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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4th Place, 2014)

1등이란 이름아래 스러져 간 소중한 것들에 대해



'해피 엔드 (1999)' '사랑니 (2005)' '은교 (2012)' 등을 연출했던 정지우 감독의 신작 '4등'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등만을 위해 살아가는 (살아가도록 만드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질문 이자 대답 같은 작품이다. 부모의 열성적인 지원과 함께 수영을 한 지 2년 쯤 되어 가는 준호는 열심히 하지만 항상 4위를 기록해 부모를 애타게 한다. 부모는 더 좋은 성적을 내고자 준호가 매달을 딸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코치를 수소문 하게 되고, 전직 천재 수영선수라 불리웠던 광수를 만나게 된다. 아, 영화는 그 이전에 광수의 수영선수 시절 이야기를 먼저 흑백으로 들려준다. 광수가 왜 수영선수를 그만 두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건과 그 사건에 얽혀 있는 준호의 아버지 이야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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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의 '4등'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좁게 보자면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교육 방법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아이를 가르치고 더 잘되도록 함에 있어서 폭력이라는 것이 (사랑의 매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어떤 영향을 끼치고, 무엇보다 그 폭력의 기억이 어떻게 되물림 되는 지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폭력을 경험한 인물이 나중에 자신도 어른이 되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게 되는 점은 한편으론 익숙할 정도인데, 그 인물이 폭력을 어떻게 정당화 하는 가에 있어서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은 더 현실적이고 날이 서있다. 자신의 현재를 비관하며 그 때 감독님이나 부모님이 더 강하게 폭력을 써서 라도 본인을 질책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느끼는 장면은, 단순한 폭력의 되물림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폭력이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가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 하고 피해자 스스로를 길들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더 큰 메시지는 폭력의 되물림 혹은 기들여짐에 있지 않다. '4등'에서 가장 현실의 문제성을 날카롭게 다루고 있고 한 편으론 모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은연 중에 정당화 하거나 숨기고자 하는 불편한 진실은 준호의 엄마 캐릭터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준호가 이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준호의 엄마는, 매번 4등으로 매달 권에 미치지 못하는 준호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그 수단 가운데는 폭력의 묵인도 포함되게 된다. 준호의 엄마는 준호가 코치인 광수로 부터 폭력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으로 인해 준호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그 폭력을 동반한 교육의 방식이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진실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입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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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준호가 결국 폭력에 못 이겨 수영을 그만 둔 다음 그 잘못된 자식 사랑의 방식이 고스란히 동생에게 이어지는 장면도 공포스럽다. 더군다나 한창 준호의 수영을 지원하던 시절, 절에 가서 사실은 준호가 매달을 딸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는 준호의 동생은 물론, 가족에 대한 기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 봤을 때, 무엇이 준호의 엄마를, 그리고 아이를 둔 가족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한 방향으로만 앞만 보고 질주하도록 만들었는지 답답한 마음으로 질문하게 된다.


영화 '4등'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영화다. 제목으로 미뤄 봤을 때, 1등만이 인정 받는 세상은 잘못되었다, 매달 밖의 4등도 중요하다.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순진하게 풀어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또 전반적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이 경쟁의 분위기에 골이 깊은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 부모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부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 더 직접적으로는 아이의 미래와 경쟁에 뛰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고민이 이 영화에도 깊이 자리잡고 있다.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어느 선까지 적정한 응원이자 지원이고, 어느 선부터가 강요이자 폭력인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또한 과정이나 의도와는 상관 없이 그 결과로 인해 아이가 더 나은 기회는 물론, 동등한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 불보듯 뻔하다면, 부모는 아이를 위해 그 과정의 선함보다는 결과의 나음을 택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이 쉽지 않은 문제를 충실하게 던진 뒤 자신 만의 대답도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다. 결국 많은 일들을 겪게 된 준호는 코치인 광수가 부모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그냥 애가 혼자 하도록 놔두는 것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택하게 되는데, 그렇게 진심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되자 결국 2등도 아닌 1등을 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한 편으론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지켜 보았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결과로서 '1등'이라는 등수를 보여준 것은 더 큰 아젠다는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준호가 스스로 수영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1등'을 해야 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기에 꼭 1등을 해야겠다고 말하는 장면 역시, 조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차라리 대회 장면이 아니라 준호가 정말 하고 싶은 수영을 하기 위해 홀로 수영장을 찾아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을 엔딩으로 했거나, 대회 장면으로 하더라도 순위 발표 이전에 마무리 했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 1등을 만드는 것입니다'라는 느낌보다는 '1등도 4등도, 아이들에겐 등수가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준호가 1등이 되는 마지막은 한 편으론 아쉬운 부분이었다.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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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감독의 '4등'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관객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었다. 사실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조금만 쉬어 가려하면 그 사이에 순위가 바뀌어 버리는 탓에 쉴 틈 조차 없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그럼에도 진지하게 다시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날카롭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도 이제 다시 그 출발점에 서 있다.



1.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더군요. 박해준 배우나 아역인 유재상 군 말고도 개인적으로는 코치를 소개해주는 교회 분으로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더라는.


2. 이런 영화가 더 많은 극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적은 상영 횟수라도 꼭 찾아서 관람하시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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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이유를 몰랐던 이들의 진혼곡



2003년 작 '지구를 지켜라'를 인상 깊게 보았던 이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기다렸을 장준환 감독의 신작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이하 화이)를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화이'는 전반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가운데 잔인함마저 가득한, 장준환 감독 만의 에너지가 돋보이는 그런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 납치된 아이를 납치범들이 어른이 되도록 키워낸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능한 구조였는데, 여기에 몇 가지 이야기의 구조를 더해 장준환 감독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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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텐데, 하나는 영화의 인물이나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많음을 왜 선택했느냐 일 것이다. 일단 단순하게 보았을 때 '화이'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각자의 이야기는 결코 적지 않은 편이다. 특히 인물들은 화이에게 다섯 명의 아빠가 있는 것처럼 필요 이상으로 느껴질 만큼 다수의 인물이 등장한다. 각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 비중이 모두 적은 편이 아니라 일정 수준이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쉽사리 한 가지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 단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많은 캐릭터들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분명 이 점은 집중 도를 흐릴 수 있는 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 비중과 수준이 필요 적정 선에 닿아 있었기 때문에 허무하다 거나 전체 전개를 흐리는 일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다섯 명의 아빠라는 설정처럼, 때로 나오며 각자의 주특기가 있는 캐릭터로 인해 부가 적인 재미 요소가 있었고, 주변 인물들 역시 이름 있는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어 각각을 인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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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렇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물을 굳이 등장 시켰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를 통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화이'의 이야기 구조라면 화이 (여진구)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자신을 키워준 납치범 아빠들과 적으로 대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1:1의 대결 구도 (정확히 말하자면 1:5가 될 수도 있지만)에 집중하여, 화이의 분노와 이 이야기의 끝을 주목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준환의 '화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기본 이야기에 몇 가지 곁 가지 이야기를 추가했고, 각각의 캐릭터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부여했다. 그 얘긴 즉,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화이라는 한 인물이 겪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등장하는 모두가 같은 갈등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다수의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그 정서를 느꼈겠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인물은 그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어떻게 든 문제를 해결하고 살고자 하기 보다는, 그저 죽음이 순순히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분위기가 시종일관 느껴졌다. 단순히 죽기 만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저 세기말 적인 분위기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화이'에서는 왜 인물들이 죽기 만을 기다리는 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는 영화 후반에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처럼, '왜?'라는 물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에 대해 결국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이들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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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어린 아들을 납치 당한 부부는 왜 자신들에게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끝내 알거나 인정할 수 없었을 터이고, 괴물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이도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하면 이 괴물을 떨쳐낼 수 있을지 그 방법과 이유를 몰랐기에 결국 영화 속 이야기 같은 행동들이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저 무서운 범죄자 정도로만 묘사되었던 극 중 김윤석이 연기한 인물의 이야기는, 영화의 메시지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왜 나는 남들처럼 못하는지' 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는지' 등과 같이 '왜?'라는 질문에 결국 세상이 답해 주지 못하면서 그 이유를 끝내 알지 못한 채 자신 만의 왜곡된 방법으로 살아 남을 수 밖에는 없었던 그의 이야기는, 그대로 화이에게로 전이되어 슬픈 진혼곡으로 마무리 된다.


그 절절함. 이미 절절하고 치열한 단계를 다 거쳐 무뎌진 인물의 이야기와 현재 그 치열함 속에 놓인 인물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순간이, 이 작품 '화이'의 클래이맥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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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진구의 연기는 제대로 처음 보았는데 괜찮았어요. 교복을 수트로 오해할 만큼 멋지더군요 ㅎ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이 영화를 볼 수 없었다는게 함정.


2. 김윤석은 정말 무서워요.


3. 개봉 첫 날 무대인사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아래 직찍. 조진웅 씨는 생각보다 슬림하셔서 깜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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