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보고 싶은 괴물 같은 영화 '올드보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블루레이가 드디어 출시되었다.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한국 영화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만큼이나 이번 블루레이 출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큰 이슈라면 역시 출시 연기와 관련된 부분인데, 물론 처음 출시를 알렸던 시점에 비해 수년이 흐른 뒤에야 실제 출시가 된 점은 이유를 막론하고 아쉬운 부분이지만, 10주년을 맞아 전면적인 디지털 리마스터링 및 국내 영화계에서는 전무후무한 (후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단순한 메이킹 다큐멘터리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올드 데이즈'라는 제작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까지, '올드보이'라는 영화에 걸맞은 이번 블루레이의 장점들이 미처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블루레이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간단하게라도 영화 '올드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미 많이 조명되었던 것처럼, 2003년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르네상스 시기였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비롯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그리고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등 (이 밖에도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까지)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각각의 다른 색깔과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2003년을 비롯해 이 즈음 발표되었던 한국 영화들의 10주년 재상영 및 평가 등이 요 몇 년 사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올드보이'가 갖는 지점은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가장 큰 표면적인 차이점이라면 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이라는 수상 경력 및 해외 영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를 알린 작품이라는 점일 텐데, 이후 '올드 데이즈'에 담긴 내용을 소개할 때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런 대외적 평가 및 수상 경력이 갖는 명예와 성공 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스텝, 배우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이런 영화를 또다시 만들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영화라는 점이 바로 '올드보이'가 특별한 작품이라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좋은 영화들은 세월을 두고 다시 보기를 반복할 때마다 다른 감동과 인상을 남기곤 하는데, 개봉 10주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 역시 그랬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최민식이 연기한 오대수 역할이 주는 강렬함과 영화의 독특한 미장센에 매혹되었었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보니 오대수의 이야기와 충격적인 반전은 여전히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이우진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즉, 15년 동안 갇혀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보다, 누군 가를 15년이나 감금해야 했던 사람의 사연이 더 강렬했다는 얘긴데,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이의 분노보다는, 어쩌면 15년이 넘는 세월을 복수로 보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이 더 쓰라리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전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대사들이 와 닿았는데, '아무리 짐승 만도 못한 놈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대사와, '그냥 잊어버린 거예요'라는 대사는 이번 재 관람에서 비로소 발견한 중요한 포인트였다. 우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주된 사건은 누군 가의 인생을 통째로 앗아갔음에도, 다른 누군 가는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잊어버린 일이기도 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우리도 살면서 스스로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지나 치는 일들 가운데에는 누군 가 (그 누군 가가 설령 짐승 만도 못한 이 일지라도)의 인생을 빼앗아 갈 정도로 커다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 지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진의 마지막이 더 슬프고 더 쓸쓸하고 더 무기력했다. 오대수의 입장에서 보면 '올드보이'는 강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이우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시작할 때부터 끝이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와 무기력함이 내내 동행하는 그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오대수는 15년 간 갇혀 있다 풀려 났지만, 우진은 이미 학생일 때부터 자신의 삶으로부터 갇혀 버린 것이 아닌가. 



이우진의 심리에 더 공감하게 되는 변화만큼이나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는 날 것 같이 폭주하는 에너지와 과감한 영화적 시도(아니, 도전이라고 하는게 맞겠다)들을 또 한 번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독, 배우, 스텝 모두 젊고 혈기 왕성하던 그때가 아니었다면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다시 말해 만약 동일 인물들이 기술적으로 더 성장한 지금에 와서 다시 만들고자 하면 오히려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지금은 이성적으로 시도할 수 없을 다양한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간혹 거칠고 정제되지 않고 혹은 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그런 한계들을 모두 예상할 수도 피해갈 수도 없었던 당시의 에너지 (혹은 결의)가 만든 괴물 같은. 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괴물 같은 영화가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아닐까.


# 올드 데이즈 - 올드보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

 

메이킹 다큐멘터리 성격 영화에 대한 글 제목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나'는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라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 '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는 '올드보이'가 어떤 과정과 일들을 겪으며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올드보이'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처음 기획된 이 다큐가 전주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정도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이건 분명 과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해보고 싶었던 작업, 그러니까 좋아하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긴 호흡과 디테일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상이 우리 영화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늘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애초 기획이었던 것에서 확장된 버전으로 발전된 것은 조금 무리가 되지 않을까, 과잉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보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걱정 외에 다른 의미로 보자면, 과연 메이킹 다큐를 만드는 데에 한 편의 영화와 동일한 수준의 규모나 의미 부여가 필요한 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10주년을 맞아 재상영도 할 만큼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고 또 해외에서 특히 인정받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당위성보다는 영화의 명성에 기댄 다큐 제작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를 다 보고 나니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굳이 '올드보이'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블루레이에 수록 될 부가 영상에 그치지 않고 영화화까지 발전시켜야 만 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즉, '올드 데이즈'는 단순히 '올드보이'라는 작품의 명성을 더하기 위해 기념 적으로 제작되고 기획된 작품이 아니라, 역으로 말해 '이런 제작과정을 통해 탄생된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하고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제작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자 놀라움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2003년 '올드보이'에 참여했던 감독과 배우, 스텝들은 지금은 각 분야에서 모두 주역을 맡고 있는 마스터들이지만 당시엔 완전 신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경력이 많은 스텝들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올드 데이즈'는 바로 그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싸우고, 부딪히고, 이겨내며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완성시켰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간혹 오래전 작업한 (특히 현재는 걸작이 된) 영화를 배우와 스텝들이 추억하며 회고하는 메이킹의 경우, 당시 어리고 미숙했던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그때는 참 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하라면 아마 다를 거예요'라는 식의 인터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당시 스텝들의 인터뷰들에서 하나 같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현장'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라는 것이었다. '올드보이'가 자신의 첫 번째 영화였던 스텝들도 있고, 나이도 비교적 어린 나이라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상황과 조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익숙하고 숙련된 지금에 와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그들의 진심에서 다시 한번 왜 이 다큐멘터리가 필요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올드보이'는 내용적인 면이나 스타일,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영화였다. 혹자는 과잉의 영화라고 할 만큼 모든 분야의 에너지가 한계 이상으로 분출되고 있는 벅찬 영화였다. '올드 데이즈'를 보고 느꼈던 건, 아마도 이 영화가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 (지금에 와서 다시 구현하려고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아니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의)를 영화라는 포맷 안에 다 담아낼 수 이유가, 감독 한 명 혹은 예술적 능력이 압도적으로 출중한 몇몇 아티스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영화여서가 아니라,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스텝들이 자신들의 한계치 이상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에 기적처럼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정확히 뭐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그 당시의 순간에 내가 한국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공기가 느껴져,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해보자 라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이 영화가 원하는 수준을 내가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괴물. 그런 에너지들이 마치 어떤 상자 안에 봉인되듯이 '올드보이'라는 영화 안에 봉인되는 것에 성공한, 그런 괴물 같은 우연 혹은 사건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들었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블루레이의 부가 영상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결국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지고, 더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올드 데이즈'는 그렇게 익숙한 '올드보이'를 또 보고 싶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놀라운 영화였다. 



# Video & Audio


이번 '올드보이' 리마스터링 블루레이의 본편 화질에 대해서는 먼저 (당연한 얘기지만) 사실 확인을 분명히 하고 동시에 호불호에 대해서는 넓은 범위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감독의 의도나 영화 특유의 영상 처리 기법 등을 감안하여도 다른 일반적인 블루레이 영상들과 비교하기에는 확실히 필름 그레인이 (특히 일부 장면들의 경우) 심한 편이기 때문에 쨍하고 시원한 화질을 더 선호하는 대부분의 시청자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화질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 반면 이런 거친 입자의 화질은 감독이 의도하고 또 최고의 리마스터링 기술을 통해 그 의도를 최선으로 구현해 낸 현존하는 최고의 화질이라는 사실이다 (DVD 출시 당시에도 이러한 의도를 담아낸 화질 - 정확히 말하자면 촬영과 영상 -에 대한 감독과 촬영 감독의 추가 설명이 있기도 했다).



이번 블루레이의 화질과 디지털 리마스터링 과정에 대해서는 부가영상으로 수록된 정정훈 촬영감독과 박진호 디지털 리마스터링 슈퍼바이저의 인터뷰를 통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보자면 일단 '올드보이'는 '블리치 바이패스 (bleach bypass)'라는 현상 기법을 활용한 작품이라는 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블리치 바이패스'란 필름 현상 시 은입자를 씻어내는 표백 과정을 건너 뜀으로서(bypass) 콘트라스트는 더 강해지고 그림자는 더 어둡고 채도는 감소시켜 영상의 몰입도를 더 강조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콘트라스트를 더 강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레인 역시 강조가 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쨍한' 화질보다는 필름 그레인이 도드라지는 화질을 갖게 된다. 이번 블루레이 리마스터링은 이러한 느낌을 더 제대로 살리기 위해 오리지널 네가를 스캔받아 DI를 하는 방식이 아닌 MP (Master Positive)를 스캔하여 '올드보이' 특유의 룩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즉, 그레인을 지우고 쨍한 화질을 만들기 위한 리마스터링이 아니라 오히려 감독이 원했던 그레인과 거친 입자, 색감을 더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리마스터링이라는 얘기다.



또한 '올드보이'는 촬영 당시 제한된 조명과 고감도 필름을 과감하게 사용한 작품이라는 점도 화질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이 원했던 특유의 분위기와 색감을 구현하기 위해 그린 톤의 실험적 조명 등이 적극 활용되고 또 고감도 필름이 일부 실내 장면 촬영에 사용되었는데, 그렇다 보니 거친 입자의 화질을 갖게 된 경우다. 다시 말하자면 감독이 원했던 특유의 분위기와 색감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친 입자와 그레인이 도드라지는 화질을 수용 해야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 거친 입자와 그레인이 바로 박찬욱 감독이 의도라는 점이다. 



쨍한 화질을 자랑하는 최신 블루레이 영상들과 객관적 비교를 한다면 분명히 그레인이 심하고 암부 표현력이 떨어지는 '올드보이'의 화질이 더 낫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감독을 비롯해 영화를 만든 이들이 원했던 바를 충족시켜주고 있는가 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올드보이' 블루레이의 화질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최상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존하는 최선인 동시에 절대적 측면에서 최상급의 화질(감독이 직접 승인한 점이 그것)이라 결론 지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올드보이' 본편 화질에 대한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덧붙이자면, 영화 후반부 우진의 펜트하우스 장면 가운데 우진의 얼굴 옆으로 과감하게 오대수의 얼굴로 클로즈업이 진행되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 감독 및 스텝들은 조명 등 여러 여건들 때문에 화질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했지만 (일부는 못 견뎌했지만), 박찬욱 감독은 오히려 바로 그게 본인이 원하는 것이었다며 최종적으로 OK사인을 주기도 했었다.



DTS-HD MA 5.1과 2.0 채널의 사운드는 준수한 편이다. 대사 전달력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균형이 잡힌 사운드를 들려주며, 특히 액션 씬이나 다른 씬에서의 멀티채널 활용도 보다 스코어가 흐르는 장면의 음장감이 체감하기에 더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 Special Features


3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이번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각 디스크마다 부가영상을 나눠서 빼곡히 수록하고 있는데, 첫 번째 디스크에는 리마스터링 된 영화 본편과 함께 총 6개의 음성해설 트랙과 약 48분여의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었다. 음성해설의 경우 기존 DVD에 수록되었던 5개의 트랙 외에 박찬욱 감독의 특별 추천한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의 음성해설이 독점으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음성해설은 그 엄청난 분량도 분량이지만 각 트랙마다 참여자들의 분야에 따른 다른 시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만약 DVD에 수록되었던 음성해설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한 번쯤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은 왜 이 영화가 이런 거친 질감과 특유의 색감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인터뷰 영상의 첫 번째는 박찬욱 감독이 전하는 일종의 인트로 영상인데, 예전 '반지의 제왕' 확장판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영화 시작 전 피터 잭슨이 등장해 간단하게 확장판과 추가된 장면들에 대해 소개하는 영상을 떠올리면 될 듯하다. 


 

두 번째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에 대한 부분인데, 이번 블루레이의 화질과 관련하여 왜 이번 버전이 감독이 승인한 버전인지 또 어떤 기술적 과정을 통해 이번 리마스터링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정정훈 촬영감독과 박진호 디지털 리마스터링 슈퍼바이저의 인터뷰를 통해 상세히 들려준다. 이번 블루레이에 화질에 대해서는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심하게 나뉠 수 있을 텐데 호불호를 떠나 정상 비정상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촬영감독과 리마스터링 슈퍼바이저의 설명이 담긴 이 인터뷰는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영상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박진호 슈퍼바이저의 인터뷰는 이번 블루레이 화질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이나 이해의 측면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인터뷰로 어떤 과정이나 의도, 방식으로 이번 화질 리마스터링 작업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술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올드보이'가 선택한 특수 현상 방식인 '블리치 바이패스 (bleach bypass)' 방식에 대한 상세한 소개 및 이 방식을 선택함에 따라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들 그리고 이번 리마스터링 작업의 목표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평론가들이 말하는 '올드보이'에서는 오동진, 이동진, 달시 파켓, 크리스 후지와라 이렇게 네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각기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미친 영향에 대해 들려준다. 감독들이 말하는 '올드보이'에서는 당시 주연 배우 캐스팅 오디션에 함께 심사를 보기도 했던 김지운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당시 '주먹이 운다'를 촬영하고 있었던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해당 인터뷰 영상은 모두 이번 블루레이를 위해 새롭게 촬영된 것으로 HD의 선명한 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앞서 별도로 소개했던 '올드 데이즈' 본편이 수록되었고, 이 외에 기존 DVD에 수록되었던 SD 화질의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다. 기존에 수록되었던 영상들이라 여기서 더 자세한 리뷰는 하지 않겠지만 혹 기존 UE를 꼼꼼히 감상하지 못한 이들이나 소장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SD 화질 영상이라 하더라도 꼭 한 번 감상하기를 권한다. 특히 ‘Autobiography of Oldboy’라는 제목의 3시간 29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는 러닝타임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뒷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박찬욱 감독의 단편 영화 ‘심판 (28분, SD)’도 빼놓을 수 없겠다.



세 번째 디스크에는 '올드 데이즈' 본편을 위해 촬영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추가 인터뷰 영상들이 수록되었다. '못다 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어색할 정도로 총 183분 분량으로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인데,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영상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HD 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 이 인터뷰들은 각 인물별로 감상이 편하게 챕터가 나뉘어 있으며, '올드 데이즈'에는 미처 다 수록되지 못한 후반 작업과 관련 된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올드 데이즈'가 하나의 영화로서 편집된 버전이라면 ‘못다 한 이야기'에 수록된 인터뷰들은 좀 더 인터뷰 중심으로 골라서 선택적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익하다. 참고로 ‘올드 데이즈' 및 관련 인터뷰 영상들은 캐논 C300 메인 카메라와 캐논 C100, 파나소닉 GH3, 캐논 5DMK3 등의 서브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었다.


새롭게 촬영된 인터뷰 영상 외에 한세준 스틸 작가가 당시 현장에서 찍었던 미공개 사진 1만 4천여 컷을 모두 스캔하여 엄선한 스틸 사진들을 인터뷰 중간에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삽입시키면서 좀 더 인터뷰 내용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다채롭게 전달하고 있다 (즉, 인터뷰 내용과 관련이 있는 스틸컷이나 영화 장면들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다).



각 인물별 약 10분 안팎으로 인터뷰 내용이 추가 수록되어 있다.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 추가 수록분에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워낙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인 만큼 이 못다 한 이야기들에 수록된 인터뷰 내용들도 상당히 흥미롭고, 특히 각 스텝들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이야기들이 관심을 끈다. 인터뷰들이 각 스텝들의 전문 공간 (혹은 관련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는 점도 은근한 디테일. 새삼스럽지만 블루레이 부가영상을 위해 총 40명이나 되는 영화의 스텝과 배우들을 일일이 한 명씩 찾아가 몇 시간씩 인터뷰한 정성과 노력은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과연 앞으로 또 가능할까 싶다.




# 총평 

 

이번 플레인에서 출시한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여러 가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의미는 역시 한국 영화 블루레이, 아니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시도가 또 언제 가능할까 싶은 도전이었던 '올드 데이즈'의 존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출시 지연 및 화질에 관한 점이 더 이슈가 되어서 그렇지 '올드 데이즈' 만으로도 이번 블루레이 제작과 출시는 대단하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또한 10주년을 맞아 박찬욱 감독이 승인한 유일한 버전이자 리마스터링 화질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것이 현존하는 최고의 버전이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작품에 대한 호불호나 완성도 여부를 떠나, 한 편의 영화가 어떤 이야기들과 정서 그리고 추억들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담고자 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왜 우리는 영화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 모두가 담겨 있는 선물 상자 같은 (DVD때 같은 상자 패키지는 아니지만 ^^;) 타이틀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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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

올드보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메이킹 다큐멘터리 성격 영화에 대한 글 제목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나'는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라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 '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는 박찬욱 감독의 2003년작 '올드보이'가 어떤 과정과 일들을 겪으며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그대로의 작품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올드보이'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처음 기획된 이 다큐가 전주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정도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이건 분명 과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해보고 싶었던 작업, 그러니까 좋아하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긴 호흡과 디테일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상이 우리 영화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늘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애초 기획이었던 것에서 확장된 버전으로 발전된 것은 조금 무리가 되지 않을까, 과잉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보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걱정 외에 다른 의미로 보자면, 과연 메이킹 다큐를 만드는 데에 한 편의 영화와 동일한 수준의 규모나 의미 부여가 필요한 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10주년을 맞아 재상영도 할 만큼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고 또 해외에서 특히 인정받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당위성보다는 영화의 명성에 기댄 다큐 제작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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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드 데이즈'를 다 보고 나니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굳이 '올드보이'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블루레이에 수록될 부가 영상에 그치지 않고 영화화까지 발전시켜야 만 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즉, '올드 데이즈'는 단순히 '올드보이'라는 작품의 명성을 더하기 위해 기념 적으로 제작되고 기획된 작품이 아니라, 역으로 말해 '이런 제작과정을 통해 탄생된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하고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제작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자 놀라움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2003년 '올드보이'에 참여했던 감독과 배우, 스텝들은 지금은 각 분야에서 모두 주역을 맡고 있는 마스터들이지만 당시엔 완전 신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경력이 많은 스텝들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올드 데이즈'는 바로 그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싸우고, 부딪히고, 이겨내며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완성시켰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간혹 오래전 작업한 (특히 현재는 걸작이 된) 영화를 배우와 스텝들이 추억하며 회고하는 메이킹의 경우, 당시 어리고 미숙했던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그때는 참 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하라면 아마 다를 거예요'라는 식의 인터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당시 스텝들의 인터뷰들에서 하나 같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현장'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라는 것이었다. '올드보이'가 자신의 첫 번째 영화였던 스텝들도 있고, 나이도 비교적 어린 나이라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상황과 조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익숙하고 숙련된 지금에 와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그들의 진심에서 다시 한번 왜 이 다큐멘터리가 필요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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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는 내용적인 면이나 스타일,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영화였다. 혹자는 과잉의 영화라고 할 만큼 모든 분야의 에너지가 한계 이상으로 분출되고 있는 벅찬 영화였다. '올드 데이즈'를 보고 느꼈던 건, 아마도 이 영화가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 (지금에 와서 다시 구현하려고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아니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의)를 영화라는 포맷 안에 다 담아낼 수 이유가, 감독 한 명 혹은 예술적 능력이 압도적으로 출중한 몇몇 아티스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영화여서가 아니라,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스텝들이 자신들의 한계치 이상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에 기적처럼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정확히 뭐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그 당시의 순간에 내가 한국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공기가 느껴져,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해보자 라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이 영화가 원하는 수준을 내가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괴물. 그런 에너지들이 마치 어떤 상자 안에 봉인되듯이 '올드보이'라는 영화 안에 봉인되는 것에 성공한, 그런 괴물 같은 우연 혹은 사건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들었다. 


솔직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팬으로서 '올드보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가라는 질문엔 선뜻 답하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건 지난 10주년 상영회 (리뷰 : 올드보이 10주년 - 다시 보니 완벽한 우진의 영화더라)에서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올드보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영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올드 데이즈'와의 만남은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여러 번을 보고, 수 없이 영화 음악을 듣고, 여러 버전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작품임에도 '올드 데이즈'를 보는 내내 속으로 '아... 빨리 올드보이를 다시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블루레이의 부가 영상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결국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지고, 더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올드 데이즈'는 그렇게 익숙한 '올드보이'를 또 보고 싶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놀라운 영화였다. 

곧 블루레이로 다시 만나게 될 '올드보이'가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1. 플레인 아카이브는 (본인들은 쑥스럽겠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네요. 박수쳐주고 싶습니다!

2.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있었던 상영회 후 GV 자리도 참 좋았습니다. 특히 '올드 데이즈'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웠던 조영욱 음악감독님의 얘기들이 흥미로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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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 (大虎, 2015)

모노노케 히메의 향기를 느낀 조선 호랑이 설화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의 각본을 쓰고 '신세계'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박훈정 감독의 신작 '대호'를 보았다.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지리산 산군으로 불리는 호랑이를 잡으려는 일본 군과 한 때 조선 최고의 포수로 불리웠던 천만덕(최민식)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대호'는 무엇보다 호랑이라는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영화가 호랑이를 다루는 방식은 마치 배우, 그것도 최민식에 버금가는 비중의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지점이다. 왜냐하면 극중 천만덕과 일본군들이 대표하는 세계와 산군 호랑이가 대표하는 세계가 서로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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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의 핍박 받는 삶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 3국의 관객들이 본다면 공생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이 시대 배경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즉,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처럼 이 시대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이 구도를 써먹지 않는 다고 보기도 어렵다. 영화는 오히려 이 호랑이와 명포수였던 천만덕의 캐릭터에 집중하여 스토리를 천천히 전개해 간다. 다시 말해 호랑이가 등장한다고 했을 때 중후반부에 가서야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했으나, 천만덕의 등장이 그랬던 것처럼 초반부터 등장하여 캐릭터 소개와 자신 만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최민식이 연기한 천만덕 만큼이나 공감대를 형성이 가능한 구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박훈정 감독의 '대호'가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호랑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배경 혹은 상대로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 가까운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흔치 않은 구도로서 호불호와 상관없이 일단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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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천만득의 세계과 호랑이의 세계가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것의 장점이라면 바로 그 다른 두 세계가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인간 캐릭터 못지 않은 성격을 갖게 되면서 마치 동물농장에나 나올 법한 (이건 결코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감동적인 스토리가 가능해졌는데, 개인적으로도 고양이를 오래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동물과의 교감이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극적인 상황 속 인간과 호랑이의 교감을 묘사하는 방식이 너무 판타지 같이, 그러니까 유치하지 않게 묘사된 건 분명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이런 시도는 흔히 너무 순진하게 묘사한 나머지 유치하고 설득력을 얻지 못하게 되는, 그래서 갑자기 너무 심한 판타지로 빠져버리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대호'는 그렇지 않고 그 다른 세계 간의 조우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같은 경우는 호랑이에게 더 깊은 공감대를 느꼈을 정도로 이 캐릭터의 묘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CG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부 액션 장면에서 살짝 이질감이 느껴지는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전혀 극의 몰입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였다. 호랑이가 배경으로 살짝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주연급으로 다양한 액션과 표정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수의 늑대 때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여러 CG가 동원 되었는데, 그간 한국 영화의 CG에 비교하자면 괄목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종병기 활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반대로 이 호랑이가 중심이 된 내러티브가 꽤 괜찮았기 때문에 일본군과 포수대의 이야기, 그리고 천만덕의 이야기까지, 인간 세계의 내러티브가 상대적으로 아쉽게 느껴졌고 그렇다보니 조금은 부수적으로, 특히 엔딩에 가서는 차라리 하나의 이야기로 빠르게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단순히 긴 러닝 타임 때문이 아니라 중후반부의 전개는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빠르게 하나로 만들기 보다는 아직도 각각의 이야기를 한참 더 하는 식이여서 오히려 몰입도가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한참을 호랑이 중심으로 전환 없이 전개하다가 다시 천만덕의 이야기가 등장하니, 마치 영화가 끝날 시점을 지나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후반부의 선택과 집중이 더 효율적으로 이뤄졌더라면 좀 더 오래 남는 영화가 되었을 것 같은데, 호랑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기에 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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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덕의 캐릭터와 포수대의 이야기가 나쁜 것은 아닌데, 호랑이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다보니 차라리 더 호랑이 중심의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보다 10배는 더 슬픈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도 호랑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정도지만.


1.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영화는 다름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였어요. 그런 느낌이 적지 않은데, 아예 진짜 그렇게 가버렸더라면 초명작이 되거나 망작이 되긴 했을듯. 천만덕의 아들을 산군 호랑이가 어렸을 때 부터 키워서 나중에 명포수인 천만덕과 호랑이 손에 자란 아들이 만나게 되는. 호랑이가 말도 하고. 으하하;;;


2. 천만덕과 아들의 대화 시퀀스가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구수한 사투리와 유치하지 않은 대화와 유머가 재밌었다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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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_ 10주년 기념 특별상영회 

10년 전과는 달랐던 영화, 아니 관객



지난 5월 30일 토요일.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류승완 감독의 2005년 작 '주먹이 운다' 10주년 기념 특별상영회가 있었다. 평소 류승완 감독님과의 인연도 있고, 더군다나 감독님과 더불어 주연을 맡았던 두 배우인 최민식, 류승범 님이 참여하는 GV도 예정되었던터라 이 날의 상영과 GV는 몹시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역시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실제로 최민식과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그 못지 않게 궁금했던 것은 10년 전 20대 때 극장에서 보았던 '주먹이 운다'와 지금 30대가 되어 다시 보게 되는 '주먹이 운다'는 어떤 영화일까 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궁금함과 설레임을 담고 비가 조금씩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던 토요일, 상암동으로 향했다.





당일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주먹이 운다'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야겠다. 감독님이 GV때 언급했던 내용과 마찬가지로, 당시 내게도 이 영화는 너무 신파스러워 아쉽다는 느낌으로 남은 영화였다 (그래서 아마 DVD도 구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요 근래야 그런 일이 없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되돌아 보니 예전에 나는 단지 '신파'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가 별로다 아니다를 어느 정도 평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평가 기준을 버린 지는 오래되었다. 최근 신파스러웠던 영화 가운데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의 경우 읽는 이들이 '신파라서 아쉽다'로 오해하지 않도록 반드시 추가 설명을 덧붙일 정도로, 단순히 신파라서 재미없거나 별로라는 평가는 이제 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신파'라는 것은 일종의 스타일로, 굳이 따지자면 흔히 지루하거나 재미없음, 관객을 향한 감정의 강요 등의 실수를 할 확률이 다른 스타일에 비해 높은 경우라 하겠는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신파여도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면서 강요 받는다는 느낌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10년 만에 '주먹이 운다'를 다시 보게 되며 가장 궁금했던 건 아직도 내게 이 영화가 그냥 신파여서 아쉽기만한 작품일까 하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나 내가 변한 탓인지 아쉬웠던 영화는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순간과 이야기들이 보여 또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다.


(다음 단락에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 자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 보게 된 '주먹이 운다'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큰 두 가지 포인트 중 첫 째는, 결말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 한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게 되는 영화가 아니라 2명 이상의 이야기를, 그것도 똑같은 비중으로 관객에게 소개했을 때, 더군다나 그 결말에 가서 그 둘 가운데 누군가는 패배해야만 하는 룰의 경기가 등장한다면 결국 관객은 둘 가운데 누가 마지막에 승리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먹이 운다'의 이야기는 10년 전에도 알고 있었듯이 승패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이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두 인물의 삶이 중요할 뿐. 하지만 10년 전에는,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에 있어서 명백한 승패를 나누는 것 보다는 관객이 승패를 명확하게 알 수 없도록 놔두는 것이 두 인물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보면서 바뀐 생각은, 오히려 이렇게 명확한 현실의 승패를 보여주는 것이 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해주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강태식 (최민식)과 유상환 (류승범)의 결투 혹은 도전은 이미 심판 판정이 나오기 전에 6라운드가 마무리 되는 순간 끝이 난다. 두 사람 모두 신인왕이 되어야만 할 구체적인 이유들이 있지만, 영화는 두 주인공이 승패가 나오기 전에 이미 스스로 각자의 도전을 이뤄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전에는 약간은 부수적일 수 있는 실제 승패 판정 장면이 없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그 간 나이를 먹은 탓인지, 현실은 영화 속 처럼 그들 스스로의 승리와는 상관 없이 승패를 끊임 없이 선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인지, 영화의 결말이 달리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 이후 강태식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라는 관객의 질문에,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최민식 배우의 대답과 이를 동조하던 감독님의 눈빛은 이런 결말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두 번째 포인트 역시 첫 번째 포인트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영화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던 점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해서 '주먹이 운다'의 강태식과 유상환의 이야기를 빌려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이들이 마음껏 울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들과 실패, 잘못, 실수 그리고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현실, 하지만 그럼에도 나 혹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나 위로를 주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마음 껏 한 번 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긴 시간을 들여 끝까지 달려온 원동력이라는 걸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극 중 천호진씨가 연기한 배역의 대사처럼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 사연들로 인해 쉽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마음껏 울 기회조차 없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주먹이 운다'는 그들에게 어설픈 위로를 전하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한 번 펑펑 울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렇듯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는 10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가 아닌 내가 변한 것일테지만.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역시 '주먹이 운다'의 블루레이 정식 발매 소식이었다. 물론 오프 더 레코드로 조금 더 먼저 알고 있기는 했지만, (감독님의 코멘트를 빌려 보자면) 한국의 크라이테리언을 꿈꾸는 플레인아카이브를 통해 발매 될 예정이라 무엇보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4K리마스터링은 물론, 10주년을 맞는 작품의 블루레이 타이틀답게 새로운 부가영상 등 제작에 벌써 부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날 있었던 GV 사진 몇 장을 더 추가하며 글을 마친다.

어서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길!


1.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한국영상자료원에 무한한 감사를!

2. 플레인에서 출시될 블루레이 정말 기대됩니다.

3. 초대해주신 DP 감사드려요!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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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2014)

영화, 그리고 영화 밖 이야기


'최종병기 활'을 연출했던 김한민 감독의 신작 '명량'을 지난 주말 보았다. 이미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명량해전을 영화 화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 이 영화엔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더불어 흥행 관련해서도 어지간해서는 흥행 실패하기 힘든 소재라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여기에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작용해서 마치 '레 미제라블'이 그랬던 것처럼 '명량'은 최단 기간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고 (여기서 굳이 독과점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최대 관객 기록을 세울지도 모를 기세로 달려가고 있다. 흥행과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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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에 대한 중론을 모아보자면 초반 부는 지루하고,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 자체보다도 관객들이 더 많은 감동을 얻게 된 다는 점일 텐데, 후자는 확실히 그런 편이다. 이순신이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영웅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만으로도, 그리고 이 이순신을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없을 수가 없다. 즉 충무공 이순신은 어떻게 그려도 역사적 인물 자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있고, 최민식이라는 배우 역시 이를 오버하지 않고 최대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것이 더 큰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물론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표현해 내기에 '명량'이라는 작품의 틀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이건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순신 외에 다른 캐릭터들은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다. 특히 일본 장수 캐릭터들을 비롯해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은 각자의 이름 소개 외에는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지 못할 정도로,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기 보다는 그저 소품으로 존재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이 영화엔 이미 출연한다고 널리 알려진 배우들 외에도 까메오나 조연 형식으로 상당한 수의 이름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활용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했다. 특히 진구가 연기한 임준영 캐릭터와 그의 아내를 연기한 이정현이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는 여러 가지로 이상했다. 한국 영화가 자주 범하는 실수인데, 관객에게 '이 장면은 감동적인 장면이야, 감동을 받아야 돼'라고 강요하는 경향이 강해 오히려 이질감이 드는 장면이 많았다 ('명량'이 갖고 있는 정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다수의 관객에게 실제로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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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더 해보자면, 이 영화는 각각 부분 부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여러 가지로 어색하고 맞지 않은 구성이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한 초반 부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다지 큰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몰라도 왜군의 규모나 분위기를 보여주는 초반 장면들은 음악의 힘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크긴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내용과는 별개로 한국 배우들이 왜군과 그 장수들을 연기하는 상황과 제법 괜찮은 이미지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고증의 문제는 별개다. 참고로 명량의 고증 수준은 그리 높지는 않은 듯 하다). 초반의 시퀀스들도 영화 전체와 마찬가지로 각각 별개로 놓여있고 유기적으로 엮여 있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의 이야기의 비중을 줄이고 왜군들의 이야기의 비중을 높인 것은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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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 적인 이야기로 '왜 지금 이순신인가?'라는 담론은 쉽게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의 정부를 향한 불만 들이 가득 찬 시점에서 이순신이라는 리더의 모습은 국민들이 바라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극 중 김태훈 씨가 연기한 캐릭터의 대사 중에 '왜 대장선이 맨 앞에 있어'라는 식의 대사가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집약적으로 이순신의 리더쉽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보통 리더는 뒤에서 빠져 있고 지시를 하게 마련인데, 명량의 이순신은 부하들이 모두 뒤에 빠져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홀로 맨 앞에서 맞서 싸우는 리더쉽을 보여준다. 물론 리더라면 응당 이러한 모습을 손수 보여주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일종의 대리 만족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려서 더 씁쓸한) 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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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명량의 초반 부는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영화가 지루해서, 이순신 장군이 겪는 고초가 공감 되어서가 아니다. 바로 명량 해전이 벌어진 장소가 얼마 전 참혹했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그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물살을 바라보며 전략을 떠올릴 때 검고 빠른 바다가 스크린 한 가득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어찌 세월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우리가 세월호 뉴스를 들을 때 수 없이 많이 듣던 조류와 물 때의 이야기가 나올 땐, 그리고 검은 바다의 이미지는 세월호 사고와 정부의 무능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나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인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클라이맥스 부분을 지나쳐 엔딩을 맞게 되어도 별다른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명량'을 온전히 감상하기엔 세월호 사고의 상처가 너무 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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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10주년 (Old boy 10th Anniversary)

다시 보니 완벽한 우진의 영화더라



2003년 극장에서 보았던 '올드보이 (Old boy, 2003)'의 강렬함은 지금도 그대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스테리와 에너지, 쓸쓸함에 휘둘리며 마지막 미도의 왈츠가 나오며 막이 내릴 땐 좌석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만큼 '올드보이'는 강렬한 영화였고 박찬욱 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도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는 '올드보이'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올드보이'는 10주년을 맞아 단순 재 개봉이 아닌 디지털 리마스터링 (색보정 및 일부 장면 보정)을 거쳐 다시 선보이게 되었는데, 좋은 기회에 초대를 받아 박찬욱 감독님의 GV까지 더해진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일단 리마스터링 된 부분은 전반적으로 색보정을 감독님이 원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개봉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몇몇 장면의 실수들을 바로 잡았다고 했다. 개봉 당시는 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의 장면들을 이번 기회에 수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감독님이 말한 이번 리마스터링의 가장 큰 의의는 '올드보이'라는 영화 자체가 여러 해외에서 상영되는 등 필름의 보존 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업데이트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블루레이 리뷰어로서 본 '올드보이' 리마스터링 버전은 확실히 10년 전 영화라 세월의 흔적이 아주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화질이라고 (현실적으로 보자면 더더욱) 할 수 있을 것 같아 블루레이가 정식 발매된다면 화질 측면에서 좀 더 나은 환경이 갖춰 졌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는 예상은 했지만 완벽한 우진 (유지태)의 영화로 받아들여 졌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최민식이 연기한 오대수 역할이 주는 강렬함과 영화의 미장센에 매혹 되었었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보니 오대수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우진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즉, 15년 동안 갇혀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보다, 누군 가를 15년이나 감금해야 했던 사람의 사연이 더 강렬했다는 얘긴데,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이의 분노 보다는, 어쩌면 15년이 넘는 세월을 복수로 보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이 더 쓰라리게 다가왔다.


그런 측면에서 이전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대사들이 와 닿았는데, '아무리 짐승 만도 못한 놈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대사와, '그냥 잊어버린 거에요' 라는 대사는 이번 재 관람에서 비로서 발견한 중요한 포인트였다. 우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주된 사건은 누군 가의 인생을 통째로 앗아갔음에도, 다른 누군 가는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잊어버린 일이기도 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우리도 살면서 스스로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지나 치는 일들 가운데에는 누군 가 (그 누군 가가 설령 짐승 만도 못한 이 일지라도)의 인생을 빼앗아 갈 정도로 커다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 지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진의 마지막이 더 슬프고 더 쓸쓸하고 더 무기력했다. 오대수의 입장에서 보면 '올드보이'는 강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이우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시작할 때부터 끝이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와 내내 무기력함이 짙게 깔린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이번 재 관람에서는 한 없는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오대수는 15년 간 갇혀 있다 풀려 났지만, 우진은 이미 학생일 때부터 자신의 삶으로부터 갇혀 버린 것이 아닌가.





극장에서 DVD로. 몇몇 버전의 DVD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그리고 블루레이로. 여러 번을 본 '올드보이'였지만 10주년을 맞아 극장에서 다시 본 '올드보이'는 또 달랐다. 새삼스럽지만 확실히 좋은 영화란 세월이 흘러도 좋은, 각 시기에 따라 다른 의미와 감흥을 전하는 것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박찬욱 감독님과 주성철 기자님이 함께 한 GV는 예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최근 화제가 된 유연석 씨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까지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분의 GV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중화권 배우와 '올드보이'의 연관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도 주성철 기자님 GV만의 특징이었고 ㅎ







10년 전 극장에서 혹은 다른 매체로 이미 '올드보이'를 인상 깊게 보았던 이들이라면, 10주년을 맞아 재 개봉한 '올드보이'를 극장에서 다시 관람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누군 가에게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신세계 (2013)

누구나 신세계로의 구원을 꿈꾼다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라는 배우의 출연 만으로 두근거리게 만드는 박훈정 감독의 영화 '신세계'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배우들의 이름과 분위기에 끌려 보게 된 영화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박훈정 감독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썼던 이더라. 조직 폭력, 거대한 범죄 조직내 세력 다툼, 그리고 경찰과의 관계에 스파이라는 설정까지. '신세계'는 얼핏 봐도 '무간도'나 '대부' 시리즈를 직간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영화들이 갖는 방향성 혹은 평가는 둘 중 하나일텐데, 결국 그 틀 안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 없이 반복하는 영화이거나 그 틀을 벗어나 한 걸음 더 나아간 영화이거나 라고 보았을 때, 이 영화 '신세계'는 그 두 가지 경우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더 말하자면 그 틀 안에 있지만 새로울 것 없는 반복이 매력적이었고 조금의 나아감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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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신세계'가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는 바로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무게감이다. 그 무게감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오는데, 어쩌면 뻔한 조직 폭력과 관련된 이야기들에 다시 한 번 집중할 수 있는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물론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아우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따지고보면 '신세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그 이야기보다도 더 전형적이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익숙한 것은 물론 더 이상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되는데, 그럼에도 조직에 심어진 경찰, 그 경찰을 관리하고 조종하는 또 다른 경찰, 그리고 범죄 조직 내의 인물까지 모두, 새롭지는 않지만 매력적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엔딩을 제외하면 사실 거의 기존 비슷한 내용을 다루었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건 자체를 보기 보다는, '신세계'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결국 누구나 현실에서 신세계를 꿈꾼다는 보편적인 명제와 그런 꿈을 꿀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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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크게 공감되었던 것은 그저 현실에 불만이 있어서 신세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굴레에 빠져버려서 탈출이라는 선택조차 사실상 할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에 놓인 이들이 신세계를 꿈꾼다는 점이었다. 즉, 이들이 꿈꾸는 결과로서의 신세계보다 그들이 현재 처해진 현실(굴레)에 더 공감되었다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이자성(이정재)이 놓인 현실은 정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굴레 그 자체다. 그리고 강과장(최민식)과 경찰은 바로 이 점을 볼모로 이자성을 철저히 이용한다. 그 의도가 어떤 것이었던 간에 이자성의 입장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정말로 답답함 그 자체일 것이다. 다른 인물들도 사실 마찬가지다. 강과장 역시 조직 내에서 이런 명령을 할 수 밖에는 없는 위치와 상황에 놓인 인물이고, 강과장으로 부터 제안 아닌 제안을 받게 된 정청(황정민)의 현실이나, 역시 유사한 제안을 받게 되는 이중구(박성웅)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미 벌여놓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는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던 시절의 선택 때문에 이러한 진퇴양난의 현실에 놓이게 되는데, 영화는 기본적으로 주요 인물들을 이렇듯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 각자가 신세계로 향하는 방식 혹은 선택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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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신세계'가 조금 더 흥미로웠던 점은 이 영화가 취한 마지막 때문이었다. 영화는 결국 신세계를 꿈꾸던 여러 인물들 가운데 이자성에게만 신세계를 허락하는 듯 보이는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자유를 허락했으나 이자성에게만 그렇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자성은 자신이 결국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 모든 이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방식으로 골드문의 보스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처음에는 이 엔딩에 대해 무척이나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신세계'를 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여러 나쁜 이들이 결국 단 한 명의 선한 이를 나쁜 이로 만들어버리는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심판의 측면에서 차라리 통쾌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신세계로 가지 못한 것은 이자성 뿐인 것만 같았다. 즉, 나쁜 이들은 모두 속죄 받기를 내심 원했으나 그 기회를 갖을 수 없던 이들이었다면, 이자성은 기회를 갖을 자격조차 없던 이들을 구원하는 동시에 본인 스스로는 영원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어버린 듯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드문 회장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 이자성의 모습에서는 단순한 씁쓸함이 아니라, 더 큰 한숨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초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라며 몇 번이나 애를 쓰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에필로그 속 6년 전 이야기를 통해 이자성이 벌써 예전에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거나 혹은 그 만의 신세계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일말의 동정심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 영화의 건조함이 오히려 더 아픈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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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간도'의 뜻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왔듯이, 이 영화 '신세계' 역시 무간지옥에 갇혀 버린 이들의 이야기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신세계 (新世界)'라는 제목은 이 영화에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니었나 싶다.



1. 요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연기력 측면만 보면 가장 볼거리가 화려한 작품이었어요.


2. 어디서보니까 본래 3부작으로 기획되었단 이야기가 있던데 (미공개 영상으로 공개된 마동석,류승범이 등장하는 에필로그도 그렇고), 전 이 한 편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지만 기대는 되네요. 그런데 3부작으로 가게 되면 너무 '무간도'처럼 가게 될 것 같기도하고;


3. 확실히 이런 캐릭터를 국내에서 황정민 만큼 맛깔나게 소화해내는 배우는 없는 듯. 역시 양면성으로 꼽자면 황정민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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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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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아버지 세대의 생존에 대한 씁쓸한 연민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자 (2005)'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윤종빈 감독의 신작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았다. 이 작품은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어서 기대가 되었던 점도 있지만, 최민식, 하정우, 조진중, 마동석, 곽도원 등 한꺼번에 이름을 늘어 놓으니 뭔가 일을 벌려도 확실히 벌일 것 같은 배우들 때문에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개봉전 시사를 통해 들려오는 평들도 한국판 '대부'다, '좋은 친구들'이다 라는 얘기 등 더욱 기대를 갖게 하는 것들이었기에, 오랜만에 걸죽한 한국영화 한 편을 볼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더랬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지면 '대부'보다는 '좋은 친구들'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제목이나 풍기는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말하는 폭력 조직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된 영화는 조직 폭력과 남자들의 세계 그 자체보다는, 영화의 부제처럼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살아 남아야만 했던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풍자와 연민이 담긴 '생존'에 관한 영화였다. 즉, 겨우 2~30년 전이었던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조명하는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다는 씁쓸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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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적당히 뇌물도 먹고 뒷돈도 챙기던 부산 세관 직원으로 시작해 우연한 기회에 마약을 손에 쥐게 되면서 만나게 된 조직 폭력배 두목 '최형배 (하정우)'가 먼 친척이라는 것을 이용해, 급속하게 조직 폭력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이후 정치사회의 시류를 이용하고 또 이용 당하며 이 세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았던 최익현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나 조진웅이 연기한 '김판호'로 대표되는 부산 조직폭력의 세계는 말그대로 '세계'로서 존재한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세계 말이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세계에는 이들 조직 폭력배들의 세계 말고도 이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그리고 최익현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라는 세계가 더 있다. 영화 속 최익현의 행동을 보면 단순히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움직인다기보다는 그것이 그릇된 방법이었을지언정 가족,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다음에 자신의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더 좋았는데, 중간중간 이를 암시하는 장면들과 마지막에 등장한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최익현(아버지 세대)의 삶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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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처한 시대가 의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주인공 역시 의롭지 않다는 것에 있다. 즉, 조직폭력배를 그리지만 미화할 만한 구석을 거의 만들지 않고 있고 (그럼에도 매력적인 건 관객의 심리를 이용한 것일까;;) 범죄와의 전쟁에 앞장 선 검사 역시 정의로운 듯 하지만 그 방식이나 결과에 있어서 결국 이 시대에 편승한 인물 그 이상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최익현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쉽게 말해 '어지러운 시대에 휘말려 버린 주인공'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시대를 철저하게 이용해 살아 남은 존재로 그리면서도 묘한 연민이 들도록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 일반적인 범죄 영화나 갱스터 영화와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완전히 신파로 끌고 가서 가족과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뭐든지 하는 인물로 그리지도 않았고, 반대로 난세의 영웅의 성공과 몰락으로 끌고 가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생존해야 했다는 이유가 보여 좋았고,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그의 행보가 '살아있어'서 좋았다. 누군가는 취향에 따라 차라리 더 갱스터 영화이길 바랬을 수도 있고, 반대로 최익현에게 더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바랬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미묘한 지점을 줄타는 윤종빈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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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최익현을 그리는 방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권총' 아니 '빈총'의 이미지였다. 야쿠자와의 거래를 통해 최익현은 선물로 권총 한 자루를 선물 받게 되는데, 최형배로 대표되는 조직 세계와 태생적으로 완전히 같은 편이 될 수는 없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최익현은 이 권총을 자신 만의 무기(자신감)로 항상 몸에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 권총을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순간에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중요한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총이 빈총임을 몇 번씩 중요하게 확인시켜준다. 사실 최익현에게 연민이 들었던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이 빈총의 이미지였다. 대사에서는 장난처럼 '제발 총알 좀 구해달라고'라는 말도 나오지만, 어쩌면 그런 위치에 있었음에도 총알 하나 구할 수 없었던 그의 존재와 허울만 그럴싸하고 속은 텅 빈 빈총을 무기로 삼아 생존해야 했던 그에게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겹쳐보이는 순간 연민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윤종빈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정서는 바로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빈총으로 살아남았던 아버지들의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저 연민의 시선이 느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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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흐름을 흥미로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아직까지도 관통하고 있는 정서에 대해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던져놓은 작품이라 더 마음 들었던 경우였다. 배우들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조연들의 연기가 특히 하나 하나 '살아있는' 것이 느껴져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드는 작품이었고.



1. 미리 무대인사 시간을 확인한 뒤 예매해서 감독과 배우분들이 함께한 무대인사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잠원동에서 온 하정우씨도 재미있었지만, 최민식씨가 인사를 할 땐 극장에서 모두 '최민식! 최민식'을 열호하기도!!


2. 조범석(검사) 역할을 맡은 곽도원씨의 연기와 캐릭터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더 풍성해지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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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I Saw The Devil, 2010)
악마를 본 자의 대답


비가 추적추적 내리길 오락가락하던 지난 13일의 금요일. 우연치 않게 이 날에 딱 들어맞는 영화 한 편을 보았으니 바로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였다. 박찬욱, 봉준호 등과 함께 국내 감독 중 신작을 낼 때마다 기대를 갖게 하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이전 작품들을 앞서 언급한 감독들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널 뛰듯 만족스러움의 정도가 각각 달랐고 느끼는 완성도의 차이도 그러했다. 그의 전작들에게서 느껴지는 첫 번째 감정이라면 무언가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래서 항상 기대는 갖게 하지만 막상 결과물을 보고나면 또 허전함을 느끼게 되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제한 상영판정과 삭제 뒤 개봉 등으로 화제가 된 그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 느껴지던 그 부족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과잉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의미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의미없지 않은' 이야기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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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제목과 이병헌, 최민식이라는 두배우 그리고 분위기를 암시하는 포스터의 문구와 배치 등을 통해 대략적으로 이 영화가 단순히 악마같은 상대와 주인공의 대결 구도가 아닌, 관객에게 누가 악마인지를 묻는 다던가, 혹은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일반적인 구조로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보면 이 영화는 포스터의 홍보문구처럼 분명 '광기의 대결'이자 '복수의 두 얼굴'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내가 본 시점은 오히려 악마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일방적인 구조로 받아들여졌다. 즉, 악마는 최민식이 연기한 '장경철'이고 그를 본 사람은 이병헌이 연기한 '김수현'인 것이다. 영화는 일단 '악마'로 불리는 장경철의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명한다. 대부분 이런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처럼, 장경철 역시 악마적인 행동들을 먼저 보여준 뒤 그가 어떤 개인적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알려준다 (물론 이 영화는 장경철의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개인사를 묘사함에 있어 이런 여지를 두지 않고 있다). 

그와 반대로 김수현을 설명하는 방식은 그가 국정원의 요원임에도 이 특수한 사실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한 여인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다시 말해 그가 국정원 요원이라는 배경 설정은 있으면 이야기에 큰 도움이 되지만 (캡슐로된 GPS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나 강력계 형사 여럿을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의 격투실력) 반대로 말하면 요원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충분히 끌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똑같은 예로 들자면 캡슐 GPS는 암시장을 통해 구하고, 본래 격투에 능하다고 설정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장경철을 압도하는 것으로 설정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영화는 애초부터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상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악마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한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도 악마가 되어버리는 것에 집중하지만,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는 그 제목처럼 '보았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악마가 되어가는 듯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작품들은 항상 미장센은 돋보이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굴곡이 있다고 여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악마를 보았다'에 와서야 미장센이 그저 보기 좋은 그림으로만 활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공간에 미적인 매력만이 아니라 영화의 감성과 분위기를 담아낸 좋은 결과물로 느껴졌으며, 장면을 그리는 방법 역시 작정하고 만든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치 수현의 '이제 시작인데' 라는 대사처럼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존의 느껴졌던 아쉬움이 훨씬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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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처음부터 지독한 복수를 결심한다. 그냥 총을 구해 한 방에 죽음으로 이끄는 방식이 아닌, 그리고 무엇보다 단 한번의 고통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상대가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들 복수를 구상한다. 그래서 장경철을 흠씬 두들겨 패고 난 뒤 풀어주고, 또 그가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하면 나타나 몸을 부숴트리고 또 놔주기를 반복한다. 장경철의 친구인 태주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냥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김지운 감독이 정말 복수를 위해 사냥을 즐기게 까지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면 좀 더 그럴 듯한 설정이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필요 이상의 폭력이나 간섭으로 일을 그르친다거나 확대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구성이 있었다면, 정말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흐름에 따라가게 되었겠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흐름은 없다. 

수현은 치밀하고 무엇보다 복수의 뜨거움보다는 차가운 머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서 딱 필요 만큼의 고통만 주고 풀어주는 것에 계속 성공한다. 마지막에 한번 실수 하지만 (사실 이 실수도 그의 부하 요원이 경철이 잠든 줄 알고 했던 말을 경철이 들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겠다), 그 이후에도 재빨리 상황을 수습한 뒤 '니 말대로 너를 과소평가 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며 본인이 준비한 복수의 마지막을 치뤄내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 '악마' 그 자체가 되는 것보다는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한 차가운 감정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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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방식대로 복수를 성공한 수현의 오열은 이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엔딩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오열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첫 째로 약혼자를 처참한 죽음으로 잃게 된 슬픔과 자신의 복수 때문에 역시 처첨한 고통을 당한 장인어른과 처제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이라면 복수를 하기 위해 스스로도 악마처럼 변해버린 모습 (장경철에게만 복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전혀 상관없는 가족들에게 똑같이 고통을 돌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과 이제는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버린 것에 대한 후회도 담겨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정이라면 이 '악마'를 잡기 위해 자신이 예상한대로, 원했던 방법으로 모두 복수를 행했음에도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여기서 오는 진정한 공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택한 이 마지막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런 구조의 이야기가 갖는 마지막에는 몇 가지 선택의 옵션이 있는데, 하나는 대부분의 '착한' 영화들처럼 주인공이 마지막에 악마를 죽음으로 응징하지 않고 법의 잣대로 판결하게 되는 것이고 (대부분 이런 이야기의 경우 주인공이 경찰인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마치 '세븐'의 경우처럼 법이 아닌 죽음으로 응징하였으나 이것조차 악마의 의도였다는 것 때문에 더 황량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는 주인공과 한 편이 되어  '법대로 처리하지 말고 저 악마를 그냥 죽여버려'라는 내 안의 악마성을 드러내게 되고, 후자의 경우는 그런 악마성의 결과물로서 황폐함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악마를 보았다'는 후자와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 다른 결말을 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언급한 '세븐'과는 다르게 영화 속 장경철의 죽음은 그가 스스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모두 수현이 계획한 것 그대로였다. 즉, '세븐'의 브래드 피트는 제 손으로 악마를 제거하고서도 결국 악마의 손에 놀아난 것에 대한 후회와 이겨내지 못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면,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행했음에도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이룬다 한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그걸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자신과 이 상황에 대한 공포가 서린 오열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보여준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이라고 생각된다. 끝을 알면서도 갈 수 밖에는 없었던 주인공이 그 끝을 만났을 때 예상했음에도 겪게 되는 공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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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상영판정 논란과 더불어 고어한 표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일단 극장에서 본 '악마를 보았다'의 고어 수준은 분명 일반 관객에게 있어 (고어 영화를 즐기는 팬들이 아닌)서는 '고어'라 부를 만한 수위의 것이었다. 매번 변하는 등급위원회의 평가 잣대 때문에 이번 제한 상영판정 논란은 '도대체 얼마나 고어하길래?'하는 다른 감상 포인트를 일부에게 제공하고야 말았는데, 물론 '호스텔' 등을 비롯한 고어 영화들에 비해서는 그 수준이 심심한 것도 사실이나,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하는 국내 영화에서 표현된 수준으로는 분명 고어한 수준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이 정도가 뭐가 고어냐?'라는 논란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 영화의 핵심은 고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악마를 보았다'에 담긴 고어한 장면들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영화에서는 굳이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장면들을 굳이 보여주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냥 안보이는 것으로 처리하거나, 소리나 효과로만 처리할 수도 있고, 컷 전환을 통해 결과만 알려주어도 될 것을, 이 영화는 굳이 여러 차례 내리치는 장면이라던가 찢어지는 입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터져나오고 뭉게지는 신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이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가학적이고 공포스러운 표현과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과연 이 복수가 성공한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 대신에 마지막의 오열과 더불어, '이 복수는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악마에게는 복수를 성공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요즘은 뉴스에서 이 보다도 더한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뉴스들을 접하게 된다. 만약 그것이 내 가족, 내 약혼자의 이야기였다면 누구든지 마음만은 영화 속 수현과 같았을 것이고, 그 중 몇은 수현처럼 복수를 결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그런 일을 겪은 한 남자, 즉 악마를 본 남자의 대답을 들려준다. 여기서 아이러니하면서 공포스러운 점은, 영화 속 수현처럼 이 대답을 충실히 들은 관객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상황에 닥친다면 수현처럼 끝을 알면서도 이 길을 택할 수 밖에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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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장에 관객들이 정말 견디기 어려워하더군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그래서 극중 수현에게 '그냥 차라리 빨리 끝내'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분도 계셨던 것 같구요. 이런 몰입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2. 장경철의 학원버스 안 그 천사날개 조명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조명이 처음에는 악마의 눈처럼 보인다는게 흥미로웠죠.

3. 가제였던 '아열대의 밤'이나 '사냥꾼의 밤'보다 '악마를 보았다'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만약 이 제목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글의 부제목으로라도 이 제목을 자연스레 썼었을 것 같아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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