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3 (Toy Story 3 : Blu-ray Review)
픽사의 레퍼런스 블루레이 타이틀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가운데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역시 픽사의 신작이자, '토이 스토리 2' 이후 11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토이 스토리 3'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 보다 '월-E'나 '업' 등이 더 취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3편을 보고 나니 이제야 이 시리즈를 더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2편에서 편집 작업을 맡았던 (참고로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편집'이란 극영화의 편집과는 다르게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영역이다) 리 언크리치가 감독을 맡은 이번 작품은, 그 동안의 추억을 아우르는 동시에 '토이 스토리'라는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드디어 아름답게 마무리함으로서, 10년 넘게 시리즈를 함께 해온 팬들과, 역시 10년 넘게 함께 해온 그 자신들에게 뜨거운 안녕을 전하고 있다.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개봉 당시 리뷰를 통해 대부분 정리했음으로 오늘 이 글에서는 최근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한다.

 

Blu-ray Menu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토이 스토리 3' 블루레이 타이틀은, 각각 부가영상을 담고 있는데 메뉴의 특성이라면 일반적인 부가영상과는 다르게 '추천영상'이라는 메뉴가 있어서, 메뉴를 재생시킬 때마다 다른 추천영상을 말그대로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타이틀을 구입하면 부가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살펴보는 이들에게는 큰 필요성을 못느끼는 메뉴일 수도 있지만, 많은 부가영상 가운데 어떤게 특히 재미있는지 선뜻 선택하지 못하거나 혹은 재미있는 영상만 골라길 원하는 이들에게는 적절한 추천 기능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외에 조금 다른 기능이라면, 화면보호기와 홈시어터 최적화 툴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Blu-ray : Picture Quality

픽사의 블루레이 타이틀은 매번 스펙면에서, 특히 화질/음질 면에서 매번 레퍼런스를 제공하곤 했었는데 최신작인 '토이 스토리 3' BD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극장에서 아이맥스 3D로 감상할 때 한 번, 블루레이로 구매해서 풀HD 대화면 디스플레이로 감상할 때 또 한 번, 그리고 리뷰를 위해 BD-ROM으로 캡쳐하면서 또 한 번 화질의 우수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름 돋을 정도의 완벽한 화질이라고 얘기하는 데에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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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 리뷰란에 어떤 장면을 캡쳐해야 될지, 아니 수 많은 캡쳐장면들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도 다 좋을 만큼 모두 미칠듯한 화질이라 고민이 되었을 정도로, 장면장면마다 정말 화질이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물론 극영화와는 다르게 애초부터 모두 디지털로 제작된 CG애니메이션이라 본래의 그릇이 좋을 수 밖에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토이 스토리 3'의 화질은 분명히 다른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비해서도 우수함이 느껴진다. 이것은 BD타이틀 자체의 화질 표현력의 우수력은 물론이고, 제작 당시 미세한 디테일까지 신경써서 작업한 픽사 애니메이터들과 스텝들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쨍한 장면은 쨍한 장면대로, 어두운 장면은 어두운 장면대로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특히 빛의 양의 현저히 적은 어두운 장면에서의 영상을 보면, 극영화에서는 거의 도달하기 어려운 정도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세심한 조명의 결과물 역시 화질로서 100%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제작진들이 장남감들의 표현만큼이나 더 신경썼던 것은 앤디를 비롯한 인간 캐릭터들에 대한 표현이었는데, 조명이 장난감과 인간에게 각각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전편들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워진 인간 캐릭터들의 표현은 어떤지 등을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사실 '토이 스토리 3' 블루레이 화질에 대한 설명은 아무리 말로 해도 한 번 보는 것에 비할 수가 없다. 블루레이 화질 참 좋은데, 말로 설명할 수 는 없고...뭐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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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Sound Quality


사운드 역시 레퍼런스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DTS-HD M.A 7.1채널과 5.1채널을 수록한 사운드는 의외(?)로 영화 곳곳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 시리즈를 계속 즐겨온 이들이라면 토이 스토리의 액션 시퀀스에 의문을 갖지 않겠지만, 혹시나 아직도 그저 장난감들의 소소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오해하고 있을 이들을 위해 말하자면, '토이 스토리 3'는 어지간한 액션 영화 못지 않은 액션 시퀀스로 인해 차세대 사운드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오프닝의 SF서부영화 시퀀스에서 영화는 (그리고 BD타이틀은) '우리 영화의 사운드 임팩트를 마음껏 들려주마!'라고 얘기하는냥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토이 스토리 3'는 대사도 많고, 배경음악도 많고, 무엇보다 다양한 효과음이 많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운드를 주의 깊게 들어볼 만한 타이틀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화질만큼이나 인상적인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화질을 리뷰하면서 썼던 표현을 빌려오자면, 배경음악은 배경음악대로 훌륭히 표현되고, 효과음은 또 효과음대로 임팩트있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를테면 스패니쉬 버전의 버즈가 등장할 때 흐르는 스페인 전통음악의 경우, 음악 타이틀 정도는 아니지만 음악만 듣기에도 제법 괜찮은 수준의 퀄리티를 들려주고 있으며, 효과음의 경우 초반 서부영화 시퀀스에서 들려주는 각종 폭발음, SF적인 효과음들은 우퍼스피커의 활발한 활용과 더불어 전달되고 있으며, 그 와중에도 우디와 버즈 등 캐릭터들의 대사는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더불어 단편인 '낮과 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단편은 극장 상영시에도 '토이 스토리 3'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만나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낮과 밤이라는 아주 단순한 설정을 통해 아주 간단하지만 본편적인 진리를 전하는 픽사의 스토리텔링의 핵심이 잘 드러난 작품인 동시에, 특히 아이들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볼만한 단편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다음으로 만나보게 되는 영상은 'Buzz Lightyear Mission Logs: The Science Of Adventure'인데,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 실제 나사의 우주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영상이다. 그리고 'Toys'에서는 '토이 스토리'에 나오는 장난감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와 실제 장난감을 만들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용한 사례들을 들려준다. 랏소 같은 경우도 실제 곰인형을 제작해, 움직일 때 동작이 어떻게 되는지, 걸을 때마다 다리는 어떻게 접히는 지 등을 미리 확인해 애니메이션에 적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격적인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첫 번째 '다시 뭉친 친구들'은 제목처럼 11년 만의 속편에 다시 캐스팅 된 목소리 연기 배우들의 모습과 그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토이 스토리 3'의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 가운데는 우디 역의 톰 행크스나 버즈 역의 팀 앨런 등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역할들도 있지만, 우피 골드버그나 007을 연기했던 티모시 달튼,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캔 역할의 마이클 키튼 등 목소리 연기에 수많은 좋은 배우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앤디 역할의 경우 1,2편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존 모리스를 그대로 캐스팅할 수 있었는데, 마치 극중 앤디와 마찬가지로 1,2편 당시에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현재는 대학생이 된 존 모리스의 감회는, 이번 시리즈의 목소리 연기에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안녕 앤디'에서도 바로 앤디 역을 연기한 존 모리스에 이야기를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토이 스토리 3'가 기술적으로 가장 신경 쓴 부분 중 하나인, 인간 캐릭터의 묘사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는데, 전편에 인간 캐릭터들이 오히려 장난감 같았던 (흡사 로봇 같았던;) 느낌을 상대적으로 주기도 했던 것에 비해, 이번 3편에서는 기술적 발전으로 인해 좀 더 인간 캐릭터를 장난감과는 비교되는 인간적인 묘사가 가능하게 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장난감 제작자들'에서는 토이 스토리 1편 당시 처음 픽사가 유명 장난감 회사에 장난감 제작을 의뢰했지만 거절 당한 뒤, 중소 업체에 의뢰를 맡겨 현재의 액션 피규어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현재 이 장난감 회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후문을 들려준다. 또한 픽사 애니메이터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캐릭터가 실제로 장난감으로 생산되는 걸 보게 되어 신기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는 인터뷰와, 장난감의 제작과정도 엿볼 수 있다.


'장난감의 눈으로 보기 : 디즈니랜드 놀이기구'에서는 토이 스토리의 컨셉으로 지어진 디즈니랜드의 다양한 놀이기구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단순히 컨셉만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존 라세터 등 애니메이터들이 첫 단계부터 상당히 많은 부분에 관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이스토리의 팬이라면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은 테마공원이 아닐 수 없겠다. '에필로그'는 영화의 엔딩크래딧과 함께 나오던 에필로그 영상을 따로 만나볼 수 있는 부가영상으로서, 작은 화면으로 보았던 에필로그 영상을 좀 더 큰 화면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처음 타이틀을 집어 들었을 땐 별도로 '음성해설'이라고 표기된 부가영상이 없어서 수록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았었는데, 이름은 다르지만 음성해설이 '씨네 익스플로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감독인 리 운크리치와 제작자인 달라 K.앤더슨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PIP형식으로 음성해설과 관련된 영상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정보를 가득 수록하고 있다. 장면, 캐릭터, 뒷이야기 등 토이스토리에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토이스토리의 팬이라면 필청해야할 음성해설이다. 감독과 제작자가 참여한 하나의 음성해설에서 그치지 않고 '장난감 박스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또 하나의 음성트랙이 수록되어 있는데, 토이스토리 3의 수석 애니메이터와 기술 감독, 프로덕션 디자이너, 스토리 수퍼바이저가 참여하여 감독과 제작자가 들려주는 음성해설과는 또 다른 기술적이고 디테일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토이 스토리 3'는 색다른 시퀀스의 오프닝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바로 이 '서부식 오프닝'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처음 기획한 서부식 오프닝은 좀 더 전통적인 세르지오 레오네 방식의 오프닝이었다는 뒷이야기와 액션이 가미된 구성을 위해 액션 전문가를 기용, 좀 더 다이나믹한 장면 연출을 완성해 냈다. 또한 픽사 스텝들이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흥미로운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결국 이러한 창의적인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플래시백이라는 멋진 구성까지 이끌어 냈음을 알 수 있었다.


'보니의 놀이시간 : 스토리텔링'과 '시작 : 이야기만들기'에서는 각각 스토리텔링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들과 디테일한 과정을 들려주는데, 현존하는 최고의 스토리텔링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픽사 애니메이터들의 회의 시간을 엿보는 것 만으로도 유익한 시간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시나리오 작가나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교과서는 없을 듯 하다. '시작 : 이야기만들기'에서는 '토이 스토리'와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의 예를 들어 좋은 이야기를 만들려면 이렇게 해야한다 라는 방법을 정확히 제시해주는 부가영상으로서, 앞선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할 부가영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영화 팬' 메뉴 안에는 '낮과 밤, 제작과정' '픽사로 가는 길' '픽사 이야기 : 고든은 어디에?', '픽사 이야기 : 시리얼 바' 등 매우 흥미로운 부가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모두 다 소개하는 것보다는 직접 확인하시라고 '영화 팬' 메뉴는 이 정도로 마무리할까 한다.


'개인 & 액티비티'에 수록된 '토이 스토리 - 백과사전' 에서는 토이 스토리의 다양한 정보들을 퀴즈형식으로 풀어볼 수 있는데, 퀴즈에 게임 요소까지 더해져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즐겨볼 수 있을 듯 하다. 


마지막으로 '홍보'란에는 예고편 등 다양한 부가영상들이 역시 수록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티저 예고편 및 정식 예고편 등이 수록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누가 픽사 타이틀 아니랄까봐 기본적인 예고편들 외에 버전별 예고편들 그리고 예고편은 아니지만 다양한 홍보, 티저 영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스패니쉬 버즈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실제 라틴 댄서들을 픽사에 초청해 애니메이터들이 실제 춤을 보고 춰보기도 하며 동작을 연구하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총평] 픽사라는 스튜디오의 지금을 있게 한 작품인 '토이 스토리'의 대단원의 마지막인 '토이 스토리 3'는 시리즈의 마지막으로서는 물론, 3편 단편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서, 픽사의 작품답게 가장 애니메이션다우면서도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어선 대단한 작품이었다. 블루레이 타이틀 역시 레퍼런스 그 자체의 퀄리티로, 놀라운 화질과 음질 수록과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다양한 부가영상들로 인해 소장가치 만점짜리 타이틀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 - 10
화질 - 10
음질 - 10
스페셜피쳐 - 10
소장가치 - 10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ixar Animation Studios 에 있습니다.





realfolkblues.co.kr 선정
2010년 올해의 영화


2010년 한 해도 참 많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몇 달을 고대하여 결국 보게 된 기대작들도 있었으며,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볼까말까를 고민했던 작품도 있었죠.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는 거의 보지 않고 어지간하면 영화의 장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성격이라 그런지, 올해도 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다른 분들과 평이 극으로 갈려 '아, 이제 내 취향은 점점 대중과 멀어지는구나'라는 쓸쓸함과 쾌재를 동시에 누렸던 작품도 있었고, 반면 많은 분들의 동의하에 서로 누가 더 이 영화를 사랑하는 지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발산하게 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2010년 올 한해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이른바 '올해의 영화'를 꼽아보게 되었습니다. 뭐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 작성된 리스트이며, 순서는 순위없이 개봉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찰리 카우프만 감독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를 걱정했던 것처럼, 공드리 없는 카우프만도 그 걱정의 정도는 조금 덜했으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결과는 대만족, 아니 대압도된 느낌이었습니다. 카우프만은 항상 인간 존재와 마음의 심연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본인이 감독을 맡게 된 이 작품에서는 드디어 그 심연의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영화란 무릇 이야기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본인만의 것으로 느껴질 때 더 큰 감동이 오기 마련인데, 카우프만의 심연에서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분석해볼 만한 거리가 참 많은 작품임에도, 완전히 카우프만의 세계에 공감한 탓에 굳이 분석할 필요성을 못느낄 정도였죠. 찰리 카우프만의 작가적 야심이 정말 대단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내 안을 카우프만이 훤히 다 꿰뚫어보고 있는 듯해 한없이 위로받고만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마크 웹 감독

조이 데샤넬의 열혈팬이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긴 했지만, 그녀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던 좋은 드라마였죠.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들을 진부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방식, 알콩달콩 하지만 현실적이고 씁쓸함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이 작품은, 몇 년간 본 로맨스 영화들 가운데 손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내게도 있었던 '썸머'를 떠올리게도 했구요. 앞으로도 조이 데샤넬과 조셉 고든-래빗의 배우로서의 매력을 보고 싶을 때 만큼이나, 연애에 관해 떠올려야 할 때면 이 작품을 찾아보게 될 것 같네요.






밀크 (Milk)
구스 반 산트 감독

구스 반 산트의 2008년 작 '밀크'는 동성애자로서는 미국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되었던 하비 밀크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구스 반 산트가 언젠가는 만들었어야 할 운명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단순히 동성애 영화라고만 생각하기도 하는데, '밀크'야 말로 보편적인 정서와 동성애적 의미를 모두 완벽하게 감싼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과거를 살았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구스 반 산트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공감할 수 있도록 영화를 구성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를 추억하는 것은 곧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해요. '밀크'를 보고 느꼈던 가장 큰 생각이라면, '과연 나는 이 만큼 뜨겁게 살고 있는가?'라는 거였죠.

(2008년 작이지만 국내에는 2010년 2월 개봉했기에 포함했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마틴 스콜세지 감독

'셔터 아일랜드'는 올 상반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결말의 방향성의 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해볼 것이 많은(그러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스콜세지가 만든 미장센에 감탄했는데, 올 상반기 호불호가 가장 크게 갈렸던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저의 견해는 물론 '호' 입니다. 나중에 블루레이가 출시되어 다시 보게 된 영화는, 스토리 자체 보다는 스콜세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에 더 반응하며 보게 되더군요. 






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코엔 형제 감독

'파고'를 비롯한 코엔 형제의 예전 영화들도 물론 좋아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의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번 애프터 리딩'도 좋았었는데, 이런 취향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시리어스 맨'이었죠. 이 작품을 보면 볼 수록 '아, 진짜 코엔 형제는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이렇게 삶이라는 것에 대해 유머와 진지함의 완벽히 조화를 이뤄가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마저 주는 이들의 영화기술은, 날로 대단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많이 배웠던 작품이었어요. '주차장을 보세요!'는 올해 최고의 대사 중 하나.






킥 애스 (Kick-Ass)
매튜 본 감독

'힛 걸' 이라는 인기 캐릭터와 더불어 이를 연기한 클로 모렛츠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 '킥 애스'. '다크 나이트' 이후 힘을 잃었던 (아니 겁먹었던) 히어로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기본적인 것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했죠. 웃어 넘길 수 없는 것과 그냥 웃어 넘겨도 괜찮은 것이 같은 것일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어린아이가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것에 논란을 갖기 이전에, 그렇담 '왜? 아이여야만 했나?'를 떠올려본다면 좀 더 작품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시 (Poetry)
이창동 감독

21세기에 영화를 통해 시를 쓸 수 있는 감독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적어도 국내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내공을 갖고 있는 감독은 이창동 감독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사실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박하사탕' '오아시스'등은 너무 자극적이고 과한 느낌이 있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시'를 보고나서는 '아, 이 사람 정말 차원이 다른 시를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 작품 중 베스트는 단연 '시' 입니다.





인셉션 (Inception)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올해 영화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린 작품이라면 단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인셉션'의 맹점은 꿈의 단계별 구조 분석과 그 상관관계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관객이 바로 그 구조를 분석하고 싶게 끔 만드는 구조의 특성에 있다고 생각되네요. 예전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썼을 때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 것이 정답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정답이 되는 구조적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놀란 스스로 말했거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답이 아닌 그 외의 답들도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구조를 잘 '설계'했다는 거죠. 설계 자체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했으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으로도 코브의 감정선에 공감할 수 있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영화였어요.




토이 스토리 3 (Toy Story 3)
리 언크리치 감독

사실 영화를 보기 전 부터 울거라고 생각은 했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예상되는 줄거리를 가졌더라도 관객을 100% 울리고 마는 픽사인데, 아무렴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난감들 이야기의 마무리를 그냥 적절히 정리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죠. 사실 100% 마음에 드는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전편들로부터 이어져온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눈물은 또 한 번 어쩔 수가 없더군요. 






옥희의 영화 (Oki's Movie)
홍상수 감독

올해 홍상수 감독은 '하하하'와 '옥희의 영화'라는 이른바 '홍상수 월드'의 영화 두 편을 내놓았죠. 두 편은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또 전혀 다른 작품이기도 했는데, 둘 모두 리스트에 올리려고 하다가 어렵게 어렵게 '옥희의 영화'를 택했네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수 많은 명장면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폭설 후의 강의 실 대화 장면이었어요. 뭐랄까 이 장면은 마치 판타지에 가까운 장면이었는데, 나도 저런 순간을 만나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치는 한 편, 홍상수 월드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장면이라 절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장면이기도 했죠. 어쨋든 저는 홍상수 월드의 신봉자입니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요.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발음하기도 어려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라는 이름은 씨네필들 사이에서 요 몇해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였죠. 사실 그럼에도 저는 그의 전작들을 거의 보질 못했었는데, 이 작품 '엉클 분미'가 되어서야 비로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첫 느낌은 물론 '어렵다'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 작품은 결코 쉬운 화법의 영화는 아니에요. 간단히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보기엔 굉장히 깊은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동시대의 감독 가운데 보기 드문 화법을 가진 감독을 만난다는 경험과 '엉클 분미'에서 보여주었던 공존에 대한 경험, 그리고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고차원'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웠던 작품이었어요.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데이빗 핀처 감독

데이빗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는 국내에서는 마치 최연소 억만장자의 성공담 처럼 홍보되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그리고 페이스북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로 여겨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큰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페이스북'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하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데이빗 핀처의 놀라운 연출력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데이빗 핀처의 작품들은 모두 좋아하고 특히 '조디악'을 좋아하는 편인데, '소셜 네트워크'는 '조디악'과는 또 다른 지점의 경지에 있는 작품이었어요. 트렌스 레즈너의 음악은 올해의 사운드트랙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었구요. 아, 참고로 원제는 'The Social Network'로 별로 쿨하지 못하지만, 국내 제목은 '소셜 네트워크'로 매우 쿨한 편입니다.





그 밖에 아쉽게 리스트에 들지 못한 작품들로는 올해 가장 인상깊게 본 다큐멘터리 형식(하긴 이 작품을 완벽한 다큐멘터리로 보긴 좀 어렵죠)의 '맨 온 와이어'도 있고, '예언자' '인 디 에어' '하하하' '골든 슬럼버' '소라닌' '검우강호' '부당거래'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우강호'는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갈 수록 또 보고 싶었지는 작품이고, '소라닌'은 개인적으로 올해의 청춘 영화였으며, '골든 슬럼버' 역시 이사카 코타로와 나카무라 요시히로 콤비의 신작으로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구요.

2010년 한 해도 참 좋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2011년 한 해도 극장에서 만날 새로운 영화들에 벌써부터 두근두근 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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