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렐 윌리엄스 내한공연에 다녀와서!

Pharrell Williams _ Audi Live 2015 Korea



퍼렐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슈퍼스타가 될 줄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솔로 활동과 N.E.R.D 활동, 그리고 유명 동료 뮤지션들 앨범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었지만, 사실 Happy가 전 세계적인 사랑을 얻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블랙뮤직을 듣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스타인 뮤지션이었다. 그래서 처음 그가 '해피피트'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오~ 퍼렐이 이런 메이저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하네?' 싶었었다 (비슷한 경험으로는 슈렉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Dashboard Confessional이 있다). 'Happy'가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어느새 음악과는 별개로 패션의 아이템으로도 부상하기 시작한 퍼렐. 정말 칸예보다 퍼렐의 내한공연을 먼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ㅎ

내한 공연 리뷰랄 건 없고, 간단하게 후기를 남겨본다.


1. 심플한 구성과 쉴새없이 진행되는 라이브


퍼렐이 내한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무대는 어떻게 진행될까 하는 부분도 궁금한 부분이었는데, 다른 블랙뮤직 뮤지션들과 비슷하게 퍼렐과 백댄서, 코러스 싱어, 백밴드로 이뤄진 비교적 심플한 구성이었다. 코러스도 2명이 전부였고 (이 코러스는 가끔 댄서팀과 합체하기도), 댄서팀 (Baes)은 여성 5명으로 이뤄졌고, 밴드도 기타, 베이스, 드럼 정도로 이뤄진 듯 했다. 퍼렐의 솔로 곡들이 대부분 기승전결이 분명한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루틴하게 리듬이 반복되는 형태인데, 그래도 댄서들의 안무가 더해져서 조금은 보는 재미가 더했다. 본인이 직접 목상태가 좋지 않다고 얘기했을 만큼 100%라고 보기는 어려웠는데 (결과물이 그런 것 보다도 퍼렐의 표정이 뭔가 좀 피곤한 듯 했다), 간혹 문제가 되었던 해외 뮤지션들의 성의없는 라이브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그저 120%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은 좀 덜했다는 정도.


2. 관객들이 너무 'Happy'만 알고 있다


사실 올림픽체조 경기장을 거의 가득 채울 정도로 관객 수는 대단했는데, 솔직히 대다수의 관객들은 'Happy'를 비롯한 최근 몇 곡 (그가 피처링한 곡들 위주)으로 그를 인지하고 팬이 된 경우였다고 봐야겠다. 그게 잘못된 건 (당연히) 아닌데, 그가 비교적 덜 알려진 곡을 노래하거나, 특히 N.E.R.D 시절의 노래를 할 땐 전반적으로 호응도가 떨어지는 분위기였다. 퍼렐이 몇 번이나 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려 'Say What?'을 외쳤지만 기대 만큼은 떼창은 나오질 못했던 것이 사실. 체조경기장의 사운드 시설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보니 녹음된 코러스와 관객들의 코러스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이후 엄청난 떼창이 나왔던 (퍼렐이 가슴에 손을 얹고 감동하는 바로 그 장면) 'Get Lucky'와 비교해보자면 분명히 그 외에는 다 조금씩 아쉬운 떼창이었다.





3. 클라이맥스는 'Happy'가 아닌 'Get Lucky'


이미 Happy가 앵콜 곡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Get Lucky'였다. 사실 이 곡을 한동안 얼마나 많이 들었나. 많이 들은 걸로만 치자면 아마 해피에 30배는 더 들었을 터. 그 익숙한 전주가 나올 때 부터 그 때까지도 그럭저럭 버텨오던 지정석의 일부 관객조차 모두 일어나게 만드는 임팩트를 보여주었던 겟 럭키의 떼창은 그야말로 내한공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앞선 곡들에서 비교적 떼창이 잘 안나와서 '잘 모르나...' 싶었었던 퍼렐이기에 더 감동이 배가 되었을지도 ;;). 진짜 겟 럭키는 훨씬 더 오래 연장해도 좋았을 법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내서 아쉬울 정도였다.



Daft Punk - Get Lucky ft. Pharrell Williams (First Live Performance HD @ HTC live)



4. 'Freedom'. 퍼렐은 광복절을 알고 있었다.


물론 관계자가 알려주었겠지만, 퍼렐이 광복절을 언급하며 앵콜에 다시 한 번 'Freedom'을 열창한 장면은 소름 돋을 정도로 감동이었다 (참고로 프리덤은 이 공연의 첫 곡이기도 했다). 처음 뮤직비디오를 보았을 때도 이 곡이 얼마나 임팩트 있는 곡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광복절을 앞두고 이 곡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최근 본 영화 '셀마'도 떠오르고. 공연 끝나고 돌아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입에 '뿌리덤!' 붙었다 ㅋ



Pharrell Williams - Freedom (HDH Entertainment)


5. 관객들과 함께 한 무대는 라이브의 묘미를 보여주기도...


몇몇 곡들에서 무작위로 남자관객 여럿, 여자관객 여럿, 그리고 아이들 여럿을 무대 위로 올려서 함께 춤추는 구성이 있었는데, 확실히 무작위라는게 느껴질 정도로, 생각보다 무대와 잘 녹아들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ㅋ 특히 'Happy'를 부를 땐 아이들 여럿이 무대 위에 올라왔는데 아마도 기획한 대로하면 아이들이 해피에 맞춰서 막춤도 추고 신나게 놀아야 하는데, 전부 얼어서 그냥 그자리에서 서있기만해서 (심지어 박수도 안치고) 오히려 뻘쭘한 분위기가. 퍼렐이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그것도 겨우 하는 정도로 ㅋ


6. 패셔니스타 퍼렐이 이럴 수가...


라이브 만큼이나 기대되었던게 그가 무슨 옷을 입고 나올까 하는 거였는데, 심플한 티셔츠와 엉덩이에 크게 아디다스 로고가 새겨진 바지로 등장한 퍼렐은, 놀랍게도 그 의상으로 공연이 끝날 때까지 노래했다. 중간에 퍼렐이 빠지고 백댄서 팀이 등장해 댄스타임을 갖길래, 이번에 다른 옷을 입나 보다 했으나 아니었고, 한 번 더 그런 타이밍이 있었으나 아니었고, 마지막 앵콜 뒤 다시 나올 땐 드디어 갈아입겠거니 했으나 그대로였다. 저 'DRY ALLS' 티셔츠 꼭 찾아서 사고 싶을 정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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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2010 Jisan Valley Rock Festival)
행복에 겨운, 그 첫 날의 기억

언제부턴가 국내에서도 여름만 되면 그 해의 록 페스티벌 라인업을 확인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체크 포인트가 되었는데, 올해는 단연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한 여름에 맞붙은 페스티벌 가운데 펜타포트와 지산 밸리는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인 만큼 매번 경쟁상대 일 수 밖에는 없었는데, 적어도 올해는 지산에 완벽한 승리가 아니었나 싶다. 펜타포트의 라인업도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네임벨류 측면에서 지산이 훨씬 압도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가야겠다고 진작부터 마음먹은 지산 밸리였지만 언제나처럼 내 발을 붙잡는 것은 경제적인 여건이었다. 글서 부득이 하게 3일중 하루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의외로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래서 포기로 인해 흘린 눈물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ㅠ).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이번 지산 밸리가 갖는 의미는 첫 째도 '벨 앤 세바스찬' 둘 째도, 셋 째도 '벨 앤 세바스찬'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펫 샵 보이즈는 말할 것도 없고, 단독 콘서트와 록페에서 모두 만나보았던 뮤즈 역시 '훗, 나 뮤즈 많이 봤잖아' 라고 말하며 쿨 한척 패스했지만, 두 번, 세 번 본다고 그 감동이 덜할 것 같지 않은 밴드가 뮤즈였으며, 코린 베일리 래 역시 정말 너무 보고 싶었던 뮤지션이었는데, 단 하루를 택해야 한다면 벨 앤 세바스찬이 나오는 첫 날, 금요일을 택할 수 밖에는 없었다.  





이번 지산 밸리의 나름 컨셉이라면 기존에 다녔던 록페들과는 다르게, 좀 여유있고 비교적 앉아서 관람하는 편안하고 관망하는 록페랄까. 사실 그 간 다녔던 록페스티벌이나 내한공연으로 미뤄보자면 항상 가장 앞에서서, 온몸으로 사방의 밀고 당김을 이겨내며 좋아하는 뮤지션을 코앞에서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열혈 록매니아였다면, 이번 지산은 애초부터 달릴 것을 염두하지 않았던 것처럼 위의 사진처럼 잔디밭에 걍 자리 깔고 앉아서, 좀 먼 곳일지라도 좋아하는 뮤지션에 흐뭇한 미소 정도 지어주며 즐기려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고, 이런 목표는 의외로(?) 제법 지켜진 편이었다.





지산 밸리 홈피에서 미리 예매한 셔틀버스를 타고 3시쯤 도착하자마자 바로 그린 스테이지로 달려가보니 한창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도착하지 얼마되지 않은 터라 일단은 분위기에 적응하는데에 집중. 분위기와 더위에 동시에 집중하는 순간, 얼른 승열님을 보기 위해 빅 탑 스테이지로 이동해야 되겠다 싶어 왔던 길을 되돌아 빅 탑 스테이지로 향했다.



(록 페스티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팔지. 1일권과 더불어 19금 성인을 인증하는 팔지까지 부착완료!)



역시 록페스티벌의 묘미라면 아무대나 널부러져 잠을 청할 수도 있고,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과는 별개로 그냥 나만의 시간을 보내도 전혀 인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냥 자신의 페스티벌을 즐기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것 역시도 의미있는 시간이라 할 수 있을 듯.




금요일을 택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승열님! 지난 번 비공개로 진행되었던 쇼케이스에 초대되어 공연도 즐기고, 공연이 끝난 뒤 무대 뒤에서 잠시나마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던 터라, 그 이후부터는 왠지 더 친밀함이 들어버린 뮤지션이라 할 수 있겠는데, 평소에도 워낙에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터라 이번 지산에서도 그의 무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즐겼다. 좀 더 팬들에게 익숙한 곡들 보다는 록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선곡들 위주로 구성이 된 모습이었는데,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과의 깜짝 조인트 무대는, 다시 한번 빅 탑 스테이지를 록의 열기로 뜨겁게 만들었다. 사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다시 한번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벨 앤 세바스찬'을 만날 생각에 들 떠 있어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뿐;;





이승열 SETLIST

Dream Machine
Walk
비상
Lola
Tsunami
Secretly
Secret( Feat.신윤철 )
So





그리고 무대는 드디어 벨과


세바스찬, 즉....


'벨 앤 세바스찬 (Belle and Sebastian)'의 무대 세팅으로 가득차 있었다. 뭐랄까 다른 밴드나 뮤지션들과는 달리 그들의 앨범을 들으면서도, 언젠가 실제로 보게 되리라는 생각은 잘 해보질 않았었는데, 이렇듯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그들의 무대 앞에 잠시 멍해질 수 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이 때까지만 해도 괜찮은 편이었다.




드디어 등장한 스튜어트 머독, 그리고 벨 앤 세바스찬!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내 눈앞에서 노래하는 모습에 금새 적응! 하지만 사실은 실감을 못했다는 편이 더 맞을 듯;;;






벨 앤 세바스찬의 공연은 확실히 그 동안 즐겼던 다른 록밴드의 그것과는 달랐다. 미친듯이 몸을 부딪히며 샤우팅 할만한 곡들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앉아서 볼 수도 없는 느낌의 공연이었는데, 뭐랄까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그 동안 앨범으로만 소중히 간직했던 그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듣는 건 또 다른 감흥이었다. 다시 말해 '실연 (Live)' 그 이상으로 '추억'을 함께 할 수 있는 공연이라 더 뜻 깊었던 것 같다. '맞아, 이 곡을 들었을 때는 이랬었지' '그 때 이런 일도 있었지'라는 식으로, 그 음악 자체로도 황홀했지만 그 안에서 지나간 나를 발견할 수 있었기에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날의 또 다른 느낌이라면 왠지 한국같지 않았달까. 다른 의미가 아니라 진짜 어디 외국의 한적한 농장에서 많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작은 축제를 벌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관객 수가 많았음에도 분명 이런 느낌이 났다!). 무대와 관객의 스케일은 컸지만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은 우리를 작지만 큰 하나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이런 분위기는 그들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져, 시종일관 이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모두를 미소짓게 했다 (진짜 어디를 비춰도 다들 행복한 표정이었다 ㅠ).





이 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바로 이 장면이었다. 관객 가운데 몇몇을 직접 무대 위로 불러낸 스튜어트 머독 조차 아마도 이런 분위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눈치였는데, 무대 위로 올라온 팬들은 단순히 이 무대에 감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각만 해도 다리가 떨리는 장면인데도 말이다), 이 무대를 스스로 즐기며 이 페스티벌을 찾은 모두에게 최고의 순간은 선사했다. 그냥 무대 위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는 장면 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이 기회를 멋진 순간으로 만든 팬들은 무대 여기저기를 누비며 멤버들을 정말 미소짓게 했고 (머독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의 표정을 보면 간혹 당황스러워 하는 눈치도 보였으나, 이 무대를 너무 행복해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야, 페스티벌이라는게 진짜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끔 만들었다. 





진짜 행복에 겨워서 눈물 흘릴 정도의 감흥을 맛본 것이 언제있었나 싶을 정도로,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의 행복감이었다. 그렇게 올 것 같지 않았던 벨 앤 세바스찬의 무대는 기대를 한껏 했음에도 기대를 훨씬 넘는 최고의 공연을 선사했으며, 앞으로도 내 평생 지워지지 않을 추억을 새겼다. 

Belle & Sebastian SET LIST

I did't see it coming
I'm a cuckoo
Step into my office
The State I am in
I'm not living in the real world
If you're feeling sinister
Suckie/Funny Little Thing
Dog On Wheels/stars of track
The boy with the arab strap
Caught in love
Judy and the dream of horses
Sleep the clock around
(legal man-if time)








벨 앤 세바스찬의 감동의 무대가 끝나고나서야 늦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록페스티벌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한가지인 시원한 맥주와 함께한 식사. 음식들도 가격들이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맛은 다들 괜찮은 편이었다. 공연 관람으로 지친 체력을 보충하는 시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만 통용되는 화폐. 입장 전에 미리 현금과 교환해야만 공연장 내에서 이것저것 구입이 가능하다. 기념으로 천원 정도 남겨오려고 했었지만, 모조리 써버린 1인. 






그 다음 관람한 공연은 요즘 가장 핫한 밴드 중 하나인 뱀파이어 '위크앤드 (Vampire Weekend)'. 사실 많은 록 팬들에게 이번 페스티벌을 기대하도록 만든 장본인 중 하나였으나, 개인적으로는 아직 제대로 이들의 음악을 즐겨보지 못한 탓에 깊에 몰입하지는 못했으나, 왜 이들이 정말 'HOT'한 밴드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Vampire Weekend SET LIST

Holiday
White Sky
Cape Cod Kwassa
I Stand Corrected
M79
California English
Cousins
Run
A - punk
Blakes
Giving up the gun
Campus/Comma
Horchata
Mansard Roof
Walcott










이번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단 하루만 즐겼을 뿐이라, 캠핑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여유로운 곳곳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무리해서라도 하루 쯤 여기서 보낼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풀 냄새 한 껏 맡으며 풀밭을 거닐고 눕고, 여유롭게 노닐 수 있는 분위기 만으로도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여유있게 시간을 두고 그린 스테이지에 도착한 탓에 아직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전 '브로콜리 너마저'의 리허설 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 나중에 사람이 많이 몰렸을 때도 물론 좋았지만, 이렇게 여기저기 띄엄띄엄 앉아서 공연을 즐기는 분위기도 너무 편안해 보이더라. 






그 다음 선택한 밴드는 '브로콜리 너마저'. 뭐 이미 인디씬에서 슈퍼스타라고 할 만큼 그들의 음악은 팬들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번 무대에서도 팬들의 이런 사랑이 그대로 반영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번 공연에 있어 일부러 곡과 곡 사이의 명확한 맺음을 하지 않는 구성을 들고 나온 모습이었는데, 보는 사람들이 조금 멋적어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 나쁘진 않았던 듯. 아, 그리고 이 지산에서 '보편적인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며 여러사람들과 함께 때창을 하는 순간 무언가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 록페스티벌을 다닐 때 델리 스파이스의 곡을 때창하며 들었던 생각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예전에는 델리 스파이스의 곡들이 내 청춘의 송가였다면, 이제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곡들이 나의 또 다른 청춘을 대변하는 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건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모두가 함께 때창을 할 때만 느껴지는 감정이라 할 수 있을텐데, 그래서인지 느껴지는 감정이 촉촉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앞으로는 보편적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 장면이 떠오를 것 같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번 브로콜리 너마저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앵콜 부분이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그 노래가 나오지 않자 팬들은 당연히 '앵콜요청금지'를 앵콜로 요청했는데, 브로콜리 너마저는 정말로 당황한 듯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무대에 나와서도 이 곡을 할지 말지 회의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이 노래를 불렀던 여성멤버가 (이름이 생각이..) 빠진터라 이 곡을 무대 위에서 하고 싶지 않으려는 것 같았는데, 정말 끝까지 안할까 했는데 안하더라. 하지만 팬들이 직접 때창으로 부른 '앵콜요청금지'의 감동도 대단했다.

브로콜리 너마저 SET LIST


이웃에방해가되지않는선에서
마음의문제
두근두근
울지마
커뮤니케이션의이해

청춘열차
마침표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졸업
보편적인 노래
유자차






'브로콜리 너마저'의 공연이 끝나고 그린 스테이지를 빠져나가는 인파. 여기저기 스케쥴 표에 따라 이동하는 것도 록 페스티벌의 또 다른 재미!




날이 너무 더워서인지 시원한 맥주 생각이 계속 나더군요. 밤 시간까지 참다가 매시브 어택 보기 전에 시원하게 한 잔!





텐트 촌의 모습. 밤새 페스티벌을 즐기다가 졸리면 바로 옆에서 자고 일어나 또 다음날 페스티벌을 즐기면 되는 최적의 코스! 








그리고 이 날의 헤드라이너였던 '매시브 어택 (Massive Attack)'. 사실 한참 트립합에 빠져살던 2000년대 초반에 심취했었던 매시브 어택은 한동안 잘 듣지 않은터라 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는데, 무대를 보는 순간 다시금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아, 맞아, 나 매시브 어택 되게 좋아했었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의 익숙한 곡들과 압도적인 무대에 다시금 빠져들고 말았다. 한 곡 한 곡 메시지를 가득 담은 백그라운드의 영상과 문구들은 듣는 것 말고 생각하는 것도 제공했는데, 그냥 개인적으로는 한 때 정말 좋아했었던 매시브 어택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그들을 처음 좋아했었던 2000년대 초반에 무대를 직접 봤더라면 이 정도로 심심하게(?) 표현하진 않았을듯 ㅋ

Massive Attack SET LIST

United Snakes
Babel
Rising Son
Girl I Love You
Futureproof
Invade Me
Teardrop
Mezzanine
Angel
Safe From Harm
Inertia Creeps
Splitting The Atom
Unfinished
Atlas Air

 



그렇게 나에 짧은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하루 일정 뿐이라는게 너무 아쉬웠을 뿐이지만 (펫 샵 보이즈나 코린 라일리 래의 공연 후기가 더욱 더 그렇게 만들었다 ㅠ) 그래도 벨 앤 세바스찬의 무대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너무나 벅차도록 행복한 시간이었다. 매번 록페스티벌이나 공연을 다녀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들로 (경제적 이유 포함) 포기하고 났을 때의 경우보다, 어찌되었든 무릎쓰고 공연을 즐겼을 때의 경우가 훨씬 정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남는 것이 많고 후회없는 선택이 되었었다. 이번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역시, 나에게 또 하루를 살아가게끔 하는 아주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글. 사진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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