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에 : 블루레이 리뷰 (Amelie : Blu-ray Review)
드디어 제대로 된 화질과 사운드로 만나다!
 


프랑스 출신의 감독 장 피에르 주네의 대표작 '아멜리에 (Amélie, 2001)'가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 '아멜리에'는 독특한 영상 세계를 추구하는 장 피에르 주네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니, 한 때 그의 세계관에 흠뻑 빠져있었던 때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역시 1991년 작 '델리카트슨 (Delicatessen, 1991)'이었다. '델리카트슨'은 약간 기괴함이 있으면서도 독특한 영상미와 코미디와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가 묘하게 결합된 이야기로 단숨에 장 피에르 주네를 영화 팬들 사이에서 주목 받는 감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장 피에르 주네의 작품에 더욱 빠져들게 했던 작품은 바로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La Cite' des Enfants Perdus, 1995)'였다. 이 작품의 인상은 아주 깊어서 아직까지도 가끔 꿈에 나올 정도로 아른거리곤 하는데, 확실히 내용 보다는 이미지가 남는 장 피에르 주네의 특성이 잘 표현된 작품이었다. 어둡고 기괴한 크리쳐와 배경들 속에서도 묘하게 감성적이고 또 은근히 웃긴 캐릭터들과 이야기는, 짧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상미에 최적화된 결과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통해 장 피에르 주네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짐은 물론이요, 론 펄먼과 도미니크 피농 같은 배우들을 각인시킬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참고로 '아멜리에'에도 출연하고 있는 도미니크 피농의 경우 장 피에르 주네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앞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독특한 스타일의 세계관을 표현하기에 그 만큼 딱 맞는 마스크를 갖고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는 '아멜리에'에서도 '죠셉'역할을 맡아 작은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주목을 받은 뒤 헐리웃으로 바로 캐스팅되어 만든 작품이 '에일리언 4 (Alien : Resurrection)'인데, '에일리언'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기존과는 다른 화법의 작품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지만, 장 피에르 주네의 팬들에게는 사실 그가 '에일리언'과 같은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감독으로 캐스팅 되었다는 자체가 놀라움과 기대를 동시에 갖게 되는 사실이었고, 작품 역시 기존 그의 스타일이 곳곳에 묻어나 있어서 (여기에도 물론 론 펄먼과 도미니크 피농이 출연하고 있어서 더욱 더!)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01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만든 작품이 바로 오늘 소개할 '아멜리에'인데, 이 작품은 기존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기괴함은 덜하고 오히려 사랑스러움이 증폭된 로맨틱 코미디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와는 물론 다른 화법으로 전개된다)로서 다시 한번 장 피에르 주네라는 이름을 확고히하게 한 작품이었다.





'아멜리에'는 조금은 괴팍한 그의 영상철학을 숨기기는 커녕 오히려 과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바로 이점이 오히려 더 많은 영화 팬들에게 그의 영화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만들어 냈고, '만화같은 장면'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카메라와 배우, 영화라는 매체 (배우가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관객에게 얘기하는 것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그만의 상상력이 극대화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오드리 토투가 연기한 아주 사랑스러운 주인공 아멜리에 라는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마치 히어로물을 통해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크리스토퍼 리브 (슈퍼맨)나 토비 맥과이어 (스파이더 맨)처럼 영화팬들이 오드리 토투라는 이름 만큼이나 (이름보다는) '아멜리에'라는 이름으로 더욱 기억할 만큼, 캐릭터와 배우가 완전한 싱크로를 보여준 흔치 않은 경우였다.




Blu-ray : Menu






노바미디어에서 라이센스로 출시한 블루레이의 경우, 기존 출시된 DVD를 단순히 화질/사운드만 HD급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출시한 것이 아니라, DVD출시시 문제로 지적되었던 부분들 및 여러가지 섬세한 부분들에 신경을 썼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메뉴 디자인 역시 그 중 하나다. 작품에 걸맞게 편지봉투 형식으로 표현한 것은 물론 'To. Blu-ray fans Korea / From. Jean-Pierre Jeunet'라는 로컬라이징 메시지가 특히 돋보인다. 참고로 블루레이 메뉴에는 아래 스크린샷과 같은 이스터에그도 숨어 있음으로, 한 번쯤 리모컨을 요리조리 조작해 보면 좋을듯.



Blu-ray : Quality

'아멜리에'는 장 피에르 주네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한 것처럼 화질 측면에서 블루레이가 몹시도 기다려졌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DP 리뷰 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이 직접 블루레이 트랜스퍼를 감수하에 디지털 복원된 프랑스 TF1 제공의 소스를 원본으로 제작되었다. 우수한 원본과 꼼꼼한 제작과정을 통해 탄생한 '아멜리에' 블루레이의 화질은, 예전 기억 속에 어렴풋이 있었던 이 작품만의 영상미를 블루레이에 걸맞게 선명한 화질로 구현하고 있다. 

(아래의 스크린샷을 클릭하면 원본사이즈로 보실 수 있습니다)



10년 전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물론 최고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으며, 최신작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는 화질을 보여준다. 특히 '아멜리에'가 담고 있는 다양한 '색'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아멜리에'를 만나게 되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DTS HD : MA 5.1 채널의 사운드 역시 아기자기함을 잘 살려냄은 물론, 기분 좋아지는 샹송의 분위기를 넉넉하게 담아내고 있다. 사실 '아멜리에'는 워낙에 영상미 측면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 음악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블루레이를 통해 제대로 듣게 된 영화 음악은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영상에 딱 맞도록 입혀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영화 음악 외에 영상에 곁들여져 있는 다양한 효과음들의 선명도도 우수해, 작품의 톡톡튀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으로는 첫 번째로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영화에 사용된 CG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물론 캐스팅 비화와 장면장면에 대한 소소한 뒷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번 블루레이에는 기존 DVD에 수록되었던 부가영상들 외에 새롭게 HD영상으로 추가된 영상들이 있어 더욱 소장가치를 높이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눈여겨 볼 만한 부가영상이 바로 '마스터 클래스 : 장 피에르 주네'이다. 약 45분 분량의 마스터 클래스로서 장 피에르 주네의 감독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그가 영화 감독을 꿈꾸게 했던 동경의 대상이 된 작품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영화를 만들며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어떤 점인지, 그리고 '아멜리에'의 대한 이야기도 전해들을 수 있다. 특히 이 마스터 클래스는 개봉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진행된 인터뷰로서 현재시점에서 '아멜리에'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듯 하다.





'장 피에르 주네 : 인터뷰'와 '메이킹 오브 홈 무비'를 비롯한 이외의 부가영상들은 SD영상으로 제공되는데, 기존 DVD에 수록되었던 영상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을 모두 보완하여 수록되었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한다. 정상적인 화면비는 물론이고 한국어 자막 역시 모두 다시 체크하여 오류나 잘못된 해석이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수정 및 보완이 이루어졌는데(본편과 음성해설 역시 마찬가지의 작업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같이 열악한 블루레이 시장에서 블록버스터 대박 신작 타이틀도 아닌 작품성에 보다 비중이 있는 구작 타이틀의 출시에 이 정도로 노력이 들어갔다는 것은 거의 '놀라움' 수준의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DVD와는 비교자체가 불가한 화질과 사운드 만으로도 충분한 소장가치가 있는 타이틀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쩌면 다수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던 부분들까지 꼼꼼하게(긍정적 의미의 꼼꼼함) 신경 쓴 탓에 더욱 완벽한 블루레이 타이틀로 평가받을 수 있겠다.





'배우 오디션 장면'과 'NG장면'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등에서 역시 SD급 영상이기는 하지만 기존 DVD보다는 나은 화질 개선 작업이 병행되었고, 역시 화면비 등도 개선되어 좀 더 정상적인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관객과의 대화는 참여한 감독과 배우들 간의 소탈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메이킹 영상에서는 촬영 전 다양한 헤어스타일의 변신을 통해 아멜리에 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프로모션 예고편들과 더불어 장 피에르 주네의 단편 '하찮은 일'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단편에서도 역시 도미니크 피농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둘의 관계에 관심있는 팬들이라면 이 단편 역시 꼭 챙겨야할 컬렉션 중에 하나가 될 듯 싶다.




[총평] 10년만에 블루레이로 다시 만나게 된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는 사실 그의 팬으로서도 전혀 기대하고 있던 바가 아니여서인지 (설마 나올까 하는 생각 때문에;;), 1차적으로는 BD 출시 사실 자체가 놀라웠고 2차적으로는 단순한 업그레이드 수준이 아니라 세심한 보완들이 더해진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도 잠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현재 국내 블루레이 시장의 현실이 장인정신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아멜리에' 블루레이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블루레이 스펙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점들이 넘치는 것은 물론이지만, 결국은 영화다. 10년 전 '아멜리에'를 보며 이 묘한 러브 스토리에 스르륵 빠져들었던 팬들에게, 최고의 판본으로 다시금 '아멜리에'를 만나게 해 줄 선물이 될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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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Un Prophète, 2009)
범죄를 통한 사회화 과정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신작 <예언자>가 눈에 들어왔던 가장 큰 이유는, 왠지 모를 제목의 위엄 때문이었다. '예언자'라는 제목은 쉽게 줄거리를 예상하기 어려운 제목이기도 하고(제목은 '예언자'인데 영화의 줄거리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무언가 단어자체에서 오는 무게감과 위압감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게 된 프랑스 영화 <예언자>는 이런 위엄으로 시작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들었던 다른 '위엄'들이라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전미 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등의 수상 소식과, <대부>를 잇는 걸작이라는 호평들이었는데 사실 언제부턴가 갱스터 영화 혹은 범죄 수작 영화들에 <대부>와의 비교가 빠진 적이 없다는 것을 들어 크게 관여치는 않았다. 그렇게 보게 된 <예언자>는 <대부>와는 조금 다른, 굉장히 개인적이면서도 그 개인의 사회화에 과정을 범죄로 녹여낸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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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 19살의 말리크는 감옥은 물론 외부에도 친구도 가족도 없으며,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자이다. 이런 무적, 무취의 말리크는 코르시카 계 갱들에게 이용되어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이로부터 그의 감옥 내의 삶과 전체적인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예언자>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주인공인 말리크 (타하 라힘)의 변화 과정이다. 그의 입소과정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말리크가 얼마나 비어있는 백지와 같은 상태인지를 인지시킨다. 그리고 관객에게도 급작스럽게 말리크가 범죄에 어떻게 이용되고 그 과정과 이후에 그에게 어떤 심리변화와 외부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역시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한다. <예언자>는 완전히 범죄 영화의 범주로만 봐도 상당한 수작이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코르시카 계와 아랍계 간의 세력 다툼과 감옥이라는 공간에서만 가능한 각종 상황들의 묘사 그리고 조직의 막내 격으로 들어오게 된 인물이 보스에 가까운 영향력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예언자>는 괜찮은 범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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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결국 백지와도 같았던 한 인물의 사회화 과정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더욱 다이나믹한 감옥과 범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과정을 지켜보는 묘미가 더욱 컸다. 감옥이란 한정적인 공간의 특수성도 있지만,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말리크가 (그의 눈빛과 행동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를 대하는 사회 역시 어떻게 변해 왔는지가 잘 나타난다. 처음에는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했던 말리크는 점점 그 심부름 외에 다른 자신만의 비지니스를 열어가고, 이 사회의 생리를 파악하면서 이 어울리지 않았던 옷을 자신만의 맞춤 옷으로 점차 만들어 간다.

이것이 만약 전형적인 범죄영화였다면 감독의 의도가 조금은 빗겨나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이스턴 프라미스>를 통해 조직과 범죄가 아닌 '폭력'의 역사와 폭력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듯이, 자크 오디아르는 말리크의 성장에 조직이라는 범죄 요소를 드리우긴 했지만, 그것이 주가 아니라는 듯 여러가지 영화적 시도와 감수성 넘치는 편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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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가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굉장히 감수성 넘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얼핏 '이렇게 삭막하고 빠삭하게 말라있을 법한 영화에서 풍부한 감수성이라니?'라고 의문을 갖을 수도 있겠는데, 자크 오디아르는 이 무섭도록 무거운 현실의 비상구로 영화의 중간중간 감수성이 넘치는 장면들을 삽입하고 있다. 영화의 인트로 부분에서 살짝 소개되었던 화면 방식(좁은 구멍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듯한 앵글)은 말리크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가끔씩 등장하는 마치 '다른 세계'로 느껴지는 영상과 장면 전환은 자칫 무겁게만 흘러갈 법한 영화에 묘한 리듬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냥 범죄 영화였다면 없어도 되었을 법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처음 말리크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대상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더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겠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이 캐릭터의 의미는 '예언자'라는 제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보는 동시에, 감옥 안팍에서 조직 간에 벌어지는 사건들의 긴장감 외에 말리크가 겪는 내적인 갈등 들을 잘 나타낸다. 이런 캐릭터의 묘사는 상당히 과감한 연출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과감함이 영화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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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촬영 부분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장면마다 앵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감옥이라는 공간의 한계성을 잘 담아낸 구도도 좋았다. 그리고 디지털 상영의 우수한 화질과 더불어 잡티 없이 깔끔한 실내 장면들의 영상은 마치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을 보는 듯한, 그러니까 극 사실적인 묘사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것이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의 명연기와 만나 더더욱 깊은 몰입도를 이끌어낸 듯 하다.

<예언자>는 오랜만에 본 프랑스 영화이기도 했지만, 처음 보는 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장이기도 했는데, 주연을 맡은 타하 라힘과 '세자르' 역할을 맡은 닐스 아르스트럽의 연기는 그야말로 수상 감이라 할 수 있겠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국내 개봉 포스터 속 타하 라힘의 모습은 마치 거스 반 산트의 남자들 같다) 마스크의 타하 라힘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발견 포인트일텐데, 불안함을 잘 담아낸 눈동자와 복잡한 심리 상태를 관객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해내는 연기력은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자르 역할의 닐스 아르스트럽 역시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긴 했는데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본 작품이라고는 <잠수종과 나비> 뿐이고, 이 작품에서 그의 모습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끝까지 영화의 무게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멋진 연기였으며, 나중에는 결말에가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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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는 여러가지로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2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 타임에도 주인공의 이야기에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었으며, 범죄 영화에만 몰입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어 더욱 좋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주절주절 말을 많이 늘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 <예언자>였다.


1. Nas의 곡(
Bridging The Gap)을 극장에서 빵빵하게 들으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진짜 이부분의 사운드가 더 임팩트있기도 해요.

2.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든 개인적인 생각은 프랑스 감옥이 참 좋다는 것 -_-; 기본적으로 담배나 술 등도 마음껏 마시고, 고시생은 엄두도 못내밀며 웬만한 원룸 사용자들도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시스템이 갖춰진 감옥 시설이 부럽기까지;;;; 나중에 개인플레이어로 DVD까지 보는데 ㅠㅠ

3. Sigur Ros 곡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4.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화질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습니다. 인물들의 클로즈업이 될 때는 정말 HDTV를 통해 보는 것 같더군요. 이로서 블루레이 구입은 확정입니다;

5. 극장이던 블루레이/DVD던 다시 봐야 좀 더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hy Not Productions. 판씨네마 에 있습니다.






버터플라이 (Butterfly, Le Papillon, 2002)
노인과 아이가 벌이는 현문현답(賢問賢答) 로드무비

2002년작인 프랑스 영화 <버터플라이>는 2006년에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있는데, 정식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위드블로그와 함께한 시사회 기회를 통해 영화를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사실 2002년 작이라는 점도 그렇고,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저 '착해만 보이는' 아우라 때문에 그다지 보려고 애초부터 기획했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앞선 이유로 보게 된 영화는 생각보다는 덜 심심했고, 나름 이야기 거리를 담고 있었으며, 예상했던 대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본 어제 명동 거리는 몹시도 추웠는데, 나비가 나는 따뜻한 풍광을 담은 영상과 노인과 아이가
주고 받는 알콩달콩한 대사들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마음 한 켠을 조금이나마 뜨듯하게 뎁혀주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출발 스포일러 여행 등을 통해 이미 알려져다시피 포스터에 등장하는 노인과 아이가 길을 떠나면서 벌어지게 되는 작은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나비를 수집하는 할아버지 줄리앙과 이집 위층에 사는 외로운 소녀 엘자는 우연한 기회에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1년 내내 딱 며칠만 만나볼 수 있는 희귀한 나비 '이자벨'을 채집하려 떠나는 줄리앙의 여행에,
부모님이 잘 돌보지 않아 항상 외롭던 엘자는 줄리앙의 동의 없이 함께 하게 된다. 이렇게 떠나게 된 여행은 뒤늦게 딸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엘자의 엄마에 의해 경찰에 실종 신고가 되고, 줄리앙과 엘자의 여행은 일종의 납치극으로 세상에
비춰지게 된다. 좀 더 코믹함을 강조하려는 영화였다면 납치극으로 오해된 과정을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뤘겠지만,
<버터플라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나중에 엘자 엄마와 줄리앙을 만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연결고리일 뿐이고 영화의 중심은, 이 둘의 여행과 그 과정 속에 담겨있다 하겠다.

엘자는 항상 외로운 자신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러움을 넘어서 영특한 소녀라 할 수 있는데,
일단 관객은 이 맹랑한 소녀 엘자와 노년의 줄리앙의 대화 속에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때로는 너무 어른스럽고 때로는
너무 철없는 질문들은 던지는 엘자에게 줄리앙은 때로는 친손녀처럼 다정하게, 때로는 너무 귀찮아 신경질도 내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서 둘을 점점 서로를 배워가게 된다. 아이는 노인에게. 노인은 아이에게 말이다.




포스터에서 벌써 알 수 있었듯이 이 영화는 아이와 노인이 관계를 맺는 전형적인 영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과 아이가 등장한다고 해서 철없던 아이가 노인에게 지혜를 배워 결국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로 마무리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츄어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왜 이래, 아마츄어같이). 대부분 노인과 아이가 등장하는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노인이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설정이 대부분인데, <버터플라이>역시 마찬가지다.
줄리앙은 여러 종류의 나비를 수집하는 일종의 수집가인데, 그가 이렇게 나비 수집에 몰두하게 된 이유는 영화 중반에야
등장한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전쟁터에서 먼저 떠나보낸 기억 탓인데,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은 줄리앙을
나비 수집이라는 일종의 도피처를 갖게 했고, 그것으로서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 항상 자신을 족쇠고
있는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줄리앙은 엘자와 함께 여행하게 되면서 점차 하나 둘 씩 깨닫게 된다.

사슴을 잡는 것은 밀렵 행위고 나비를 수집하는 것은 고귀한 행동으로 넘어가려던 안이한 생각은, 순수한 소녀의 눈에는
똑같은 나쁜 행위로 보였을 뿐이고, 가장 단순하고 뻔한 질문들만 던지는 엘자의 물음에 답하면서 줄리앙은 잊고 있었던,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쉽게 인정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인정하는 방법을 점차 배우게 된 것이다.
중간에 들린 민박집에서 계속 고장한 시계만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이는 은유적으로 줄리앙의 삶을
표현하고 있고, 이 고장난 시계를 줄리앙이 수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은유라 할 수 있겠다. 마치 가지도 않는 시계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처럼 줄리앙은 돌이킬 수 없는 일에(다른 말로 하면 꼭 자신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에),
죄책감을 버리지 못하고 아파했던 것인데, 이 고장난 시계를 줄리앙이 직접 수리해 준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 이 짐을
벗어버리는 점을 배우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앙에게 엘자는 매개체라고 보면 되겠다. 줄리앙은
이 꼬마소녀의 맹랑한 대답들처럼 다 알고는 있지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엘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버터플라이>가 전형적인 로드무비라고 보기는 어렵짐나, 이 영화의 주제는 로드무비라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로드무비라는 것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려고 길을 떠나곤 하지만, 따지고보면 대부분은 길 위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길 위의 것들을 통해 처음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었던 것을 깨우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터플라이>는
줄리앙의 로드무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그렇게도 희귀하고 갖고자 했던 나비 '이자벨'을 스스로 놓아주는
장면은, 드디어 줄리앙이 아들을 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 것을 상징한다(이자벨을 찾으려고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사실은 처음부터 이자벨의 애벌레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설정은, 주제를 설명하는 매우 직접적인 은유일 것이다).
엘자 엄마의 이름이 '이자벨'이라는 것은 이 영화가 숨겨놓은 귀여운 설정 중 하나였다. 원제인 '나비(Le Papillon)'에서도
알 수 있듯, 고치를 벗고 스스로 나와야만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줄리앙에게 씌워진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 영화 초반 엘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아이의 순수함에서만 던질 수 있는 이른바 '현문'이다. 어린 아이와 나이 많은 노인은
서로 닮아 있는 것처럼, 엘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표현에 있어서는 단순하지만 때묻은 어른들이 선뜻 대답하기에는 쉬운 질문들이
아닌데, 줄리앙 역시 처음에는 어른의 시각으로 '왜 이런 질문들을 하느냐'라는 식의 '우답'들을 내어 놓는다.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래딧에는 두 배우의 문답 형식으로 이뤄진 노래가 흐르는데, 이 가사들을 보면 영화 초반에는
'우답'들을 내어놓던 줄리앙이 이 노래 속에서는 엘자의 '현문'에 맞춰 '현답'들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문현답 (愚問賢答)'이 아닌 '현문현답 (賢問賢答)'. 이 곡이 단순히 귀여운 불어발음과 재미있는 가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엘자를 연기한 클레어 부아닉은 그 깨물어주고 싶은 불어 발음과 더불어 웨인 루니를 연상케 하는 외모까지(웨인 루니의
귀여운 모습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수긍할 수 있을 듯), <버터플라이>의 전체 온도를 2도 쯤 상승시키는 귀여움을 선보였다.
어른스러운 아이, 맹랑한 아이 캐릭터는 여럿 있어왔지만, '엘자'를 보면서 크게 지루함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프랑스의 유명배우인 미셸 세로의 편안한 연기도 엘자와 좋은 콤비를 이뤘던 것 같다(참고로 미셸 세로는 200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화려하고 치밀한 영화들 가운데 <버터플라이>는 분명 조금은 심심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심심한 영화치고는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였다.


1. 돌틈에 대신 들어간 그 남자아이는 어찌되었는가?
 '난....혼자 몸이 작았을 뿐이고, 그냥 할 수 있냐길래 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고, 이미 몸에 로프 감겨 있고!, 엄마 보고 싶고 ㅠㅠ'

2. 예전 조르디가 불렀던 노래 이후 오랜만에, 아이가 부른 중독성있는 (불어로 부른) 곡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슬아~' 이후 대화체로 이뤄진 인상적 곡이기도 하고 ㅎ



3. 아무리 프랑스에 사는 할아버지 라지만 'NBA'를 모르다니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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