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18일). 영화 팬들 사이에서 희대의 괴작으로 기대되고 있는 <드래곤볼 - 에볼루션>의 디렉터스 컷 프리뷰와
기자회견에 참석하게 되었다. 행사 당일 바로 전날 저녁에 급작스럽게 연락을 받은터라 별다른 준비를 못하고
행사장에 가게 되었는데(더군다나 오전 11시로 계획되었던 행사가 오전에 다시 10시로 변경되면서 더 급작스럽게
이동하게 되었다), <드래곤볼 - 에볼루션>을 조금이나마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무엇보다 주연 배우들을
직접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조금 급작스러웠던 스케쥴이었지만 기꺼이 참석하게 되었다.

행사장인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관에 도착하여 약 15분 정도 분량의 프리뷰를 감독인 제임스 왕의 설명을 곁들여
만나볼 수 있었다. 일단 그 동안 예고편 등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장면들과 거의 겹치지 않는 새로운 클립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라고는 원작과 주연배우들의 이름 뿐이었기 때문에 제임스 왕 감독의 전작들에 대해서는
미리 살펴보질 못했었는데, 이 프리뷰를 보는 중간중간 이연걸 주연의 <더 원>을 떠올리게 되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더 원>의 감독이 제임스 왕이 아니였던가. 일단 <더 원>은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나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2009년 개봉작인 <드래곤볼 - 에볼루션>을 보면서 <더 원>을 떠올렸다는 것은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프리뷰에는 몇몇 액션 시퀀스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마치 와이어 액션의 초창기를 보는 듯하달까,
경공이라고 하기에는 딱딱하고 와이어 액션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액션 연출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와호장룡>의
경우처럼 미적인 측면이 강조된 경우도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와이어 액션 씬 외에 원작인 만화가 그랬던 것처럼 브루마가 캡츌을 이용해 탈 것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것 역시 확실히 만화를 보며 상상했던 장면에는 많이 못 미치는 평이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고편에도 수록되었을
정도로 이 장면은 제법 인상적인 장면으로 분류되어지고 있는데, <트랜스포머>의 변신 장면을 보며 감동을 하는 요즘
관객들에게는 별로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할 듯 하다.

물론 프리뷰에는 극히 일부 장면만이 공개되었고, 피콜로 같은 경우는 아주 잠깐 등장했을 뿐이었으며, <드래곤볼>의
장점을 느끼기에는 부족했던 장면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홍보문구처럼 '전 세계가 기다려온' 이 영화에는
조금 부족한 장면들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원작과의 비교는 안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삼국지'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원작인 만화와 비교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것보다는 다른 측면에 포인트를 두고 감상하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조금 더 흥미롭게 즐기는 방법이 될 듯 하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언제부턴가 다른 이유로 이 작품을 기대해 오지 않았던가!

롯데시네마에서 짧은 프리뷰를 감상한뒤, 이곳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신라호텔 영빈관으로 이동해 주연배우들이 참석하는
기자회견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손오공 역의 저스틴 채트윈. 나는 왜 그가 <우주전쟁>의 그 아들이었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일까 --;; 영화 속 모습보다 실제 그의 모습은 더 친근하고 스마트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치치' 역할을 맡은 제이미 정. 부모님이 70년대에 이민을 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인 그녀는,
부모님의 나라를 방문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과 함께, 사진 촬영에도 친절하게 임해주었다(지정된 포토타임 외에
한 일반인 아저씨가 기자회견 중간중간 계속 개인적으로 제이미 정에게 손으로 카메라를 봐달라고 신호를 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계속 응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피콜로' 역할을 맡은 제임스 마스터스. 이번에 내한한 배우들 가운데 가장 프로페셔널 하다고 느꼈던 배우였다.
사진에서 보시다 시피 악역임을 각인시켜주려는듯 저렇게 오버스러운 표정까지 지어주며 포토타임에 임하기도 했었고,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열의를 보여주었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원작인 만화에 대해서도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느껴졌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일반적인 답변들을 했던 반면에 좀 더 깊은 답변을 들려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TV시리즈 '스몰빌'에서 '브레니악' 역으로 출연했던 그를 실제로 만나게 되 반갑기도 했다 ^^;






'부르마' 역할을 맡은 에미 로섬의 경우 외모도 외모지만 목소리도 상당히 아름다웠던 것 같다. 주윤발을 제외하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그녀는, 포토 타임이나 기자회견 중에도 특유의 환한 미소로 카메라 기자들의 셔터를 연신
바쁘게 했다.




기자회견 장에서 유일하게 소녀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던건 100% GOD 출신의 박준형 때문이었다. 동료배우들이 이때마다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이를 비롯해 배우들과 스텝들 간의 분위기는 매우 좋아보였다). 이미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 (아주 잠깐이지만) 헐리웃에 진출한 박준형은 이번 영화에서는 '야무치' 역할을 맡아 제법 비중있는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계속 통역사 분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몇번씩이나 칭찬해 주위를 당황케하기도 ㅎ)






그리고 주윤발 형님 ㅠㅠ
저 인자하게 미소짓는 표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이 날의 기자회견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저렇게 인자하게 미소짓는 표정을 보니 <가을날의 동화>라던가 <영웅본색 2>에서 보여주었던 장난기스럽고 푸근한
모습들이 절로 떠올랐다. 확실히 한국에서의 인기를 반영하듯 테이블 배치라던가 기자들의 주목도에 있어 주윤발 형님에게
가장 큰 비중이 주어지지 않았나 싶다. '무천도사'같이 조금은 의외인 캐릭터를 맡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개인적으로도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아내가 하라고 적극 추천하는 바람에 하게 되었다'라는 대답이 재미있었다.








정해진 포토타임 외에 질의응답 시간에는 촬영 자제를 요청하였는데, 이를 전혀 무시하고 사진 촬영이 계속되어(플래쉬가
연신 터졌다) 몇몇 배우들은 불편한 기색이 표정에 드러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기자회견이 마무리 된 듯 하다.















참고로 에미 로섬 사진이 유독 많은 이유는 결코 그녀 사진만을 찍으려고 했던 것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앞사람에 방해를 받지 않고 그나마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것이 그녀였기 때문에 유독 그녀의 사진을 많이 촬영할 수
있었다. 제임스 마스터스나 저스틴 채트윈의 경우 거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앉아있어서 사진도 거의 찍을 수가 없었고,
주윤발 형님도 겨우겨우 몇 컷이나마 건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전부 감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적절히 못하겠으나,
프리뷰를 보아서는 역시나 다른 방향으로 기대했던 쪽으로 흘러갈 공산이 높아졌으며(근데 이럴려면 좀 더 막가야 하는데,
프리뷰만으로는 그런 점을 느낄 수 없어 아쉽기도(?) 했다), 원작인 '드래곤볼'은 역시 그냥 잊고 보는 편이 더 나을듯 싶었다.

과연 어떤 장면들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라도 정식개봉을 하게 되면
꼭 극장을 찾아야 겠다. <드래곤볼 - 에볼루션>은 전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3월 12일 개봉할 예정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s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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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英雄本色: A Better Tomorrow, 1986)
나는 이 영화로 사나이가 되었다


제 인생의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자, 그야말로 비디오가 닳도록 본 영화 중의 한 편인 <영웅본색>.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만이 제대로 본 것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인생 최고의 영화 중 한편인
영화를 그간 극장에서 만나보기를 고대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허리우드 클래식과 드림시네마를 통한 재개봉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이전에 넥스트 플러스
영화제를 통해 개막작으로 먼저 만나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미 이 때 보았던 느낌에 대해서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으니 간략하게만 설명하자면, 이 영화에 대한 추억이
없는 이들이라면 무려 20년이 지난 이 영화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더 오래전 영화들도 현재의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내는 경우도 많지만, <영웅본색>이란 작품은
확실히 추억과 기억, 아련함이 기본이 되어야만이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청년 혹은 소년들에게 깊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영웅본색>은 단순히 영화 한 편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종의 아이콘이자 추억 그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주윤발의 선글라스와 성냥개비를 입에 문
모습은, 그 어떤 슈퍼 히어로의 코스튬 보다도 인상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장국영이 부른 '당년정 (當年情)'은
알지도 못하는 엉터리 중국어로 먼저 외운터라, 그 잘못된 발음으로 더 깊이 자리잡아 버린 곡이기도 합니다.

지난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다수의 여성분들의 박장대소 분위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터라,
나중에 정식 개봉 뒤에 한가해지면, 한가한 시간대를 골라 다시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었고,
지난 일요일. 바로 옆에는 외국인들과 놀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는 인사동이 있고, 바로 앞에는 역시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종로가 자리한 '허리우드 클래식'에서 한 낮의 시간에 관람하게 되었는데,
기대했던대로 적은 관객(저를 포함 10분이 조금 넘는 듯한)들이 극장을 찾았고, 예상했던대로 영화에만
몰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지난 시사회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영화의 참 맛을 제대로 즐겨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영웅본색>은 코믹 영화가 아니라 슬픈 영화가 맞았어요. 제가 이상한게 아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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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을 정확히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초등학생이던 80년대 후반 당시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우뢰매> <슈퍼 홍길동>이외에는 없었고, 나머지는 아버지가 퇴근길에
빌려오시던 까만 비닐 봉지에 들려있던 비디오를 통해서였죠. 당시는 홍콩 영화들을 정말 많이 빌려보았었는데,
그 중 <영웅본색>이나 <천녀유혼> <첩혈쌍웅> 같은 작품들은 당시 집에 비디오비전이 하나있고, 별도의
비디오플레이어가 한 대 더 있어 비디오를 빌려오게 되면 공테이프에 복사해두고 두고두고 보는 일이 많았었는데,
아마도 <영웅본색>이 반복 횟수로는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 <영웅본색>을 비롯해 수도 없이 읽었던 <삼국지>나 이후 중, 고등학교 시절에 역시 수도 없이
읽었던 김용의 <영웅문>을 읽게 되면서, 아마도 무의식 적으로 인성이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라고 지금와 생각해 봅니다. 그야말로 무의식이죠.
아주 단순한 것들을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잘못하면 죄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이 한 약속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지켜야 하며,
자신의 친구나 가족과 같이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한 몸 바칠 수 있어야 한다 등, 단순한 진리이지만
선뜻 어린 시절에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기억 하는 것 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 되어
훗날 깨우친 다음에도 이를 더 충실하게 지켜나갈 수 있게 되는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은 주윤발의 쌍권총과 선글라스, 성냥개비이지만, 머리 속 저 한 귀퉁이에는
이러한 진리들이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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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극장에서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간 <영웅본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번에 극장에서 관람하고 보니, 이 영화 참 눈물을 참기 힘든 영화더군요. 단순히 누가 죽고,
누가 맞고, 다치고 해서 슬픈것이 아니죠. 극중 마크(주윤발)가 송자호와 아걸(장국영)에게 상대의 뒷 목을
잡는 같은 포즈로 각각에게 해주는 말에는 이 영화의 핵심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자신의 친구를 기다리며
모든 수모를 참아냈던 사나이의 분노와 새 사람이 되길 노력하는 형을 왜 용서하지 못하느냐며 꾸짖는
애정어린 조언은, 당시에는 잘 몰랐었지만 이제와보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대사들이었습니다.
형 때문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범죄자인 형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없는 아걸의 분노도
이해할 수 있었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받기 위해 정말 무던히도 노력하는 송자호의 애절함도
공감할 수 있었으며, 이 비정한 세계에서 의리만을 믿고 살아온 마크(소마)의 슬픔도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비애를 완성시켜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인데, 장국영이 부른 주제가 '당년정'은 그 절정을 보여준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두운 밤은 지나고 다시 해가 떠오르네
영웅은 이미 새벽 안개속으로 사라져버렸네
사나이로 태어나 무엇이 보람이었나.
의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나의 갈 길이었네.
훗날 누군가 나를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영웅이 죽는 것은 오직 의리 때문이고
그것만이 의로운 죽음이라 말하고 싶네.
강호의 세월은 끝이 없는 것임을 나는 탄식하네.
난 차가운 이곳에서 산자를 그리워하네.
세상을 떠돌고 묵묵히 홀로 살아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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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볼 땐 몰랐었는데 이번에 극장에서 보게 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은, '당년정'을 비롯해 영화 음악이 매우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 영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장국영이 부른 엔딩곡 '당년정'이야 워낙에 유명하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 가사에 영화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니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구성을 들여다보았을때, 음악이 대사 이상에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영웅본색>의 음악은 '당년정'을 기본으로 다양한 변주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새로운 곡은 그리 많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 악기와 편곡을 달리해 들려주는 변주들은 각각 장면마다 그 장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음악과 대사가 겹치는 장면이 많지 않은데,
음악의 분위기가 여러 마디의 대사들보다도 훨씬 명확하게 영화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음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호가 감옥에서 마크의 편지를 읽으며 하루하루 출소할 날을 기다리는 장면에서는 희망적인
느낌의 '당년정'의 변주가, 출소 후 마크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씁쓸한 분위기의 변주가 흐르고,
같은 분위기의 변주라 하더라도, 아걸의 심리를 바탕으로한 변주에서는 바이올린 같이 높은 톤의 악기가
사용되는 한편, 아호의 심리를 대변하는 변주에서는 첼로처럼 깊고 중후한 톤의 악기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것 외에도 일일이 다 거론은 못하겠지만, 예전에는 그 강렬한 영상 이미지에만 집중하느라
엔딩곡 외에는 잘 살펴보지 못했던 영화음악이, <영웅본색>에서는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신디사이저가 처음 등장하던 시기라 <천녀유혼>과 마찬가지로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근데 재미있는건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이 기계적인 음악 효과마저도,
굉장히 아날로그 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잘 들어보지 않으면 거의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기계적 사운드가
아날로그한 영화에 자연스레 묻어나던 영화음악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찾아보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영웅본색> OST를 찾아보았으나,
일단 국내에는 정식으로 라이센스나 수입된 적이 없는 듯 하고, 일본에서만 예전에 출시가 되었던 것 같은데,
이것 또한 지금은 구하기가 어려운 듯 하네요. 만약 <영웅본색>OST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나 구입가능
여부를 아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덧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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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비디오로 보았을 때에는 장국영과 주윤발이 연기한 캐릭터에 더 몰입하여 영화를 보았었다면,
이번에는 적룡이 연기한 '송자호'캐릭터에 역시나 가장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잘 생기고
노래 잘하는 장국영이나 쌍권총 쏘고 당시 최고로 멋졌던 주윤발에게 더 눈이 갈 수 밖에는 없었을 테지만,
이제와 영화를 제대로 보게 되니, 적룡 형님의 연기와 그가 연기한 '송자호'캐릭터에 고민과 갈등,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다크나이트>의 경우 영화적 완성도와 놀라운 연기, 연출력에 몇 번이고 재관람을 하기도
했었지만, <영웅본색>역시 저에게는 기회만 된다면 몇 번이고 극장에서 재관람하고픈 영화였습니다.
영화도 영화지만 장국영의 풋풋한 모습이 스크린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 잠시나마 슬퍼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더군다나 초반의 그의 모습은 너무도 해맑은 것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 많은 걸작 영화들이 있지만, <영웅본색>같은 영화는 이후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영웅본색>의 리메이크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데, 제발 <영웅본색>만은 그냥 추억으로
남겨두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입니다. 현존하는 어떤 배우와 감독이 출연하고 연출한다고 해도,
오우삼이 감독하고 적룡, 주윤발, 장국영이 주연한 <영웅본색>의 감동은 절대 모방할 수 없을테니까요.
늦게나마 극장에서 <영웅본색>을 만나볼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1. 본문에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영웅본색>과 <영웅본색 2>에서 주연 세 배우 만큼이나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배우는 바로 택시회사 사장님 역할을 맡은 '증강 (曾江, Kenneth Tsang)' 이었습니다.
   헐리웃으로 넘어가서는 주로 악역을 맡기는 했었지만, 영웅본색에서 보여준 그의 캐릭터는 정말로
   정이 가고 형님 삼고 싶은 의리있는 인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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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확실히 영화는 극장 분위기에 크게 좌우됩니다.



황후화 (滿城盡帶黃金甲: Curse Of The Golden Flower, 2006)
_ 금빛에 심취한 콩가루 집안의 반지의 제왕급 블록버스터

설날마다 쏟아지는 TV영화들. 약 20편을 한다고 치면 그 중에서 못보았거나 혹은 보고 싶은 영화들은
기껏해야 2~3편이면 많은 정도다. 이번 연휴 첫날 내가 선택한 영화는 <황후화>였는데,
극장 개봉시 썩 맘에 와닿지 않아 보지 않았던 영화로서, 이번에 HD로 방송을 해주어 기쁜 마음에 감상을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엄청난 스케일과 색을 좀 더 느끼려면 극장에서 감상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HD화질로 즐기는 영상의 미도 상당했으며,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역시 집에서
감상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 영화였다.

이 영화는 <영웅>을 만든 장이모우 감독의 작품인데,
딱 보면 장이모우 식 영화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영화의 논리와 영상이 가득 담겨있다.



영웅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지만, 예전 매우 소박하고 전통스런 중국적인 감성과 정서를 담아내던
장이모우와는 달리, 액션이 가미된 작품들로 넘어오면서 장이모우의 스타일은 완전히 스케일로 압도하는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 <황후화>역시 스케일로 시작해서 더 큰 스케일로 마무리하는 영화이다.
아마도 이런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주기 위해서 황제와 황후라는 주인공 설정과 궁전이라는 배경은
더할나위 없는 좋은 소재였으리라.
이 영화는 부족한 내용을 스케일로 압도하려는 영화이다. 사실 예전 장이모우의 영화들을 보았다면
과연 그의 영화가 이렇듯 스토리를 스케일로 억눌러야만 감상이 가능한 영화였는가를 반문하게 되는데,
<영웅>이후 그가 만든 액션 영화들은 이 물음에 '그렇다'라고 말할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을 자아내고 있다.

도대체 몇번이나 엄청난 크기의 대문을 열고서야 나타나는 본궁, 그리고 우리가 흔히 비교하곤 하는
'여의도'크기의 몇배가 되어보이는 엄청난 궁궐안을 장식한 노란 화분들, 그리고 그 안에 실제로 들어가 있다면
아마도 현기증이 날 듯한 엄청난 색채의 복도까지, 중국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장이모우의 액션 영화에서만
볼 수 있을 듯한, 엄청나게 실제로 동원된 물량을 유감없이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금'. 영화를 보고나면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더라도
바로 그 '금빛'만은 잊혀지지 않을 만큼, 온통 금 물결이다. 금빛으로 도배한 옷과 장신구, 갑옷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온통 금빛 갑옷을 입은 1만명의 병사들이 때로 등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공리의 립스틱
색깔과 아이셰도우의 색까지 금빛으로 치장하여, 물량의 스케일과 더불어 '금'이라는 자체가 주는
위압감과 화려함으로 한 번 더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영웅>에서도 그랬지만, 장이모우가 보여주는 이 압도하는 스케일은 내용적인 면과 아주 큰 밀접함이 있다.
중국정부가 확실히 밀어주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말하는 <영웅>이란 여러나라가 피를 흘리며
다투는 것보다 한 명의 독재자가 나서 깔끔히 정리하는 것이 '대의'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암살임무를
포기하고 마는 주인공이 '영웅'이었고, 이번 영화에서도(사실 이 영화에서는 어느 한 편이 이른바 '착한편'
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완전한 이분법은 어렵겠지만), 아무리 반란을 꿈꾸고 1만군사를 도모했더라도
'황제'에게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즉 절대 권력에는 절대 복종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온통 금으로 치장한 황제와 엄청난 계획가 수로
반란을 도모했던 황후도 결국 더 많은 물량과 힘을 갖은 황제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이른바 '콩가루 집안'이 주인공이라 황제가 나쁜 역이고 황후가 착한 역
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어쨋든 절대적인 것에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영화에서도 의로운 주인공이 실패하는 암울한 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들도 있지만,
장이모우의 영화에서 이런 결말은 암울한 엔딩이 아니라, 관객에게 '받아드려라'라고 대놓고 강요하고 있는
식으로 마무리짓고 있다.

이 영화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했어야 한다고 본다.
황제 일가의 여러가지 비밀들과 암투, 갈등을 깊게 다루던가, 아니면 이를 배경으로만 삼고
화려한 영상의 액션 영화로 만들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면 좀 더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 영화의 시작은 무언가 중간부터 시작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렇다할 설명이 별로 없이,
대충 짐작으로 감잡게 한 뒤, 막 판에는 갑자기 반지의 제왕이 절로 떠오를 대규모 액션씬이 등장하는데,
무언가 스케일을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끼워넣은듯한,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었다.
물론 장면만으로 따져본다면 투입된 엄청난 물량답게 영상은 황홀하였으나, 내용은 없는 뭐 그런식이었다.

아직도 금빛이 아른거리는구나....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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