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셔니스트 (L'illusionniste, 2010)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불리는 코미디의 거장 '자크 타티'를 기리며 만든 실뱅 쇼메의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2010)'를 보았다. 이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자크 타티 때문이 아니라 올해 열렸던 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상 후보에 오르면서 부터였는데, 너무 아름다운 작화와 분위기에 예고편 만으로도 흠뻑 빠져서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으나, 사실 국내에 개봉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하기도 했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극중 일루셔니스트 모습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 만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도 아닐 뿐더러 주제 역시 유쾌하지 만은 않고, 헐리웃이 아닌 프랑스에 서 만들어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상업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이 비좁은 개봉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해외에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 구매를 알아보고 있던 중 국내 개봉 소식을 접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보게 된 실뱅 쇼메의 '일루셔니스트'는 아름답고 아련하면서도 쓸쓸한 작품이었다.



ⓒ Pathé. All rights reserved



극중 일루셔니스트의 모습에서는 여러가지를 빗대어 볼 수 있을 듯 하다. 처음에는 큰 공연장을 돌며 잠깐씩 마술쇼를 보여주던 주인공은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이 설 무대를 잃어가다가, 결국에는 이것만 가지고는 살아나갈 수 없기에 전혀 다른 일들을 잠을 줄이고, 시간을 짜내어 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단순히 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졌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아직까지 믿어주는 한 소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더 이상 마법에 놀라지 않고 속지 않은 세상과는 달리 아직 세속적인 것에 물들지 않아 주인공의 마법에 환호하고 마법 자체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는 이 소녀를 위해, 주인공 일루셔니스트는 쉽게 자신의 일과 마법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이 모습을 통해 우리는 여러가지를 빗대어 볼 수 있는데,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도 있겠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급격하게 잊혀져 가는 모든 오래된 것들에 대한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내가 발견한 메시지는 바로 영화에 관한 것이었다. 감독인 실뱅 쇼메가 자크 타티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던 것 역시 영화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극 중 일루셔니스트의 모습에서는 영화라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아련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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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일루셔니스트는 자신은 마법을 믿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마법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소녀의 꿈을 지켜내기 위해 일루셔니스트로서 최선을 다한다. 이 작품이 쓸쓸한 첫 번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일루셔니스트 스스로는 마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더 이상 자신의 마법만으로는 삶을 영유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 '마법'이 아닌 소녀에게만 보이지 않는 현실의 노력으로 이 마법을 지켜내게 되는 점이다. 일루셔니스트가 현실의 노력으로 이 마법을 지켜내려는 과정을 보는 관객들은 그의 모습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영화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영화라는 매체가 점점 본연의 예술적 아름다움과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하기 보다는, 빠르게 변화하는 관객들의 일회성 요구에 발맞춰 여러가지를 포기하거나 혹은 내실이 아닌 포장에만 더욱 열을 올리게 되어버린 요즘의 영화계를 떠올려 볼 수 수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대중의 요구로 움직이기 보다는, 만드는 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완성해낸 결과물들이 점점 더 상업성이 없다는 시장의 논리로 인해, 설 무대가 없었던 일루셔니스트처럼 관객에게 선보일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되는 현실을 비춰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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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쓸쓸했던 이유는, 극의 처음부터 그리 열정적이지는 않았던 (이미 나이로 보았을 때 이런 자신의 상황에 내성이 생겨버린, 일종의 포기상태일 듯한) 일루셔니스트가 우연히 만나게 된 소녀를 통해 잠시나마 자신도 조금은 잊고 지냈던 일에 대해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모습과 결국엔 쓸쓸한 안녕을 고하게 되는 현실 때문이었다. 분명 일루셔니스트는 소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즉, 소녀에게 해준 것은 본인이 (아마도) 평생을 해왔을 일루셔니스트로서의 삶, 자신에게 해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소녀의 캐릭터가 일루셔니스트를 이해한다기 보다는 단지 '무지'의 존재였다가 세상을 알게 된 뒤에는 남들과 똑같이 현실에 녹아들어버리는 걸 보았을 때 더더욱 이 이야기는 세상에 놓여진 일루셔니스트의 쓸쓸한 일인극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체가 또 쓸쓸하다. 관객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일루셔니스트의 삶이 결국 일인극으로 마무리된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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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뱅 쇼메의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쓸쓸한 감성을 담고 있지만, 영상에서는 다시 한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영화라는 것의 마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낸다. 무성영화에 가깝도록 대사는 없고 인물들 역시 말보다는 행동과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는데, 특히 극 중 일루셔니스트가 지내게 되는 모텔에서 만나는 그의 광대 동료들의 자화상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실뱅 쇼메의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에 대해 깨닫기에 완벽한 작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감독의 말을 듣고 있는 대상이 더 이상 마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 임을, 감독과 작품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쓸하고 그립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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