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질서와 균형, 굴레를 벗어나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그의 첫 번째 헐리웃 진출작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를 보았다. 두 번 보았다. 사실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헐리웃을 통해 선보였던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작품과는 달리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작품이자 초호화 캐스팅으로, 상대적으로 더 큰 기대감을 가졌던 작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 년 전에 구입했던 원작 만화도 일부러 개봉 전 보지 않은 것은, 오롯이 봉준호의 영화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고 본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시'와 '하지만'이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두 번을 연달아 보았는지도 모르겠는데, 결론적으로는 '역시' 생각할 거리와 이야기할 거리를 여럿 생산해 냈다는 점 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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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개발한 프로젝트가 오히려 빙하기를 가져오게 되 인류가 오로지 영원히 달리는 열차 안에 존재하게 된다는 영화의 배경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테마를 그대로 보여주는 서두 이기도 하다. 꼬리 칸에 살고 있는 빈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맨 앞 칸으로 전진해 이 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이를 향해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얼핏 체제 전복의 텍스트로 보기 쉽지만,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보다는 오히려 질서와 균형 그 자체와 이를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체제 전복을 꿈꾸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맥락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며, 인물들이나 한 칸 한 칸 전진할 때 마다 등장하는 그 다음 칸의 모습 역시 꼬리 칸의 모습과 상대적인 위치에 있다고 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보며 흥미로웠던 지점은, 주인공 커티스를 중심으로 한 꼬리 칸 사람들의 분노나 억울함의 표출 등이 아니라 (만약 이것이 포인트였다면 영화는 없는 시간을 할애해서 라도 꼬리 칸 사람들의 고통을 초반에 더 묘사해야만 했을 것이다), 전진할 때마다 더 확고해지는 균형과 질서에 관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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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뒤에서 부 터 맨 앞 까지 한 칸 씩 전진한다는 설정은, 마치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처럼 한 칸 씩 전진할 때마다 더 강력한 적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거나 더 혹독한 조건을 만나게 돼, 결국 최종 보스와의 결투(?)를 자연스레 고대 하게 되는데, '설국열차'의 내용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 칸 한 칸 전진하는 것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꼬리 칸과 맨 앞 쪽 엔진 칸의 사람들만 서로를 인지하고 반응할 뿐 중간에 위치한 다양한 사람들은 이 반란이나 억압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다. 만약 이 영화가 계급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면 열차 칸이 엔진 칸에 가까워 질 수록 상하 관계를 더 분명히 했을 텐데, 영화는 초반 꼬리 칸 사람들이 멀리 나마 볼 수 있었던 그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세계를 등장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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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중간 이라고 만 표현해도 될 정도로 꼬리 칸의 주인공들이 엔진 칸으로 전진하는 과정 중에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그 과정 정도로만 묘사될 뿐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그 칸의 성격에 따른 이슈나 담론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커티스 일행과 이를 막으려는 윌포드가 보낸 이들이 부딪히는 배경 장소로 밖에는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균형과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여러 번 극 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다양한 중간 칸 사람들의 모습은 자신의 역할을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클럽에서 파티를 하고 약에 취하고(크로놀), 고급 식사를 즐긴다던가 여유롭게 사우나나 뜨개질을 즐기는 모습들은 '잘못된' 것으로 묘사되기 보다는, 오히려 주인공 일행이 극 중 겪었던 것처럼 당황스러울 정도의 의아함을 주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이 질서가 반드시 깨야 할 것이라든지, 잘못된 것이라는 일방적인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후반부 드디어 윌포드를 만난 커티스는 윌포드에게 이 계속 달려야만 하는 열차의 균형을 위해 질서 유지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윌포드의 논리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편이다.  그렇게 윌포드를 증오 했던 커티스조차 그의 제안을 따라 그의 자리를 맡는 것이 이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결정인 동시에 그럼에도 그것이 가장 다수를 만족 시키는 방법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면 윌포드의 이 방법은 쉽게 말해 맘에는 안 들지만 그 것 밖에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가 이 메시지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든 비유는 바로 수족관의 비유였다. 자연(自然) 상태가 아닌 한정된 상황에서 개체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위적인 조정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는데, 윌포드는 바로 이 원리를 열차의 모든 칸에 적용하여 남은 인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영화 속 사실이기도 하다. '설국열차'는 이렇듯 이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구세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대로만 가자는 단순한 텍스트는 아니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구세대의 상황과 논리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만약 '설국열차'가 오롯이 커티스의 이야기였다면 영화는 더 단순 했을 테지만, 이 영화엔 커티스의 전진을 돕기도 방해하기도 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곧 다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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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를 보는 내내 워쇼스키의 '매트릭스'를 떠올렸는데, 두 작품의 전하고자 하는 바는 한 편으론 비슷하지만 잘 따져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매트릭스'를 떠올렸던 건 열차라는 작은 세계(하지만 곧 인류 그 자체)가 존재하기 위한 균형과 질서로서 성립되는 각 인물들과 열차 칸 들의 성격 때문이었는데, 윌포드는 마치 아키텍트와 같이 감정적이기 보단 전체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신과 같은 존재로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티스를 네오와 같은 구세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구원이나 체제 전복, 계급 사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이기도 한데, 커티스는 오히려 이 거대한 질서의 균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거대한 톱니 바퀴가 돌아가기 위한 제법 큰 또 다른 톱니 바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형태의 영화에서 이 자체가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윌포드와 길리엄이 같은 지향 점을 공유하고 있는 동지였다는 점이나, 결국 이 거대한 질서를 위해 커티스가 윌포드의 후계자로 사실상 길러져 온 것 자체 말이다), 이 영화가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달랐던 건 바로 그 다음, 그 다음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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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러한 구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의 결말을 보면, 무언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주인공이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도달했을 때 그 허무함의 충격으로 메시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면, '설국열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상황에서 힘겹게 발휘된 주인공의 자유 의지를 통해 굴레를 벗어난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정말 현 시대의 암울함이나 미래의 어두운 면을 다루려 했다면, 아마 관객의 지지를 받았던 커티스가 결국 종극에 다다랐을 때 윌포드의 논리에 수긍할 수 밖에 없어 또 다른 윌포드가 되고 마는, 그래서 열차는 계속 달리고 남은 인류는 또 다음 사이클을 기다리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제 앞서 잠시 뒤로 미뤄둔 남궁민수와 요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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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남궁민수는 윌포드를 무찌르거나 엔진 칸을 차지하는 것 대신, 열차 밖을 탈출하고자 하는 계획을 말미에 드러내는데, 이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극 중에서도 설명했던 이누이트 족 여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극 중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요나의 어머니, 그러니까 남궁민수의 부인이 바로 이누이트 족 여인이라는 점을 밝혔는데, 극 중 남궁민수가 열차 밖을 나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데에는 아마도 그 여인의 행동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녀가 열차 밖을 나가 몇 발자국 못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바로 깨닫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오히려 전혀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그 가능성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눈이 녹고 있는 지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 자체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더 흥미로운 건, 영화가 허락한 열차 밖 세상의 주인공은 커티스는 물론이요 남궁민수도 아닌, 이 열차에서 태어난 요나와 열차의 동력으로 활용되었던 또 다른 어린 아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송강호와 고아성이 부녀 관계로 다시 등장하는 것 외에도 결말 부분에 있어서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을 떠올리게 하는데, 남겨진 아이라는 테마 때문일 것이다. 요나와 또 다른 아이에게만 생존 가능한 기차 밖 세상을 허락했다는 건, 이 영화가 어른이나 기성 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론 무서울 정도로 엄격한 반성의 잣대인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꿈꿨던 커티스에게도, 오래 전부터 열차 밖 세상의 가능성을 꿈꿨던 남궁민수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한 편으론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된 새로운 세상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오히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잘못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긍정의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극 중 커티스가 내내 자신의 오래된 잘못으로 인해 고통 받고 스스로를 옥죄었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이 결말은 그들에게 진정한 속죄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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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움찔 하게 되었던 장면은 말미에 남궁민수가 급박한 상황에서 부탁을 하게 되는데, 요나가 정색한 얼굴로 '싫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었다. 그냥 요나의 성격이 좀 이상하고 유별나서 그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동안 비교적 아버지를 잘 따랐던 요나가 극적인 순간에 와서 아주 단호하게 정 반대의 감정 표현을 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결말이 그러하듯 새로운 시대에는 남궁민수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설국열차'는 결국 구세대의 종말과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빙하기라는 것 자체가 한 시대의 결말이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구세대가 스스로 자초한 빙하기로부터 시작해 그들의 종말(설국열차는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멸종, 종말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 했던 것처럼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종말의 과정에서 멸종되지 않고 살아 남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희망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분명 희망적이다. 혹자는 그렇게 살아남은 어린아이들의 앞에 또 다른 먹이 사슬의 상위 포식자인 북극곰이 등장한 것을 두고, 절망적인 결말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가 러닝 타임 내내 보여주었던 구세대의 종말 만으로도 이 영화의 결말이 맞은 상황은 분명 싸워서 이겨내 살아볼 가치가 있는 새로운 희망의 시대일 것이다.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그렇게 질서와 균형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굴레를 벗어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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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흥미로운 건 항상 여러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 그 자체에요. 봉준호 감독이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2. 세계관이나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 게임 '바이오 쇼크'가 연상되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3. 개인적으로는 틸타 스윈튼의 연기야 뭐 더 말할 필요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출연하는지도 잘 몰랐던 앨리슨 필의 등장이 더 반가웠어요! 캐릭터도 마음에 들고!


4. 좀 아쉬운 점이라면 액션 연출이 조금은 진부한 느낌이었고, 영화 음악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 했어요.


5. 뭔가 더 할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다 정리가 안되네요 ㅎ 기회가 되면 봉감독님 만나서 직접 인터뷰도 하고 얘기 나누고 싶네요!! ㅎㅎ


6. 마지막은 <설국열차> 관련 제가 시도한 인증샷 들 ㅋㅋ




프로틴 블록과 함께 한 진정한 4D 관람 인증샷!



'Are you 냄궁민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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