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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믿음



올해 최고 대작 ‘헤일, 시저!’ 촬영 도중 무비 스타 ‘베어드 휘트록’이 납치되고 정체불명의 ‘미래’로부터 협박 메시지가 도착한다. ‘헤일, 시저!’의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비.상.상.황! 영화사 캐피틀 픽쳐스의 대표이자 어떤 사건사고도 신속하게 처리하는 해결사 ‘에디 매닉스’는 할리우드 베테랑들과 함께 일촉즉발 스캔들을 해결할 개봉사수작전을 계획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모든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 만드는 일에 대한)영화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코엔 형제의 신작 '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는 1950년대 헐리우드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가끔 당시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의 뒷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되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그야말로 대단한 에피소드들이어서 제작과정 그 자체로 전설이라 부를 만한 작품들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헤일, 시저!'는 그런 헐리우드 비즈니스의 복잡하고 거대한 뒷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아주 본질적인 영화 제작이라는 일.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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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배우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납치 되고, 새롭게 선택한 다른 작품의 남자 배우는 드라마 연기가 처음이라 연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며, 거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신작 영화에 주연 배우 (납치된 그 배우)에 대한 스캔들을 기사화 하겠다는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며, 그 와중에 잘 나가는 방위 산업체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받게 되는 이는, 이 영화사의 대표인 에디 매닉스 (조쉬 브롤린)다. 그는 해결사라는 별명 답게 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들이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려고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번에 벌어진 사건들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그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이직의 유혹이다. 영화 속 상황으로 미뤄보자면 당장에라도 이 현장을 떠나 더 좋은 조건. 야근도 없고 돈도 더 많이 버는 방위 산업체로 이직하는 편을 관객으로서 응원하고 싶을 정도다.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겪게 되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지만 사실 정색하고 다시 보자면 이 상황은,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픈 위급 상황이다. 


그런데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처한 상황, 그러니까 영화가 제작되는 스튜디오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 제작 과정의 매력을 슬쩍 담아 낸다. 매닉스가 이런 저런 다른 이유로 영화 세트장을 찾을 때 단순히 세트장으로서 현장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참이나 그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가, 순간 그 영화 속 영화의 관객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영화 만드는 일 (이를 테면 편집과정)을 묘사할 때 그냥 웃고 넘길 만한 에피소드처럼 스윽 지나가지만, 은연 중에 영화 만드는 일의 놀라움과 대단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은 결국 매닉스의 마지막 선택으로 확고한 종지부를 찍는다. 코엔 형제는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왜 영화 만드는 일이 의미 있는가'를 말하는 것 대신, 어쩌면 무조건 적이고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그 정당성을 말하고자 한다. 코엔 형제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헤일, 시저!'의 순수한 믿음은 지금의 영화 산업과 영화라는 존재가 처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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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라는 예술 혹은 산업을 더 좋아하도록 만든 그 자체의 영화였다. 귀엽고 유쾌한 가운데.


1. 여러 화려한 출연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호비 도일 역할을 맡은 엘든 이렌리치 였어요 ㅎㅎ

2. 나중에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영화 속 영화들이 조금씩이라도 수록되면 정말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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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Sicario, 2015)

범죄와 현실의 가운데서



사상 최악의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 국경 무법지대에 모인 FBI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와 CIA 소속의 작전 총 책임자 맷(조쉬 브롤린), 그리고 작전의 컨설턴트로 투입된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극한 상황 속, 세 명의 요원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숨쉬는 모든 순간이 위험한 이곳에서 이들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출처 : 다음 영화)


드니 빌뇌븨 감독의 '시카리오 (Sicario, 2015)'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을 배경으로 거대한 마약 조직인 카르텔과 이를 소탕하려는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 조직을 중심으로 한 소탕 작전을 그린다.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이 작전의 한 가운데에 마약국 소속은 아니지만 현장 경험이 풍부한 FBI 요원인 케이트를 등장시킨다. '시카리오'에서 케이트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범죄 조직도 이를 소탕하려는 정부 조직도 서로의 이익을 위한 현실적인 것에 만족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종의 이방인 격이자 아직 이상적인 바를 주장하는 케이트는, 이 현실을 다시금 바라보고 질문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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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문은 권력이나 힘, 혹은 균형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했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팔아 넘기는 마약 범죄 조직은 잔혹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를 소탕하고자 하는 정부 조직의 행동이나 방식이 과연 그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조금 진부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참혹한 살인을 지시하고 행하는 범죄 조직원들이나 우두머리도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가족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상대적으로 주인공의 편에 서 있는 이들의 냉정함을 들어 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또한 주인공 케이트에 대한 시선 역시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녀가 꿈꾸는 합법하고 이상적인 방법들이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 법과 이상대로 범죄 조직을 어떤 피해나 시간이 들더라도 모두 소탕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또한 가능한 것인지를 묻고, 결국 소탕하지 못한다면 관리 하에 두는 일종의 타협안을 수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영화는 답하기를 유보한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럼에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담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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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 '시카리오'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범죄 스릴러다. 마치 리들리 스콧의 '카운슬러 (The Counselor, 2013)'를 연상시키는 범죄 조직과 현실의 공포와 무게감, 그리고 캐서린 비글로우의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2012)' 못지 않은 작전 과정의 치밀함과 디테일한 묘사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접하고 있는 범죄조직과 첩보조직과의 관계와 사건들을 실제하는 현실이라는 것으로 체감할 수 있게 만든다. 에밀리 블런트, 조쉬 브롤린, 베니치오 델 토로의 연기는 과장됨이 없어 더욱 섬뜩하고 현실적이며, 최근작 '스카이폴'에서 정말 멋진 영상을 선사했던 로저 디킨스의 촬영 역시 이 작품의 손꼽을 만한 매력 포인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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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True Grit, 2010)
코엔 형제가 말하는 진정한 용기


존 웨인 주연의 서부영화 '진정한 용기 (True Grit, 1969)'와 찰스 포티스의 소설 'True Grit, 1968'을 리메이크한 코엔 형제의 'True Grit (국내 개봉명 : 더 브레이브)'은 서부 영화의 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 그들의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는 또 다른 묵직한 서부영화인 동시에 '시리어스 맨' 이나 '번 애프터 리딩'에서 보여주었던 재기 넘치는 '코엔 형제스러움'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1880년대를 배경으로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나서는 당찬 14살 소녀 매티 (헤일리 스타인펠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매티가 여정을 위해 만나게 되는 루스터 카그번 (제프 브리지스)과 라 뷔프 (맷 데이먼)의 캐릭터가 더해져, 간단하지만 힘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코엔 형제가 이 작품을 다시 꺼내서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용기 (True Grit)'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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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티는 처음부터 아주 강인하고 용기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할 때, 글도 못 읽는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 밖에는 없어서 내가 나서야 한다는 이유를 대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보여지는 매티의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더라도 나서고야 말았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매티가 만나게 되는 카그번과 라 뷔프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지만, 무언가 하나 씩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카그번은 배짱있고 노련한 보안관이지만 정의보다는 돈에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고, 너무 이런 생활을 오래 한 나머지 불한당 들과의 관계에 익숙해져 버렸을 정도다. 그에 반해 텍사스 레인저 라 뷔프는 역시 레인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현상금을 위해 먼 길을 달려 카그번과 협력 했을 뿐 그 이상의 목적은 없는 이다. 이런 이들이 매티를 만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어쩌면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확실한 건 이 작품의 전개에 있어 복수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영화는 마침내 매티가 아버지를 죽인 톰 채니 (조쉬 브롤린)와 만나게 되는 장면을 마치 우연처럼 그리는 한 편, 이 후에도 이들의 조우에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카그번과 라 뷔프의 행동에 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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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찌들 대로 찌든 캐릭터와 냉정하고 차가운 캐릭터가 뚜렷한 목적성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에 의해 동화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코엔 형제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 동화의 과정을 별로 자극적이지도, 더나아가 심심할 정도로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만약 카그번과 라 뷔프가 동화되는 과정을 어떤 사건을 두고 감정적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것으로 연출하거나, 매티의 복수에 촛점을 맞춰 톰 채니와의 긴장 관계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더 브레이브'는 오락적으로는 더 효과 높은 작품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저 그런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묵직한 주제를 뒤에 탄탄히 받쳐두고는 마치 이 주제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면 할 수록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믿는 것처럼, 별다른 수식어 없이 진중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화술 덕에 영화의 마지막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들려주는 후일담은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찬송가의 분위기와 맞물려 종교적이기까지한 무게를 전한다. 후일담을 들려줄 때도 영화는 절대 신파나 감정의 극대화를 노리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장 가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용기란 어떤 수식어나 포장도 필요 없는, 강요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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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연을 맡은 매티 로스 역의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실제로도 14살의 소녀인데, 제프 브리지스, 조쉬 브롤린, 맷 데이먼을 리드할 정도로 당찬 연기가 인상적이더군요. 오늘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여우조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어 자리를 하기도 했는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라 할 수 있겠네요.

2. 럭키 네드를 연기한 베리 패퍼도 인상적이었는데, 항상 전쟁 영화나 범죄 영화 등에서 우수한 병사나 요원 중 하나로 나온 적은 많았지만, 이번 처럼 무리의 우두머리로 나온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뿌듯하기까지 했다는 ㅎ

3. 조쉬 브롤린은 '환상의 그대'에 이어 연속으로 찌질한 연기에도 재능이 있음을 이번 작품에서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한 동안 조쉬 브롤린 하면 날카롭고 좀 무섭기까지한 이미지였는데, 이러다가 너무 쉬워지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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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
환상 속에 사는 그대들을 위해



우디 앨런의 신작 '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는 극중 등장하는 여러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연애와 삶에 대해, 노련한 시각으로 덤덤하게 들려준다. 극을 이끌어가는 내레이션의 목소리는 유쾌하고 리듬감이 넘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유쾌하지만 (그래서 '연애소동극'이란 문구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유쾌하지 만은 않은 씁쓸한 인생의 뒷 맛을 전하는 작품이다. 극중 인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인생의 탈출구 (희망)를 꿈꾼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늙은 아내와 이혼하고 딸보다도 젊은 여성과 재혼하여 더 젊고 생기 넘치는 웰빙 라이프를 꿈꾸는 알피 (안소니 홉킨스). 남편과의 이혼 이후 점쟁이에게 모든 삶을 의지하다시피 하는 헬레나 (젬마 존스). 이 둘의 딸인 헬레나 (나오미 왓츠)는 데뷔 이후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 남편 로이 (조쉬 브롤린)와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 만의 갤러리를 갖고자 하며, 멋진 직장 상사인 그렉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게 된다. 남편인 로이 역시 출판사에 보낸 새 원고에 대해 소식이 없어 불안해 하던 중, 길 건너 창밖의 여자 디아 (프리다 핀토)에게 마음을 빼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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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등장하는 대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한 마디를 꼽으라면 '인생은 때론 신경안정제보다 환상이 필요하다'를 들 수 있을텐데, 우디 앨런이 이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은 '그래서 환상을 갖고 살아야 한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라기 보다는, 환상에 잠시 몸을 맡겼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환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삶은 역시 삶이다'라는 냉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냉소적이라고 하니 극중 인물들의 이야기가 날카롭거나 어둡게 진행될 거라 생각하면 아직도 우디 앨런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스크린에 드리우는 그 따스한 색감처럼 시종일관 생기와 유쾌함으로 가득차 있다. 냉소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을 보면서, 혹은 집에 돌아와 이 작품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될 때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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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극중 인물들이 빠져들게 되는 환상에 관객들도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노장에 영화 기술도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어쩜 이렇게 적지 않은 나이에 감독이 (쉽게 말해 할아버지가), 연애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넘쳐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소름돋을 정도로 현실적인 것일까 라는 점이다. 사랑 뿐만 아니라 연애를 하게 되면서 갖게 되는 복잡 미묘한 감정 묘사를 거추장 스럽지 않으면서도 현실감 있게 써내려가는 기술이야 말로 우디 앨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환상의 그대' 속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사실 이렇다할 새로울 것도 없고, 어쩌면 과장 섞인 감정이 필요할 듯한 익숙한 전개에 놓이기도 하지만, 우디 앨런은 최소한이자 최선의 감정 묘사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감정선을 묘사해 낸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는 참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그다지 새로울 것없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도 같은 이야기이지만, 순전히 그 표현 방법을 통해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영화 장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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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에 서두에는 우디 앨런이 좋아하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인용된다.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차 있고,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니까 결국 이 작품은 일상에서 환상을 꿈꾸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그래서 조금의 환상이 삶에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영화가 노련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환상이 나쁘다거나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갖을 수 밖에는 없는 삶의 구조이지만 그 환상이 가져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 라는, 한 차원 물러서서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극중 리듬감 넘치던 내레이션 음성은 왠지 더 초월한 듯 담담하게 느껴졌다. 환상에 흠뻑 빠져도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매력 넘치는 인물들과 이야기를 펼쳐 놓고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이야기하다니. 이거야 말로 정말 냉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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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아' 역할로 나온 프리다 핀토는 정말 '환상' 그 자체더군요. 물론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후 시간이 좀 흐른 탓도 있겠지만, 이 작품 속 프리다 핀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니 보일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21세기 여신으로 급부상한 프리다 핀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2. 그리고 로이 역할로 나온 조쉬 브롤린은 보는 내내 마치 홍상수 영화의 김상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 나온 배 하며, 대충 차려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라니. 진짜 홍상수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김상경이 안겹쳐질 수가 없는 모습이더군요.

3. 아직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에 반해, 나오미 왓츠는 확실히 나이가 이제 느껴지는 얼굴이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느껴지는 동시에 예전 나오미 왓츠에게서 느꼈던 매력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그녀는 여전히 다섯 손가락에 드는 페이보릿 여배우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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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시간을 살았던 한 인간의 삶

어쩌면 구스 반 산트에게 하비 밀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밀크'의 연출은 운명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구스 반 산트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커밍아웃 한 게이로서는 최초로 미국 시의원에 당선되었고 인권운동가였던 하비 밀크에 대한 영화화는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는 구스 반 산트 외에 다른 감독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점은 단순히 구스 반 산트 본인이 게이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겠다 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하비 밀크의 이야기를 단순히 동성애자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했던 게이 정치인의 이야기로 그려내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저 뜨겁게 짧은 인생을 살다간 한 인간의 삶으로 그려냈다는 점 때문에, 이 영화 '밀크'는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좋은 작품이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참고로 이 영화는 2008년 제작된 작품으로 그해 열렸던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숀 펜)과 각본상 (더스틴 랜스 블랙)을 수상하였으며,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작품상, 각본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아카데미 특수에 포함되어 개봉할 기회를 놓쳐버렸고, 결국 개봉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다행히(?)도 올해 2월에야 소규모로 극장 개봉을 할 수 있었다. 극장에서 조차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만날 기회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DVD로 출시된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항상 죽음을 매개체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소년성과 함께 풀어내었던 구스 반 산트는 '밀크'에서 역시 죽음을 다루지만, 여기서의 죽음은 사건의 종결도 아니고 감정이 폭발해 나오는 지점 역시 아니다. 영화적인 구조 측면에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는 이 영화가 하비 밀크의 일대기를 다룬 연대기적 작품이 아니라는 점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하비 밀크가 1978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마지막 8년 간의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가 그리는 방식은 연대기적이지 않고 오히려 파편의 조각을 모은 듯한 구성을 하고 있다. 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해한 방식이라거나 형식적으로 파격적인 구성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밀크'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서사에 가까운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밀크'가 대중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는 관점은, 게이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전혀 게이 영화가 아닌 작품이라는 점인데, 일반적으로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이 동성애 자체를 이슈화 하기 보다는, 동성애 자체를 걷어내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고 있을 때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고 봤을 때, '밀크'는 그 지점을 한 차원 넘어서서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드라마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본편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성애라는 것과 더 나아가 하비 밀크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인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구스 반 산트의 연출에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지만, 그 못지 않게 - 아니 더 하게 - 하비 밀크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깊은 교훈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비 밀크의 삶과 당시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특히 하비 밀크를 연기한 숀 펜의 경우, 사실 더 이상 연기에 대해 논하는 것조차 우스운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조금만 말해보자면, 영화 속 숀 펜의 얼굴에서는 전혀 그간 연기했던 그 어떤 캐릭터의 얼굴도 겹쳐지지 않고, 오롯이 하비 밀크의 얼굴만이 남는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숀 펜이라는 배우는 바로 그 가장 당연한 부분을 가장 잘 해내는 배우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댄 화이트 역할의 조쉬 브롤린의 경우, 비교적 적은 비중임에도 댄 화이트라는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조쉬 브롤린 만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클리브 존스 역의 에밀 허쉬와 스콧 역의 제임스 프랑코 역시 당시 카스트로 거리가 현실로 느껴질 만큼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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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Quality

DVD의 화질과 음질은 평균적인 수준이다. 화질의 경우 다른 타이틀에 비해 조금 노이즈가 있고 선명한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DVD자체의 화질 문제라기 보다는 애초 작품의 화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평균적인 수준으로 보면 되겠다.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작품의 특성상 사운드적인 효과를 즐길 만한 요소는 부족한 편이지만, 대사 전달 및 감상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이런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을 리뷰 할 때 자주하게 되는 말이지만, 화질과 사운드는 – 특히 사운드는 – 거들 뿐이다. 작품의 완성도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DVD Special Features

첫 번째로 소개할 부가영상은 'Deleted Scenes'인데 초반 하비와 스캇의 대화 장면과 하비와 잭 과의 대화 장면 그리고 법안 반대표를 위해 광대로 분장한 하비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삭제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Remembering Harvey'는 실제 하비 밀크의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 하비 밀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인터뷰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는 영화 속 캐릭터들의 실존 인물들이 대부분이며, 그 중에는 자기 자신을 연기한 이도 있고 극중 또 다른 역할로 까메오 출연한 이들도 있다는 점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 속의 하비 밀크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준다.





'Hollywood Comes to San Francisco'에서는 배우들과 스텝들이 추억하는 하비 밀크와 더불어 감독 구스 반 산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배우들의 경우 각자 실존하는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뒷이야기 등 출연배우 대부분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주연을 맡은 숀 펜의 인터뷰가 수록되지 않은 점이 조금은 아쉽다.





마지막으로 'Marching for Equality'에서는 카스트로 거리에서의 행진 장면 촬영 뒷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당시 실제 행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촬영에 참여해 당시를 회상하는 인터뷰와, 역시 당시 행진에 참여했던 하비의 친구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총 평

구스 반 산트의 '밀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단순히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 날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동시에, 영화가 주는 감동보다 실제 하비 밀크의 삶에 더 깊은 인상을 받게 끔 만드는 영화적 의도마저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속 하비 밀크의 삶을 2시간 넘게 보고 나면 누구나 이렇게 한 번쯤 자문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과연 이처럼 뜨겁고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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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테러 (Planet Terror, 2007)
극장에서 즐기는 B무비에 환호하다!

본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와 함께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동시상영 영화였으나, 잘 알다시피 국내에서는 심의나 인지도 등등의 문제 때문에 결국 두 작품 사이에
무려 1년이나 텀을 두고 극장 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나마도 다행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데쓰 프루프>가 타란티노의 장기인 수다와 더불어 추억의 액션 영화와 함께 했었던 스턴트 연기에 대한
오마주와 애정이 담긴 영화였다면,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는 B급 고어무비들이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과 잡다함에 존경을 보내고, 유머러스함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는 그들만의 아주 특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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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이벤트 형식으로 두 영화를 한 번에 감상하는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한번에 이어봤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는 선배 B급 고어무비들에 대한 오마주가 듬뿍 담긴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고어 영화를 유난히 즐기지도, 반대로 특별히 꺼리지도 않지만, 나 같은 중간자적 입장에서도
고어함을 견디고 이를 넘어 즐길 수 있다면 <플래닛 테러>는 더할나위 없이 흥겨운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오히려 B급 고어 영화들에 대한 사전 정보(그러니까 이런 영화들을 얼마나 많이 알고 또 보았느냐)량에 따라
더 많은 장면에서 남다르게 환호할 수 있을 듯 했다.
사실 극장에서 떠드는걸 아주 싫어하는 평범한 관객의 한 사람이나, 이번 <플래닛 테러>같은 경우는
이런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서, 소리내어 환호하며 관람했으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몇몇 장면에서는 소리내어 환호도 하고 싶었고, 또 반대로 '우웩'이나 '웁스', '허걱'
등 다양한 감탄사들을 소리내어 발산하고 싶은 욕망을 극장에서 느껴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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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의외로 상당히 유머러스함이 넘치는 영화였다(유머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얘기다). 인물들이 진지하게 내뱉는 대사 가운데는 웃음을 입밖으로 뿜어낼 정도로 유쾌한 장면들이
많았는데, 뭐랄까 얼마전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보여준 쿨함이랄까? 공포스럽고 위기스런 상황에
닥쳐있음에도 본연에 사소한 일들에 집착하고, 흐름과는 별 상관없는 대사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인물들의
무표정에서는 진정한 'COOL'함을 느낄 수 있었다(미니 바이크 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을 뿜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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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빈을 얼마만에 만나게 되는지, 일단 모습만으로도 반가웠다!)

가장 좋았던 건 배우들의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이미 포스터와 예고편에서 총을 다리에 박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체리 달링 역할의 로즈 맥고완의 포스는 가히 예고편 이상이었다. 고고 댄서로 출연한 그녀의
총질 하는 모습은 댄스 장면보다도 더욱 댄서블 했고, B무비스럽지 않게 아름답기까지 했다. <데쓰 프루프>에
등장했던 언니들과는 사뭇 다른 액션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들을 여과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엘 레이 역할의 프레디 로드리게즈의 캐릭터도 좋았는데,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전설의 총잡이 설정을 하고
있으나 그가 보여주는 액션 장면들은 단순한 총잡이를 넘어서는 '황혼에서 새벽까지'급이었다. 사실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이 두 배우외에 여러 조연들의 캐릭터가 정말로 인상적이었는데, 먼저 초반부와 후반부에 등장해
주시며 메이저급 배우의 아우라를 B무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해주고 계시는 블루스 윌리스와
최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더욱 잘 알려진 조쉬 브롤린의 캐릭터도 아주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웠던 것은 <터미네이터>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이클 빈의 모습이었다.
마치 <씬 시티>에서 미키 루크나 브루스 윌리스가 그러하였듯, 나이를 고스란히 드러낸 모습이 오히려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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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언니가 만들어내는 액션과 몸짓들은 이 영화의 백미다)

그리고 가장 큰 웃음을 준 캐릭터 중 하나인 '다코타'를 연기한 마리 쉘톤의 주사 3종 연기도 인상적이었고,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의 리드보컬 '퍼기'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킬 빌 1,2>와
<데쓰 프루프>, 그리고 <플래닛 테러>에 이르기까지 모두 '얼 맥그로'라는 동일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마이클 팍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얼 맥그로는 앞으로도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의 작품에 계속 등장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아, 그리고 물론 나와서 엽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모습도 지워지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살이 더 찐듯한 모습이더라. 하긴 이것도 2007년 혹은 2006년 모습이니 요즘과 비교하기는
어려울듯).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영화 속에 다코타의 아들로 나온 어린 소년은 감독인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실제 아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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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게즈! 이 천재적인 욕심쟁이 만능맨 같으니라고!)

로버트 로드리게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자신만의,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고집스럽게 가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만든 영화사인 '트러블메이커 스튜디오'라는 이름답게, 대놓고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그는, 이제 단순히 재능이 넘치고 장난끼 넘치는 감독으로 보기엔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그는 코엔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 장인이며, 앞으로의 작품 하나 하나가 모두 기대되는 감독의 대열에 올라섰다 하겠다.
자신에 집에 만든 스튜디오에서 연출, 촬영, 각본, 음악까지 모두 다 혼자 해치워버리는 그의 원맨쇼는
앞으로도 계속 될테니 말이다.


1. 엔딩 크래딧은 항상 다 보고 나오는데, <플래닛 테러>는 필름의 상태가 안좋아 스탭롤을
   살펴보기가 불편했다 ^^;

2. <데쓰 프루프>도 그렇고 <플래닛 테러>도 그렇고 음악이 참 좋다.
    음악은 로드리게즈가 직접 만든 곡도 있으며, 로즈 맥고완이 직접 부른 곡도 있다.

3. 엔딩 크래딧 맨 마지막에 아주 짧은 보너스 장면이 있습니다.

4. 텍사스 바베큐가 달래 유명한게 아니더라. 그 맛의 대한 장인의 자부심과 고집이란.

5. R.I.P에 그런 의미도 담겼었는지 몰랐다 ㅋ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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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

지난 해 말부터 개인적으로 <아메리칸 갱스터> <스위니 토드>와 더불어 가장 기대되었던 작품 중,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던 이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파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등을 만든 코엔 형제의 작품으로, '서부의 셰익스피어'로 불린 다는
미국의 작가 코맥 맥커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아무래도 코엔 형제의 대표적인 서스펜스 영화를
들자면 <파고>를 들 수 있겠는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여기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왜냐하면 <파고>도 상당히 장인의 솜씨가 묻어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즉 고수가 달래 고수라 불리는게
아니라는 진리를 스스로 확인시켜주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엄청난 서스펜스와 긴장감, 그리고
역시 고수대열에 들거나 혹은 이미 들었거나 한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 그리고 아직도 그 능력이 한참이나
남았음을 보여준 코엔 형제의 연출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동명 소설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코엔 형제가 아주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극중 인물은 특별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이 영화에서는 돈가방을 얻게 되는 것), 그를 둘러 싸고 각자
다른 인물들이 개입되면서 얽혀나가는 과정 중에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부여하고, 그 속에는 단순하지만
무거운 주제 의식을 깔고 가는 형식을 이 영화는 갖고 있다. 이런 점에 있어 <파고>와 자주 비교를 하게
되는데, <파고>가 좀 더 유머가 있고, 극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이 영화는 <파고>보다도 좀 더 담담한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고, 좀 더 장르영화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캐릭터가 돋보인
영화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엄청난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주 느긋하게, 담담하게 풀어가는 방식이었는데, 일반적인 서스펜스라하면 최근 개봉했던 우리영화 <추격자>
처럼 속도감있는 방식과 치닫는 형식을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영화는 이런면에서 너무도 느긋하다.

얘를 들어 인물들은 서로를 숨이 막힐 정도로 뛰어서 쫓지도 않고, 극박한 상황에 극적인 음악이 흐르지도
않지만, 조용히 서로 전화통화를 나눈다던지, 문을 사이에 두고 한 동안 대립한다던지 하는 것 만으로도,
극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극 중 모스(조쉬 브롤린)는 자신을 쫓는 이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모텔을 여기저기
옮겨다니고 시거(하비에르 바르뎀)는 이를 계속 뒤 쫓기는 하지만, 이 것이 극박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마치 모스가 덫을 놓고 시거를 기다리는 냥 생각될 정도로 느긋함이 느껴지지만, <추격자>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극한 긴장감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영화 음악이 거의 없다.
서스펜스 영화의 경우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효과적으로 음악을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거의 음악을 찾아볼 수가 없고, 극적인 상황에서도 단순히 효과음 만으로 이를 보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거가 사용하는 그 무기(?)가 발사될 때의 효과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음악도 없고 느긋하게 전개 되지만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을 넘어 넘쳐났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소름돋도록 냉정한 대사에 있었다. 특히 시거가 내뱉는 대사들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하는, 냉정하고
잔인한 현실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자신만의 정해진 원칙에 따라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그리고 저지르게 전에 마치 상대의 목을 조르는 듯한 압박감을 전해주는 그의 말투와 대사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들 보다도, 그가 말을 할 때 더 공포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역시 이처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시거가 사람들을 죽일 때의 텀을 매우 짧게하여
그야말로 무자비함, 냉정함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나중에 또 이야기하겠지만, 여기에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사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얼핏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돈 가방은 누가 결국 가져갔는지,
시거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스의 아내는 결국 죽은 것인지 등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들부터 조금은
추측할 수 밖에 없는 것들도 있지만,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누가 돈가방을 차지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모스와 시거, 보안관 에드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모호함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나중에 곱씹어 보면 영화의 이야기를 대충 가늠해볼 수 있었던
초반 에드의 독백과 영화의 제목도 그렇고, 자신만의 원칙은 꼭 지키던 시거가(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안죽여도
되는 모스의 아내를 나중에 죽이기까지 한 시거가), 자신은 파란불 신호를 잘 지켰음에도 신호를 지키지 않은
다른 사람에 의해 사고를 당하게 되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전혀 댓가없이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통해,
원칙대로 해도 결국에는 어쩔 수 없는(바로 그 자신도), 현명한 보안관인 에드가 막아보려고 했었지만,
결국에는 모스의 죽음도, 시거를 잡을 수도 없었던 것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성 조차 매말라버린,
그리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힘없는 자들의 지혜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냉혹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댓가없이 옷을 건네주었던 아이와 그 친구조차, 돈을 받고나서는 서로 나누자 말자로 다투는 모습을 멀리서
보여준 것도, 이 냉혹함을 빗대어 보여준 좋은 장면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토미 리 존스가 아내에게 담담히
꿈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끝나는 듯 하지만, 이 엔딩이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말로 심오한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는 정말로 후덜덜 그 자체였다. 스페인 출신의 그의 연기를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영화는 <씨 인 사이드>였는데, 물론 두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헤어 스타일이 유독 많이 차이나긴
하지만(^^), 그래도 과연 이 두 캐릭터를 한 배우가 연기한 것인가 생각될 만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독특한 단발 스타일은 가발이 아니라 실제 그의 머리라고 하는데,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도로 변에서의 살인 장면에서만 해도 약간은 코믹함이 느껴질 뻔 했으나, 나중에는
그 단발머리 조차 무서워질만큼, 오랜만에 무서운 악역을 만난듯 했다. 가장 최근에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비리 경찰의 더러움을 잘 보여주었던 조쉬 브롤린은 이 영화에서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군상을 그린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데, 평범함과 섬찟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그의 얼굴은, 돈가방을 우연히 얻게 되며
어려움를 겪는 모스를 연기하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서 좀 더 좋은 많은 작품에서
또 그를 보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토미 리 존스.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는 정말 그야말로 내공없이는 할 수 없었던 연기가
아니었나 싶다. '나이가 먹으면 하느님이 어떻게 도와주시겠지 했었는데, 이제는 힘이 부친다'라고 말하는
그의 주름진 얼굴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되는 연기 그 자체였다.
담담한 듯 하면서도 애써 위안할 수 밖에는 없는 보안관 캐릭터를 연기한 토미 리 존스의 연기는, 어쩌면
강렬해 보이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에 가려져 돋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영화를 두번 세번 보게 되고,
다시금 떠올려본다면 '와, 참 대단한 연기였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볼 때는 그 속에 몰입되어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보고 난 뒤, 한 발작 물러서서 다시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대단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참, 대단하구나 코엔 형제!


1. 중반에 모스가 히치하이킹을 하게 될 때, 노인 운전사가 했던 말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2. 우디 헤럴슨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인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_-;;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Paramount Vantage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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