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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끝까지 단단하고 새롭기까지 한 역대급 사극



지상파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한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최근엔 별로 재밌게 본 작품이 없었는데, '육룡이 나르샤' 역시 첨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퓨전 사극 냄새가 나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제목이 처음 내용을 몰랐을 땐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봐야지 했던 이유는 역시 배우들이었다. '베테랑' '사도' 등으로 한창 뜨거웠던 유아인을 비롯해 김명민, 천호진, 신세경 등은 물론 개인적으로 '미생' 이후 더 주목하게 된 변요한까지 출연한다는 소식은, 최소한 일단 시작은 해봐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던 배우들은, 이 작품을 더 역대급으로 만들어 내는 완벽한 조각이기도 했다.


50부작에 달하는 내용을 하나 하나 다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전체적인 감상과 마지막 회 위주로 간략하게 이야기해볼 텐데, 첫 째는 역시 완성도다. 보통 50부작이나 되는 TV드라마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있어서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은데, 그건 국내 드라마의 퍽퍽한 제작 여건도 부정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전반적인 리듬감이나 균형을 위해 강약을 조절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육룡이 나르샤'는 50부작 전체가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한 회도 그냥 지나치는 화가 없을 정도로 짜임새 있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빠른 리듬감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이 끝나고 나면 '벌써 끝났나?'라고 자주 얘기했던 건 그냥 팬심 만은 아니었다.


사극의 특성상 여러 인물들과 관계 들이 등장하는데 그 다양함을 복잡함의 나열이 아니라 깨알 같은 연관성으로 엮어 냈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여러 다른 인물들과 관계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빠지고를 반복해도 완성도의 붕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여러 회차가 다 인상적이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25회를 꼽지 않을 수 없겠다. 땅새와 연희의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절정을 치닫는 가운데, 땅새와 무휼, 영규까지 목숨을 건 액션 시퀀스는 과연 한국 TV드라마에서 이 정도 수위와 연출의 액션을 본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는 엄청난 회였다. 액션 측면으로만 봐도 잠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긴 호흡으로 가져간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액션 시퀀스를 비롯한 이 회차 전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밑바닥에는 땅새와 연희의 감정선이 아주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주제를 감정적으로 분출시킨 장면으로서, 볼거리와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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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역사를 묘사하는 작품의 방식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 절정은 역시 정몽주와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나눈 단심가와 하여가 시퀀스였다. 누구나 학창시절 배우고 외워서 잘 알고 있는 이 내용을, 머리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달해 내 이제야 비로소 두 사람의 진심과 심정을 해아리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은 대단했다. 이 밖에도 우리가 흔히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수 많은 역사 속 순간이나 인물, 사건 들이 등장할 땐, 마치 이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해 내는 연출이 돋보였다. 그러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되지?'라는 궁금증 마저 들게 만들거나 혹은 '아..그래서 그랬던 거구나...'하며 비로소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나는 이것이 '육룡이 나르샤'가 달성한 가장 큰 성공이 아닐까 싶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 그것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뻔하다고까지 생각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처음 듣는 얘기처럼 만들어 낸 연출과 구성은, '육룡이 나르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마지막 회는 주로 에필로그를 담는 형식으로 그려졌는데, 보통 에필로그를 그리게 되면 축축 처지면서 정리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마지막 회에서도 마치 더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듯한 에너지를 보여주며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50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SBS드라마인 '뿌리 깊은 나무'와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했던 이 드라마를 '육룡이 나르샤'는 아주 영리하게 활용했다. 특히 마지막 회는 '육룡이 나르샤'의 50회이자 '뿌리 깊은 나무'의 0회 정도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 고리가 단단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은 그 연결 고리를 하나 하나 발견해 내며 이 역사의 계속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뿌나'를 보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선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말 다음 주 부터 '뿌나'를 방영하는게 새로운 드라마를 하는 것 보다 나을 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도(세종)를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로 등장시킨 것도 정말 좋았다. 이도의 존재가 이방원이 꿈꾸었던 자신을 포함한 존재들의 가치를 모두 조금씩 닮아 있었다는 점에서, 그를 연기한 아역이 다름 아닌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라는 점은 묘한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쉬지 않고 긴박하게 달려 온 '육룡이 나르샤'는, 배우들의 놀랍고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바탕으로 마지막회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단단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익숙한 역사에 생동감을 불어 넣은 역대급 사극이었다.

아... 다음 주 부터는 정말 뭘 보지. 둘 중 하나는 봐야겠다. '육룡이 나르샤'를 1회부터 다시 정주행하거나 '뿌리 깊은 나무'를 다시 보거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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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2010)
왜 부당거래인가?


류승완 감독의 신작 '부당거래'를 보았다. 검사와 경찰이라는 설정만 들었을 때에는 대략 이런 이야기가 진행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리고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이렇게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부당거래'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느껴졌다. 왜였을까?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은 왜 '부당거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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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대 에이스 최철기 (황정민), 젊은 검사 주양 (류승범) 그리고 해동그룹 대표 장석구 (유해진)는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엮이고 엮이게 된다. 이들이 서로 엮이게 된데는 물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굴레에 놓였다는 점, 즉 약점을 갖고 있고 이를 누군가에게 완전히 간파당했다는 점과 반대로 그 자신도 누군가의 약점을 완벽하게 잡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게 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이해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이해관계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의 제목은 '부당거래'지만 이들 간의 거래는 지극히 합당한 모양새다. 이미 서로의 머리 꼭때기에 있는 베테랑들의 간보기는 적당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인정하고 그대신 뒤통수만 치지 말자 이야기하지만 이들의 머리 속에는 이 '뒤통수' 역시 계산된 그러니까 서로 보험 하나 씩은 들어두고 있다는 점을 애써 숨기기는 커녕, 서로에게 자신의 무기를 보여주고는 큰 일 없이 서로 좋게좋게 넘기자 라는 합당한 거래를 이어간다.

극 중 상황이 반전되고 역전됨에 따라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와 주종관계 (이것은 확실히 주종관계에 가깝다) 역시 역전되지만, 상대를 쥐고 흔들던 자신이 한 순간에 발아래 놓이게 되더라도 이들의 동요는 크지 않다. 다시 말해 보통 정의로운 주인공이 등장한 영화라면 이런 상황을 겪어야만 하는 주인공의 억울하고 참기 힘든 심정을 그대로 담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이의 분노와 울분에 촛점을 맞췄을 테지만, 영화는 이런 울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 울분이 관객에게까지 100% 공감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즉 이들의 억울한 울분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벌여놓은 합당하지만 부당한 거래의 산물이며 또 하나의 연극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의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도 '아, 드디어 내가 이겼군!'이라기 보다는 그저 역전된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 처럼 보인다. 내 머리 위에 있던 상대가 드디어 내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다고해서, 상대가 드디어 나에게 굴복했구나 라는 것보다는 굴복할 수 밖에는 없는 그 '순간'을 즐기는 정도로 그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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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류승완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부를 만큼, 전체적인 짜임새나 에너지가 수준급이지만 그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라던지 혹은 '짝패'에서 느꼈던 날 것의 느낌에 반했던 이라면 완전히 대중의 코드에 들어온 그의 신작에 조금의 아쉬움을, 반대로 일반 관객들은 기존 상업영화보다는 덜 대중적인 (물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몹시 완성도 높은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금은 중간에 걸친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뷔작부터 팬이었던 개인적인 시선으로서 류승완의 신작 '부당거래'는 분명 다운 그레이드된 대중성이나 성격으로 인해 모호해진 작품이 아니라, 확실히 '진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류승완 감독의 이전 작품들은 그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대중영화에 녹여내는가에 대한 여정이었다고도 생각된다. 그 가운데 좀 더 자신의 성향이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난 작품들은 좀 더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하는 반면 대중들에게는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었고, 좀 더 대중적인 코드를 잘 소화한 작품 같은 경우는 그 반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부당거래'는 드디어 이 두가지 지점이 비로소 평균이상으로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 이런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성격을 가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당거래'와 비교하자면 분명 양면이 모두 조금씩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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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국영화들을 되돌아보면 '부당거래'와 비슷한 지점을 지향했던 작품으로 김성수 감독의 2006년작 '야수'를 들 수 있겠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그 뒤에서 이를 조정하는 배후세력 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가 사라져버린 씁쓸한 한국사회를 그려내려 했던 지향점은 같았으나, '야수'는 분명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런 아쉬움은 '부당거래'를 보고나니 좀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부당거래'는 우리가 TV뉴스를 통해 너무 잘 알고는 있지만 대놓고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사회 지배세력과 (혹은 신분) 그 사회에 물들어 권력을 이익을 위해 휘두르고 있는 자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풍자'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최철기 역시 완벽한 정의로운 피해자라기 보다는 가해자이자 그 구성원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캐릭터에게 공감이나 동정을 주기 보다는 전체적인 씁쓸한 그림을 보고는 혀를 차게 되는, 풍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영화를 좀 더 극적으로 아니면 좀 더 대중적으로 그리려고 했다면 관객들이 극중 최철기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의 상황을 좀 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마치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 처럼 더 감정을 담아줄 수 있는 캐릭터와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사회와 악이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에게 어떠한 폭력을 행사하는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국 영화 밖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이 바로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안타까움을 풍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내내 이런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 영화의 방식들을 대부분 지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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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후반부의 경우 최철기의 에필로그 정도로 묘사되어, 없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 마지막이 있어야만 비로소 '부당거래'가 완성된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뒷 이야기가 없어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좀 더 친절하고 확실한 방식을 원했다. 그렇게 얽혀있던 이들이 서로 엉켜붙고 하는 통에도 누군가는 끝까지 보호받고 죄를 인정하지 않아도 권력을 통해 상황을 역전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즉 이런 비리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죄를 추궁받기는 커녕 어깨 쭉 펴고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 뒤로 서울이라는 도시(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풍경을 비추는 것, 또한 수미쌍관을 이루는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은 희망적이라기보다는 반복적이고 계속된다는 씁쓸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이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비로서 '부당거래', 즉 법을 수호하는 자들과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합법적으로 만들어낸 '부당한 거래'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들려준다. 그래서 영화는 통쾌하지도 애절하지도 않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인 것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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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마음에 들었어요. 다들 베테랑들이라 간보기 없이 바로 실력발휘들 하시더군요 ㅎ 가장 평범하게 느껴지는 건 오히려 주인공인 황정민이었는데, 이건 주인공이라는 전형적인 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네요. 조연들의 연기는 이 세계관을 형성하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으며, 류승범의 연기는 갈수록 물이 오르고만 있는데 하나 걱정되는건, 그의 말투나 연기가 주양이라는 캐릭터에게는 아주 어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류승범을 보는 익숙한 시선 때문에 그저 코믹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2. 류승완 감독의 작품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들도 반가웠어요. 안길강은 거의 까메오 수준으로 등장하지만, 왜 안나오나 싶던 김수현은 나름 비중있는 캐릭터로 등장하더군요. 이런 캐릭터도 멋졌어요. 김수현씨!

3. 이경미 감독의 연기는 자연스러워서 못알아볼 정도였으나, 이준익 감독의 까메오는 '나 이준익 감독인데 깜짝출연했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어색함 그 자체더군요 ㅋㅋ

4. 조영욱 감독의 음악은 확실히 좀 과잉으로 느껴졌는데, 그 과잉이 이 작품과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확실히 음악이 은은하게 깔리기보다는, '이 장면은 이런 긴장감을 주는 장면이야' '심각함이 극에 달했다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이런 과잉이 좀 더 영화를 장르적으로 표현해 낸 것 같아요.

5. 이춘연 님이 특별출연하셨는데 무려 캐릭터 이름이 '엄충수 경찰청장'!! 

6. 류승완 감독님은 예전에 '다찌마와 리' 극장판 개봉시 단독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던터라, 그 이후로는 왠지 더 반가운 느낌이에요. 그 때 제 블로그와 DP닉네임을 이미 알고 계셔서 감동받았었는데 말이죠 ㅠ (류감독님! 보고 계시죠?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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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강풀의 원작인 <26년>은 너무도 인상적이고 감동적으로 보았었기 때문에,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큰 기대를 갖게 되었던 작품이 바로 영화 <29년>이었습니다.

예전에 변영주,김태용,이해영 감독이 시네마천국 MC를 볼 때, 이해영 감독이 차기작으로 <29년>영화화를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게 되었고, 얼마전 주요 캐릭터로 변희봉, 천호진, 류승범 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법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더욱 기대를 하게 되더군요.

최종적으로 세 배우 외에 진구와 한상진, 김아중 씨가 캐스팅 된듯 한데, 한상진 씨는 처음 스크린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고, 김아중 씨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과연 이 무거운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해집니다.

이들 외에도 <님은 먼곳에>의 주진모씨와 기주봉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2009년 개봉을 목표로 이제 캐스팅이 막 확정된 상태이니,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 겠네요 ^^;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

<말죽거리 잔혹사>를 마친 유하 감독은 이 작품이 학교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주입식으로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강압적인 폭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군사정권 아래 암울한 시기에 무방비 상태에 청소년들에게 가해진 폭력, 직접적으로 가해진 폭력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된 간접적 폭력 등 인성이 만들어지는 중요한 시기에 폭력성을 주입하는 사회와 시스템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한 남자아이가 어떻게 폭력성이 생겨나고 키워가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만들며 유하 감독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얘기하면서 폭력에 관한 3부작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작품 <비열한 거리>는 바로 그 두 번째 격인 작품이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폭력성에 시작에 관한 이야기라면 <비열한 거리>는 전작에서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폭력성을 키워온 한 고등학생이, 성인이 되어 이 폭력성을 소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배경도 고등학교에서 사회로, 즉 조직폭력배로 스케일이 커졌다. 흔히 말하는 조폭영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조폭 코미디물과 조폭 영웅물이 있다. 조폭 코미디란 이미 한국 영화계에서 수없이 복제되었기 때문에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 조폭 영웅물이란 쉽게 말해 한 때 전설이었던 주인공이 시간이 흘러 손을 때고 지내려는데, 예전에 원수들이 여자 친구 혹은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다시 폭력을 쓰게 되는,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장렬히 전사하게 되는,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미화하고 멋지다고 생각되게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열한 거리>는 얼핏 보았을 때 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조폭이 되지 말아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라는 말처럼 이 영화는 절대 조폭을 미화시킨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조인성이 멋있어서 그랬다면 할 말 없겠다만).


 
폭력성과 더불어 유하 감독이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집단성’ 혹은 ‘조폭성’이다. 감독은 왜 폭력성과 집단성이 항상 함께 하는지(조직폭력배 라는 말자체가 집단성과 폭력성에 합성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에 관한 이유를 ‘성공’이라는 보편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 특히 <비열한 거리>에서는 주인공 병두 외에도 이 같은 사례를 보여주는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폭력을 일삼고 있는 조직폭력배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영화 성공을 위해 친구의 비밀을 영화화하는 감독 민호(남궁민 분)나 역시 자신의 사업을 위해 폭력배들을 이용하는 황 회장(천호진 분)이나, 직접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이 그려지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천태만상들은 여전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그 힘을 갖기 위해 갖은 자는 더 많은 나쁜 일들을 정당화하며, 이 힘의 논리에 피해 받아 죽어간 자들 역시 복수를 하기 위해, 역시 그들과 같은 방법을 쓰게 되며 결국 잘못된 연결고리가 계속되는 쓸쓸한 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준다. 감독은 직접적으로 폭력사용이 나쁘다 라는 표면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계속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잘못된 연결고리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그래도 어느 정도 희망을 엿볼 수 있었던 ‘슬픈’ 영화였다면, <비열한 거리>는 그 희망마저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씁쓸’한 영화이다. 'One Summer Night'은 애절했지만, 'Old & Wise'는 씁쓸하기 그지없으니 말이다.



<비열한 거리>는 폭력이 중심이 된 영화인만큼 액션에도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진흙탕에서 벌어졌던 ‘인천터널’액션 장면은, 모든 배우들과 스텝들이 힘들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찍었다는 말들을 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다(봉고차에서 내리기까지만 3일을 촬영, 총 7일간 이 장면만을 촬영했다고 한다). 스텝들도 한국영화에 길이 남을 액션 씬을 한 번 만들어보자는 일념 하에 좀 더 리얼하고, 차 유리도 효과를 위해 실제 유리를 깨트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완성도 높은 장면을 완성해 냈다. 그리고 스스로 국내최초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서점액션’씬 에서도 장소에 특성에 맞는 동선과 액션으로 리얼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 외에도 실제 오락실을 빌려 촬영했던 ‘오락실 액션’과 봉고차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 등 모든 액션 씬들이 영화적인 장면을 만들기보다는 더 현실적인 액션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 고심했던 장면들로 결과적으로는 스텝들과 관객들 모두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병두 역할은 본래 조인성 같은 꽃미남 스타일이 아닌 좀 더 거칠고 말 없는 스타일이 될 예정이었으나, 조인성이 맡게 되면서 본래 시나리오와는 조금 다른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진구가 맡은 역할도 본래는 좀 더 익살스러운 캐릭터였으나, 진구가 캐스팅되면서 충복의 이미지로 변화되었고, 남궁민이 맡은 민호 역시 본래 시나리오와는 조금 다르게 변화되었다고 한다(처음에는 병두가 아닌 민호가 주인공이었으나, 영화적으로 강도가 약하다는 의견이 많아 병두를 주인공으로 수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인성에 연기에 관한 얘기들은 아직도 분분한 것이 사실이지만, <비열한 거리>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액션이면 액션, 감정이면 감정, 모두 다 한층 성숙해진 연기였다고 생각된다. 처음 조인성이 조폭역할을 맡았다고 했을 때는 앞서 언급했던 조폭이 미화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이 전에 드라마에서 보았던 귀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었다. 이 외에 여러 배우들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배우들은 윤제문과 천호진인데, 이 두 배우는 이 영화에서 꼭 필요한 무게와 중심을 잡아주는 탄탄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특히 라스트 씬에서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나야지’하는 천호진의 대사와 곧 이어지는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Old & Wise'는 정말 그가 아니면 만들어내지 못했을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다.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근작답게 우수한 수준이다. CJ에서 출시했던 한국영화 타이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비열한 거리>역시 외곽선이나 명암비가 뚜렷한 선명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액션씬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는데, 쇠파이프, 야구 방망이등 수많은 연장(?)들을 사용한 액션 소음들과 사시미 특유의 섬뜩한 소리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채널 분리도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며, 노래방 씬에서의 공간감도 수준급이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유하 감독과 김선중 PD의 음성해설, 그리고 조인성, 이보영, 진구가 참여한 음성해설 등 총 2가지 트랙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영화와 주제에 관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원한 다면 첫 번째 트랙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촬영장의 에피소드나 장면 당시의 일들을 전해듣고 싶다면 두 번째 트랙을 추천한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격적인 서플먼트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메이킹 다큐멘터리 격인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에서는 전체적으로 영화를 기획했던 단계에서부터 촬영장 에피소드 등을 감독과 스텝,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비열한 거리의 군상들’에서는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폭력성과 조폭성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이야기가 인터뷰로 수록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열한 거리>는 상당히 액션 장면에 심혈을 기울인 장면인데, 서플먼트에서 이 노력을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다. ‘인천터널 액션’ ‘오락실 액션’ ‘고수부지 액션’등 각각 액션을 파트별로 나누어 촬영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아마도 이 서플을 감상한 뒤 각 액션 장면의 본편을 다시 감상한다면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6.11.22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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