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2013년은 저에게 정말 정신 없이 바쁜 한 해 였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영화 관련된 이야기만 주로 올리다보니 얘기할 기회가 없었지만, 지난 해 말부터 올해 지금까지는 제 직장 경력을 통틀어 가장 정신 없이 바쁜 한 해였으며, 그 만큼 중요한 일들과 역할을 맡다보니 본래 좋아하던 영화보고, 음악듣고, 글 쓰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정말 더 더 어려워만 지더군요.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전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진 못하고, 영화제에 가는 건 꿈도 못 꿀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잠을 덜 자가며 어렵게 본 영화들과 써내려간 글들이라 더 뿌듯하기도 한 한 해 였기도 했네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자주 하는 말인데, 이렇게 잠을 못 잘 정도로 바쁘고 피곤해도 영화보고 쓰는 일을 잠시 쉬거나 멈추지 않는 건, 한 번 멈추면 절대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아서에요. 올해는 정말 중간에 쉬고 싶은 유혹이 많았었는데, 그 때 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버텨냈던 것 같습니다. 올해 본 '잉투기'를 보면 그런 대사가 나와요.


'계속하는 것은 힘이 된다'


제게 올해는 이 말을 새삼 깊이 새겨보았던 한 해였습니다.

자, 그럼 제가 올 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10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제가 극장에서 본 순서입니다.







1. 라이프 오프 파이 / 이안


올해 초 본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3D의 놀라운 영상도 대단했지만,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놀라움이 더 큰 작품이었어요. 믿음에 관한 영화 가운데 아마도 오랫동안 회자될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 작품.


라이프 오브 파이 _ 믿음을 말하는 거대한 이야기

http://realfolkblues.co.kr/1781







2. 가족의 나라 / 양영희


올 해 초 보았던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는 당시 너무 일찍 올해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바로 말할 수 있었을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우리와 관련이 있는 제3자 혹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나라, 내 가족의 대한 이야기로 전달한 수작.


가족의 나라 _ 내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

http://realfolkblues.co.kr/1760






3. 월플라워 / 스티븐 크보스키


올 해의 청춘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엠마 왓슨 주연의 '월플라워'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영화는 청춘 영화가 흔히 담고 있는 무모함과 아름다움을 가장 높은 수준의 진심을 담아 전달하고 있는 영화였어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습니다.


월플라워 _ 청춘, 그 뜨거운 무한함에 대해

http://realfolkblues.co.kr/1784






4. 테이크 쉘터 / 제프 니콜스


올 해의 청춘영화가 '월플라워'라면 올 해의 가족영화는 '테이크 쉘터'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처음엔 약간 미스테리한 SF적 요소에 관심이 있어 보게 된 영화였는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가장 진한 가족에 대한 내용이었네요.


테이크 쉘터 _ 불안을 이기는 가족의 힘

http://realfolkblues.co.kr/1794






5. 비포 미드나잇 / 리차드 링클레이터


전 물론 제가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좋아하는 지는 바로 이 작품을 보고나서야 알 수 있었어요. '비포 미드나잇'은 뭐랄까, 극도로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가 존재하는 그런 영화였는데, 삶의 아름다움과 현실로 인해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드는 참 이상한 영화였어요. 저도 그들처럼 어른이 되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비포 미드나잇 _ 세월의 무상함 보다는 성숙함

http://realfolkblues.co.kr/1803






6. 일대종사 / 왕가위


한 동안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던 왕가위가 엽문을 주제로 한 무협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화려하고 기술이 주가 된 액션 영화보다는 정수를 담은 영화가 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가 있었어요. 그 기대를 넘어설 만큼 왕가위 감독은 정수에서도 최고 지점을 간파하는 무협 영화를 만들었으며, 양조위는 기대 만큼 해주었고 장쯔이는 왜 그녀가 중화권 최고의 배우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정말 멋진 연기였어요. 굳이 여우주연상을 꼽자면 그녀.


일대종사 _ 왕가위의 21세기 동사서독

http://www.realfolkblues.co.kr/1829






7. 그래비티 / 알폰소 쿠아론


알폰소 쿠아론이 언젠가 일을 낼 줄 알았어요. 제가 해리포터 시리즈에 애착을 갖게 된 것도 그가 연출을 맡았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때문이었거든요. '그래비티'가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것에는 전혀 이견이 없습니다.


그래비티 _ 당연하다고 여겼던 존재의 발견

http://www.realfolkblues.co.kr/1847







8. 사이비 / 연상호


'사이비'는 가장 흥미롭고 재미 없기 힘든 주제와 (하지만 반대로 그 가운데서 돋보이긴 힘든) 악인이 더 나쁜 악인과 싸우는 익숙한 구조 속에서도, 진정성과 다른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수작이었어요. 맹신이라는 것을 일 방향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다른 방향을 열어둠으로서, 같은 주제지만 새롭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 준 영화이기도 했구요. 전작 '돼지의 왕'보다 모든 면의 진 일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내 감독 중에서 가장 먼저 아카데미를 수상하게 될 감독은 아마도 연상호 감독이 아닐까 싶습니다.






9.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 코엔 형제


아직 국내 정식 개봉하지 않았지만 특별 시사회를 통해 먼저 보게 된 코엔 형제의 첫 번째 음악 영화는, 음악을 소재로 하되 코엔 형제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라는 뻔한 예상과는 달리, 코엔 형제 영화이면서도 가장 완벽한 음악 영화의 경지에 오른 작품이었네요. 포크뮤직과 우연, 로드무비와 코엔 형제. 극장을 나오면 더 생각나는 영화였어요.







1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최근 몇 년 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보면 그는 가족이라는 것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듯 보여요. 본인 스스로도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부모를 잃게 되는 등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늘어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네요. 이번 신작도 여지없이 좋았어요. 아마도 최근 일본 영화 감독들 가운데 이렇게 편차 없이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감독은 그 밖에 없는 것 같네요.




제가 올해의 영화를 꼽으면서 홍상수 영화를 꼽지 않은 적은 최근 드문 것 같은데, '우리 선희'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은 둘 다 참 좋았지만 10편에 넣기에는 아주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그 밖에 여기에 언급하지 못했지만 좋았던 영화들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강진아 감독의 '환상 속의 그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더 헌트' 등이 있었네요.


올해도 여전히 몇 편의 블루레이에 제 글을 실을 수 있었고, 몇 편의 음반에 해설지를 쓸 수 있었고, 몇 몇 기대하지 않았고 복에 겨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 부분은 따로 한 번 글로 정리하려구요.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올해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누군 가가 내 글을 정성껏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 외로 삶에 큰 힘이 되거든요 ^^;


감사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일대종사 (一代宗師 The Grandmaster, 2013)

왕가위의 21세기 동사서독



처음 왕가위 감독이 오랜만에 신작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작품이 양조위, 장쯔이 등과 함께한 엽문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기존 견자단이 연기한 '엽문' 영화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어느 정도 무협 액션 영화가 아닐까 라는 정도의 예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가 왜 그런 안이한 예상을 했었는지 답답할 정도로, '일대종사'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 즉, 내가 이 영화를 예상했을 때 가장 간과한 것은 바로 감독이 왕가위 라는 점이라는 얘기다. '일대종사'라는 제목과 최근 들어 더 익숙해진 '엽문'이라는 인물 때문에, 스타일리시 하긴 해도 액션이 중심이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었지만, 왕가위의 '일대종사'는 마치 그의 전작 '동사서독 (東邪西毒 Ashes Of Time, 1994)'과 마찬가지로 무예의 정수를 기본으로 하되, 각 인물들의 외로움과 정적인 심리에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 CGV무비꼴라쥬.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초반. 엽문(양조위)이 빗속에서 수 많은 상대들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왕가위 특유의 스타일과 슬로우모션을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된다. 이 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오랜 만에 무협 영화로 돌아온 그가, 다른 무협 영화들과는 다른 한 차원 높은 액션 장면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을 엿볼 수 있다. 엽문을 주연으로 하고 있는 영화답게(물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왕가위의 무협 영화는 이랬을 확률이 높지만) '일대종사'의 액션은 정중동(靜中動)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 즉, 빠르기나 힘의 표현과 과장 보다는 멈춰있는 이미지와 그 순간 상대 앞에 서 있는 인물의 마음가짐에 더 주목한다. 만약 이러한 캐릭터 내면의 묘사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그냥 제법 스타일리시한 무술 영화에 그쳤을 것이다. 기법만 놓고 봤을 때 이 영화의 액션 시퀀스는 인상적이기는 하나 새롭다 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가위가 '일대종사'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건, 액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왕가위와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왕가위는 양조위가 연기한 엽문과 장쯔이가 연기한 '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중국의 혼란스러운 역사 속에서 한 문파를 대표해야 했던 인물들의 대의 적 삶의 모습은 물론, 그 시대와 역할에 가려졌던 한 인간의 삶과 무예라는 것의 근본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고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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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는 왕가위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그 아름다움 만을 놓고 보자면 첫 번째로 꼽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그 아름다움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 적인 성취 외에 캐릭터의 마음가짐 (심리 상태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일 것이다. 양조위는 물론, 장쯔이가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은 '황홀하다'고 느낄 정도로 영화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했을 때를 보여주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황홀하지만 그 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함이 깊게 묻어 나는 것이 '일대종사'의 매력이자 여운일 것이다. 왕가위의 영화는 항상 이미지가 잔상 처럼 오래 남곤 하는데, 이 작품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동안의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극장을 나오며 기억에 남는 건 일대종사들이 오롯이 서 있을 때 이를 가능케 한 발 동작들과 그들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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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대종사로서 뚜렷한 이미지가 새겨 진 엽문과 궁이에 비해 장첸이 연기한 캐릭터는 조금은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보는 중간에는 아마도 후반 부에 가서 엽문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겠구나, 그래서 각각의 일대종사로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겠구나 라고 예상했으나 영화가 끝난 뒤, 장첸이 연기한 캐릭터에 대해 왕가위의 의도는 무엇 이었을까 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장첸의 캐릭터는 없어도 전혀 이야기 전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록, 그렇다면 왜 이 이야기를 적지 않은 비중으로 함께 그려냈을까 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본래 예상했던 대로 만약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각자의 도장을 차리고 제자를 가르치던 엽문과 그가 만나게 되었다면, 이것은 너무 전형적이고 쓸쓸함과 아쉬움을 담은 이 영화에 정서와는 맞지 않는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왕가위는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영웅이 되기 보다는 개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엽문과 궁이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수 많은 각자의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음을 전하기 위해 어쩌면 이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진행되도록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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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그리면서 시대와 무방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은 자칫 무책임한 것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왕가위의 '일대종사'는 시대에 무심한 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들이 겪어낸 시대를 미사여구 없이도 완전히 담아낸 그런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아.... '동사서독'을 오랜 만에 다시 보고 싶다.



1. 이소룡과 관련된 장면은 마치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로빈 장면처럼 등장하더군요. 딱 이 정도가 좋았던 것 같아요.


2. 이 영화는 정말 장쯔이를 위한 영화입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작품에서 또 어떤 연기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과연 '궁이' 만큼 인상적인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을지...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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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음악이 참 좋았어요. 영화처럼 너무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


4.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물론 최고는 궁이와 마삼의 기차역 대결 장면), 엽문이 궁이의 아버지에게 인정 받기 위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정중동을 제대로 표현한 장면이었어요. '영웅문' 등의 무협지에서 보던. 진짜 고수들 간의 대결을 영화적으로도 멋지게 표현해낸 장면이 아닐 수 없겠네요.


5. 쿵 리는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영화에서 본 줄 알았더니 바로 UFC 옥타곤 위 였군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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