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2008)
다섯 살 아이의 순수함, 그 세계

스튜디오 지브리.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사이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들을 만들어낸
스튜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이지요(이 창대한 시작 문구로
알 수 있듯이 저는 지브리와 미야자키 월드에 흠뻑 빠져있는 팬이며, 객관적인 평가가 되지 못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해
둡니다. 하긴 평이라는 것이 어차피 주관적이지만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후 다시금 직접 몸소 나서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인 <벼랑 위의 포뇨>는 기획 단계서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던 <게드 전기>가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기대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제가 쓴 <게드 전기>리뷰를 보면 아실 수 있지만,
엄청난 혹평들에 비해 저는 그럭저럭 최악은 아니었다고 봤었구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의 경우가 그랬듯이, 사실 <벼랑 위의 포뇨>는 포스터만 보고는 별로 끌리지는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뭐랄까, 제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얼굴이랄까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같은 경우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질 않았던 것도 갓파쿠의 생김새가 크게 작용했었거든요.
이렇게 엄청난 기대와 조금의 우려도 있었던 <벼랑 위의 포뇨(이하 '포뇨')>는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같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이었으며, 무엇보다 어른으로서 잃어가는 순수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 주세요)




(이 스틸컷만 보니, 마치 괴수물의 도입부분과 흡사하군요. 어떤 공포스런 미확인 물체가 인간을 덮치기 이전에는
꼭 저런 앵글의 컷이 등장하죠. 멀리서 간을 보는 장면이랄까요. 물론 <포뇨>에서는 전혀 이런 분위기를 찾을 수 없지만요)


고전인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미야자키 하야오 식으로 풀어낸 <포뇨>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면어 '브룬히루데'가
인간인 소스케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다섯 살 어린이의 시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소스케 등장 이전에
'브룬히루데('포뇨'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 본래 이름입니다)'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묘사되는데, 이 세계의 모습은
동화 속 그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인간이지만 바다의 여신과 결혼하여 바다 속에서 인간들로 인해 오염된 세계를 정화시키기
위해 나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후지모토'를 중심으로 이 세계는 조명되는데,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과도
같은 포스의 뒷모습을 풍기는 듯 하지만, 이 후지모토 캐릭터의 역할은 '하울'과는 분명 다른 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후지모토'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연민이 느껴졌는데, 그에게서는 <렛 미 인>에 등장했던 '이엘리'의
보호자 격 남자의 모습과,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아버지와도 같은 부정이 엿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뇨>는 악당이
나오지 않는 드문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혹자들은 '후지모토'가 악당 역할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느낌이(매우 동양적인)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포뇨가 인간이 되는 것을 막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포뇨가 인간에게 선택 받지 못해 인간이 되지
못했을 경우 받을 상처와 일들이 걱정이 되어 미리 예방하려 하는 것이고, 인간과 다른 존재와의 결합이 행복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가 직접 느낀 바가 있기 때문에(아마도 그는 바다의 여신을 극진히 사랑해서 인간 세상과 멀어져
바다 속 삶을 택한 것이겠지만 그로 인해 외로움도 느꼈을테지요. 자신의 딸인 포뇨가 이런 외로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심스러워 했던 것 같구요. 잘 생각해보면 '인어공주' 스토리는 포뇨의 아버지인 후지모토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신의 품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돌보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깊었던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후지모토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포뇨가 인간인 소스케와 더불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애초부터 있었다는 걸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끝끝내 둘의 만남을 막거나 했어야 했는데 결국엔 그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애초부터 '브룬히루데'가 '포뇨'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후로 '포뇨'라는 이름을 적극적으로 불러주었거든요.
<포뇨>에서 후지모토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개그를 치는 조연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이 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캐릭터라 생각됩니다.




초반 바다속 에서 포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잠깐 움찔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포뇨와 닮은 수 많은 '포뇨스럽게' 생긴
이들이 단체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포뇨는 저들의 엄마인가? 하고 생각할 때쯤 '엄마'가 아니라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포뇨가 먼저 태어났거나 마법으로 인해 생겨난 프로토 타입이라던가 라고만은
생각하게 되지 않더군요. 이후 포뇨가 소스케의 피를 마시고 인간으로 변하기 이전에도 포뇨는 동생들보다 월등히
큰 몸집을 갖고 있었는데, 마치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우친 네오와도 같이, 물 밖 인간들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동생들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일찌감치 깨우치게 되었고, 이런 깨우침으로 인해 궁금한 점들이나 욕구들이 많아졌으며,
그로 인해 발달하지 않았던 신체가 발달하여 동생들과는 사뭇 다른 존재가 되지 않았나 싶더군요.
이렇게 보자면 아예 동생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똑같이 만들어지거나 태어난 존재였지만, 유독 발달하여 '언니'로서의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애초부터 프로토 타입으로 생겨난 존재일지도 모르겠구요.

아마 이 동생들도 포뇨가 이렇듯 시스템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욕구불만이 없었겠지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생들이 굉장히 포뇨를 부러워하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자신들은 못하지만 포뇨가
꿈을 이루는데에 적극적으로 돕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들도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거죠.
포뇨와 동생들의 관계도 흥미로웠던 설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정통 클래식 음악에 가까운 배경음악과 함께 포뇨가 파도위를 춤추듯 달리는 이 장면은, <벼랑 위의 포뇨>의 명장면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속도감도 좋았고, 묘한 느낌도 좋았죠)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독특한 캐릭터를 꼽자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역할을 들 수 있겠습니다.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운전 스킬로(폭풍우 치는 좁을 길에서도 드리프트를!!) 보는 이를 움찔하게 했던 리사는, 어린이들의 세계가 주가 되는
<포뇨>에서 '후지모토'와 포뇨의 엄마와 더불어 어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사실 대변한다기 보다는
이런 어른이 되야 한다 라는 쪽이 더 어울리겠네요). <포뇨>에서 리사가 가장 돋보이는 점은 화려한 운전 실력도,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다 못해 영웅적인 면모까지 발휘하는 모습도 아닌, 포뇨를 받아들이는 모습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아이가 굴러들어왔을때(포뇨는 굴러들어왔다는 느낌이 강하죠 ㅎ), 단 한번의 의심이나
고민도 없이, 아무런 스스럼없이 포뇨를 소스케와 동일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 월드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일이도 모르겠는데, 마법을 부리고 더군다나 며칠 전에 물고기로서 만났던 이가 갑자기 꼬마 아이로
등장했음에도 이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리사의 모습은, '멍청하다' '허술하다'라기 보다는 '깨어있다' '열려있다'로
봐야 더 맞을 듯 합니다.

이 영화가 결국 말하려는 것은 아이의 순수함에 대한 경이와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어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순수함을 갖은 아이에게 얼른 어른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그 순수함을 더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 옳은 부모의 자세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부터 언급한 후지모토를 비롯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 그리고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까지...
<포뇨>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가감없이 편견없이 그려내려고 노력한 작품인 동시에, 한 편으론 이런 아이들을
보호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영화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리사의 옆 모습에선 '하울'이 어렸을 적 '캘시퍼'를 처음 받아들일 때의 옆 모습과, '나우시카'의 옆 모습이 동시에
연상되더군요)

부모에 관한 작품이라는 점은 후반부에 가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포뇨의 앞으로에 대한 일들을 놓고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와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가 마치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듯 '누구 어머니 되세요?'하며
만나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도 안되는 비현실 세계에 대한 편견이 없는 리사에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그리고 여기에는 리사와 포뇨의 부모들과 함께 노인정에서 피신한
노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도 리사와 마찬가지로 거리낌없이 이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한 할머니가 계속 되는
의심을 갖고 불신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여느 작품 같다면 이 할머니가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람으로 등장해서 마수에 걸려있는
중생들을 깨우치는 역할을 했겠지만, 미야자키 월드에서는 '왜 순수하게 믿지 못하는가?'라는 것을 되묻기 위한 캐릭터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를 보니 '다섯 살 아이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놓여있다' 라고 했던데 이런 마음에서, 어른들은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해 노인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가 들려주고 싶은 '원석'과도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부모들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리사와 그랑망마레의 대화는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 라는 식으로 흘러갔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결국은 옳은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멀리서 지켜주자 라는 것이 이 두 부모의
선택이었던 셈이이죠.



(아마도 '포뇨'는 지브리 역사상 가장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책없이 대놓고 귀여우니까요 ^^;)

<벼랑 위의 포뇨>를 일반 영화보는 방식으로 보게 되면 여기저기 모순 점 투성이고 이해안되는 부분도 분명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영화를 볼 때는 의심이 눈초리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고, 캐릭터의 몸짓, 말짓
하나에도 무언가 암시하는 의도가 있지는 않나 생각하며 보는 스타일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히 포뇨는!)이런 의심 가득한 시선들 없이 맘 편하게 즐겨라 하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가운데는 마냥 즐기는 것보다는 메시지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심의 눈초리'는 필요없는 작품들이었거든요.

다섯 살 아이가 중심이 된 순수한 세상에 어떤 의심의 눈초리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봤을 땐 한창 때의 미야자키 하야오
였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따져봐도 나름 젊었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보면
결국 순수함과 진리로 포용하기는 했지만, 환경파괴와 문명화, 기계화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강했었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후는 점점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입장으로서 비판적인 마인드 보다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과 보호가 더 앞서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센과 치히로..>를 보면서도 감독이
치히로를 그리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 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포뇨>에서는 이렇듯 아이를 할아버지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것이 일부에서는 일종의 '늙었다'라는 단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기본 정서가 동심을 비롯한 순수함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더군요.
장면 장면에서 따뜻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심의 순수함을 동경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거든요.
많은 이들이 유치하다라고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다섯 살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위해 만든 할아버지의 작은
선물이니까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임팩트 면에서는 최근작 <센과 치히로..>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비해 조금
약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포뇨~ 포뇨, 포뇨~'하는 주제곡만으로도 깊은 각인을 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네요(이 노래가 입에서 떨어지질 않는군요). 물론 앞서 잠시 언급했던 정통 클래식 스타일의 곡들도
좋았구요. 역시나 미야자키 월드를 완성시키는 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팬심없이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근거는
항상 변하지 않는 순수함에 있기 때문인데, 이를 보는 관객들은 점점 나이를 먹기 때문이죠. 작품은 계속 아이의 순수함으로
머물러 있으나 보는 이들은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기 때문에 점차 간극이 벌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구요.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벌어진 이 공간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며 다시 좁혀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포스터의 '포뇨'모습만 보고 조금 이상하다 하고 생각했던 것이나,
'포뇨'의 주제곡을 미리 듣고는 조금 유치하고 아동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작품을 보고 나서는 다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환경 파괴에 대한 메시지도 분명 담고 있지만, <포뇨>는 이를 전작들에 비해 깊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판적 메시지가 깊게 담긴 작품들을 다시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듯이, 이런 작품은 이런 작품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미야자키 월드이구요.

영화라는 것은 어차피 그 세계에 빠지지 못하면 공감하기 힘든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벼랑 위의 포뇨>는 5세에 맞춰졌기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인듯 싶구요.

개인적으로는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와 그 세계에 매료되게 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1. 며칠 전 <다크나이트> 블루레이를 사려고 들렀던 매장에서 <벼랑 위의 포뇨>OST를 보고는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는데, 결국은 질러야 겠군요!

2.

후지모토는 왠지 살짝 목소리도 그렇고 오다기리 죠가 연상되기도 하더라구요. 문득 문득 멋진 모습도 보여주는데
폐인스러움도 갖췄다고 할까요 ㅋ

3. 크리스마스에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군요.

4. 사실 닭살스러운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포뇨'는 대책없이 귀여운대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5. '소스케! 좋아!' 더 많은 대사는 필요없어요. 사실 여기에 다 담겨있기도 하구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지브리에 있습니다.



피아노의 숲 (ピアノの森, 2007)
클래식으로 풀어낸 두 아이의 우정


오랜만에 극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나고 왔습니다. 국내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제작했던 '매드하우스'의 작품임을
강조하는 홍보가 강했는데, 이런 면에서 만약 <시달소>를 염두에 두고 극장을 찾게 된다면 이 영화 <피아노의 숲>에는
적잖이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시달소>의 경우가 소녀의 풋풋한 감성과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이라면, <피아노의 숲>은 '소년'이라기 보다는 '아이'에 가까운 두 남자 아이가
피아노와 음악을 통해 우정을 키워나가고 조금씩 자신과 주변을 알아가게 되는 내용으로, 전자보다는 좀 더 아동용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아동용'이라는 표현을 마치 작품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아동용이란 말 그래도 어린이들이 보기에 적절한 영화라는 그 본 의미로 쓰인 것이며, 사실 제대로 된 교훈적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돋보이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클리셰의 향연이랄까요. 만약 이런 음악가나 클래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았던 이들이라면 대부분 과정과 결말을 미리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연주회 부분이나 그 이후에 방향을 보면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 많이 비슷한 결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뭐 이건 '노다메'의 전유물이라기 보다는 이런 류의 스토리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클리셰라고 봐야겠죠).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사실 이야기가 새로울 것이 없어서 굳이 스포일러까지 될까
싶기도 하지만서도), 그렇다면 <피아노의 숲>이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에도 나름 괜찮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
평가하게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건 바로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느냐 하는 것에 있을텐데, 일단은 이런
일반적인 흐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고 있고, 더나아가 아이들이 볼 때에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더 컸을 때 비슷한 류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 맞어, 예전에 보았던
만화에서 비슷한 걸 보았었는데'하는 기억이 날 정도로 은연 중에 교훈적인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 피아노 연주와 클래식 음악을 들 수
있겠습니다.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사진을 보고는 '얘는 누구야?' '쟤는 또 누구고?'하고 얘기하던 주인공 카이가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면서 점차 얼마나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도 관심있게 봐야할 장면들이고, 일본 애니메이션 답게
클래식 전문 작품이 아님에도 음악적인 기본기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작은 장면들도 놓치기 아쉬운 장면들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나름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타고난 천재와 노력파를 각각 그리면서, 이 둘을 갈등을 모두 다
제법 깊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마데우스>의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이런 관계에 대한 묘사는 여러번
있어왔던 것이지만, 아이들의 눈에 맞게 아주 심오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정곡은 제대로 찌르고 있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나 단순히 천재 소년의 놀라운 능력에만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노력해도 천재적인 친구를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을 몸소 체험하고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가볍지 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대부분 아동용 작품이라면 아마도 단순히 천재소년에만 집중했겠죠. 그래서 <피아노의 숲>이 오히려 참 교훈적이라는
얘깁니다. 이런 관계를 그리면서도 어느 한쪽을 악당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되도록 그려내는 점
말이죠).




이 두 아이의 이야기 가운데 선생님의 '어른'이야기가 잠시 끼어드는데, 제가 보았을 땐 끼어들 수 있는 최대한의
안전한 범위 내에서만 참여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즉 더 끼어들었으면 자칫 이야기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가 있는 이 어른의 이야기로 흘러갈 수도 있었고, 아이들 관객들이 보기에도 어려워질 수 있었으나 그 아슬아슬한
범위를 잘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죠.

그리고 리뷰 내 스틸컷은 삽입하지 않았지만 이 두 남자 아이 외에 피아노 콩쿨에 참여하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후반 부에 등장하는데, 재미면에서 보나 내용면에서보나 이 여자 아이의 등장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칫 너무 뻔한 이야기로만 흐를 수도 있는 과정 속에서 약간의 긴장을 주었고, 개그와 아련함이 적절히 섞인
독특한 시퀀스로 또 다른 메시지를 들려준 것 같기도 하구요.
원작인 만화에서는 영화 속 이야기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준다고 하는데, 이 여자 아이의 이야기도 전개가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목소리 연기로 우에토 아야와 이케와키 치즈루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케와키 치즈루의 경우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워낙에 애니메이션에 흠뻑 빠져들다보니 그녀의 목소리를 특별히 인지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제게 아이가 있다면 요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여줄 것 같아요. 교훈적이기도 하고 많이 어렵지도 않으면서,
음악이나 피아노에 흥미를 갖기에도 충분한 작품이니 말이죠.
아마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아이들은(실제로도 제가 본 극장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집에 갈 때 피아노 사달라고 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매드하우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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