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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 (A Quiet Dream, 春夢, 2016)

꿈처럼 유령처럼 살아있는 존재들


장률의 신작 '춘몽 (A Quiet Dream, 春夢, 2016)'은 제목 그대로 꿈이라는 구조를 현실에 녹여낸, 소소한 에피소드 같지만 사실은 쓸쓸한 영화였다. 익준과 종빈, 정범 이 세 남자는 예리라는 인물과 그녀가 있는 고향주막을 중심으로 엮여, 아니 모여 있다. 이 세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는 쉽게 홍상수 영화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고 실제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은 얼핏 그런 듯도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들의 관계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세 감독의 전작에서 자신들이 연기했던 캐릭터의 연장선처럼 보이는 이들과 그 중심에 있는 한예리가 연기한 예리라는 캐릭터는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각자의 이유들로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포용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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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수색이라는 공간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수색은 내게도 어렸을 때부터 머물지는 않았으나 종종 지나치는 동네로 익숙하지는 않아도 어색하지는 않은 공간인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 있는 상암이 디지털시티라는 이름의 화려함으로 거듭나면서 오히려 수색이라는 공간의 그늘짐은 더 짙어진 경향이 있다. 장률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수색을 떠올렸을 때 컬러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고 흑백으로만 기억이 되는 공간이라 흑백을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나 역시도 적은 기억이지만 수색이라는 동네를 떠올리면 흑백과 전신주, 송전탑 등의 차가운 느낌만이 남아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며 새삼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근래에는 어떤 동네보다도 첨단을 달리고 있는 상암동의 바로 옆, 지하로 연결되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수색동의 이미지는 주인공 네 사람의 이미지와 그대로 겹쳐진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중심이 아닌 주변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지만, 마치 수색동이 그런 것처럼 화려함과 사회의 중심에서 아주 먼 곳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유령'과 '살아있다'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는데, '춘몽'은 단지 사회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 유령처럼 느껴지는 존재들이 바로 곁에서 살아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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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를 비롯해 이들의 삶은 항상 죽음 혹은 위험과 맞닿아 있는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그렇게 고요하고 평온하게 묘사하는데도 말이다), 그러한 긴장감을 오히려 현실로 느끼게 해주는 장치가 바로 꿈이 아닐까 싶다. '춘몽'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마치 꿈과 같은 장면들이 현실에 개입하는 것을 통해, 이들 삶의 위태로움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한 편 위로하는 듯한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장률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두만강'인데, 그 이유는 경계인이라는 장률 감독 자신의 정체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한국 출신 감독은 소화하기 어려운, 그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묘사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춘몽' 역시 많이 유연해지기는 했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이야기가 짙게 깔려 있다.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의 관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쓸쓸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처한 유령 같은 또 다른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가, '춘몽 (春夢)'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왠지 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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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익준, 윤종빈, 박정범 이 세 감독의 메소드 연기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포인트에요. 이 세 명이서 만드는 짧은 대화 시퀀스들의 재미는 앞서 이야기했던 홍상수 영화의 그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빅재미가 ㅋㅋ


2. 아, 세 감독의 메소드 연기 못지않은 이준동 대표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ㅎ 왠지 현장에서는 많이 즐거웠을 듯한 ㅎㅎ


3. 이주영 배우도 인상적이었어요. 어서 '꿈의 제인'도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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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2014)

시간과 경계가 머물러 있는 곳



처음 '경주'의 예고편을 보았을 땐 누군가가 박해일, 신민아라는 배우를 데리고 풋풋한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나 보다 했었다. 그런데 그 감독이 다름 아닌 장률이라는 것을 알고 이 영화에 대한 기대는 급격하게 커질 수 밖에는 없었는데, 장률이 누구던가. 최근 작 '풍경'을 비롯해 '두만강' '이리' '중경' '경계' 등 재중동포라는 개인의 특별한 환경을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여 내며 '우리'에게 계속 생각해 볼만 한 것들을 던지는 시네아스트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장률의 영화에 박해일과 신민아가 출연을 하는 것도 놀라운데, 무언가 로맨스 적인 느낌이 풍겨나오는 영화라는 점에 기대, 아니 궁금증이 더할 수 밖에는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장률은 이 영화 '경주'를 마치 홍상수 영화처럼 끌고 가다가 결국에는 다시 자신이 항상 관심을 갖고 있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은연 중에 던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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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한다. 현재 중국에 살지만 선배의 죽음 때문에 서울에 오게 된 최현(박해일)은, 7년 전 선배와 함께 갔었던 경주를 다시 가보기로 한다. 그렇게 경주에서 최현이 겪는 하룻 밤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전부다. 장률은 전작들에서도 지역, 도시를 주인공으로 다룬 적이 많았다. 그가 묘사하는 도시는 그냥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를 하나의 인격체 혹은 정서로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그가 바라보는 도시는 한 명 한 명의 인격체가 만들어 낸 집단 정서 혹은 그 영혼이 담겨 있는 공간이자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선택한 새로운 도시는 바로 '경주'다. 경주는 우리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하나씩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모두가 아는 도시인 동시에 사실은 모두가 잘 알지 못하는 도시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가운데 '죽음'이라는 정서가 어쩌면 드리워진, 특별한 정서가 흐르는 도시이기도 하다. 장률은 바로 그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있는 경주라는 도시를 주목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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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작 하루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천천히 흐른다. 마치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는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커다란 하루의 흐름에, 더 나아가 7년의 시간을 헤아리듯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간다. '경주'는 형식상 홍상수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비슷한듯 하면서 조금은 다르다. 홍상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감정의 서사가 더 중요한 반면, 장률의 '경주'는 주인공들의 감정 선보다는 오히려 이 공간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경주라는 유수한 역사와 시간이 흐르고 있는 도시 속에 하나의 요소로 존재하는 듯 하다. 그와 동시에 이 영화는 구체적인 경주에 관한 영화이자 단순히 경주라는 도시를 빌린 영화이기도 하다. 장률은 과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주라는 도시를 흥미롭게 여겨 자신이 흥미롭게 생각했던 경주의 생경함을 그대로 옮기고자 했으며, 또한 경주라는 이 도시에 빗대어 자신이 지속해서 주제로 삼던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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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이 바라 본 경주는 그저 신비롭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미로 담겨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죽음으로 인해 오게 되었고, 누군가는 죽기 위해 오게 되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 때문에 남겨진. 그리고 역사가 죽음으로 잠들어 있는 도시. 장률이 바라 본 경주는 이렇게 죽음이라는 테마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래도 묘하게 경주를 다시금 가고 싶게 끔 만들었다. 어쩌면 가슴 한 켠에 그냥 이렇게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일 것이다. '경주'는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백현진의 '사랑'처럼, 가끔 눈감고 생각해보고 싶은 그런 영화였다.



1. 장률 감독이 박해일, 신민아를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역시 장률 영화네요. 좋았어요.


2. 백현진씨와 류승완 감독님의 연기는 단연 이 작품의 활력소더군요. 특히 개인적 친분이 있는 류감독님의 메소드 연기를 보고서는 극에 집중이 안될 정도였어요 ㅎ 감독님 종종 연기도 보여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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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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