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 노동자다. 몇 해 전 이슈가 되었던 고객상담(CS) 중심의 감정 노동자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를 감정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음반/DVD 쇼핑몰을 운영하며 셀 수 없는 고객들을 상대했었고 지금은 광고주와 사용자로서의 블로거를 동시에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예전 쇼핑몰을 운영할 때는 앞서 이야기한 CS 중심의 감정 노동자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제품이나 배송 등에 관련하여 불만이 있는 고객들과 전화, 이메일 등으로 대화를 했어야했고, 전문적인 CS 직원을 별도로 둘 정도의 규모도, 그리고 업무의 특성상 CS단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줘야 했었기 때문에 다른 업무들과 병행해야만 했었다.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말도 안될 정도의 요구를 해오는 고객도 있었고, 잘못은 쇼핑몰 측이 있지만 그 과실을 묻는 정도가 과한 경우도 있었으며, 고객이 뭐라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명백한 잘못을 했던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한참을 고객에게 욕과 비아냥 섞인 불만을 들어가며 전화기를 오랫동안이나 붙들고 결국 내려놓을 때면, 매번 이 일을 왜 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곤 했었다. 오죽하면 오랫동안 일해온 이 업계를 떠난 이유가 '소비자' 혹은 '고객'이 되고 싶어서였겠나.


오늘 내가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이전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겪고 있는 새로운 감정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현재는 서비스로서 블로거들을 사용자로 상대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보니 쇼핑몰처럼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문제나 불만들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할 때가 많다. 사실 이 문제는 꼭 쇼핑몰의 경우를 배제할 수는 없는데 어쨋든 고객과 나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서비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와의 대한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IT나 웹서비스의 경우 이런 서비스의 비중보다는 기술이나 제품 자체의 비중이 더 클 수 밖에는 없기 때문에, 이런 공감대를 '우리'가 공유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사정이 있어서 (사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사용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 내 생각보다는 너무도 쉽게 '그냥 변경되었다고 공지합시다'가 되는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너무 쉽게 이야기가 나온다기 보다는 이 이야기를 실제로 전하는 사람들이 겪는 감정 노동에 비중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얘기다.


서비스를 기계적으로 혹은 완전한 서로의 필요만을 충족시키는 칼 같은 관계로 운영해왔다면 감정 노동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운영해온 서비스들을 결코 그런 식으로 운영해오지 않았었다. 여러번 이야기했던 일이지만 단순 노동에도 혼을 불어넣는다는 얘기는 결코 웃자고 한 얘기는 아니었다. 즉, 무언가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 평소 기계처럼 쿨하게 운영했다면 쉽게 할 수 있었겠지마나, 평소에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개인간의 일처럼 '진짜로' 미안하고 죄송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에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안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일까지 생겨버리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왜 일에 그렇게 감정을 실어서 하냐' '일은 일이지 스트레스 받지마'. 하지만 이런 마인드로 하는 일과 정말로 내 것처럼, 단순한 고객 응대 수준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하는 일과는 절대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광고주가 되었든, 아니 광고주는 모르겠다, 광고주는 일로서 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사용자 혹은 고객을 대할 때 전자와 같은 마인드로 대하는 것은 서비스하는 사람에 기본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매번 같은 스트레스로 하루도 집에서 편히 쉬어본 적이 없고, 집에서도 거의 실시간으로 회사 메일과 사이트, 게시판 등을 오가며 어떤 글들이 올라오고, 어떤 불만들이 올라왔는지를 확인하고, 당장 깔끔하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을 때 갖게 되는 심리적 부담감은 결국 떨쳐내지 못했다. 집에가면 회사 메일도 사이트도 접속 안하기, 를 목표로 해본 적도 있었지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었다. 만약 일로서만 이 일들을 쿨하게 대했다면 전혀 이럴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난 아직도 사용자 혹은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에는 감정을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즉, 앞으로 감정 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점만 이야기했지만 감정 노동자만이 느끼는 희열은 그 어떤 것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전화로, 메일로 전했던 말들의 진심이 전해졌다는 것이 느껴질 때, 그리고 고객들도 우리를 그냥 회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느껴지는 희열은 회사의 대박과는 전혀 별개의 일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어떤 회사든 서비스를 해야만 하는 업종이라면 이런 마음 가짐으로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고객에게 말도 안되는 불만을 들었을 때보다, '우리'라고 생각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돼?'라고 생각한다고 느껴졌을 때의 허무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걸 이해하거나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태생적으로 일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다른 업무의 속내를 100%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그럴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다는 걸, 그리고 보이는 것보다 상당한 정성으로 감정 노동을 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의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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