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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믿음



올해 최고 대작 ‘헤일, 시저!’ 촬영 도중 무비 스타 ‘베어드 휘트록’이 납치되고 정체불명의 ‘미래’로부터 협박 메시지가 도착한다. ‘헤일, 시저!’의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비.상.상.황! 영화사 캐피틀 픽쳐스의 대표이자 어떤 사건사고도 신속하게 처리하는 해결사 ‘에디 매닉스’는 할리우드 베테랑들과 함께 일촉즉발 스캔들을 해결할 개봉사수작전을 계획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모든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 만드는 일에 대한)영화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코엔 형제의 신작 '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는 1950년대 헐리우드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가끔 당시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의 뒷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되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그야말로 대단한 에피소드들이어서 제작과정 그 자체로 전설이라 부를 만한 작품들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헤일, 시저!'는 그런 헐리우드 비즈니스의 복잡하고 거대한 뒷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아주 본질적인 영화 제작이라는 일.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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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배우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납치 되고, 새롭게 선택한 다른 작품의 남자 배우는 드라마 연기가 처음이라 연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며, 거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신작 영화에 주연 배우 (납치된 그 배우)에 대한 스캔들을 기사화 하겠다는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며, 그 와중에 잘 나가는 방위 산업체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받게 되는 이는, 이 영화사의 대표인 에디 매닉스 (조쉬 브롤린)다. 그는 해결사라는 별명 답게 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들이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려고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번에 벌어진 사건들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그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이직의 유혹이다. 영화 속 상황으로 미뤄보자면 당장에라도 이 현장을 떠나 더 좋은 조건. 야근도 없고 돈도 더 많이 버는 방위 산업체로 이직하는 편을 관객으로서 응원하고 싶을 정도다.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겪게 되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지만 사실 정색하고 다시 보자면 이 상황은,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픈 위급 상황이다. 


그런데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처한 상황, 그러니까 영화가 제작되는 스튜디오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 제작 과정의 매력을 슬쩍 담아 낸다. 매닉스가 이런 저런 다른 이유로 영화 세트장을 찾을 때 단순히 세트장으로서 현장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참이나 그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가, 순간 그 영화 속 영화의 관객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영화 만드는 일 (이를 테면 편집과정)을 묘사할 때 그냥 웃고 넘길 만한 에피소드처럼 스윽 지나가지만, 은연 중에 영화 만드는 일의 놀라움과 대단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은 결국 매닉스의 마지막 선택으로 확고한 종지부를 찍는다. 코엔 형제는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왜 영화 만드는 일이 의미 있는가'를 말하는 것 대신, 어쩌면 무조건 적이고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그 정당성을 말하고자 한다. 코엔 형제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헤일, 시저!'의 순수한 믿음은 지금의 영화 산업과 영화라는 존재가 처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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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라는 예술 혹은 산업을 더 좋아하도록 만든 그 자체의 영화였다. 귀엽고 유쾌한 가운데.


1. 여러 화려한 출연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호비 도일 역할을 맡은 엘든 이렌리치 였어요 ㅎㅎ

2. 나중에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영화 속 영화들이 조금씩이라도 수록되면 정말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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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Gravity, 2013)

당연하다고 여겼던 존재의 발견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그 외로움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국 모든 일들과 관계 속에서 혼자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신작 '그래비티 (Gravity, 2013)'를 보고 나니 외롭다고 느낀 다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무뎌짐 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수 많은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되면서 '처음'이라는 순간과 조우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참 어리석게도 시간이라는 무게에 휩쓸려 머지않아 처음 만났던 순간을, 그 순간의 희열을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더 새로운 것, 또 다른 것 만을 찾다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결국, 모든 것들에 대해 흥미를 잃고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영화 '중력 (Gravity)'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인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아주 전형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를 다시금 끄집어 낸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관객이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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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SF로 오인하기 쉽지만 '그래비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에 가깝다. 그러면 과연 지구 밖 우주라는 배경은 그저 눈 요기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느냐 하면 또 절대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라는 질문의 답은 이 글의 제목과 맞닿아 있다. 흔히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근원에 대한 경우일 때가 많다. 이 영화 역시 일종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다. 근원에 대한 탐구는 결국 진리를 찾기 위한 질문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 작품이 찾고자 하는, 아니 말하고자 하는 진리란 무엇 인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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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우주에서 특수한 사고로 인해 한 인물이 겪게 되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평소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래서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 둘 씩 체감하도록 만든다. 일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력이라는 것이 없는 우주를 보여준다. 우리는 무중력 상태를 봐야만 현재 중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이 아닌 이해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상실해야만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들을 영화는 차례 차례 꺼내어 놓는다. 사실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우주에서 주목할 것은 무중력 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우주의 묘사는 바로 '소리'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의 타이틀과 함께 마치 극장 안의 소리를 모두 빨아들이는 듯한 커다란 소리의 소멸은, 앞으로 이 영화가 사운드에 있어서 어떤 현실성을 들려줄 지에 대한 일종의 선언처럼 들려왔고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중력 뿐만 아니라 소리마저 없는 우주를 통해 우리는 생활 속에서 반사되어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 들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비슷한 영화들이 그러했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는 건 결국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지구에 살면서 지구라는 행성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주로 나가 지구를 바라봐야만 내가 살고 있는 행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비로서 알 수 있게 된다 (이건 직접 경험할 수 없었으나 의심하지는 않는다). 극 중 코왈스키는 지구를 바라보며 여러 번 라이언에게 이야기한다. '정말 아름답지 않냐고'. 이는 곧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우리가 이런 지구에  살고 있는 거라고'


(중요하진 않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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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라 일컬어 지는 존재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극 중 라이언 (산드라 블럭)이 코왈스키 (조지 클루니)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한 것은 오히려 그가 떠난 이후였다 (난 이 라이언의 상상 장면이 만약 실제 장면이었다면 정말 실망했었을지도 모른다). 홀로 우주선에 남게 된 라이언은 통신 여부를 확인하던 중 알 수 없는 외국인과 무선 통신이 연결된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라이언은 저 멀리 지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 개가 짖는 소리 그리고 아이의 울음 소리에 감정이 터지고 만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지구에 두고 온 애인의 목소리도, 부모의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라이언은 그저 자신이 평소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던 이 소리 들에 감격한다. 라이언의 감격은 사실 감격 이라기 보다는 회환에 가까웠을 것이다. 평소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뒤늦게 깨닫고 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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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라이언은 중국 우주 정거장의 우주선에 탑승하면서부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겪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 자궁 속에서 유영하듯 한 모습의 라이언은 새로운 탄생의 신호를 알리는 듯 잠시 눈을 감고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탄생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니 아직 더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라이언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녀의 탈출 우주선이 지구 궤도를 향할 때의 모습은 마치 수 많은 정자들 사이의 경쟁에서 승리해 수정에 이르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글의 주제로 돌아와, 이 영화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의 발견에 관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중 우리가 가장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지구의 중력? 사람?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

바로 자신이라는 존재의 탄생 그 자체일 것이다. 결국 라이언은 가장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니 그 논의의 범주에 포함조차 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생명)에 대해 발견하고 다시 태어나 우뚝 서게 된다. 그녀가 지구로 무사 귀환 했을 때 다른 영화처럼 대규모 구조 작업에 의해 구조 된다거나 발견되기 이전에, 홀로 땅을 딛고 선 모습으로 끝내는 것은 그래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녀는 누군가 에게 구조됨으로서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고 쟁취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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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그렇듯이, '그래비티'의 은유는 매우 노골적이다. 글의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접적이고 단순하고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기원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에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라이언을 통해 이를 풀어낸 방식도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영화에 열광했을까. 그건 아마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너무 나도 당연한 것들의 진리가 새삼 가슴에 깊게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바쁘게 '그냥' 살면서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금 깨우치게 만든 이 이야기는, 너무 당연한 것들로 이뤄져 있기에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라이언처럼 저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도 있는데 나도 힘내서 살아야지!'가 아니라,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잊고 있었던 당연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발견해 낼 수 있다면 그 것 만으로도 이미 살아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새삼 느낀 내 삶의 중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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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화제가 된 글 '아닌강의 비밀' (http://magazine.movie.daum.net/w/magazine/film/detail.daum?thecutId=6589)

참 대단한 감독'들' 입니다!


2.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은 역시 인상적이네요. '트리 오브 라이프'의 촬영 감독이기도 한데, 두 작품의 주제의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고, 그러면서도 기술적으로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네요!


3. 전 이 멕시코 삼총사가 더 잘될 줄 알았어요. 처음엔 이냐리투가 주목 받는 모양새였는데, 이제는 그가 오히려 제일 덜 주목 받는 그림이 되었군요. 델 토로를 비롯해 이 삼총사가 계속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 예전에 봤던 '허블 3D'가 떠오르더군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5. 아, 왕십리 아이맥스 3D로 봤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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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The Ides of March, 2011)

최선의 선택이란 무엇인가?



조지 클루니가 출연에 연출까지 맡고, 라이언 고슬링, 폴 지아마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마리사 토메이, 에반 레이첼 우드 등 화려한 캐스팅이 눈길을 끄는 영화 '킹메이커 (The Ides of March, 2011)'를 뒤늦게 보았다. 평소 정치에 관심은 물론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치기도 하는 조지 클루니의 작품이라 정치적인 소재를 다뤄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영화는 적극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펼치기 보다는 오히려 이를 소재로 활용하는 영리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히려 정치에 관심도 생각도 많은 조지 클루니이기에 가능한 여유가 아닐까도 싶은데, 조지 클루니는 민주당내 선거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주인공 스티븐 (라이언 고슬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면서 여러번 맞닥들이게 되는 '최선의 선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또 한 번 던지고 있다.



ⓒ Cross Creek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스티븐은 민주당내 차기 대선 후보를 뽑는 것이나 다름 없는 선거에서 모리스 (조지 클루니)를 당선시키기 위해 일하는 선거 캠프의 팀장이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재능으로 정치계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스티븐은, 선거 운동 중 상대 후보 캠프의 모략에 걸려들어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믿고 지지하던 모리스의 치명적인 스캔들을 알게 되고 만다.


사실 조지 클루니의 그간 정치적 활동이라던가 '킹메이커'라는 국내 개봉 제목으로 미뤄봤을 때, 예전 비슷한 영화들처럼 선거 캠프의 인물들을 통해 선거와 그 뒷 이야기 그리고 미국내 여러가지 정치적 이야기들을 다룬 영화가 아닐까 했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킹메이커'의 포커스는 분명 그 곳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앞서 이야기한 현실적 소재들이 모두 등장하고 실제 사례 (클린턴의 스캔들)들을 인용한 부분들도 등장할 만큼 실제 정치판의 뒷이야기가 살아 있지만, 이것들을 통해 미국내 정치판을 비판하거나 다큐멘터리처럼 재조명하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 사건에 놓인 주인공 스티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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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스티븐의 선택이 그러한 점을 더 돋보이게 하는데, 스티븐은 말그대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정의의 편에 서기 보다는 선택에 선택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씁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스티븐이 자신이 믿고 따르던 모리스의 스캔들을 알게 된 후 벌이는 갈등과 그로 인한 몇 번의 선택들을 통해 영화는 끊임없이 '최선의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킹메이커'의 이러한 질문은 개인적으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주 깊게 다가왔는데, 최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과정의 정의는 포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과정의 정의가 없는 최고의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지를 또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 실제로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최고의 결과를 위해 과정의 정의는 무시해도 된다가 아니라, 부득이한 경우 결과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며, 과정의 정의 없는 최고의 결과는 무조건 잘못 되었다 가 아니라, 과정의 정의를 위해 최고의 결과를 포기하여 결국 상대의 승리 혹은 최악의 결과를 낳도록 하는 것을 잘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에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는 삶의 여러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쉽지 않은 선택의 기로인데, 그것이 신념과 맞물렸을 때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한 번 깊게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다 (아, 이 영화에서 역시 답은 없다. 이 문제에 공통된 답이란 것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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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영화가 바로 '킹메이커'이다. 최근 보았던 '디센던트'를 통해 더더욱 사랑하게 된 조지 클루니의 경우 정말 못하는게 무엇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연출력을 보여주었으며, 등장만으로 무게감을 주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폴 지아마티의 캐스팅은 양 캠프의 무게감을 동등하게 부여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큰 역할이 아닌 듯 하지만 마리사 토메이가 연기한 타임지 기자 역할도 가볍지 않았고, 에반 레이첼 우드 역시 자신의 순수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소비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주인공을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의 경우, '드라이브' 이후 최고의 주가를 기록하고 있는 남자 배우답게 연기와 이미지가 완전히 결합된 또 한 번의 결과물을 보여주었으며, 점점 동년배의 헐리웃 다른 남자 배우들과는 차별되는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이유로 곧 개봉예정인 '블루 발렌타인'이 기대되는 바이다 (미셸 윌리엄스까지 출연하니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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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극장 상영버전이 화면비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보고 패스했다가 이번에 IPTV로 보았는데, 대충 비교해보니 이 버전은 잘린 것 같지는 않더군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2. 저는 라이언 고슬링과 동갑입니다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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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 블루레이 리뷰

모두가 사랑하는 조지 클루니를 만나다



알렉산더 페인의 2004년 작 '사이드웨이'는 영화 속에 등장한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맛이 깊어지는 작품이라는 것을 근래 새삼 느끼고 있다. '사이드웨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평소 심심한 영화를 누구보다 재미있게 보는 편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다지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이 작품의 진가는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해갈 때 마다 또 달라지는 영화 중 한 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이 뛰어난 조지 클루니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과는 '사이드웨이' 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영화였다.






맷 킹 (조지 클루니)은 하와이에 사는 변호사이자 이 지역에 오랜 유지 가문의 상속자로서 두 딸과 아내를 두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가문의 상속자로서는 오랜 세월 신탁해온 토지를 신탁 기간이 끝나기 전에 판매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결정을 앞두고 있고, 보트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를 간호해야 하는 동시에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위해 두 딸을 보살피는 일도 하게 된다.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


개인적으로 '디센던트'에서 가장 주목했던 점은 바로 정말 하기 힘든 말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역할을 맡은 이의 모습이었다. 극 중 맷 킹은 한 두 가지가 아닌 여러가지 사안들에 대해서 자신이 이 무거운 짐을 지어야만 할 상황에 놓여있다. 이건 피할 수도 없고, 남들이 도와주기도 힘든 일들이다. 사안들이 무겁지 않으면 '나도 좀 쉴래' '이건 그냥 니가 처리해'라고 하고 싶지만 하나 하나가 그럴 수가 없는 일들 뿐이다. 즉, 자신도 벼랑 끝에 서 있으면서 벼랑 끝에서 있는 여러 사람들을 구해야만 하는 힘든 상황이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 놓인 맷 킹의 일상에 조용히 집중한다. 대부분 이런 상황을 그릴 때 힘든 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에게 포커스가 있었다면, '디센던트'는 이런 상황의 중첩을 통해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전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을 조용히 따라간다. 적극적으로 맷 킹의 입장에서 힘든 상황을 변호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맷 킹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갈등 표현에 있어서도 자극적인 것 보다는 유한 방법으로 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이 복합적인 비극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바로 이 자연스러운 시선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기 힘든 말을 해야만 하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조지 클루니에게서 전작 '인 디 에어'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디센던트'는 하와이라는 특수한 배경을 아주 영리하게 활용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하와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이 동반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아내려는 듯 영화 초반 맷 킹의 내레이션으로도 나오는 것처럼 외부인들은 그저 행복한 곳으로만 알고 있는 휴양지인 '하와이'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유머와 리듬을 섞어가며 맷 킹과 그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다. 하와이라는 배경, 시종일관 흐르는 따듯한 하와이안 뮤직 그리고 적절히 등장하는 유머 코드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보자면, 만약 이 영화가 처한 상황을 비극적인 것에 더 집중하여 극적으로 몰아갔다면 그 슬픔은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담고자 했던 슬픔보다 더 큰 개념인 '가족(더 나아가 뿌리)'과 '삶'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내버려 두듯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이 한 장면에 영화 속 맷 킹의 모든 고뇌와 갈등 그리고 인생이 다 담겨있다)


'디센던트'는 앞서 언급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 맷 킹을 바라보는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와 울타리에 대해서도 깊이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갈등은 '가족'이라는 것이 아니면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얘기다. 알렉산더 페인에게서 관록이 느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디센던트'가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이유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해 그냥 턱하니 던져 놓고선 '가족이면 다된다'라고 무책임하게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가?'를 이야기와 순간의 연출로서 100%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꺼내어 들 때, 뻔하다고 느끼거나 갑작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번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페인은 이 지점을 보통의 액션 영화마냥 클라이맥스에 한 방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요소요소에 순간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배치를 해두었다. 참으로 절묘하지 않을 수 없다.






뭐랄까, '디센던트'는 글로 풀어내면 낼 수록 의미가 덜해지는 것이 느껴지는, 즉 그냥 '받아들이면'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지금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중에는 알려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마치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볼 때는 빌리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으나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입장이 더 와닿는 것처럼, 이 작품도 언제가 나도 아버지가 되고 난 뒤에 다시 보게 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Blu-ray : Quality


사실 '디센던트'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 가능하면 블루레이로 꼭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로 하기는 했었지만, 그것이 BD만의 화질/음질 때문은 아니었었다. 작품의 특성상 이러한 스펙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는 화질/음질 측면에서도 크게 흠잡을 부분은 없는 최신작 다운 스펙으로 출시되었다.








영상은 노이즈가 전혀 없는 칼 같은 화질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 질감 측면에서는 작품과 이 편이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다. 전반적으로 하와이의 살랑살랑한 바람까지 담아낸 영상이 너무 칼 같은 화질로 구현되었다면 그것도 부조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여기서 칼 같지 못하다는 것은 최상급 선예도 등 화질과의 비교이니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절대 아니다. 전체적으로 풍광을 넓게 그리고 따듯하게 잡아내는 앵글이 많은데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를 왜곡없이 전달하고 있으며, 어두운 장면에서도 조지 클루니의 주름과 수염 자국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배경이 하와이인지라 등장인물들의 피부를 좀 더 주목해서 보게 되는데, 모피어스의 그것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볕에 조금씩 그을린 얼굴과 피부 등을 블루레이로서 좀 더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도 편안한 하와이안 뮤직의 따스함을 부담스럽지 않게 들려준다. 영화 자체가 사운드적인 쾌감을 즐기기에 적합한 작품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하와이안송에 몸을 맡기면 아마도 절로 피로가 녹아들지 않을까 싶다. 대사 전달에도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고,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등도 기억에 남는 사운드였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디센던트'와 같은 드라마 장르 타이틀의 경우 해외에서도 그렇고 특히 국내에 출시시 부가영상 부분이 매우 부족하게 출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디센던트'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이것저것 다양한 각도의 영상들이 담겨 있어서 만족스럽다. 첫 번째는 감독인 알렉산더 페인의 해설과 함께하는 삭제 장면이 2장면 수록되었는데, 역시나 감독 입장에서 너무 삽입하고 싶은 장면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편집해야만 했던 안타까움을 엿볼 수 있었다. 극중 부녀 사이로 등장하는 맷 킹과 알렉산드라의 관계를 좀 더 설명해주는 좋은 장면이 있었는데, 이렇게 부가영상으로나마 만나볼수 있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모두가 사랑하는 조지 클루니 (Everybody Loves George)'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부가영상은 왜 조지 클루니라는 헐리웃 톱 배우가 관객은 재쳐두고라도 동료들에게 사랑 받을 수 밖에는 없는 배우이자 사람인지를 들려준다. 개인적으로도 처음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이라는 타이틀로 더 유명했던 시절에 조지 클루니를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하게 될 줄은 예상 못했었는데, 그가 차근차근 쌓아온 필모그래피와 그와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의 하나 같은 칭찬을 듣고 있노라면 그가 단순히 작품을 잘 선택해서가 아니라, 그가 그 좋았던 작품에서 모두 다 큰 역할을 했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다. 이 부가영상에서는 모두가 사랑하는 조지 클루니를 말로 칭송하기 보다는, 왜 그가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사람인지를 그냥 보여준다. 시종일관 장난치고, 주변 사람들을 웃기고, 편하게 해주고 벽을 허물게 만드는 그의 면모는 처음 헐리웃 대스타라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이들 마저 진한 동료로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열심히 포스터 브룩스를 흉내내는 조지 클루니)



(절대 악의적인 짤방 캡쳐가 아닙니다. 그냥 조지 클루니가 지은 표정이에요. 그는 이런 사람.)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의 작업 (Working with Alexander)'에서는 앞선 조지 클루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알렉산더 페인과의 작업이 동료들에게 갖는 의미랄까. 그의 됨됨이와 그가 말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굉장히 디테일한 디렉션을 하면서도 배우들에게 분명한 공간과 편안함을 함께 주는 알렉산더 페인만의 장점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마치 국내 '만추'의 김태용 감독의 경우처럼 첫 작업을 알렉산더 페인과 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른다 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너무 편한 촬영 현장이라) 가족같다기 보다는 모두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들끼리 함께 하와이로 여행을 온 것 만 같은 분위기였다. 뭐랄까. 이 촬영 현장 자체가 또 하나의 '디센던트'랄까.






'하와이의 후예들 (The Real Descendants)'과 '하와이 스타일 (Hawaiian Style)' 등의 부가영상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된 하와이의 역사적인 이야기(뿌리)들과 하와이 스타일을 영화에 완전히 녹여내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던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얼마나 하와이라는 소재를 100% 활용하고, 아니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휴양지로서의 상징적인 하와이의 모습을 활용하려 한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부가영상을 통해 알게 된 내용들로 미뤄봐서는 '디센던트'는 하와이라는 곳을 조금 전 얘기했던 것처럼 단순히 휴양지 정도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본질을 이해시켜줄 수 있는 진정한 '하와이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 캡쳐는 그냥 귀여워서 한 장)



(절대 악의적인 캡쳐나 작의적인 장면이 아닙니다. 조지, 그는 원래 그런 사람. 이렇듯 진지한 사람)


그 밖에 '출연진'에서는 이 작품에 캐스팅 된 배우들의 캐스팅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맷 킹을 연기한 조지 클루니는 제외하더라도 다른 배우들은 일반인들 부터 유명배우까지 가리기 않고 고려를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딸 스코티 역할을 연기한 아마라 밀러의 캐스팅 과정은 그냥 감독이 알고 있던 친구 부부의 소개를 건너 건너 받아서 연기하고 싶어하는 아이가 하나 있다더라 로 이어진 경우이기도 했다. 그 외에 어린이 영화 '스쿠비 두'로 더 유명한 매튜 릴라드의 경우 이런 이미지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캐스팅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고 하는데,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브라이언 스피어라는 캐릭터는 전혀 어색함이 없는 옷이었다.





그 밖에 '뮤직비디오'는 단순한 뮤직비디오로 생각했었는데, 영화에 삽입된 살랑살랑한 하와이안 송들을 배경으로 하와이의 자연과 도심 등 휴양지다운 풍광들이 펼쳐진다. (좋은 의미의) 하와이 홍보 영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보는 내내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편안한 영상이 수록되었다.





'월드 퍼레이드 - 하와이 (무성 영화) (The World Parade - Hawaii (Silent Film))'도 부가영상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것 만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하와이라는 곳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은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와이의 역사에 대해 무성영화라는 또 다른 포맷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음.





'조지 클루니와 알렉산더 페인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George Clooney and Alexander Payne)'에서는 둘이 등장해 편안하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이 수록되었다. 영화가 이어준 둘 사이의 편안한 관계를 엿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작품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다.





[총평] 알렉산더 페인의 '디센던트'는 정말 삶의 위로가 피로할 때 몹시 '땡기는' 영화다. 영화는 좀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있지만 그 뒤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와 분위기가 주는 평온함과 지혜의 영향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가끔씩 삶이 지칠 때 마다 생각날 것 만 같은 (이미 생각났지만) 정말 '좋은' 영화라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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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유



알렉산더 페인의 2004년 작 '사이드웨이'는 영화 속에 등장한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맛이 깊어지는 작품이라는 것을 근래 새삼 느끼고 있다. '사이드웨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평소 심심한 영화를 누구보다 재미있게 보는 편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다지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이 작품의 진가는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해갈 때 마다 또 달라지는 영화 중 한 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이 뛰어난 조지 클루니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과는 '사이드웨이' 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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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킹 (조지 클루니)은 하와이에 사는 변호사이자 이 지역에 오랜 유지 가문의 상속자로서 두 딸과 아내를 두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가문의 상속자로서는 오랜 세월 신탁해온 토지를 신탁 기간이 끝나기 전에 판매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결정을 앞두고 있고, 보트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를 간호해야 하는 동시에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위해 두 딸을 보살피는 일도 하게 된다.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


개인적으로 '디센던트'에서 가장 주목했던 점은 바로 정말 하기 힘든 말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역할을 맡은 이의 모습이었다. 극 중 맷 킹은 한 두 가지가 아닌 여러가지 사안들에 대해서 자신이 이 무거운 짐을 지어야만 할 상황에 놓여있다. 이건 피할 수도 없고, 남들이 도와주기도 힘든 일들이다. 사안들이 무겁지 않으면 '나도 좀 쉴래' '이건 그냥 니가 처리해'라고 하고 싶지만 하나 하나가 그럴 수가 없는 일들 뿐이다. 즉, 자신도 벼랑 끝에 서 있으면서 벼랑 끝에서 있는 여러 사람들을 구해야만 하는 힘든 상황이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 놓인 맷 킹의 일상에 조용히 집중한다. 대부분 이런 상황을 그릴 때 힘든 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에게 포커스가 있었다면, '디센던트'는 이런 상황의 중첩을 통해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전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을 조용히 따라간다. 적극적으로 맷 킹의 입장에서 힘든 상황을 변호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맷 킹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갈등 표현에 있어서도 자극적인 것 보다는 유한 방법으로 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이 복합적인 비극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바로 이 자연스러운 시선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기 힘든 말을 해야만 하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조지 클루니에게서 전작 '인 디 에어'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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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아내려는 듯 영화 초반 맷 킹의 내레이션으로도 나오는 것처럼 외부인들은 그저 행복한 곳으로만 알고 있는 휴양지인 '하와이'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유머와 리듬을 섞어가며 맷 킹과 그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다. 하와이라는 배경, 시종일관 흐르는 따듯한 하와이안 뮤직 그리고 적절히 등장하는 유머 코드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보자면, 만약 이 영화가 처한 상황을 비극적인 것에 더 집중하여 극적으로 몰아갔다면 그 슬픔은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담고자 했던 슬픔보다 더 큰 개념인 '가족'과 '삶'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내버려 두듯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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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는 앞서 언급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 맷 킹을 바라보는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와 울타리에 대해서도 깊이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갈등은 '가족'이라는 것이 아니면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얘기다. 알렉산더 페인에게서 관록이 느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디센던트'가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이유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해 그냥 턱하니 던져 놓고선 '가족이면 다된다'라고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가?'를 이야기와 순간의 연출로서 100%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꺼내어 들 때, 뻔하다고 느끼거나 갑작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번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페인은 이 지점을 보통의 액션 영화마냥 클라이맥스에 한 방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요소요소에 순간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배치를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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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디센던트'는 글로 풀어내면 낼 수록 의미가 덜해지는 것이 느껴지는, 즉 그냥 '받아들이면'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지금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중에는 알려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마치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볼 때는 빌리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으나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마음이 더 와닿는 것처럼, 이 작품도 언제가 나도 아버지가 되고 난 뒤에 다시 보게 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1. 'Descendants'는 해석하자면 자손, 후예 등일 것 같은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직접적인 자손의 의미와 가족이라는 유대관계 속에서의 연결을 뜻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 조지 크루니는 참 대단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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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The American, 2010)
너무 정적이기만한 킬러의 일상


조지 클루니 주연의 신작 '아메리칸 (The American)'은 조지 클루니의 매력보다도 연출을 맡은 안톤 코르빈 때문에 더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데뷔작 '컨트롤 (Control, 2007)'의 인상이 너무나도 깊었기 때문이었는데, U2, 너바나 등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했던 그의 영화 데뷔작은 솔직히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가 오래전 부터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의 팬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컨트롤'은 완벽한 이언 커티스의 관한 영화인 동시에 완전히 객관적인 다른 이야기이기도 한 멋진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시작 '아메리칸'은 개인적으로 더 큰 기대를 갖을 수 밖에는 없었다 (절대 조지 클루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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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의 이야기를 다루었다하여 스펙터클한 액션 영화를 기대했던 것은 애초에 아니었음에도, '아메리칸'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잭' (조지 클루니)은 킬러다. 잭은 스웨덴에서 임무를 마치고나서 신분이 밝혀져 잠시 이탈리아에서 위장신분으로 숨어지내게 된다. 영화는 바로 이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과정을 담담히 다룬다. '아메리칸'은 분명히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한 작품이다. 그 과정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 킬러라는 직업을 갖은 한 남자의 일상을 아주 천천히 다룬다. 그러니까 표적이 되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다이나믹하게 그리지도, 속도감이나 치밀함이 느껴지도록 그리기 보다는 '일상'으로 느껴지도록 묘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킬러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직간접적으로 묘사한다. '친구를 절대 만들면 안돼'라는 얘기를 듣지만, 누군가가 필요한 잭. 영화는 이런 잭을 더 고독하도록 묘사하기 위해 영화의 제목인 '아메리칸'임을 여러번 강조한다. 이탈리아라는 곳에서는 이방인인 '아메리칸'. 하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와 제목의 연관성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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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은 고독에 관한 텍스트인 동시에 '불안'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다. 주인공 잭을 연기한 조지 클루니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불안이 서려있다. 이건 분명 긴장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조지 클루니의 연기와 맞물려 이탈리아의 아름답지만 외롭고 정적인 풍경은 안톤 코르빈과 '컨트롤'을 함께 했던 마틴 루이 촬영 감독에 의해 스크린에 고독함을 가득 담아낸다. '아메리칸'은 굉장히 클래식한 방식으로 심리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그 안에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부분은 확실히 조금 부족한 편이다. 뭐랄까 감독이 말하려는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너무 많은 감정적인 흐름을 제거한 느낌이다. 전작 '컨트롤'의 경우도 상당히 건조하고 우울하지만 (참고로 '컨트롤'은 내게 있어 그해 베스트 작품인 동시에 그해 가장 우울했던 작품이었다), 여기에는 감정의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아메리칸'에는 이미지만 남을 뿐 감정적 공감대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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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외로 19금 장면이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2. 올해로 50인 조지 클루니는 아직도 한창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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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
각자의 삶의 무게

제이슨 라이트먼의 최신작 <업 인 디 에어 (국내 개봉 제목 '인 디 에어')>는 그의 전작 <주노> 때문에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물론 <주노>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각본을 쓴 디아블로 코디 였지만, 어쨋든 연출을 맡은 제이슨 라이트먼의 신작은 <주노>를 매우 인상깊게 본 입장에서 몹시 기대가 되는 바였다. 여기에 조지 클루니와 베라 파미가의 캐스팅은 <주노>와는 다르게 '어른'의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역시나 이 '어른'의 이야기는 삶의 여러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창, 그리고 위로가 담긴 좋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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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해고 전문가다. 고용주가 직접 해고를 통보하지 못할 경우에 대신 사람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독특한 직업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 전지역을 돌아다니며 1년중에 대부분을 비행기 출장으로 보내는 그에게 공항은 집보다(없는 집보다) 편안한 곳이며, 항공사의 마일리지는 훈장과도 같다. 그러던 그의 회사에 화상채팅을 통한 해고방식을 제안한 신참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주목을 받게 되고, 라이언은 나탈리와 함께 출장 길을 떠나게 된다.

먼저 라이언 빙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이언에게는 자신만의 삶이 있다. 가족들과 멀어져서 혼자 지내지만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쁜 일에 취해있고, 자신 만의 도전과제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결벽증과는 좀 다른 의미지만, 라이언에게는 자신 만의 확고한 룰이 있다. 여행 가방을 챙기는 그의 모습을 빠른 편집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라이언은 이렇듯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데에 주저없고 확고한 사람이며 그것에 얽매여 있다기 보다는 그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해고 전문가라는 불편한 직업임에도 '장인 정신'에 가까운 직업 윤리로 대하는 모습도 그렇고, 결혼과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부정적이라기 보단 오히려 긍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삶은 여행용 캐리어 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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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아직 꿈 많고 열정에 차 있는 청춘의 나탈리는 알게 모르게 자극이 된다. 라이언은 나탈리의 방식과 제안에 '그건 너무 이상적이다' 혹은 '나도 그런 생각 안해본 것 아니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해야 될거다'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은연 중에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라이언은 받아치기 어려운 자신 만의 논리로 나탈리의 희망에 찬 청춘을 보기 좋게 꺽지만,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나탈리를 보며 동정심인지 아니면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인지 점점 자신의 정해진 룰 밖의 세상을 기웃거리게 된다.

<인 디 에어>를 보며 초중반까지 든 생각은, 결국 자신과 다름을(틀림이 아닌) 인정하고 이해하는 가치관이었다. 라이언은 그 자체로 이런 이해가 가장 필요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남들 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과 인생이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가 결국 '목표' 자체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목표라는 것에 경중이 없듯이 라이언의 인생 목표는 그것으로 존중 받을 이유가 있다. 항공사 마일리지 천만 마일이라는 그의 목표는 깊게 생각해보자면, 천만 마일을 날아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해고를 통보했으며, 얼마나 많은 삶의 연륜이 쌓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척도 이기도 하지만, 이런 것을 재쳐두더라도 누군가가 삶의 도전과제로 정한 목표라는 점에서 그것은 이해를 넘어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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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쿨한 삶의 자세를 갖은 듯한 라이언 조차, 결혼식 준비로 명소에서 찍은 듯한 사진을 대신 만들어 오라는 여동생의 부탁을, '도대체 이런걸 왜 찍는거지?'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이 미션을, 왠지 '그래도 나 한테 특별히 한 부탁이니 해줘야지 뭐'라는 식으로 억지로 완수하고나서, 드디어 동생에게 이 사진을 전달했을 때, 그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이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과 형편상 신혼여행을 못가서 이렇게라도 남기려고 했다는 동생의 말에, 라이언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라이언은 자신 만 하는 것으로 당연히 알았던 이 미션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에서 사뭇 당황한다. 그런데 재밌는건 가족과 친구 없이도 만나는 모든 이가 친구라서 외롭지 않다던 라이언은, '특별히' 오빠인 자신에게만 부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묘한 소외감(그러니까 자신도 결국은 수 많은 존재 중에 하나라는 것)과 동시에 서운함 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 신혼여행을 대신하려는 이벤트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최고급 클래스를 도전과제로 삶고 있던 자신의 삶의 목표에 대해서도 한번 쯤 의문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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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는 삶의 아이러니를 통해, 삶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온 라이언이 결혼식날 결혼을 망설이는 동생의 남편될 사람인 '짐'에게 결혼에 대해 설득하게 되는 점이나, 항상 타인에게 해고를 통보해오던 그가 마지막에 가서는 누군가의 입사 추천서를 쓰게 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완전한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흑백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다양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에 앞서 라이언은 동생의 결혼식에 맞춰 고향을 오랜 만에 방문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항과 비행기, 그리고 각각의 호텔을 집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그에게, 자신이 자랐던 이 고향은 이런 집을 대신하는 것들이 줄 수 없었던 것을 제공한다. 어린 시절 다녔던 학교에는 무엇보다 추억이 있고, 그 자신의 말처럼 그 추억 속에는 자신 혼자가 아닌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이런 변화를 겪게 되면서 라이언은 이런 추억을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이로, 관계를 맺어오던 알렉스 (베라 파미가)에게 마음을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라이언이 항상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처럼 가볍고 쿨한 관계만을 원하던 이였고, 자신을 탈출구 정도로 생각했던 알렉스의 말에 라이언은 진심으로 대꾸하지 못한다. 라이언 조차 그런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던 이었기에, 오히려 '왜 갑자기 나를 찾아 왔느냐'라는 알렉스의 큰 소리에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 디 에어>가 주는 끝 맛은 왠일인지 개운하지 만은 않다. 혼자서도 잘해요 였던 라이언이 결국 가족과 주변의 따스함을 알게 되었고, 화상채팅으로 누군가를 해고하는 잔인한 방식은 사고로 인해 보류가 되었지만, 공항 전광판 앞에서 자신의 앞으로 삶의 행선지를 응시해보는 라이언의 모습에서는 또 다른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인 디 에어>는 마냥 선하게 '자신의 삶의 짐을 여럿이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결국 자신의 삶은 혼자가 다 짊어져야 한다'는 아주 우울한 이야기도 아닌, 매우 현실적인 지점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그러고보면 다른 가방이나 짐은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줄 수 있지만, 결국은 각자가 끌고 가야 하는 여행용 캐리어 가방은 이 영화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기가막힌 소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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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인 조지 클루니는 이 타이틀과는 조금씩 거리가 있는(그래도 섹시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하지만) 캐릭터들을 연기해 왔었는데,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는 왜 그가 '모스트 원티드 섹시스트'인지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 완전한 로맨스 영화 아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말끔한 수트 차림의 클루니에게서야 말로 진정한 매력이 느껴진다. 베라 파미가는 어느 덧 클루니와 커플을 이뤄 '삶의 연륜'을 이야기하는 캐릭터로 나아가 버렸는데, 커리어 우먼의 매력과 별 다른 제스처 없이 표정과 미소 만으로도 설명 가능한 알렉스 라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탈리 역의 안나 켄드릭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비하면 많이 마른 모습으로 보였는데, 이 때는 그저 주인공 친구였던 그녀가 이제는 관객의 기억에 확실히 남는 캐릭터를 연기해 낸 것을 보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보는 중간에는 너무 평범한 드라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하기도 했었는데, 보고나서 생각하면 할 수록 참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무게 있는 작품이었다.


1. 라이언이 결국 기장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장면 묘사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기장님의 모습이 마치 천사나 신처럼 느껴졌거든요.

2.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의 국내 제목은 '마일리지'가 될 뻔 했는데, 처음에는 너무 끔찍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의미 상으로는 제법 괜찮은 제목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네요.

3. 그런데 아예 본래 제목을 개봉하려 했다면 원제 그대로인 'Up in the Air'로 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의 엔딩 크래딧 중간에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업 인 디 에어'여야 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노래 한 곡이 등장합니다.

4. 제이슨 라이트먼의 전작 <주노>는 소박한 포크 음악들이 실린 사운드트랙이 참 인상적인 작품이라 이번 작품도 음악을 많이 기대했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관조하는 듯한 포크 음악들이 좋았습니다. 그 와중에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도 좋았지만요 ㅎ

5, 극중 <스파이더 맨> 시리즈로 유명한 J.K.시몬스가 자신의 딸들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시몬스의 딸들 사진이라고 하네요.

6. 첨엔 '아, 이 영화는 적어도 최근 실직이나 해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개인적인 이유라도 보면 안되겠다' 싶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이런 분들이 보시면 힘이 될 영화같아요. 삶의 무게는 버겁지만 나아갈 이유가 있으니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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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Good Night, And Good Luck

 

사실 조지 크루니는 이전에도 몇 편 감독을 맡아 제법 성공을 거두긴 했었지만

개인적으로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그리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 영화 내가 '굿 나잇, 앤 굿 럭'은 조지 클루니를 감독으로서 보게 된

최초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CBS의 뉴스맨인 실존 인물 에드워드 R.머로와 프로듀서 프레드 프렌들리,

그리고 그들이 진행했던 프로그램 'See it Now'를 배경으로

1950년대 미국내에서 벌어졌던 매카시 의원과 뉴스팀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시나리오와 연출력, 연기력이 빚어낸 완벽한 영화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다른 영화적 요소는 배재하겠다는 듯 흑백으로만 펼쳐지는 영상은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급스럽고 영화스럽게 그려내고 있으며,

조지 클루니의 연출력은 마치 선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랬던 것 처럼,

더이상 배우출신 감독이라는 한계를 완전히 초월한 테크닉을 선보인다.


시나리오도 함께 집필한 조지 클루니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영화적 재미를 한가득 안겨준다. 더더군다나 이 작품은 흑백 영상, 큰 굴곡없는

스토리 전개(다른 영화와 비교했을때..)등 지루하고 밋밋하게 느껴지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결과물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노련함에서 묻어나는

진지함으로 전혀 지루하지 않는 분위기를 시종일관 연출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거의 처음 알게된 데이빗 스트래던은,

'머로=스트래던'으로 생각될 만큼 극 내내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직접 출연하기도 한 조지 클루니와 제프 다니엘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파트리샤 클락슨 등

배우들의 연기는 깨끗한 흑백영상처럼 흠잡을데 하나 없는 멋진 연기였다.


최근 본 영화 중 '브에 포 벤데타'에 이어 또 하나의 진실과 자유를 논하는 영화.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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