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제 1부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Män som hatar kvinnor, 2009)

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인가?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을 영화화 한 두 작품 가운데 데이빗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보았고, 뒤늦게 스웨덴판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핀처를 평소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작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는 없다 아니 사실상 어렵다 라는 주의이기 때문에 스웨덴판을 항상 궁금해 했었는데,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된 것이 아무래도 핀처의 작품을 이미 보고 나서 보게 된 순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작품이 감상에 손해를 보게 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두 작품은 어차피 서로에게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이고, 나처럼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본 이들이라면 닐스 아르덴의 작품이 조금은 핸디캡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두 작품을 모두 보고 난 결과는 각각의 장단점과 선택 지점이 명확해 각기 다른 의미를 둘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하자면, 핀처의 버전은 그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좀 더 미스테리와 스릴러적인 측면에 포인트를 둔 반면, 닐스 아르덴 오플브의 버전은 미스테리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를 통해 이 영화의 부제가 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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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경적으로 보았을 때 데이빗 핀처는 뱅거 가문의 저택과 그 마을을 굉장히 춥고 스산한 느낌이 들도록 설정하고 있는데 반면,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버전에서는 동일한 겨울이고 춥다는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핀처의 그것처럼 몸이 절로 떨릴 정도의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핀처는 뱅거 가문의 저택이 있는 다리 넘어 섬을 묘사할 때 외부와 단절된 느낌을 주어서 앞으로 진행할 미스테리와 스릴러의 쾌감을 더 증폭시키는 반면,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작품에는 이 장소가 갖는 특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공간에 이미지를 부여하여 그 자체로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핀처의 특기가 잘 나타난 연출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확실히 이 점은 후반부로 갈 수록 영화의 긴장감을 돋구는데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아마도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데이빗 핀처는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에 집중하였고 스웨덴 버전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본 입장에서는 이 작품에서는 굉장히 세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연출된 장면들이나 결정적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스웨덴 버전에서는 너무도 쉽게 등장하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즉,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작품에서는 누가 하리에트를 죽였는가 가 중요하기 보다는 이 뱅거가의 사건을 풀어가는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겪는 갈등의 지점은 무엇인가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듯 했다 (물론 핀처의 작품도 누가 범인인가에만 집중한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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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덴 버전과 핀처의 작품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어디에 더 포인트를 두었는가에 따라 영화의 결말 이전까지 진행되었다면, 범인이 누구인가가 정확히 밝혀지는 결말 지점과 그 이후의 짧은 전개 과정에서는 더더욱 두 작품의 방향성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핀처의 경우 이 결말지점이 곧 영화가 시종일관 끌고 오던 미스테리의 종착점이기 때문에 동시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도 정리가 되어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정도로 끝나지만, 스웨덴 버전의 경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부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었는가 좀 더 명확해지는 작품이었다.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이 결말을 바라보는 시선 차를 짧지만 명확하게 언급하면서, 결국 리스베트 캐릭터에 맞춰 '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부제인가를 떠올려보게 되고, 핀처의 버전에는 없었던 리스베트의 어머니와의 만남 장면을 통해 리스베트의 심리 상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스포일러 없이 쓰느라 좀 더 구체적인 묘사를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누구인가가 밝혀진 다음 부터의 전개가 매우 흥미로웠고 그로 인해 스웨덴 버전의 리스베트에게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펼쳐질 후속편들에 있어서도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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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핀처의 작품이 워낙에 세련되었던 터라 나중에 본 스웨덴 버전이 조금은 세련됨에 있어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분명 잘못된 우려였네요. 전체적인 만듦새나 세련됨으로 봐서는 전혀 부족할 점이 없었어요;

2. 핀처의 버전이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비중이 동등하거나 미카엘에게 좀 더 쏠려있던 반면, 스웨덴 버전에서는 확실히 리스베트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 같더군요;

3. 앞으로 각각 펼쳐질 두 작품의 후속편들이 몹시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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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데이빗 핀처의 용문신을 한 소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원작 소설 '용 문신을 한 소녀' (북미와 영국에서 발간될 때 사용했던 제목)라는 제목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아주 생소한 작품은 아니었는데, 스웨덴에서 영화화한 버전과 데이빗 핀처가 리메이크 했다는 소식을 거의 동시에 듣게 되었고, 개봉도 그 규모는 다르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만나볼 수 있어 어느 작품을 먼저 볼까 고민하던 중, 결국 핀처님의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밀레니엄'은 전작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이후 1년 만에 바로 만나볼 수 있는 데이빗 핀처의 신작이라 일단 무척이나 반가웠다. '소셜 네트워크'가 이제 막 1년이 조금 넘은 작품임에도 가끔씩 다시 보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라고 봤을 때, 과연 핀처의 신작은 또 어떤 감흥을 전달해 줄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명한 원작 소설도 스웨덴판 영화도 보질 않았기 때문에 오롯이 핀처의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원작이 별도로 있거나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영화의 경우, 원작을 읽었을 경우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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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끝내주는 오프닝 타이틀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미 카일 쿠퍼가 연출했던 '세븐' 오프닝 타이틀을 통해 획을 그었던 핀처는, 이번에는 팀 밀러라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환상적인 오프닝 타이틀을 선사하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 이어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의 강렬한 비트와 함께 펼쳐지는 오프닝은 흡사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듯한 영상에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더해지면서 흡사 007 시리즈의 오프닝마저 연상시킨다. 음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트렌트 레즈너가 음악을 맡아서인지 영화 곳곳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떠올릴 만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음악은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와 그 이면에 가려진 무게감을 대변하고 있었다면, '밀레니엄'에서는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미스테리함의 증폭과 추운 날씨와 고립된 듯 외로운 장소와 캐릭터의 면면을 더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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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부패한 재벌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고 대형 소송에 휘말린 기자 '미카엘 (다니엘 크레이그)'과 정부의 보호감찰을 받는 아웃사이더 소녀 '리스베트 (루니 마라)'의 이야기를 각각 전개해 나간다. 두 사람의 연결 고리는 영화 초반 공개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기 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작 소설과 스웨덴 버전의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포스터나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뉘앙스를 보았을 때 리스베트라는 캐릭터의 비중이 절반이상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헐리웃 버전의 '밀레니엄'은 적어도 50:50이거나 미카엘의 비중이 더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중심이 되는 스토리에 더 빨리 투입되는 것도 미카엘이고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미카엘이 중심에 있다는 점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작품이었다면 리스베트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스웨덴 버전 포스터로 미뤄 짐작했을 때 기존의 작품들이 리스베트의 이야기라고 예상되었다면, 헐리웃 버전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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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스릴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밀레니엄'은 괜찮은 과정을 담고 있다.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 작품에는 40년 전 사라진 소녀 '하리에트'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를 푸는 것 이전에,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비중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중반까지는 완전히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그렇다보니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진 다음, 본격적으로 하리에트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157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에도 100% 만족할 만한 문제 해결의 과정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 즉, 실제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 범인을 밝혀내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동시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인해 약간 급마무리 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밀레니엄'이 보여준 문제 해결 과정이나 속도, 리듬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닌데, 이것이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어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미 '조디악 (Zodiac, 2007)'이라는 너무 완벽한 스릴러를 만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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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극장을 나오며 느꼈던 교훈은 좀 다른 얘기일지도 모르겠는데, '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리스베트가 처한 상황과 그녀가 이 상황 속에서도 살아나가는 방식을 보면서, 이런 저런 고통과 억압들은 절대 참는다고 끝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상처가 깊어진다는 진리와, 그 가운데서도 굴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적 메시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리스베트의 이야기는 화려한 용문신과 피어싱 보다도 더 빛났다.



1. '소셜 네트워크'의 첫 장면에서 마크 주커버그를 차버렸던 그녀 루니 마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더군요.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는데, 확실히 이 리스베트라는 캐릭터는 루니 마라의 필모그래피에 획을 그을 것만은 분명한 것 같네요.


2. 아, 스웨덴의 그 공기. 이런 차가운 공기를 느껴보는 건 '렛 미 인' 이후로 오랜만인듯.


3. 이게 한국 영화였다면 전 그 가죽 자켓 버린 곳을 아마도 직접 찾아가 봤을 거에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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