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2012년 상반기 영화 베스트 10



매해 템플릿처럼 이 맘 때면 반복하는 말이지만 2012년이라는 숫자가 아직 다 익숙해지기도 전에 7월이 훌쩍 다가와버렸다. 올해 상반기에도 참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들을 극장을 통해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처음부터 아주 큰 기대를 했었던 영화도 있었고, 전혀 예상치 못했으나 큰 감동을 준 작품도 있었으며, 볼 계획이 없던 영화였으나 보고나서는 안봤으면 어쩔 뻔 했을까를 되내였던 작품들도 있었다. 이 많은 작품들 가운데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10작품을 꼽아보았다. 10작품 가운데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개봉일 순이다.



1.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쓸쓸한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해

 

 

올 상반기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근사하고 우아한 작품을 고르라면 단연 TTSS였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배우들의 향연들 만으로도 황홀한데, 스파이라는 존재를 그리는 이 방식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제 내게 스파이하면 이던 헌트 만큼이나 조지 스마일리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아, 엔딩에 흐르던 훌리오 이글레아시스의 'La mer'는 올해의 엔딩곡 후보.

 

 

 

 

2.

 

 

워 호스 (War Horse, 2011)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고전의 감동

 

 

스필버그의 오랜 팬으로서 물론 재미나 감동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워 호스'의 감동은 그 크기가 달랐다. 복잡한 얘기도 없고, 신파적이고 우직한 이야기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나를 이토록 많이도 울렸다. 올해 상반기 극장에서 흘린 눈물 가운데 양으로만 따지면 '워 호스'가 아마도 가장 많을 것이다 (극장에서 잘 우는 내 특성상 올 연말에는 꼭 눈물양으로만 순위를 한번 따져봐야 겠다;;).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설명하는 것에는 이제 지쳤다.

 

 

 

 

3.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유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것처럼, 조지 클루니가 왜 멋진 배우인가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알렉산더 페인과 만난 조지 클루니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다. '디센던트'는 시간을 두고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30대 초반에 본 '디센던트'와 40대가 되어서 보게 될 그리고 50대가 되어서 보게 될 '디센던트'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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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로니클 (Chronicle, 2012)

소년이여, 진짜 영웅이 되어라

 

 

27살 신예 감독 조슈아 트랭크의 '크로니클'은 지난해 '드라이브' 처럼 올해의 복병이었다. 그냥 재치있고 신선한 시도 정도로 머물러도 괜찮았을 텐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담론의 세기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주인공 앤드류 (데인 드한)는 올해 상반기 극장에서 만난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나를 뜨겁게 만든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아직도 후반부 앤드류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할 정도로 에너지가 대단했던 영화.

 

 

 

 

5.

 

 

건축학개론 (2012)

나의 첫사랑과 90년대에게 바침

 

 

'건축학개론'은 하마터면 극장에서 놓칠 뻔한 영화였다. 개봉 첫 주에 봤으니 시기적으로 놓칠 뻔했단 얘기가 아니라 볼 생각이 그리 많지 않았던 영화였단 얘기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난 뒤 '건축학개론'은 올해 상반기 본 영화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영화가 되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극중 주인공들과 같은 세대는 아니지만,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고, 정말 놀랍도록 닮아있는 나의 첫 사랑과 90년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안에서 수지가 연기한 '서연'을 보게 되어 벅찼던 영화가 아니라, 승민(이재훈)과도 같았던 나를 발견할 수 있어 더 움찔하게 되었던 영화.

 

 

 

 

 

6.

 

 

어벤져스 (The Avengers, IMAX 3D, 2012)
올스타전이 주는 쾌감

 

 

'어벤져스'는 일단 기다려온 시간 만으로도 10작품 안에 들 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각각의 캐릭터를 하나씩 즐겨왔던 지난 몇 년. 드디어 시작된 올스타전은 올스타전에 걸맞는 매력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비슷한 프로젝트가 많이 무산되었던 것에 미뤄봤을 때, 이 정도의 프로젝트가 실제로 실현된 것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7.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우울함은 영혼을 잠식한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나 있을까 살짝 걱정도 했었던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는 과연 압도하는 작품이었다. 얼마나 압도 당했는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 동안 좌석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겪는;;). 혹자는 라스 폰 트리에를 일컬어 너무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지만, 자신이 집중하는 것에 대해 이런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 보기는 정말 힘든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또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8.

 

 

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2)

가지 않았던 길 앞에 서다

 

 

'다른나라에서'는 홍상수의 전작들과 미묘하게 닮아있으면서도 '다른' 작품이었다. 유쾌함과 아이러니, 가능성과 희망을 모두 우연인듯 조율해낸 홍상수의 장기는 이자벨 위뻬르라는 배우를 통해 또 한 번 표현되었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멋진 작품을 이렇게나 꾸준히 만들어주는 홍상수 감독에게 감사할 뿐이다. 아, '판타스틱'한 유준상의 영어 대사 역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9.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근원에 대한 선문답

 

 

논란 아닌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지만 나는 리들리 스콧의 방식을 굳게 지지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진정한 메시지는 '답'이 아닌 '질문'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작품이 관객에게 질문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가장 효과적이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블루레이를 어서 보고 싶은 이유도 다시 한번 이 작품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이지 답을 듣고자 함은 아니다.

 

 

 

 

10.

 

 

두 개의 문 (Two Doors, 2011)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접 확인하라

 

 

아마도 '두 개의 문'을 보지 않은 이들은 올해 상반기 베스트 10에서 이 제목을 보고서는, 작품이 갖은 사회적 메시지 때문에 상징적으로 넣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용산참사를 기록한 '두 개의 문'은 당당히 영화적 완성도 만으로도 올해 상반기 10작품에 꼽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오히려 더 많은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다큐멘터리라면 '두 개의 문'처럼 영화적 완성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경우이기도 했다. 아직도 못 본 이들이 있다면 지금 바로 상영관을 찾아 관람하길!

 

 

 

 

 그 외에 10작품에는 꼽지 못했지만 이 안에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좋았던 영화들로는,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카메론 크로우의 '우린 동물원을 샀다', 미셸 아자나비슈스의 '아티스트',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 데릭 시안프랑스의 '블루 발렌타인' 등이 있었다.


올 하반기에도 이번 달 개봉할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비롯해, 더 많은 좋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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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 (Two Doors, 2011)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접 확인하라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작품 '두 개의 문'을 드디어 보았다. 이 영화는 잘 알다시피 2009년 1월 20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니..)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벌어진 25시간의 그을린 기록에 관한 영화다. 일단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이 '그을린' 기록에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아니 사실 요새 들어 이런 사안을 접할 때 가장 많이 놀라는 점은 개인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는 걸 감안할 때 다수가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용산 참사를 언론, 법정, 정부가 다루는 방식은 분명 잘못된 점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개의 문'은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으며,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기존의 고발성 다큐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을 취한다. 흔히 강력한 주장과 설득을 하기 위해서는 더 날이 선 객관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바로 '두 개의 문'이 그러하다. '두 개의 문'을 보기 전엔 엄청난 사회 고발성 내용들이 날이 선 잣대로 가슴을 때리려나 보다 했었지만, 막상 보게 된 영화는 더 날카로운 객관성으로 인해 결국 남일당 망루 위에서 적대해야 했던 시위대와 경찰특공대 간의 상대적 이야기가 아닌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내는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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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을 보고 가장 놀랐던 건 그 흔한 피해자, 유가족 들의 인터뷰 장면 하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장치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사안을 영화 만으로 직접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움과 감독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실제로 일을 겪은 이들 (피해자)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에서 기본적으로 활용하다시피한 장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두 개의 문'에는 이러한 장면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유사한 장면이라는 것이 법정을 나오며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 한 장면 뿐이다. 그렇다면 '두 개의 문'의 메시지의 전달 효과는 어떠한가?


피해자, 유가족 등의 인터뷰를 담는 것은 '사안을 영화 만으로 직접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움'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었는데, '두 개의 문'은 바로 이 어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하다시피 한 영화라 해야겠다. 즉, '두 개의 문'의 방식은 용산 참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겪은 이들의 이야기와 이를 오랜 시간에 걸쳐 조사한 감독이 '이러한 일이 있었으니 여러분도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그날 생지옥과도 같았던 25시간을 최대한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고 그 이후에 벌어진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도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100%의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사실(Fact)'자체를 전달하는데에 더 주목하고 있다. 물론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이미 이 사안에 대해 어느 정도 문제성을 인지하고 접근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영화가 내내 취하고 있는 이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메시지에 점점 동화되어 결국엔 '전해 들은 것'이 아닌 '내가 겪은 일'에 가까워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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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처럼 사건을 가까이서 보고 들은 이의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른 다큐 작품들에 비해 훨씬 더 '영화적'인 완성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올해 본 영화 가운데 '프로메테우스'의 근원적 공포에 비길 정도의 현실적 공포를 보여준 영화가 바로 '두 개의 문'이었다. '두 개의 문'은 상당히 스타일리쉬한 화면 구성과 편집 그리고 화면 속 공포를 더 배가 시켜주는 영화 음악까지, 관객이 최대한 직접 체험에 들 수 있도록 영화적 완성도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벽을 넘어야하는 일반 관객들마저 어렵지 않게 극 영화를 보듯 빠져들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영화른 보는 내내 극장 안의 몰입도는 대단했다. 그냥 다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과 숨죽이듯 집중할 때의 분위기는 분명히 다른데, '두 개의 문'이 상영되던 극장의 분위기는 분명 후자였다. 가끔씩 이러한 사회의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보게 될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일단 '두 개의 문'은 더 많은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는 완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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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지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마음 한 켠이 불에 그을린 듯 뜨겁다. 아마도 좀 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였다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사실들과의 동일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거나 한 번 더 mb정권을 욕하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비교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악당을 모두 홀로 물리치는 무술 고수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나도 모르게 내가 고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SF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미래와 우주를 손에 잡히듯 경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두 개의 문'을 보고 난 뒤에는 그 생지옥 같았던 25시간의 고통과 화염이 심장까지 느껴져 미안함과 분노가 절로 생겨났다.


누가 이들을 생지옥으로 내몰았는지. 우리 기억 속에서는 점점 잊혀져 가겠지만 아마도 평생을 잊지 못한 채 트라우마를 겪을 피해자의 가족들과 작전에 투입되었던 경찰특공대들은 누가 위로할 것인지.


이제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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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꼭 보세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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