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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Dunkirk, 2017)

무엇이 그들을 생존하게 만들었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덩케르크'는 1940년 덩케르크 해변을 배경으로 벌어졌던 영국군의 대규모 탈출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놀란의 전쟁 영화라는 점에서 어떤 영화일까 몹시 궁금했었는데, 아이맥스 카메라를 최대한 활용한 기술적 시도는 놀라울 만큼 압도적이지만 보통의 전쟁 영화 혹은 대탈출 영화가 보여주는 극적인 요소와 전쟁의 참혹함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장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덩케르크'는 조금 다른 방향성을 가진 전쟁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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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탈출을 돕는 구축선과 해변의 병사들을 공격하는 적기들을 막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전투기 조종사의 시점, 포위된 상황을 벗어나 본국으로 탈출하려는 병사들의 시점 그리고 이 병사들을 돕기 위해 덩케르크 해변으로 향하는 어선에 올라 탄 평범한 이들의 시점으로 각각 나누어진다. 놀란의 영화가 자주 그런 형태를 취하듯이 이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른 시점의 이야기들은 이번에도 절묘한 편집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성도를 갖는다.


커다란 사건을 배경으로 한 세 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하나로 풀어내는 방식은 독립적인 동시에 유기적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예전 영화들처럼 흩어져 있던 인물들이 한 지점에서 반드시 만나기 위해 존재하는 필연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시공간을 통해 주고받는 느슨한 동시에 매우 끈끈한 관계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세 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연결되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왜 그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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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인셉션'과 '인터스텔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중들에게는 기술적인 부분과 디테일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들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감정과 드라마를 풀어내는 것에 재능 혹은 애정이 있다고 했었는데, '덩케르크'를 보면서 재차 이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결국 크리스토퍼 놀란이 덩케르크 구출 작전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전쟁이라는 비 인륜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황 속에서도 순수한 선의를 갖고 있던 인물들로 인해 승리보다도 값진 생존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일 텐데, 그런 측면에서 한 편으론 영화 자체가 담고 있는 시선이 순수하기보단 순진한 것으로 그려질 수 있지만 놀란은 이번에도 자신이 믿는 순수한 선의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영화적 장치들로 이를 설득해 낸다. 


만약 이 영화가 끝내 러닝 타임 동안 이 상황과 인물들의 선의를 전달하는 것에 실패했더라면,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민간 어선의 구출 장면이나 몇몇 의미 심장한 대사들이 그저 간지러운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일일이 인물들의 동기를 다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관객을 설득해 내는 데 성공한다. 그것이 '덩케르크'가 성취한 가장 값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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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과 한스 짐머의 음악에 대해


'덩케르크'를 이야기하면서 아이맥스 촬영과 음악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이 두 가지를 빼면  이 영화는 성립 자체가 불가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일단 '덩케르크'가 선택한 아이맥스 촬영의 경우 일반적인 아이맥스 화면비보다도 더 상하의 화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1.43:1의 화면비로 약 75% 이상이 촬영되었는데, 이는 일반 디지털 아이맥스 관에서도 상하 레터박스가 생기는 화면비로서 국내에서는 최근 용산 CGV에 도입된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을 통해서만 손실 없이 관람할 수가 있다. 


이렇듯 보통의 아이맥스 화면비보다도 아래 위로 더 많은 정보량이 담긴 영상을 영화는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그만큼 상하의 움직임이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고 일부 전투기 장면에서는 흡사 파노라마 방식을 좌우가 아닌 상하로 구현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인상적인 것을 넘어서는 최초의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즉, 단순히 1.43:1의 화면비로 대부분 촬영되었으니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을 가능하면 관람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이 화면비로 감상해야만 제대로 된 장면의 의도가 파악되는 장면들이 다수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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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장면들은 2.2:1의 화면비로 촬영되어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관에서 관람할 경우 레터박스가 생기게 되는데, 레터박스가 감상을 방해해서가 아니라 2.2:1로 촬영된 장면들을 굳이 1.43:1로 찍지 않아야만 했던 이유가 부족해 보였던 터라, 좀 더 편안한 감상을 위해 하나의 포맷으로 촬영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43:1의 화면비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사실상 국내에 하나밖에 없다는 환경적인 이유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한스 짐머와 놀란의 작업은 이제 별개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덩케르크'의 영화 음악은 '다크 나이트' 이후 가장 인상적인 한스 짐머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덩케르크'에서 영화 음악은 거의 러닝 타임 내내 강약을 조절해 가며 깔리고 있는데, 마치 러닝 타임과 같은 길이의 긴 한 곡을 연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의 내용과 완전히 결합되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소리들이 영화 음악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실제의 사운드를 이질감 없이 음악으로 소화해 내는 점이 이번 한스 짐머의 음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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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란 다운 전쟁 영화가 나왔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여된 전쟁 영화로서 기존의 박진감 넘치는 대규모 전투 장면이나 카타르시스가 극적으로 치닫는 탈출 영화로서의 묘미를 기대했다면 이 영화는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기존의'다. 즉, '덩케르크'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이나 극적인 탈출 영화로서의 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느낌과 방식으로 전하는 영화다. 리얼리티를 고집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답게 과연 이런 장면들을 CG 없이 어떻게 완성해 냈는가 궁금한 장면들도 많고, 전쟁을 다루는 과정 속에서도 인간의 마음을 결국 그려내고자 했던 순수함과 인간에 대한 굳은 믿음을 이번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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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우주를 건축하고 낭만을 이야기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터스텔라'를 개봉 첫 주말 아이맥스로 보았다. '인터스텔라'는 그의 작품답게 원초적으로 머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복잡한 설계가 밑바탕에 깔려있고 그 위에는 가슴을 움직이게 만드는 낭만과 감동이 자리 잡고 있는, 딱 크리스토퍼 놀란 다운 작품이었다. '인터스텔라'는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Gravity, 2013)' 이후 사실상 처음 선보이는 본격 우주 체험 영화라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수 밖에는 없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보고 배우는 것에 그치던 우주라는 공간과 세계를 체험하는 것으로 끌어 들이는 데에 성공한 '그래비티' 이후엔 그 어떤 영화도 (최소한 단 기간 내에는) 우주를 다시 배경으로 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그래비티'를 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일 거다 라고 밝히기도 했던 놀란은, '그래비티'와는 또 다른 의미로 체험하는 우주를 그리는 동시에 또 한 번 설계자 다운 면모를 발휘해 다층적이다 못해 다 차원적인 구조를 구현해 냈고, 여기에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드라마까지 담아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터스텔라'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작품이지만, 뭐랄까 놀란의 영화관에 있어서 좀 더 명확해 지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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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이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았던 본격적인 이유를 하기에 앞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항상 대단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도록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에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에 기본이 되는 치밀한 설계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주로 만드는 설계도는 무언가 학구적인 의욕을 한 껏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플래시백 형태로 구성한 '메멘토'도 그랬고, 꿈 속의 꿈이라는 다층 구조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낸 '인셉션'은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100% 완벽하게 분석해 내겠어!'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했었던 것처럼, 이번 '인터스텔라' 역시 우주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공간을 배경으로, 역시 익숙하게 들어 왔지만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블랙홀, 웜홀, 4차원, 5차원 이라는 개념과 현상들을 시각적으로 수긍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듯 학구적으로 파고든 설계 탓에 자주 그가 만든 세계는 논리적 오류나 설정의 오류라는 많은 의견들과 부딪히게 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가 그의 동생과 함께 쓴 시나리오가 과학적, 논리적 오류가 있는 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가 왜 이런 방식을 매번 택하고 있는 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걸 '인터스텔라'를 통해 또 한 번 강하게 느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왜 이렇게 영화를 복잡하고 설명하듯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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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정리하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하나는 그 세밀한 설계 자체가 갖는 중요성, 그러니까 '인터스텔라'로 비유하자면 5차원이라는 개념을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하도록 영화화하기 위해 이를 논리적으로 뒷 받침할 만한 만반의 준비와 설계를 건축하듯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구조와 설계 자체를 중심에 둔 다는 얘기다. 사실 대다수가 이 의견에 손을 들어줄 텐데, 내 의견은 조금 다르다. 사실 이렇게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인셉션'을 보고나서 부터인데, '인셉션'이 개봉하고 나서 흡사 논문에 가까운 영화 글들이 수를 놓았을 정도로 구조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론 오히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라는 캐릭터의 트라우마에 관한 아주 강력한 드라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놀란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아내를 잃은 남편이거나 가족을 잃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의 분석은 이미 여럿 있어 왔는데, 여기에 더 힘을 보태서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설계한 구조적 배경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그가 들려주고자 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인터스텔라'를 보며 또 한 번 강하게 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결국, 기억을 이야기할 때도, 꿈 속의 꿈을 이야기할 때도, 코스츔을 입은 외로운 영웅을 이야기할 때도, 그리고 우주 속 웜홀 뒷편의 5차원을 이야기할 때도 결국 한 인간의 드라마를, 더 나아가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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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측면이 놀란의 모든 영화에 드러나고 있다고 봤을 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다크나이트'의 경우 이 가운데 가장 감정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편이고, 이 작품 '인터스텔라'는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인셉션'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 구조의 황홀함에 압도되어 만족감을 얻기에 벅찼었지만 두 번째 관람을 하고 나니 너무도 명백한 코브의 슬픈 드라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인셉션'은 놀란 영화의 큰 두 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계와 감정, 혹은 설계와 낭만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스텔라'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 아니 비중이 크다기 보다 더 노골적인 표현이 담긴 작품이었다.



(다음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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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데에는 역시 '사랑'이라는 개념의 표현 방식 때문이 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작품은 물론이고 감정적이라고 느꼈던 '인셉션'에서도 그 표현 방식은 직접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인터스텔라'에서의 후반부를 장악하고 있는 정서는, 오히려 한편으론 이런 우주 영웅 가족영화에 대명사로 불리우는 '아마겟돈'보다도 더 강력한 세기로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앞서 영화의 중반부까지 우주와 웜홀에 대한 방정식을 풀 듯 논리의 파도를 따라오던 관객 입장에서는, '결국 이 모든 것의 해답은 사랑, 사랑이야!'라는 영화의 후반부가 맥이 빠질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론 '인터스텔라'의 방식이 조금 직접적이었을 뿐 놀란의 영화는 항상 이런 드라마를 바탕에, 아니 중심에 놓았었기에 크게 이질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 사랑이었어!'라는 식의 전개는 이 5차원이라는 개념을 재료로 하기엔 너무 1차원적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들게 마련인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은 마치 찰리 카우프만이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을 통해 본인의 메세지를 정말 끝까지 밀어 붙였던 것처럼, 본인이 항상 두 손에 쥐고 있던 설계와 감정의 개념을 한 발 더 나아가 하나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나싶다. 이 작품에서 후반부 사랑의 개념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인간의 사랑이야말로 차원을 넘어서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존재한다 라는 식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가설을 꺼내놓는데, 바로 사랑이라는 개념이 아직 인간이 알아 낸 과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혹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 개념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즉,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일종의 과학적 산물 혹은 미래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설명이 가능한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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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접근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접근이었는데, 처음엔 이 같은 영화의 태도가 '와, 정말 대단한데!'라고만 느껴졌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 작품의 기반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콘택트 (Contact, 1997)'가 던진 화두인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히 경험한 것'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메시지로 채용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즉, 아빠가 똑같이 딸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은 맞지만 그 이유가 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영화가 바라보든 태도는 이전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인터스텔라'가 왜 흥미로운 작품인지를 또 한 번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콘택트'와 근본적으로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콘택트'는 이 광할한 우주에 인간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공간 낭비인가 라는 말처럼 외계 생명체에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짙게 깔려있는 작품이지만, '인터스텔라'는 그 중심이 외계 생명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혹은 인간의 진화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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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어쨋든 '인터스텔라'는 놀란의 다른 작품들처럼 하나 하나 따져보면 '왜 그런한가?'에 대해 소품이나 배경, 인물, 대사 등 모두 이유를 찾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영화일테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것들을 다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강력하게 드러난 낭만적인 가족 드라마이기도 했다. 뒤돌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은 다들 순수하리만큼 낭만적인 인물들이 중심이 된 드라마였던 것 같다. 마치 더 이상 막는 것이 불가능한 디지털의 시대에 끝까지 필름 촬영을 우선하고 3D를 배제해 온 그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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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차원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건 '그래비티'의 우주를 경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체험이었어요. 오히려 이 부분은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오면 서플먼트를 통해 좀 더 구조적인 뒷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 한스 짐머의 음악이 참 좋았어요. '다크나이트' 이후 가장 인상적인 그의 작품인듯. 김혜리 기자의 말만 따라 정말로 놀란 작품만 특별히 더 신경 써주는 것 같은 느낌이 ㅎㅎ


3. 본문에도 전반적으로 뉘앙스를 밝혔지만 개인적으로 놀란은 '5차원은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다!'라는 것을 생각했던 것 만큼, 극 중 쿠퍼가 비디오를 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먼저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극의 구성상 중간 정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마지막 대사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던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처럼 감정적으론 이 장면을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싶은.


4. 그냥 다른 얘긴데, 만약 이 영화를 그대로 번역해서 '별과 별 사이'로 개봉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네요. 감독이 전한 의도는 분명 '별과 별 사이' 일텐데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되어버리는 묘한 영어 제목 번역의 현실. 꼭 이 작품 만의 얘기가 아니라 가끔 미국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제목들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더군요. 우리는 아무래도 영어 그대로를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오히려 번역하게 되면 느낌이 애매해지는 경우도 발생하다보니.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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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

클락 켄트는 없고 칼엘만이 남은 슈퍼맨



브라이언 싱어의 2006년 작 '슈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2006)'가 있었지만, 이를 뒤엎고 다시 리부트를 시도한 새로운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 '맨 오브 스틸'을 보았다. 잭 스나이더의 연출 력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강하지만, 어찌 되었든 DC코믹스의 또 다른 히어로인 배트맨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히어로 중 하나 인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든든한 이야기를 잭 스나이더의 화려함과 액션 연출이 더해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몹시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즉,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에게 기대되고 예상되는 바는 분명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은 물론, 데이빗 S.고이어와 함께 스토리에도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은 분명 잭 스나이더의 영화라는 점부터 분명히 해야겠다. 그렇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보게 된 새로운 슈퍼맨 영화는, 기대에서 많이 벗어나는 의아함과 기대했던 것 이상의 만족스러움이 교차하는 영화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 아쉬운 점이 많지만, 한 번쯤은 이런 슈퍼맨을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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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그 빠른 전개였다. 더군다나 이 작품이 새로운 슈퍼맨 시리즈를 시작하는 리부트의 첫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빠른 전개였다. 그 속도는 놀라움을 넘어서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건 슈퍼맨이라는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 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일 듯 하다. 개인적으로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콘텐츠는 영화로서는 배트맨 보다 더 깊은 이해 도가 있는 작품이었고 (배트맨은 대신 그래픽 노블을 통한 정보가 많았고), 무엇보다 클락의 청년 시기를 다룬 '스몰빌'이라는 TV시리즈를 남들이 '도대체 클락은 언제 나느냐'며 하나 둘 씩 떠날 때에도 꿋꿋이 10년을 기다리며 그 대단원의 피날레를 맞이했던 팬으로서 특별한 애정이 있는 작품이기에 '맨 오브 스틸'은 스토리와 영화가 갖고 있는 철학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물론 '스몰빌'처럼 10년 동안 날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 사이 본인의 의지가 아닌 경우 난 적이 있긴 했지만) 클락이 슈퍼맨이 되는 과정에서의 오랜 시간은 이 텍스트에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슈퍼맨이 갖는 갈등은 클락 켄트와 칼엘 이라는 두 존재 사이 에서의 갈등, 즉 외계인으로서 지구인을 구해야만 하는 구세주로서 칼엘의 운명과 그저 스몰빌에서 좋아하는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싶은 클락 켄트로서의 삶 사이에서 오는 괴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슈퍼맨의 능력을 각성하고 사용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클락이 어떻게 크립톤인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신과 같은 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지는 오랜 갈등과 고민 끝의 결정이기에 소중히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인데, '맨 오브 스틸'에는 이런 면에서 보기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슈퍼맨이 된다. 따지고 보자면 '맨 오브 스틸'은 그 제목처럼 클락 켄트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칼엘 혹은 슈퍼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초반 크립톤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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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이 작품의 아이러니는 바로 그 운명론에 있는데, 극 중 칼엘은 크립톤에서도 유일하게 자연 임신을 통해 태어난 아이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크립톤인들이 태어날 때 부터 그 직업과 역할에 맞춰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갖고 태어난 것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슈퍼맨이라는 텍스트의 딜레마는 바로 이 운명론에 있다. 그렇다고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이 이 운명론과는 무관하게 성립된 캐릭터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맨 오브 스틸'의 스토리는 바로 여기서 부터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미 운명이 정해진 채로 태어나는 모든 크립톤 인들 과는 달리 유일하게 그 운명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난 칼엘이, 전혀 자유롭지 못한 또 다른 정해진 운명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냥 벌어진 상황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의미로 칼엘을 태어나게 하고 지구로 보낸 조엘 스스로가, 칼엘에게 끊임없이 운명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아이러니다. 이 부분은 달리 돌려 이해해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다른 슈퍼맨 영화와는 달리 크립톤의 이 배경을 강조했기에 더욱 이후의 운명론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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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맨 오브 스틸'이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바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로 대표되는 가족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맨 오브 스틸'에는 사실상 없는 클락 켄트이기에 더불어 비중이 축소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케빈 코스트너와 다이안 레인의 연기와 캐릭터는 모두 좋지만 그 비중이 이 캐릭터와 스토리의 정수를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비중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스몰빌'에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는 클락에게 칼엘로서의 운명도 물론 지지하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너는 그냥 우리 아들 클락이야'라고 말하는 쪽에 가까운데, 이번 작품에서 조나단이 '너는 외계인이고 너를 낳아준 친 부모가 어딘가 있을 거야' 라는 말을 단번에 꺼낼 땐 솔직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스몰빌'의 조나단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영화 초반에 이렇다 할 설명이 다 오가기도 전에 어린 클락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조나단의 모습을 보니, '맨 오브 스틸'이 얼마나 클락 켄트의 비중을 적게 두고 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맨 오브 스틸'에도 슈퍼맨의 텍스트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클락 켄트로서의 요소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방금 아쉬운 점으로 지적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와의 따듯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도 있고, 그 몇몇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조드와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 만큼이나 (어쩌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로서는 이 부분이 단기 속성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쉬울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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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슈퍼맨 영화임은 분명하다. 방금까지 얘기한 아쉬운 점은 다른 취향을 갖은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슈퍼맨이라는 이야기에 그다지 깊고 특별한 애정보다는 극장 판 영화로서 2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 만으로 충분한 이해와 재미를 느끼고자 하는 대부분의 관객에게, '맨 오브 스틸'의 전개 과정은 슈퍼 히어로가 주인공인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딱 어울리는 정보 량과 속도였으며, 긴 시간을 들여 일반인이 슈퍼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보다는 (물론 슈퍼맨의 경우는 태생부터가 다르지만) 바로 날기도 하고 슈퍼맨으로서의 등장도 빠른 것이 오히려 기다렸던 전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결코 이러한 취향을 비꼬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짜임새에는 100% 동의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의 리부트에 걸맞게 처음부터 그 과정을 절반 이상 소개하고, 본격적인 액션은 그 다음으로 미뤘었던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가 당시 관객들과 스튜디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상황까지 더해진 마당이라면 (브라이언 싱어의 리부트를 다시 뒤엎는 데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의 대성공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이런 액션 히어로로서의 면면이 강조된 슈퍼맨의 탄생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는 얘기다. 솔직히 슈퍼맨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히어로에 비하면 그 동안 슈퍼맨 영화에서 보여준 액션은 그 크기가 무언가를 들어 올리거나 막아 내는데에 집중된 편이긴 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 번 쯤은 '맨 오브 스틸'과 갖은 액션 영웅 슈퍼맨을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맨 오브 스틸'은 그런 액션 영웅 슈퍼맨을 가장 잘 묘사한 액션 시퀀스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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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의 액션 시퀀스는 정말 현란하다. 현란하고 화려한데 그저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말도 좀 아이러니지만 슈퍼맨이 등장한 영화의 액션 장면 가운데 가장 현실 감 넘치는 액션이었는데, 슈퍼맨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갈 때의 묘사나 조드 장군 일당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면, 만약 실제로 저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이가 전투를 벌인다면 아마도 저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액션 묘사가 많았다. 특히 슈퍼맨처럼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캐릭터를 담은 영상의 경우, 너무 그 속도 감을 담으려 한 나머지 현실감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맨 오브 스틸'의 비행 장면은 카메라 웍이 살짝 동원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설득력 있는 비행 시퀀스가 아니었나 싶다. 결론적으로 벽이 부서지고 건물이 셀 수 없이 부서지고 관통 되고 하는 액션들이 오버스럽기 보다는, 저런 능력자들이 전투를 벌인다면 저 정도가 맞겠다 싶은 연출로서, 잭 스나이더의 연출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갈등 하는 영웅이 아닌 분노하고 싸우는 액션 영웅으로서 관객들이 슈퍼맨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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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클락 켄트를 사실상 피해왔던 '맨 오브 스틸'은 속편에서는 본격적으로 클락 켄트의 이야기를 꺼낼 듯한 제스처를 한다. 기존에 시리즈와는 로이스 레인과의 관계도 전혀 다르고, 성장 과정에 대한 묘사의 비중도 전혀 달랐으며, 지구인들이 그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달랐는데, 과연 속편은 어떤 이야기와 속도로 전개될지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또 반응에 따라 뒤엎지 말고 잭 스나이더에게 좀 더 맡겨보는 것이 좋겠다. 



1. 집에와서 부족한 점이 무언가를 떠올려봤는데 역시 존 윌리엄스의 테마곡의 부제더군요. 그 곡을 다시 들어보니 단 번에 알겠더군요. 더불어 '맨 오브 스틸'엔 슈퍼맨이 우아하게 하늘을 유영하는 장면도 없는데, 그 장면을 못본게 아쉽더군요.


2. 아마도 지미 올슨이 나오지 않은 거의 유일한 슈퍼맨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어린 시절 장면이 잠시 나올 때 라나가 아주 잠깐 등장하는데 '스몰빌' 팬으로서 어찌나 반갑던지 ㅎㅎ 그리고 후반부에 깨알 같은 루터-콥 로고들도 재미있었어요.


3. '스몰빌'에 출연했던 배우가 '맨 오브 스틸'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스몰빌'에서 닥터 에밀 역할을 맡았던 알레한드로 줄리아니가 초반 등장하더군요. 참고로 전 톰 웰링의 팬이기도 해서 그가 연기하는 극장판 슈퍼맨을 보고 싶기도 했는데, 이제는 너무 늦어버리긴 했죠;; 아쉽네요. '스몰빌'이 너무 길었어요 ㅠㅠ


4. '매트릭스 레볼루션'을 볼 때도 '드래곤볼'의 실사화를 기대해보기도 했었지만, '맨 오브 스틸'을 보니 잭 스나이더가 '드래곤볼'을 한 번 찍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더군요. 적어도 액션 장면 만큼은 이질감 없이 황홀하게 만들어 낼 것 같아요.


5. 역시나 새 시대의 슈퍼맨도 안경만 쓰면 못알아보는 건 계속되려나 보네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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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해외에서 쏟아지는 호평과 극찬들. 국내 시사회 이후에 역시나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쏟아지는 박수와 걸작이라는 거침 없는 평가들. 저는 본능적으로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면도 있고(물론 예외는 존재하지만), 저 뿐 아니라 기대라는 것은 커지면 커질 수록 실망이 자연적으로 커지는 법이라 감상전의 이 같은 엄청난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말들은 분명히 곧 만나게 될 <다크 나이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습니다. 즉 쉽게 말해 100점짜리 영화를 만들었어도 워낙에 커진 기대 탓에 120점 정도는 보여줘야만이 100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는 얘긴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부담스런 기대를 안고 관람했음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200점짜리 결과물을 저에게 안겨주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감동과 전율의 눈물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위대함에 대한 박수를 보낸 영화였으며, 그 동안 알고 있던 히어로 장르의 영화들을 모두(과장을 보태자면)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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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보여준 것은 정말 의미있는 시작이었다는 것이 <다크 나이트>를 통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 기존 판타지스럽고 기존 히어로 물의 일반적인 구성에 충실했던(물론 팀 버튼의 <배트맨>이 이런 전형적인 히어로 물의 룰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아니죠) 배트맨의 이야기를,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실로 가져와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인간적인 면으로 그려냈고,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 왜 배트맨이 되었나에 관한, 혹은 될 수 밖에는 없었나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졌고, 무엇보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정말 놀란이 만든 <배트맨 비긴즈>이전에는 단 한 번도 고담시가 현실에 존재할 법한 도시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처음 맡게 된 배트맨 이야기의 새로워진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하는데에 <배트맨 비긴즈>의 최대 공을 들였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러한 프롤로그 없이 이미 비긴즈에서 설명이 된 세계와 인물들을 중심으로 본래 하고 싶었던 복잡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꺼내 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배트맨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이라 할 수 있는 적으로 조커가 등장하게 되었고, 투 페이스도 등장하게 되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웅이 악당을 무찌르는 기본적인 히어로 물의 아주 커다란(아주) 바탕 아래 범죄 스릴러의 요소를 가져왔으며, 사회/정치적인 메시지와 히어로로서 겪는 갈등의 요소를 극대화해 어느 리얼한 극 영화들 보다도 관객이 놓여진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고 지치고 곤란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의 갈등을 야기시키면서(그것도 히어로 물에서 말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심리극의 분위기로 배트맨을 이끌고 있습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이 팀 버튼의 배트맨과 차별되는 배트맨을 만들기 위해 리얼리티를 강조함에 있어 마이클 만을 거쳐가는 방법을 택했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에 적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 동안은 그저 코믹스나 영화 속에나 만나볼 수 있는 가상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고담씨티를 실제 시카고를 배경으로한 로케이션 촬영으로 대부분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요 인물들과 배트맨, 조커 등의 캐릭터에 대한 리얼리티도 동시에 부여하는 효과를 거뒀으며, 마이클 만이 <히트>에서 보여주었던 총격씬에서의 리얼리티와 사운드(마이클 만은 역시 총소리의 달인!), 그리고 <콜레트럴>에서 보여주었던 L.A의 밤거리의 묘사 같은 장면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특히나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에서는) CG가 아닌 리얼리티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초반 프롤로그 장면을 비롯해 영화 속의 사운드는 엄청난 박력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밤거리를 배경으로 벌어진 차량 추격씬에서도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묵직함과 박력이 느껴지는 구성이라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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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열연은 <다크 나이트>를 위대한 영화로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먼저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여전히 뛰어납니다. 사실 조커 역의 히스 레저의 놀랍도록 완벽한 연기에 가려서이지,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크 나이트>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한번 신뢰를 깊게 할만큼 인상적입니다. <비긴즈>에서 배트맨이 되어야만 했던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해 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언제 까지 배트맨이 고담시에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배트맨의 등장이 악을 소탕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 오게 된 계기는 아니었나'하는 '배트맨'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중에 더 집중적으로 리뷰할 글을 위해 남겨두느라 자세한 표현은 하지 않겠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겪는 고민은 관객도 예상할 수 없음은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해도 기회비용이 따르는,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 내기에 크리스찬 베일만한 배우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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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에서는 배우 히스 레저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짙은 분장과 의도된 목소리 연기 탓만이 아니라, 그의 놀랍도록 몰입된 연기에서는 히스 레저는 물론, 조커 하면 떠오르는 잭 니콜슨의 그림자 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간 히스 레저가 출연한 작품들은 <카사노바>를 제외하면 거의 다 보았던 것 같은데, 그 작품들 어디에서도 이런 모습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의도된 목소리 연기와 입맛을 다시는 동작 등을 볼 때는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히스 레저의 연기에 대해서도 너무나 감탄스럽고 칭찬할 부분들이 많은데 이 부분 또한 나중 포스트에 좀 더 자세하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마무리하자면,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속보로 전했을 때보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나온 오늘의 느낀 그의 공백에 대한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ㅠㅠ


초반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는 이 정도면 거의 까메오 수준입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배우임에도 이런 스쳐가는 분량에도 기꺼이 참여한 그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결과적으로 킬리언 머피도 이 걸작의 영화에 동참하는 배우가 되었네요). 알프레드 역의 마이클 케인과 폭스 역의 모건 프리먼 역시 <배트맨 비긴즈>에 비하면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 캐릭터는 <다크 나이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죠.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거치면서 어느새 악역의 기존 이미지는 거의 다 희석되다시피 되어버린 게리 올드만 역시 고든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냈고(코믹스 속 고든의 모습을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코믹스 속 고든과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고든의 모습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케이트 홈즈에 이어 레이첼 역할을 맡은 메기 질렌할은 객관적인 미모 평가에서는 조금 뒤쳐진다는 평들도 있으나(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전작에서부터 그대로 이어지는 캐릭터 가운데 유일하게 배우가 교체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몰입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물론 영화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든 감독의 연출력이 바탕이 되었죠).

하비 덴트를 연기한 아론 에크하트는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트맨과 조커 만큼이나)중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선의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하비 덴트와 악당이 모습으로 변해버린 투 페이스의 캐릭터 모두를 연기함에 있어, 캐릭터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되지 않도록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배트맨, 조커, 투페이스, 그리고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등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 포스트에 따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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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무려(!) 함께 작업한 사운드 트랙은 그야말로 걸작에 어울리는 웅장하고 중후하면서도 극적인 분위기를 한꺼번에 전하고 있습니다. 액션 장면에서도 너무 오버되지 않은 표현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서사적이면서도 슬픈 감정이 묻어있는 음악을 들려주는데, 정말 오랜만에 스케일이 느껴지는 사운드 트랙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미 너는 질러져있다).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된 이후에 작정하고 하나의 영화에 대해 연재를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단 한 번 보고, 단 번에 연재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떠오르고 계획하게 된 건 <다크 나이트>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영화의 세계관 / 감독의 메시지, 배우/캐릭터 열전,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배트맨 이야기 등등 적게는 3회, 많게는 4~5회에 걸쳐 <다크 나이트>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걸작이자 히어로 물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에 대해 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작은 성의이겠지요 ^^;



1.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건 느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2.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해가는 과정과 배경을 보니 <배트맨 포에버>에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투 페이스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약간 우습게만 보였던 그의 모습들이 다시 보였달까요. <다크 나이트>중복 관람이 어느 정도 끝나게 되면 <배트맨 포에버>를 다시 찾아봐야 겠어요.

3. 영화가 끝나자 마자 한 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이 뜨자 한 번, 그리고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와 스텝의 이름이 떴을 때 한 번, 총 3번의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4. 전 원래 어느 영화든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 까지 다 보고 나오는 편이지만, 화요일 6시 용산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뒤를 쳐다봤는데, 아마도 제가 본 이래에는 가장 많은 관객들이 완전히 끝까지 남아있던 광경이었습니다.

5. 에릭 로버츠의 모습도 오랜만이라 반갑더군요.

6. 고든의 아들 역할로 나오는 아역배우 나단 겜블은 <미스트>에서 토마스 제인의 아들로 나오기도 했었죠.

7. 엔딩 크레딧에 히스 레저와 함께 추모의 뜻을 보냈던 이는 Conway Wickliffe 라는 특수효과 전문 스텝이었습니다. 1966년 생으로 지난해 9월 25일 유명을 달리하셨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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