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성급했던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



따지고보면 마블의 '어벤져스'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코믹스 팬들의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작품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을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에 관한 것이었다. 본래 영화화 측면에서도 마블보다 훨씬 더 먼저 관심과 성공을 가져갔던 DC코믹스는 차근차근 시네마틱유니버스를 완성시킨 마블의 성공을 보며 뒤늦게 (많이 늦게) '저스티스 리그' 영화화 계획에 들어 갔는데, 생각보다는 빠르게 바로 이 작품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획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것은 훨씬 오래 되었음에도 생각보다 빠르게 영화화가 되었다고 얘기한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서 더 확고해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마블의 '어벤져스'에 비해 DC의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조금 성급한 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력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더 좋을 수 있었고, 이 기획의 기대감을 감안했을 때 더 좋았어야 했던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많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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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트맨 대 슈퍼맨'이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역시 2시간 반이나 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뚝뚝 끊어지는 듯한 편집점과 내러티브의 부자연스러움이었다.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본격적으로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캐릭터들 간의 충분한 연결고리와 갈등 구조를 풀어냈더라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득이 되었을 텐데, '배트맨 대 슈퍼맨'은 지루함도 다 지우지 못하고 성급하게 갈등을 풀어내는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맨 오브 스틸'까지만 보았던 관객 입장에서는 슈퍼맨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배트맨의 이야기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채 바로 중간부터 시작하는 경우라 쉽게 빠져들기는 어려운 정도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본 관객 입장이라고 해도 놀란의 배트맨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사이에는 분명 스타일은 물론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간극이 있기 때문에, 만약 DC가 놀란의 배트맨을 연장선으로 가져가려고 했다고 보더라도 조금은 억지스러울 수 밖에는 없는 연결이었다. 놀란의 배트맨은 '다크나이트'라는 기본 테마를 중심으로 캐릭터의 갈등과 고민을 끝까지 파고드는 범죄 드라마였다면, 잭 스나이더가 다루는 배트맨은 그 일들을 겪은 한 참 뒤의 배트맨으로서 조금은 더 거칠어 지고 과격해지고, 자경단으로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에 있어서도 놀란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시기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이 연결은 조금 갑작스럽고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는 없던 경우라 전체적으로 공감대를 얻기는 부족했다.


DC코믹스의 '어벤져스' 격이라 할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가 조금은 성급했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벤져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독립적인 작품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물론 '헐크'도 리부트를 겪기는 했지만)난 다음의 작품이었기에 가능했는데, 이번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밴 애플렉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에 대한 명확한 컨셉이나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바로 '맨 오브 스틸' 이후의 슈퍼맨과 결합해 버린 영화이기에 (여기에 원더우먼까지 등장하고), 조금은 성급함이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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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을 말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배트맨 대 슈퍼맨'이라는 테마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 바로 그 좋은 재료를 이렇게 쉽게 써버린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과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을 정말 좋아하는 팬으로서, 히어로물이 사유할 수 있는 담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소재이자 프로젝트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과 협력을 다룬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이런 테마는 어설프게 그리고 액션 측면에서도 100% 만족감을 주지 못한 잭 스나이더의 결과물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잭 스나이더가 놀란의 '다크나이트'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한스 짐머의 장엄한 음악까지 더해져 시종일관 무겁고 웅장한 분위기를 내려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깊지 못했기 때문에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장 분위기를 깨버린 건 역시 그 갑작스러운 갈등 해결의 내러티브였는데, 아무리 이 재료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를 제외하고 순수 액션 블록버스터의 측면으로 보더라도 이 갈등해결을 비롯한 내러티브의 전개는, 다들 너무 갑작스럽고 순진하기까지 한 진행을 보여준다. 그렇다보니 배트맨은 물론이고 슈퍼맨까지도 '왜 저러지?' 혹은 '저렇게 하면 될걸 왜 그러지 못하지?'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렉스 루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점을 다 포기한다면 액션 측면에서 기가 막힌 볼거리를 제공해서 압도해 버려야 하는데, 뭐 별로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웅장한 음악에 비해 실상은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았던 액션 연출이 한 번 더 아쉬움을 남겼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액션은 배트맨도 슈퍼맨도 아니고 원더우먼의 등장 뿐이었다 (원더우먼은 이 등장 씬을 남기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가장 설득력 없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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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좋은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밴 애플렉의 배트맨은 생각보다 괜찮고, 특히 액션에 있어서는 크리스찬 베일은 보여줄 수 없었던 묵직한 덩치 액션(?)이 가능해 시기적으로 잘 어울리는 편이다. 밴 애플렉의 독립적인 배트맨 영화가 가능하다면 (아니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한 이상 이건 꼭 필요하다)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대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고, 크리스토퍼 리브 이후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헨리 카빌의 슈퍼맨 역시 액션 중심의 영화가 아닌, 슈퍼맨(클락 켄트)의 내면의 테마를 기반으로 전개 되는 '맨 오브 스틸' 이후 슈퍼맨 영화를 하나 더 진행한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역시 충분하다. 좀 갑작스럽기는 했으나 원더 우먼 역시 이번 작품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들려준 것이 없음으로 다음 작품에서는 본인을 비롯해 플래시나 아쿠아맨, 사이보그 등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 시켜도 좋겠다. 아, 그리고 그린 렌턴도 합류해야 할 텐데 (참고로 이번 관람 전에 코믹스로 저스티스 리그를 읽었더니 그린 렌턴이 다시 보고 싶어지더라), 이미 마블의 '데드풀'을 통해 스스로 디스를 완료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돌아오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 여기도 리부트가 필수적일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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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더라면 더 흥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작품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래도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은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 입장에서 안볼 수는 없는 작품일 것이다. 아...그래서 또 아쉬움이 남는다...



1. 아이맥스 3D로 1차 관람하고 2차로는 돌비 애트모스로 관람할 예정인데, 예상으로는 돌비 애트모스가 더 적절한 포맷이 아닐까 싶네요. 아이맥스 3D도 물론 좋았지만 최적의 포맷이었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게 까지는 아니라고 답할 듯.

2. 별 것 아니었지만 초반에 조금 그랬던게, 아무리 급한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이 겨우(?) 레니게이드를 탄다? 동네 나갈 때도 람보르기니 타던 분이...

3. 제레미 아이언스가 뛰어난 배우라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알프레드 캐릭터는 이미 마이클 케인이 너무 완벽하게 해 냈던 바람에 더 보여줄 여백이 남지 않은 듯 하더군요.

4. 잭 스나이더는 참..... 애증의 감독인듯 ㅎ

5. 관련 예전 글들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http://realfolkblues.co.kr/696)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http://realfolkblues.co.kr/700)

* 맨 오브 스틸 _ 클락 켄트는 없고 칼엘만이 남은 슈퍼맨 (http://realfolkblues.co.kr/1812)

* 왓치맨 _ 히어로에 빗댄 정치와 권력에 대한 담론 (http://realfolkblues.co.kr/897)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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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 : 블루레이 리뷰
한 번쯤은 보고 싶었던 액션 영웅, 슈퍼맨


브라이언 싱어의 2006년 작 '슈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2006)'가 있었지만, 이를 뒤엎고 다시 리부트를 시도한 새로운 잭 스나이더의 2013년 슈퍼맨 영화 '맨 오브 스틸'. 잭 스나이더의 연출력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특히 강한 편이지만, 어찌 되었든 DC코믹스의 또 다른 히어로인 배트맨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표 히어로라 할 수 있는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든든한 이야기를 잭 스나이더의 화려함과 액션 연출이 더해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몹시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즉,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에게 기대되고 예상되는 바와 우려되는 바도 분명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은 물론, 데이빗 S.고이어와 함께 스토리에도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은 분명 잭 스나이더의 영화라는 점부터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기대와 설레 임을 모두 들게 했던 잭 스나이더의 새로운 슈퍼맨 영화는, 예상 그대로 만족스러움과 아쉬움이 조금씩 교차하는 영화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 아쉬운 점이 많지만, 한 번쯤은 이런 액션 영웅 슈퍼맨을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일단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전개였다. 더군다나 이 작품이 새로운 슈퍼맨 시리즈를 시작하는 리부트의 첫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빠른 전개였다. 그 속도는 놀라움을 넘어서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건 슈퍼맨이라는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호 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일 듯 하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워낙 흥행하고 주목 받다 보니 조금 가려진 측면이 있긴 하지만, 본래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콘텐츠는 '배트맨' 못지 않은 이야기와 다양한 텍스트가 가능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이야기의 측면에서 '맨 오브 스틸'은 스토리와 영화가 갖고 있는 철학에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클락 켄트가 슈퍼맨이 되는 과정에서의 오랜 시간은 이 텍스트에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에 간과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슈퍼맨이 갖는 갈등은 클락 켄트와 칼엘 이라는 두 존재 사이 에서의 갈등, 즉 외계인으로서 지구인을 구해야만 하는 구세주로서 칼엘의 운명과 그저 스몰빌에서 부모님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싶은 클락 켄트로서의 삶 사이에서 오는 괴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슈퍼맨으로서의 능력을 각성하고 사용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클락이 어떻게 크립톤인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신과 같은 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지는 오랜 갈등과 고민 끝의 결정이기에 소중히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인데, '맨 오브 스틸'에서는 이런 과정 적인 면이 상당히 생략되어 있었다. 따지고 보자면 '맨 오브 스틸'은 그 제목처럼 클락 켄트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칼엘 혹은 슈퍼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초반 크립톤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로 대표되는 가족에 대한 부분도 슈퍼맨이라는 텍스트가 얼마나 익숙한 가에 따라 조금은 호 불호가 갈릴 부분이다. 이 부분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맨 오브 스틸'에는 사실상 없는 클락 켄트이기에 더불어 비중이 축소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케빈 코스트너와 다이안 레인의 연기와 캐릭터는 모두 좋지만 그 비중이 이 캐릭터와 스토리의 정수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비중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스몰빌'에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는 클락에게 칼엘로서의 운명도 물론 지지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너는 그냥 우리 아들 클락이야'라고 말하는 쪽에 가까운데, 이번 작품에서 조나단이 '너는 외계인이고 너를 낳아준 친 부모가 어딘가 있을 거야' 라는 말을 단번에 꺼낼 땐 조금은 급작스럽기도 했다. 물론 '스몰빌'의 조나단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영화 초반에 이렇다 할 설명이 다 오가기도 전에 어린 클락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조나단의 모습을 보니, '맨 오브 스틸'이 얼마나 클락 켄트의 비중을 적게 두고 있는지를 미리 예상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맨 오브 스틸'에도 슈퍼맨의 텍스트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클락 켄트로서의 요소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방금 아쉬운 점으로 지적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와의 따듯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도 있고, 그 몇몇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조드와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만큼이나 (어쩌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너무 빠르게 전개되고 생략되는 클락 켄트의 부분이 조금은 아쉬울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슈퍼맨 영화임은 분명하다. 아니 정반대로 앞서 얘기한 아쉬운 점은 다른 취향을 갖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더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이라는 이야기에 특별한 애정보다는 극장 판 영화로서 2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 만으로 충분한 이해와 재미를 느끼고자 하는 대부분의 관객에게, '맨 오브 스틸'의 전개 과정은 슈퍼 히어로가 주인공인 액션 블록 버스터 영화로서 딱 어울리는 정보 량과 속도였으며, 긴 시간을 들여 일반인이 슈퍼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보다는 (물론 슈퍼맨의 경우는 태생부터가 다르지만) 바로 날기도 하고 슈퍼맨으로서의 등장도 빠른 것이 오히려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전개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리즈로 제작된 많은 히어로 영화들의 1편을 보면, 그가 영웅이 되기 전까지의 평범한 이야기를 비중 있게 묘사하고 있는데, 반대로 이 부분은 많은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선사하는 측면도 분명 존재했었다는 점에서, '맨 오브 스틸'의 과감함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이라 하겠다. 






더군다나 그 짜임새에는 100% 동의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의 리부트에 걸맞게 처음부터 그 과정을 절반 이상 소개하고, 본격적인 액션은 그 다음으로 미뤘었던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가 당시 관객들과 스튜디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상황까지 더해진 마당이라면 (브라이언 싱어의 리부트를 다시 뒤엎는 데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의 대성공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이런 액션 히어로로서의 면면이 강조된 슈퍼맨의 탄생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는 얘기다.


솔직히 슈퍼맨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히어로에 비하면 그 동안 슈퍼맨 영화에서 보여준 액션은 그 크기가 무언가를 들어 올리거나 막아 내는 데에 집중된 편이긴 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 번쯤은 '맨 오브 스틸'과 갖은 액션 영웅 슈퍼맨을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맨 오브 스틸'은 그런 액션 영웅 슈퍼맨을 가장 잘 묘사한 액션 시퀀스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맨 오브 스틸'의 액션 시퀀스는 정말 현란하다. 현란하고 화려한데 그저 화려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표현 자체가 좀 아이러니지만 슈퍼맨이 등장한 영화의 액션 장면 가운데 가장 '현실감' 넘치는 액션이었는데, 슈퍼맨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갈 때의 묘사나 조드 장군 일당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면, 만약 실제로 저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이가 전투를 벌인다면 아마도 저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액션 묘사가 많았다.


특히 슈퍼맨처럼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캐릭터를 담은 영상의 경우, 너무 그 속도 감을 담으려 한 나머지 현실감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맨 오브 스틸'의 비행 장면은 카메라 웍이 살짝 동원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설득력 있는 비행 시퀀스가 아니었나 싶다. 결론적으로 벽이 부서지고 건물이 셀 수 없이 부서지고 관통 되고 하는 액션들이 오버스럽기 보다는, 저런 능력자들이 전투를 벌인다면 저 정도가 맞겠다 싶은 연출로서, 잭 스나이더의 연출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갈등 하는 영웅이 아닌 분노하고 싸우는 액션 영웅으로서 관객들이 슈퍼맨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영화 내내 클락 켄트를 사실상 피해왔던 '맨 오브 스틸'은 속편에서는 본격적으로 클락 켄트의 이야기를 꺼낼 듯한 제스처를 한다. 기존 시리즈와는 로이스 레인과의 관계도 전혀 다르고, 성장 과정에 대한 묘사의 비중도 전혀 달랐으며, 지구인들이 그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달랐는데, 과연 속편은 어떤 이야기와 속도로 전개될지 더 큰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또 반응에 따라 뒤엎지 말고 잭 스나이더의 비전을 좀 더 응원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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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날카롭고 쨍 한 화질 보다는 거친 입자 표현이 두드러진 영상을 보여준다. 잡티 하나 없는 클리어 한 화질을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조금 아쉬울 수 있겠는데,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나 좀 더 선명한 화질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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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원 카메라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여 출시한 Red Epic (5k) 카메라로도 일부 촬영된 것을 감안한다면 역시 조금은 아쉬운 부분인데, 장면에 따라 편차가 좀 있는 편이고 정적인 장면보다는 빠른 액션이 주가 되는 장면이 많다 보니 화질 측면에서는 역시 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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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7.1 채널의 사운드는 영화가 추구하는 박력 넘치는 액션의 쾌감을 배가 시킨다. 임팩트나 채널 분리도, 극장에서는 미처 확인할 수 없었던 미세한 소리들을 만나볼 수 있는 건 역시 블루레이 만의 장점이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임팩트 부분에서 사운드가 날카롭게 빠져 나오기 보다는 조금 뭉뚱그려 표현되고 있어, 화질과 마찬가지로 날카롭고 선명하게 뻗어나가는 사운드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답답함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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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맨 오브 스틸'의 부가영상은 크게 세 가지로 확인해볼 수 있다. 첫 번째 'Strong Characters, Legendary Roles....'에서는 약 30분 간의 영상을 통해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의 의미와 특성 그리고 75년 간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슈퍼맨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슈퍼맨이라는 스토리는 가장 대표적인 영웅 담인 동시에 가장 미국 적인 요소를 핵심적으로 담고 있는 텍스트인데, 영웅으로서 가져야 할 면모와 그 영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그리고 친부모와 양부모 즉, 출산과 양육을 구분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무한한 줄기로 뻗어나갈 수 있는 구성이기 때문에, 각 시대에 따라 어떤 형태로 표현 되었는지를 만나볼 수 있다.






신과 같이 강력한 힘을 갖은 영웅이 필요했던 시기의 슈퍼맨은 물론, 더 이상 영웅이 필요 없어 죽음을 맞기도 했던 슈퍼맨의 역사는, 곧 미국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새삼스럽지만 미국 문화 내에서 슈퍼맨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한 부분을 엿볼 수 있어 좋았는데,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많은 이들에게 실제로 희망이 되는 존재이기에, 주인공을 연기한 헨리 카빌의 마음 가짐은 물론, '맨 오브 스틸'을 만드는 이들도 결코 가벼운 자세로 임하지 않았다는 걸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새로운 슈퍼맨인 헨리 카빌의 슈퍼맨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는데, 그저 강한 액션과 그럴싸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근육을 키우고 운동을 하는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에이미 아담스의 말처럼 '슈퍼 히어로 되기'라는 제목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는 것처럼, 진정한 의미의 슈퍼맨이 되기 위해 몸과 정신을 함께 단련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결과 촬영장에서 다른 스텝과 배우들이 보았을 때, 헨리 카빌이 아닌 '와, 진짜 슈퍼맨이잖아'라고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비주얼과 내면을 모두 만족 시키는 슈퍼맨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All-Out Action'에서는 영화 속 액션 장면을 위해 '300'을 함께 작업했던 '짐 존스'의 마크 트와이트와의 재작업을 통해 헨리 카빌을 비롯한 크립톤 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어떻게 영화 속 캐릭터로 만들어 졌는지 그 과정을 소개한다. 앞서 잠시 소개한 것처럼 트레이너 마크 트웨이트의 방식은 단순히 몸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배우를 캐릭터로 변화 시키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헨리 카빌이 슈퍼맨이 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힘든 단련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헨리 카빌 뿐 아니라 조드 장군 역할의 마이클 섀넌과 피오라 역의 안트예 트라우에의 훈련 과정도 만나볼 수 있다.






'Krypton Decoded'에서는 클락 켄트의 어린 시절 역할을 연기한 딜런 스프레이베리의 소개로 극 중 크립톤 행성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과 디자인적인 측면에 대해 소개한다. 시각 효과를 담당한 존 'DJ' 데자뎅과의 간단한 대화 형식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 크립톤 행성의 기반이 되는 기술에 대한 소개와 크립톤 인들의 갑옷 디자인과 무기 디자인들이 어떤 컨셉으로 만들어 졌는지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Superman 75th Anniversary Animated Short'는 제목 그대로 75주년을 맞아 그 동안 슈퍼맨의 모습들을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홍보 영상인데, 최초의 슈퍼맨의 클래식한 모습은 물론 각 시대별로 달라졌던 모습, 작가에 따라 달라졌던 얼굴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과 이 작품 '맨 오브 스틸'의 헨리 카빌의 모습까지 명료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워너브라더스의 또 다른 최신작 '호빗'의 제작과 관련된 부가영상 'New Zealand : Home of Middle-earth'가 수록되었다.





[총평] 잭 스나이더의 새로운 슈퍼맨 영화 '맨 오브 스틸'은 확실히 호불호가 강한 영화일 것이다. 화끈한 액션 영웅으로 돌아온 슈퍼맨에 환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좀 더 철학적으로 파고 들길 원했던 이들에게는 조금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슈퍼맨이라는 텍스트의 매력에 비해 조금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한 번쯤은 이렇게 화끈한 액션을 펼치는 액션 영웅으로서의 슈퍼맨을 보고 싶었다는 점에서 잭 스나이더의 비전을 응원하고픈 바람이다. 헨리 카빌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슈퍼맨이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이 그러하였듯, 좀 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 오래 지속되어 '어벤져스' 못지 않은 '저스티스 리그'도 머지 않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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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

클락 켄트는 없고 칼엘만이 남은 슈퍼맨



브라이언 싱어의 2006년 작 '슈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2006)'가 있었지만, 이를 뒤엎고 다시 리부트를 시도한 새로운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 '맨 오브 스틸'을 보았다. 잭 스나이더의 연출 력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강하지만, 어찌 되었든 DC코믹스의 또 다른 히어로인 배트맨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히어로 중 하나 인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든든한 이야기를 잭 스나이더의 화려함과 액션 연출이 더해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몹시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즉,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에게 기대되고 예상되는 바는 분명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은 물론, 데이빗 S.고이어와 함께 스토리에도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은 분명 잭 스나이더의 영화라는 점부터 분명히 해야겠다. 그렇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보게 된 새로운 슈퍼맨 영화는, 기대에서 많이 벗어나는 의아함과 기대했던 것 이상의 만족스러움이 교차하는 영화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 아쉬운 점이 많지만, 한 번쯤은 이런 슈퍼맨을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일단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그 빠른 전개였다. 더군다나 이 작품이 새로운 슈퍼맨 시리즈를 시작하는 리부트의 첫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빠른 전개였다. 그 속도는 놀라움을 넘어서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건 슈퍼맨이라는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 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일 듯 하다. 개인적으로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콘텐츠는 영화로서는 배트맨 보다 더 깊은 이해 도가 있는 작품이었고 (배트맨은 대신 그래픽 노블을 통한 정보가 많았고), 무엇보다 클락의 청년 시기를 다룬 '스몰빌'이라는 TV시리즈를 남들이 '도대체 클락은 언제 나느냐'며 하나 둘 씩 떠날 때에도 꿋꿋이 10년을 기다리며 그 대단원의 피날레를 맞이했던 팬으로서 특별한 애정이 있는 작품이기에 '맨 오브 스틸'은 스토리와 영화가 갖고 있는 철학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물론 '스몰빌'처럼 10년 동안 날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 사이 본인의 의지가 아닌 경우 난 적이 있긴 했지만) 클락이 슈퍼맨이 되는 과정에서의 오랜 시간은 이 텍스트에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슈퍼맨이 갖는 갈등은 클락 켄트와 칼엘 이라는 두 존재 사이 에서의 갈등, 즉 외계인으로서 지구인을 구해야만 하는 구세주로서 칼엘의 운명과 그저 스몰빌에서 좋아하는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싶은 클락 켄트로서의 삶 사이에서 오는 괴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슈퍼맨의 능력을 각성하고 사용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클락이 어떻게 크립톤인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신과 같은 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지는 오랜 갈등과 고민 끝의 결정이기에 소중히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인데, '맨 오브 스틸'에는 이런 면에서 보기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슈퍼맨이 된다. 따지고 보자면 '맨 오브 스틸'은 그 제목처럼 클락 켄트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칼엘 혹은 슈퍼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초반 크립톤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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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이 작품의 아이러니는 바로 그 운명론에 있는데, 극 중 칼엘은 크립톤에서도 유일하게 자연 임신을 통해 태어난 아이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크립톤인들이 태어날 때 부터 그 직업과 역할에 맞춰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갖고 태어난 것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슈퍼맨이라는 텍스트의 딜레마는 바로 이 운명론에 있다. 그렇다고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이 이 운명론과는 무관하게 성립된 캐릭터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맨 오브 스틸'의 스토리는 바로 여기서 부터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미 운명이 정해진 채로 태어나는 모든 크립톤 인들 과는 달리 유일하게 그 운명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난 칼엘이, 전혀 자유롭지 못한 또 다른 정해진 운명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냥 벌어진 상황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의미로 칼엘을 태어나게 하고 지구로 보낸 조엘 스스로가, 칼엘에게 끊임없이 운명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아이러니다. 이 부분은 달리 돌려 이해해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다른 슈퍼맨 영화와는 달리 크립톤의 이 배경을 강조했기에 더욱 이후의 운명론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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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맨 오브 스틸'이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바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로 대표되는 가족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맨 오브 스틸'에는 사실상 없는 클락 켄트이기에 더불어 비중이 축소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케빈 코스트너와 다이안 레인의 연기와 캐릭터는 모두 좋지만 그 비중이 이 캐릭터와 스토리의 정수를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비중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스몰빌'에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는 클락에게 칼엘로서의 운명도 물론 지지하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너는 그냥 우리 아들 클락이야'라고 말하는 쪽에 가까운데, 이번 작품에서 조나단이 '너는 외계인이고 너를 낳아준 친 부모가 어딘가 있을 거야' 라는 말을 단번에 꺼낼 땐 솔직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스몰빌'의 조나단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영화 초반에 이렇다 할 설명이 다 오가기도 전에 어린 클락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조나단의 모습을 보니, '맨 오브 스틸'이 얼마나 클락 켄트의 비중을 적게 두고 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맨 오브 스틸'에도 슈퍼맨의 텍스트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클락 켄트로서의 요소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방금 아쉬운 점으로 지적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와의 따듯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도 있고, 그 몇몇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조드와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 만큼이나 (어쩌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로서는 이 부분이 단기 속성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쉬울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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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슈퍼맨 영화임은 분명하다. 방금까지 얘기한 아쉬운 점은 다른 취향을 갖은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슈퍼맨이라는 이야기에 그다지 깊고 특별한 애정보다는 극장 판 영화로서 2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 만으로 충분한 이해와 재미를 느끼고자 하는 대부분의 관객에게, '맨 오브 스틸'의 전개 과정은 슈퍼 히어로가 주인공인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딱 어울리는 정보 량과 속도였으며, 긴 시간을 들여 일반인이 슈퍼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보다는 (물론 슈퍼맨의 경우는 태생부터가 다르지만) 바로 날기도 하고 슈퍼맨으로서의 등장도 빠른 것이 오히려 기다렸던 전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결코 이러한 취향을 비꼬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짜임새에는 100% 동의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의 리부트에 걸맞게 처음부터 그 과정을 절반 이상 소개하고, 본격적인 액션은 그 다음으로 미뤘었던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가 당시 관객들과 스튜디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상황까지 더해진 마당이라면 (브라이언 싱어의 리부트를 다시 뒤엎는 데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의 대성공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이런 액션 히어로로서의 면면이 강조된 슈퍼맨의 탄생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는 얘기다. 솔직히 슈퍼맨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히어로에 비하면 그 동안 슈퍼맨 영화에서 보여준 액션은 그 크기가 무언가를 들어 올리거나 막아 내는데에 집중된 편이긴 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 번 쯤은 '맨 오브 스틸'과 갖은 액션 영웅 슈퍼맨을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맨 오브 스틸'은 그런 액션 영웅 슈퍼맨을 가장 잘 묘사한 액션 시퀀스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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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의 액션 시퀀스는 정말 현란하다. 현란하고 화려한데 그저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말도 좀 아이러니지만 슈퍼맨이 등장한 영화의 액션 장면 가운데 가장 현실 감 넘치는 액션이었는데, 슈퍼맨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갈 때의 묘사나 조드 장군 일당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면, 만약 실제로 저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이가 전투를 벌인다면 아마도 저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액션 묘사가 많았다. 특히 슈퍼맨처럼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캐릭터를 담은 영상의 경우, 너무 그 속도 감을 담으려 한 나머지 현실감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맨 오브 스틸'의 비행 장면은 카메라 웍이 살짝 동원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설득력 있는 비행 시퀀스가 아니었나 싶다. 결론적으로 벽이 부서지고 건물이 셀 수 없이 부서지고 관통 되고 하는 액션들이 오버스럽기 보다는, 저런 능력자들이 전투를 벌인다면 저 정도가 맞겠다 싶은 연출로서, 잭 스나이더의 연출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갈등 하는 영웅이 아닌 분노하고 싸우는 액션 영웅으로서 관객들이 슈퍼맨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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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클락 켄트를 사실상 피해왔던 '맨 오브 스틸'은 속편에서는 본격적으로 클락 켄트의 이야기를 꺼낼 듯한 제스처를 한다. 기존에 시리즈와는 로이스 레인과의 관계도 전혀 다르고, 성장 과정에 대한 묘사의 비중도 전혀 달랐으며, 지구인들이 그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달랐는데, 과연 속편은 어떤 이야기와 속도로 전개될지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또 반응에 따라 뒤엎지 말고 잭 스나이더에게 좀 더 맡겨보는 것이 좋겠다. 



1. 집에와서 부족한 점이 무언가를 떠올려봤는데 역시 존 윌리엄스의 테마곡의 부제더군요. 그 곡을 다시 들어보니 단 번에 알겠더군요. 더불어 '맨 오브 스틸'엔 슈퍼맨이 우아하게 하늘을 유영하는 장면도 없는데, 그 장면을 못본게 아쉽더군요.


2. 아마도 지미 올슨이 나오지 않은 거의 유일한 슈퍼맨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어린 시절 장면이 잠시 나올 때 라나가 아주 잠깐 등장하는데 '스몰빌' 팬으로서 어찌나 반갑던지 ㅎㅎ 그리고 후반부에 깨알 같은 루터-콥 로고들도 재미있었어요.


3. '스몰빌'에 출연했던 배우가 '맨 오브 스틸'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스몰빌'에서 닥터 에밀 역할을 맡았던 알레한드로 줄리아니가 초반 등장하더군요. 참고로 전 톰 웰링의 팬이기도 해서 그가 연기하는 극장판 슈퍼맨을 보고 싶기도 했는데, 이제는 너무 늦어버리긴 했죠;; 아쉽네요. '스몰빌'이 너무 길었어요 ㅠㅠ


4. '매트릭스 레볼루션'을 볼 때도 '드래곤볼'의 실사화를 기대해보기도 했었지만, '맨 오브 스틸'을 보니 잭 스나이더가 '드래곤볼'을 한 번 찍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더군요. 적어도 액션 장면 만큼은 이질감 없이 황홀하게 만들어 낼 것 같아요.


5. 역시나 새 시대의 슈퍼맨도 안경만 쓰면 못알아보는 건 계속되려나 보네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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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2009) (IMAX DMR 2D)
히어로에 빗댄 정치와 권력에 대한 담론



<300>을 연출했던 잭 스나이더 감독의 <왓치맨>은 일찌감치 부터 올해 가장 큰 기대작 중 하나였고, 그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적으로는 드물게 원작인 그래픽 노블을 이미 영화 감상 전에 읽게 되었던 흔치 않은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영화 감상 전에 원작이 된 텍스트를 먼저 접한다는 것은 일종의 선택일 것이다. 원작을 미리 본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되겠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또한 원작이 존재할 경우, 원작을 미리 인지하고 영화를 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 있는 것도 물론일 것이다(물론 지론은 영화는 원작이 있을 경우라 하더라도 영화만을 통해 100%를 보여주어야 하지 원작을 읽어야만 100%가 완성되는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원작을 읽었을 경우 100%가 120% 200%되는 것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왓치맨>은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라는 소식을 듣고 조금은 일부러 원작을 찾아 읽게 된 경우였다. 물론 <씬시티>때 반짝했다가 <다크 나이트>이후 본격적으로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그래픽 노블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간 그래픽 노블이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의 경우, 영화 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은 그 세계관과 캐릭터,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많아 왠지 영화만으로는 100%를 얻지 못하는 것 같은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왓치맨>의 경우는 미리 그래픽 노블로 출판된 2권의 책을 미리 개봉전에 읽어보게 되었고, 더더욱 영화를 기대하게 되었었다.

개인적인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화는 원작과 비교하여 만족스러웠으며, 원작을 미리 읽었던 것은 약이 된 경우였다 하겠다.


(이후 부터는 영화와 그래픽 노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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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무어의 원작인 그래픽 노블 '왓치맨'은 현실과 픽션이 적절히 섞인 이른바 '팩션(Faction)'이었다. 베트남전과 닉슨 대통령, 케네디 암살, 소련과의 냉전 등 실제 미국 역사의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그 가운데 마치 진짜처럼 가상의 캐릭터들을 끼워넣는 스타일이었다. 이 같은 방법은 <스파이더 맨>처럼 누구나 우연한 기회에 히어로가 될 수 있다라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라 할 수 있겠는데, 실제 역사속에 히어로를 삽입함으로서 허무할 수도 있는 이야기에 좀 더 공감대를 불어넣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원초적으로는 '정말 그랬다면 어땠을까?' 혹은 '그런 일이 어디선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왓치맨'은 만약 미국이 배트남 전에서 패하지 않고 다양한 국가적 사건들에 알게 모르게 히어로들이 개입되어 있었다고 가정한 상태로 진행이 된다. 이 국가적 사건들에 가상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심은 것은 제법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특히 영화의 인트로 시퀀스는 인물들의 대략적 역사와 더불어 시대적 상황을 간략하지만 임팩트있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확실히 실제 미국의 역사를 알고 있으면 있을 수록 흥미로운 인트로가 아닐 수 없다(더군다나 여기는 상당히 많은 패러디나 인용들이 담겨있어 더욱 흥미롭다. 그 유명한 종전 사진을 레즈비언의 키스로 묘사하는 센스라던가, 히어로의 은퇴장면을 예수의 최후의 만찬으로 표현한 장면 등만해도 그렇다).

사실 원작 코믹스는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이나 역사에 대해 상당히 불친절한 경우였는데, 영화는 이 부분을 비교적 잘 압축하여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미닛맨 (Minutemen)'으로 활동했던 1기 히어로들이 어떻게 활약했고 사회에서는 어떤 대우를 받았으며, 어떻게 사라져갔는지와 케네디 암살이나 인류의 달 착륙 같은 국가적 사건에 어떻게 개입이 되어있는지, 기본적으로는 어떤 정치,사회적 배경이 있었는지,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어린 시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보여주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인 '왓치맨'이 구성되는 시기까지 이를 함축적으로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근래에 본 오프닝 시퀀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은 확실히 고심하고 노력한 기색이 역력히 보이는 작품이다. 아마 본인도 꼭 왓치맨은 아니었더라도 어느 코믹스나 그래픽 노블의 팬보이였을 잭 스나이더는, 원작의 수 많은 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런 의식은 전체적으로 큰 각색보다는 원작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오는데에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원작을 읽은 입장에서 봤을 때 영화는 전체적으로 그래픽 노블을 그대로 다시 한번 영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 정도로, 몇몇 포함되지 않은 이야기들과 결말 부분만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신문 가판대 소년이 전하는 화물선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빠진 경우이며, 결말 부분도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변형이 된 경우라 하겠다). 예전 <씬시티>영화를 보고 나서 뒤늦게 원작인 그래픽 노블을 보고는 영화 속 장면이 얼마나 그래픽 노블을 그대로 옮겨오려 노력한 것인가를 확인하고는 놀란적이 있었는데, <왓치맨>의 경우는 원작을 먼저 읽은 경우라 영화를 보는 중에 너무도 똑같은 장면 구성에 놀라게 되는 장면이 몇몇 있기도 했다.

원작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면, 워낙에 원작의 세계관과 캐릭터의 깊이가 깊고 이야기가 다중적이기 때문에 단 한편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영화에서(그것이 2시간 4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다 소화하고 설명하고 풀어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잭 스나이더는 몇몇 장면을 영화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함축적 장면들로 표현하고 몇몇 시퀀스들은 과감히 제외하면서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화를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이 정도의 영화화라면 다른 어떤 감독이 만들어도 쉽게 구현해내기는 어려운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잭 스나이더가 좀 더 스타일리쉬한 부분에 치우쳐서 메시지보다는 보여지는 것에 더욱 치중한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그는 자신만의 장기는 살리되 메시지에 흠이 가는 부분은 최소화 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몇몇 액션 장면에서는 <300>을 통해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베리 슬로우 모션 액션을 엿볼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과하지는 않았으며(그래서 300 같은 액션영화를 떠올리며 극장을 찾은 많은 관객들이 허탈해하며 돌아갔는지도 모르겠다), 액션보다는 원작의 그 질감과 느낌을 스크린으로 옮겨오는데에 더 공을 쏟은 것이 만족스러웠다.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 원작을 읽은 이들 가운데서도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에 대해 평이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편에 서고 싶다.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굉장히 정치적일 수 밖에는 없다. 그리고 철학적일 수 밖에 없는 텍스트이다. 실제 미국의 정치적 배경을 영화의 주된 배경과 소스로 사용하고 있으며, 인물들은 어찌보며 이 배경 속에서 태어날 수 밖에 없었던 존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어떻게 사회의 폭동과 범죄를 야기시키고, 이를 막기 위해 스스로 일어난 자경단과 같은 히어로들을 또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영화는 시종일관 보여준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코스츔을 입은 히어로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기에 이르고, 스스로 환멸과 후회, 덧없음을 느끼고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반 사회적으로 그려지지만 어찌보면 본래 마스크를 쓰고 히어로가 되기로 했던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신념대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로어셰크 뿐이며, 나머지 히어로들은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은퇴했다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스스로의 절망 때문이라 해야겠다. 각 히어로들에게는 자신 만의 고통과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생각해볼만한 캐릭터는 역시 닥터 맨하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고로 마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존은 철저히 국가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이용되고 사용되어 진다.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전쟁을 미국의 승리로 이끌게 되고 소련과의 냉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 무기로 사용되고 있으며, '신이 존재하고, 그는 미국인이다'라는 말처럼 대외선전용으로도 사용되게 된다.




영화 속 닥터 맨하튼이 겪는 고뇌는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고민과 같은 선상에 놓인다고 볼 수 있겠다. '신'으로 묘사된 것처럼 절대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닥터 맨하튼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은, 결국 영화과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권력'에 대한 것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왓치맨>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묻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절대적에 가까운 힘을 갖고 있지만 닥터 맨하튼이 결코 절대선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는 극중 코미디언의 말처럼 막을 수도 있던 재앙들을 결국은 막지 '않'은 경우도 많았으며, 인간들에 대한 환멸로 치부하기는 했지만 그조차 인간적인 면에 휩쓸려 어느 한 편을 들고 편협함을 은연 중에 갖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절대자라기 보다는 '미군'에 가까운 행동을 벌여왔던 지난 날들에 뒤늦게 덧없을 느끼고 지구를 떠나지만, 화성에서 그가 갖게 되는 고민들 역시 이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있지는 못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이 엔딩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 이 모든 음모가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된 로어 셰크와 댄(나이트 아울 II)은 오지맨디아스를 찾아가보지만 이미 이들이 막기에는 늦어버린 때였다. 나중에 자신이 이용당한 것을 알게 된 닥터 맨하튼 역시 오지맨디아스를 막기 위해 나타나지만 결국 막지 못한다. 아니 막지 못했다기보다는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에 결국 수긍하게 되어버린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평화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식의 논리. 엄청난 큰 재앙이 닥치게 되자 오랫동안 핵전쟁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던 미국과 소련은 더 큰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 연합하게 되고, 이른바 '평화'를 이루게 된다. 오지맨디아스의 논리는 이런 것이다. 결국 다수가 행복한 평화만 이루면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 그런데 나댄과 닥터 맨하튼은 이 같은 오지맨디아스의 논리에 반박을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계획 시전이 아니라 이미 시행된 이후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핵전쟁 바로 직전까지 갔던 세계의 정세를 평화의 무드로 만든 것이 거대한 거짓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 '만들어진 평화'를 굳이 깨는 방식을 원하지는 않는 것이다.




거대한 재앙 앞에 다툼과 혼란이 하나로 융합되고 평화를 이루는 과정은 실제 역사 속에서도 여럿 있어왔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9.11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음모설 따위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여러가지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부시 정부에게 단 한 방에 국민의 힘을 실어준 것은 다름 아닌 9.11 참사였으며, 결국 기름전쟁이었던 빈 라덴 잡기 전쟁의 명분을 준 것도 9.11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 같이 큰 재앙이 닥치면 미국의 침공이 부당하고 믿고 있던 사람들의 신념마저 약해져서 '그래,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이젠 충분한 명분이 있잖아?'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왓치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이 잘못된 것은 댄도 닥터 맨하튼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일이 벌어진 바에야 이를 깨고 싶지 않은 것이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평화지만, 이 거짓을 알게 된다면 겪게 될 혼란과 핵전쟁 위기를 굳이 초래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래 이미 일은 벌어졌잖아, 이 평화를 잘 지켜내기만 하면 돼'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끝까지 여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자신의 본래 신념대로 가겠다던 로어 셰크를 닥터 맨하튼이 손수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며, 댄 역시 좀 더 강하게 로어 셰크를 설득하거나 맨하튼을 막아볼 수도 있었지만(물리적으로는 못하겠지만), 그러지 않고 로어 셰크가 죽은 다음에야 '안돼~!'하며 역시 자기 합리화를 하고야 만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곧이 곧대로 융통성 마저 없어보였던 로어 셰크의 길이 옳은 것인지(죽음을 뻔히 알고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 아니면 이미 일이 벌어진 뒤라면 그리고 진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더 큰 재앙을 겪을 수도 있다면 이 평화를 지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대답이 결코 쉽지 만은 않다. 솔직히 대답은 로어 셰크를 응원하다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저런 상황에 닥쳤을 때 과연 로어 셰크처럼 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쓸쓸한 것은 비단 어두운 스타일과 고어한 장면들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관객에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와 현실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노출시켜 자기 합리화와 신념 가운데서 고민하도록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 인상적인 건 오지맨디아스가 정말 '평화'만을 위해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 보기엔 후에 상황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폐허를 제건하는 회사는 다름아닌 '바이트'사이고 하늘에도 '바이트'사의 비행선이 떠있고, 결국 이 재건될 세계에서 주도권과 권력을 쥐게 될 것은 오지맨디아스의 '바이트'사가 될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결국 평화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국제 사회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는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일 것이며, 더나아가 이를 자기합리화하며 신경쓰지 않으려 하거나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 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비판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왓치맨>에 현실감을 불어넣어 준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영화 속에 삽입된 곡들은 <포레스트 검프>처럼 당시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어서, 마치 실존했던 비화를 듣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살짝 들게도 했다. 오프닝에 사용된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을 비롯해,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 제니스 조플린의 'Me And Bobby McGee' 등은 당시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곡들이었다. 아, 그리고 코미디언이 살해를 당하는 장면에 사용된 냇 킹 콜의 'Unforgettable'도 기가 막힌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의 'All Along The Watchtower'도 인상적이었는데, 밥 딜런의 곡이나 지미 헨드릭스의 곡 등 당시 히피정신으로 자유와 반전을 부르짖었던 정서를 담고 있는 곡들이 사용된 것도 단순히 시대적 상황만을 고려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대부분 다 인상적이고 적제적소에 음악들이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나 단 하나 댄과 로리의 베드씬에서 흘러나오던(그것도 크게!) 'Hallelujah'는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것이 레너드 코헨 버전이라 조금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제프 버클리나 루퍼스 웨인와잇이 부른 버전이었다면 좀 더 쓸쓸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으나, 레너드 코헨의 버전은 '할렐루야'라는 가사와 맞물려 자칫 웃음이 지어지는 시츄에이션을 자아내기도 했다;; (잭 스나이더가 의도한 것이 어쩌면 이것일지도 ㅎ).




일단 잭 스나이더의 영화답게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이라던가 그 스타일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역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로어 셰크였다. 계속 변형하는 가면의 표현도 인상적이었고 그 거친 나레이션과 건조함은 엄청난 포스를 뿜어냈다. 특히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을 때도 인상적이었는데, 잭키 얼 헤일리는 원작이 로어 셰크와 거의 흡사한 느낌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잭키 얼 헤일리는 어디서 본듯 했으나 잘 기억이 나질 않았었는데, 찾아보니 바로 케이트 윈슬렛이 출연했던 <리틀 칠드런>에서 주변에서 소외받고 의심받는 인물을 연기했던 그 였다. 재미있는건 이 <리틀 칠드런>에 등장했던 또 한 명의 배우가 <왓치맨>에 출연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는 다름 아닌 나이트 아울 II 역할을 맡은 패트릭 윌슨이다. 원작과의 조금 차이점이라면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원작에서 댄은 좀 더 나이가 많은 인물로(그래서 로리와 나이차이가 좀 있는) 생각되었는데, 극 중에서는 조금 젊은 듯했다. 그래서 로리와도 약간 안어울린다기 보다는 남녀관계로서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도 있었고. 큰 뿔테 안경을 고쳐쓰는 모습이 마치 <슈퍼맨>에서 클락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여러 배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역시 인상적인 다른 배우를 꼽으라면 빌리 크루덥이었다. 사실 단 번에 얼굴을 알아본 배우는 그 뿐이었다(생긴건 제일 외곡되었는데도 말이다 ㅎ). <미션 임파서블 3>와 <빅 피쉬>를 통해 눈에 익었던 그는 <왓치맨>에서 닥터 맨하튼 역을 맡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빨리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되어 그의 출연분이 어떻게 촬영되었는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




<왓치맨>은 분명 원작 코믹스와 더불어 그리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더군다나 만약 이 영화를 전형적인 액션 히어로 블록버스터로 인식하게 된다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상당히 매니아적인 요소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며, 우울하고 씁쓸한 사회의 뒷맛 역시 숨기지 않고 내놓고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순히 주말 시간을 즐기기 위한 영화로는 절대 비추이며 (그래서 오히려 긴 러닝타임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 여유가 된다면 원작인 그래픽 노블을 먼저 읽는 편이 조금 더 도움이 되는 듯 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 원작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원작을 읽었을 때 100%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아마도 영화를 다시 한번 보게 된다면 또 한 번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나는 좋아! 왓치맨!


1. 왕십리 CGV에서 아이맥스 DMR 2D로 감상하였는데, 일산 아이맥스를 안본 입장에서는 엄청난 스크린 크기에 일단 압도. 많은 분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리가 조금 과하게 큰 듯한 느낌도 분명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영화도 영화지만 영화 상영전 작게 뿌려지던 일반 광고와 예고편들 ;;

2. 마지막 시퀀스에서 오지맨디아스가 보는 많은 영상들 가운데 직접 눈으로 확인한 건, <람보 2>와 <매드맥스>를 들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나름 이유를 가지고 삽입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연관성을 따져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되겠다.

3. 나이트 아울 II과 로리가 아키를 타고 불난 건물의 사람들을 구출하는 시퀀스에서 커피를 나눠 마시는 장면이 추가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 이 장면은 원작을 읽을 때 왠지 인상적으로 느껴졌었는데, 영화에서는 종이 커피잔을 정리하는 것 정도로만 묘사되었다.

4. 원작을 보면 극중 인물들이 보는 신문들이나 길가에 현수막 혹은 TV속 내용들에 대해 자막이 지원되었는데, 영화 속에서는 여기까지는 지원이 되지 않아 살짝 아쉬웠다. 물론이것이 조금은 과한 요구일 수도 있겠지만 원작을 읽은 분들은 아시다시피 이것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달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이 지원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5. 사실 영화가 영화인지라 하고 싶은 말들이 더 많았는데 한번에 정리하기는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추가로 생각이 떠오르거나 한번 더 보게 된다면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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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페르시아 대군을 이끄는 크세르크세스 황제가 스파르타에 밀사를 보내 복종을 권유하자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가차 없이 밀사를 베고 전의를 불태운다. 의회는 신탁을 빌미로 전쟁을
반대하지만 레오니다스 왕은 300명의 정예 부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대군의 진격을 막을 비책을 세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와 출중한 무예 실력을 바탕으로 일당백의 역할을 해내는 스파르타 정예군의
활약에 힘입어 일순 승리에 대한 희망이 엿보이는가 싶었으나 미처 예기치 못했던 배신으로 말미암아
레오니다스 왕과 300명의 정예군의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데…



영화 <300>은 알려졌다시피 BC 480년 7월 제 3차 페르시아 전쟁 때 테살리아 지방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일어난, 역사 속의 실제 전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전쟁의 대한 옛날의 역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역사’임과 동시에 ‘전설’이기도 한데, 이 테르모펠레 협곡의 전투야 말로 ‘전설’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신화적인 역사로서, 어쩌면 영화화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소재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300 스파르탄>이라는 영화를 보고 이 전투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프랭크 밀러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 소재를 자신 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그래픽 노블로 써내는데 성공하였다.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했던 <씬 시티>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300>역시 원작자이자
총 제작 지휘를 맡은 프랭크 밀러를 제외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나 만화 등 다른 매체로 그려내기에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이 역사를,
프랭크 밀러가 그래픽 노블로 만들어냈는데, <씬 시티> 영화와 그래픽 노블을 모두 접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듯이, 프랭크 밀러의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화하려고 할 때,
그 어떤 감독이라도 원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즉 프랭크 밀러의 원작을 무시하고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그리는 것 보다는, 프랭크 밀러의 조언 하에(그것이 공동감독의 형식을 취하든,
총 제작 지휘의 형식을 취하던지 말이다) 그가 창조해낸 장면들을 더 충실하게 영화화 하는 것이
오히려 영화적인 장점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감독과 제작자가 모두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프랭크 밀러의 작품들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대로 영화 장면으로 옮겨도 좋을 만큼
(마치 영화화를 위해 만들어진 콘티 북처럼), 영화화에 있어 너무나도 완벽한 원작으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다들 왜 이 소스와 그래픽 노블이 영화화 되지 않았을까를 의아해하고 있을 무렵,
제작자는 어렵게 프랭크 밀러에게 영화화 승낙을 받는 데 성공하였고, <새벽의 저주>로
자신 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전했던 잭 스나이더에게 감독직을 제안하여
결국 스크린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300>을 정의하는 표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꼽으라면 아마도 액션과 스타일
(혹은 스케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300>은 근래의 액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액션에
충실한 작품이며,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액션 장면을 관객의 뇌리에 깊게 새긴 작품이었다.
<300>은 최근 액션 영화들처럼 강력한 최신 무기의 가공할 만한 화력이나 화려함도 없고,
오히려 BC 480년의 고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액션 장면을 연출 하는데 있어 조금은
밋밋한 감이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스파트타 군사들의 복근 가득한 액션이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오토봇들의 화려한 변신 순간만큼이나 황홀했던 것은 액션을 그려내는 스타일리쉬한 방법에 있었다.
<300>은 액션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슬로우 모션과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슬로우 모션 기법에 대한 인식은 최근 들어 액션 영화에서 점차 그 사용 빈도수가 줄거나 사용된
장면에서도 오버하는 느낌만 받았던 것에 비해, 이 영화에서는 액션을 그리는데 있어 슬로우 모션만큼
이를 극대화시키는 기법은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300>의 액션은 R등급을 받았을 만큼
매우 잔인한 수준인데, 목이 잘리고 잘린 목의 단면을 리얼하게 굳이 또 보여주기도 하며,
긴 창으로 리얼한 효과음과 함께 쑥쑥 찔러대기도 하지만, 이러한 영화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만 아니라면,
이러한 장면이 너무 잔인해 눈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보다는, 그저 영상의 미학으로
‘먼저’ 느껴지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너무 잔인해 진 액션 영화들 때문에 폭력성과 잔인함에 익숙해져서
무뎌 졌다기 보다는, 초감각적인 영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씬 시티>를 처음 극장에서 보았을 때, 이전에는 없었던 스타일에 정말 놀라고 감탄했었는데,
이 영화 역시, 보는 내내 비슷하면서도 한 편 새로운 스타일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일단 상당 부분이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는데, 여기에서야 말로 프랭크 밀러 특유의 남성다운 필체가
진하게 묻어난다. 대놓고 이야기하자면 <300>은 거의 완벽한 ‘남성’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단순히 잔인한 액션 장면 때문만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거칠고도 간결한 문체에
더 큰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얘를 들어 300명만으로 엄청난 대군을 상대하며 피비린내가 나다 못해,
썩어 문드러지고, 시체들이 넘쳐나다 못해, 시체들로 높은 벽을 쌓을 지경이지만, 그 순간에 흐르던 나레이션은
더할 나위 없이 너무나도 간결한 그 자체이다.

‘시작이 좋았다’

실컷 피 흘리고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겨우 이겨내 하루를 마치고 한다는 말이, 첫 날부터
시작이 괜찮았다 라는 것이다. 이런 쿨 한 스타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매체에도 자주 언급되었던
 ‘오늘 저녁은 지옥에서 먹자’라는 투의 대사를 비롯하여 이런 다분히 남성적인 대사들을 듣게 될 때,
저 속 먼 곳에서 피가 끓어오름을 느끼는 것은 남자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반지의 제왕>시리즈가 엄청난 흥행을 거둔 이후로 웬만한 스케일에는 관객들이 놀라거나
흥분하는 일은 극히 줄어든 것이 사실인데, <300>역시 그 동안 없었다고 할 만큼 엄청난 스케일은
아니지만(숫자적으로), 분위기와 연출력, 스토리상의 이유로 인해 동일한 스케일일지라도 오히려 배로
느껴지는 효과를 내고 있다.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판타지 물에서나 볼 법한 기괴한 크기와
생김새의 동물들이나, 기괴한 가면을 쓴 페르시아의 정예부대 ‘이모탈’, 그리고 자신을 신이라 칭하는 왕
‘크세르크세스’의 신비스럽고도 소름 돋는 모습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디 선가 다른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이 전혀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확히 그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데에는,
<300>만이 갖는 특유의 만화적인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갖는 태생적인 장점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300>이 한 편에선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반면, 다른 한 편에선 논란 거리가 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실존했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전쟁을 그린 방식 때문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된 테르모필레 협곡의 전투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패의 분수령이 되었고,
이후 동서양의 구분에 대한 개념 또한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 시초가 되기도 했을 만큼 중요한 전투였다.
실제로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소수 정예의 스파르타 부대가 페르시아의 대군을 맞아 싸운 것도 사실이고,
레오니다스 왕을 비롯한 모든 병사가 전사한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와 사실 간에 다른 점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영화 속 스파르타의 모습을 보면, 전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 가운데 가장 정의롭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선하고 용기 있는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페르시아의 모습은 폭군과 악한으로만
그려지고 있지만, 실제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어느 쪽이 절대 선하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강인한 스파르타의 군대에 비해 페르시아 군대는 오합지졸이며(물론 스파르타 군대가
 ‘스파르타식’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훈련과정이 혹독했던 것은 사실이나),
일부는 인간이 아닌 듯한 괴물의 모습으로 까지 그려지고 있는데, 이 같은 모습은 분명히
현재 그 지역에 살고 있는(이란) 사람들이 보기에는 결코 달가운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이 영화가 백인들은 자유를 수호하는 영웅이고 유색인종들은 미개인과 악당으로
그려진 것에 대해 인종 차별에 대한 골 깊은 인식이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도 터져 나오기에
이르렀는데, 결과적으로 잭 스나이더 감독은 올리버 스톤 같은 정치적인 감독도 아닐뿐더러,
영화나 프랭크 밀러의 원작 자체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크게 문제 삼을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만약 영화의 오프닝에
‘이 영화는 100% 실화입니다’ 라던가 하다못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하는 식의 문구가 있었다면
논쟁거리가 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이 영화에 대해 정치적으로
그리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특히나 이 영화가 사실상 전쟁을 함께 했던 스파르타 군의
한 명인 ‘딜리오스 (데이비드 윈햄 분)’의 관점에서 서술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에 전재 했을 때,
 ‘레오니다스’왕을 신격화 시킨 것처럼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된다.

사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덧붙이자면, 영화 속 스파르타는 자유를 수호하는 유일한 나라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 스파르타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예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계급차가 존재하지 않는 평등(?)사회였다고 한다. 즉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한 편으론 가장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스파르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00> DVD는 미니 아트북을 포함한 스틸북 한정판과 일반 케이스의 일반판으로 나누어 출시되었다.
스틸 케이스의 경우 디스크를 빼고 넣을 때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일반 킵 케이스나 디지팩 보다는 소장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정판에 포함된 미니 아트북은 'Dark Horse Book'에서 출시한 '300 : The Art of the Film' 발췌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17페이지 가량의 분량으로서 원작 그래픽 노블과 영화를 비교한 컷들과 분장이나
도구의 이미지 컷, 콘티와 촬영장의 모습 등 많지 않지만 매우 유익한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300 : The Art of the Film'의 풀 버전은 128 페이지로 이루어져 있다).



16:9의 화질은 최근 워너 타이틀의 화질이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고, 차세대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만족감을 줄 만큼 뛰어난 화질을 담고 있다. 영화 자체가 워낙에 어두운 장면이 많고 거친 입자가 강조된
표현들이 많은데, DVD로서는 레퍼런스 급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뚜렷한 색감과 질감의 표현이 뛰어나다.
특히 HD급 디스플레이에서 재생을 하였을 때에도 SD급 소스를 HD급 디스플레이에서 재생하였을 때에
생기는 이질감의 정도가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상 차세대 미디어가 속속 발매되고 있는
상황에서 DVD의 화질, 음질을 논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까 싶기도 하지만, DVD로서는 담을 수 있는
최상의 퀄리티를 수록하였다고 하면 간단히 정리가 되지 않을 듯 싶다.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돌비디지털 5.1채널치고는 기본 음량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센터 스피커의 대사 전달도 매우 뚜렷하였다.
영화가 영화인지라 우퍼 스피커가 거의 쉬지 않고 활약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우퍼 특유의 소리를
선호하지 않는 이들에겐 단점아닌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차세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참고로 300의 블루레이와 HD-DVD는 해외판이 현재 프리오더 중이며, 워너브라더스의 차세대 미디어 런칭이
공식 발표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한글자막이 포함된 300의 블루레이와 HD-DVD를
내년 초쯤에는 만나볼 수 있을 듯 하다).



DVD는 총 2장의 디스크로 구성이 되었는데,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감독과 스텝 등이 참여한
음성해설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다. 전반적인 느낌을 이야기해보자면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것 치고는 서플먼트가 양적이나 질적으로 조금 아쉬운 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이전에 리뷰했던 <드림걸즈 LE>의 서플먼트가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에 비한다면).
'Behind the Story : The 300 - Fact or Fiction?'과 'Who Were the Spartans? : The Warriors of 300'에서는
300의 배경이 되고 있는 역사에 대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데, 앞서 말했던 것 처럼,
실제 스파르타의 정치제도나 상황은 어땠는지, 영화 속 주인공인 레오디나스 왕이나 고르고 왕비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영화 속에 등장한 배경이나 사건들이 어디 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를
알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서플먼트였다(개인적으로 주연 배우의 인터뷰 등은 전혀 나오지 않지만,
이 서플먼트가 가장 흥미로웠다). 'Frank Miller Tapes'에서는 프랭크 밀러와 잭 스나이더 감독,
코믹스 관계자 등의 인터뷰를 통해 원작이 쓰여 지게 된 계기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영화화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Making of 300'에서는 감독과 주연 배우,
프랭크 밀러의 인터뷰가 영화 장면과 함께 수록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총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메이킹 필름과는 달리 6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설명과 함께 3개의 삭제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좀 더 풍부한 양과 내용의 서플먼트가 수록되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300>의 화려한 영상미와 박력 있는 사운드를 즐기기에 현시점에서는 만족할 만한 선택이 될 것 같다.
아마도 차세대 미디어 플레이어가 있는 이들이라면 300 DVD를 보는 동시에 블루레이나
 HD-DVD가 출시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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