S. vs. John Lennon, 2006)
존 레논이 가장 사랑했을 그의 영화


미리 밝히자면 존 레논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뮤지션이자 한 사람의 존재이기도 하다. 너무도 유명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비틀즈 활동 이후 솔로 활동 그리고 아내인 오노 요코와 함께한
'Plastic Ono Band' 활동까지(개인적으로 비틀즈 시절의 존 보다도 오히려 솔로와 플라스틱 오노 밴드 시절의
존과 음악을 더욱 사랑한다), 그는 뮤지션이면서 한 사람의 휴머니스트였으며, 반전과 사랑, 평화를 외치는
선동가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당시 닉슨 대통령 체재였던 미국이란 국가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로 분류되었던
사람이기도 했으며, 아들을 둔 아버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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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단순히 비틀즈의 멤버로만 기억하는 이들도 있으며, 이후 솔로 활동까지
기억하는 이도 있고, 미국에서 반전운동을 벌이던 운동가로서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도 있고,
오노 요코와 함께한 퍼포먼스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작가이자 감독이기도한 데이비드 리프와
존 쉐인필드는 이렇듯 단편적인 존 레논의 이야기가 아니라, 존 레논을 중심으로 당시의 반전 분위기와
정부의 공권력 남용 등 사회, 문화적인 내용들을 함께 담고자, 그리고 무엇보다 존 레논의 당시 일화들을
단순히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앞뒤 맥락과 의도가 이해되도록 철저한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그와 요코가
겪은 불합리한 고통들과 그들의 진정성을 가깝게 하지만 객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사실 존 레논의 팬들이라면 이 다큐에 포함된 내용들 가운데 새로운 내용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존 레논의 관한 이야기들은 여러가지 장르와 형식을 통해(심지어 그의 죽음은 '진실 혹은 거짓'같은
오락성 프로그램에서까지 다뤄지지 않았던가)공개되었었고, 여러 다큐멘터리 영상들을 통해 비틀즈 시절의
존과 오노 요코와 함께한 시절의 모습들까지 대부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최근 개봉한 <존 레논 컨피덴셜>
이 독특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일단 그의 가장 주변에 있었던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반대로 그를 가장
꺼려하고 주시했었던 당시 정부와 FBI의 요직에 있었던 이들의 인터뷰를 들 수 있겠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로는 당시 급진적 운동가의 대표 주자였던 존 싱크레어를 들 수 있겠는데, 두 감독은
존 싱크레어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당시 반전 운동을 주도한 지식인, 운동가 들의 인터뷰를 차례로 이어갔고,
그의 친한 친구들이었던 사진가, 기자들의 인터뷰는 물론 무엇보다 그를 가장 가까이서 이해했던 오노 요코의
인터뷰도 담았다. 이들이 직접 들려주는 존 레논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그 동안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들어오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친한 친구들에게서는 그 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던
당시 존 레논의 심경과 성격 등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반대로 정부 인사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그 당시 정부에게 존 레논이라는 이 한 뮤지션이 얼마나 혐오대상이자 주목하고 있는 인물이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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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를 보니 더욱 명확해졌다. 그가 주장한 사랑과 평화, 반전은 이성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아주 단순한 명제였다는 것과. 존과 요코가 남들과 다르게 주목 받고 화제를 불러 일으킨 것은 물론
그들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을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의
용기를 가졌을 뿐이었다는 것을. 가끔 유명세를 얻고 있는 연예인들의 정치적인 발언에 대해 찬반 토론에
까지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존 레논의 경우는 이러한 유명세를 정치적인 메시지로 이용한 가장 효과적인
사례이자, 개인적으로는 가장 본 받을 만한 행동이었다고 생각된다. 존 레논은 일부 사람들에게 미치광이로
여겨질 정도로 그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지만, 지금와 그의 행동들을 돌이켜보면
그가 원했던 롤 모델이었던 '간디'의 비폭력 단식 시위처럼 그가 요코와 보여준 퍼포먼스들은 대중과(특히
비틀즈의 주 팬 층이었던 어린 청소년들과 젊은 세대에게) 언론에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궁극적으로는
왜 이들이 신혼여행 기간 호텔의 침대 위에서 평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했고, 바로 이 점이 존과 요코가 원하던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자신들만의 평화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전세계의 비틀즈 팬들은(특히 영국팬들은), 일본에서 온 마녀가 존을 빼았아갔다고 얘기하곤 했지만,
존 레논은 오노 요코를 만나면서 비로서 웅크리고 있던 자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자신이 하려는 바를 완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 동반자로서 요코를 받아들이면서,
아마도 이런 용기 있는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행동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의 이런
행보들이 한 편으론 상당히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너무 행복해 보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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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컨피덴셜>은 얼핏 정치적이고 투쟁적인 존 레논의 모습만을 강조하는 듯 하지만, 잘 보면 이런
겉 모습과 드러나는 표면적인 모습 이면에 본래 부터 존재했었던 인간 존 레논에 대해 더욱 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에게 차례로 버림 받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어린 시절에 겪고,
반골 기질을 타고날 수 밖에는 없었던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선입관, 그리고 요코와 만나 정치적인 행보를 하게 되면서 많은 언론과 사람들에게서
오해를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알고 나서, 그가 만든 노래들의 가사들을 하나 하나 음미해보면
이 가사들이 단편적이지 않고 다중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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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눈에 가시 같은 자신을 쫓아내기 위한 미국 정부의 추방 노력에 맞서 힘겹게 싸워 나가던 날카롭고
공격적이던 그의 모습이, 아들 션 레논을 낳게 되고 아들과 함께 한 순간에는 정말 얼굴에 '행복해요'라고
써 있는듯 변화해 버린 모습을 볼 때, 인간적인 연민과 더불어 존 레논의 아버지로서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션을 안고서 정말 해맑게 웃음 짓는 모습이나, 요코와 더불어 셋이서 수영도 하고 놀이기구도 타고,
소풍도 가고 하는 모습에서는,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존 싱클레어의 석방을 외치며 노래하던 존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처럼 존 레논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자신의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너무도 행복해
하고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하던 평범한 사람이자 아버지였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그가 외치던 평화와
사랑, 반전의 메시지 역시 이런 지극히 평범하고 순수한 사람들만이 외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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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익숙한 팝 음악들이 영화 속에 삽입되었거나 팝송이 주요 소재로 사용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잠시 이야기했었던 것 같은데, 영어 사용이 아주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혹은 아주 유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영어를 외국어로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팝송을 가사를 자막과 함께 접하게 되는 순간은, 그것이
아무리 기존에 많이 들었던 곡이라도, 또한 이미 가사내용 또한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 만큼은 특별한
경험이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존 레논 컨피덴셜>의 경우처럼 기존에 익숙하던 존 레논의 곡들이
어떤 배경과 심리 상태에서 만들어졌으며, 추상적이기도 했던 가사들이(직접적인 가사들도) 어떻게 당시의
분위기와 맞물려 해석되야 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이 된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더욱
강해진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존 레논의 팬이어서 그의 곡과 가사에 대한 내용적 의미와 배경적 의미 등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Power to the People' 과 'Imagine'이 나올 때는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유명한
이 곡들 외에도 'Mother' 'Love' 'How' 같은 곡들이 흘러나올 땐 존 레논의 심리와 정확하게 결합하여
눈시울이 뜨거워 지기도 했다. 물론 'Power to the People'과 'Give Peace a Chance'가 영화 초반
흘러나올 때에도 최근 국내의 사정과 너무도 닮아있어서 뜨거운 눈물이 아른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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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비틀즈 시절의 곡들 보다도 오히려 솔로 시절의 존 레논이 곡들을 더 좋아하는 터라,
<존 레논 컨피덴셜>에 수록된 존 레논의 음악들을 즐기는 것 만으로도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참고로 영화 속에 수록된 40곡의 곡 가운데 무려 37곡이 비틀즈 이후 만들어진 음악이다).
너무 좋은 가사들과 곡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존과 요코의 행복한 순간들을 담은 'Love'의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라 추가해본다.


                                                            (John Lennon - Love)

2008년 대한민국에서 <존 레논 컨피덴셜>을 감상하면서 현재 시국상황이 떠오르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닉슨을 이명박 대통령으로 시민들을 구타하는 미국경찰들을 어청수 경찰청장 지휘하에 경찰특공대로,
반전을 외치며 촛불을 든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의 모습은 시청 광장에 모인 촛불을 든 시민의 모습과 우습게도
그대로 겹친다. 우습다는 것은 영화 속 장면들은 6,70년대인 과거이지만 겹쳐지는 장면은 놀랍게도 21세기인
2008년의 현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Power to the People'을 들을 때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왈칵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부의 공권력은 권력자의 편의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무자비하게 남용되고 이를 막으려는 지극히 정상적인 촛불을 든 시위대는 정부의 위협과 거짓선전, 폭력에도
굴하지 않았고, 외국인이었음에도 타국에서 반전과 평화와 사랑을 외쳤던 존 레논은 결국 재선되었던 닉슨을
물러나게까지하는 계기를 마련하며 자신 만의 방법으로 승리를 거두어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존 레논 같은 이가 없다고 탄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촛불을 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존 레논 일테니 말이다. 그는 죽어도 그의 메시지는 영원히 살아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한 존과 요코의 말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존 레논의 팬들에게서
그리고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서도 그들의 행동과 생각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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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의 팬으로서 이 영화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다큐보다도 존 레논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존 레논이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들 가운데 가장 사랑했을 작품이라는 오노 요코의 말처럼, 이 영화는 당시 사회적인 모순과 분위기,
존이 담으려 했던 메시지 등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 존 레논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던 작품으로서
관객으로서 팬으로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이 기회를 통해 존 레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이들이라면, 앞으로 그의 유명한 곡들을 들을 때
아름다운 멜로디 보다는 더 아름다운 가사가 들리게 될 것이다.




* DP에 키드프롬코리아 님의 말씀에 따르면 본 영화 중 존 싱클레이가 잡히는 과정에 대한 설명 가운데,
'여경 2명을 두 대 쳐서 폭력혐의'라는 번역이 나오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이고 본래의 의미는
'여경 2명에게 대마초 2개피(Joints)를 건내준 혐의'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Lionsgate에 있습니다.


2007/12/06 - [BD/DVD Review] - John Lennon : Legend _ 존과 요코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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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부족했던 올해의 음반 코너에 이어 은근히 부족한 시간으로 인해
아예 한줄 코멘트로 변경되어 버린 올해의 영화 부분입니다 --;;

2007년 한해 극장에서 관람하였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 11작품이 선정되었으며,
별도의 순위는 없으며, 영화 제목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짧은 한 줄 평으로 평가해본 2007 올해의 영화!



1. 300
복근이 아름다워!



2. 드림걸즈

나의 사랑 뮤지컬, 오랜만에 대중들에게도 어필하다!



3, 라따뚜이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브래드 버드 당신은 천재야!



4. 바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전해준 어쩔 수 없는 삶의 무게.



5. 본 얼티메이텀

이로써 본 아이덴티티와 본 슈프리머시의 가치 역시 동반 상승했다.



6. 아메리칸 갱스터

리들리 스캇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그 것 뿐입니다!



7. 우리학교

오랜만에 흘린 뜨거운 눈물!



8. 원스

올해 내가 가장 사랑한 영화!



9. 조디악

올해 본 영화 가운데 최고의 몰입도 부분 수상작! 데이빗 핀처, 죽지 않았어!



10 .트랜스포머

'슈육슉 펑펑' 옵티머스 프라임의 변신 순간은 그것만으로도 황홀했음!



11.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래서 마츠코를 사랑할 수 밖에! 일본영화가 갖고 있는 창조적인 면을 유감없이 발휘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이라는 영화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건 전적으로 감독 미셸 공드리 (Michel Gondry) 때문이었다. 뷔욕 (Bjork)의 광팬이었던 나는 그녀의 'Human Bahavior', 'Bachelorette',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Joga'의 뮤직비디오를 접하게 되면서 과연 이 기묘하고도 괴상하기까지 했던, 당시로서는 뷔욕의 음악과 함께 충격적인 영상으로 다가왔던 이 작품들을 한 사람이 감독했다기에 당연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뮤직비디오라는 매체에서 시도할 수 있는 실험이 극한까지 도달해 이제는 복고적인 성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요즈음에도, 그가 예전에 만들었던 뷔욕, 벡 (Beck), 라디오헤드 (Radiohead), 매시브 어택 (Massive Attack), 레니 크래비츠 (Lenny Kravitz)등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는 누구라도 감상한 뒤 감독이 누구인지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는 완성도 높고 초감각적인 영상이었다. 또한 뮤직비디오의 감독 외에도 리바이스, 나이키, 코카콜라,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의 CF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2001년작 <휴먼 네이쳐>이후, 각본을 담당한 찰리 카우프만과 함께 새롭게 내놓은 영화가 바로 <이터널 선샤인>이다. 이터널 선샤인을 주목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각본을 담당한 찰리 카우프만 (Charlie Kaufman) 때문이었다. 천재 시나리오 작가로 불리우는 카우프만은 이미 전작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휴먼 네이쳐> 등을 통해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창조적인 시나리오로 천재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었다. 그의 각본은 굉장한 두뇌 회전을 요하면서도 동시에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펼쳐왔는데,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그의 장난끼와 복잡함은 계속되지만, 전작들과 비교해 봤을 때, 러브스토리에 걸 맞는 매우 사랑스럽고 감성적인 면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터널 선샤인을 지배하는 정서는 대충 이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처음 사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정서와 이별에 아픔을 잊기 위해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뇌에서 지워 버린다는 비현실적인 정서, 그리고 이 현실과 비현실을 감싸는 따뜻한 감성. 앞선 현실적인 정서가 주를 이뤘다면 영화는 어떤 큰 줄기의 사건을 통해 ‘처음 만날 때와 같은 설레임은 이제 없지만, 그래도 널 영원히 사랑해’라는 식의 결론을 맺는 일반적인 영화가 되었을 테고, 비현실적인 요소가 주를 이뤘다면 영화는 <메멘토>식 시간 퍼즐 놀이와 같이 관객과 두뇌 싸움을 치열하게 벌이는 영화가 되었을 테지만(실제로 많은 주변 사람들이 <메멘토>를 연상했다), 이터널 선샤인에만 있는 따뜻한 감성은 이 영화를 앞선 두 가지 형태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영화로 만들었다. 만약 이 같은 복합적인 요소 없이 현실적인 러브스토리나 기억과 현실을 어지럽게 배치한 이야기로만 진행되었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주고받는 'Okay', 'Okay'라는 대사가 그렇게 가슴 시리도록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며, 마지막 해변에서 나누던 대화 중 ‘조엘, 이제 이런 기억들이 사라지게 돼 (This is it, Joel. It's gonna be gone soon)’, ‘알아 (I Know)’, ‘어떻하지? (What do we do?)’라는 물음 뒤에 ‘그냥 음미하자 (Enjoy it)’했을 때, 참을 수 없는 전율과 눈물이 쏟아지진 않았을 것이다(여러 번 보아도 이 대사는 정말로 감동적이라 원문을 굳이 참조하였다. 'Enjoy it'을 ‘음미하자’로 해석한 것은 정말 탁월했던 것 같다).




영화의 해석에 대해서는 이 DVD, 정확히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이 함께한 음성해설을 듣기 전에는 나조차도 분분했었다. 논란에 중심은 아무래도 해피엔딩이냐 언해피엔딩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마지막 장면에서 ‘또 시간이 지나면 서로 지루해하고, 따분하게 여길텐데?’하는 클레멘타인의 질문에 웃으며 'Okay'로 답한 조엘과 역시 웃으며 'Okay'로 답한 클레멘타인을 보며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후 극장에서 2번째 관람하였을 때에는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겼고, 급기야 영화의 크래딧과 함께 조엘이 차안에서 슬프게 울며 테이프를 차 밖으로 던져 버리는 장면에서 조엘에 눈가에 기억을 지울 때 사용하는 자국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결국 둘은 다시 만났다가 다시 헤어진다는 언해피엔딩이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음성해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조차 100% 완벽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어쨌든 감독과 작가의 말을 통해 알게 된 확실한 사실은 그들은 영화를 결말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눈 덮인 해변 가를 뛰어가는 장면이 현실인지 추억인지의 여지를 남기면서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음성해설 중 테이프를 밖으로 던져 버리는 장면에서 카우프만은 ‘저것은 라쿠나 테이프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음성해설에 그 어느 때 보다도 집중했던 것은 이같이 모호한 결말 때문이었는데, 다 감상하고 난 뒤 생각해보니 감독과 작가는 그 자체에 그렇게 큰 비중은 두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석적으로만 달려들었던 자에게 결말은 관객에게 남겨두었다는 작가의 말은 처음에는 조금 허무했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결말의 종류나 시간 퍼즐 맞추기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그것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엘이 클레멘타인과 처음 만난 뒤 헤어지면서 창밖으로 인사를 전해 받은 뒤 살짝 눈 내리는 거리를 뒤로하고 너무나도 행복해하며 차로 돌아가던 장면(그리고 그 때 흐르던 존 브라이언의 그 음악!), 첫 전화 통화를 하며 너무나도 행복해하던 조엘의 얼굴,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 비 오던 날을 떠올리며 탁자 아래로 비를 피하던 장면(그 때 흐르던 그 감성적 스코어!), ‘몬타우크에서 만나자’라며 속삭였을 때 느꼈던 애잔한 정서, 그리고 이미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전율이 흐르던 장면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정서가 바로 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말하고자 하는 따뜻함이 아닐까 한다.

이제 배우들에 연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사실 ‘이터널 선샤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거나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이유는 짐 캐리라는 배우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짐 캐리 하면 <마스크>나 <덤 앤 더머>를 떠올리며 코믹 연기에 달인 정도로만(사실 짐 캐리가 펼치는 코믹 연기는 그 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정극 연기를 한다고 할 때는 그리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아담 샌들러 주연의 <펀치 드렁크 러브>가 소수에게만 사랑받는 이유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맨 온 더 문>, <트루먼 쇼>, <마제스틱> 등에서도 이미 괄목할만한 드라마 연기를 펼쳤으나 아직도 그를 단순히 코미디 연기자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가장 아쉽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짐 캐리의 연기는 어느 명배우 못지않은 감동을 전한다. ‘조엘’ 캐릭터는 이전에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과 달리 짐 캐리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짐 캐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클레멘타인 역할에 케이트 윈슬렛은 본인에게도 그러하듯이 조금은 의외에 캐스팅 이였는데, 그동안 주로 영국의 시대극을 주로 연기했던 그녀에게 가장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맡긴 영화의 선택은 어찌 보면 모험일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케이트 윈슬렛에 말을 빌리자면 ‘조엘’은 케이트 윈슬렛이 그 동안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닮았고 ‘클레멘타인’은 짐 캐리가 그 동안 연기해왔던 캐릭터를 닮았지만,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케이트 윈슬렛의 영화를 여러 편 보았지만, 그녀가 이리도 사랑스러운 여자인 줄은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밖에 ‘프로도’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갖가지 다른 역할에 도전하고 있는 일라이자 우드는 영화에 잘 묻어드는 연기를 선보였으며, 마크 러팔로와 커스틴 던스트, 톰 윌킨스 역시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영화 전체를 풍성하게 해주는 캐릭터로서 열연을 펼쳤다. 감독과 작가가 톰 윌킨스와 커스틴 던스트의 연기를 보면서 ‘지도할 필요가 없는 배우다’, ‘너무 잘 해 주었다’라고 말한 것이 단순히 예의상으로 한 말이 아님을 영화를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극장을 나오자마자 DVD는 언제쯤 출시될까 기다리게 되었는데, 사실 내 생애의 영화로 꼽을 만큼 사랑한 영화지만 DVD의 퀄리티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지도 못하였으며 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성을 비춰봤을 때 국내 DVD출시 여건상 우수한 스펙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1장의 디스크에 본편과 예고편만 달랑 수록한 초라한 버전으로 출시될 것 같다는 우려와는 달리 코드 1로 출시된 콜렉터스 에디션을 기본으로 한 2장의 디스크의 스페셜 에디션 DVD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타이틀이다. 먼저 1.85:1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신작 DVD로서 손색이 없는 화질을 수록하고 있는데, 영화 자체가 의도적으로 뿌옇거나 흐리거나 어둡거나 하는 등의 기법을 쓴 장면이 많아 100% 화질의 우수함을 체험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DTS 트랙이 특유의 강력함을 뿌리는 장면은 드라마의 특성상 그리 많지 않지만, 감독이 음악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 만큼,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스코어와 감동적인 배경음악과 함께 대사 또한 또렷하게 전달된다.





이번 스페셜 에디션 DVD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서플먼트에 있다 하겠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함께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이 함께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음성해설은 기술적인 면이나 스토리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로케이션에 관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 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음성해설 도중에 말이 없을 경우 영화 본편의 대사에 대한 자막 처리가 된 점도 특징적이다. 아, 또한 모든 메뉴의 한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터널 선샤인 영화 속으로’는 별도로 제작된 홍보용 영상으로서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가 영화 속 장면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미셸 공드리와 제작진이 들려주는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좀 더 본격적인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데, 여기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천재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블루 스크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셸 공드리는 대부분의 장면들을 순수하게 아이디어만으로 극복하여 만들어냈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저런 장면은 CG를 썼겠지’했던 장면들이 너무나도 간단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편집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상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배우와 스텝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롱 테이크 원 샷으로 촬영된 장면이라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짐 캐리와 미셸 공드리 감독과의 대화’와 ‘케이트 윈슬렛과 미셸 공드리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서로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들과 촬영 중 에피소드들을 전해들을 수 있는데, 단순히 웃고 떠드는 내용이 아닌 서로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전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깊고 소중한 대화가 오간다. ‘Saratoga Avenue 장면이 완성되기 까지’에서는 이 한 장면 속에서 어떠한 컴퓨터 그래픽 등이 사용되었으며 어떠한 아이디어 들이 사용되었는지를 상세하게 그려낸다. 조엘이 창밖으로 클레멘타인에게 너를 지워가고 있다며 말할 때 클레멘타인의 다리가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 서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밖에 ‘메이킹 필름’에서는 촬영장에 모습을 더 가깝게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삭제/추가 장면’은 본편에는 수록되지 못한 장면들로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장면들이 담겨있다(영화 초반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집에 가게 되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되었는데, 이 삭제 장면을 통해 사건에 시간 순서에 대해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이밖에 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의 뮤직비디오와 그래픽을 통한 짐 캐리의 립싱크가 재미를 주는 'Light & Day'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라쿠나 회사의 광고가 담겨있어, 뭐하나 놓칠 것이 없는 서플먼트를 마무리한다.




<이터널 선샤인>은 <반지의 제왕>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의 위대함과는 또 다른 위대함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영화 한 편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해 질 수 있으며 또한 얼마나 슬퍼질 수 있는지,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해준 작품이다. <이터널 선샤인>으로 인해 받았던 감동과 행복함,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포함한 여운은, 영화 속 ‘라쿠나’ 회사와 같이 기억을 지워주는 인위적인 행위 없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2006.01.18


 


제 1화 [벚꽃이야기]


도쿄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토노 타카키와 시노하라 아카리는 부모의 전근으로 막 이사 왔다. 가정환경도 적극성이 없다는 것도 작은 체구에 병약한 부분도 같아서 닮은 꼴이 많았다. 무엇보다 취향이 비슷해서 우린 서로가 좋았다. 그 시절에 함께였던 두 사람이지만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카리의 이사가 결정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초조함… 어린 아이이기에 쌓아올 수 있던 시간은 어린 아이이기에 무너트려지게 된다.그리고, 다시 벚꽃의 계절을 눈앞에 둔 중학교 1학년 3학기, 이번에는 타카키가 카고시마로 전학을 가게 된다. 어린 시절의 후회, 그리고 아카리에게 줄 편지를 가슴에 품고, 타카키는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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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코스모나우트]


미래라고 하기에는 멀고, 장래라고 하기에는 가까운 이 앞날에 대해 모른 척 걸어나가던 귀갓길. 카고시마. 이 섬에서 살고 있는 고교 3학년인 스미타 카나에의 마음을 지금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섬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NASDA(우주개발사업단)의 로켓 발사도, 더구나 가장 심각해야 할 진로에 대해서도 아닌 한 소년의 존재다. 중2때 도쿄에서 섬으로 전학 온 토노 타카키. 이렇게 옆에서 걸으며 대화를 하면서도 저 너머로 느껴지는 가장 가깝고도 머나먼 그리움. 고동이 무거우면서도 빨라져 가기에 말투가 빠르고 가벼워진다.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만큼, 시점은 항상 그를 향해 있다. 내가 제대로 보드에 서서 서핑을 탈 수 있다면, 그 때는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을 전하고 싶어. 익숙하게 타고 싶은 파도. 뛰어넘고 싶은 이 순간. 조금씩 서늘함이 늘어가며 섬의 여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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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초속 5센티미터]


회사를 그만두었다. 3년간 사귄 여성에게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 토노 타카키는 어린 시절보다 수수해 보이는 도쿄의 거리에 있었다. 그런 그의 가슴에 복받친 것은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 그것은 지금 다시 도쿄에 살고 있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노하라 아카리는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 집에서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키타칸토의 마을에 와있었다. 그 곳에서 발견한 타카키 앞으로 썼던 편지. 그립게 떠오르는 존재. 어린 시절의 커다랗던 마음. 아카리와 타카키가 본 시간, 풍경, 장소, 나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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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제 12회 DOGA 그래픽 콘테스트에서 모든 과정을 혼자 작업한 5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彼女と彼女の猫)’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애니메이션계에 해성처럼 나타난 작가이자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 그는 2002년 2월 독립영화로 제작된 디지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와 이후 상업용 극장 애니메이션이었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를 발표하며 그 특유의 감성적인 영상과 작화, 그리고 깊은 여운과 아련함이 물씬 묻어나는 스토리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근래 가장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감독 중 한 명이다.

그가 처음 주목 받게 된 이유는 그가 디지털 세대의 장점을 그대로 다 사용하면서도, 즉 거대 스튜디오가 아닌 독립적인 제작 방식으로 홀로 디지털 방식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음에도, 너무나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완벽히 품고 있다는 점이였다. 특히나 ‘별의 목소리’의 경우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와 우주선, 로봇 등이 등장하는 SF적인 배경을 갖고 있지만, 그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그리움과 애틋함을 너무도 잘 표현해 많은 팬들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했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는 ‘국경’과 ‘잠’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 경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그려내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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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독립작품이었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나 ‘별의 목소리’를 제작할 당시, 성우 더빙과 음악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해냈기에 더욱 화제가 되었었는데, 단편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혼자서 모두 해냈다고 하기에는 워낙에 뛰어난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당시 팬들은 더욱 열광하지 않았나 싶다. 이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DVD 출시 이후부터 계획에 들어갔던 그의 새로운 작품의 대한 기대는, 그의 팬 페이지를 통해 미리미리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어서 더욱 하루하루를 기다리게 했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표현대로 그의 상업용 극장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두 번째 작품인 ‘초속 5cm’는 기존 그의 전작들과는 배경과 이야기를 조금 달리하면서도 한 편으론 ‘신카이 월드의 집약체’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장점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은 그 작화만 봐도 딱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디지털 작품이기는 하지만, A4용지에 색연필로 그린 그림 콘티를 스캐닝 하여, 프레임으로 나누어 제작한 동영상 콘티를 기본으로 제작된 영상이라 그런지, 파스텔 톤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한 따뜻함이 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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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 두 작품을 감상한 이들이라면, ‘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SF적인 요소에 남다른 관심이 있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특별히 그렇다기보다는, 단순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소재를 찾던 중에 SF적인 요소를 삽입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이지, 의도적으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SF적인 요소를 택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초속 5cm’ 가운데 특히 2부인 ‘코스모나우트’를 보면, NASA나 우주비행선 같은 요소가 또 다시(잠시)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전작의 영향 때문인지, 무언가 또 SF적인 요소와 엮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일부에선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라고까지 여겨지던 SF적인 요소 없이도,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초속 5cm’가 평가 받는 이유는, 그가 모든 작품에 보여주었던 ‘애틋함’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절실하게 표현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우주라는 경계에 놓여있던 ‘별의 목소리’나 국가와, 잠으로 인해 성장하지 않는 어려움을 극복하려 애썼던 ‘구름의 저편..’의 경우의 비하면, ‘초속 5cm’에서는 단순히 거리와 시간의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즉 공간이나 그 세계는 훨씬 좁아지고 단순해졌지만, 오히려 현실에 항상 존재하는 거리와 시간의 문제를 다루면서, 더욱 더 현실적이고 더욱 더 절실해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절실한 이야기. 이것이 신카이 마코토가 이야기하는 본인 작품의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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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계와 은하계, 시공간을 계산하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 등 어쩌면 복잡한 세상과 현실 속에 놓인 ‘별의 목소리’의 두 주인공과 비교하자면 제 1화 ‘벚꽃초’에 등장하는 아카리와 타카키의 애절함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단순한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오면서 항상 같이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반이 달라지고 학교가 달라지는 현실 때문에 그리워하게 되는 일, 먼 지방으로의 전학으로 인해 다시금 멀어지는 일. 그런 현실 속에서도 그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편지를 쓰고, 폭설로 인해 계속 지연되고 연착되는 전철을 몇 시간씩 타고서라도 만나러 가는 일. 어쩌면 너무나도 단순한 감정을 바탕으로, 너무나도 현실적인 조건들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을 그린 것인데, 그 어떤 극적인 스토리보다도 찡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특히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소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재주에 있어서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는 전철이라던가, 학교 끝나고 심심함을 달래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들렀던 편의점에서의 음료 한 잔, 매일 오고 가게 되는 등하교길,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나의 집, 기차를 기다리던 건널목 주변, 방안 창문에서 바라본 뒷골목 등 이러다할 특별함이 없는 공간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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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범한 일상의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기법을 전작들에서도 볼 수 있었다면, 이번 작품에서 좀 더 강조된 것은 ‘공간’ 뿐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의미 부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인 ‘초속 5cm’. 벚꽃 잎이 지는 속도를 내세움으로 인해 우리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작은 찰나의 순간에도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한 편, 반대로 그에 비해 역시 인식하지 못한 채 너무도 빨리 흘러가 버린 뒤에야 알게 되는 세월의 시간을 더 확연하게 느끼게 해준다. 제 3화 ‘초속 5cm’에서는 1화의 등장했던 두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다시 등장하는데, 기존의 다른 작품들처럼 극적인 만남은 이뤄지지 않는다. 세상의 시간의 몸을 맡겨 오랜 시간을 지내온 두 주인공은, 문득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다시금 그 때와 서로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리워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실 3화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제 3화인 ‘초속 5cm’는 대부분의 러닝 타임이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노래인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로 이뤄지는데, 이 곡이 끝날 때까지 너무나도 극영화 같은 편집과 이 작품을 위해 쓰여 진 것이 아님에도 너무나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노래 가사 때문에 소름 돋을 정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혹자들은 3화에서 미완으로 끝나버린 엔딩 때문에 실망을 하기도 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같이 아려함을 그대로 둔 채 애틋하고 절실한 가사의 노래로 마무리하는 엔딩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1,2화를 만든 것이냐는 말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단순한 노래로 와 닿지 않고 ‘절실’하게 와 닿았던 것은 1,2화를 통해 보고 느꼈던 감정들 때문이었으며, 이런 애틋하고 애닮고 아련한 감정을 완벽하게 극대화 시키고 여운 또한 극대화 시킨 것은 바로 이 3화인 ‘초속 5cm’ 때문이었다. 타카키와 아카리가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그 시절과 서로를 떠올렸듯이, 개인적으로 앞으로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들을 때 마다 이 애절한 감정이 파고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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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는 우선 화질과 사운드 면에서는 모두 만족할 만한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디지털로 최종 제작된 작품답게 크게 부족함을 찾아볼 수 없는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으며, HD급 디스플레이에서 재생 시에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화질이었다. 돌비디지털 5.1&2.0채널을 수록한 사운드는 특별히 흠잡을 데는 없었으며, 역시나 주제곡인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감상할 때 가장 인상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예고편이 수록되어 있고,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격적인 서플먼트들이 담겨있다.

첫 번째로는 흔히 지브리 스튜디오의 타이틀에서 볼 수 있었던 스토리보드를 만나볼 수 있는데, 본편의 성우들이 전부 더빙한 버전이 아니라서 오히려 신선함(?)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PV가 수록되어 있는데, 본편의 수록된 버전과는 다른 편집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 1화 벚꽃화의 야후 프리뷰 버전이 수록되었고, 각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들의 인터뷰와 스틸 갤러리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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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덕션 스틸 갤러리는 기존의 스틸 갤러리의 성격과는 다르게, 메이킹 필름의 해당하는 장면들을 스틸로 담고 있는데, 제작초기의 실제로 헌팅을 가서 촬영한 장소의 모습들이라던가,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제법 여러 명의 스텝들과 함께 작업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업실 모습, 개봉 뒤 무대 인사를 하는 모습까지 다채로운 모습들은 만나볼 수 있다. 서플외에 이번 초회한정판에는 스토리 북이 추가되었는데,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서플먼트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감독의 말이라던가, 작품에 등장한 실제 장소의 대한 설명,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자세한 과정이 설명되어 있어, 특별한 메이킹 다큐가 없는 서플먼트를 보완해 주고 있다.

‘초속 5cm’는 단순함과 절실함이 미학이 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가 항상 그래왔듯이 평범한 일상을 돌아보게 하고, 지나왔던 찰나를 추억하게 되는 작품이다. 신카이 마코토. 그는 항상 나를 돌아보게 하고, 시간 속에 잊혀져가는 아련함을 끄집어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게 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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