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나처럼 영화보고 쓰기를 즐겨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문제가 아닐까 싶다. 모든 일이 주객이 전도되고 초심을 잃게 되면 의미가 퇴색되는 것처럼, 영화 글 쓰기 역시 영화 보기를 넘어서는 수준이라면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고민은 몇 해전에도 한 번 깊게 했던 적이 있었고, 어쩌다보니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을 때마다 들곤 하는 화두이기도 한데, 완고했던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유해졌다고나 할까. 다시 한번 글로써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일단 여전히 영화 보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러니까 순수한 영화 보기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 때문에 얻는 것이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라면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즐거움에는 히노애락이 모두 포함되며, 괴로움은 재미없는 영화나 불편한 영화가 포함된다) 굳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가며 매번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대하는 방식이 '보고 싶다'가 아닌 '무언가 쓰고 싶다'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관람 태도에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 보고 나서 써야한다는 부담이 없다면, 영화를 오롯이 그 자체로 즐길 수 있게 된다. 분석하려는 마음도 써야 할 때보다는 압박이 덜할 것이고, 그저 2시간 남짓을 맡기면 된다는 것에 그야말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이전에 보고 나서 써야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면, 아무리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려해도 분명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를 보는 중간 이미 머릿 속은 글을 반 쯤 써내려가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극장을 나오면서 나머지 반을, 실제로 글로 옮길 때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전에는 이런 영화보기와 글 쓰기에 있어서 상당히 완곡한 입장이었다. 이렇듯 영화 글 쓰기가 영화 보기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과감하게 글 쓰기를 포기할 지언정, 순수한 영화보기가 방해 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생각이 원론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영화 보기 만큼이나 영화 글 쓰기의 독립적인 의미를 새삼 찾게 되었달까. 영화 글 쓰기가 단순히 영화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글을 쓰면 쓸 수록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영화 글 쓰기에는 여러가지 스타일들이 있지만, 나의 영화 글 쓰기는 결국 영화를 빌려 나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설명하기 보다는,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고 이 말하려는 것이 내 생각과 어떻게 접점을 이루는지 혹은 공감과 반대 되는 의견을 담고 있는지를 글로써 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영화 글 쓰기는 영화 보기 만큼이나 의미있는 작업으로 계속 성장해 왔다. 예전에 써둔 글들을 보면 그 영화가 어떤 영화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보다, 그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는 재미가 더 크다는 것을 요새 새삼 느끼고 있다. 

그리고 글 쓰기는 궁극적으로 '글'자체가 의미있기도 하지만 '쓰는' 과정에서 오는 재미와 의미가 분명 존재한다. 특히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도구이자, 영화 만큼이나 재미있는 또 다른 유희 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본 영화들은 머릿 속에 가득하고, 이것들을 글로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가득하고, 점점 이런 것들이 압박으로 느껴질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에 부담을 느끼는 거지?'라며 반문해 보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은 분명 한 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점점 옭아매는 안좋은 습관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보기 만큼이나 영화 글 쓰기의 재미를 이제야 새삼 깨닫게 된 점으로 미뤄봤을 때, 이것을 더 이상 짐이 아닌 즐거움으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아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0.09.02. pm. 01:42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이글 아이 (Eagle Eye, 2008)
시작이 좋았던 킬링 타임 무비


사실 D.J.카루소 감독의 전작인 <디스터비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감독의 대한 기대감은 거의 없었고,
스필버그가 제작했다는 정보도 뭐 '제작'일 뿐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샤이아 라포프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스필버그가 정말 제대로 밀어주고 있는 이 젊은 배우가 아직까지 연기로서 무언가 큰 몰입감을
준 적은 없었다고 생각되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글 아이>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지금까지의 연기했던
캐릭터들 가운데는 가장 괜찮았던 연기라고 생각되네요. 영화는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 동안 내내 몰아치는데,
킬링 타임 영화로서는 전혀 손색이 없는 괜찮은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리뷰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D.J.카루소의 영화는 전작 <디스터비아>도 그렇고(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못봤습니다만 ^^;), 히치콕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구성이나 모티브는 히치콕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하지만, 그 짜임새나 연출력에서는
아직은 아쉬운 점이 많은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래 한 단락에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오인을 받은 주인공이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떻게 벗어냐느냐가 주된 구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글 아이>에서
주인공이 오해 받는 사건은 엄청난 테러범으로 오해받는 것이고, 누구인지도 모를 여성에게 지령을 받아 그녀의 대업을
하나하나 완성해 가던 제리 쇼는 이 과정 속에서 이 거대한 음모의 뒤에 '누가'아닌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일단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이 음모의 주인공이 '아리아'라는 컴퓨터라는 것을 너무 일찍 밝혔던 게 후반부의 단점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를 보았을 때 이 존재가 밝혀진 다음에는 이렇다하게 세밀하게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 더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사실 살짝 스포일러성 정보를 미리 알고 갔던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류의
영화들을 여럿 보아왔기 때문에 음모의 주인공이 '컴퓨터'일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는데,
어차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 디테일한 구성이나 과정의 세밀함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결정적으로
그렇게 엄청난 무소불위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아리아'의 보안 체계가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
가장 헛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정보량을 통해 선택된 두 인물 가운데 쌍둥이인 제리 쇼야 어쩔 수 없다고해도,
미셸 모나한이 연기한 '레이첼'같은 경우는 아들이 주요인물들이 모이는 국회에 관련된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제이슨 본 급의 그 엄청난 운전 실력은 어디서 나온 건지가 잘 모르겠더군요. 그녀에게 어떤 과거가 있어서 그런건가도
싶었는데 영화 속에서는 설명되지 않았던 것 같구요. 여튼 시작은 매우 창대했으나 음모의 정체가 밝혀진 다음부터는
얘기가 많이 싱거워졌던 것 같습니다. 원래 이런 류의 영화는 정체가 밝혀지고 나면 '와!'하는 탄성과 함께 '이거 놀라운데?'
하는 생각이 들어야 성공인건데, 앞서서 신나게 몰아붙이면서 겁을 줬던 것에 비하면 조금은 허무한 결말이라 아쉽기도
하더라구요. 맨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야릇한 눈빛을 교환하길래 속으로 '만약 둘이 키스라도 한다면 이건 정말 아닌데'하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키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영화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좋았던 건, '아리아'가 처음 가졌던 생각은 그나마 덜 미국적이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테러범일 확률이
겨우 51% 밖에 되지 않아도 무참히 타지에서의 그야말로 '테러'를 범하고(결국 민간인이었죠), 자신들이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의
말도 필요할 땐 결국 자신들의 생각대로 하고야 마는 미국의 무소불위 권력에 조그마한 경종을 울리려 했었다는 것이죠.
정말 '아리아'가 처음 미국정부의 모순을 지적했던 그 마음(?)으로 결국 정부 주요요인들이 모인 곳에서의 테러가 진행되고,
제리 쇼도 마치 '다크 나이트'처럼 테러범으로 오인되어 목숨을 잃고 마는(전 죽은 줄 알았었는데, 팔만 다친채 멀쩡이 나와서
조금 놀랐었습니다;;)것으로 마무리 되었다면 오히려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지 않고 극장을 찾았었기 때문에 샤이아 라보프 외에는 출연 배우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보게 되었는데 미셸 모나한의 연기는 뭐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로맨스의 주인공보단 아이를 갖은 어머니의
모습이 더 잘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에 짧은 아쉬움도 들더라구요. 출연하는지 조차 몰랐던 빌리 밥 손튼의 경우 뭐 특별할 만한
점은 없었던 것 같고, 더더욱 몰랐던 로사리오 도슨과 <판타스틱 4>에 모습이 아직 더 익숙한 마이클 쉬크리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이클 쉬크리 같은 경우 <판타스틱 4>의 그 돌덩이(?)에만 익숙했던 터라 이런 진중한 캐릭터가
사뭇 어색하게도 느껴졌지만 의외로 잘 어울렸을 정도로 괜찮은 연기였다고 생각되고, 로사리오 도슨의 경우 워낙에 강한
캐릭터로 등장했던 영화들을 많이 봐왔었기 때문에 이런 심심한 캐릭터에선 그녀의 매력을 다 뽐내기엔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인공 샤이아 라보프의 연기는 주인공 다운 비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글 아이>에서도
아직까지는 '어린' 캐릭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하긴 어린 성인(?)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샤이아 라보프 만이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인지도 모르겠네요), 극을 완전히 이끌 만한 포스는 충분히 보여준 것 같습니다.
뭐 워낙에 헐리웃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스필버그가 밀어주는 창창한 앞날이 보장된 젊은 배우이니, 앞으로 걱정은 하지
않는데 이 기회를 좀 더 멋지게 활용했으면 하는 바램은 드네요 ^^


만약 시니컬하고 굉장히 암울한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하는 감독이 이 시나리오를 영화화 했다면 좀 더 괜찮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남습니다. 9.11 이후 헐리웃 대테러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바로 그 '무기력'함을
좀 더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껄 하는 바램말이죠. 그래도 이런 때깔 좋은 디지털 영화스럽지 않게
아날로그적인 액션 장면들은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오랜만에 극장에 가보았는데 관객들이 (아이들을 포함해서)상당히 많았었는데, 킬링 타임용 영화로서는
별 손색이 없는 '재미'있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거의 3주 가까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다시금 스타트 하는 입장에서 부담없었던 영화이기도
했구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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