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 : 블루레이 리뷰 (Tinker Ticker : Blu-ray Review)



김정훈 감독의 데뷔작 '들개 (Tinker Ticker, 2013)'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 그러니까 보통 현실을 담아낸다고 했을 때 흔히 선택하게 되는 보편적이고 겉 핥기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었을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있는 진짜 현실적인 이야기를,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 있는 사제 폭탄이라는 소제를 활용해 그려낸 수작이다 (다른 얘기로, 요즈음의 한국 사회 모습을 보면 사제 폭탄이 더이상 비현실적인 소제라고 말하기 조차 구차스럽다). 여기에 지금은 제법 알려진 스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첫 장편 출연작이거나 아직 독립 영화계에서만 이름을 알려왔던 변요한과 박정민 두 배우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마 이 작품은 이 두 배우 덕에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더 많은 조명을 받게 될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들개'는 어떤 이유에서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흡수 되지 못한 20대 혹은 30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잘 표현해 낸 작품이다. 흔히들 2,30대 청년들의 사회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청년 실업 문제를 중심으로 경제적인 불투명한 미래 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현재 청년들이 처한 상황은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 김정훈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즉 자신이 겪었던 감정들을 그려낸 이 영화 속 박정구(변요한)의 이야기는 물론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섞이지 못한 일종의 외부인으로서 겪는 직업과 관련된 직접적인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 외에도 정확히 이거다 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불만 혹은 답답함이 더 큰 갈등이자 문제로서 등장한다. 정구는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계속 면접을 보지만, 정구가 사제 폭탄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등의 일은 단순히 그가 매번 면접에 떨어져서도, 조교실에서 교수와 선배들에게 무시를 당해서 만도 아니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정구의 이야기를 단순히 취준생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이 영화가 담아내고자 했던 현실과 감정/갈등을 다 읽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들개'에는 주인공 정구 외에 박정민이 연기한 이효민 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효민은 정구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불만을 가진, 다른 성격의 같은 인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효민이 정구에게만 존재하는 유령 같은 (혹은 악마같은)존재로 느껴졌다. 정구는 사제 폭탄을 만들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그 폭탄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탓에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을 보내 그 폭탄이 사용되기 만을 바라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아주 적합한 이가 바로 사회의 불만이 많아 보이고, 더 나아가 그 불만을 표출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효민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을 나란히 두고 각자 존재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효민을 정구의 욕구가 표출된 분신으로 볼 때 더 큰 매력을 갖게 된다. 정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폭탄을 사용한 정구의 행동에 표현하지는 않지만 쾌감을 느끼게 되고, 효민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면서도 그를 큰 거리낌 없이 받아 들인다. 하지만 반대로 어느 정도 안정과 안식을 찾게 된 이후 위험한 존재인 효민을 멀리하고자 하지만, 효민은 결코 쉽게 정구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들개'에서 가장 소름끼치도록 들켜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순간은 죽일 정도로 미워했던 담당 교수가 결국엔 정구를 (그래도)신경 써주고 취업을 도와주게 되면서, 정구가 한 순간에 자신도 동경 혹은 멸시했던 그 사회의 일원으로 흡수되는 장면이었다. 그 전에 이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보통과는 다르게 담당 교수가 본래는 착한 사람이었고 정구가 오해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쁜 놈인 것은 그대로인데 정구가 원했던 몇 가지를 해결해 주는 것에서만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담당교수를 향한 정구의 불만과 증오가 단순한 오해만은 아니었음에도 정구가 그렇게 원하던 취직을 해결해 주었다는 점은, 그 취직이라는 것이 오히려 정구가 멸시하던 사회로의 편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고, 정구 역시 정의와 불의의 가운데 에 있는 영화적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그래서 현실적인 주인공임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시점부터 관객은 온전히 정구의 편에 설 수 없게 된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정구의 편에 서고 싶지 않게 된다. 그건 돌려 말하면 관객 자신도 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점을 송곳 처럼 파고드는 것이 김정훈 감독의 '들개'가 가진 가장 큰 시사점이다.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정구는 과연 살아남았나. 정구는 과연 그가 바라던 사회에 일원이 된 것인가. 처음부터 그 사회를 경멸한 것은 내가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스포일러 끝)


[들개 : 블루레이] 인상적인 데뷔작에 내려진 놀라운 축복




* 플레인 아카이브의 팬이기는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같은 타이틀을 중복으로 A/B타입 모두 구매하지 않는데, '들개'는 둘 다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A타입은 영화와 딱 떨어지는 완벽한 이미지였고, B타입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또 다른 매력이자 취향이어서 구입하지 않을 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만약 플레인에서 '들개' 블루레이가 발매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훨씬 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말하자면 국내 블루레이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아...이 푸념은 하면서도 늘 지겹고도 슬프다) '들개'같은 독립 영화가 발매 될 확률은 지극히 희미 하다는 점에서 새삼스럽지만 출시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다. 앞서 '훨씬 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라고 한 이유는 플레인 아카이브의 유명세로 인해 이 영화를 흥행 시켰다는 얘기가 아니라, '미생'과 '육룡이 나르샤' 등으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된 변요한과 '파수꾼'을 비롯해 최근 '동주'로 더 큰 인기를 얻게 된 박정민 배우의 팬들이 놓칠 수도 있었던 두 배우의 뜨거운 연기가 담긴 수작 한 편이 적당한 타이밍에 블루레이로 발매된 덕에 서로를 놓치지 않고 알아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군가는 최근 뜨거워진 두 배우의 인기에 편승한 재빠른 출시가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블루레이 제작을 결정했을 시점에서는 결코 두 배우의 인지도가 지금과 같지 않았었다. 좋은 작품을 작품의 크기나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선택한 것인데 이후 두 주연 배우가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오히려 플레인 아카이브의 팬으로서 역으로 고마울 정도다. 






아주 가끔이지만 간혹 영화에 비해 과한 패키지로 출시 된다거나 혹은 굳이 블루레이로 발매될 정도의 영화가 아닌데 (이건 국내의 특수한 시장상황 때문이지 결코 보편적인 이유는 아니다) 급작스럽게 블루레이로 발매되어 조금은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다. 물론 출시 되지 않은 것 보다야 훨씬 더 나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많은 좋은 영화들이 제대로 된 타이틀로 발매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상황에서 상대적인 아쉬움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적어도 '들개'는 그 놀라운 축복을 받을 자격은 충분히 있었던 좋은 데뷔작 임엔 틀림 없다. 저예산의 규모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영리한 구성과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 그리고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대규모 상업영화들과 견주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긴장감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다시 블루레이 패키지 이야기로 돌아와 플레인 아카이브 넘버링 #021 타이틀로 출시된 블루레이는 역시 플레인 답게 디자인과 패키지의 구성에서 또 한 번 만족감을 주는데,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무릎을 탁!하고 칠 만한 기막힌 아웃케이스(A타입)가 가장 눈에 띈다. 영화 속 수제 폭탄 박스 이미지를 최대한 실제처럼 구현한 이 아웃케이스 이미지는 진짜 '딱'이다. 여기에 청테이프의 질감을 살린 플레인 아카이브 한정판 스티커는, 새삼스럽지만 하나의 블루레이 패키지를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 주먹구구식이 아닌 하나의 큰 기획 아래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 디테일!



* 디테일이다!!



* 블루레이 만을 위해 독점으로 수록 된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 (CD)


부가영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블루레이 독점으로 수록된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최초는 아니지만 해외 타이틀에 로컬 음성해설을 별도로 제작해 수록하기도 했던 플레인은 (최초는 블루레이는 아니지만 아마도 예전 스펙트럼 DVD 시절에 쇼브라더스 타이틀에 수록되었던 로컬 음성해설이 아닐까 싶다), 이번엔 별도로 발매되지 않은 영화의 스코어를 블루레이 만을 위해 독점으로 수록하는 또 한 번의 과한(?) 정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취향에 따라 스코어 음반은 누군가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취향을 떠나서라도 어찌되었든 '들개'라는 영화와 블루레이 타이틀의 소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영화와 관련 된 자료 혹은 정보를 최대한 끌어 담으려한 시도는 그 자체 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다. 스코어의 독점 수록은 새로운 시도였는데 추후에도 국내 영화 출시시에는 유사한 시도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영화 만큼이나 만족스러웠던 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었다. 혹자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것 같은데?'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잘 살펴보면 부가영상으로 수록 된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 및 삭제 장면, NG 장면 등이 사전에 영화 홍보를 위해 일률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블루레이 수록을 위해 진행되거나 염두에 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영화 타이틀의 경우 아직까지도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화질이나 음질 보다도 양적으로 부족하거나 질적으로 평범한 부가영상들인데, 애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DVD나 블루레이가 고려되지 않거나 고려되었다 하더라도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뻔한 인터뷰나 그 인터뷰 내용이 중복된 제작영상이 수록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들개'는 당연히 사전에 블루레이 제작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제작이 결정 된 이후 갖게 된 상영회 등에서 블루레이 수록 만을 위해 별도로 인터뷰나 관련 코멘트 등을 추가한 점이, 질적으로 확실히 느껴지는 점이라 만족스러웠다.





김정훈 감독과 변요한, 박정민 두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도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들어 볼 만한 트랙이다. 김정훈 감독에게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두 배우가 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보니 흥미롭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아마도)상상마당에서 상영회 후 진행 된 듯한 두 배우의 인터뷰 영상도 진지함이 묻어나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듣게 되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 된 관객과의 대화 영상 역시 불필요한 내용 없이 영화의 메시지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등을 전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 외에 삭제 장면, NG장면, 또 다른 엔딩, 오디션 영상 등이 수록되었는데 이들 영상이 좋았던 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냥 늘어 놓기 식의 정보성 영상이 아니라, 감독의 코멘트가 텍스트로 제공되어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등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이해가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확실히 그냥 별다른 설명없이 수록되었을 때보다 해당 영상들을 더 주목해서 끝까지 감상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데, 이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나서 더 의미있는 부가영상이었다.





사실 나는 변요한, 박정민 두 배우의 팬이자 플레인의 팬이라서 엎친데 덮친 격이라 '들개' 블루레이를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여서인지는 몰라도, 영화도 타이틀도 만족스럽게 빠진 것이 이렇게 글을 부러 쓰게 되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아마 '들개' 블루레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나중에는 더 소장 가치가 높아지는 타이틀이 될 것이다. 변요한의 데뷔작, 박정민의 초기작이 더 의미있어 질 때, '들개' 블루레이의 가치는 지금보다도 더 크게 빛날 것이다. (두 개 사길 잘했어.)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플레인 아카이브 에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미처 소개 못한 스크린샷 몇 장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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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끝까지 단단하고 새롭기까지 한 역대급 사극



지상파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한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최근엔 별로 재밌게 본 작품이 없었는데, '육룡이 나르샤' 역시 첨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퓨전 사극 냄새가 나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제목이 처음 내용을 몰랐을 땐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봐야지 했던 이유는 역시 배우들이었다. '베테랑' '사도' 등으로 한창 뜨거웠던 유아인을 비롯해 김명민, 천호진, 신세경 등은 물론 개인적으로 '미생' 이후 더 주목하게 된 변요한까지 출연한다는 소식은, 최소한 일단 시작은 해봐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던 배우들은, 이 작품을 더 역대급으로 만들어 내는 완벽한 조각이기도 했다.


50부작에 달하는 내용을 하나 하나 다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전체적인 감상과 마지막 회 위주로 간략하게 이야기해볼 텐데, 첫 째는 역시 완성도다. 보통 50부작이나 되는 TV드라마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있어서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은데, 그건 국내 드라마의 퍽퍽한 제작 여건도 부정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전반적인 리듬감이나 균형을 위해 강약을 조절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육룡이 나르샤'는 50부작 전체가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한 회도 그냥 지나치는 화가 없을 정도로 짜임새 있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빠른 리듬감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이 끝나고 나면 '벌써 끝났나?'라고 자주 얘기했던 건 그냥 팬심 만은 아니었다.


사극의 특성상 여러 인물들과 관계 들이 등장하는데 그 다양함을 복잡함의 나열이 아니라 깨알 같은 연관성으로 엮어 냈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여러 다른 인물들과 관계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빠지고를 반복해도 완성도의 붕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여러 회차가 다 인상적이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25회를 꼽지 않을 수 없겠다. 땅새와 연희의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절정을 치닫는 가운데, 땅새와 무휼, 영규까지 목숨을 건 액션 시퀀스는 과연 한국 TV드라마에서 이 정도 수위와 연출의 액션을 본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는 엄청난 회였다. 액션 측면으로만 봐도 잠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긴 호흡으로 가져간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액션 시퀀스를 비롯한 이 회차 전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밑바닥에는 땅새와 연희의 감정선이 아주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주제를 감정적으로 분출시킨 장면으로서, 볼거리와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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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역사를 묘사하는 작품의 방식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 절정은 역시 정몽주와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나눈 단심가와 하여가 시퀀스였다. 누구나 학창시절 배우고 외워서 잘 알고 있는 이 내용을, 머리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달해 내 이제야 비로소 두 사람의 진심과 심정을 해아리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은 대단했다. 이 밖에도 우리가 흔히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수 많은 역사 속 순간이나 인물, 사건 들이 등장할 땐, 마치 이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해 내는 연출이 돋보였다. 그러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되지?'라는 궁금증 마저 들게 만들거나 혹은 '아..그래서 그랬던 거구나...'하며 비로소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나는 이것이 '육룡이 나르샤'가 달성한 가장 큰 성공이 아닐까 싶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 그것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뻔하다고까지 생각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처음 듣는 얘기처럼 만들어 낸 연출과 구성은, '육룡이 나르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마지막 회는 주로 에필로그를 담는 형식으로 그려졌는데, 보통 에필로그를 그리게 되면 축축 처지면서 정리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마지막 회에서도 마치 더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듯한 에너지를 보여주며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50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SBS드라마인 '뿌리 깊은 나무'와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했던 이 드라마를 '육룡이 나르샤'는 아주 영리하게 활용했다. 특히 마지막 회는 '육룡이 나르샤'의 50회이자 '뿌리 깊은 나무'의 0회 정도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 고리가 단단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은 그 연결 고리를 하나 하나 발견해 내며 이 역사의 계속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뿌나'를 보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선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말 다음 주 부터 '뿌나'를 방영하는게 새로운 드라마를 하는 것 보다 나을 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도(세종)를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로 등장시킨 것도 정말 좋았다. 이도의 존재가 이방원이 꿈꾸었던 자신을 포함한 존재들의 가치를 모두 조금씩 닮아 있었다는 점에서, 그를 연기한 아역이 다름 아닌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라는 점은 묘한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쉬지 않고 긴박하게 달려 온 '육룡이 나르샤'는, 배우들의 놀랍고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바탕으로 마지막회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단단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익숙한 역사에 생동감을 불어 넣은 역대급 사극이었다.

아... 다음 주 부터는 정말 뭘 보지. 둘 중 하나는 봐야겠다. '육룡이 나르샤'를 1회부터 다시 정주행하거나 '뿌리 깊은 나무'를 다시 보거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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