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어스 (After Earth, 2013)

아들을 위한 아빠의 선물



난 샤말란의 팬이다. 샤말란 하면 대표작인 '식스 센스'는 생각보다 인상 깊게 보지 않았지만 그 이후 '싸인' '빌리지' '해프닝' 등은 그의 다음 작품을 계속 기대하게 만들었고, '라스트 에어벤더'로 큰 실망을 주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깊은 애정이 있기에 다음 작품을 또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로 많은 이들이 실망했던 '해프닝'은 마음에 들었지만, '라스트 에어벤더'는 정말 나로서도 참기 힘들 정도의 졸작이었다). 그런 샤말란의 2013년 새롭게 내놓은 작품은 윌 스미스 가족과 함께 한 SF 블록버스터 '애프터 어스'였다. 사실 처음 이 작품에 대한 시놉과 스샷이 공개되었을 때 샤말란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왜냐하면 '라스트 에어벤더'의 실패 이후 이제는 큰 규모의 작품이 아니라 작은 영화, 시나리오가 중심이 되는 작은 영화로 돌아오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 였다. 샤말란에게 '애프터 어스'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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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작품은 샤말란의 영화라기 보다는 윌 스미스의 영화, 아니 윌 스미스 가족의 영화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윌 스미스가 원안을 썼고, 그와 그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제작을 맡았으며 아들인 제이든 스미스가 주연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윌 스미스는 이 작품에서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참여하고 있는 비중을 보았을 때 완성도가 떨어질 경우, 그 화살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올 확률이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었다.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애프터 어스'는 윌 스미스와 그의 가족을 지운다 해도 더 나아지는 영화는 아니었다. 즉, 단순히 윌 스미스 가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마이너스가 되고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영화가 워낙에 아쉬움이 많다보니 결국 윌 스미스 가족의 참여는 고스란히 더 큰 비난의 화살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이 글의 부제인 '아들을 위한 아빠의 선물'은 결코 줄거리에 관한 이야기 만이 아니다. 아빠 윌 스미스가 아들 제이든 스미스에게 선사한 선물이기도 하다는 의미 또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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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설사 윌 스미스가 아들 제이든 스미스에게 선물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기획했다는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이든 스미스는 전작 '행복을 찾아서'와 '베스트 키드' 에서 윌 스미스라는 이름을 지우더라도 괜찮은 연기를 펼쳤었고, 그 이유 만으로 이 작품에 아역으로 캐스팅 되기에 큰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제이든 스미스의 연기는 좋지 못했다. 마치 그 동안의 좋은 연기가 변성기가 지나기 전의 미성이었다면, 이번 연기는 변성기가 지나고 이전의 매력을 잃어버린 가수의 노래를 듣는 듯 했다. 훌쩍 커버린 모습 만큼이나 어색해져버린 제이든 스미스의 연기는, 90분이 넘는 영화를 사실상 단독으로 이끌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였고 이를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차라리 윌 스미스의 분량이 더 많았다면 그럭저럭 커버가 되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보시다시피 윌 스미스는 아예 작정한 듯 아들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가. 지극한 아들 사랑은 확인했지만 이번 작품은 오히려 그 아들에게 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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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샤말란의 신작을 우려 반 기대 반하며 보게 된 '애프터 어스'는 샤말란의 느낌은 거의 보이지 않고 (기껏해야 우주선 내의 자연적인 디자인 정도?) 윌 스미스의 깊은 아들 사랑만 확인하게 된 영화였다. '라스트 에어벤더'에 비하자면 그 정도로 나쁜 편은 아닌데, 무언가를 기대했다면 반드시 실망할 영화랄까. 무언가 더 나아갈 수 있는데 답답함이 남는 그런 아쉬운 영화였다.



1. 이 영화에서 가장 깨는 것 중 하나는 영화 끝나고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박재범의 노래였어요. 가요가 나와서 이상한 것이 아니라 가사 내용이 전혀 쌩뚱 맞았거든요. '오늘 밤을 즐겨' '파티를 즐기자~' 등등.


2. 윌 스미스의 제이든 스미스 밀어주기가 다음에도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3. 샤말란의 다음 작품은 좀 더 작고 아이디어나 이야기가 중심이 된 작품이었으면 좋겠네요. 그 빛나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이런 거대한 영화가 아닌 걸 새삼 확인했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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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키드 (The Karate Kid, 2010)
뻔해도 눈물나는 성룡의 쿵푸 영화


1984년작 '베스트 키드 (The Karate Kid)'를 리메이크한, 해럴드 즈워트 감독의 2010년작 '베스트 키드'는 어찌되었든 성룡이 출연하기 때문에 보게 된 작품이었다. 일단 원제는 '가라데 키드'인데 1984년에도 2010년에도 '베스트 키드'라는 이름으로 개봉하게 된 것은 사정이 있는데, 일단 1984년의 경우는 국내에서 '가라데'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기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2010년 선보인 해럴드 즈워트의 리메이크작은 사실 '가라데 키드'라고 기 보단 '쿵푸 키드'라고 부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편이다. 리메이크판 '베스트 키드'에서는 배경도 중국이고, 가라데가 아닌 쿵푸가 영화의 큰 흐름을 쥐고 있다. 사실 제목에 관련해서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영화는 극 중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가라데가 아니라 쿵푸야'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주인공 제이든 스미스의 영화이기 이전에 스승인 성룡의 쿵푸 영화로 보았기 때문에 더 인상 깊을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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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키드'의 줄거리는 뻔하기 그지 없고 클리셰의 계속 되는 반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에 반해 러닝타임은 일반 액션영화들 보다도 훨씬 긴 140분이기까지 하다. 즉 이 작품에게서 무언가 신선한 것을 기대한다면, 그리고 가라데 키드를 연상시키는(?) '베스트 키드'라는 제목을 갖은 영화답게 화끈한 액션 장면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앞서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어찌되었든 '쿵푸 영화'라는 점을 강조한 데에는 이 같은 이유가 있다. 쿵푸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성인 훈련 장면. 그저 얼른 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빨리 화려한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주인공에게 스승은 항상 무술은 가르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동작들(혹은 쓸데없어 보이는 동작들)만 반복시킨다. 하지만 물론 이런 것들은 나중에 주인공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상승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베스트 키드' 역시 마찬가지다. '드레 (제이든 스미스)'의 쿵푸 스승인 '한 (성룡)'은 그저 자켓을 입고 벗고 거는 것만 내내 훈련시킨다 (이 영화가 살짝 다른 점이 있다면 '드레'는 다른 쿵푸 영화의 주인공들에 비해 거의 꽤를 부리지 않고, '한'의 훈련 방법은 무술의 기본이 되는 동시에, 아이의 잘못된 순간을 단번에 사로잡는 특효약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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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키드'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제이든 스미스가 연기한 '드레'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은 불필요하다고 까지 생각되는 여자친구와의 에피소드가 비중있게 그려져야 했을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쿵푸 영화의 구조로 보았을 때는 없어도 무방할 정도다 (드레를 괴롭히는 아이들 무리와 엮이게 된 것이 여자 아이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 둘 간의 갈등은 여자 아이가 없어도 충분히 가능한 갈등관계다). 드레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이것은 성장영화다. 아버지의 부재, 미국인(흑인)으로서 중국이라는 낯설은 공간에서의 적응, 그리고 그로 인한 괴롭힘을 이겨나가는 과정 등 아이가 소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결국 소년의 성장 이야기는 자신이 성장하는 동시에 가족(엄마)과 주변 사람(여자 친구의 가족들), 그리고 그의 스승마저 조금씩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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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많은 이들, 특히 성룡보다는 윌 스미스에 더욱 익숙한 세대들에게 '베스트 키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드레'의 영화로 읽혀질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베스트 키드'를 성룡 때문에 보게 된 사람들, 즉 성룡의 오래된 쿵푸 영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관객들이라면 이 작품을 '드레'의 영화인 동시에, 아니 오히려 '한'의 영화로 보게 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일단 이 영화 속 '한'을 연기한 성룡은 거의 한 번도 웃지 않는다. 이렇게 정색하고 정극 연기를 펼치는 성룡을 본 것이 몇번이나 있었나 꼽아보게 될 정도로, '한'이라는 캐릭터는 유쾌하거나 장난기를 찾아볼 수 있기는 커녕, 어둡고 깊은 슬픔을 앉고 있는 캐릭터다. 일단 이것부터. 웃지 않는 성룡을 스크린에서 만나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룡 팬들에게 묘한 감정을 안겨다 준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쿵푸영화. 매번 투정부리며 스승에게 꾸지럼을 당해가며 쿵푸를 배우던 그 청년이, 어느 덧 자식만한 아이에게 쿵푸를 가르치는 이야기는, 성룡 팬들이라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아, 우리의 성룡 형님에게도 어느 덧 세월이 더 깊게 다가왔구나'라는, 새삼스럽지만 아직도 매번 겪게 되는 감흥과 더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웃지 않는 성룡'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짠해지는 감정이 들고 만다. 사실 영화의 내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울만한 이렇다할 장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3번씩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은 사실 나조차도 머리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뭐랄까 영화가 약간 울릴 려고 했던 장면이 아닌 장면에서도 눈물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뻔하디 뻔한 이 영화에서 왜 눈물을 흘렸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머리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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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인 윌 스미스와 함께 출연한 '행복을 찾아서'와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SF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 출연했었던 제이든 스미스는, 본격적인 주연을 맡은 이 작품에서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행복을 찾아서'에서부터 그냥 '윌 스미스 아들'이 아니라 제법 연기 잘 하는 아역 연기자로도 손색이 없는 그였는데, 이제는 정말 아빠의 후광 없이 다른 작품에 캐스팅 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론 좀 감상 방향이 달랐지만, '드레'의 영화로 보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유는 성장한 제이든 스미스 때문일 것이다.


1. '드레'의 엄마로 타자리 P.헨슨이 출연합니다. 몰라서 인지 더욱 반갑더군요. '벤자민 버튼'의 엄마 역할에 이어 또 한 번의 엄마 역할이로군요.

2. 홍콩 영화 많이 보신 분들께는 너무도 익숙한 배우 '우영광' 역시 출연합니다. 이 역시도 몰랐던 캐스팅이라 무척이나 반갑더군요. 성룡과는 최근작 '대병소장'에서도 함께 연기했었죠.

3. 저도 더 늦기 전에 자켓 입고 벗는 연습하려구요 ㅎ

4. 본격적인 성룡 영화가 아니라서 엔딩 크래딧에 NG컷이 나오진 않지만, 촬영장의 모습을 담은 스틸컷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누가 윌 스미스 제작 아니랄까봐 이 가족이 사진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참고로 윌 스미스 뿐 아니라 아내인 제이다 핀켓 스미스 역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엄마,아빠가 제작하고 아들이 주연하고)

4. 아직도 잘 이해가 안가요. 왜 울었을까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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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Sony Pictures Releasing 에 있습니다.




지구가 멈추는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2008)
인간은 극한에 몰려야만 말을 듣는다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은 애초부터 기대반 걱정반이 동반되었던 영화였습니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51년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것, 키에누 리브스와 제니퍼 코넬리 그리고 윌 스미스의 아들로 더 유명한
제이든 스미스가 출연한다는 것 정도가 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였죠. 아무리 사전 정보를 피해다니더라도 이 영화가
이른바 'SF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홍보된 것만은 피할 수 없었는데, 일단은 관객들의 기대를 한참이나 부풀려 놓은
홍보자체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결국 관객들은 낚였지만, 많은 관객들이 어쨋든 보게 되었으니 성공한 홍보라고
해야할까요;). <매트릭스>이후 국내 관객들은 키에누 리브스가 출연한다고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트릭스>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곤 했는데, 더군다나 SF 블록버스터라고 광고했으니 이 같은 기대가 더 커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기 이전에 워낙에 악평(최악이다 정도의)들을 많이 접하고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한 터라,
기대치를 본래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낮추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악까지는 아니다 라는 느낌이었는데,
만약 이 영화가 12월 꼭 봐야할 블록버스터로 홍보되지 않고, 몇몇 소수가 입소문을 내게 된 영화였다면 지금같은
최악의 평가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오히려 돈을 제법 많이 쓴 B무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매우' 관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구요. 하지만 어쨋든 전체적으로 영화가 아쉬운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듯 합니다.



(아래 단락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인간들이 망쳐놓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외계인이 직접 지구를 방문하여 인간들을
멸종시키는 것으로 지구를 지키려하는데, 이 미션을 수행하러온 외계인 '클라투'(키에누 리브스)가 인간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그들의 선한 본성을 엿보고 결국에는 한 번더 인간들을 믿어보기로 마음먹고 떠난다는 이야기죠.

사실 이거 자체가 그리 나쁜 시놉시스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키고 어떻게 마무리하고,
그 결말을 관객들에게 러닝 타임 내내 얼마나 설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지구가 멈추는 날>은 밋밋하고
갑작스런 전개 구조와 더불어 결국 아무것도 설득하지 못하고 허무하게만 느껴지는 결말 탓에 아쉬운 영화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이 영화가 기존에 외계인의 습격이나 공격들로 인해 인류 최후의 위기를 맞는 영화들에 비해 조금 더 아쉬운 점은,
기본적으로는 이런 영화의 클리셰들을 답습하고 있지만, 답습하려면 다 했어야 했는데 그 중간중간 과정들을 상당히 빼먹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중간중간 과정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외계인을 비롯한 공포요소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까지의 공포, 즉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 인간들이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를 제대로 표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치닫는 순간에 대한 상실감이나 허탈함, 슬픔 등을 표현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뭐 이런 영화들에선 흔히 등장하는 장면들인데,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숭고한 마지막 장면이라던가, 거대한 힘이나
재앙들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치다 사라져버리는 인파의 모습, 그리고 결국 그 마지막 순간에 달했을 때 극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게끔 하는 극적 감동 요소가 이 영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더군요. 물론 이런 장면들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면 쉽게 말해 '전형적'인 영화가 되었겠지만, 이런 장면들이 결국 하나도 없었던 이 영화는 '전형적'인
영화보다도 심심한 영화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게 전형적인 영화 한 편 만드는 것도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니깐요.
물론 가장 좋은 건 전형적인 이야기를 가지고도 진한 감동을 절로 일으키는 영화일거구요.




처음 인류의 위험을 감지한 정부에서는 이 위험에 핵을 쥐고 있는 '클라투'에게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하는데,
1951년 작인 원작을 보진 않았지만, 그 때나 가능할 법한 무대포식(혹은 너무 순수한) 대화방식이라 적잖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육체는 인간의 것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별다른 안전장치나 보호장치도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한다는 자가 대놓고 심문하는 장면이나, 그를 지킨다는 것이 겨우 예닐곱명의 경호원이 문 밖에 서 있는 것
정도라는 점들은, 이 영화가 과연 2008년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완전한
판타지 영화였다거나 아니면 원작처럼 1951년에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일 수 있겠지만,
이미 최첨단 시스템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관객들에 눈에는 너무도 허술하고 안이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정부 관료들의 모습도 초반에는 매우 전형적이었는데, 케시 베이츠가 연기한 이 정부 요인 캐릭터는 후반부에 가서는
갑자기 헬렌(제니퍼 코넬리)의 말을 새겨듣고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서는 공격하지 말것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도 너무 갑작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으나 한발 물러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주제가 결국에는 '인간은 극한에 몰려야만
말을 듣는다'임을 감안했을 때, 극한에 몰린 케시 베이츠가 그제서야 말을 듣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케시 베이츠가 맡은 국방부 장관과 클라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케시 베이츠가 '나에게 얘기하면 된다' '내가 대표다'라고 얘기했을 때 클라투가 '네가 전 인류를 대표 하는가?'라는 식으로
캐묻는 장면이었습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에서는 대부분 모든 인류의 짐과 해결을 미군 혹은 미정부가 지는 것이 보통인데,
너무 당연하지만 이 한마디로 미정부 관료를 당황시키는 장면이 나쁘지 않더군요.




결국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지구에 온 클라투가 헬렌과 아들에게서 선한 모습을 깨닫고 이를 막기로 하는데,
아무리 그가 인간이 아니고 터미네이터에 가까운 외계인이라지만, 과연 러닝 타임 내내 이 두 모자가 보여준 모습들이
그 엄청난 계획을 포기하고 인류를 구원할 만한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습니다. 특히 제이든 스미스가 연기한
제이콥 캐릭터는 <우주전쟁>의 톰 크루즈 아들 역할 만큼이나 짜증나는 캐릭터로 남기에 충분한 역량을 펼쳤는데,
<우주전쟁>의 경우는 그나마 아들 캐릭터가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갔지만, 제이콥의 경우는 막판에 갑자기 착해지는데
아무리 애라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전개였습니다. 이를 보고 '그래, 인간들을 더 믿어보자'라고 클라투가 생각하게
되었다는 설정 때문에 이 전개가 전체적으로 아쉬운 것이지요.

그리고 제작진이 생각하기에도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는 제목에 어울릴 만한 장면이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막판에 가서 갑자기 멈춘 시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건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기 보다는 '시계가 멈추는 날'로
보였습니다. 아무리 뻔하고 권선징악 적인 줄거리라도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 만한 좋은 영화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지구가 멈추는 날>은 이 설득 과정에 실패했기 때문에 많은 일반 관객들에게 '낚였다'라는
느낌만 전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키에누 리브스와 클라투 캐릭터의 싱크로율이었습니다. 스티븐 시걸에 버금갈 만한
모두 비슷비슷한 표정 연기로 유명한 키에누 리브스는 이 영화에서 작정하고 무표정 연기를 보여주는데,
이번 영화 만큼은 그의 이런 표정연기가 득이 되지 않았나 싶군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멋지기도
하지만 왜 이렇게 '상조회사'분위기가 나던지, 끝끝내 집중이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ㅎ (더군다나 내용이 내용인지라
상조회사 직원으로 지구를 찾은 외계인이라는 설정과 딱 맞아 떨어지기도 했구요).

제니퍼 코넬리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캐릭터도 그렇고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키에누 리브스랑 제니퍼 코넬리 나온다고 해서 보게 된 영화였는데, 두 배우 모두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이든 스미스는 <행복을 찾아서>같은 경우는 아빠랑 같이 출연해서인지 정말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이 영화에서는 약간 갸우뚱해지네요. 갸우뚱해지는 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짜증으로 인해 별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제이든 스미스의 연기가 짜증이라 별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가 저 조차도 불분명 하거든요 ---;;
연기는 정말 잘했는데 캐릭터 때문에 짜증났던 경우는 <미스트>에 마샤 게이 하든을 들 수 있겠네요 ^^;



1. 본문에도 있지만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키에누 리브스의 모습에서 자꾸 상조회사 직원이 떠올랐습니다.

2. 거대 로봇(?)인 '고트'가 정부 시설에 잡혀있던 장면에서는 '에반게리온'이 연상되더군요. 잡혀 있는 모습이나
    이를 반대편에 앉아 인간들이 보고 있는 구도나.

3. <프리즌 브레이크>의 '티백', 로버트 네퍼가 제법 비중있는 캐릭터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트랜스포터 3>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그의 스크린속 활약이 아직은 어색하기만 하군요;

4. 용산 CGV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하였는데, 아이맥스 만의 장점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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