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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콜 (A Monster Calls, 2016)

누구도 해주지 못했던 위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현실과 환상, 진실과 거짓을 넘나들며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여러 가지의 은유를 통해 전달되곤 한다. 그것은 직접적인 방식을 택할 때도, 간접적인 방식을 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장르적으로 보았을 때 현실에 더 가까운 드라마도 그렇고, 비현실적인 것들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도 그 이야기 속에는 많은 숨겨진 의미와 목적들이 있기 마련이다.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 (The Orphanage, 2007)'과 '더 임파서블 (The Impossible, 2012)'을 연출했던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신작 '몬스터 콜 (A Monster Calls, 2016)'은 바로 그 '이야기 (storytelling)'관한 영화다. 병으로 고통받는 엄마를 지켜봐야만 하는 어린 소년 코너에게, 어느 날 밤 나타난 몬스터는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말한다.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를 다 전하고 나면 네 번째에는 코너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말도 반복한다. 코너가 처한 현실과 전혀 무관한 것만 같았던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결국 네 번째 코너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위한 설득과 배려의 과정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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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혼, 가정의 불화, 가난으로 인한 고통, 친구들로부터의 따돌림과 폭력 등 어린 주인공이 어떤 결핍이나 상실로 인해 고통받고 혼란을 겪는 과정 속에서 꿈이나 환상을 통해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는 경험을 그린 이야기들은 많다. 대부분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앞서 언급했던 그 결핍의 대상들이 환상 속에서 겪는 모험을 통해 극적으로 해결되거나 극복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으로 연결되곤 한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특히 그 대상이 아직 어린 나이의 소년이라 했을 때는 더욱,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앞으로의 삶을 위해 그것이 설령 영화적이고 판타지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최대한의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를 통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도 그 의도의 선함은 의심하지 않지만 과연 더 나은 방식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을까 하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곤 했는데, 이 영화 '몬스터 콜'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성숙한 어른의 배려와 고민, 노력이 엿보이는 이야기였다. 한바탕의 모험을 통해 순간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에 못내 죄책감을 느낀 어른이 진심으로 고민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놓은 결론이랄까. 설령 이 영화의 방식이 와 닿지 않았을지언정 그 고민의 깊이 만은 공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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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찰리 카우프만의 야심작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을 보고 나서 그 심연의 심연을 거듭하는 카우프만의 욕심을 넘어선 도전적 고민의 결과물에 평소 알고는 있지만 쉽게 인정하기 어려웠던 마음속을 들켜버린 듯한 부끄러움과 공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몬스터 콜' 역시 그랬다. 솔직히 코너가 벼랑 끝에서 뱉어버린 속마음은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님 잠깐의 감정이나 고민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고민이나 경험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아무도 모르고 상관도 하지 않지만 나 스스로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운 그 고민의 지점이, 영화의 대사로 상황으로 꺼내진 순간 느꼈던 정적은 다른 작품들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경지였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 생각을 말하거나 심지어 혼잣말로도 내뱉어 본 적은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든 사실 만으로도 혼자 죄의식을 느끼고 괴롭게 만드는 일들 말이다. 흔히 '양심의 가책'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정확히 양심의 가책과는 조금 다른 괴로움이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나 생각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방향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데, 이에 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을 때 느끼게 되는 나 혼자만의 괴로움은 결코 별 것 아닌 걸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고민은 특히 결핍이나 상실에서 오는 고통의 크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거나 또는 너무 오래 지속되어 역시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까지 이르렀을 때 더 심해지게 되는데, 여기까지 버텨냈다는 건 다시 말해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미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고민은 원인이 된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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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아닌 순간의 포기 혹은 그냥 스쳐가는 생각이, 어떤 이에겐 마음속에서 일지라도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 같아 괴로운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냥 어떤 식으로든 끝나 버렸으면. 내 잘못도 아닌데 더는 못할 것 같아, 그냥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끝나버리면 차라리 좋겠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더 괴롭히고 자책하는 이에게, '그건 네 잘못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그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에 누구도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깊은 고민 없는 위로는 말 그대로 말뿐인 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몬스터 콜'의 클라이맥스에서 터져 나온 코너의 진심과 그 진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더 큰 배려로 감싸 안은 가족과 몬스터 (몬스터를 가족과 별개로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의 위로는, 지금까지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진심 어린 위로였다. 


살다 보면 수많은 위로와 충고를 겪게 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누구나 다 좋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야'라는 말은 결론적으로 그렇다는 걸 모두가 수긍할 수밖에 없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말 그대로의 의미가 진심으로 느껴져 위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다시 말해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말도 어떤 과정과 배려를 담아 전했는가에 따라 이전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내게 있어 이 영화 '몬스터 콜'은 그동안 내게 누구도 쉽게 해주지 못했던 위로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주절이 글이 길어졌지만 이 영화는 단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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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는 영화' 

'몬스터 콜'은 그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 안에 들어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고민을 나 스스로 꺼내 놓게 만들고 그것만으로도 위로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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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원 : 스타워즈 스토리 (Rogue One: A Star Wars Story, 2016)

새로운 희망은 어떻게 탄생했나


J.J. 에이브람스의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2015)' 이후 새롭게 선보인 스타워즈의 새 영화는 다름 아닌 에피소드 3의 프리퀄 격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피소드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로그원'이라는 별도의 제목을 갖은 이 영화는 기존 스타워즈 에피소드 시리즈들과 유사하면서도 차별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차별점부터 이야기해보자면 '로그원 : 스타워즈 스토리'에는 제다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등장 여부를 두고 혹여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바꿔 말해보자면, 제다이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따져보자면 오리지널 3부작 이야기에 중심이 되는 배경인 데스스타가 다시 한번 중요한 설정으로 등장하는 영화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가장 큰 흥미이자 중심이기도 한 제다이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로그원'의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스포일러라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 단점은 영화의 마지막, 아주 잠깐의 순간을 통해 해소돼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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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원 : 스타워즈 스토리'를 홍보할 때 '기존 스타워즈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최초의 스타워즈'라는 식의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스타워즈의 팬 입장이 아니라면 쉽게 즐기기는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해서, 만약 스타워즈의 팬이 아니라면 이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단점으로 고스란히 느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중반 이전까지 '로그원'의 전개는 맥락만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는 식이고 캐릭터 역시 등장 이상의 공감 포인트를 전달하는 것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스타워즈 특유의 화면 전환 방식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각각의 이야기는 이 세계관이 익숙한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감안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눈요기가 끝나면 다른 눈요기가 등장하는 것 이상의 흥미는 아마도 주지 못할 듯싶다. 중반부를 넘어서면 스타워즈 시리즈 가운데도 역대급의 우주전과 지상전이 그야말로 화려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재미가 있지만, 중반 이전까지는 확실히 팬의 입장에서 보아도 단조롭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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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오랜 팬으로서 '로그원'이 재미있는 영화라는 것은 단순히 팬이라 대부분의 단점을 이해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로서 은연중에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재미와 감동들이 이 영화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오프닝 타이틀과 음악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엄청난 이질감으로 다가왔지만 (아마도 에피소드 시리즈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강조하기 위함인 듯), 에피소드 3과 4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익숙한 반란군과 제국군의 전함들과 전투기들, 그리고 익숙한 스톰 트루퍼들의 모습과 스치듯이 묘사되는 낯익은 캐릭터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은 아마 이 영화 스스로도 이 장면이 이 정도의 감동과 슬픔을 주게 될 줄은 몰랐을 맨 마지막 장면과 그 이전 다스베이더가 등장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스베이더의 그 짧은 장면은, 과장을 더해서 이 장면 하나 만으로도 이 영화를 충분히 볼 만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포스와 감동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캐릭터가 갖는 힘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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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장점 가운데 '로그원'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프리퀄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즉,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이 영화를, 특히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에피소드 4를 다시 보고 싶어 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쩌면 무심히 보고 지나쳤던 에피소드 4의 첫 시퀀스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연결 고리였다고 생각된다. 프리퀄 성격을 갖는 작품들의 경우 간혹 과하게 연결 고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후편의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설명하려 드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보다는 '로그원'처럼 아주 최소한의 연결 고리만을 자연스럽게 완성해 내는 편이 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을 보면서 어쩌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점. 그 새로운 희망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탄생했는가에 대한 점을 비로소 떠올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과 동시에 전혀 예상치 못한 캐리 피셔 (레아)의 죽음으로 인해 바로 이 지점, '로그원'과 '새로운 희망'의 연결 지점이 더 큰 감동과 의미를 갖게 된 것도 이 영화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 점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당당하고 멋진 여성상을 보여주었던 레아 그리고 캐리 피셔의 명복을 빌며.


May the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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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리 피셔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그날 늦은 밤 보게 된 '로그원'은 정말 의미가 남다르더군요. 마지막 장면 ㅠㅠ

2. 매즈 미켈슨이라는 배우를 좀 더 활용했으면 어땠을까도 싶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건 포레스트 휘태커가 연기한 캐릭터. 이 캐릭터는 막말로 등장 안 했어도 전혀 상관없는 정도로 활용되는 것에 그치는데... 참 아쉽;;

3. 견자단이 연기한 치루트 캐릭터는 호불호가 좀 강하게 나뉠 것 같아요. 특히 팬들 사이에서. 음... 전 좀 아쉽.

4. 진 역할을 맡은 펠리시티 존스의 얼굴에서 여러 번 루크 (마크 헤밀)의 얼굴이 겹쳐지더군요. 그 표정 있어요 ㅎㅎ

5. 돌비 애트모스 포맷으로 보았는데 화려한 우주전에서 확실히 애트모스 사운드의 활용도를 최적으로 즐길 수 있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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