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데이빗 핀처의 용문신을 한 소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원작 소설 '용 문신을 한 소녀' (북미와 영국에서 발간될 때 사용했던 제목)라는 제목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아주 생소한 작품은 아니었는데, 스웨덴에서 영화화한 버전과 데이빗 핀처가 리메이크 했다는 소식을 거의 동시에 듣게 되었고, 개봉도 그 규모는 다르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만나볼 수 있어 어느 작품을 먼저 볼까 고민하던 중, 결국 핀처님의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밀레니엄'은 전작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이후 1년 만에 바로 만나볼 수 있는 데이빗 핀처의 신작이라 일단 무척이나 반가웠다. '소셜 네트워크'가 이제 막 1년이 조금 넘은 작품임에도 가끔씩 다시 보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라고 봤을 때, 과연 핀처의 신작은 또 어떤 감흥을 전달해 줄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명한 원작 소설도 스웨덴판 영화도 보질 않았기 때문에 오롯이 핀처의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원작이 별도로 있거나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영화의 경우, 원작을 읽었을 경우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일단 끝내주는 오프닝 타이틀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미 카일 쿠퍼가 연출했던 '세븐' 오프닝 타이틀을 통해 획을 그었던 핀처는, 이번에는 팀 밀러라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환상적인 오프닝 타이틀을 선사하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 이어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의 강렬한 비트와 함께 펼쳐지는 오프닝은 흡사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듯한 영상에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더해지면서 흡사 007 시리즈의 오프닝마저 연상시킨다. 음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트렌트 레즈너가 음악을 맡아서인지 영화 곳곳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떠올릴 만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음악은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와 그 이면에 가려진 무게감을 대변하고 있었다면, '밀레니엄'에서는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미스테리함의 증폭과 추운 날씨와 고립된 듯 외로운 장소와 캐릭터의 면면을 더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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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부패한 재벌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고 대형 소송에 휘말린 기자 '미카엘 (다니엘 크레이그)'과 정부의 보호감찰을 받는 아웃사이더 소녀 '리스베트 (루니 마라)'의 이야기를 각각 전개해 나간다. 두 사람의 연결 고리는 영화 초반 공개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기 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작 소설과 스웨덴 버전의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포스터나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뉘앙스를 보았을 때 리스베트라는 캐릭터의 비중이 절반이상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헐리웃 버전의 '밀레니엄'은 적어도 50:50이거나 미카엘의 비중이 더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중심이 되는 스토리에 더 빨리 투입되는 것도 미카엘이고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미카엘이 중심에 있다는 점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작품이었다면 리스베트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스웨덴 버전 포스터로 미뤄 짐작했을 때 기존의 작품들이 리스베트의 이야기라고 예상되었다면, 헐리웃 버전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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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스릴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밀레니엄'은 괜찮은 과정을 담고 있다.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 작품에는 40년 전 사라진 소녀 '하리에트'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를 푸는 것 이전에,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비중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중반까지는 완전히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그렇다보니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진 다음, 본격적으로 하리에트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157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에도 100% 만족할 만한 문제 해결의 과정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 즉, 실제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 범인을 밝혀내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동시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인해 약간 급마무리 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밀레니엄'이 보여준 문제 해결 과정이나 속도, 리듬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닌데, 이것이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어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미 '조디악 (Zodiac, 2007)'이라는 너무 완벽한 스릴러를 만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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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극장을 나오며 느꼈던 교훈은 좀 다른 얘기일지도 모르겠는데, '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리스베트가 처한 상황과 그녀가 이 상황 속에서도 살아나가는 방식을 보면서, 이런 저런 고통과 억압들은 절대 참는다고 끝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상처가 깊어진다는 진리와, 그 가운데서도 굴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적 메시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리스베트의 이야기는 화려한 용문신과 피어싱 보다도 더 빛났다.



1. '소셜 네트워크'의 첫 장면에서 마크 주커버그를 차버렸던 그녀 루니 마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더군요.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는데, 확실히 이 리스베트라는 캐릭터는 루니 마라의 필모그래피에 획을 그을 것만은 분명한 것 같네요.


2. 아, 스웨덴의 그 공기. 이런 차가운 공기를 느껴보는 건 '렛 미 인' 이후로 오랜만인듯.


3. 이게 한국 영화였다면 전 그 가죽 자켓 버린 곳을 아마도 직접 찾아가 봤을 거에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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