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덜리스 (Rudderless, 2014)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빌리 크루덥이 수염 덥수룩한 얼굴로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이미지 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되었던 영화 '러덜리스 (Rudderless, 2014)'. 음악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꼭 봐야지 싶었던 영화는 반대로 그랬기 때문에 별다른 정보를 알아보지 않고 보게 되었는데, 조금은 특별한 음악 영화였다. 아내와 이혼한 주인공 샘 (빌리 크루덥)은 다니는 광고 회사에서 중요한 계약을 따낸 뒤 바로 아들에게 전화해 만나고자 약속하지만, 아들은 약속 장소에 나오지 못하고 그 이유는 놀랍게도 아들이 다니는 대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사건으로 인해 아들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이 사건이 벌어진지 2년 뒤의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들을 그렇게 잃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샘의 이야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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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가 중후반부까지 숨기고자 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도 언급하지 않겠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사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러덜리스'를 통해 기대되었던 부분은 음악 영화로서의 지점이었기 때문에 그런 맥락으로만 영화를 감상하다가, 말미에 가서야 숨겨왔던 진실을 꺼내 놓았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포인트였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이 영화가 전혀 다른 의미의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표면적인 내러티브 측면으로 보자면 '러덜리스'는 몹시 불친절하고 부자연스러운 작품이다. 앞서 이 총기 사건을 겪기 전까지의 짧은 프롤로그는 그 이전의 가족 관계를 예상하기에 결코 친절하지 않으며, 아들을 잃은 충격적인 사건임에도 그 사건을 묘사하는 비중은 아주 짧고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로 2년 뒤의 시점에서. 어쩌면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시점에서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된다. 그렇다고 그 간 짧게 표현되었던 사건과 시간들이 이후 인물들에게 바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형태도 아니다. 샘은 잘 나가던 광고 회사의 중역에서 떠돌이 페인트공이 될 정도로 삶이 변화하였지만, 과거에 영향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그냥 이미 지금의 현실에 제법 익숙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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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영화는 그다지 친절한 구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말미에 그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마찬가지고, 영화가 스스로 마무리 짓는 방식 역시 그러하다. '러덜리스'는 그 여백을 음악의 힘이 채워준다고 굳게 믿고 있는 작품이다. 처음 아무 설명 없이 아들이 기숙사 방에서 직접 쓴 곡을 녹음하는 장면의 인트로 부분도 그렇고, 이후 샘이 쿠엔틴 (안톤 옐친)과 우연히 만나 밴드를 결성해 연주하게 되는 과정도 그렇다. '러덜리스'의 인물들은 저마다 충분히 대사나 지문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래도 관객들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전달하는데, 그것은 바로 음악 때문일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자 좋았던 연출은 후반부 샘이 홀로 남아 클럽에서 곡을 노래하는 장면이었다. 보통의 다른 영화였다면 이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사전 설명이 필요함은 물론, 이 순간의 감정을 극적인 연기나 또 다른 사건으로 풀었어야 가능했을텐데, '러덜리스'는 아주 덤덤한, 정말 아주 덤덤한 노래 한 곡으로 완벽에 가깝게 묘사해 냈다. 그리고 더 괜찮았던건, 과연 이런 샘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 역시, 클럽 내 사람들의 디테일한 반응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반응이 영화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위로도 비난도 아닌 그저 슬픔이랄까. 그 말로 하기 어려운 주변의 반응과 이 한 가운데에서 폭발하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샘의 심정을 묘사해 낸 이 시퀀스는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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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러덜리스'는 영화 스스로가 음악이라는 것의 힘을 믿고, 많은 여백과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과감히 던져 놓은 것이 무척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이 같은 사건을 주제로 음악 영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더라면, 그건 그 나름대로 생각해 볼만한 그리고 더 격정적인 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러덜리스'는 그저 노래하는 것 만으로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심연을 묘사해 냈다. 바로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로 말이다.



1. 처음엔 '어? 윌리엄 H.머시도 출연하네?'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감독이더군요. 그가 감독을 한 장편 영화는 이 작품이 첫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 그의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주저 없이 보게 될 것 같네요. 기획과 각본에 까지 참여했네요.


2.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나오기로 확정되었죠, 플레인에서!) 극 중 아들의 음악 노트를 컨셉으로 책자가 만들어 지면 정말 멋질 것 같아요. 주요 수록곡 코드 악보도 넣고.


3. 며칠 째 이 사운드 트랙만 듣는 중~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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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2013)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헌사



짐 자무쉬의 신작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그의 이전 작품들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자면, 그보다는 좀 더 영상미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헌사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뱀파이어라는 영화의 소재 역시 그 아름다움과 영속성을 다루기 위해 선택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며, 두 주인공 아담과 이브를 연기한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톤의 캐스팅 역시 아름다움 측면에서 완벽한 앙상블이었다. 황량한 디트로이트와 이국적인 모로코의 밤 풍경, 그리고 음악과 문학 예술의 역사들은 곧 아름다움의 표현과 헌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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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뱀파이어를 다루는 방식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고, 유머에 더 가까웠다. 즉, 영원한 삶을 저주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거의 없고, 정반대로 현대 사회 속에서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생각보다는 진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주는 건, 수 백년을 살아온 존재로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예술, 문화, 과학 등의 인물들에 대한 '포레스트 검프' 식의 유머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과거의 것들에 대한 찬사 정도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짐 자무쉬는 최근의 문화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동일한 선상에서 언급을 한다. 비교적 그 가운데 오래된 이들이라면 모타운 레코드에 대한 것일테고, 가장 최근이라면 잭 화이트에 대한 것을 들 수 있겠다. 특히 잭 화이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라며 디트로이트의 어느 집을 소개할 땐, 짐 자무쉬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입장을 들려주고자 하는 지를 좀 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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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확실히 이미지로 각인되는 영화다. 영화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어떤 메시지나 여운은 부족하지만, 어느 한 장면, 어떤 순간은 영화 보다 더 깊게 각인된다. 짐 자무쉬가 보여주고자 하는 아름다움은 영화 내내 충분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움 이상을 갖고 있는 두 배우와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았을 땐, 좀 더 끝까지 가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 작품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제목처럼 '살아남는다'는 것과 '사랑'의 연관 성을 좀 더 파고 들거나, 반대로 아름다움의 영속성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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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사운드트랙을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해외에서도 OST자체가 발매되지 않은 것 같군요.


2. 수록곡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이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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