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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정한다 (Denial, 2016)

진실은 왜 승리해야 하는가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 데보라 립스타드 (레이첼 와이즈)와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데이빗 어빙 (티모시 스폴)간의 소송과 재판 과정을 다룬 영화 '나는 부정한다 (Denial, 2016)'는 동명의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홀로코스트 연구자와 부인론자의 소송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부정한다'의 이야기는 치열하게 진실 공방을 벌일 만한 미지의 무엇의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미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 이를 부정하는 이를 대상으로 입증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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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흔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억지 주장을 펼치는 이들과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x가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라는 식의 말을 하며 상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상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일들은 상대를 하는 것 자체로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게는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럽다는 이유로 피하는 것이 더 상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에 관한 진실 혹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인권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그것이 단지 억지 주장이거나 상대하는 자체로 손해를 보는 것일지언정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일 텐데, 이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바로 그렇게 피하지 않고 맞서게 되는 어떤 이의 실제 사례를 들어 간접 경험을 하게 되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과정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고통스럽고 또 냉정을 유지해야만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역시 냉정하고 담담한 말투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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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립스타드가 처한 상황을 한 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로서 이 참상과 진실을 더 널리 알리는 데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그녀에게 이를 완전히 부정하는 데이빗 어빙의 명예훼손 소송은 쉽게 무시하기 어려운 도발이었을 동시에, 무죄추정 원칙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어빙의 잘못된 주장을 입증하는 데에 (이 정도의)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홀로코스트를 인식하고 있는 것 보다도 더 전문가인 그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어빙의 주장은 완전히 터무니없고 말을 섞을 가치 조차 없다고 여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에 들어가 진실 공방이 아닌 철저한 법적 공방에 놓이게 되면서 그녀는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유태인이자 이 문제에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모든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을 뿐더러, 자칫 자신이 이 재판에서 지게 될 경우 모든 홀로코스트 피해자들과 역사적 진실이 훼손될 수 있다는 부담은,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무게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이 재판에 임하게 되는데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는 없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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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감정적으로 공감되는 데보라에 비해 영화를 보다 보면 중반에 이를 때까지도 그녀를 변호하는 변호인단의 진심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한다. 즉, 변호인단이 쉽게 말해 너무 비즈니스 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실제 진실이 밝혀지는 것 그 자체에는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은 듯 한 뉘앙스를 남긴다. 이후 영화는 톰 윌킨슨이 연기한 변호인 리처드 램튼의 캐릭터를 통해 이들도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냉정을 잃지 않고 전략적으로 대한 것이라는 전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또 다른 변호인인 앤드류 스콧이 연기한 줄리어스의 경우 그 진심이 어느 정도 입증된 이후에도 드라마틱하게 이 부분이 표현되는 장면이나 전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 재판의 판결이 나는 장면의 경우도 보통의 법정 영화였다면 과연 판결이 어떻게 될지 긴장감과 극적 요소를 최대로 끌어올려 클라이맥스를 연출했을 텐데, 이 영화의 판결 부분은 얼핏 연출력의 부제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아주 덤덤하게 묘사되고 있다. 변호인단의 캐릭터 묘사나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다루는 방식으로 미뤄봤을 때, '나는 부정한다'의 메시지는 승리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승리를 위해 어떤 과정을 감내해야만 하는 가에 더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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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예하게 진실을 다투는 공방이 아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거나 억지에 가까운 극단적인 주장과 진실을 다투어야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얻는 방법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나는 부정한다'는, 아주 가깝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연스레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친일 역사와 또 일제 시대 벌어진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참혹한 인권 문제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독도 영유권 관련해서도 그렇고 우리는 당연히 우리 땅이고, 당연히 침략과 지배 과정 중에 사실로 벌어진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저 '당연하다'라고 쉽게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과 일부 친일파 세력의 경우 이 역사를 본인들이 원하는 역사로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다시 한번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진실을 실제 하고 더 확고한 진실로서 후세에 전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또한 최근 가장 뜨거운 대선 판에서도 그저 웃어 넘기기엔 너무나 저급하고 모욕적이며 진실을 왜곡하는 상대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이런 세력들을 그저 말이 안 통하는 이들이라 칭하며 무시하는 것으로 해결이 될 것인지, 또 그것이 진정 옳은 방법인지 새삼 떠올려 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왜 승리해야 할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진실은 꼭 승리해야만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거짓들로부터 꼭 지켜내야만 할 진실들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사회와 내가 되길 바라고 또 경종을 울리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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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Valkyrie, 2008)
서스펜스로 돌아온 브라이언 싱어

며칠 전 내한하여 수많은 한국팬들에게 톱스타 다운(혹은 답지 않은) 엄청난 매너와 그 많은 팬들에게 일일이 싸인을
해주어 일부에서는 '성인'으로 까지 추앙받기도 했던 톰 크루즈 주연의 스릴러 영화 <발키리>를 보았다(이 영화를 액션 대작
으로 잘못 알고 극장을 찾은 분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국내에서는 <작전명 발키리>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히틀러 암살 계획을 다루고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개봉전 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비단 톰 크루즈 때문만은 아니었다. <엑스맨>과 <유주얼 서스펙트>를 연출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오랜만에
스릴러 장르로 돌아와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에, 과연 <식스 센스>오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반전 영화로 꼽히기도 하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완성도를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재미있는건 <유주얼 서스펙트>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맞추는 '퀴즈'같은 형식이었다면, <발키리>는 이미 누구나 다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 '해설'
같은 형식이라는 점이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영화다 보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네요 ^^;)




히틀러 암살 작전에 관한 영화는 이전에도 몇 편있었고,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역사로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건이라
영화화 하는 것에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워낙에 반전 자체에만 목을 매는 국내 관객들을 감안해보자면
차라리 '어떻게 될까?'하고 기대를 하지는 않을테니 나쁜 선택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그런데 재미있는건 극장에서
분위기를 보니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더 흥미진진한
서스펜스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 결말이 이미 나와있는 이야기라면 결국 그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있고,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터. 정말 잘 만들어진다면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문득 문득 '히틀러가 정말
암살되었던가?하고 착각할 정도로 서스펜스를 이끌 수도 있을텐데, 이런 면에서 브라이언 싱어의 <발키리>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확실히 브라이언 싱어는 장르 영화에 재주가 있는 감독이다. 결말을 다 아는 이야기를 영화화 할 경우, 그 과정을
그리는 방법에 있어 새로운 방식이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발키리>는 이런 경우도 아니라 하겠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실제 역사와 흡사한 설정과 장면들을 디테일하게 배치하였고, 현실감을 더 하기위해
제작비의 대부분을 미장센을 만들어내는데 쓰기도 했다.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도 서스펜스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들을 여기저기 배치하고 있다. 영화 초반 슈타펜버그(톰 크루즈)가 적군의 폭격을 받아 부상을 당하는 장면에서,
고개를 옆으로 하고 쓰러지는데, 이 장면은 그의 최후에 그대로 다시 복선으로 등장하며, 영화의 주된 긴장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가방'에 관한 시퀀스도 매우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가 만들어낸 <발키리>에서는
'저거 예전에 본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거의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이것은 감독의 연출력은 물론이고, 여러 중견 배우들의
무게있는 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발키리>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의 면면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지 않은 상태에서
항상 영화를 감상하기 때문에 익숙한 배우들이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었는데, 영화가 영화이니 만큼
이들 중 한 두 명만 있어도 가능할 법한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모두가 적절하게 분량을 나눠가진 듯한 느낌이었다.
최근 <추적>을 연출하기도 했던 케네스 브래너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었고(해리포터 이후 스크린에서는 오랜만에
만난것 같네요), 빌 나이, 톰 윌킨슨, 크리스찬 버켈, 토마스 크레취만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인상적인 조연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중견 배우들을 가득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토마스 크레취만 같은 경우 최근 <원티드>를 비롯해, <킹콩> 'U-571',
<피아니스트>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였는데,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을 동시에 표현해 내는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거의 여자 배우가 출연하고 있지 않은 이 영화에서 슈타펜버그의 부인 역할로 등장하는 캐리스 밴 허슨은 비중이 특히
더 적어 좀 아쉬웠던 경우였다. 그녀는 이미 <블랙북>을 통해 비슷한 시기의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의 배경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으나 비중 자체가 많지 않아, 외모를 비롯한 보여지는 것외에 연기를
펼칠만한 여지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수 많은 인상 적인 조연 연기자들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단연 테렌스 스템프라 할 수 있는데, 그는 특히 최근들어 <원티드> <예스맨>등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다시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같아 더욱 반갑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수 많은 조연 연기자들이 비중을 적절히
나눠 갖은 것은 한편으론 '적절하기도'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캐릭터를 표현할 여지가 많지 않다는 뜻도 되는데,
테렌스 스템프 역시 워낙에 아우라가 강한 배우여서 그렇지, 연기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마스카와 목소리 만큼은 여전히 유효했다.




<발키리>는 서스펜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수작임에는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뮌헨> 정도의
깊은 인상은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일단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긴 했지만 히틀러를 두고 벌이는 이 '암살작전'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왜 충성을 맹세한 것을 거두고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하느냐'에 대한 동기부여는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슈타펜버그는 그저 본래 부터 히틀러를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거나, 그저 조국 독일을 위하는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 그 이상으로는 그려지지 않는데, 그의 가족을 조명하는 장면에서 어느 정도 의도는 알 수 있었으나,
설득력 면에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암살작전에 가담하는 다른 조연 캐릭터들의 경우는 더더욱 부족한 면이 있어
전체적으로 서스펜스에는 이끌려가지만, 감정적으로 동화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작전 자체에 집중한 것도 좋았지만, 구테타 세력이냐 히틀러냐를 두고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인물들의
심리적인 갈등을 좀 더 비중있게 그려주었다면 좀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로 기억되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조금은 아쉬웠다(만약 이대로 되었다면 아마도 리뷰의 부제목이 '역사의 선택의 놓인 사람들'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




아, 얘기하다보니 정작 톰 크루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 항상 톰 크루즈는 연기력에 대해 과소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역시 또 한 번 부족할 것 없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발키리>에서 그가 맡은 슈타펜버그가 톰 크루즈 최고의 연기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사실 <발키리>는 톰 크루즈와 여러 중견배우들과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한 영화이기도 했다.




1. <발키리>는 나치당원인 독일인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매우 반길 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2. 히틀러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도, 그 캐릭터도 괜찮더군요. 문득문득 '독재자'다운 포스가 느껴졌달까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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