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I 코리아. All rights reserved



컨택트 (Arrival, 2016)

언제나 몇 번이라도


종종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드는 생각들이 있다. '아, 이 영화는 아마 감독이 어떤 트라우마 혹은 어떤 실수나 상처를 회복하고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예를 들면 가볍게는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는 감독이 자신의 자녀의 마음을 다 돌보지 못하고 이사를 가버린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풀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나, 판타지 영화나 타입 슬립 영화들을 보며 배우자나 자녀 혹은 친구 등 아주 가까운 이의 죽음이나 부제로 인한 슬픔 혹은 돌아와 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드니 빌뇌브의 신작 '컨택트 (Arrival, 2016)'를 보고 나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감독인 드니 빌뇌브나 원작 소설을 쓴 테드 창이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는가는 물론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에서는 어떠한 부제가 말미 앎은 상처를 되돌리고자 하는 간절함을 넘어서는 더 강력한 삶의 의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랑이라는 인간이 가진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UPI 코리아. All rights reserved



어느 날 갑자기 지구 상에 나타난 외계의 존재. 그들이 지구에 나타난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자인 루이스 (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인 이안 (제레미 레너)은 미국 정부와 군인들로 이뤄진 팀과 함께 그들과 직접 조우하게 된다. 세션이라고 불리는 여러 차례의 조우 순간을 통해 루이스와 이안은 그들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고 점점 더 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미지의 존재, 특히 외계에서 온 것으로 예상되는 어떠한 존재 (사실 전혀 다른 얘기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지의 존재가 꼭 외계에서 온 존재라고만 한정 짓기는 어렵다. 어쩌면 3천 년 이후 지금의 인류가 진화한 형태일 수도 있는. 즉, 그렇게 되면 이들의 방문 목적은 더 설득력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다)와의 조우를 통해 모두가 가장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것은 도대체 '왜?' 도착 (Arrival) 했는가에 대한 답이지만, 정작 영화는 이 질문과 답보다는 루이스의 플래시백에 더 관심을 둔다. 딸이 태어나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으나 어린 나이에 결국 병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딸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플래시백으로 삽입하는데, 나중에 결국 이것은 플래시백이 아닌 플래시 포워드 즉 과거의 기억이 아닌 미래의 기억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영화 '컨택트'는 유사한 설정의 SF영화들과 다른 결의 이야기를 담게 된다.



ⓒ UPI 코리아. All rights reserved



어린 딸의 죽음으로 괴로워했던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들이 시제를 인식하는 방식 역시 이해하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딸의 죽음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방식은 다르지만 다른 타입 슬립 영화들의 주인공들이 어떠한 순간으로 되돌아가 뒤틀린 일을 바로 잡으려는 것처럼, 이 일어나지 않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역시 갖게 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미래를 바꿀 수도 있을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된다. 


영화가 미래를 묘사하는 방식은 선지자적이고 예언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와 동일하게 기억의 측면으로 그려낸 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건 미묘하게 감정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는데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이 지배하는 인식에서는 현재를 바꿔서라도 미래의 어떤 비극적인 일을 바로 잡으려 애쓰는 것이 가능하지만, '컨택트'와 마찬가지로 시제를 인식할 경우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되돌리거나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 버리기엔 너무 많은 감정들을 이미 느껴버린 뒤라는 것이다. 즉, 루이스는 너무나 아끼는 딸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자신이나 딸 모두 느끼지 않도록 아이를 애초에 낳지 않거나 혹은 다른 사람과 만나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해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현재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미래의 딸의 존재는 지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린다. 어쩔 수 없이 앞서 선택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건 애초에 선택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질문이다.



ⓒ UPI 코리아. All rights reserved



영화를 보며 루이스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리하여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다시금 (사실은 처음) 그 선택을 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바로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시점 즉, 내게 아이가 없던 시절에 보았더라면 과연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루이스의 심정이 분명 이해되고 감정적으로도 충분히 공감한다고 느꼈겠지만, 과연 내 아이가 있는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루이스에게 이것이 선택의 문제조차 될 수 없었다는 것을 몇 개월 전 부모가 된 내 입장에서는 조금도 어렵지 않게 바로 알 수 있었다. 가끔 TV를 보다 보면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를 만날 것인가 아닌가를 묻는 순간들을 보게 된다. 사실 이 질문 자체가 별로 의미 없는 것이지만 만약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내 아이의 부모로 태어나겠냐고 묻는 다면 그건 진심으로 0.1%의 의심도 없이 바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이건 이제 막 부모가 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령 루이스처럼 미래의 기억 속에 아이의 아픔이 느껴지더라도 그건 절대 바꾸고 싶지 않은 가장 첫 번째 미래일 것이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UPI코리아 에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Mission: Impossible - Rogue Nation, 2015)

어쩌면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어느 덧 첫 작품을 시작한지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본래 TV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미션 임파서블'은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화가 되면서 좀 더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로 무장한 액션 스파이물로 자리 잡았는데, 이번 '로그네이션'은 브래드 버드가 연출했던 전작 '고스트 프로토콜'에 비해 좀 더 오리지널로 돌아간 듯한 각본과 구성, 팀웍 그리고 마인드를 가진 작품이었다. 매번 감독을 달리 하며 변화를 추구해 온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새로운 감독은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았던 '잭 리처'를 연출했었고, '작전명 발키리'와 '잭 더 자이언트 킬러' 등 주로 브라이언 싱어 감독 작품의 각본을 함께 작업했었던 크리스토퍼 맥쿼리였다. 맥쿼리가 '미션 임파서블'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흡사 007 시리즈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브랜드. 스파이 액션 영화로서의 브랜드 가치랄까. 연속성을 말하고자 함이 느껴졌다.



롯데엔터테인먼트 . All rights reserved


일단 액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번에도 톰 크루즈는 실제하는 액션을 통해 관객이 에단 헌트와 함께 그 피로함과 고통을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미 개봉 전 부터 화제가 된 비행기 액션씬은 물론이고, 카체이스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 오토바이 추격전을 보면 연출 측면에서도 화려한 카메라워크를 통한 것이 아닌, 관객이 눈으로 보고 그 속도감과 리듬감을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액션 장면에서 톰 크루즈가 얼굴까지 인식 가능한 구도로 촬영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스턴트맨이 아니라 톰 크루즈가 직접 하고 있는거에요!'라고 전달하고자 함이 목적이 아닌, 그 단계를 넘어서 그 액션 가운데 에단 헌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이다. 즉, 액션 연출에 있어서도 인물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의 매력 중 하나다. 참고로, 얼핏 들은 정보로는 수중 장면 촬영을 위해 톰 크루즈가 실제로 숨을 오래 참는 훈련을 해서 믿기 힘들 정도의 시간을 참아 내는 것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말 다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이번 크리스토퍼 맥쿼리의 '미션 임파서블'을 보면서 강하게 느껴진 점은, 그가 무엇보다 스파이 영화의 오리지널리티를 구현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같은 점은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화면의 느낌, 촬영 기법을 통해서 먼저 발견되었는데, 아무래도 블루레이 리뷰를 오래 하다보니 본능적으로 영화를 볼 때 화질에 반응하게 되는데, 이번 작품은 최신작이자 블록버스터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시원시원하고 선명한 느낌보다는, 필름의 질감이 느껴지는 영상과 포커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화질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영상이 주는 느낌에 있어서 마치 시리즈의 1편을 연상시키는 질감과 더불어 전반적으로 시원한 느낌보다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조금 답답함마저 줄 수 있는 촬영 방식은, 이야기 중심적인 영화에 더 적합한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모든 장면에서 이런 느낌이 나는 것은 아니고, 장면 마다 차이가 있으며 특히 액션 시퀀스에서는 그에 맞는 방식이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 All rights reserved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로그네이션'은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자리매김은 그대로 이어가는 동시에 스파이 영화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더 강조하려는, 그래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20년 가깝게 연속되고 있는 브랜드라는 점을 은연 중에 강조하고자 함이 느껴졌는데, 물론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IMF라는 조직에 관한 내용이 주된 이야기로 등장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드디어 '팀'이 제대로 완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미션 임파서블'은 시리즈마다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사실상의 연속성은 크게 없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JJ 에이브람스가 연출을 맡았던 '미션 임파서블 3'에서 부터 출연한 벤지 (사이먼 페그)와 4편인 '고스트 프로토콜' 부터 출연한 브랜트 (제레미 레너)가 시리즈를 통틀어 에단 헌트와 함께 유일하게 모두 등장하고 있는 루터 (빙 라메즈)와 함께 드디어 제대로 된 팀을, 그러니까 매 시리즈마다 조직되는 팀이 아니라 연속성이 있는 팀이 비로소 구성된 듯한 느낌이었다.


전작 '고스트 프로토콜'과 인물들의 구성만 보면 직접적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번 '로그네이션'에서 특히 눈여겨 볼 점은 전작에서 함께 하기는 했지만 극 중 루터의 대사처럼 아직 100%를 믿기는 어려웠던 브랜트를 진정한 팀으로 신뢰하게 되는 미션이자, 벤지 역시 단순한 기술지원 멤버로서가 참여하는 미션이 아니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특히 벤지의 경우 비중 면에서도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벤지와 루터의 대사처럼 이들이 단순히 에단 헌트와 같은 팀이 아닌 친구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이들의 관계가 가볍지 않음을 여러차례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레베카 퍼거슨이 연기한 일사 캐릭터가 여지를 남겨두면서, 다음 작품에서도 이 팀의 구조가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 All rights reserved


일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톰 크루즈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레베카 퍼거슨이었다. 그동안 여성 캐릭터가 아군이던 적군이던 간에 '여성' 캐릭터로서만 기능을 하는 것에 그쳤던 것에 반해, 이번 그녀가 연기한 일사는 거의 헌트와 투톱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자신 만의 이야기와 독립적으로 활동 가능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였다. 특히 여기에는 레베카 퍼거슨이라는 배우의 힘이 강하게 작용했는데, 마치 80년대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마스크와 묘한 미소를 갖고 있는 그녀의 매력은, '로그네이션'이 보여주고자 했던 스파이 영화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구현해 내는데에 가장 큰 매개체 중 하나였다.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속편에서도 일사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으로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갖고 있던 매력이 조금은 상쇄된 부분이라 하겠는데, 이 시리즈만의 장점이자 관객들을 안달나서 미치게 만들 정도의 폭발력을 갖고 있는 메인 테마곡을 활용한 시퀀스가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전작들을 떠올려 보면 그 유명한 메인 테마곡이 흐를 때 마치 안무처럼 긴장감 넘치게 진행되던 시퀀스들의 임팩트가 하나 같이 전부 대단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정도의 임팩트를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미 테마가 흘러나올 때 소름은 돋기 시작했지만 그 소름의 지속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달까.


톰 크루즈를 톰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처럼 50이 넘은 그가 에단 헌트로 언제까지 더 활동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몇 해 전부터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데, 이번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을 보니 오히려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싶어 반갑게 느껴졌다. 새로운 시리즈가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기대감과 잠재력을 모두 발견했으니 말이다.



1. 초반 투란도트 시퀀스는 정말 매력적이더군요. 그 와중에도 나중에 블루레이가 출시되면 사운드가 끝내 주겠다는 기대를 했다는.


2. 아무리 해도 에단 헌트가 입에 안붙어요 ㅋ 시리즈 1편에 존 보이트가 자신의 손을 보며 '이든.....이든....'하던게 너무 강렬해서 그 뒤부터는 어떤 한글 표기가 와도 그냥 '이든 헌트'가 입에 착착 붙는다는.


3. 중국 영화사와 자본이 투입된 것 같은데, 미션 임파서블에서 중국영화사 로고를 보니 조금 당황되기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롯데엔터테인먼트 에 있습니다.





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 2013)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



최근 몇 년 사이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는 감독 중 하나는 바로 데이비드 O.러셀 일 것이다. '파이터'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두 작품을 통해 급격하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기존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이 작품 '아메리칸 허슬' 역시 기대할 수 밖에는 없는 조합이었다 (참고로 크리스찬 베일과 에이미 아담스는 '파이터'에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호흡을 맞췄다. 제레미 레너와는 첫 작품). 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사기, 사기꾼이라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국내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하게 했는데, 분명 영화의 겉모습은 그러하지만 실속은 사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였다고 할까.



Atlas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첫 장면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빙 로젠필드'라는 캐릭터의 아침 몸 단장으로 시작하는데,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아침부터 세심한 공을 들여 머리를 세팅하는 과정을 영화는 그 세심함 만큼이나 한참을 말 없이 들여다본다. 이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렇듯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 혹은 그러기 위해 될 대로 되라 라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공을 들여 그 가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빙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영화가 이후 들려주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정서에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사기 자체의 속고 속이는 묘미가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도 치밀한 사기극을 다룬 영화들에 비하면 '아메리칸 허슬'의 사기, 아니 사기극을 묘사하는 방식은 긴장감 넘치는 리듬도 반전이라고 할 만한 연출도 없는 편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건 자체에 전후 사정과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 흥미로운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정에 서서 각자의 결핍을 그려보려 했던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싶다.



Atlas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사기꾼으로 살아 온 어빙이나 시드니 (에이미 아담스) 외에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리치 디마소라는 캐릭터도 FBI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결핍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FBI이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승진도 못하고 있어, 자신이 주목 받을 수 있는 큰 한 건을 노리고 이 사건을 기획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승진이라는 형식적인 것 보다는 주목 받는 것 자체, 즉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적인 대사로도 나오는 것처럼 무언가 자신이 여러 인물들을 이끌고 주인공이 되면서 드디어 성공에 까지 가까워 짐에 따라, 그가 겪는 감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인데 브래들리 쿠퍼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또 한 번 감정적이면서도 결핍이 있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그가 연기한 리치와 비슷한 이유로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어빙의 부인인 로잘린 캐릭터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녀의 행동도 일부러 남편을 골탕 먹이려고 한 것 이라기 보다는 주목 받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이렇듯 '아메리칸 허슬'은 평생을 남을 속이는 것으로 (신분까지 속여가며) 살아왔던 이들과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즉 가짜로 사는 것에 지쳐버린 이들의 진짜가 되어보려는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Atlas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아메리칸 허슬'에는 특이한 리듬이 있다. 기막힌 당시의 선곡으로 순간적인 몰입 도를 선사하는 한 편, 긴장이나 불안감 없이도 한 참을 카메라가 멈춰서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보통 이런 장면을 쓸 때는 그 다음에 오는 어떤 사건을 꾸미기 위한 것이라던가, 직접적인 인물의 감정 표현을 위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 경우가 다 아니었다. 어떤 반전이나 장면 전환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인물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오랜 시간 캐릭터를 다른 아무 장치 없이 바라보게 함으로서 가짜의 껍데기 속에 있는 진짜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조금은 이질적인 리듬 감이 존재한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아카데미 10개의 부분에 후보로 오른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더 좋았고, '파이터'와 비교해도 '파이터'가 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아메리칸 허슬'은 이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명 배우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연기한, 연기와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몸을 불린 크리스찬 베일은 마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연기했으면 딱이 었을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고, 에이미 아담스는 근래 그녀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브래들리 쿠퍼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걸음 클래스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제니퍼 로렌스는 이렇게 빨리 어린 배우가 성장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 명 배우들 사이에서 완전히 녹아드는 '어른스러움'과 매력을 사정 없이 발산하고 있다.



Atlas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1. 개인적으론 에이미 아담스의 팬이라 더 좋았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한 번 쯤 그녀가 원톱으로 나서는 영화를 보고 싶네요.


2. 음악이 참 좋은데 아직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발매된 것 같지는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Atlas Entertainment 에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 (Mission: Impossible - Ghost Protocol, 2011)

여전한 톰 아저씨의 가능한 미션 



톰 크루즈가 이던 헌트로 활약한지가 1996년부터이니 벌서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TV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톰 크루즈라는 스타를 통해서 헐리웃의 대표 시리즈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각 작품마다 편차가 있기는 했지만 톰 크루즈(이던 헌트)를 중심으로 매번 불가능하지만 결국 가능할 미션들을 소화해 왔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은 '아이언 자이언트'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등을 연출했던 브래드 버드가 감독을 맡아 더욱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었는데, 과연 애니메이션 작품을 통해서는 충분한 매력과 감동을 선사했던 그가, 헐리웃의 최고 액션 시리즈 작품을 맡아 어떤 결과물을 탄생시킬 지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MI4'는 톰 크루즈가 왜 톰 아저씨인 동시에 헐리웃 최고의 액션 배우이자 진정한 스타인지를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픽사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브래드 버드의 작법이 은근히 담겨있어 더 매력적이었던 작품이었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일단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주목할 부분은 다시 '팀'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물론 바로 전작인 3편에서도 이러한 모양새를 보이긴 했었지만, 이번 작품의 팀웍은 좀 더 1편의 그것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되면서 좀 더 첩보물의 재미(작전의 재미)가 배가 되는 동시에, 이야기의 풍성함마저 얻게 되었다. 이제는 노련하다 못해 레전드 급 요원인 이던 헌트의 완벽한 작전 수행을 보는 동시에 이제 막 현장 요원 자격증을 얻게 된 요원과 아직은 깨끗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개인적 사연을 갖고 합류하게 된 요원들과의 앙상블은 각각 다른 재미를 주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더불어 팀으로 귀환한 것에 더해 여기서만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유머들이 적절하게 배치된 것도 좋았다. 사이먼 페그가 연기한 '벤지' 역할은 딱 알맞은 정도의 비중이라 과한 감이 없었고, 폴라 패튼과 제레미 레너가 연기한 캐릭터들의 비중도 '팀'으로서 적절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이던 헌트와 카터 요원(폴라 패튼)과의 로맨스가 없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이 로맨스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스토리 구조였지만 ㅎ)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으....톰 아저씨 어떻게 ㅠ 난 못 봐 ㅠㅠ)


'미션 임파서블'을 보러 온 관객들이 기대하는 가장 큰 요소라면 역시 불가능할 것만 같은 미션에 도전하는 전문 요원들의 액션과 서스펜스에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고스트 프로토콜'은 아이맥스 포맷을 적절히 잘 활용하고 있다. 특히 고층 빌딩 위에서 펼치는 묘기에 가까운 액션들을 비롯해, 로케이션이 변경될 때마다 장대하게 훑어내려가는 카메라 워킹은 아이맥스 화면에서 더욱 빛이 났다. 즉, 아이맥스라는 포맷의 장점을 작품이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품을 보기 전 기사 등을 통해 접해들을 수 있었던 '톰아저씨의 기행'은 확실히 도움이 되는 듯 했다. 극장에서 느낀 바로는, 분명 아찔한 고공 액션을 펼칠 때 '우와~'하는 수준과는 다른 '어떻게......'하며 가슴 졸이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관객들은 이던 헌트를 보는 동시에 톰 크루즈를 보고 있었지만, 그것이 영화적으로 단점이 되기 보단 더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겠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날 극장 밖의 날씨가 몹시 추웠던 탓에 극장 안 온도가 오히려 더 따듯했던 것도 있었겠지만,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며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액션 시퀀스였다. 사실 전작들에 비하면 '고스트 프로토콜'의 미션들은 그 난이도와는 별개로 영화 속에서 미션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상당히 쿨해졌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즉, 하나의 미션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을 해가며 단계단계를 클리어해 가는 방식이 아니라, 단계를 최소화하고 미션 단위로 비교적 빨리 치고 빠지는 방식),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캐쥬얼하게 각 시퀀스들을 즐기고 다음을 맞이하고 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는 점인데, 바로 시리즈의 유명한 테마 음악과 함께 봇물처럼 진행되는 주인공의 뒤집기 혹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미션이 가능으로 바뀌는 바로 그 순간의 희열을 느끼기에, 영화는 이러한 틈을 주지 않고 있어 아쉬웠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전작들의 경우 테마 음악이 본편 중에 등장하는 순간의 장면들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바로 그러한 지점이 인상적이지는 못했다는 얘기.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사실 브래드 버드가 연출을 맡았다고 했을 때는 기대보다는 우려되는 점들이 더 많았었다. 과연 그에게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옷이 잘 어울릴지 혹은 그가 멋스럽게 코디를 해낼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리즈 본연의 액션과 서스펜스는 그대로였고 (오히려 1편의 장점을 계승하는!), 블록버스터로서의 볼거리도 그 연출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여기에 브래드 버드의 픽사 식의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제레미 레너가 연기한 '브랜트' 캐릭터의 스토리, 그리고 무척이나 픽사스러웠던 엔딩까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이러한 엔딩을 만나자니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감정적인 것에 특히 약한 나로서는 이러한 픽사식의 엔딩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시리즈를 이어오며 성숙해진 이던 헌트에게도 제법 잘 어울리는 엔딩이기도 했고.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1. 폴라 패튼은 그녀의 전작들을 못 봐서인지 잘 몰랐었는데 무려 75년 생이시더군요!! 전 이런 시리즈에 흔히 등장하는 어린 나이의 모델 뺨치는 신인이 아닌가 했었거든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누님 ㅠ 저 같아도 누님처럼 창밖으로 차버렸을 거에요 ㅋ


2. 마이클 지아치노의 음악도 인상적이었어요. 픽사의 느낌과 JJ의 느낌을 모두 갖고 있는 그의 음악이 이 작품에서도 골고루 영향을 주고 있더군요.


3. 과연 톰 아저씨는 언제까지 이던 헌트로 활약할 수 있을까요! 오래오래 그래주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아니면 제임스 본드처럼 제 2, 제 3의 이던 헌트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지금같아서는 절대 톰 크루즈 없는 미션 임파서블을 상상할 수 없지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토르 : 천둥의 신 (Thor, 2011)
대서사와 셰익스피어를 입은 마블 히어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총집합하는 '어벤져스 (The Avengers)'의 또 다른 멤버 '토르 (Thor)'를 보았다. 토르가 영화로 만나볼 수 있었던 다른 마블의 히어로들과 다른 점이라면, '스파이더 맨' '헐크' '아이언 맨' 등의 경우 후천적으로 사고나 우연한 계기를 통해 슈퍼 파워를 얻고 히어로가 되는 것에 (혹은 안티 히어로가 되는 것에) 반해, 신화에 근본을 두고 있는 토르의 경우 이미 파워를 갖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시작점을 달리 한다. 이 시작 점이 다른 것은 특히 영화화에서 큰 차이점을 갖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히어로물이 쉽게 말해 영화 중반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직 멀쩡한'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토르'는 오히려 그 반대로 초중반 토르가 힘을 잃게 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 (아스가르드와 인간 세상)가 교차된다는 점에서도 이전의 마블 히어로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 Marvel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또 다른 점은 '토르'는 이미 대중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고대 그리스 희곡 및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토르'는 히어로물이라기 보다는 셰익스피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제인과 쉴드 (S.H.I.E.L.D)로 대변되는 현재의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상당히 고전적인 서사와 갈등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현재의 이야기와 교차하지 않았다면 '타이탄' 같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토르'는 왕과 왕자, 아버지와 아들의 관한 이야기에 히어로 물의 세계관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 때문에 연출을 캐네스 브래너에게 맡긴 것이 아닌가 싶다.

배우인 동시에 감독이자 극작가인,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캐네스 브래너 만큼 '토르'가 다른 히어로들과 차별되는 점을 잘 표현해낼 이는 드물다고 생각된다. 캐네스 브래너가 '토르'를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이야 걱정할 바 아니었지만, 그 반대로 히어로물이자 블록버스터 연출로서의 캐네스 브래너는 의문 부호가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갖는 한계 내에서 이 정도 결과물이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스럽게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 액션 전문가가 시나리오까지 맡았을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많이 접하지 않았는가.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그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은 편이다.



ⓒ Marvel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토르'가 갖는 한계라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블의 다른 히어로들처럼 소개가 필요한 첫 작품이었다는 공통의 한계와 다른 히어로와는 다르게 탄생 과정이 필요없기 때문에 극적인 공감대를 얻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그 만의 한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토르가 지구로 추방 당한 뒤 겪는 일들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은 그가 진정한 히어로로서 거듭나는 탄생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사실 빠른 전개 탓에 적극적인 공감대를 얻기에는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발생한 제인 (나탈리 포트만)과의 로맨스도 브루스 배너나 피터 파커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토르'는 그 자체로도 소개가 주목적인 작품인 동시에 앞으로 나올 '어벤져스'의 큰 그림으로 보자면 더더욱 '토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의미가 컸기에, 이 한 편만으로 평가 받기에는 조금 억울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토르'의 속편이 나온다거나 '어벤져스'에서는 좀 더 이런 면에서 자유로운 상태라(이미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소개를 마쳤으니 말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 Marvel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이런 어쩔 수 없는 한계들 때문이었는지, 극 중에서 가장 비중있게 느껴진 캐릭터는 주인공 '토르 (크리스 햄스워스)'가 아니라 동생 '로키 (톰 히들스톤)'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극중 토르는 쿨하고 우직한 매력은 있지만 (마치 사조영웅전의 곽정과도 같은) 관객이 공감할 만한 내적인 갈등이라던가 감정의 동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 비해 로키라는 캐릭터는 그 탄생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실상 영화에 주요 갈등 및 전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서, 캐네스 브래너가 그린 셰익스피어적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스포일러 시작)
로키가 극의 주된 갈등을 쥐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악한이라기 보다는 동정에서 이해될 수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왕국을 지배하려는 야욕보다도 그저 아버지에게 용기있고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에서 시작된 그의 삶은, 별다른 갈등구조가 없던 토르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왔고, 더 나아가 엔딩 쿠키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앞으로도 그의 활약이 만약 계속된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와 그의 행동으로 인한 스토리에 좀 더 깊이를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듯 하다. 아주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이번 영화 '토르'는 토르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로키로 인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 Marvel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른 마블 히어로들과는 차별되는 또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에 우리에게 마침내 선보일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감을 또 한 번 업그레이드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1. '아이언맨 2'의 쿠키 장면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묠니르 장면은 '토르'에서 그대로 이어지는데, 이것 외에도 '토르'에는 '어벤져스' 떡밥이 제법 많이 등장하고 있는 편이에요. 동료 과학자 '브루스 배너'의 이야기라던가, 토니 스타크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그렇고.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더군요. 이래서 마블 코믹스에 더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연계되는 부분이 깊다보니 말이죠.


2. 오딘의 아들을 '오딘손'으로 잘못 번역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토르의 풀네임이 Thor Odinson 이네요 ^^;


3. 토르가 지구에 와서 겪는 코믹한 장면들에서는 의외로(?) '엑셀런트 어드벤쳐'가 떠오르더군요. 소크라테스나 나폴레옹이 쇼핑몰 가던 장면이 겹쳐져서 ㅎㅎ


4. 짧은 분량이었지만 역시 '어벤져스'를 위한 포석이었던 '호크아이'의 출연도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호크아이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는 터라 보는 순간 100%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제레미 레너의 얼굴은 단번에 알아봤기에 비중있는 캐릭터라는건 알 수 있었죠 ㅎ


5. 그의 반해 아사노 타다노부의 활용은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아사노 타다노부가 이런 작품(비중)으로 헐리웃을 노크할 배우는 아닌데, 그냥 들러리 정도로 묘사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더군요.


6. 요툰하임의 분위기나 이곳 캐릭터들의 모습 그리고 쿠키장면에서 등장한 큐브까지, 얼핏 '트랜스포머'가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Marvel Entertainment 에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