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움 (Elysium, 2013)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를 떠올린 SF



전작 '디스트릭트 9'으로 전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된 닐 블롬캠프의 신작 '엘리시움 (Elysium, 2013)'은 단연 화제작일 수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타이밍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 전작과의 비교 선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엘리시움'은 '디스트릭트 9'의 영향력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아쉬운 (단순한) 작품이었다. 닐 블롬캠프가 단편 시절부터 추구해 오던 극과 극으로 나뉘어져 있는 두 계급에 대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엘리시움'에서도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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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소년은, 어린 시절 함께 자란 한 소녀와 동경의 대상(엘리시움)을 꿈꾸며 언젠 가는 그 곳에 대려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소년이 어른이 된 현재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영화가 처한 두 가지 세계와 어린 시절에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엘리시움'이 간과한 것은 이 작품이 SF영화라는 점인데, 물론 깨알 같은 디테일이 필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은 좀 그 과정에서 생략이 많은 편이라고 해야겠다. 관객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세계관과 장비들이 등장하는데 얼핏 봐도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가 있을 법한 요소들이 너무 단순하게 '뚝딱'하고 진행되거나 결정되어 버리는 경향이 좀 심한 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있어서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에 좀 관대한 편인데 (예를 들어, 아니 어떻게 저렇게 쏘는 데 주인공은 한 대도 안 맞을 수가 있어 라던지, 저 정도로 고도화 된 시스템이 저렇게 허무하게 해킹 되는게 말이 돼? 처럼), 그런 측면에서 봐도 이 작품은 좀 너무 그 과정을 생략하거나 쉽게 생각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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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닐 블롬캠프가 좋아하는 얘기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스스로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가 그 이분법적 세계관을 관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엘리시움' 역시 주인공 '맥스'의 이야기는 사적이고 영웅 심리가 없어서 마음에 들었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전체적으로 힘이 부족한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 영웅적 면모가 없다면 개인 사에 대한 공감대가 깊게 깔려야 할 텐데, 그 부분이 어린 시절의 짧은 플래시백과 작은 약속에 그친 것이, 긴장감이 고조되어야 할 후반부에 생각보다는 심심한 이야기가 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에 대한 너무 직접적인 비유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의료보험이 정부를 통해 관리되지 않고 시장경제 상황에 맡겨진 형태인 터라, 의료보험의 가입자 수가 많지 않아 대부분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수 역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는 정부 주도의 보조금이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비싼 보험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를 해결하고자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일명 '오바마 케어' 정책이 있으나, 이 역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여튼 '엘리시움'을 보며 자연스럽게 미국 내의 의료보험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연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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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본 이가 반 농담 조로 '이거 약 타러 가는 영화 잖아'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어찌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방사능으로 인해 오염된 지구에 살고 있는 이들이 지구 밖 엘리시움을 꿈꾸는 이유는, 부나 윤택한 삶 등의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치료'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 지구는 부를 갖고 있는 이들과 상류 지배 층이 모두 엘리시움으로 떠난 상황이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병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엘리시움에서 제공하는 치료 기기 (뭐든지 척척 고치는 만능 기계) 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려면 엘리시움으로 가야 하는 데, 이 곳은 시민권 자격을 통해 철저히 관리되고 있기에 여기서부터 허들이 발생하게 되고, 이 과정이 영화에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


여기서 시민권이란 현재의 의료보험이나 다름이 없다. 보험 가입자만 의료 서비스를 (사실상) 받을 수 있는 현실은, 시민권 자로 인식된 이들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영화 속 현실과 겹쳐진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이분법적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인데,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지구의 도시는 '디스트릭트 9'처럼 남아공이 아닌 미국 L.A다. 하지만 이곳에 남겨진 이들은 하나 같이 라틴계 혹은 흑인들이 대부분이며 백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점은 현재 미국 내에서 의료보험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빈민 측인 이민자들과 저소득 층인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들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엘리시움의 시스템을 관리하고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델라코트 (조디 포스터)를 비롯한 이들은 전형적인 백인들로 묘사되는 반면, 대통령이긴 하지만 힘없이 휘둘리고 있는 이는 흑인이자 히스패닉으로 묘사된 점은, 묘하게 현실과 겹쳐져 흥미를 유발하는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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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엘리시움'이 너무 노골적인 비유의 영화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사회적인 의도를 갖고 만들어 졌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비유가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를 반드시 품었다고 하기에는 역시 간과 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전작 '디스트릭트 9'에서도 SF에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냈던 그이기에, 이 작품 역시 자연스럽게 현실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전작에 비해 '엘리시움'은 확실한 판타지다. 영화 속처럼 모든 것을 리셋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은 누가 봐도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엘리시움'의 결말이 '디스트릭트 9' 못지 않게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1. 이 작품은 청소년 관람불가 인데, 그 이유의 대부분은 잔인함 이더군요. 미래의 무기들도 그렇고, 몇몇 장면에서 잔인한 신체 훼손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야한 장면은 한 장면도 없어요.


2. 샬토 코플리는 전작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바로 그 캐릭터를 '엘리시움'에서 연기하고 있군요. 본인 스스로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ㅎ


3. 이런 설정은 오히려 긴 호흡의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배틀스타 갈락티카' 정도로. 영화 속에서 엘리시움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제한적이었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4. 그러나저러나 '디스트릭트 10'은 언제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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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의 신 (Carnage, 2011)

깨알같이 찌질한 작은 우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 (Carnage, 2011)'이라니, 일단 제목은 그럴싸 했다. 폴란스키라는 이름과 대학살이라는 단어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느껴지는 조합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라일리라는 출연진은, 어지간해서는 실망하기 어렵겠다는 안전성마저 느끼게 해주었기에 주저없이 극장을 찾게 되었다. 사실 전혀 영화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보자는 주의라 이번에도 감독과 배우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코미디라는 점도,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몰랐는데, 역시나 몰랐던 것이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연극을 보았거나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았겠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나로서는 이 네 명의 주인공이 처음 현관까지 나갔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아, 이 영화 이 공간 안에서 끝을 보겠구나!'하며 더 흥미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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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랄 것도 없고 줄거리랄 것도 없는 것이 이건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이자 스포일러인 영화다. 각자의 직업으로 대변되는 점을 좀 더 부각하여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 그냥, 배울 만큼 배운 어른들 네 명의 아웅다웅 정도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라 하겠다. 그런데 그 '아웅다웅'이 어찌나 현실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흥미진진한지! '대학살의 신'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그럴싸하게 느껴질 정도의 티격태격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아주 심플한 인트로로 시작된다.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배경으로 작은 다툼이 일어나는데, 이 배경으로 스쳐지나쳐도 좋을 일이 얼마나 큰 (하지만 쓸데없는) 어른들의 일을 야기시키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면 역시나 '문명의 대학살'까지 운운한 어른들의 싸움과는 달리 아이들의 싸움은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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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위의 포스터 이미지와 같이 방안에 각각 위치한 네 명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장면이었다. 이 한정된 공간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와 심리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동작과 표정을 취하고 있는 네 명의 캐릭터의 변화를 보는 것이야 말로,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 스스로도 느낄 정도로 '아, 이건 아닌데'하는 지점에 빠져버릴 때가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본인 스스로를 완벽히 컨트롤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일 수록 이런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도 될텐데, '대학살의 신'은 바로 그 점, 사회적으로 성숙한 계급 아닌 계급에 살고 있는 어른들을 아주 작은 아이들의 일로 모이게 해 놓고, 정말 유치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 빠져드는 과정을 숨김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더 재미있는 이유는 그냥 멀쩡하게 생긴 캐릭터들이 유치한 말과 행동들로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그 가운데 나도 종종 살면서 범하는 실수들이 담겨 있어서 순간순간 섬짓 했기 때문이었다. 이 네 명의 대화 가운데는 짧지만 우리가 쉽게 범하곤 하는 삶의 작은 실수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뭐랄까, '내가 저런 실수를 했을 때 저렇게 하찮게 보였겠구나'라며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이랄까. 정말 우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진짜 나도 별일 아닌 거 가지고 저렇게 유치하게 덤빈 적도 있었는데...'하며 웃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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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완벽한 유치함을 완성하는 데에는 역시 네 명의 배우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정말 캐스팅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인데, 헐리웃에서도 지적인 이미지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조디 포스터가 이 상황 속에서 자신이 지지 않으려고 정말 목에 핏대를 세우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주장을 펼칠 때에는 코미디 이상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여기에는 조디 포스터의 연기력도 물론 한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조디 포스터라는 배우의 이미지 자체가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배우들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라면 역시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캐릭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조디 포스터 못지 않은 반전 연기는 물론 무엇보다 그 '몸연기'! 선반에 기대거나 벽에 기댄 모습, 그리고 방바닥에 정말 초라하게 웅크리고 앉은 그 몸연기는 올해의 연기 후보에 올려도 좋을 정도로 참~ 볼품 없었다 (과찬임 ㅋ). 존 C.라일리 역시 나머지 세 명과는 조금 다르게 능청을 부리며 이 셋을 비꼬는 듯 하면서도 본인 스스로도 극도로 유치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했으며, 케이트 윈슬렛은 의도치 않은 한 방(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그 것!)과 더불어 세련됨과 정제됨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 지를 정말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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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이 네 명의 배우가 유치찬란한 연기를 멋지게 연기했는지, 이제는 스틸컷 속 이들의 얼굴만 보아도 절로 '큭큭'하며 웃음이 날 정도다. 영화의 러닝타임과 영화 속 리얼타임이 동일하고 등장하는 인물이라고는 네 명의 '어른'들 밖에는 없지만, 무언가 (깨알같이 찌질한) 작은 우주를 만난 듯한 그런 영화였다.



1. 처음 원작에 대해서 몰랐을 때에는 폴란스키가 홍상수 영화를 찍었구나 싶었어요 ㅋ

2. 아, 홍상수 영화와의 차이점이라면 배우의 수는 비슷하지만 스텝의 수는 엄청나게 차이난다는 점

3. '다즐링'은 최소한 저에게는 유행되었습니다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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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앨리(조디 포스터 분)는 매일 어디 론가 무선 통신을 한다. 누가, 어디서 응답할지 알 수 없는 일방적인 목소리이다. 멀리, 더 멀리 통신을 시도하던 앨리의 호기심은 결국 그녀를 광활한 우주로 이끈다. 우주의 크기는 인간의 미약한 언어로는 사실상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것이었기에, 앨리의 이 같은 연구 활동은 무모한 것으로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십상이었다. 심지어는 같은 입장에 있는 과학자들에게 까지 말이다. 하지만 앨리는 이러한 것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언젠가 들려올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헤드폰을 쓰고 언제 올지 모르는 신호를 기다리던 어느 날, 그토록 기다리던 신호가 앨리의 귀에 들려온다. 그 신호는 믿기 힘들 정도로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베가성으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우주와 미지의 생물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SF영화들은 주로 인간이 우주로 나가 겪게되는 모험담이나 외계인들과 벌어지는 액션, 전투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미지의 생물과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와 공포를 동시에 전해주기는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올 때 가슴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차피 영화라는 매체가 대중성을 버릴 수는 없다고 보았을 때, 너무 학문적인 것에만 치중한 영화도 관객들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콘택트]는 이러한 영화들 가운데에는 가장 추천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원작이 되는 소설과 그 저자에 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코스모스’의 저자로 잘 알려진 칼 세이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다. 칼 세이건은 우주 연구에 있어서는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이에 관해 전문 지식이 전무 한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서 광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하고 쉽게 설명하여 이 분야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는 과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또한 그는 NASA의 자문역으로서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의 중심에 있었고, 저서 'The Dragons of Eden'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저서 ‘코스모스’와 동명 TV시리즈를 대중에게 소개하여 작게는 과학을, 넓게는 우주라는 개념을 보편적인 생활과 접목시키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영화 [콘택트]에서 칼 세이건은 직접 자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아쉽게도 영화가 완성되기 전인 1996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콘택트]는 칼 세이건의 자전적인 영화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 속 주인공인 앨리 애로웨이는 여러 면에서 칼 세이건과 닮아있다. 그렇기에 영화가 끝난 후 ‘For Carl'이라는 말과 함께, 이 영화를 칼에게 헌정하는 부분은 아쉬움과 존경심으로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과학과 진리, 과학과 믿음의 개념은 상대적인 것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렇게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물론 한낱 dvd타이틀 리뷰에서는 거론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이다. 이러한 대립의 개념은 인간이 하느님의 손으로 빚어진 작품이냐, 아니면 원숭이가 진화되어 생겨난 존재인가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니, 더 크게 본다면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시작 될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콘택트]에서는 이러한 대립 개념은 중요치 않다. 중요치 않다고 하기 보다는 아예 대립의 개념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앨리는 누구보다도 눈에 보이는 증거와 물증을 믿는 과학자였다. 하지만 우리도 영화에서 느꼈다시피, 그녀가 경험한 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고 증거가 남거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도 언급하였던 것과 같이, 이러한 것을 경험한 자로서도 그렇지 못한 자들이 의심하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겪은 일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칼 세이건은 중요한 말을 전하고 있다. 우주를 탐구하는 일은 곧,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라는 것. 즉 과학과 신앙은 추구하는 바가 같기 때문에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영화 속 두 주인공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신학을 공부하여 신념이 강한 팔머(메튜 매커너히 분)와 과학자인 앨리의 관계 말이다. 팔머는 영적인 존재를 믿는 신앙이 강한 자이지만, 과학자인 앨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반대로 과학자인 앨리는, 역시 사랑하는 팔머와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경험함으로써 모든 것이다 말로서 증거로서 입증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게 된다. 신을 믿는 사람이건 과학을 믿는 사람이건, 우리는 모두 우주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속에서 끝없이 진리를 갈구하고 있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꿈꾸는 이상향의 파라다이스가 있다. 앨리의 파라다이스는 ‘펜사콜라’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플로리다 주 어느 곳에 위치한 동네일뿐이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사실 특별한 추억이랄 것 까지는 없었지만 그녀 자신은 무의식 속에, 항상 그리워하는 아버지가 있는 펜사콜라를 그려왔던 것이다. 그녀는 바로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이미 이러한 것은 중요하지가 않았다. 베가성에 사는 외계인(?)들이 앨리의 무의식 속에서 찾아내 만들어진 공간과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영화 속에서 수사를 맡은 제임스 우드가 비아냥 거리 듯, 엄청난 자본과 기술로 완성된 이동수단을 타고 수십억 광년을 날아간 곳이 고작 미국 플로리다의 어느 바닷가였고, 거기서 만난 존재가 겨우 예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는 것. 하지만 그러면 어떠하랴. 자신의 항상 꿈꿔왔던 곳에서 그토록 다시 만나기를 원했던 아버지를 만난 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 영화에 나온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필자로 하여금 가장 큰 생활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말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그 시작은 항상 작은 것에서 시작하듯이, 넓은 우주에 대한 호기심도 결국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우주란 공간은 인간만이 살기에는 너무 넓은 곳이다. 그리고 인간의 힘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리하여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 잊고 살아가지만, 한번쯤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자신의 영혼의 뿌리를 찾아가는 길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브레이브 원 (The Brave One, 2007)

사실 이 영화는 예정에 없던 영화였다.
<패닉 룸>에서부터 살짝 실망하기 시작했고 <플라이트 플랜>까지 개인적으로
모두 그럭저럭으로 본 터라, 이번 조디 포스터의 새 영화 역시 그냥 그렇게 넘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친구가 보러가자고 하는 바람에(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그냥 봐주는 식으로
갔었는데, 영화 시작전에 팜플렛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감독이 닐 조단이었던것.
가끔 포스터나 배우, 여기서 나오는 분위기만 가지고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브레이브 원>의 경우가 바로 이 경우다.
포스터를 보니, 또 그런 영화구나 싶어서 감독이 누구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것.
그리고 조디 포스터외에 테렌스 하워드가 나온다는 것도 몰랐던 것.
닐 조단 감독에, 조디 포스터와 테렌스 하워드라면 사실 충분히 볼 만한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이 영화는 닐 조단 감독이 9.11 이후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그리고도 바로 뉴욕.

그곳에서 어쩌면 가장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의 삶이
전혀 우연한 어떤 사고로 인해(구체적으로 공격을 당함으로 인해), 어떻게 변해가고
변해가는 것을 넘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는(Stranger) 이야기.

사실 이런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는 많이 있어왔으나 닐 조단 감독의 <브레이브 원>은
9.11이후 미국사회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 있어 매우 중요한 논점을 갖고 있다.

(스포일러 있음)

처음에는 우연한 사고로 공격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이었고,
그 다음에는 공격에 의한 정당방위로서의 살인이었으며,
그 다음에는 아예 폭력을 행하는 주체가 되어 자신이 당한 것처럼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들에게 이른바 '정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모든것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을 해치고 남자친구를 살해한 이들에게,
하지만 이미 너무 변해버려서 그 원인이 무엇이었던건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복수의 총구를 거두게 된다.

여기까지만 비교해봐도, 9.11이후 미국의 움직임과 그대로 닮아있다.
처음 테러를 당한 미국은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긴 했지만(물론 테러의 원인은 제쳐두고서) 나중엔 있지도 않은 이유를 들어가며 공격적으로만 변해버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영화의 반전격이라 할 수 있는 결말이 가장 냉소적인 의도를 담고 있는데,
9.11과 생각않고 따져본다면,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가서는 총을 거워 결국은 법대로 처리한다는
결말이 아니라, 시원(?)하게 악을 무찔러서 괜찮은 엔딩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물론 이렇게만 따져봐도 충분히 논란이 있긴 할테지만)

9.11이후 미국사회와 비교해 본다면 이 결말은 아주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해한 범인을 죽이지 않고 총을 거둔 주인공에게 형사인 머서는 죽이려면
합법적인 총으로 죽이라며 자신의 총을 건네고, 나중에 자신에게도 총상을 만들게 해 그녀의 존재를
즉 그녀가 그동안 저질러왔던 행동들을 전부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

닐 조단의 이런 논조는,
즉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이 행하는 전쟁과도 같은 나쁜 일들을 결국 모두 합법화하고 정당화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덮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일랜드의 이 정치적인 노련한 감독은 얼핏 보기에 범죄 스릴러 같은 이 영화속에
자신이 바라본 9.11 이후 미국사회의 대한 생각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두 배우의 깊은 심리연기를 볼 수 있었던 명장면)

조디 포스터는 기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연기를 펼친 듯 하다.
사실 그 동안에는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에 실망을 많이 했었고,
이번 영화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느낌을 받았을런지는 모르겠다 --;

하지만 개인적으로 출연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몇분 전 밖에는 않되지만 --) 기대했던
테렌스 하워드는 역시 무겁고, 어쩌면 주인공만큼이나 큰 고민을 겪고 있는 캐릭터인 머서를
멋지게 연기한 것 같다. 특히 자칫 조디 포스터가 맡은 에리카의 1인 이야기로 독점될 수 있었던
영화의 분위기를 중간부터 두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가게 한 데에는 그의 깊은 연기가 큰 몫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냥 놓쳐버릴 수도 있었는데,
꼭 다시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는 아니지만,
놓쳤으면 분명히 아쉬워는 했을 작품이었다.

닐 조단!
역시 그 이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인듯!
심리적인 긴장감과 그 안에 담긴 주제 모두 만족스러웠던 작품!


 

 
글 / ashitaka


Inside Man
 
처음 끌렸던건 아무래도 배우들의 면면이다.
영화를 좀 본다는 사람이라면 결코 캐스팅 리스트를 보고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포스 넘치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먼저 클라이브 오웬은 차곡 차곡 배우의 길을 쌓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까지의 출연작들도 <킹 아더>같은 서사 액션물부터 <클로저>같이 감정과 느낌으로 연기하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양한 스펙트럼에 영화에서 극에 잘 묻어나는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이 영화 <인사이드 맨>에서 역시,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지 않았던 지능적인 은행털이 범을 그럴사하게 연기했다.
 
사실 클라이브 오웬이 맡은 역할은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선글라스와 마스크등
얼굴을 가리고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제법 이름있는 클라이브 오웬이
선뜻 선택한 것은 바로 덴젤 워싱턴 때문이었다고 한다.
클라이브 오웬이 가장 존경하는 배우라고 밝혔던 덴젤 워싱턴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 자신의 비중과 노출 정도에 상관없이 수락했던 것.
(사실 얼굴이 가려져서 등장할 뿐이지, 비중은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다).
 
덴젤 워싱턴은 확실히 그에게 아카데미를 선사한 <트레이닝 데이> 이후
더 다양한 작품들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전에도 다른 연기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배우였지만, 그 보다는 선하고 곧고 진지한 이미지가 강해
좀 어긋나고 다른 분위기의 역할을 맡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것도 사실
(물론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인사이드 맨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캐릭터는 바로 그가 맡은 '프레이져'형사 이다.
조금 껄렁한듯 하면서도 형사에 분위기가 물씬 흐르는 프레이져는 이 영화를
평범한 인질, 은행털이 영화로 만들지 않는데 한몫을 했다.
 
조디 포스터가 맡은 캐릭터는 러닝 타임에 길이 보다는 캐릭터 자체의
비중이 전달하는 의미가 큰지라, 그녀가 맡았기에 별다른 인물 배경에 대한
긴 설명없이도 굉장한 파워를 갖은 인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윌렘 데포나 크리스토퍼 플러머 같은 조역들의 연기도
역시나 멋졌다. (크리스터퍼 플러머는 젊었을때도 매우 멋졌으나 나이먹어서도
괜찮게 늙은 배우인듯. 물론 역할은 대부분 비리의 온상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사실 영화가 시작되고 은행털이범과 경찰간의 인질극 상황이 시작되었을때,
혹 <네고시에이터>와 같은 범인과 형사(협상가)사이에 밀고 당기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가 했었다. <인사이드 맨>은 장르를 따지자면 미스테리 스릴러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은행털이와 인질극을 배경으로 스릴러라면,
그 미스테리는 아마도 범인들이 어떻게 탈출 할까? 아니면 실패로 돌아갈까?
탈출한다면 그 방법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 될것이다.
 
<인사이드 맨>의 미스테리는 아마도 어떻게와 누가 가 될것 같다.
범인들의 우두머리 격인 달튼이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인질들과 범인들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과연 누가 범인이고,
범인들은 총 몇명인지 하는것.

사실 영화를 다 본 사람들도 이 과정에 대해 단번에 쉽게 말할 수는 없을 정도로
완전히 시원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단서들로 알 수 있게 해두었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된다.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장르에 스파이크 리 감독이라는 점은 조금 의외였었다.
그의 필모그라피에 스릴러라는 장르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긴 했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편으론 더욱 기대가 되는 장르이기도 했다.
 
이 영화는 9/11 이후에 미국사회에 대한 시각, 미국 사회에서 아랍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스파이크 리에 생각이 담겨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는 본격적으로는 아니지만, 이같은 생각을 옅볼 수 있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대낮에 시내의 한복판 은행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는 상황설정부터 시작하여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감싼 범인들의 인상착이는 흡사 아랍계 테러리스트들을
연상시키며, 인질 가운데 먼저 풀려난 터번을 쓴 아랍인을 필요이상으로 경계하는 등
9/11 이후, 빈 라덴과 테러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서(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계속 개운치 않은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밖에도 스파이크 리 감독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영화 속에 짧지만 다 인종에 관한
이야기들을 삽입해, 캐릭터 하나하나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같은 세심한 배려는 엔딩 크레딧에서 주연배우 3~4명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배우들에
이름과 사진을 하나하나 소개하는데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배우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흥행에 비교적 성공하진 못한 작품으로 남겠지만,
자세히 따져보고 있노라면 제법 매력있는 스릴러임엔 틀림없다.
 

 
글 / ashitaka


ps/1. <인사이드 맨>이란 제목 자체가 엄청난 스포일러다.
스릴러 영화는 종종 이런 경우가 있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2.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나치에 대항에 그리도 곧은 신념을
자랑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민족을 배신하고 나치에 빌붙어 성공한 인물로 그려진점도
개인적으론 재미있었다.
 
3. 영화 초반 범인들에게 핸드폰을 몰래 숨기려다 걸린 남자의 벨소리가
귀에 익숙한 Kanye West의 'Gold Digger'라 혼자 웃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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