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훈장 (The Medal of Honor, 2009)
시대의 회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기 위해 갔던 이번 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 보다 먼저 보게 된 영화는 루마니아 영화 '아버지의 훈장'이었다. 영화제가 두근거리는 이유는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을 만나는 것 외에 모르는 감독과 작품을 감으로만 선택하여 즐기게 되는 '긴장감' 때문이기도 한데, 내게 있어 칼린 피터 네쳐의 영화 '아버지의 훈장'은 그런 종류의 미지의 영화였다.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시놉시스를 보고는 그냥 노인이 주연한 코믹과 감동의 드라마 일 줄 알았는데, 막상 본 영화는 루마니아라는 나라가 겪었던 시대와 그로 인해 벌어질 수 밖에는 없었던 슬픈 자화상을 아주 개인화한 사건을 통해 풀어낸 '좋은 영화'였다.

변변한 직업 없이 연금으로 하루하루를 부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노인 '이온'. 집 관리비가 밀려서 주인을 피해다니고, 난방이 안되 방안에서도 옷을 껴입고 있어야 하지만 고칠 엄두를 못내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내는 남편과 말조차 섞지 않은 지 한참이 된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문을 알 수 없는 훈장 하나가 이온에게 수여된다는 통보를 받게 되고, 이온은 자신이 왜 훈장을 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면서 이야기는 한 발 더 나아가기 시작한다.

영화 속 이온은 참 정직한 사람이다. 보통 이런 줄거리의 주인공이라면 무언가 '생색'을 낼 수 있는, 넝쿨째 굴러온 좋은 기회를 그저 놓치지 않으려 바로 움켜쥐려고만 할 텐데, 이온은 도대체 자신이 왜 훈장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이유를 집요하게 찾아내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지지만 중요한 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온은 (적어도)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게 되고, 그제서야 이 훈장을 떳떳히 자랑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대통령에게까지 초대를 받게 되면서 그의 이런 자랑은 그의 주변 사람들과 한 동안 말 한마디 않고 지냈던 아들에게까지 퍼지게 된다. 

루마니아가 겪었던 역사와 이로 인한 현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영화는 나처럼 정보가 적은 이가 보아도 어느 정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정보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이런 일들이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왜 '이온'은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그 배경을 떠올려 보게 한다. 왜 이온은 자신의 아들을 스스로 밀고하여 감옥에 보낼 수 밖에는 없었으며, 그로 인해 가족들은 한 동안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 소통을 닫고 살아야 했으며, 왜 훈장이라는 것에 그렇게 의미를 둘 수 밖에는 없었는지를 말이다. 


ⓒ  HI Film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이야기를 점진적으로 몰고 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한 순간에 무너트리고 만다. 그 무너지는 순간은 곧 이온의 좌절의 순간이며, 이 좌절은 허무함이라기 보다는 '회환'에 가까운 감정이다. 그래서 별다른 장치 없이 드디어 만난 아들 앞에서 나서기를 주저하고, 주변 인물들이 모두 모인 즐거운 식탁 앞에서 이들의 대화가 단순한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순간적으로 자신의 회환에 휩싸이는 마지막 시퀀스는 감정적으로 압도적이다. 루마니아가 겪는 시대를 떠올리지 못했던 이들이라도, 그래서 시종일관 이온의 행동들을 그저 한 노인이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들로 보았던 이들 조차도, 마지막 이온의 울컥함에는 공감할 수 밖에는 없다. 그 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마치 매일 웃으며 보던 TV 시트콤의 어느 장면에서 갑자기 울컥하게 되는 것처럼, '아버지의 훈장'은 좋은 엔딩을 갖고 있다. 


1. 사실 큰 기대 없이 그 시간 대의 영화 가운데 시놉시스만 보고 고른 영화였는데, 대 만족이었습니다.
2.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노래도 좋았어요. 마치 '그르바비차'의 엔딩에 흐르던 '사라예보, 내 사랑' 과 같은 느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HI Film Productions에 있습니다.



제 11회 전주국제영화제 간단 둘러보기 (JIFF)
(11th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photo view)



이번 전주영화제는 못가보나 했었는데 다행히 어린이날이 껴있어서 짧은 일정이지만 다녀올 수 있었다. 영화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스케쥴 표를 빠듯하게 짜서 셔틀버스를 타고 부지런히 극장들을 옮겨다니며 미지의 영화들을 발견하는 재미와 그 밖에 다양한 부대 행사와 먹거리들을 즐기는 쏠쏠함을 만끽해야 할텐데, 짧은 일정 탓에 그 재미가 확 줄긴 했지만 어쨋든 나름 그 안에서 전주영화제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주의 도착한 시간은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라 거리가 그리 북적이지는 않았는데, 영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술집에서는 아직도 영화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만의 영화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나도 얼른 짐을 풀어놓고는 북적이는 술집을 골라 술 한잔, 퇴근하고 바로 온 터라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쉽게 잠들고 싶지 않은 전주의 밤이었다.







마치 그리스 신전을 보는 듯한 위용(?)의 전주 CGV. 건물 내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최신 시설은 아니었지만, 서울의 신식(?) 극장들만 다니다가 오랜만의 지방에 풋풋한 극장의 외관을 보니 오히려 정겨웠다. 참고로 상영관 시설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빡빡한 스케쥴. 진짜 제대로 즐기려면 가이드북에 열심히 체크해가며 봐야할듯!






JIFF 라운지와 실시간으로 라디오 중계를 볼 수 있는 공개 부스, 그리고 별도로 마련된 영화 음악 감상실까지. 잠깐 영화 시작 시간이 남을 때 앉아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쉬기에 적절했던 장소.





영화의 거리는 5월 5일이고 낮시간이라 그런지 이후에는 엄청나게 붐볐다.






아침 일찍 루마니아 영화 '아버지의 훈장'을 보고 나서 오후 예매해 둔 영화 감상전까지 시간이 남아 가볍게 모닝 커피 한잔 하러 갔던 카페. 거의 홍대에 와 있는 듯한 마음에 드는 분위기. 커피 한잔 하면서 오후 스케쥴을 정리.


이번 전주영화제를 찾은 가장 큰 이유. 바로 스파이크 존즈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기 위해! 국내 극장 개봉을 건너 뛰고 바로 DVD/BD 출시가 되어버린 불운의 작품.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여서 더욱 기대. 보고 난 짧은 감상은 역시 마음에 들었다. 원작이 동화책인 만큼 아이들이 보기에도 적절했던 참 동심의 세계.




그래도 전주에 온 김에 오리지널 전주비빔밥 한 번 먹어보자 싶어서 찾아간 '가족회관'. 여러가지로 1호인 만큼 제대로 된 레알 전주비빔밥을 즐겨볼 수 있었다.




콩나물 국에 나중에 나온 계란찜까지 더하면 총 14가지나 되는 푸짐한 반찬들. 반찬 하나하나에 장식을 특별히 신경쓴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상차림. 평소에 반찬 하나 놓고 먹는 나로서는 적응 안되는 과분함.



맛은 단백함이 일품이더군요. 평소 식당에서 먹는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들에 비해 워낙에 담백하다 보니 오히려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 본래는 8천원이었는데, 특미를 사용하면서 가격은 1인당 1만원.


'모주'도 유명하다하여 한 잔 (1,500원) 시식. 개피향이 나는 시원한 약주더라.



멀리 홍대에서 부터 건너온 프리 마켓. 홍대 사는 나도 또 한번 관심.
짧은 일정이었지만 너무 보고 싶었던 영화와 영화제의 분위기를 살짝 맛본 것만으로도 괜찮았던 여행.


2010.05.04 - 05.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