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 (2008)
사랑과 질투와 분노의 끝까지 치닫는 치정극

유하 감독의 신작 <쌍화점>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상당히 걱정과 우려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일단 시사회를 통해 먼저 접한
전문가들의 평도 좋지 않았고, 개봉 뒤 만난 일반 관객들의 평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지 않다기 보다는 '최악'이라는
얘기까지 들려올 정도였는데, 원래 이런 타인의 평에 좌지우지 되는 편은 아니지만 어쨋든 본래 보다는 훨씬 낮춰진 기대치를
가지고 극장을 찾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아, 개인적으로도 이런 평들에 앞서 분명 <쌍화점>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되는
작품이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를 인상깊게 보아왔던 이로서 유하 감독의 신작임에도,
이 영화가 사극이라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었다. 단순히 사극을 단 한번도 연출해보지 않은 감독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작가로서 유하 감독의 이야기가 시대극과 어울릴 만한가를 생각해 본다면, 잘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장점들은 현대극에서, 현대를 사는 인간들의 군상을 표현해 내는 것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고려 시대에 왕과 왕비, 호위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라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 하기에 충분했다.

결론적으로는 많은 대중들이 실망한 것처럼 아쉬운 부분도 많았으나, 이야기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이 치정극을 연출해내는
유하 감독의 재주는 여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보여지는 것 보다 더 큰 외면을 받는 이유는 첫 째, 홍보 측면에서
치정극으로 알려지기 보다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서사블록버스터로 포장된 점일 것이며, 두 번째는 <미인도>와 맞물려
'누가 누가 더 야한가'에만 집중된 시선일 것이고, 세 번째는 아직까지 동성애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하다.




일단 역사에 조금만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인물이 공민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민왕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동성애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일단 <쌍화점>에서는 분명 '공민왕'이 아니라
그냥 '왕'이라고만 칭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 비해 픽션에 범위가 (완전한 픽션에 측면에서 봤을 때)크지 않지만
영화 시작 전에 '이 영화는 실화에 근거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없다면 실제 역사와 비교하여 외곡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거
자체가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고려 시대를 분명히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쨋든 픽션이라는 얘기다.
주진모가 연기한 '왕',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켰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그리고 원나라에서
왕에게 시집온 왕후(송지효), 이렇게 3명의 인물이 벌이는 치정극이 이 영화에 주된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치정극이라 불리는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유하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관계의 끝까지 가보자'라는
감독의 의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후반 부에 가면 '이쯤이면 끝나겠지'하는 지점이 적어도 두 번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느낀 이유가 극이 늘어지고 지루해져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이 정도에서 복수던 헤피엔딩이던
마무리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쌍화점>은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가 반영되어서인지 일반적인 지점에서 몇 번이고 더
나아간다. 그야말로 '치정극'인 셈이다. 자고로 치정극이라 하면 사랑으로 인해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섥히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을 얼마나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텐데, 유하 감독의 <쌍화점>
연출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내면에 감정선은 잘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두 얼굴의 캐릭터들, 속마음을 감춘채 겉으로는 다른 말을 해야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사실 배우들은 말을 할 때보다 말을 하지 않을 때 더더욱 연기를 해야하는 영화라 하겠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감정선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성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크게 좌지우지 되고 있다. 물론 이에 앞서 어색한 문어체 대사 표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음을 동의한다.
특히나 조인성은 일단 연기 여부를 떠나서 사극에서 통용되는 어투와는 이질감 있는 외모를 갖고 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그의 어색한 발음 연기와 더불어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하도록 만든 계기가 된 듯하다. 이런 면에 있어서 이미 <주몽>으로
사극을 경험했던 송지효의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하겠고, 주진모의 경우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영화란 한 번 유치하거나 우습게 느껴지면 다시금 중심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은 장르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두 현대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들이 한복입고 어색한 문어체 대사를 할 때 '푸훗'하고 웃어버린 관객들은,
이어 벌어지는 동성애 코드가 더해지면서 이 이야기에서 점차 멀어질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관람할 때 관객들이 영화에서 멀어짐을 느꼈던 지점은 여러 번 지적했던 것처럼 조인성과 주진모의
배드씬이 등장했을 때 부터였다. 한 침대에 옷을 벗고 나란히 누워 있는 것 만으로도 관객들이 수근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분명 이들이 연기를 어색하게 해서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물론 이후에 장면들에서 이 둘의 동성애
연기가 어색한 부분은 분명 있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별로 특히 동성애 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동성애'자체가 중심이 된 영화들은 동성애자들을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현실 과의 힘겨운 싸움이 주가 되기
마련인데, <쌍화점>의 경우는 동성애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일반적 삼각관계가 조금 더 확장된 경우라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후 부터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궁 밖에는 나가본 적도 없고 오직 궁 안에서 왕과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홍림에게는, 왕 외에 다른 인물과의
사랑이 가능한 세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일단 홍림이 왕과의 관계 외에 새로운 관계에 눈 뜨게 되는
계기가 다른 사람이 아닌 왕을 위해서 혹은 왕이 주선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자 가장
믿을 만한 신하였던 홍림에게, 후사를 위해 왕비와의 잠자리를 명하게 되는데, 이를 문 밖에서 바라보는 왕의 질투가 홍림이
아닌 왕비에게 쏠려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왕이 사랑하는 사람은 홍림이기 때문에 홍림이 왕비와 관계를 갖는 것을
참을 수 없고, 더나아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분노가 이는 것이다. 하지만 왕은 이런 고통을 잘 컨트롤
해낸다. 세 번째인가 관계를 맺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해 이들을 엿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참아낸다.

이걸로 끝났다면 그냥 좀 독특한 취향을 가졌던 왕의 이야기로 끝났을 수도 있지만, 왕이 주선했던 이 관계를 통해 홍림이
새로운 세상에 눈 뜨면서 이야기는 점차 발전한다. 물론 홍림이 눈뜬 것은 동성간의 관계 밖에는 몰랐던 그가 이성과의
관계에 눈 뜬 것이기도 하지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왕 밖에는 몰랐던(혹은 모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에 놓여있던) 그가
왕 외에 다른 인물과의 깊은 관계를 처음 경험하면서 얻게 된 일종의 호기심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처음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왕 외에 다른 인물과(그것이 동성이던 이성이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에 심한 불편을 느끼던 홍림이,
관계를 거듭할 수록 이 새로운 관계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좀 더 욕정적인 측면에 큰 비중을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중에도 이 '욕정'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는데, 과연 홍림이 이성과의 욕정에만 사로잡혀
이 같은 치정극에 주인공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유하 감독은 본래 부터 그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잘 표현을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정 위주의 동기만을 너무 강조한 듯 하다. 그런데 본래 치정극이란 욕정이 동기나
소스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를 최종 결정하고 움직이는 주된 요소는 되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이를 움직이는 것은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질투와 집착, 애증 등이 주된 요소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홍림과 왕비는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마치 둘 모두 욕정에만 잠식당한 듯 마치 자랑하듯 다양한 체위에만 몰두하는 듯 보인다.

이들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바로 이부분이었다. <미인도>와 더불어 가장 많이 이 영화와
비교되곤 하는 <색, 계>의 경우는 분명 그 중심이 '욕정'에 있었다. '愛'가 아닌 '色'이 제목에 등장했던 것처럼 반역자를
처단하려는 애국심마저 잠식시켜버렸던 '욕정'이 분명하게 중심이 된 영화가 <색, 계>였다면, <쌍화점>은 '욕정'보다는
'애정'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라고 봐야하는데, 이슈에 민감했던 탓인지, 아니면 방향 설정을 잘못한 것인지,
옷을 입고 있을 때 말 없이 표현해 내는 인물 간의 감정들은 참 좋았지만, 옷을 벗고 있을 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어디선가 <쌍화점>의 리뷰 제목으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주진모(그가 맡은 캐릭터)다' 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여기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어찌보면 세 명의 인물 가운데 가장 애처롭고 불쌍한 이도 왕이며, 굳이 결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정 속에서 가장 상처 받는 이도 바로 왕이었기 때문이다. 왕비가 아이를 회임하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왕비마저
입지가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는 따로 있음에도 왕비에게 중전에 예우를 다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홍림을
던지면서까지 관계를 맺게 하였고, 이후에 홍림과 왕비가 눈이 맞아 자신을 번번히 속이고 관계를 맺어온 것을 눈치 챘음에도
용서하려 했고, 계속 그러 한 뒤에도 목숨만은 살려주는 아량을 배풀었으며, 왕비를 죽였다고 까지 속여 홍림을 궁으로 오게
만듬으로서 홍림과의 오해를 마지막에라도 풀고 싶어했던 그였다. 더군다나 그 와중에 원나라에 속국으로 전락한 나라의
억울함도 보살펴야 함은 동시에 자신을 왕위에서 끌어 내리려는 대신들의 음모에도 맞서 싸워야 했으니 여간 피곤할 일이
많은 캐릭터가 아닐 수 없겠다. 그리고 따지고보면 왕은 모든 것을 자신을 희생하면서 배려했음에도 결국 모든 파국을
자신의 몸으로 몸소 흡수해야 했던 안타까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겠다.




왕의 이런 안쓰러움은 마지막에 가서 더욱 더 골이 깊어진다.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 복선들이 있는데 영화 초반 궁녀와 눈이
맞아 도망치던 '건룡위'의 한 인물을 용서해준 일을 두고, 왕은 홍림에게 너도 나와 함께 궁밖으로 도망칠 만한 용기가
있느냐고 묻는다. 이는 후반 부 왕비와 홍림이 궁밖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왕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왕과 홍림의
좋은 한 때에 왕이 그린 그림을 보고 홍림은 '저도 이왕이면 활을 쏘고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결국 마지막에 왕은 이 그림을 홍림이 원하는대로 새로 그렸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중요한 건 홍림은 끝내 알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것이다. 왕과 홍림의 마지막 듀얼 씬 가운데 두 사람의 칼에 의해 이 그림은 반으로 잘려지는데,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확실히 홍림이 그림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완성된 것을 모르고 죽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왕비가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살아있다는 것은 보여주는데, 왕비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왕에 대한 분노가 끝까지
치밀었던 홍림은 왕비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그동안 오해했던 것을 뉘우치며(사실 왕비를 죽이지 않았다고 봤을때
홍림이 왕에게 잘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분노할만한 구실은 없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마지막 남은 힘을
써서 고개를 왕 쪽으로 애써 돌려놓아 그를 바라보며 목숨을 거두게 된다. 이는 너무 진부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관객들을 속이기 보다는 캐릭터들의 감정에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성애라는 표면적 영상에 적응하지 못해 작품에 공감하지 못했던 관객들을 아쉽다고 했던 나로서도,
왕이 직접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극한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다. 초반 왕비가 노래하는 장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기는 했으나 심하지는 않았었는데, 후반 연회 장면에서 왕이 직접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간 주진모가 보여주었던
대사 톤과는 너무 판이하게 다른 공기의 보컬이 등장해, 립싱크를 넘어서서 기존 분위기와 전혀 섞이지 못하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 듯 했다. 더군다나 가사 자체가 '쌍화점에 쌍화사러 갔다가' 뭐 이런식이라 공감하기 쉽지 않은 가사들인데,
분위기마저 이를 돕고 있어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주진모는 역시 말하지 않을 때 감정을 표현하는 면에서 만족스러운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된다. 조인성과의 배드씬 촬영을
앞두고 한달 만 연기해 달라고 했을 정도로 쉽지 않았던 촬영이었을텐데, 홍림과의 관계 속에서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해내야 하는 왕의 감정선을 비교적 잘 연기한 듯 싶었다. 조인성의 경우 일단 사극의 연기톤과 분위기와는 끝내 완벽히
섞이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그 역시 감정을 억누르는 장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으나 대사로 감정을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썩 만족스럽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송지효의 경우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도록 연출된 듯 했는데, 대사 전달 측면에서는
세 배우 중 가장 나았다고 생각되며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고 얘기하고도 싶다.

<쌍화점>에는 몇몇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데, 일단 초반 연회에서 자객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액션씬 연출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칼로 베어졌을 때 피가 튀는 것이 너무 인위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나중 듀얼 장면에서도 두드러지듯
와이어 사용이 너무 티가 나는 액션이었다. 일부에서는 액션 영화로 알려졌던 만큼(?) 배드씬과 더불어 액션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많았을법 한데,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액션연출이었던 것 같다. 유하 감독은 주먹 싸움 연출에
훨씬 재능이 있다고 봐야겠다.


<쌍화점>은 조인성이라는 스타의 출연과 조인성과 주진모의 파격 동성애 장면, 그리고 송지효라는 여배우의 노출로 화제가
된 작품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보다는 인물들의 내적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려고 애쓴, 고려발 치정극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현대를 배경으로 만들었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유하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인물간의 갈등 구조가 끝까지 가는 치정극의 효과는 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나, 사극이라는 불편한 옷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은
느껴졌던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오퍼스 픽쳐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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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강풀의 원작인 <26년>은 너무도 인상적이고 감동적으로 보았었기 때문에,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큰 기대를 갖게 되었던 작품이 바로 영화 <29년>이었습니다.

예전에 변영주,김태용,이해영 감독이 시네마천국 MC를 볼 때, 이해영 감독이 차기작으로 <29년>영화화를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게 되었고, 얼마전 주요 캐릭터로 변희봉, 천호진, 류승범 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법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더욱 기대를 하게 되더군요.

최종적으로 세 배우 외에 진구와 한상진, 김아중 씨가 캐스팅 된듯 한데, 한상진 씨는 처음 스크린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고, 김아중 씨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과연 이 무거운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해집니다.

이들 외에도 <님은 먼곳에>의 주진모씨와 기주봉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2009년 개봉을 목표로 이제 캐스팅이 막 확정된 상태이니,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 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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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먼곳에 (2008)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 님은 먼곳에


본인은 의도한 바가 없다고 했지만 어쨋든 <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에 이어 음악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는 분명 기대작이었다. 지금까지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은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둔 <왕의 남자>를 굳이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황산벌>부터 <즐거운 인생>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어느 정도의 완성도와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신작에 대해서도 아주 큰 기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준익'이라면 하는 기대감이 분명 있었기에 신작 <님은 먼곳에>도 요즘같이 볼 영화와 영화제로
가득 넘치는 가운데도 개봉일날 관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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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 쭈욱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3대 독자인 신랑(엄태웅)을 군대에 보낸 시골 아낙내 순이(수애)가 남편이 군대에서
사고를 쳐 월남에 가게 되자, 이에 노한 시어머니의 등살에 떠밀려 할 수 없이 월남까지 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슬쩍 보면 전쟁마저도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던 기적적인 두 남녀의 애뜻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님은 먼곳에>에는 이런 이야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랑'이 일단 없다.
상길은 부인 말고도 더 사랑하는 듯한 애인이 있으며, 면회를 온 순이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지만,
순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시어머니의 대를 이으라는 명령에 휘둘려 매달 면회를 꼬바꼬박 같지만,
아마도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로 미뤄봐도 순이와 상길 사이에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단순히 손자를 낳기 위한 시어머니의 도구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 의문이 생기는데 이 두 남녀가 어쩌다가(별로 좋아하는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원하지 않는 정략 결혼이었는지, 아니면 처음엔 사랑했으나 애인이 생기고 소극적이고 시골처녀인
순이는 그저 이혼하면 집으로도 돌아오지 말라는 친부모의 호령이 무서워, 죽은듯이 살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가장 큰 의문점이 생긴다. 결론적으로 상길은 물론, 순이 역시 상길에게 특별히 사랑하는 감정이
없는데, 월남까지 상길을 만나기 위해 쫓아간다는 설정 자체의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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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좀 긍정적으로 보는 편인 내겐 다른 시각으로 영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전쟁이라는 시련을 겪는 두 남녀의, 혹은 한 여성이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서사적으로 다뤘다기
보다는, 한 여성의 이야기는 맞지만 분위기에서 느껴지듯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억눌리고 강요만 당해왔던
자아를 우연치 않은 기회에(이 역시도 강요에 의한 기회로 인해)찾게 되고, 나중에는 마치 자기 최면에 빠지듯
자신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잊어버렸을 정도로, 오기가 본래 의도마저(본래 의도라는 것이
있었다면)모두 잠식해버리고 마는, 소외되고 억눌려 있던 순수한 한 여성의 원치않는 극적인 변화를 그린
하나의 무서운 여성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이는 시어머니 강요에 못이겨 월남으로 갈 방법을 찾던 중에 정만(정진영)의 도움과 꼬임에 넘어가
밴드 멤버로 월남에 가게 되고, 그들과 함께 공연을 하며 실패와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결국 남편이 있는
호이얀으로 갈 기회를 잡게 된다. 순이는 영화의 중반부까지 거의 표정이 없는, 반응도 무척 늦는
건조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자신의 자의로 월남에 왔다기 보다는 하는 수 없이, 피할 수 없어서
여기까지 끌려오듯 오게 된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노래하는걸 그저 좋아했던 순이는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팝송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조금씩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 자체에 대한 반감도 사라지게 된다. 이것을 '즐기게 된다'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시작이 자의로 온 것이 아니라 오기에 가깝게 시작된 것으로 본다면 '즐긴다'라기 보다는
이 역시 웃는게 웃는게 아닌 '오기'로 보는 편이 더 가깝겠다.

그러던 와중에 베트콩에게 포로로 잡혀 굴속에서 잠시 생활하기도 하고, 다시 미군에게 구출(?)되기도 하는
곡절을 겪으면서 점차 순이의 오기는 강해진다. 그래서 구출된 미군 장교를 위해 과감히 몸을 파는
일까지 서슴치 않게 되는데, 앞서 보았듯이 남편인 상길과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던(물론 이 부분은 상길과 순이의
과거 얘기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확실치는 않지만)순이가 그 좋아하지도 않는 상길을 만나기 위해
미군 장교와 잠자리를 하게 되는 설정이야 말로, 주객이 전도되고, 왜 이러는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린
순이 자신의 오기가 극에 달한 장면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것보다 더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한 설정은 개인적으로 정만이 베트콩에게 풀려나 미군에게 구출된 뒤, 한 번만
미군들을 위해 공연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정성껏 사정하는 모습이었다. 정만은 그저 돈을 벌러 온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임이 분명한데, 설사 순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해 그랬다하더라도
이 설정은 정만이라는 캐릭터가 갑자기 선의를 보인 이상한 장면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 전 장면에서 '님은 먼곳에'를 예쁘게가 아니라 거칠게 부르던 순이의 모습에서는 확실히 오기가 불러낸
자아의 혼란을 겪는 심리상태를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엔딩장면에도 있었다.
드디어 상길을 만난 순이는 달려가 포옹하거나 하지 않고, 말도 없이 상길을 뺨을 여러번 친다. 그리고
서로 눈물을 흘리며 그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얼핏 보기에 이건 전쟁이라는 지옥같은 상황 속에서
드디어 만난 두 남녀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하고 흘리는 눈물이라기 보다는, 순이가 드디어 조금이나마
자신의 여기까지 오기의 일들을 떠올리며, '내가 왜 이래야 했나' 혹은 '자 봐라, 내가 이 전쟁통에도 니들이
하라는대로 다 해줬다. 됐냐?'라는 식의 회환에서 오는 자기 연민에 눈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상길의 눈물의 의미는 단순히 아파서? --;;)

결국 자신의 의견 한 번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게 살아가던 한 시골 여성이,
시어머니의 강요에 못이겨 시작된 월남의 전쟁통을 겪으며, 억눌린 자아를 오기로 풀어내는
그래서 결국은 사회가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고,'자 됐냐?'하며 쓸쓸히 눈물 지으며 퇴장하는
씁씁할 한 여성의 슬픈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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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요한건 나중에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이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내 생각과 달라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저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여러가지 설정들이 억지스러움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칭찬하는 수애의 연기는 개인적으로는 캐릭터 자체의 미스테리가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나, 나중에 '님은 먼곳에'를 오기에 받쳐 거칠게 부르는 장면에서는 살짝 소름도 돋을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준익 영화의 가장 전형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정만 역할의 정진영은
연기 자체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이것도 캐릭터 자체의 미묘함이 있어서 뭐라 평하기는 힘들듯.
(만약 순이의 의도가 정말 상길을 사랑해서, 사랑하는 남편을 찾기 위해 월남까지 온 것이라면, 이 밴드의
남자 멤버들이 이런 순이의 갸륵함에 동화되어 나중에는 몸을 써 군인들을 막아가며 순이가 호이안으로
가게 끔 하는 행동이 살짝 이해도 가지만, 내 생각처럼 오기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 밴드멤버들도
홀딱 속은 것 밖에는 되지 않겠다 ㅎ)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괜찮은 설정이 있었다면, 월남에 참전한 한국군을 그저 돈벌러 왔다는 것으로
직접적으로 묘사한 대사와, 베트콩을 미지의 악당들이 아니라,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로 묘사한 점,
미군들의 잔혹함을 묘사한 점은, 베트남전을 침략한 가해자인 미군 위주로 그린 다른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점이라 마음에 들었다.




1. 그런데 3대 독자이면 당시에 군대 면제가 아니었나? 이것도 의문.
2. 헬기타고 프로펠러이 바람에 셔츠가 펄럭이는 남은 사람들의 장면을 보면, 여지없이 <영웅본색 3>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더라.
3. 아무리 그래도 미군이 한국병사 1명을 찾기 위해 수색대를 특별히 조직하거나, 국군이 민간인 여성을
   작전지역에 그렇게 쉽게 데려가는 것도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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