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스탠드 (The Last Stand, 2013)
김지운의 괜찮은 헐리웃 데뷔작
최근 국내 유명 감독들의 헐리웃 데뷔 소식들이 활발한데,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가운데 이 작품을 가장 먼저 보게 되었다. 사실 다른 두 감독에 비해 김지운 감독을 덜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한 액션 영화라기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사뭇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놀드만 알고 간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다보니 이거 배우들의 면면이 한 마디로 대단하더라. 라이온스게이트 제작에, 포레스트 휘태커, 로드리고 산토로, 제이미 알렉산더, 피터 스토메이어,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오픈 유어 아이즈), 루이즈 구즈만까지, 이 정도면 일단 준비 측면에 있어서는 부족할 것 없는 상차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냥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 작품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제법 규모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괜찮은 헐리웃 데뷔작이었다.
ⓒ Di Bonaventur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일단 '라스트 스탠드'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헐리웃에 진출한 한국 감독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점이었는데, 배경도 인물들도 헐리웃을 통해 표현되었지만 딱 보는 순간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장면이나 설정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첫 시퀀스 역시 그러했고, 특히 인물들을 스크린에 배치할 때 센터에 두고 펼쳐지도록 두는 카메라 앵글은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던 구도라 익숙함이 느껴졌다 (참고로 대부분의 스텝들이 외국 스텝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촬영 감독만은 김지운 감독과 '달콤한 인생' '인류멸망보고서'를 함께한 김지용 감독이 맡고 있다).
'라스트 스탠드'에서 한국 영화의 느낌이 난다는 것은 대부분은 반갑고 기분 좋은 (기존 헐리웃 영화와는 조금은 다른 색깔이 느껴져서) 일이었지만, 간혹 그 점이 단점으로 느껴지는 점도 있었다. 조니 녹스빌이 연기한 '루이스 딩컴' 캐릭터의 활용이 그러한데, 전형적인 개그 캐릭터로서 전체적으로 극의 분위기를 심각하지 않도록 하는 양념 같은 캐릭터로 어색함과 적절함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몇몇 장면은 장면 전체를 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 오락영화에서 흔히 소비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본래 의도했던대로 전반적으로 시원시원한 액션영화인 이 영화를 너무 무겁지 않도록 하는 재미를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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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의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도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너무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한가롭다 못해 지루한 시골 마을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FBI와 거대 범죄조직의 탈주범이 연관된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아 두 가지가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게 되면서 숨겨왔던 주인공의 본색이 드러나게 되는. 사실 이렇게 단순한 줄거리라고 보았을 때 초반에는 이 각각의 이야기에 조금은 과한 비중을 두는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이런 각각의 비중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부담이 되기도 해서 인데, 바로 슈퍼카 ZR1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그러했다. ZR1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부분이 제법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잘못하면 이 능력 자체가 주인공이 되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었는데, 사실 그렇게 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그 균형을 비교적 잘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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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동차 추격과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거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김지운 감독이 그 동안 한국영화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것을 헐리웃이라는 배경을 통해 이제야 시도해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만큼 이 자동차 액션은 매력적이었다. 후반부 옥수수 밭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액션 장면은 단순히 속도와 추격의 재미 뿐만 아니라, 마치 무협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긴장감과 구도 (자동차를 의인화에 가깝게 활용하는)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시퀀스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극장에서 볼 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였고, 해외 팬들에게도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 시퀀스 만큼은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 시퀀스 외에도 ZR1을 이용한 액션 장면들이 몇몇 있었는데, 이 역시도 무협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만한 합과 구도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자동차를 가지고 이러한 액션을 만들어 낸 것이 여러 모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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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가 좋았던 점은 별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 때문이기도 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라는 점에서 볼 때 더더욱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작품인 듯 했다. 마치 '익스펜더블'의 아놀드 솔로 버전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예상했던 순간에 '짜잔'하고 아놀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시시하다라기 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강했다. 이 영화에는 그런 순간 의외성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기대하던 바가 어떻게 표현되는 냐가 중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지점을 비껴가지 않고 그대로 돌파한 점이 좋았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장면과 설정들도 좀 있지만 '라스트 스탠드'에서 그런 현실성을 잡기 보다는 이런 시원함을 선택한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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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손꼽히는 감독이지만 헐리웃에는 이제 데뷔작을 내놓다시피 한 신인으로서,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는 괜찮은 배우들과 함께한 제법 괜찮은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김지운 감독이 앞으로 헐리웃에서 차기작을 선보이고 그 작품이 좋은 평가를 얻을 경우 전작인 '라스트 스탠드'를 일컬어 '그래, 헐리웃 데뷔작인 '라스트 스탠드'도 나쁘지 않았었지'하는 연장선에 놓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다시 말하지만 배우들이 생각보다 좋아서 놀랬어요. 개인적으로는 포레스트 휘태커 보다도 피터 스톨메이어의 출연이 더 반갑더군요. 그의 활용이 생각보다는 한정적이어서 아쉽긴 했지만요.
2. 북미에서 기대보다는 못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헐리웃 첫 작품으로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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