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대전 (白蛇傳説 White Snake, 2011)

CG사용의 잘못된 예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스필버그 영화와 홍콩 영화로 보냈던 이로서, 그 기세가 많이 쇠약해지기는 했지만 드문 드문 소개되는 중화권 영화들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고 있는데, 오랜만에 시야에 들어온 작품이 바로 '백사대전'이었다. 극장에서 개봉을 한 것 같기는 하나 사실상 매우 적은 상영관에서만 상영한 관계로 관람 기회를 놓쳤었는데, 이와는 상대적으로 무척이나 빠르게 업데이트 된 IPTV를 통해 관람하게 되었다. '백사대전'의 라인업은 홍콩 영화의 팬으로서 기대할 수 밖에는 없는 괜찮은 조합이었다. '천녀유혼 (1987)'부터 시작해 '소오강호 (1990)'와 '동방불패 (1992)'에 이르기까지 홍콩 무협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던 정소동 감독이 연출을 맡고, 다시 돌아온 이연걸이 주연을 맡아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는 점, 여기에 '쿵푸허슬'에서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여배우 황성의 까지. 기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CG. 과하다 못해 작품을 망쳐버린 CG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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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대전'의 기본 골격은 정소동의 전작 '천녀유혼'과 거의 흡사하다. 요괴이지만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은 백소정(황성의)이 있고, 굉장히 성실하고 착한 인간인 남자 (임봉)가 있으며 요괴를 퇴치하는 법해 (이연걸)가 있다. 일단 CG의 문제를 들지 않더라도 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1차적인 문제다. 각각의 캐릭터는 자신이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도 쉽게 결정하고 진행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행동들에 있어서도 관객들이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천녀유혼'에서 느꼈던 영채신과 섭소천의 절절함,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인간과 요괴 간의 관계에 대하 고민하는 연적하의 갈등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마치 이런 감성들을 갖고 있는 것처럼 진행된다는 것이 문제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절절함과 갈등을 겪고 있지만 이를 보는 관객들은 '응??'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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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다. 정소동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아마도 CG의 적극적인 활용도를 통해 (영화의 제목도 나오기 전 첫 인트로에 완전히 CG로만 가득찬 액션 시퀀스를 넣은 것만 해도, 무언가 자신감마저 엿보이는 듯 했다) 현재 홍콩영화 CG수준을 보여주고 싶었거나, '천녀유혼'이 실현하지 못했던 영상들을 이제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이 의도는 완전한 오판이었다. CG의 수준이 부족한 줄거리를 보완하기는 커녕 오히려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을 정도로 '이상한' 수준이었다. 자신있게 내놓은 듯한 첫 번째 이연걸과 비비안 수의 대결 장면은 마치 휘날리는 눈발이 전혀 눈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두 배우가 그린 스크린 스튜디오 안에 있구나 라는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어색한 시퀀스였다. 이후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들에도 모두 화려한 CG가 포함되어 있는데, 너무 '나는 CG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한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배우들과 따로 노는 동시에 영화의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산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만들었다 (왜 그랬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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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운 작품을 볼 수록 최근 작품 가운데 '검우강호'가 단연 갑이었다는 생각을 재차할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최근 중화권 영화들을 보다보면 무리하는 것 같다 싶을 정도로 CG에 비중을 높이고 여기에 집중하는 경향을 만나볼 수 있는데, '검우강호'에서 확인했듯이 관객들이 바라는 건 헐리웃에서 볼 수 있었던 화려하고 높은 수준의 CG로 표현된 무협 영화가 아니라, 더욱 기본에 충실한 (여기에 더 바란다면 예전 작품에서 느꼈던 향수를 현대에 맞게 승화시키는 것)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의도한 바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은 몹시도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1. 비비안 수는 후반부에 또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심지어 나올 기회도 있었죠!) 그냥 첫 장면으로 그치더군요. 까메오로 스치기에는 이 캐릭터가 후반부에 할 수 있는 일이 좀 있었을 것 같다는 점에서 아쉽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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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다시보기 #1 _ 천녀유혼 (倩女幽魂, A Chinese Ghost Story)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어린 시절 시기를 놓쳐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고
비디오로나마 감상하였거나, 꼭 한 번 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있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들은 일단 재쳐두더라도, 한참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고, 배우의
이름을 하나 둘 익혀가던 시절에 보았던 영화들은, 대부분 극장에서가 아니라 VHS 비디오를 통한 관람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보았던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는 것이 하나의 소원일 수 밖에는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비디오로 정말 수십번도 더 보았던 작품들 중에 대표적인 영화들을 꼽으라면, 그 첫째로는 <인디아나 존스>같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당시 작품들과 <영웅본색>과 <천녀유혼> 3부작, 그리고 성룡의 영화들이었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 개관을 기념하여 영화제가 열렸는데, 여기에서 바로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천녀유혼>시리즈를 상영한다는 정보를 보고는, 아니 들 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기다렸던 이 날, 다른 중요한 일이 생겨버리는 바람에 극장에서 <천녀유혼>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또 놓쳐버리고야 말았다. 그래서 의기소침하고 있던 중에,
'아, 그러면 아쉬운대로 예전에 사놓고 아직 뜯지도 않았던 <천녀유혼 트릴로지>DVD를 꺼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DVD 한창 사던 시절에는 일단 신작들 위주로 열심히 관람을 했던터라,
<천녀유혼 트릴로지>처럼 예전 작품이 새롭게 발매되는 타이틀 같은 경우는, 비닐 포장을 뜯지도 않고
DVD장에 고이 모셔둔 경우가 종종 있었다(<폴리스 스토리>시리즈와 <용형호제>시리즈, <프로젝트 A>등도
아직 밀봉 상태다 --;;).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쉽게 극장 상영을 놓친 마당에, 부족하나마 그 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DVD세트로 다시 예전에 비디오로 느꼈던 감동을 느껴봐야 겠다 마음먹게 되었다.



<천녀유혼>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섭소천 (倩倩)>설화를 영화한 것으로, 이 작품 외에도
더 이전에 쇼브라더스에서 이미 영화화 된 적이 있으며, 그 외에도 영화라던가 애니메이션, 소설 등 다양한
버전으로 각색되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작은 물론 그 어느 버전의 <천녀유혼>과
비교해보아도 정소동 감독의 <천녀유혼>은 그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며, 곧 '천녀유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원작을 각색하여 영화화하는 경우, 원작 팬들로서는 영화의 결과물이 만족스럽거나 그렇지
않거나로 나뉘거나, 원작의 내용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천녀유혼'은 애초부터가
아주 짧은 단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나중에 읽게 되면 재미가 급감 될 정도로,
원작의 기본 뿌리를 바탕으로 세심한 캐릭터 묘사와 풍부한 이야기로 사실상의 '오리지널'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본래 원작에서는 영채신(장국영 분)이 유부남이고 섭소천(왕조현 분)을 사랑하게
되 그녀를 첩으로 맞게 되는데, 좀 더 러브스토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이 같은 원작의 설정을 버리고
영채신의 캐릭터를 좀 더 순수하게 만드는 한 편, 섭소천 역시 원작에서는 상당히 유혹적이었던 것을
축소하여(여기서 '축소'란 말 그대로 '섭소천'캐릭터가 본래 지닌 유혹적인 성향을 축소했다는 것이지, 왕조현이
그린 섭소천이 유혹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애틋하고 순수한 러브 스토리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 봐도 나름 재미있는 오프닝의 돌덩이 빵 개그)

사실 따지고보면 <천녀유혼>의 바탕이 되는 스토리구조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러브 스토리 라인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 그것인데, 귀신과 사람이라는 존재의
차이, 그로 인해 오게 되는 부모님의 반대(?),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 특히나 요염한 여자 주인공에게 쉽게
유혹 당해 죽거나 이용당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남자 주인공은 여기에 넘어가지 않게 되고, 이에 반한
여자주인공도 차차 남자주인공에게 본연의 자세(?)를 잊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이런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설정들이다. 사실상 특별할 것이 없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이 영화가 특별한 영화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그 중에서 첫 번째로 들고 싶은 것은 이 영화의 장르적 스타일을 얘기하고 싶다.


(이 장면에선 살짝(아주 살짝) <고스트 바스터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80년대 중국의 영화계는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로 대변되는 헐리웃의 영화들의 분위기가
서서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적극 수용한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서극 감독이었다. 이미 <촉산>을 만들 때부터 ILM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던 서극 감독은,
<천녀유혼>을 통해 호러와 로맨스, 코미디, 액션 등 다양한 장르적 특성을 중국 고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 영화의 감독은 무술감독으로 더 유명한 정소동 감독이지만,
<천녀유혼>은 정소동의 영화인 동시에 서극의 영화이기도 할 만큼, 그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상당히 많이
가미된 작품이였다.


(생긴건 거의 미이라에 가깝고, 하는 짓은 좀비에 가깝다)

<천녀유혼>은 기본적으로는 러브 스토리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러브 스토리를 더 강력하게
해주는 데에는 호러라는 장르가 배경으로 작용했고, 호러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 될 만큼 이 영화는 호러 영화로서도 상당히 인정 받는 작품이다. 특히나 단순한 귀신을 넘어서서,
거의 촉수에 가까운 혀를 내두르는 요괴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매우 호러스럽고 파격적인 것이었으며(특히 혀!),
중국 호러 영화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았던 설정이었다. 더군다나 막판에 가서는 거의 악어(?)의 모습과도
비슷한 일종의 괴수로 변신하기에 이르는데, 이런 형태의 괴수의 모습은 중국 호러 영화라기 보다는,
일본의 호러물이나 괴수영화에서 주로 등장했던 것들로 상당히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된다(거대한 혀도
그랬지만, 혀를 찔렀을 때 나오는 타액 들이나 역시 끈적끈적한 타액 들이 난무하는 설정 들도 이전 중국영화
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었다).


(장국영은 뭘 보고 저리 놀란 것일까? ^^)

또한 초반 관약사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죽은 자들의 묘사에 있어서도 마치 '미이라'에 가까운 모습들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제거되는 장면 묘사에 있어서도,
마치 좀비에 가까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상당히 이채롭다. 그리고 이번에 DVD를 보면서
새롭게 보게 된 점은, 바로 저 미이라 같은 존재들의 움직임이었는데, 당시 비디오로 볼 때에는 물론 그런
기술적인 방식들은 알지도 못하던 때였긴 했지만, 움직임에 있어 전혀 특징적인 점을 알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보니 마치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과 같은 스톱모션 방식으로 주로 촬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톱모션과 직접 사람이 분장하는 방식이 장면에 따라 함께 쓰였다).


(이 장면은 완벽하게 <레이더스>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오마주일 것이다)

여기에 중국영화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코미디 적인 요소들도 상당히 많이 배치되어 있는데,
장국영의 노래와 함께 시작되는 초반 부분에 영채신이 빵을 꺼내먹으려고 하는데 돌 같이 굳어있어서,
그 빵으로 돌을 깨는 등의 장면은,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에와서 봐도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짧게 짧게 지나가지만 영채신과 연적하(우마 분)가 나누는 대화에는 하이 개그와 썰렁 개그를 넘나드는
조크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당시 중국영화의 성향이 대부분 그리하였듯이,
크게 극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오바스럽게 웃기는 부분들이 이 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어쩌면 이 같은 부분은
당시 이런 장르를 좋아했던 중국 관객들을 위한 배려일지도 모르나, 어쩃듯 아주 과하게 쓰이지는 않으면서
적절하게 제어되고 있는 듯 하다.


(왕조현 누님, 이런 앙탈스런 표정으로 유혹을!!)

사실 개인적으로 <천녀유혼>을 추억해 볼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왕조현 누님과 장국영의 욕조 속 수중
키스씬이 아니라(당시 나이가 어려서인지 여자 주인공보다는 남자주인공에게 더 정이 가던 시절이었음;;),
바로 연적하 즉 우마가 펼치는 액션씬이었다. 어린 시절 <드래곤 볼>에 나오는 손오공의 순간 이동 모션과
(두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대고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 순간이동하는), <우뢰매>에 등장하는 형래의 에스퍼맨
변신 동작(옆돌기 후에 짠!)과 더불어 가장 많이 따라했던 영화 속 동작은 바로 연적하가 귀신들을 물리 칠 때
사용했던 권법들이었다. 손가락을 살며시 깨물어 피를 낸 뒤 손 바닥에 진을 그리고 나서 시연하는
‘천지무극 건곤차법'등의 권법들은 비주얼 적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었다. 마치 장풍을 쏘듯
연적하가 액션을 취하고 나면 땅 밑에서부터 폭발음과 함께 튀어 오르던 장면과 지옥에서 검법을 겨루며
두 검이 스칠 때 번개가 이는 장면은 지금에봐도 충분히 인상적인 장면들이었다.
정소동 감독은 와이어를 많이 쓰는 액션씬으로도 유명한데, <천녀유혼>의 액션씬들도 물론 와이어가 많이
쓰이기는 했지만, 숲 속이라는 점과 밤의 이라는 설정 때문에 와이어 액션이라는 점이 크게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으며, 왕조현의 펄럭이는 옷 자락과 더불어 휘날리는 천 조각들의 묘사들은 지금봐도 참으로 멋진
장면들이 아닐 수 없었다.


(보요보로미!)

아무리 그래도 <천녀유혼>하면 장국영과 왕조현을 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전과 이후에도 수많은
<천녀유혼>들이 있어왔지만 이 둘이 아닌 영채신과 섭소천은(특히 섭소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 두 캐릭터를
완전히 이미지화 시켜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국영은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 <천녀유혼>과
<영웅본색>으로 인해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이기도 한데, 멍청하리만큼 순수하면서도 밉지 않고,
여성적이면서도 자신이 지켜야할 대상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영채신의 캐릭터를,
과연 그가 아니면 누가 더 잘 연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예전에 볼 떄는 연기력이나 이런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보았었지만, 이번에 새롭게 보니 <천녀유혼>에서도 장국영이 얼마나 '연기'를 잘 하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다시 <천녀유혼>을 보니, 새삼스래 '장국영 참 연기 잘하는 배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앞서 살짝 언급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당시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그다지 큰 임팩트로 다가오지는
않았었지만, <천녀유혼>하면 바로 '왕조현'을 떠올릴 정도로, 이 영화에서 '왕조현'이라는 배우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섭소천'의 캐릭터에 있어서 이전과 이후에 나온 모든
섭소천을 무색하게 할만큼, 섭소천=왕조현 이라는 절대 공식을 만들어버렸으며, 당시로서는 상당히 야했던
등판 노출과 수중 키스씬, 그리고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나뭇가지 사이를 선녀처럼 날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당시 수 많은 남성들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기에 충분했다. 사실 왕조현도 당시 홍콩 영화계의 대표적인
여자 배우로서 여러 작품 활동을 했음에도, 대부분의 관객들의 머리 속에 오로지 '천녀유혼'으로 기억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녀는 어린 시절 농구선수 출신이었을 만큼 여배우 치고는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는 배우이기도 한데, 더군다나 약간 외소한 체격인 장국영이 상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더 외소해보였던 데에는, 그녀의 연기가 크게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아아~아아~~~, 등장하면 꼭 노래와 바람이 불어주던 왕조현 누님)

개인적으로는 장국영, 왕조현 보다도 <천녀유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바로 '연적하'역할의 우마이다.
사실 그는 다작을 하는 홍콩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작품을 했을 정도로, 당시 홍콩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하는 다작 배우중의 한 명인데, 개인적으로 우마가 출연한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 깊고도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천녀유혼>을 꼽을 수 밖에는 없겠다. 사실 그는 이 영화와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약방의 감초같은 코믹스런 조연으로 출연한 적이 많았는데, 어쩌면 가장 멋지게 나오는 이 영화가
팬들에게 가장 인상깊은 작품이 된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연적하'라는 캐릭터를 그림에 있어 그 독특한 수염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내면서, 극중이름을 '우마'로 착각할 만큼
대단한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 우마의 출연작 중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성룡과 매염방이 출연한
<미라클>을 떠올리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도 우마는 자신이 가장 많이 연기한 감초 같은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영화들과 비교해보자면, 과연 같은 배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녀유혼>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그의 평소 연기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천녀유혼>은 우마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작품이되었다!)

<천녀유혼>의 음악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당시 홍콩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였지만, 영화 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영화의 음악과 삽입곡들이었다. 홍콩 영화의 팬들이라면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다 들리는데로 엉터리 중국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불러 봤을 정도로, 포인트가 되는 장면에서는 꼭 노래가
흘러나왔다. 요즘 영화들처럼 그냥 노래가 삽입된 것이 아니라, 그 장면 그대로 독립해서 본다면 뮤직비디오에
가까울 정도로, 가사와 더불어 대사 없이 완전히 노래와 장면에 의존하는 형식으로 담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으로 꼽은 장면 역시 바로 우마가 부르는 '도도도'장면인데,
실제로는 우마가 아니라 음악을 만든 황점이 직접 노래를 불렀다. 곡을 만든 황점은 본래는 다른 가수가 부르길
원했었지만, 서극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냥 직접 부르는 것도 좋겠다는 말에 결국 본인 자신이 직접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황점은 이 노래를 만들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호탕하고 자유분방한
곡의 느낌이 살아있는 듯 하다.


(당시 꿈에 자주 등장해, 어린 나를 괴롭혔던 아줌마, 아니 아저씨 ^^)

<천녀유혼>의 음악 감독을 맡은 황점은 홍콩 영화음악계의 존 윌리엄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영화음악을
만들어온 거장이다. 이 영화를 비롯해 <소오강호> <동방불패> <지존무상> <황비홍> 등의 영화음악을 만들었으며, <소오강호>의 그 유명한 곡 '滄海一聲笑 '도 황점의 작품이다. 그는 영화 배우로도 상당히 많은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황점은 처음 <천녀유혼>의 제작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함께 참여하기를 바랬으나, 제작사와
감독이 먼저 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음악감독이 만든 음악들이 마음에 들지 않자, 서극은
황점에게 부탁을 하게 되 나중에 합류를 하게 된 케이스였다(만약 황점의 '도도도'나 '여명부요래(黎明不要來)'가 없는 천녀유혼이었다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천녀유혼>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은 왕조현과
장국영의 러브씬에서 흘러나오던 '여명부요래'일텐데, 이 곡은 잘 알다시피 엽천문이 불렀으며, 본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다른 작품을 위해 만들었다가 쓰이지 못한 미발표곡이었는데, 촬영 말미에 곡을
추가하길 원했던 감독의 권유에 황점은 이 곡을 떠올렸다고 한다. '새벽이여 오지 말아요'라는 가사가 이렇게
잘 어울릴 영화가 또 어디있을까!

영화음악에 관한 얘기를 조금만 더해보자면, 황점은 당시 막 신디사이저가 출시되던 시점이라 아주 재미있게
여러가지 시도를 쉽고 재미있게 해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음악을 잘 들어보면 상당히 SF적인
소리들을 들을 수가 있는데, 이게 다 신상(?)이었던 신디사이저의 기능을 맘껏 활용해보려는 황점의 의도가
묻어난 것이라 하겠다.


(어리버리 어리숙한 영채신의 모습은 장국영이 완벽히 그려냈다)

사실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영화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천녀유혼>을
비롯해, 명작 다시보기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추억만 가지고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영화들에게
지금와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영화적인 우수성과 재미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지금처럼 영화를 볼 때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아도 그저 재미있었는데,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봐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는 말이다. 확실히 21세기에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천녀유혼>은 더욱 소중한 영화로 평생 남을 것이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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