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년 (Juvenile Offender, 2012)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



강이관 감독 연출, 이정현, 서영주 주연의 영화 '범죄소년'을 뒤늦게 보았다. 이미 주변의 호평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2011년 '파수꾼'이 있었다면 2012년에는 '범죄소년'이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미묘한 감정이 용솟음 치는 작품이었다. 만약 지난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나의 2012년 올해의 영화 목록이 조금은 변경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영화는 '범죄소년'이라는 제목처럼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인 듯한 한 소년과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포스터 속 문구에도 있는 것처럼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그래서일까? 가정 환경 탓에 소년원을 들락날락 하는 소년 장지구(서영주)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 장효승(이정현)의 이야기는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몰입을 할 수 있었다.



ⓒ 영화사남원.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는 따지고보면 아들인 지구와 엄마인 효승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두 명의 '범죄소년'인 지구와 효승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효승은 모자 관계이기 이전에 둘 모두가 같은 현실에 놓여있거나 같은 현실을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효승은 지구를 낳은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지금의 지구와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른바 범죄소녀였다. 즉, 청소년기를 방황하며 보냈던 소녀가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캐릭터라는 얘기다. 강이관의 '범죄소년'이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시간 대가 다른 두 명의 범죄소년이 하나의 이야기에서 만나는 동시에, 더 나아가 모자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범죄소년과 그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혀진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애초부터 이 두 가지 관계가 다 성립 (혹은 공감)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좀 더 곱씹어 보니 그렇지 않았더라도 의도와 다르게 이 두 가지가 모두 성립되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두 명의 범죄소년의 이야기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던 영화가, 둘을 모자 관계로 설정하는 것 만으로도 자연스러운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한 편으로는 완벽한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로 읽혀지게 (범죄소년이라는 내용을 지우더라도) 되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생각은 두 배우, 특히 엄마인 효승 역할을 맡은 이정현의 대단한 연기를 보며 절로 들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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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년'이 좋았던 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일상 그 이상으로 특별하게 포장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자극적일 수 있는 청소년의 임신과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 그리고 이런 이들이 가정으로 나아갈 수 없는 구조의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결코 선정적이거나 혹은 너무 미화하려 하지 않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지구와 효승이 처한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놀랍게도 이 특별할 것만 같았던 이야기에 영화를 보는 '내'가 대입 가능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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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가난에 찌들리고 더 이상 갈 곳 없던 효승이, 얹혀살던 같이 일하는 미용실 원장에게 이제는 그만 집에서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처음에는 사실 그 미용실 원장의 입장이 더 공감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미 이 원장은 여러 차례 대가 없이 효승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거기다가 일자리와 집에 방까지 내주었기 때문에 이미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가달라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집기를 부수고 바닥에 들어 누워 오열하는 효승의 모습에서, '왜 저래?'하는 짜증이나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하는 동정 섞인 마음이 아니라 '나는 왜 저렇듯 더 간절하지 못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효승의 방법이 옳았다라기 보다 그냥 처해진 상황을 극복하려는 방법이 결코 영리하거나 효과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해결해보려는 효승의 행동에서, 다르지만 같은 상황에 놓였었던 나 자신에게 '왜 너는 더 발버둥치지 않았어?'라며 후회섞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이 영화는 두 명의 범죄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범죄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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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도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 계속 진행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영화를 본 '나'의 이야기도 함께 끝나지 않았다는 걸 새삼 알려주었기에 더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1.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보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참 평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묘한 영화였습니다.


2. 이정현의 연기가 정말로 대단했어요. 너무 여러 장면에서 '와!' 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의 완벽함을 보여주어서 그렇게 깊게 영화 속 이야기에 공감한 상태에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연신 들더군요.


3. 강이관 감독의 다음 영화도 기대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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