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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파수꾼의 추억


윤성현 감독의 빛나는 데뷔작 '파수꾼 (Bleak Night, 2012)'는 그 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영화 '파수꾼'이 개인적으로 조금 다르게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이유 때문이다.


* 참고로 영화에 대한 리뷰는 여기로 (파수꾼 _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이 때도 살짝 오늘 할 얘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속으로 '어? 설마?'라는 말을 내뱉게 되었는데, 바로 극 중 배경이 된 장소가 몹시 낯이 익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삼인방이 함께 야구도 하고 또 걸터앉아 담배도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나오는 기차역이 아주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있었던 탓에 확신까지는 하지 못했었으나, 영화 말미 크래딧을 보고 나서야 내 기억 속의 원릉역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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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때만 해도 철로 옆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전이었다)


이 장소가 내게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실제로 원릉역은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자주 오가던 혹은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던 아주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원릉역을 사이에 두고 아래쪽은 성사동으로 주공아파트 단지가 위치하고 있었고 위 쪽은 주교동으로 버스 종점 정류장과 함께 주택단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 원릉역에서 약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바로 약이 내다 보이는 주공아파트 단지에 당시 살고 있었다. 풀이 우거진 계단을 올라 원릉역 철로를 지나서 나오는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를 다녔더랬다. 그리고 영화 속과 비슷하게 원릉역에서 친구들과 자주 만나기도 했다.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내가 살 때만 해도 이 곳은 많지는 않아도 가끔 기차가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영화 속처럼 학생들이 죽치고 담배를 피거나 철로 위에서 놀거나 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또,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릉역은 꼭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이동 통로로 활용이 잦은 위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비슷한 점이라면 실제 원릉역은 (그럼에도) 밤이 되면 불빛이 어둡고 으슥한 느낌이 있어서 무서운 형님들이 돈을 뺏거나, 혹은 구석에서 술을 마시는 일들도 가끔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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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처음 보고 긴가민가 했던 이유는 철로 옆에 높게 솟은 고층 아파트 풍경 때문이었다. 나는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기를 모두 보냈지만, 20살이 넘어서 얼마 되지 않아 서울로 독립을 하게 되어 한 동안 가보지 못했던 터라 주공아파트가 재개발되고 신도시가 생겼다는 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말로만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철로 뒤로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지만 내가 살던 당시, 그리고 열차가 다니던 당시의 풍경은 5층짜리 주공 아파트가 늘어선 풍경이었다. 만약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 이 영화가 촬영되었더라면 영화 속에서 내가 살던 주공아파트 107동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파수꾼'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살았던 곳이 영화 속에 등장해서가 아니다. 잠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동네는 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공 아파트 단지 전체가 재개발되면서 동네 자체가 전혀 달라져 버렸다. 즉, 내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작은 단지들의 모습을 이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원릉역은 비록 그 경계에 있었던 중간 지점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예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에 추억이 남다를 수 밖에는 없었다. 여기서 참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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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교회 건물 바로 옆 빌라 반지하 집에서도 수년을 살았던 기억이...)



그렇게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던 영화 '파수꾼'을 어제 오랜만에 케이블 티비를 통해 다시 보게 되니, 나도 교복 입고 원릉역을 넘나들던 그때가 다시 떠올랐다.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어느 덧 2011년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 말은 다른 얘기로 하자면 올해 열심히 극장에서 챙겨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들을 손꼽아 볼 시기가 되었다는 얘기. 한 해를 쭉 돌아보며 봤던 영화 목록을 들춰보니 지난해와 비교하자면 조금은 심심했던 (더불어 개인적으로 극장을 찾을 시간이 좀 더 부족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10작품을 꼽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며 간발의 차로 여기에 들지 못한 작품도 2~3 작품 정도가 있었다 (너무나 동경해마지 않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옹의 '히어애프터', 올해 또 하나의 발견이었던 '혜화, 동', 마이크 리의 쓸쓸한 '세상의 모든 계절' 등이 바로 그 작품이다). 올 안해도 나를 울렸다가 웃겼다가 오감을 자극시켰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10작품을 '올해의 영화'라는 타이틀로 꼽아보았다.

(순서는 관람 순)




1. 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극한의 백조의 호수

http://www.realfolkblues.co.kr/1447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촬영 방식을 택한 반면,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통해 판타지에 가까운 극적 변화를 담아냈던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야심작. 후반 부 백조의 호수가 시작되며 치닫는 극의 과잉된 리듬은 심장을 미치도록 요동치게 한다.





2. 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http://www.realfolkblues.co.kr/1451


역시 올해의 한국 영화!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은 지금까지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적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깊은 것은 물론, 과연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를 떠올려 보게 했던 올해의 발견!





3. 수영장 (Pool, 2009)
꿈만 같은 치유의 슬로우 무비

http://www.realfolkblues.co.kr/1471



보는 내내 평화로움이, 보고나서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지에 대해 말이 아닌 그림 같은 장면으로 보여주는 영화. 올 한해 수 많은 작품에서 수 많은 명장면이 있었지만, 내가 꼽은 올해의 장면은 바로 저 장면.





4. 슈퍼 8 (Super 8, 2011)
너무 행복했던 J.J의 스필버그 종합 선물세트

http://www.realfolkblues.co.kr/1505



스필버그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영화.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며 영화 감독을 꿈꾸었던 한 남자가 스필버그와 함께 그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남. 이것만으로도 J.J는 올해 가장 부러운 남자.





5.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Part II)
마지막이 실감나지 않는 마법의 피날레

http://www.realfolkblues.co.kr/1518



보는 동안에도 실감나지 않았고 이후 블루레이로 다시 볼 때도 실감나지 않았고 지금도 실감나지 않는 해리와의 이별. 난 소설을 읽지도 않았고 다른 시리즈에 비해 특별한 정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 함께 해오며 같이 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올해의 10작품 가운데 이 피날레를 꼽을 이유는 충분했다.





6.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전편을 돌아보게 만드는 깊이 있는 프리퀄

http://www.realfolkblues.co.kr/1529



프리퀄이라는 유행의 한자락 인줄로만 알았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가장 모범 답안이었던 작품. 혹성탈출 시리즈 가운데 실망했었던 팀 버튼의 리메이크작까지 다시 보고 싶게끔 만든 놀라운 작품. 인간이 아닌 캐릭터에게도 이 정도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저'라는 캐릭터는 올해의 캐릭터에 이름을 올리기에 충분할 듯. 이제 앤디 서키스가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을 날도 머지 않았다!





7. 북촌방향 (The Day He Arrives, 2011)
시공간 속 가능성을 얘기하는 홍상수

http://www.realfolkblues.co.kr/1538



아...홍상수. 홍상수의 마법은 '북촌방향'에서도 계속 되었다. 남녀상열지사를 그리는 것을 넘어서서 시공간의 무한한 가능성마저 열어둔 작법에 혀를 내두를 정도. 올 한해 극장에서 느꼈던 가장 따듯했던 순간은, 성준(유준상)이 여주인을 쫓아 소설을 나와 골목을 걷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8.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경이로운 우주 속 나를 느끼다

http://www.realfolkblues.co.kr/1560



테렌스 맬릭은 항상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를 다뤄왔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트리 오브 라이프'는 직설적이라고 할 만큼 그 탄생으로의 여행을 자처한 작품이었다. 인간의 역사를 비롯해 우주적 세계관과 그 안에 매우 사소한 인간의 감정적 부분들까지. 이 영화를 단순히 종교적인 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





9. 머니볼 (Moneyball, 2011)
야구에 빗대어 전하는 삶의 위로

http://www.realfolkblues.co.kr/1567



처음엔 '단장'을 중심으로 한 디테일한 야구 영화라길래 기대를 했었는데, 아론 소킨이 참여한 이야기는 역시 야구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야구를, 특히 메이저리그를 즐겨보는 이들이라면 흥미진진할 만한 내용들이 디테일하게 담긴 동시에, 극장을 나올 때면 Lenka의 'The Show'의 가사를 흥얼거리며 인생의 위로를 받게 되는 참 '좋은' 영화였다.





10. 드라이브 (Drive, 2011)
이토록 황홀한 아름다움

http://www.realfolkblues.co.kr/1570



'드라이브'는 올해를 통틀어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 중 하나였다. 누군가 '이제 라이언 중에 고슬링이 최고'라고 얘기할 만큼 그가 만든 캐릭터의 이미지는 강렬했으며, 다양한 감독들과 걸작들의 향수를 담고 있으면서도 조잡하거나 유치하기 보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이 영화의 이미지는, 뒷면에 선명한 스콜피오 자켓처럼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듯 하다.




11.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奇跡, 2011)
크리스마스의 기적같은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1585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보기 전에 올해의 영화를 정리한 것은 분명한 실수였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풀어낸 기적같은 영화는 보는 내내 행복함과 말못할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 영화를 만난 것이야 말로 올해 크리스마스에 내게 일어난 기적같은 일이었다.


이렇게 짧게나마 2011년 극장에서 본 영화들을 정리해보았다. 내년에는 제목만으로도 영화팬을 다리 떨리게 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마지막 배트맨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리들리 스콧이 손수 만들고 계신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이후의 공허함을 채워줄 피터 잭슨의 '호빗'까지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이 생각 만으로도 2012년은 충분히 기대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매년 상반기와 연말 혹은 연초에 가장 인상적으로 본 영화들을 '좋은 영화 베스트'라는 식의 이름으로 정리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어느 덧 6월이 훌쩍 지나고 2011년 상반기를 결산해볼 시간이 다가왔다. 간단하게 총평을 해보자면 지난해 이맘 때에 비해 좋은 인상적인 영화들의 숫자가 조금은 적어진 듯 싶다. 지난해 상반기에 리스트를 꼽을 때에는 외국영화 만으로도 10작품을 쉽게 꼽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한국영화를 포함하여 딱 10작품을 선정할 수 있었다. 참고로 언제나 그렇듯이 선정 기준은 완전 개인적이며, 더 많은 좋은 영화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정리해 보았다.

(순서는 관람 순) 




1. 윈터스 본 (Winter's Bone, 2010)
소녀는 울지 않는다
http://www.realfolkblues.co.kr/1430 



제니퍼 로렌스 라는 여배우의 발견. 인생을 다 겪은 듯한 소녀의 표정과 몸짓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제목만 들어도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기억에 남는 작품.






2. 라푼젤 (Tangled, 2010)
디즈니가 가장 자신있는 마법의 세계
http://www.realfolkblues.co.kr/1440



'라푼젤'에서 보여준 디즈니의 마법은 여전했다. 디즈니는 이런 식으로 가면 된다. 픽사를 억지로 따라할 필요도, 오로지 기술적인 측면에만 매진할 필요도 없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자신들이 해왔던 방식에 근거하여 조금씩 보완해 가면 된다. 갑자기 너무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려 하기보단, 서서히 스타일 변신이 아닌 보완을 하면 될 듯.

 




3. 혜화, 동 (Re-encounter, 2010)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
http://www.realfolkblues.co.kr/1443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국내 영화 중 한 편. 스물 셋 혜화의 지난 겨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 민용근 감독과 혜화 역의 유다인 씨를 비롯한 이들의 정말 투혼에 가까운 관객과의 대화 릴레이는 올해 그 어떤 영화 마케팅 방법보다 진실되고 값진 것이었다.





4. 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극한의 백조의 호수

http://www.realfolkblues.co.kr/1447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촬영 방식을 택한 반면,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통해 판타지에 가까운 극적 변화를 담아냈던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야심작. 후반 부 백조의 호수가 시작되며 치닫는 극의 과잉된 리듬은 심장을 미치도록 요동치게 한다.

 





5. 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http://www.realfolkblues.co.kr/1451

역시 올해의 국내 영화!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은 지금까지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적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깊은 것은 물론, 과연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를 떠올려 보게 했던 올해의 발견!






6. 두만강 (Dooman River, 2009)
경계와 경유 그리고 약속
http://www.realfolkblues.co.kr/1454



장률 감독의 '두만강'은 전작들과는 달리 상당히 감정적이고 극적이며 떨려오기까지 하는 작품이었다.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는 올해의 카피 후보. 개인적으로는 장률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와닿았던 작품.






7. 수영장 (Pool, 2009)
꿈만 같은 치유의 슬로우 무비

http://www.realfolkblues.co.kr/1471



보는 내내 평화로움이, 보고나서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지에 대해 말이 아닌 그림 같은 장면으로 보여주는 영화. 위의 저 장면은 앞으로 후반기에 어떤 영화의 명장면이 나온다 하더라도 올해의 명장면으로 이미 결정.






8.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2010)

메리를 둘러 싼 삶의 온도

http://www.realfolkblues.co.kr/1485



마이크 리의 전작 '해피 고 럭키'와 마찬가지로 마냥 행복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 안에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담은 작품. 노년에 접어든 마이크 리에게 삶이란 결국 이런 깊이로 와닿는 것일까. 영화 속 메리에게서 나를 보게 되느냐, 타인의 모습을 보게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영화.





9. 슈퍼 8 (Super 8, 2011)
너무 행복했던 J.J의 스필버그 종합 선물세트

http://www.realfolkblues.co.kr/1505



스필버그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영화.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며 영화 감독을 꿈꾸었던 한 남자가 스필버그와 함께 그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남. 이것만으로도 J.J는 올해 가장 부러운 남자.






10. 일루셔니스트 (L'illusionniste, 2010)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

http://www.realfolkblues.co.kr/1506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 가운데 영화라는 것으로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실뱅 쇼메의 인상적인 애니메이션. 더 이상 영화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보내는, 마법사의 쓸쓸한 여정.




* 올 하반기에도 더 많은 인상적인 좋은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여러분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단도직입,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윤성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수꾼'은 포스터 맨 위에 문구처럼 올해의 발견이자 가장 빛나는 데뷔작이라 할 수 있겠다. 윤성현 감독은 이제 막 서른이 된 어린 나이에 정말 멋진 데뷔작을 만들어 냈는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나 표현 방식 등을 살펴보자면 더더욱 놀라운 데뷔작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영화는 미스테리의 방식으로 한 남자가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기태의 아버지이며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점이 있어 아들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수소문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는데, 이 이후에도 이 미스테리 방식은 계속 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미스테리는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전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시간의 재배열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사실 관계 등은 감각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른 곳에 있다. 아, 한 편으론 미스테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파수꾼'은 학창시절 그 누구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던 우정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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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은 기태와 희준, 동윤, 이 세 친구들의 관계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 이전에 '파수꾼'은 소년과 학교 그리고 우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흔히 가곤 하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표면적인 폭력과 사춘기 솟아나는 사랑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폭력을 권력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사실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파수꾼'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조금은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가 택한 길은 전혀 달랐다. 일단 이 영화가 폭력을 그리는 방식, 폭력의 피해자 보다 가해자(피해자인 동시에)를 묘사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극중 기태(이제훈)는 학교에서 이른바 '짱'으로 무리를 거느린 일종의 권력자다. 항상 같이 다니는 무리들 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무섭게 그리고 상대가 무력화되도록 겁을 주곤 하는 존재다. 그러던 기태가 어느 날 역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희준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이 일로 인해 희준은 큰 상처를 입고 기태를 멀리하려 한다. 

이 영화가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기태가 사과를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이유는 바로 폭력의 주체였던 기태조차 자신의 저지른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 몰랐던 것은 물론, 결국 그 결과와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어디서 잘못되었고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를 전혀 알 수 없었던 기태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그것처럼 처음부터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라, 잠깐의 실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로 인해 가해진 상처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게 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비슷한 (혹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제훈이 연기한 기태가 그 상황을 맞닥들이는 장면의 전율에 가까운 떨림은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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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평범하지 않은 동시에 더 섬세함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묘사를 들 수 있을텐데, 일단은 기태와 희준, 동윤이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 우정을 나눈 친구로 묘사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기태 역시 직간접적인 피해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태의 이런 면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 직접적인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기태는 분명 미워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추억과도 같다. 일단 영화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단서로 그의 아버지와 가족을 들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태의 아버지는 죽음 이후 기태의 친구들을 수소문해 궁금한 점들 혹은 의심되는 점들을 찾아가고 있다. 기태 아버지의 여정은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속죄의 여정에 가깝다. 어머니의 부제와 존재는 했지만 곁에 있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 이로 인해 외로움과 결핍을 겪어야 했던 기태는 주목 받기 위한 삶을 자연스레 택하게 되었고, 어쩌면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 기태의 자리를 몇 번 그대로 포갠듯이 묘사한다. 영화의 시작, 위 층에서 들리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는 아버지의 모습은, 친구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큰 상처를 받은 기태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지고, 동윤이는 같은 장소에서 기태와 기태 아버지를 모두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 아버지의 속죄의 여정이지만 그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 속죄는 없다. 후회만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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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가장 빛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묘하고 섬세한 관계에 대한 감정 묘사 부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섬세한 감정묘사가 단순히 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장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앞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스테리일지도 모른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결국 이 작품은 세 친구의 우정과 그 헤어짐을 통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된 걸까에 대한 물음이자, 아니 묻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아니 그렇게 밖에는 못했던 수 많은 관계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극 중 주인공들의 대화를 보면 핵심이 없다. '뭐' '그래서' '그래서 왜' '뭐가 어쨌는데'라는 식의 서로를 방어하고 물러서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식의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자아가 만들어져 가는 시기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이들은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이내 마음을 닫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야기는 핵심없이 겉돌고 무엇 때문에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조차 서로 알지 못한 채 안타까운 해체를 맞게 되는 것이다.

'파수꾼'은 세 친구에게 똑같은 애정을 쏟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기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크게 묻어나고 있다. 결국 희준과 동윤이 역시 기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과연 더 현명한 우정으로 이 간극을 극복할 수는 없었는지. 영화가 이 안타까움을 그리는 라스트 씬에서는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영화적 기운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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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보고나서 자연스레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 들,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1. 기태 역의 이제훈씨를 비롯해 서준영, 박정민 이 세 사람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본문에도 썼지만 기태의 그 흔들리는 눈동자와 불안하고 당황한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2. 사실 이 영화가 조금 더 개인적인 다른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 된 기차역이, 바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아는 곳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엔딩 크래딧에 원능역이 있는 걸 보고나서 역시!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저 기차길에서는 불량한 형들을 비롯해 학생들이 자주 놀 던 곳이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걸터 앉아 놀던 기억이 있어 제 학창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실제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기차길 바로 앞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메일 학교가려면 그 기차길을 지나야 했거든요.

3. 윤성현 감독과 세 배우의 앞날이 모두 너무나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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