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 (2012)

끝나지 않은 현실의 쓰라림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를 보았다. 그의 전작 '부러진 화살'과 마찬가지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김근태 님의 자전적 수기인 '남영동'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자연스럽게 '부러진 화살'과 비교하면서 영화적 완성도와 실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로 평가를 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는 적어도 실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로만 보았을 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아니, 메시지라기 보다는 다루고 있는 사건이나 상황 혹은 그 대상 자체에 대한 분노의 크기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  아우라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일단 영화적으로 본 '남영동 1985'는 제법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다. 정지영 감독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있었던 비인간적인 고문 현장과 시간들을 그리는 방법에 있어서, 주인공 편에서 적극적으로서 감정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상당히 건조하고 덤덤하게 그려내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대공분실에서 김종태 (박원상)를 고문하는 이들을 정치적인 이념으로 뭉친 가해자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약 누군가를 고문하는 일만 아니라고 하면 다른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는 직장인의 삶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처음 이 글의 제목으로 쓰려고 했던 것이 '80년대 직장인들의 고단한 삶'이었을까.


그냥 유머나 가벼운 설정 차원으로 이들을 '직장인'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작정하고 묘사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고문하는 이들의 너무도 일상적인 대화들 (여자친구와의 애정 문제, 야구 중계에 대한 관심, 승진을 기대하는 모습들)이 영화 중반 이후까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종태를 고문하는 이들은 김종태가 빨갱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김종태를 고문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제가 있다고 남영동에 불려온 이를 고문해서 거짓으로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 말그대로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묘사 방법에 대해서는 해석이 조금 다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결국 고문을 행한 이들도 모두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피해자였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단순화 해버리기에는 그들이 행한 고문의 강도가 너무도 끔찍한 것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역시 잊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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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으론 애매한 지점이고 다른 한 편으론 한 가지로만 설명할 수 없기에 택한 지점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모두 각각의 비중으로 들려왔다. 남영동에서 김종태에게 고문을 가한 이들 (이두한을 제외하고)을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묘사한 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행한 고문을 보고 있노 라면 그럼에도 당시 남영동에서 있었던 일들을 결코 용서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강한 어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정지영 감독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느낌인데,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불안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오히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명확하게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즉, 만약 이두한도 그렇고 대공분실의 사람들이 정치적 이념에 휩쓸려 있는 광기 어린 이들이었다면, 영화 속 김종태가 당한 고문이나 그가 갖고 있던 민주주의 의지는 그저 한낱 몇몇의 광기에 스러져버린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데, 영화가 택한 방식으로 인해 일차적으로는 극중 김종태가 느꼈을 법한 더 큰 공포를 체감할 수 있었고, 이차적으로는 김종태가 지키려고 했던 가치가 고문과 맞서 싸운 것이 아닌 시대와 맞서 싸운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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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이 영화를 보면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을텐데, 그 이유는 이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보는 내내 '남영동 1985'라는 영화의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과연 김종태가 그렇게 굽히지 않았던 민주주의는 현재 실현되었는가? 저런 고문을 했던 자들의 죄는 모두 처벌 받거나 용서 받았는 가에 대한 아픔이 아직 까지도 남아있기에 결코 1985년의 과거사로만 느껴지지 않을 수 밖에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과거사를 다시 꺼내는 것에 대해 '매번 과거사를 들추면 미래가 없다'라고들 하는데, 그건 과거사가 말끔히 청산되었을 때의 얘기다. 즉, 과거의 어떤 일들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이 정당한 보상이나 사과를 받았거나, 피해자가 스스로 가해자를 용서했거나, 그러한 일들을 저질렀던 가해자들이 그에 맞는 처우를 받았을 때나 가능한 주장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남영동 1985'에 얽힌 이들의 사연은 과연 그러한가? 김근태 의장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고, 가해자인 이근안은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에 그쳤으며, 당시 서슬퍼런 시대를 만들었던 장본인들은 아직도 권력과 세력을 갖고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수 많은 피해자들은 평생을 죄인으로 몰려 몸과 마음이 상해 죽거나 고생했고, 소수는 무죄를 인정받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 세월은 누가 보상할 것이며, 더더군다나 아직도 무죄를 인정받지 못해 억울하게 죽어간 피해자들은 누가 위로한단 말인가. 위로는커녕 적어도 가해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죄값을 치뤄야만 이 사회가 상식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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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는, '그래, 85년도 군사독재시절엔 저런 아픈 과거가 있었구나...'하며 눈물을 훔치게 되는 영화가 아니라, '저런 일들이 다 밝혀졌음에도 왜 아직 현실은 그대로 인거지?'하며 더 큰 쓰라림을 겪게 되는 작품이었다.



1. 이러다 박원상씨는 민주화 전문 배우가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 즉슨, 그에 따른 피해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얘기죠;;;)


2. 극 중 김종태가 환상으로 자신을 보는 장면(니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냥 포기해, 괜찮아 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부분)이 가장 안쓰럽더군요. 어쩌면 영화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네요.


3. 사실 보통 같으면 대공분실에서 여러 명이 김종태를 고문하는 장면의 화면 구도나 캐릭터들의 위치 설정이 영화적으로 좋았다고 말했을 텐데, 차마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네요 ㅠ


4.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나고 극장을 나오는데 관객들이 다들 숨죽이며 나온 영화는 참 오랜만이었네요 (물론 몇몇 분은 욕을 하시기도 했지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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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Unbowed, 2011)

현재 진행형의 투쟁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대한민국을 떠들석 하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이른바 '석궁사건'이라고 불린 사건이 그것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불합리함을 느낀 피고였던 한 교수가 재판의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을 했다는 사건이었는데, 다른 사건들과는 달리 '석궁'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도구 때문에 더 세간에 주목을 끌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은 바로 이 석궁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영화의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도 물론 얘기거리이지만, 어쨋든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는 작품이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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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이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사법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권력을 갖고 있는 조직 사회의 문제, 그리고 이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 수 있겠다. 정지영 감독은 완전히 이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면서도 중간 중간 대사와 장면들을 통해 이 이야기를 단순히 법정 내의 이야기로만 가두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김경호(안성기)가 불합리한 정치적 이유로 인해 겪게 되는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대한민국 사회가 관례라는 이름으로 집행하는, 혹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안면몰수하고 진행되는 시스템적인 불합리에 대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거대한 부당함과 외로운 합리의 싸움을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보통 같았으면 '정의'라는 표현을 썼겠지만 '부러진 화살'이 담고 있는 내용은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정의'보다는 '합리'에 가깝다. 즉, 영화 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의롭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아니라,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은 가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이 얘기를 바꿔서하면 대한민국 사회가 처한 문제는 정의를 논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합리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할 정도의 쉽게 말해 '황당한' 상황이라는 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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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김경호의 싸움을 살펴보면 그는 자신이 옳다 라는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상대에게 '너희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먼저 입증해봐라'의 연속이다. 만약 이 싸움이 조금 더 정의로운 것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으려면, 김경호가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할 수 밖에는 없었던 상황에 대해, 정상참작할 만한 여지가 있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할텐데, 영화 속 싸움은 이보다 한참 전 상황에서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 이 싸움에서 분노가 드는 것은 바로 이 답답함 때문임이 크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누구의 생각 혹은 주장이 맞는 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는 커녕 너무나 당당하게 '내 주장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은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상대와 논리적으로 싸워야 하는 피곤함에 있다.


하지만 영화 속 김경호는 이런 무지한 상대를 두고도 끝까지 법적으로 밀어 붙인다. 김경호가 법적인 논리를 치밀하게 펴서 상대를 아무말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만들 수록 관객의 분노와 피로함은 더해간다. 이것이 '부러진 화살'이 다른 법정영화와 전혀 다른 점이다. 주인공이나 변호사가 판사나 검사를 아무말도 못하도록 만들 때 승리감이나 시원함이 들기 보단, 그저 씁쓸함과 허탈함 만이 드는 건, 결정적 단서라고 생각한 동영상이 나와도 주어가 없다 라고 부정해 버리는 현실 사회의 피로함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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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지영 감독은 이 답답하고 분노만 끓어 넘치는 사건에 다른 공기를 불어 넣었다. 그냥 이 사건을 몰랐던 관객들에게 '이런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라고 고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 분노를 분노에 가두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투쟁의 에너지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끝나도 이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씁쓸하게도 하지만, 한 편으론 바로 이 사실을 알려준 것이야말로 이 작품에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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