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웨스 앤더슨의 로맨스 동화



웨스 앤더슨의 작품은 확실히 좀 '이상한' 사람들이 좋아한다. 나도 그 이상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로열 테넌바움' '판타스틱 Mr.폭스' 등의 작품을 보면 대중적으로 친화력이 있다기 보단 조금은 성격있는 작품들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사랑 받는 건, 그 인물들이나 배경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신작 '문라이즈 킹덤'은 사전 공개된 이미지들 만으로도 이 귀여움과 아기자기함이 폭발할 것만 같다는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결과 '문라이즈 킹덤'은 웨스 앤더슨의 방식으로 귀여움의 포텐이 폭발한 작품인 동시에 제법 진지한 로맨스 영화였다. 아, 물론 이번에도 동화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 Indian Paintbrush. All rights reserved


일단 '문라이즈 킹덤'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카메라 구도였다. 전작인 '판타스틱 Mr.폭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인물을 정가운데에 무조건 위치시키고 좌우 정확한 대칭을 만들고자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라이즈 킹덤'은 다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내러티브의 영화라기 보단 이미지 자체의 영화라고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측면에서 이 강박적이기까지한 구도는 기억에 강하게 남는 이미지들을 여럿 생산해 낸다. 과장을 조금 보태 '문라이즈 킹덤'의 어떤 장면도 액자에 넣어 보관하면 그럴싸한 그림이 될 정도로 이 구도는 영화만을 위해서라기 보단 독립적인 이미지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 워킹에 있어서도 수평적인 이동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방식은 웨스 앤더슨이 신경써서 만들어낸 영화의 소품들과 배경들을 관객이 효과적으로 발견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마치 동화책을 넘기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어쩌면 '문라이즈 킹덤'은 스토리의 내러티브보다는 카메라가 움직이는 대로의 내러티브에 더 충실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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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문라이즈 킹덤'은 최근 본 어떤 작품들보다 소품과 디자인에 가장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지만 사실 그 사실을 몰라도 상관없을 정도로 이 영화의 배경과 소품, 디자인들은 60년대에 머물러 있다기 보다 문라이즈 킹덤이라는 독특한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신경쓰지 않은 아이템이 없는 듯한 영화의 이미지는 답답하거나 밀도가 높다고 느껴지기 보다, 오히려 편안하고 동화같은 느낌을 준다. 컬러는 다양하지만 강렬하기 보다는 파스텔 톤에 가깝고, 그렇다고 이들의 조합이 힘이 빠져보이기 보다는 살아있는 (만지고 싶은) 느낌을 주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은 얻게 된다. 사실 이 영화를 다 보고나면 특별히 무엇이 남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럼에도 지루하거나 별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웨스 앤더슨이 만들어낸 묘한 세계관 때문이며 그 때문에 매번 그의 영화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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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재미있는 건, 브루스 윌리스,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프랜시스 맥도먼드, 틸다 스윈튼, 하비 키이텔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배우들이 즐비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이들이 기억나기 보다는 두 어린 주인공만이 뇌리에 남는다는 점이다. '오!! 브루스 윌리스가 나와!'하며 기대하고 봤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웨스 앤더슨의 전작을 하나라도 봤던 관객이라면 브루스 윌리스를 비롯한 연기파 배우들의 이런(?) 활용에 오히려 더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두 어린 주인공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동화일 것이라는 점은 예상을 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로 강렬한 로맨스 영화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문라이즈 킹덤'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과 이야기들은 분명 동화이지만, 그 중심에 있는 샘과 수지의 이야기는 이들이 어린 아이라는 점만을 제외하면 그 어떤 로맨스 영화 못지 않은 강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그냥 아이들의 사랑이 귀엽다' 정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로맨스 영화의 측면으로도 이해가 되었다는 얘긴데,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의 조합을 웨스 앤더슨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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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은 그의 팬들에겐 종합적인 선물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만의 귀여움과 건조한듯 하지만 깨알같은 캐릭터들, 그리고 하나 하나 갖고 싶지 않은 것이 없는 아이템들이 즐비한 소품과 이미지들까지. 포스터와 미니 캘린더는 득템했으니 이제 사운드 트랙을 질러야겠다.




1. 두 아역 연기자의 얼굴과 이미지가 강렬했어요. 특히 수지 역의 '카라 헤이워드'는 다른 작품에서는 어떨까 벌써부터 기대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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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속과 같은 저런 섬에서 저런 아이템들과 함께 한다면 몇 일간은 평화로운 휴가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Indian Paintbrush 있습니다.


 




번 애프터 리딩 (Burn After Reading, 2008)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번 애프터 리딩>은 어지간한 영화 팬이라면 도저히 관심이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라인업으로 먼저 눈길을 끄는 영화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에서 호흡을 맞추었고 아카데미까지 수상했었던 틸다 스윈튼과 조지 클루니가 다시 한번 함께 출연하고 있고,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존 말코비치, 그리고 미드 <식스 핏 언더>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리차드 젠킨스, 여기에 아마도 '오션스..'시리즈를 통한 조지 클루니와의 커넥션으로 함께 한 듯 싶은 브래드 피트까지. 그야말로 오랜만에 보는 초호화 캐스팅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라인업을 완성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연출을 맡은 코엔 형제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무시무시한 자신들의 연출력을 새삼스레 만인하게 공표했던 그들이 이런 호화 캐스팅을 데리고 코믹 스릴러 물을 촬영했다는 소식에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어쩌다보니 마치 만우절 낚시글 마냥 부제목을 지어버린 꼴이 되버렸지만, 사실 저 만한 부제목도 없을 듯 하다.

'아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이후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살짝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선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아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는 영화의 맨 마지막 대사이기도 한데,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코엔 형제는 이 대사 한마디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는 영화를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싶다. 맨 마지막에 이런 대사를 시원하게 넣기 위해서 100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알차게 만들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맞대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사실 맨 첫 시퀀스부터 속으로 웃음을 참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예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정통 스릴러라기 보다는 '코믹'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는데, 위성에서 잡은 듯한 시점에서 CIA본부 건물로 시선이 잠입하여 복도를 걷는 발 밑 시점으로 옮겨가는 카메라 워킹은, 이런 '요원'이 등장하는 전형적 스릴러 물에 대한 조롱과 더불어 풍자가 담긴 오프닝 시퀀스로서, 이 영화가 기존 것들에 대한 풍자의 메시지를 들려줄 것이라는 것을 바로 짐작할 수 있는 재기넘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코미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요소는 다름 아닌 영화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번 애프터 리딩>의 영화음악은 굉장히 장황하고 장르적이다. 장르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스릴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 그러니까 서스펜스를 고조시키기 위해 삽입된 음악들 - 코드의 음악들을 이 영화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데, 관객이 이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굉장히 장황하고 오버스럽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가 '코믹'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긴 했지만, 만약 몰랐다 하더라도 영화 음악을 통해 눈치챌 수 있었을 듯 싶다. 그래서 음악을 맡은 카터 버웰의 전작들은 어떤 것이 있었나 살펴보았더니, 이분 완전히 코엔 형제와 콤비가 아닌가. 가장 최근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물론이고, <레이디 킬러>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파고> <밀러스 크로싱> 등 까지 거의 모든 작품의 영화음악을 도맡았던 음악감독이었다. 코엔 형제의 영화들 외에도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칼리포니아>를 비롯해 <컨스피러시>, 무려 <벨벳 골드마인>,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그리고 최근작 <킬러들의 도시>까지. 왜 그 동안 카터 버웰이라는 이름을 몰랐었는지가 의아해질 정도의 필모그래피였다. 앞으로는 스탭롤을 볼 때 카터 버웰 이라는 이름을 절대 잊지 않을 것 같다(늦었지만 ^^;).




'거대한 농담'이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단순히 '농담'을 하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농담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라고 해야겠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매우 다양한 캐릭터들을 배치시키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떤 연관성과 우연성으로 얽히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다 같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가를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코엔 형제만의 놀라운 스토리텔링 능력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씁쓸함이 묻어나는 풍자의 메시지도 얻을 수 있다. 일단 가장 큰 풍자는 바로 CIA나 FBI 같은 거대 첩보조직에 관한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은 아무 일도 아닌, 매우 사소하고 사적인 일들을 항상 확대 해석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확대조치하는 그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결말에 가서 이를 그냥 제거하고 입을 막는 것으로 너무 쉽게 마무리하려는 그들의 행동들을 보면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라는 대사는 그 대사를 읊은 인물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바로 영화 속에 살아있는 캐릭터들이다. 이 캐릭터들은 어찌보면 굉장히 과장되고 별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극히 현실적인 캐릭터들 뿐이다. 부인 몰래 외도를 하고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나서는 반드시 조깅을 해야만 하는 집착을 보이는 해리 파러(조지 클루니)는 이야기 할 때 약간의 버릇이 있고 까탈스러운 면도 보이지만 수많은 인간 군상중의 하나일 뿐이고, CIA분석가로 일하다가 좌천되고 나서 사표를 내고 부인에게까지 이혼당할 위기에 처한 오스본 콕스 역시 또 다른 군상이라 할 수 있겠다. 스포츠센터 직원으로 더 나은 몸을 만들기 위해 전신 성형을 지상과제로 삼고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남성들과의 만남을 갖는 린다 리츠키 (프랜시스 맥도먼드), 이혼 전에 꼼꼼히 남편의 제정상태 등을 살펴보며 치밀하게 준비하는 까칠한 성격의 케이티 콕스 (틸다 스윈튼), 약간 모자란듯 하지만 순수하고 자신의 세계에 푹 빠져있는 채드 (브래드 피트), 마지막으로 같은 직장에 다니는 린다를 멀리서만 짝사랑하는 매니저 테드(리차드 젠킨스)까지.

이들 개인의 캐릭터는 사실 우리가 영화에서 만나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하자면 굉장히 현실적인 캐릭터들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이들이 처한 상황들도 크게 이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작은 사건들이 하나하나 결합되게 되면서 별 것 아니었던 혹은 없었을 수도 있던 일은 커지게 되고, 의도하지 않았던 죽음과 사건이 발생되게 된다. 이 같이 작은 인과관계들이 맞물려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을 발생시킨다는 것은 이 영화가 말하려는 또 다른 풍자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뭐 아무리 풍자와 메시지를 떠들어도 결국 이 영화는 코엔 형제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영화 내내 키득키득하며 즐길 수 있는 유쾌한 영화였다. 일단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후 정반대로 작정하고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코믹함을 보여주는 방식도 어찌나 코엔형제 스럽던지 보는 내내 그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영화였다. 영화 자체가 굉장히 힘을 빼고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으면서도 가볍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으며, 전체적으로 커다란 에피소드 하나를 쏙 빼내어 감상한 느낌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항상 진지한 연기들로 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배우들의 또 다른 진지한 연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여기나온 배우들이 대부분 자신의 이미지를 뒤 엎는 캐릭터들을 한 두 번씩은 이미 선보였었다는 점인데,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고 신선하기까지 했던 이유는 물론 코엔 형제가 만든 캐릭터와 이를 숨쉬게 한 배우들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캐릭터를 고르라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채드'를 꼽을 수 있을텐데, <벤자민 버튼....>으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캐릭터를 최근 연기한 브래드 피트의 이 영화 속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튀는' 캐릭터였다. 그 싸보이는 헤어 스타일부터 시작해 그 저렴한 춤사위며 몸동작들은 역시 브래드 피트는 배우야 라고 새삼 느끼게 할 만큼 코믹했다. 일부 여성 관객들은 '나의 브래드는 저렇지 않아' 하며 충격의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존 말코비치는 이전 영화들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들을 연기한 경험이 있어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노련함을 엿볼 수는 있었다. 역시 코믹함과 진지함을 두루 갖추고 있는 조지 클루니의 연기는 박찬욱 감독의 최근 송강호를 평한 표현을 빌리자면 '영리하다 못해 영악한' 배우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고, 조엘 코엔의 아내이기도 한 프랜시스 맥도먼드 역시 그녀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이상하게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리차드 젠킨스와 틸다 스윈튼의 경우 튄다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캐릭터를 무리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결국 역시 코엔 형제답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재치 넘치는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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