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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라 랜드 (La La Land, 2016)

그렇게 인생 영화가 된다


스틸컷이나 예고편만으로도 '이건 딱 너를 위한 영화야'라고 말해주는 영화들이 있다. 노래와 춤, 로맨스와 삶 그리고 이를 담아낸 뮤지컬이라는 장르. '위플래쉬 (Whiplash, 2014)'를 연출했던 데미언 차젤의 신작 '라 라 랜드 (La La Land. 2016)'는 이미 보기 전부터 인생의 영화가 될 것만 같았던 영화였다. 뮤지컬 영화를 특히 사랑하는 관객의 한 명으로서 어떤 영화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스크린에 펼쳐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해지곤 하는데, 왠지 '라라랜드'는 그 이상일 것만 같았다. 스틸컷과 예고편 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과연 2시간이 넘는 한 편의 영화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전할까 싶던 그 커다란 기대는 결국 더 큰 감동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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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는 2.55:1의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로 촬영된 영화다. 시작 전 등장하는 시네마스코프 로고는 단지 비율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이자 선언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1940~50년대 할리우드가 사랑한 방식으로 또 그 당시의 뮤지컬 영화들처럼 영화를 보여줄 거야'라고. '라라랜드'를 본 많은 관객들이 고전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이야기하는데, '라라랜드'는 어떤 개별 영화들의 장면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기보다는 4,5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 특히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전반적인 존경과 동경을 담아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일례로 대규모의 댄서들이 등장하는 첫 시퀀스만 봐도 그렇다. 아마도 많은 뮤지컬 영화의 팬들은 이 첫 시퀀스만으로도 이미 이 영화와 흠뻑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시퀀스는 뮤지컬 영화의 정수이자 이 영화가 담아내고자 하는 영화적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충분히 여러 컷과 편집, 후반 작업등으로 작업할 수 있는 시퀀스였음에도 데미언 차젤 감독은 마치 당시의 대규모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연습과 여러 차례 리허설을 통해 이 대규모 시퀀스를 원테이크로 완성해 냈다. 이걸 단순히 기술적 성취 혹은 기술적 자랑 등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감독에게 이 시퀀스는 자랑하고픈 장면이기보다는 자신이 만들고자 한 영화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했을 필수의 장면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보고 자란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아주 최소한의 표현으로서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 이 첫 시퀀스. 그렇게 이 시퀀스는 마치 좋아하는 다른 고전 뮤지컬 영화들의 오프닝들처럼 여러 번을 되찾아 보게 될 그런 명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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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가 도달한 뮤지컬 영화로서의 기술적 성취는 일단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근래에도 뮤지컬 영화들이 꾸준히 선보이고는 있지만 고전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최근의 뮤지컬 영화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함 들은 분명 존재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만족스러운 뮤지컬 영화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어도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다시 보고픈 생각이 더 간절해 지곤 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대형 스크린과 사운드를 통해 제대로 접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즉, 세대와 시대가 다르다 보니 이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비디오 시절부터 DVD와 블루레이 등을 통해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이런 기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과 같은 만족감은 미처 다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매번 다른 매체로 영화를 접할 때마다 '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면 얼마나 황홀했을까? 그건 어떤 경험이었을까?'하는 궁금증과 아쉬움이 더 들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라랜드'는 바로 그런 궁금증과 아쉬움을 완벽하게 해결해준 이 시대의 클래식 뮤지컬 영화다. 바꿔 말하면 '라라랜드'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다음 세대의 관객들은 분명 '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더라면 과연 어땠을까?'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화면의 비율이라는 건 결국 거리감과 공간감 그리고 그 비율에서 오는 비율 만의 긴장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제작된 이 영화에는, 바로 그 클래식 뮤지컬 영화들에서 느꼈던 리듬감과 긴장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멀리 L.A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세바스찬 (라이언 고슬링)과 미아 (엠마 스톤)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의 촬영 기술은 그야말로 안무의 동선을 카메라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바로 뮤지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점을 완벽히 수행해 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이것보다 밋밋하게 촬영했더라도 매력적인 장면이었을 수 밖에는 없지만, 완벽한 촬영이 더해지면서 순간적으로 관객들을 뮤지컬 영화의 세계로 빨아들여 버리는 엄청난 흡입력을 갖게 되었다. 얼마나 흥분되던지. 눈물이 다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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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는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정수를 새 시대에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한 작품이다. 하지만 '라라랜드'가 진짜 클래식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클래식 뮤지컬만의 매력을 오마주하고 담아낸 영화들은 근래에도 없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오마주와 클래식 함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고전 뮤지컬 영화의 팬들에게는 사랑받았지만 뮤지컬 영화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그렇게 클래식함을 제대로 담아내면 낼 수록 더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노래를 하는 거야? ㅎㅎ)


데미안 차젤의 '라라랜드'를 걸작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아마도 감독 본인이 가장 고민했을 바로 그 문제. 그 고민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많은 관객들이 하는 가장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너무 판타지스럽다 라는 것이다.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여기에 단순한 스토리와 그 판타지함을 등에 업고 조금은 허무한 긍정으로 마무리되는 작법 때문에 더 큰 거리감을 느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뮤지컬 영화의 팬으로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갖는 판타지성에 대해서 더 이야기(반박)하고 싶지만 재쳐두고;;).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라라랜드'는 고전 뮤지컬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가져왔음에도 이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앞서 이야기한 현실과의 고민이다. 여기서 현실이란 영화 속에선 주인공들의 삶의 현실이기도 하고, 영화 밖에서는 뮤지컬/음악 영화가 처한 시대의 현실과 맞물린다. 아마 이 영화가 고전 뮤지컬의 작법을 스토리에도 끝까지 반영했더라면 지금의 결과물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혹은 같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각자의 삶에서 꿈을 위해 노력하던 과정에 만나 함께하는 것이 잠시 꿈이 되지만, 결국 본래 꾸었던 꿈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재즈 뮤지션으로서 진짜 재즈를 연주하는 클럽을 운영하는 꿈을 갖고 있는 세바스찬은 현실에선 그저 레스토랑에서 캐럴을 연주하는, 대중들이 듣기 좋은 BGM을 연주하는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미아를 만나게 되면서 미아와 함께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편으론 자신의 꿈이었던 정통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고집을 꺾고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밴드의 연주자로서 합류하게 된다. 간혹 이 과정을 뮤지션으로서 성공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세바스찬이 자신의 고집을 꺾으면서까지 밴드에 합류하게 된 이유다. 바로 미아와의 사랑을 계속해 나가기 위한 또 다른 꿈을 위해서였다는 것. 하지만 나중에 그랬던 것처럼 이 꿈은 오히려 이 꿈으로 인해 깨져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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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의 꿈도 비슷하다. 미아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배우를 꿈꾸며 여러 오디션에 참여하지만 매번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해 힘겨워하던 중 세바스찬을 만나 역시 그와의 삶을 꿈꾸게 된다. 세바스찬의 응원에 힙 입어 자신이 직접 쓴 대본으로 일인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에 성공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그 과정 속에서 밴드 활동으로 멀어진 세바스찬과도 더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무대는 결국 캐스팅 매니저에 마음에 들어 기회를 얻게 되고 미아는 자신이 동경하던 바로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삶을 갖게 된다. 


아마도 다른 뮤지컬 영화 혹은 최근의 관객들이 많이 거리감을 느끼는 판타지적인 뮤지컬 영화였다면 '라라랜드'의 이야기와는 결말이나 그 전개 과정이 조금 달랐을 것이다. 세바스찬의 밴드로서의 상업적 성공을 성공으로 규정하거나 세바스찬과 미아의 결론 모두가 성공이며 그 결말에 두 사람이 원하던 행복을 함께 하게 되는 것으로 결론지었을지 모른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 스스로도 바로 그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된 그 순간, 다시 영화적 판타지로 돌아가 그간의 삶의 과정들을 펼쳐내는 시퀀스는 아마 다른 영화였다면 최종적으로 선택했을 결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그렇지 못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인다. 그래서 그 시퀀스는 몹시 매력적이고 황홀한 향연이 펼쳐지지만 오히려 더 쓸쓸하고 슬퍼지는 감정을 담고 있다. 이 슬픔과 쓸쓸함에 정점을 찍는 건 그다음 세바스찬과 미아의 반응이다. 마치 서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는 듯이 그저 또 이렇게 흘러 온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맞겠다고 감정을 삼키는 장면은, 생각보다 더 많은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한 때 사랑했던 연인과의 관계가 지금의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계속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씁쓸함 뿐만이 아니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꿈과 현실에 고민하고 부딪히며 겪어야 했던 수많은 감정과 기억들이 이 짧은 눈빛들에 담겨 있기에, 아마 스스로도 왜인지 까닭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눈물이 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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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에서의 현실과의 고민은 극 중 세바스찬과 존 레전드가 연기한 키이스와의 대화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키이스는 자신의 밴드 음악을 듣고 계속해야 될지 고민하는 세바스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재즈는 의미가 없다' '재즈는 혁신적인 음악인데 그렇게 전통만 고집해서 무슨 현식적인 음악이 되겠느냐' '재즈는 미래에 있다'


이 질문은 아마도 감독인 데미언 차젤이 '라라랜드'를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깊이 고민한 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 속 대사와 마찬가지로 재즈 음악의 신봉자인 그는 그저 듣기 편한 BGM으로 전락한 현실에서의 재즈 음악에 대해 세바스찬과 같은 환멸을 느끼기도 했을 텐데, 또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가 현재의 할리우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고전 뮤지컬 영화의 팬이라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특히 그것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오래된 것, 별로 인 것 (혹은 어려운 것)으로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것일 때, '왜 이 대단한 가치를 몰라주는 거지?'하며 더 정통으로, 정통으로만 파고는 것이 아니라 어떡하면 현재와 소통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라라랜드'가 클래식 뮤지컬의 장점을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영화였다면 소수의 뮤지컬 팬들은 몹시 좋아했을지 몰라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위플래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고집스럽고 전통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재 세대가 그 전통의 것들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통의 지점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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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뻔한 것 같지만 세바스찬과 미아가 겪게 되는 삶의 이야기는 굉장히 강렬한 현실감을 전한다. 특히 미아가 오디션 장에서 부르는 'The fools who dream' 시퀀스가 주는 감정은 그냥 미아 만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미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도 오디션 장에서 연기하듯 말하고 있지만, 이 대사는, 이 노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로 관객에게 녹아든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랬다. 그러니까 미아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완전히 동화되어 느낀 감정이 아니라, 그냥 그 이야기를 빌려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같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클럽에서 두 주인공이 다시 눈빛을 교환하고 각자의 삶으로 걸음을 돌리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성숙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이는 동경하고픈 성숙함이 아니라 내게도 있어서 공감되지만 별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은 그런 성숙함이어서 이 역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그 순간 어떤 고민을 했을까. 다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서로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라는 것을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앞서 말한 종류의 성숙한 존재가 되어 버린 뒤였다. 그 과거가 아름답고 그립지만, 이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걸 (못한다는 걸) 서로 인정하고 돌아서기에 이 마지막은 더 아리고 먹먹하게 느껴졌다. 물론 영화는 그 뒤에 한 장면을 더 남겨 두긴 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영화와 관객 모두가 알고 있는 판타지였고.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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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차젤의 '라라랜드'는 영화 속 장면 장면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그립고 또 아려오는 그런 영화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현재로 완벽하게 소환해 내는 것에 성공한. 그것도 현실의 고민과 판타지를 모두 간직한 채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결과물로서 그려낸, 계속 또 보고만 싶어 지는 걸작이었다.


아.... 그렇게 '라라랜드'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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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Selma, 2014)

먼저 간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현재의 승리를 위한 선동곡



지난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펼쳐진 존 레전드와 커먼의 'Glory' 공연은 그 자체로 엄숙하고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영화의 장면이 배경으로 흐르면서 여러 명이 함께 무대에 올라 한 목소리로, 하나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장면은 역으로 이 '셀마'라는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셀마'는 이미 너무도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한 1960년대 미국 사회의 흑인 인권 운동을 배경으로, 직접적으로는 셀마 지역에서 벌어졌던 투표권 행사를 위한 비폭력 행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셀마'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틴 루터 킹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안에서 좀 더 객관성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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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셀마'는 전 세계가 알고 있는 마틴 루터 킹의 흑인 인권 운동에서 '흑인' 보다는 '인권'이 더 돋보이도록 노력했다. 대부분의 소수의견과 차별을 다루고 있는 영화가 그러하듯이, 객관성을 갖게 되면 가질 수록 그 중심에 놓인 차별에 관한 메시지는 강해지기 마련이다. '셀마'는 킹 목사의 일화를 통해 당시에도 이 문제가 단순히 흑인에 관한 차별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킹 목사의 메시지를 듣고 셀마로 모여 든 여러 백인 종교인들과 일반 백인들, 그리고 탄압 받는 시위대의 모습을 보고 슬퍼하는 백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렇다), 반대로 킹 목사의 개인적인 흠을 비롯해 당시 흑인 사회가 이 운동을 이어가면서 겪었던 내부적인 갈등도 드러낸다. 즉, 이 작품은 이 메시지를 먼저 간 이들에 대한 진혹곡으로서 그저 헌정하려는 것 이상의 보편성을 얻고자 한다. 그 이유는 안타깝게도 현재의 모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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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국내의 끔찍하고 아픈 과거에 관한 영화를 볼 때 들었던 생각이지만, 그저 '그래 저런 아픈 과거가 있었지...'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면 오히려 좋았을텐데 어쩌면 현재도 전혀 달라지지 않거나 계속되고 있어 더 씁쓸한 경우가 많았었다. 비슷한 의미로 '셀마'의 메시지 역시 살아 숨쉬는 이유는 바로 현재 미국 사회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물론 흑인이 대통령이 되고 정계는 물론 수 많은 분야에서 흑인들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아직도 미국 사회, 정확히 말하자면 백인 사회에서는 흑인(유색인종)에 관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백인 우월 주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더 나아가 끔찍한 대우를 받고 그런 현실에 놓이게 되는 지금의 모습은, 마틴 루터 킹이 꿈꾸던 세상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씁쓸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셀마'의 메시지는 오히려 과거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현재로 향해 있다. 현재의 미국 사회 내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흑인 차별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흑인이지만 직접적인 차별을 겪고 있지는 않은 이들에게 던지는 동참 호소의 메시지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셀마'의 영화 속 이야기와 현재의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 사회 근본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차별 인식이 얼마나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많은 시간과 고통이 수반되어야 하는 가를 깨닫게 해 답답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조금 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자유를 위한 여정이 결코 금방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 만으로 이 여정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자, 선동하고자 하는 바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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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J.에드가 후퍼를 잠시나마 만나는 재미도 있었어요.


2. 개인적으론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부분이 좋았어요. 흔히 말하는 진보 조직들이 매번 겪게 되는 상황이었죠.


3.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존 레전드와 커먼의 'Glory'의 가사까지 번역된 것이 참 좋았습니다. 이 곡의 가사는 극 중 등장하는 대사 이상으로 중요하니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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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전드 내한공연 (John Legend)

전설 형과 함께하는 Slow Dance!



존 레전드는 그의 첫 앨범 'Let's Get Lifted'를 들었을 때부터 그의 이름처럼 '이 남자는 전설이 될꺼야'라고 촉이 바로 섰을 만큼, 듣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는 깊이와 내공의 앨범이었다. 그 때부터 한결 같이 좋아했던 존 레전드의 내한 공연. 몇 년 전에 이어 두 번째 내한공연인데, 첫 번째 내한 공연은 아쉽게 못갔었던 것을 떠올리며 이번 공연은 절대 놓치지 않을리라는 대쪽과도 같은 결의하에 할부신공을 발휘, 존 레전드를 내 눈과 귀로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존 레전드의 곡들은 공연을 위해 미리 예습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나 같이 많이 들었던 곡들 그리고 버릴 곡이 없는 앨범이었던 터라 별다른 준비없이도 공연을 100% 즐길 수 있었다. 최근 저질로 바닥을 치고 있는 체력 탓에 스탠딩으로 예매하지는 못하고 2층 좌석으로 예매하였지만,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악스홀이라 2층에서 관람하기에도 크게 부족함은 없었다 (물론 이건 스탠딩으로 관람하지 않은 이의 이기적인 변명이다. 당연히 스탠딩에서 보았다면 적어도 3배는 좋았을듯 ㅠ). 두근두근 기다리는 시간이 별로 길지도 않았는데 그는 마치 첫 앨범 'Let's Get Lifted'의 자켓 사진처럼 실루엣으로 스윽 등장했다. 이미 실루엣 만으로도 아우라를 만들어낸 존 레전드는 팬들이 미처 다 현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히트곡 퍼레이드를 시작. 이 때부터 멘트도 없이 쉴세 없이 그의 공연은 이어졌다. 


초반이 특히 그랬고 후반 부에도 중저음이 사용되는 부분에서는 심하게 울리거나 밸러스가 맞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보여주었는데, 사운드의 문제 탓에 존 레전드의 보컬이 조금 씩 묻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래서인지 오히려 피아노 한 대만을 두고 노래하는 곡들에서 그의 진가가 더 발휘된 느낌이었다. 하긴 존 레전드는 본래 피아노 한 대만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사로잡는 것이 가능한 훈훈한 오빠(?)가 아니었는가. 이번 공연은 남자인 내가 봐도 참으로 '훈훈한' 공연이었다. 시종일관 아빠 미소가 아닌 오빠 미소로 관객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곡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편하게 소화하는 그의 표정에서, 관객들은 '이곳이 지상낙원인가 ㅠ'라고 절로 느낄 정도였다. 'PDA'나 'Let's Get Lifed', 'Green Light' 같은 빠른 곡들에서는 정말 라이브 영상으로만 보던 그 공연에 내가 와있구나! 라는 걸 100%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흥겨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선보였던 'Number One'도 좋았고. 'Green Light'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것 같다. 레전드 형의 꿀렁이는 미묘한 댄스도 좋았고 ㅎ





정말 쉬는 시간 없이 피아노와 무대를 오가며 (무대 아래까지!) 공연을 이어가던 존 레전드는 'Green Light'로 정점을 찍고 팬들의 앵콜을 받고 다시 나타났는데, 그저 민소매 런닝 셔츠로 갈아입었을 뿐이었지만 공연장은 열광에 도가니. 나도 모르게 열광할 수 밖에는 없는 분위기와 열기였다. 그리고 그가 조용히 시작한 곡은 다름 아닌 'Ordinary People'. 개인적으로 너무 유명한 곡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버릇이 있지만, 이 곡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노래방 18번 중에 한 곡이기도 한 'Ordinary People'을 라이브로 듣게 될 줄이야 ㅠ 존 레전드의 피아노 연주와 풍성한 소울(Soul)을 느낄 수 있는 이 곡에서, 존 레전드는 그가 왜 이름 뿐만이 아니라 전설로 불리는 지 여지없이 보여줬다. 팬들과 함께 부르는 후반부는 그 자체로 감동.


이번 공연은 특이하게(?) 사진 촬영을 전혀 막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찍어볼까 하다가 그 것보다는 살아있는 라이브를 가슴 속에 더 담자! 라는 생각에 공연만 신나게 즐겼다. 하지만 그렇게 참던 나도 맨 마지막 'Ordinary People' 나올 땐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John Legend - Ordinary People from ashitaka on Vimeo.


모든 내한공연이 다 그러하지만, 존 레전드의 공연도 꿈만 같이 흘러갔다. 바쁜 아시아투어 일정 속에서 소홀히 하는 공연은 물론 아니었으며, 특별히 보여주기 식의 공연도 아닌 존 레전드 그대로를 만날 수 있는 멋진 라이브였다. 아...언제 또 전설 형을 만나볼 수 있으려나?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John Legend _ Evolver

1. Good Morning (Intro)
2. Green Light (featuring Andre 3000)
3. It's Over (featuring Kanye west)
4. Everybody Knows
5. Quickly (featuring Brandy)
6. Cross The Line 
7. No Other Love (featuring Estelle)
8. This Time
9. Satisfaction
10. Take Me Away
11. Good Morning
12. I Love, You Love
13. If You're Out There
14. Can't Be My Lover (featuring Buju Banton)
15. It's Over (featuring Kanye West) (Teddy Riley Remix)


존 레전드가 돌아왔다. 어느새 부턴가 '가을남자'에 대명사가 되어버린 싱어송 라이터 존 레전드
(지난 앨범이었나 앨범 홍보문구에 '가을남자'라는 말을 보고는 굉장히 웃었던 기억이 난다). 존 레전드의 음반은 나오는 족족
빼놓지 않고 챙겨 듣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1집 'Get Lifted'를 뛰어넘는 앨범은 없었던 것 같다.
점점 음악은 세련되어 지고 보컬은 더 능수능란해 지고는 있지만, 1집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들썩거림과 울림은
그냥 이어질 뿐 더 나아가고 있지는 못한 듯 하다. 이번 새 앨범 'Evolver'역시 이런 면에서 연장선에 있는 앨범이라 하겠다.

일단 전체적으로 앨범을 들어봤을 때 굉장히 다양해졌고, 무엇보다 팝적인 요소가 강해졌다.
개인적으로 앞서 잠시 아쉬움을 얘기했던 이유는, 힙합적인 요소와 소울 적인 요소가 강한 데뷔앨범에 비해 후속 앨범들이
점차 팝성향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는데, 이번 앨범 역시 전체적으로 풍부해지고 매우 세련된 사운드를 뽑아내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단 타이틀곡인 'Green Light'의 경우 아웃케스트(Outkast)의 Andre 3000이 피처링으로 참여하고 있기도 한데,
트랜디한 요소가 강한 팝으로, 의외로 상당히 빠른 BPM으로 진행되는 곡이다. 칸예 웨스트가 참여한 'It's Over'역시
빠른 템포의 곡인데, 마치 신디사이저가 처음 등장할 때 많이 나오던 곡들처럼 신디사이저의 기계적인 사운드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이곡 외에도 타이틀 곡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의 곡들에서는 이런 경향을 느낄 수 있었다).
칸예 웨스트의 랩은 보코더를 통해 녹음이 되었는데, 더 일렉트로닉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칸예의 'Stronger' 때부터 이런
변화를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Everybody Knows'같은 곡은 굉장히 듣기 편한 팝으로서 특히 국내팬들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곡이다. 브랜디와 함께한
'Quickly', 에스텔과 함께한 'No Other Love'도 전체적으로 템포가 있는 곡들인데 후자 같은 경우는 레게 리듬을 통해
좀 더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This Time'은 팝발라드라 할 수 있는데 '팝발라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피아노와
오케스트레이션이 강조된 '착한' 분위기의 곡이다. 이 밖에 수록된 곡들도 분위기를 조금씩 달리 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평범하고 크게 모험 수를 두거나 임팩트가 강한 곡들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써놓고 보니 '별로 좋지 않다'의 리뷰가 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특히 이번 앨범으로 존 레전드를 처음 만나게 되는
이들이나, 힙합/소울 보다는 팝을 더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전작들 보다 더 좋은 앨범이 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앨범은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추천해줄 만한 깔끔하고 세련된 팝 보컬 앨범임은 자명하지만,
그가 좀 더 데뷔앨범에서 보여주었던 신선함과 더불어 힙합과 소울이 강조된 앨범을 들고 나왔으면 하는 기대가 컸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은 앨범이기도 했다.
하긴 내가 바라는대로 소울이 강조된 앨범을 들고 나왔다면, 더 많은 대중들에게는 외면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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