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쿠리코 언덕에서 (コクリコ坂から, 2011)

직설적이어서 부담스러운 메시지



지브리 스튜디오의 2011년 신작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보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전작 '게드전기 (ゲド戦記, 2006)'를 연출했던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한 작품으로서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게드전기'가 물론 아쉽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브리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경우인 정도라고 관대한 평가를 하기도 했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그보다도 더 아쉬운 작품이었다. 여러 평가들이 '게드전기'보다는 나아간 작품이라는 평이 더 많은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메시지가 너무 직접적인 동시에 주제를 둘러싼 이야기의 연관성이 깊지 못하고 더불어 21세기에 즐기기에는 너무 올드 풍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 STUDIO GHIBLI INC.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 사회,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의 시작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이 시대적 배경에 영향을 받고 자란 소년 '슌'과 소녀 '우미'가 있다. 이 둘의 러브 스토리는 나이답게 풋풋함이 서려있지만, 그 배경을 둘러싼 시대와 영화의 메시지가 이들에게 너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뭐랄까, 슌과 우미는 순수한 소년 소녀이지만 시대가 만든 아픔으로 인해 일찍 성숙함을 배워야 했던 것은 물론, 이 가운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마저 짊어져야 하는 부담스러운 짐을 진 듯 한 모습이었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얘기해보자면 결국 오래된 것들을 지키고 계승하자는 것과 더 나아가 60년대를 살았던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당시의 젊은이들에게서 배우자 라는 이야기가 될 텐데, 이 모든 짐을 풋풋한 러브스토리만 이끌기에도 벅찬 소년 소녀에게 전부 맡겨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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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느 정도까지 관여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스텝롤에 나온 역할 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얘기),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메시지 전달 방식은 기존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여주었던 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느껴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주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배경 묘사를 통해 영화를 깊이있게 볼 수록 메시지가 드러나도록 구성하거나, 아니면 매우 직접적인 은유를 통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시대와 배경, 판타지와 현실과는 무관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해 왔었는데, 이번 작품의 메시지 전달 방식에서는 이러한 영민함 보다는 홍보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직선적인 느낌을 받았다. 특히 극 중 고등학교 동아리 건물 철거를 둘러싼 학교의 이야기는, 슌과 우미의 러브스토리 측면으로만 보자면 없다하더라도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약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데, 영화는 이 학교를 둘러싼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두며 메시지 전달의 활로로 이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점이 이 영화를 더욱 풋풋하고 은은한 지브리다운 러브스토리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가장 아쉬운 점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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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극 중 등장하는 깃발의 의미처럼, 숨겨둔 신호로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은은한 방식이었다면, 그것이 아니라면 소년 소녀의 러브스토리 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져야만 했던 그 세대의 이야기와 그들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 확실히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에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이면'을 연상하며 전자의 기대를 했었기에 너무도 직접적인 이 영화의 방식에 조금은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60년대 일본을 추억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아 이런 불편함이 조금은 상쇄되지 않았을까 싶다. 


결론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고, 어떤 감성을 담으려고 했는지 의도는 알겠으나 그 것이 가슴으로 전달되지는 않았던 아쉬움이 남는 지브리의 첫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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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저도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이른바 '지브리빠'인데, '게드전기'도 재미있게 본 저인데, 이 작품은 극장을 나오며 아무런 뭉클함이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2. 물론 조각조각 좋은 장면들은 여럿 있었어요. 또 급하게 공감해서 울컥한 장면도 없지 않았구요.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로 잘 모아지지 않았다는게 결국 이 작품을 아쉬운 작품으로 결론짓게 한 이유인 것 같네요;

3. 극 중 수록된 음악들의 분위기는 참 묘합니다. 60년대 일본과 잘 어울리는 동시에 미국의 예전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도 자아내거든요 (어쩌면 둘이 같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서도).

4.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DVD나 BD를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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