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2012)

영속성으로서 가능한 영원에 대하여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워쇼스키 남매의 팬이다.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스피드 레이서'에 대해서도 아직까지도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스필버그의 '우주 전쟁' 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장하는 바이고. 그럼에도 워쇼스키와 톰 티크베어가 함께 쓰고 연출한 '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2012)'는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되는 작품이었다. 원작을 읽지는 않았지만 대략의 시놉시스와 스틸컷들로 보았을 때 워쇼스키가 자신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위해 너무 많은 볼거리를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172분이라는 러닝 타임도 그 우려에 한 몫을 했다). 그렇게 보게 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우려하던 바와 같이 조금은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여섯 가지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는 가운데 그들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듣고 나니, 조금은 직접적이지만 순수한 그 의도에 감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 있는 유치함으로 도배된 '스피드 레이서'에서 왈칵 했던 것 처럼 말이다.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영화를 보기 전 이미 '무릎팍 도사' 등을 통해 알려졌던 것처럼 이 영화는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윤회'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만약 이 영화가 윤회에 대한 영화였다면 별똥별 표식이 있는 이가 각 시대별로 누구인지 더 명확하게 소개했었을 것이며, 굳이 이 정도의 분장쇼를 동원하며 다른 배우로 윤회를 표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인간 혹은 영혼의 불멸이나 환생, 윤회 등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온 어떤 메시지 혹은 가치관의 힘이라고 느꼈다. 즉, 시대를 거듭하며 새로운 존재로 윤회하는 영혼의 이야기라기 보다 각 시대, 특히 그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던 어떤 존재 혹은 계층의 움직임이 그 시대 내에서는 비록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 실패가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만약 그렇다면 이건 대단한 희망의 메시지이자 위로의 메시지가 되는데, 물리적으로 한 시대를 살 수 밖에는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뛰어 넘는 영화적 시간 배경은, 하나의 이야기만 보자면 실패담이거나 별 다를 것 없는 성공담일 수 있는 이야기들 간의 영속성을 만들어 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차라리 윤회 보다는 '나비 효과'에 더 가까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영화 속 나비 효과가 윤회라는 형식을 빌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이 영화를 '나비 효과'의 영화로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인물들이 놓지 않았던 그 '의지'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나비 효과는 그 원인이 되는 행위나 그 행위의 주체가 그 원인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전혀 알 수 없고 그 결과에 대해 의도하는 바도 없지만,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 시대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혁하고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의지는 본인이 살고 있는 현재의 개혁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다음 세상을 위한 의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나비 효과의 영화라기 보단 영원 (永遠)에 대한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속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영원에 미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들의 의지와 삶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 지를 보여준다.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유머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예상 외의 고어한 장면들도 있고, 배경 역시 시대에 따라 클래식부터 SF까지 변화를 계속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영화는 아주 직접적으로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사로 전달한다. 거대한 바다 앞에 작은 물방울일 뿐이다 라는 얘기에 그 물방울들이 모여서 바다가 된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결국 워쇼스키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이거였구나 싶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굉장히 단순한 메시지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그 메시지가 너무 순수하고 여린 탓에 마치 '스피드 레이서'가 그랬던 것처럼 유치하거나 시시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 보이는 여러 겹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실로 순수했다. '순수'와 '순진'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많은 순수한 것은 순진한 것으로 오인되곤 하는데, 엄밀히 말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오인될 여지가 제법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는 없겠다.


하지만 난 그래도 워쇼스키와 톰 티크베어가 말하고자 한 영속성으로 가능한 영원에 힘을 보태고 싶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 중이거나, 혹은 실패가 자명하지만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자신이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결코 헛된 투쟁이 아니고, 아니었다고.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1. 전 Neo Seoul에는 별다른 불만이 없어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서울은 지금의 서울과 같은 의미로 등장한다고 보긴 어려우니까요. 즉, 논란이 될 만큼의 포인트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2. 벤 위쇼가 등장하는 부분은 왠지 톰 티크베어가 연출하고 썼을 것만 같은 느낌이더군요. 굳이 '향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말이에요. 어쨋든 벤 위쇼는 정말 멋지게 나옵니다.


3. 배두나는 '공기 인형'과의 연속성이 느껴졌는데, 재미있는 건 잠깐이지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외국배우가 한국말 할 때처럼 어색하게 들렸다는 점이었어요 ㅋ


4. 배우들의 분장쇼는 재미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까지 '쇼'적인 측면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었나 싶긴 하지만요. 배두나가 분한 1명, 할리 베리가 분한 1명 정도 빼고는 거의 다 알아봤는데, 휴고 위빙이 간호사라는 걸 못알아본 관객이 많다는 것에 전 더 놀랐어요 ㅋㅋ 휴고 위빙은 워낙에 강렬한 얼굴이라 얼굴을 다 지우지 않는 한 너무 쉽게 알아보겠더라구요 ㅎ 아, 주신도 몇 캐릭터는 못 알아봤어요. 하긴 주신이 나오는 줄도 사전에 몰랐던 터라;;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Cloud Atlas Productions 있습니다.


 




용문비갑 (龍門飛甲, 2011)

아, 그리운 신용문객잔이여...



서극과 이연걸 그리고 무엇보다 1992년작 '신용문객잔'의 뒷 이야기를 그린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이 영화 '용문비갑'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신용문객잔'은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을 남긴 홍콩 무협 영화 중 대표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인데,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서극이 직접 나선다고 하니 더더욱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본토에서는 아마도 이 작품을 통해 서극 감독이 아이맥스 3D를 제대로 보여주겠다 라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었던 것 같은데, 국내에서는 3D로 만나볼 기회가 없었으니 이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작품을 본 느낌은 아이맥스 3D였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굳이 '신용문객잔'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으며, 그 이유 중 하나에는 '또!' CG가 포함되어 있었다. 왜? 무협영화는 3D를 거의 단 한 번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 Beijing Liangzi Group. All rights reserved


일단 첫 인트로에서 기대와 실망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예전 홍콩 무협 영화에서 느꼈던 특유의 음악은 옛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했으나 그와는 반대로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통 CG장면은 불안함과 실망감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신용문객잔'과 마찬가지로 사막 한 가운데 고립된 객잔을 중심으로 다양한 강호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유로 하나로 모이게 되는 '용문비갑'의 구성은 더할나위 없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중간중간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들에게서는 '신용문객잔'을 비롯해 당시 흥하던 무협 영화 속 강호의 캐릭터들을 연상시켜서 '흥분'이 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좋은 (정말 좋은!) 캐릭터들과 설정을 영화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만 느낌이다. 어찌보면 과감하게 코믹적 요소를 거의 배제하면서 진지하게 강호와 무협을 그리려던 시도는 마음에 들었으나 이 전개가 끝까지 가는 데에 너무 외부적인 불필요 요소들이 개입한 느낌이다.



ⓒ Beijing Liangzi Group.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망친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몰입을 하려하면 깨고 마는 이질감이 드는 CG의 사용이었다. 최근 본 중화권 무협 영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들은 CG의 적극적인 활용과 그로 인한 이질감이었는데, '용문비갑' 역시 그랬다. 일차적으로 배경을 통으로 CG배경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예 배경만 등장하는 경우도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배우와 함께 할 때는 감정이 깨질 정도로 너무 큰 이질감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아마도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전 무협 영화에서는 미처 다 구현할 수 없었던 고수들의 무공과 결투 장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을 텐데, 그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 화려해지기는 하였으나 강호의 고수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은 사라져 버렸고, 볼거리 측면에서도 사실 그다지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 Beijing Liangzi Group.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예전 무협물에서 느꼈던 강호의 그 여백의 미가 사라져버렸다. '강호'라는 특수한 개념은 다른 문화와 고수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정서가 있는데, 그 여백의 여운과 아름다움이 CG로 꽉꽉 채워져 버리다보니 매력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용문비갑'의 캐릭터와 설정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스샷만 봐도 두근거릴 정도로 아름다울 뻔 했던 캐릭터들이 많았는데 적어도 그 매력을 영화가 100% 녹여내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왜 최근의 중화권 무협 영화들이 CG 활용에 그렇게 집중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관객들이 원하는 건 화려해진 고수들의 기술적 묘사가 아니라 그 뒤에 깔려 있는 정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쉽게 말해 '가장 잘 알만한 분들이' 왜 그러시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오해가 있을 까봐 이야기하자면 21세기의 중화권 무협 영화가 예전 전성기 때의 홍콩 무협 영화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만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경향과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데에 더 집중하고 기대도 되지만, 그렇지 않고 이전 스타일을 가져올 거라면 그 근원의 것을 제대로 가져오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 년간 본 중화권 무협 영화 중 마음에 드는 것은 '검우강호' 밖에 없었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겠다.



ⓒ Beijing Liangzi Group. All rights reserved


서극의 '용문비갑'이 특히 아쉬운 이유는 큰 기대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와 배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아쉬움 때문에 또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 것 보다는 먼저 예전 '신용문객잔'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진다. 아... 그리운 신용문객잔이여...


1. 개인적으로는 여러 매력적 캐릭터 가운데 특히 주신이 연기한 '능안추' 역할이 매력적이었어요. 예전 무협영화의 임청하를 보는 것도 같고. 주신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ㅠ


2. 마지막에도 썼지만 묘하게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Beijing Liangzi Group 에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