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 속 운명론에 대해


'쿵푸팬더'는 히어로 물이다. 그것도 고전적인 운명론에 근거한 히어로 물이다. 비범하기는 커녕 평범하지조차 못한 주인공 '포'가 전설 속의 '용의 전사'가 될 운명이었다는 것으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속편에 와서도 또 한 번 이 운명론을 영화의 맨 앞에 내세우고 있다. 평범한 주인공이 본래 부터 영웅이 될 수 밖에는 운명이었다는 이야기는, 얼핏 보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따져보면 결국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될 놈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정작 좀 힘 빠지고 부정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넌 그럴 운명이야' '너의 인생은 이미 영웅의 길로 정해져있다'라는 말은 그럴싸하고 멋져보이지만, 영웅으로 선택 받은 본인의 의지는 재쳐두고라도, 그 주변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이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정말 힘빠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는 얘기다.



ⓒ DreamWorks Animation. All rights reserved


(이게 다 대사부 우그웨이 옹 때문!)


'쿵푸팬더'의 운명론은 대사부인 우그웨이가 전설 속의 용의 전사로 그 동안 수련해오던 무적의 5인방이 아닌 이들을 동경해오던 실수 투성이의 팬더 '포'를 지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자꾸 평범하지도 않다라는 점을 강조하다보니 '포'의 여러가지를 비하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철저히 노력의 정도로 보았을 때 평범에도 못 미친다는 표현이다). 그 이후부터는 일반적인 방식대로 용의 전사로 선택 된 포를 무적의 5인방과 스승인 시푸가 별로 못마땅하게 여겨 포를 구박하고 그 과정 속에서 포는 엄청난 친화력을 발휘해 이들 모두를 감동시켜, 결국 모두가 동의할 수 없었던 이 운명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물론 여기에는 간과한 가장 큰 오류가 있다. 특히 포가 이들에게 (특히 용의전사가 될 확률이 가장 높았던 타이그리스에게) 인정 받는 과정이 딱 드림웍스와 전체관람가 영화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게 꼭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번 글처럼 운명론만 가지고 작품을 해석했을 때에는 분명 가장 큰 헛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 이야기를 좀 더 현실에 대입해보자면 평생을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쌓아왔는데, (정말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뚱뚱한 팬더가 그 자리에 적임자로 선택 받았고 그 선택이 더 이상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현실을 맞닥들였을 때, 과연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얘기다. 한 몇 년 무슨 대회의 우승을 목표로 연습한 것도 아니고 평생을 그것에만 몰두에 수련을 쌓아왔는데 말이다. 이런 현실을 보았을 때 타이그리스를 비롯한 이들의 반응보다는 오히려 타이렁의 반응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 '타이렁'의 이야기가 이제야 나왔는데, '쿵푸팬더'가 인상적이고 더 큰 인상을 남겼던 이유는 어쩔 수 없이 악당의 롤을 부여 받았다고 생각되는 타이렁 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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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나는 '쿵푸팬더' 최고 동정심드는 캐릭터 '타이렁' ㅠ)


개봉 당시에도 썼었지만, 표면적으로는 포가 루저를 대변하는 캐릭터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타이렁이 더 루저에 각가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전편에서 등장하는대로 타이렁은 어린 시절부터 마스터 시푸에 의해 차근차근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았으며,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수재 중에 수재였다. 딱 하나 문제라면 엘리트 코스를 단기 속성으로 수료했을 정도로 엄청난 재능과 노력이 탈이었을 터. 타이렁의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결코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기 보다는, 너무 열심히 하고 잘한 죄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한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실력'이 아닌 '운명'에 의해 그냥 '너는 아니다'라는 답을 얻게 되었을 때 타이렁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쿵푸팬더' 전편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캐릭터는 당연히 타이렁이었다. 누구나 타이렁과 같은 현실에 놓이면 더하면 더했지 그처럼 실망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타이렁이 이후에 벌이는 이른바 '삐뚫어진' 행동들은 타이렁을 욕하기 어려울 정도로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타이렁은 아마 우그웨이는 물론 자신을 자식 같이 대했던 시푸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 나 한테 왜 그랬어요'


정말 운명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면, 타이렁이나 타이그리스 같은 피해자는 애초부터 만들지 말았어야지. 이 우그웨이 영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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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운명론은 속편인 '쿵푸팬더 2'에서도 등장한다. '용의 전사'가 될 운명을 타고 난 포의 이야기 대신, 쿵푸를 지키고 셴으로부터 마을과 성을 지키도록 운명지어진 '팬더' 포의 대한 이야기 말이다. 공작인 '셴'선생은 타이렁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도 넓은 의미에서 보았을 때 운명과 맞서 싸우는, 정해진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싸우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셴'을 알아왔던 예언자는 정해진 예언을 들어 '셴'을 압박하는데, 이유는 정말 '예언' 혹은 '점' 때문이 전부다. 자신의 앞길을 하얗고 검은 무언가가 반드시 막아서게 되리라는 예언을 극복하기 위해, 그 싹부터 모두 잘라내려고 애쓴 셴의 이야기 역시 따지고보면 슬픈 이야기다. 물론 타이렁과 같은 울컥하는 공감대는 부족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쿵푸팬더 2'에서도 역시 이 운명론은 절대 비껴가지 않고, 이들을 둘러싼 현실을 관통한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으며, 결국 정해진 순간에 맞춰 영웅이 어떻게 각성하는 가하는 방법론만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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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는 '쿵푸팬더'의 운명론에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이 시리즈에서 발견한 것은 이런 운명론을 맨 앞에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들에 대한 연민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용의 전사'에게 지워진 짐이 '매트릭스'의 네오와 같은 수준의 짐도 아니고, 오히려 누구나 닮고 싶어하고 되고 싶어하는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 지점이 노력이 아닌 100% 운명 (운)에 의해 정해져있다는 것은 여전히 선호하는 줄거리는 아니지만, 영화가 앞서 언급한 타이렁이나 타이그리스, 셴을 그리는 방식을 보면 이들을 완전한 악당으로 그리기 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가득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편에서 타이렁을 묘사하는 건 표피적으로는 분명 선할 여지가 없는 악당으로 설정했어야 더욱 깔끔했을 테지만 (더군다나 이런 오락영화에서는), 영화는 타이렁이 용의 전사가 되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을 짧지만 묘사하고 있고, 그 과정 속에서 스승이었던 시푸가 타이렁에게 갖는 미안함과 죄스러움 그리고 안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예전에 1편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마치 '스타워즈'가 연상되는 오비원과 아나킨과 같은 관계를 시푸와 타이렁에게서 느낄 수 있었는데,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가 다시 아나킨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처럼, 타이렁에게도 마지막에 기회를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그랬다면 '쿵푸팬더'는 좀 더 완벽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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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2'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셴'을 그리는 방법도 전편에서 타이렁을 그리는 방법과 방법론에서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그 세기나 비중에 있어서는 분명 타이렁보다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셴에게는 타이렁과 같은 공감대를 이끌 만한 요소가 없었고, 포와 경쟁하는 관계라기 보다는 셴과 운명과의 싸움에 포가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좀 더 전체적인 스토리와는 다른 두개의 스토리가 존재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셴이 성을 차지하고 무기를 개발해 쿵푸를 모두 없애버리려고 한 의도의 근원을 쫓아가보면, 다른 악당들과는 다르게 어떤 야욕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내쫓았던 (이 과정에서도 부모가 셴을 미워래 내쫓은 것이 아니라 운명론에 근거하여 어쩔 수 없이 쫓아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부모에 대한 반항심과(하지만 결국은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과) 본인이 그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예언과 쿵푸 등에 관련된 것이었기에 발동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셴이라는 캐릭터 역시 포와 선과 악으로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라기 보다는, 포의 운명론에 희생될 수 밖에는 없는 또 다른 안타까운 캐릭터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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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쿵푸팬더' 시리즈에 담겨있는 운명론은 결과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 안에는 이를 선택하며 희생될 수 밖에는 없는 캐릭터들에 대한 연민이 조금씩 담겨있어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운명론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말하기는 아직 어려운 것이, 속편 및 만약 이 시리즈가 마무리 된다면 그 마지막 작품에서 포가 맞이했던 운명론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포의 운명이라는 것이 자신을 위해 주변이 모두 희생해야만 하는 운명일지, 아니면 마지막에 가서는 포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거슬러 다른 길을 택할지, 아니면 또 다른 운명과 맞서 싸우게 될지 그 결과를 꼭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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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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