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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Train To Busan, 2015)

세월호 이후, 혐오의 시대에서 생존하려면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실사영화 '부산행 (Train To Busan, 2015)'은 그의 전작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처럼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좀비들의 확산으로 마비가 되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부산으로 향하는 KTX열차 안을 배경으로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막막한 현실과 특수한 재난 상황에 놓인 각기 다른 이해 관계의 인물들의 충돌을 빠른 템포로 그려낸다. 물론 '부산행'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좀비가 맞지만 이 영화를 좀비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좀비라는 설정은 말 그대로 이 재난을 가져온 소재와 장르적인 요소로만 활용되고 있고, 영화의 구성은 오히려 전형적인 재난 영화에 가깝다. 좀비와 재난. '부산행'은 이 두 가지에서 떠올려 볼 수 있는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형적인 것에서 오는 장르적 쾌감을 만끽하는데에 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단순한 장르 영화 이상의 인상을 주는 이유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무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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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거의 색이 바래지기는 했지만 한 때 미국 영화는 9/11 테러 사건을 전후로 나뉜 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9/11 이후의 미국 영화들을 직간접적으로 또는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9/11의 기억과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최근의 한국 영화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도드라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미리 말하고 싶은 점은 '부산행'을 세월호 참사와 전혀 연결 짓지 않아도 영화는 장르 영화로서, 그리고 연상호 감독이 꾸준히 해오던 테마의 발전으로서 충분히 성립 가능한 영화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세월호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9/11 이후 미국 영화들의 다수도 직접적으로 연관 지어 제작된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산행'은 세월호 참사를 이제 그만 좀 얘기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좀비들에게 공격을 받고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할 때 정부와 언론은 일부 과격 시위 단체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전한다. 또한 실상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들의 확산을 막지도,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지도 못한 상황에서, 현재 모든 상황을 완벽히 관리하고 있다며 안심하라는 기자회견을 연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완전히 좀비들을 막아낸 이후에 상황에도 현실과 비슷한 대처를 하지 않았을까? 끝까지 좀비는 없었다고 부정하다가 나중에야 천천히 진실이 밝혀져도 또 딴소리와 책임 소재를 묻는 공방으로 시간이 흘러 잊혀지기 만을 바랬을 것이다. 세월호 때도, 메르스 때도 정부는 모두 구조 했다고,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거짓말로 안심시키는 동안 누군가는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게 되었었다. '부산행'의 시작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영화네, 영화!'라고 웃어 넘길 수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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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같은 영화적인 캐릭터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더 현실같아서 비참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철저하게 고립된 KTX 안의 상황은 더 지옥과도 같다. 말도 안되는 영화적인 캐릭터인 상화를 앞세워 좀비들을 물리치고 아직 좀비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승객들이 대피하고 있는 열차 간으로 이동해왔지만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던 승객들에게 주인공 일행은 감염 되었을지도 모를 위험한 존재이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생존의 확률을 낮추는 변수인 동시에, 정반대로 버팀막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칸의 승객들이 처음 부터 전체적으로 나서서 이들을 막고 못들어 오게 하자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스스로의 양심과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앞으로 나서서 큰 목소리를 낸 용석 (김의성)의 행동 이후에야 함께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다른 대부분의 승객들 모두 저들이 감염 되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조금씩 갖고는 있었으나, 차마 이 상황에서 그들을 내치는게 양심에 걸리기도 하고 또 자신만 너무 나쁜 이가 될 것 같아 주저하고 있던 바를 용석이라는 매게체로 인해 자신들의 욕망을 타인의 손을 통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자신이 피해나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나서서 혹시라도 몰매를 맞기는 싫은 또 다른 이기적인 생각 또한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론 전면에 나서서 생존을 위해 이기적인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이성적인 용석 보다도 용석의 등 뒤에 숨어 목소리를 보태며 주인공 일행을 배척한 승객들이 더 나쁜 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만약 용석이 아니라 다른 이가 용석과 다른 목소리로 주인공 일행을 다 같이 구하자고 외쳤더라면 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칸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승객들은 적어도 처음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선뜻 어떻게 하자는 말이나 행동을 주저하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마치 용석이 그랬던 것처럼 '자, 여러분 저들을 빨리 도웁시다. 이리와서 함께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면 아마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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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영화같이 장르 영화의 구성에 충실한 재난 영화를 세월호 참사 이전, 아니 자신에게 깊이 각인 된 어떠한 현실의 인재나 사건 등의 발생 이전에 보았다면, 장르 영화의 쾌감에만 충실하게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재난 상황 속에서 국가나 정부가 뉴스 등에 나와 하는 말은 '뭐 영화 속 정부 모습이 다 저렇지'하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고, 열차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 들도 '아..이거 너무 뻔한데'라며 조금은 전형적인 측면에 심심해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라는 실제 재난을 느껴야만 했던 그 이후의 영화다. 떠올리지 않을 래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다들 안전한 열차 안에서 대기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나 정부의 브리핑을 들었을 땐 '아, 만약 나에게도 저런 상황이 닥치면 그냥 하라는데로만 해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고, 또 세월호 이후 그 유가족들과 이 참사를 두고 벌어지는 대한민국 사회의 만연한 혐오를 지켜 보았기에 부끄럽지만 내 가족들에게 '혹시 저런 일이 생기면 절대 나서지 말고, 남들 생각하지 말고 너만이라도 꼭 살아야 돼'라고 가르치거나 당부할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이 씁쓸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재난 영화를 보고는 희생하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혹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우린 저런 사람이 되자'라고 말해왔는데, 이번에 보게 된 '부산행'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이 영화 속 재난이 더 이상 스크린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 몇 년간 실감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기에, 마치 영화 속 용석이 재수 없고 화가 치밀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저렇게라도 나와 내 가족은 살아 남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어 더욱 가슴이 아팠다. 더 나아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그 참사 속에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 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사회의 무시를 넘어선 질타를 보며, 누군가에게 '그래도 영웅이 되어야 해'라고 선뜻 말하기가 주저 될 수 밖에는 없었다 (말이 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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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부산행'을 보고 나서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더 큰 잘못을 한 이는 따로 있으나 양심을 가진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커다란 죄책감들. 그래서 차라리 스스로 좀비가 되기를 선택하다시피 한 어떤 장면은, 처연함도 들었지만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이들을 죽거나 죽지도 못하는 자가 되도록 만드는 현실이 떠올라 더 안타까웠다. 



1. 저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떠올렸지만 본문에도 썼던 것처럼 이 영화는 애초부터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영화도 아닐 뿐더러, 그렇게 읽히지 않아도 충분한 상업 장르 영화입니다.


2. 혹시나 중간에 공유가 카누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ㅎ


3.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라는 캐릭터는 '베테랑'에 등장하는 아트박스 사장 캐릭터의 연장선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만약 마동석=아트박스 사장 캐릭터가 수 많은 한국 영화에 조금씩 다 등장하는 일종의 신개념 캐릭터를 구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았어요 ㅎㅎ 무슨 영화에 나오든 마동석이 연기한 캐릭터는 덩치 좋고 힘좋은 아트박스 사장인데, 각 영화마다 분량이 조금씩 다른거죠. 마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동일한 시대를 사는 것처럼, 코리안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마동석 캐릭터가 모두 동일하게 존재하는. 말도 안되는 ㅋㅋ


4. 아, 스크린X 극장에서 보았는데 확실히 좀비 나오는 장면들에서는 몰입도가 더 좋더군요. 특히 모든 장면이 스크린X면 좀 정신 없을 것 같다 싶었는데, 다행히 좀비가 나오는 액션 장면들만 활용되고 있어서 좋았어요. 


5. '서울역'도 곧 개봉인데, 더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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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희 (Our Sunhi, 2013)

우리는 누군가를 알고 있는가



홍상수 감독의 신작 '우리 선희'는 그의 전작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나 '다른 나라에서' '북촌방향' 등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또 다른 작품이다. 흔히 어떤 좋은 것을 평가할 때 정반대의 개념을 들며, '이러면서도 이러하다'라는 평가를 하곤 하는데, 홍상수의 최근 작품들만큼 이러한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선희'는 살짝 기대를 덜하기도 했었다. 홍상수 월드에 이미 녹아든 정유미, 이선균, 김상중과 새롭게 합류한 정재영이라는 조합, 그리고 대략의 시놉시스는 '아, 또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선희'는 정말 또 한 번 큰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었다. 최근 몇 년 간 본 영화들을 통틀어 봤을 때, 개인적으로 '재미있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매번 사용한 감독은 아마 홍상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정말 재미있다. 사실 보는 내내 그 재미에 흠뻑 빠져서 흥분이 될 정도다. 어쩌면 이렇게 단촐해 보이는 구성으로도 무궁무진한 재미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지, 놀라움과 부러움이 아니 들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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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최근 작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이야기와 구성을 담고 있었는데, 같은 이야기를 두고 다른 시각의 버전을 포개어 논다거나, 시공간의 모호함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 한다거나, 같은 인물을 두고 서로 모르는 다른 인물들이 벌이는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한 편으론 단순하지만 사실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구성을 만들어 냈었다. '우리 선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엔 선희(정유미)라는 같은 인물을 두고 세 남자가 각각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과연 누군 가를 정말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홍상수는 최근 작들을 통해 자신이 의문을 갖고 있는 어떠한 개념들(너무 일반적이라 우리가 잘 생각해보지 않는 것들에 대해)에 대해 하나 씩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의 최근 작들을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대사들이 있는데, '이뻐' '착해' 등이 그렇다. 홍상수 감독은 이 일반적인 표현들을 담기 위해 반대로 복잡한 이야기 구성과 깊이를 들고 있다. 이쁘다고 할 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사람을 보고 이쁘다고 할 수 있는지. 착하다는 것은 진정 무엇인지. 누군 가에게 착하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 그는 이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주제를 최근 탐구해 왔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선희'는 이런 맥락에서 누군가를 안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과연 정말 안다고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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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의 작품들에서 특히 도드라졌던 또 다른 점은, 이야기의 소재나 방식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있었다는 점인데, 즉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사소한 일들에서 시작한 아주 개인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영화 감독이거나 영화과 학생들, 교수들 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홍상수는 자신이 실제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조금의 상상력을 더해 관객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비슷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는데, 우리 내 하루하루가 매일 똑같지 않듯이, 그의 이야기도 항상 새로움을 들려준다. '우리 선희'를 보면서 특히 더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단 극 중 인물들 가운데 하나를 자신으로 설정하지 않고 선희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남자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각각 분배하여 결국은 자신이 살면서 후회스러웠던 행동이나 말, 그러니까 한 번 내뱉거나 실행해 버려서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 세 명의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 했다. 즉, 김상중과 이선균, 정재영이 연기한 각각의 인물들은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지만, 이 셋을 한꺼번에 보면 서로에게 두 번째 기회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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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셋이 선희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어 가는 방식이 이 영화의 포인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 가에게 선생님이나 선배가 되어 이야기를 해줄 때가 생기게 되는데, 그 말들이 나중에 생각하면 잘못된 이야기인 경우도 있고, 더 나아가 말하는 순간에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존심이나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그냥 지나치고 마는 일들이 종종 있다. 영화는 이 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만이 볼 수 있는 이들의 두 번째 기회, 그러니까 직접적이진 않지만 다른 상황, 다른 인물을 통해 기회를 얻게 되는 두 번째 순간을 잘 보여준다. '우리 선희'라는 제목도 그런 측면에서 참 흥미롭다. 남자 셋은 각각 선희를 '우리 선희'로 생각하고 있지만, 과연 선희는 이들에게 '우리 선희'였는지 아니면 누군 가에게만 그러했는지, 영화는 참 덤덤하게 이 과정을 묘사한다.


누군 가를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우리는 과연 누군 가를 평가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두 질문은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과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 가를 평가할 수 있느냐는 얘기가 된다 (이러고 보니 홍상수의 전작들은 다 같은 맥락이었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의 딸도 아닌 선희를, 우리 선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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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희'는 홍상수 감독의 최근 작 가운데서도 가장 명확하고 대중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무언가 깊은 슬픔이나 화두를 떠안기 보다는, 오히려 '피식'하는 미소와 함께 '그래 맞아..' 라며 혼자 중얼거리게 만든다. 아... 정말 홍상수 월드의 끝은 어디일까. 금방 끝이 보일 것만 같았던 이 세계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세계라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만 같다.



1.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어요. 보는 내내 너무 재미있어서 안달 날 정도. 그의 팬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아직도 뭔지 잘 모르겠는 분들은 '우리 선희'를 보세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홍상수 영화의 정수는 그대로 인 흥미로운 작품이었어요.


2. 이제 이선균과 김상중은 얼굴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큭큭 거림이 ㅋㅋㅋ


3. 이민우씨는 이번 작품으로 거듭나려나 했는데 비중이 거의 없더군요. 은근히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아쉬웠어요.


4.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이 곡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겠죠. 정말 신의 한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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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2)

가지 않았던 길 앞에 서다



홍상수의 신작 '다른나라에서'를 보았다. 이자벨 위뻬르의 출연으로 더욱 화제가 되었던 '다른나라에서'는 전작인'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과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한 편으론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간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그냥 하는 말로 '재미있다'가 아니라 극장을 나오며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아, 정말 영화 재미있게 만들었네!'라는 생각이 드는 아기자기함과 그 속에 묘한 감정선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홍상수는 전작들을 통해 같은 인물들을 두고 시공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거나 (북촌방향),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 모호함 속의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옥희의 영화), '다른나라에서'는 모호함은 덜하고 좀 더 명확해졌으며 시공간은 같지만 같거나 다른 인물들의 또 다른 이야기 (가지 않은 길)를 통해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재미를 한가득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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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엄마와 함께 빚에 쫓겨 모항에 내려온 딸 (정유미)이 심심해서 써 본 세 편의 작은 이야기(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안느 (이자벨 위뻬르)에 관한 이야기다. 모항이라는 동일한 공간, 여름이라는 같은 시간대 그리고 그 시공간에 존재하는 같은 사람들. 하지만 세 명의 다른 안느가 만나는 이 시공간과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는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물론 이자벨 위뻬르가 모항을 배경으로 유준상, 정유미 등 우리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신선함과 매력을 준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개인적으로 '다른나라에서'는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의 어느 한 접점이라고 생각되는데, 좀 더 명확해진 '옥희의 영화'이자 대놓고 챕터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정유미가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을 매번 삽입하면서 챕터화를 한 '북촌방향' 말이다. 이렇게 관계나 구성에서 좀 더 명확해지면서 영화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편안한 작품이 되었고, 그의 다른 여름 영화들처럼 (해변의 여인, 하하하) 좀 더 유쾌함과 살랑거림을 담은 가능성의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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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과의 접점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나라에서'의 가장 큰 매력은 세 명의 안느의 이야기가 모두 밀접한 점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블록버스터 영화였거나 반전을 핵심으로 내세운 영화였다면 영화 속 다양한 복선과 연결고리들을 굉장한 무기로 활용했겠지만, 홍상수는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또 다른 우연의 가능성인냥, 그냥 자연스레 흘러버린 물줄기인냥 손 가는대로 그려냈다. 세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그들은 모르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또 다른 모습 (그들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아마도 블록버스터 영화였다면 시간 여행을 통해 그 인물의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만나보게 될 때와 유사한 흥미로움과 영화 속 인물들은 처음 겪는, 처음 하는 일이지만 이를 본 관객들 입장에서는 반복을 보게 되는 것에서 오는 다른 재미와 다른 포인트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홍상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배열해 놓고 관객에게 반복과 가능성의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안느에게도 일부 관객과 같은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 즉, 정말 각기 다른 이야기 속 다른 안느라면 (이럴 경우 같은 안느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지만)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주었는데, 이 장치를 묘사하는 방식이 관객으로 하여금 '엇, 이상한데?'라고 단순히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애잔함을 남기고 있어 특히 더 인상적이었다. 바로 안느의 뒷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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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가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가능성을 마치 인생극장처럼 펼쳐놓은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 앞에 선 안느의 모습 때문이었다. 한 쪽으로 가면 안전요원을 만나게 되고 다른 한 쪽으로 가면 등대로 가는 길인데, 안전요원과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등대에 가게 되면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서의 중요함 보다는, 이 길 앞에 잠시 멈춰선 안느의 뒷 모습이 무언가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안느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진 짧고 응축된 대화들을 통해 단순히 프랑스 여인 안느 만이 '다른나라에서'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다른나라'를 경험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세트 하나 없이 실존 하는 장소들만 가지고 촬영한 이 영화가 마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모항'이라는 가공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모항의 자연적 아름다움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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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작들의 비하자면 정서적인 메시지는 좀 덜하고 유쾌한 편안함이 더 가미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몇몇 장면들은 정말 홍상수 영화의 다른 명장면들이 그러하듯이,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 눈물겹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예고편에서도 등장했던 유준상이 연기한 안전요원이 텐트 안에서 안느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그 장면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맥락이 없는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한 순간이었는데, 그 장면이 주는 임팩트가 어떠하였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유준상이 너무 아름답게 노래해서도 아니고, 곡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만도 아닌데 그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ANNE, THIS IS A SONG FOR YOU.
ANNE, YOU HAVE A BEAUTIFUL NAME.
IT'S RAINING. BUT IT'S RAINING.
ANNE WANT TO GO TO… GO TO LIGHTHOUSE.
BUT IT'S RAINING, ANNE IS COLD.
DO YOU WANT TO GO LIGHTHOUSE?
BUT, WE DON'T KNOW. WE DON'T KNOW.
ANNE, ANNE, ANNE.





1. 전 개인적으로 안전요원의 텐트 안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하긴 홍상수 영화에서 텐트 안을 잡아냈다면 그것도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네요 ㅎ


2. '하하하'를 보고 가장 크게 발견한 건 역시 유준상이었는데, '다른나라에서' 드디어 터져나왔어요! 주옥 같은 영어 명대사를 여럿 만드셨습니다 ㅋ


3. 홍상수 투어의 장소가 또 추가되었군요. 이제는 모항도 가봐야할 곳!


4. 이 작품에서 새롭게 발견한 이자벨 위뻬르의 모습이라면 '귀여움' 이었어요. 빨간 원피스를 차려입고 나선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더군요.


5. 도올 선생님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서 이미 첫 등장의 뒷모습부터 웃음이...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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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가까이 (Come, Closer, 2010)
가을로 위로하는 러브스토리


김종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는 각기 다른 다섯 커플의 러브스토리를 느슨한 관계로 엮은 하나의 러브스토리다. '러브 액츄얼리'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바벨'과는 달리 인물들 간에 조금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확실히 좀 느슨한 관계로 이뤄져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조금만 더 가까이'는 전혀 다른 다섯 편의 단편으로 볼 수 있는 동시에, 하나의 장편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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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피소드는 작은 프레임 안에서 진행된다. 이 이야기는 노트르담에 폴란드인인 그루지엑과 서울 카페에서 전화를 받게 된 효서와의 통화가 전부다. 이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장편 '조금만 더 가까이'의 시작이자 느슨한 옴니버스의 키가 되는 에피소드이기도 한데, 일단 뮤직비디오 같다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나은 표현이 필요할 영상미 덕분에 금새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프레임을 나누는 방식이나 대사를 나누는 방식은 마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까이'라는 제목을 한 번 쯤 생각하게 한다. 그루지엑과 효서는 각가가 노트르담과 서울에 떨어져 있지만 이들에게 그 만큼의 거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의 통화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 번 더 '조금만 더 가까이'라는 제목을 떠올려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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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게이 인 영수와 그의 여자후배 세연의 첫 섹스를 담고 있는데, 이 에피소드는 단순한 첫 경험이라는 것보다는 더 많은 미묘한 감정이 담긴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감정이 피부로 다 느껴질 정도로 (장면의 수위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들의 아슬아슬한 감정선 때문에) 정말 '떨리는' 순간을 담고 있다. 게이인 남자가 여자와 갖는 첫경험의 측면에서도 이 에피소드는 특별할 수 있겠지만, 이런 점을 생각지 않더라도 그 '떨림'과 주저함이 에로티시즘과 함께 맞물려 숨을 멎게 한다. 사실 이런 에로틱한 장면이 있는 작품인줄 몰랐기 때문에 조금 놀랐기도 했었는데, 그 몰입감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정말로 이 시퀀스가 완전히 다 끝나기 전까지 극장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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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 (윤계상)와 은희 (정유미)의 이야기는 어쩌면 가장 보편적이 되어버린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놓아주지 못하는 미련 등에 관한 에피소드인데, 영화는 여기서 자신만의 장점을 마음껏 드러낸다. 김종관 감독은 '조금만 더 가까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주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영화의 공간이 되는 장소와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가을'이라는 공간의 장점이 이 에피소드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비가 오고, 보케가 아름답게 펼쳐진 창밖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이야기는 마치 비내리는 가을 밤에 수줍게 흘러나오는 이른 입김처럼 관객에게 전달된다. 영화는 이 이야기가 만약 다른 계절과 배경에서 이뤄졌다면 과연 지금과 같았을까 라는 물음을 갖게 한다. 그 만큼 철저히 공간 안에 놓인 인물들과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런 이들의 이야기는 가을이라는 계절로 인해 위로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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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윤희석)과 혜영 (요조)의 이야기도 직접적인 가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단풍으로 젖어있는 가을 남산을 오르며 나누는 이들의 대화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 가을을 배경으로 했을 때 이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추억과 기억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 장면은 '조금만 더 가까이'를 마무리하는 멋진 피날레가 된다.

사실 '조금만 더 가까이'를 보면서 스스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내게는 항상 위로보다는 우울함과 쓸쓸함을 증폭시키는 매개체로 함께 했던 가을이라는 존재가 '위로'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함께 들었던 음악,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남겼던 거리, 뜨거운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는 그 곳과 그 계절의 기운이, 특히 가을이라는 것은 매번 아름답지만 쓸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들이 위로가 된다는 영화의 감성은 그간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되었던 GV에서 김종관 감독은 유독 '거짓말'이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자신의 추억이나 경험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수 많은 거짓말들이 더해지게 되고, 그 많은 거짓말들을 통해 본래 하고자 했던 얘기를 결국 돌려 말하거나 말하지 못하고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 말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어쩌면 가을에 위로받는다는 이야기 역시 또 다른 거짓말이 아닐까 싶었다. 아직까지 가을에게 위로받는다기 보단 그로 인해 아파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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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 영화 (Oki's Movie, 2010)
모호함으로 완성되는 논리


홍상수 감독의 신작 '옥희의 영화'는 참 특별한 영화다. 최근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하하하'가 묘한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신작 '옥희의 영화'는 이 연장선상에서 살짝 벗어나 있으면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우연을 통한 긴장감과 인물들간의 관계의 대한 논리 역시 기대하는 바를 벗어나는 것으로 오히려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 특별한 작품이다. '옥희의 영화'는 홍상수의 예전 영화들과 비슷하게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 이렇게 4개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는 옴니버스는 물론 아닐 뿐더러 단순하 '장'의 개념으로 보기도 힘든 묘한 독립성을 지닌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옥희의 영화'는 이런 모호함의 논리도 가득찬 작품이다. 각 편의 인물들은 같은 인물인 동시에 다른 인물이며, 배우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시에 사실은 1인 다역에 가깝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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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각 '편'은 완전히 연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독립적이지도 않다. 즉 각 편마다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은근히 주고 있기는 한데 (실제로 주느냐 마느냐와는 별개로 관객들에게는 확실히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영화들의 인과관계와는 달리 서로의 이야기를 맺어주고 인물들의 연결 고리를 이어주는 것에 영화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중에 읽게 된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일부러 이런 고리를 연결하지 않는 것을 통해 이질감을 주려고 했다는데, 확실히 이 부분에서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특히 이미 이런 인과관계나 복선 등에 익숙해진 관객들로서는 이런 이질감을 더더욱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진 작가 여성의 경우 묘한 여운을 주고 마는데, 관객은 '아, 이 인물이 나중에 어떻게라도 이야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영화의 GV에서 여성관객에게 예전 여자친구에 대한 질타를 받게 되는 진구의 이야기는 나중에 등장하는 송교수의 이야기 혹은 송감독, 아니면 진구의 다른 이야기와 겹쳐지진 않을까 엮어보게 되지만 사실 이들 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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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호함의 연결 고리는 각 편에 등장하는 같지만 다른, 아니 다르지만 같은 인물들로 인해 더 깊어진다. '주문을 외울 날'의 등장하는 결혼한 진구의 집은 이후 '키스 왕'에서 등장하는 옥희의 집과 동일한 곳이다. 하지만 진구는 이 집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것은 관객만이 느끼는 이질감일 수 있다. 그러면서 이 네 편의 이야기를 시간 상으로 분류해보고 그 속에서 이들의 관계를 다시금 정리해보게 되는데, 뭐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비교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인셉션'은 치밀한 설계를 통해 관객이 여러가지 정답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고안한 경우라면, '옥희의 영화'는 처음에는 이와 비슷하게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이는 감독이 의도했다기 보다는 일반적인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스스로 학습한 결과로 인한 것이라 봐야겠다) 것 같지만, 막상 답을 찾으려 연구하다보면 결국 애초부터 답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다. 다시 말하자면 '인셉션'은 여러가지 정답을 정해둔 경우고, '옥희의 영화'는 정답을 아예 만들어두지 않은 경우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모호함은 곧 이 영화의 논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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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마지막 편인 '옥희의 영화'에 가서 본격적으로 이 모호함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말그대로 이 네 번째 편은 옥희가 만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젊은 남자 (진구), 늙은 남자 (송교수)와 각각 동일한 아차산에 갔던 경험을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해 놓은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는) 이 '옥희의 영화'는 이 모호함에 대한 작은 단서가 된다. 씨네 21의 정한석 기자가 글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네 번째 편인 '옥희의 영화'를 통해 결국 진구와 송교수는 극중 배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배우가 되어버린 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선균, 문성근 등이 연기한 캐릭터가 1명이 아닐 수 있다는, 1인 다역일 수 있다는 좀 더 확실한 이유가 된다. 

더불어 '옥희의 영화'는 좀 더 홍상수 개인의 영화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극중 주인공이 영화 감독 및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그렇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건국대를 배경으로 한 것도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극중 유준상에게 질문을 하던 학생이나 이번 진구의 GV의 장면을 보면서도 역시 홍상수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는데, 감독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관객들에 대한 작가로서의 자존심이랄까. 가끔은 바램 정도가 아니라 작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나 방향을 강요하듯 요구하는 관객들에게, '니가 뭘 알아'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말하는 듯 해 오히려 시원한 부분도 있다. 감독이 원해서 18세이상 관람가가 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맘 같아서는 30금 정도로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은데,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한 자존심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것 만으로도 인정해야할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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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러 장면이 인상 깊었지만 본능적으로 가장 호기심이 넘쳤던 장면이라면 '폭설 후'에 등장한 강의실 장면을 들 수 있겠다. 폭설로 인해 수업에 진구와 옥희만 오게 되자 송교수는 이들에게 아무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하여 이 문답은 시작되게 되는데, 그 질문들이 그야말로 아주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물음들에 가깝다. '저는 현명한가요? '제가 영화에 재능이 있나요?' '성욕은 어떻게 이기시나요?' '사랑은 꼭 해야하나요' 등의 질문에 송교수는 비교적 주저하지 않고 답들을 한다. 물론 이 답은 정답도 아니고 완벽하지 않은 것들도 대부분이지만, 내게 이 문답 장면은 일종의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렇듯 아무것도 꺼릴 것 없고, 과연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의심 없이 물어볼 수 있을까 라는 의심과 부러움은 물론, 저런 상황과 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랄까. 이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개인적으로 인상 깊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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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야기는 우연의 법칙을 일부러 피해가려 하고 있지만, 홍상수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여전히 우연과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있다. 실제로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그 날의 느낌 혹은 당시의 상황 등에 충실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103년 만에 폭설이 내린 그 날, 영화 속에서 보았던 식의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 생각한 홍상수 감독은 배우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에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대본이 당일 나오는 것이야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그 것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을 현장과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만들기를 보면 놀라움과 더불어 몹시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다. 특히 정유미와 이선균이 웃으며 포즈를 취한 메인 포스터의 경우, 사실 '포즈를 취한' 것 같은 느낌이라면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것이 정말로 촬영장에 왔던 일반 분이 배우들을 알아보고 사진 촬영을 요청해 촬영된 사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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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수 많은 영화와 매체에 등장했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이렇게 사용될 수 있음을 몰랐다. 앞으로는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으면 '옥희의 영화'가 떠오를 것만 같다.

2. 아차산 시퀀스에서는 예상하지 않았던 몇몇 아름다운 영화적 장면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자연광을 받아 더욱 빛나는 정유미의 자태랄까.

3.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아래 씨네21 정한석 기자의 글을 읽었는데, 이 글 보고 많이 힘이 빠졌어요. 이미 전력을 다 쏟아낸 글을 보고나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하죠;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정한석.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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