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Our Homeland, 2012)

내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



양영희 감독의 신작 '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Our Homeland, 2012)'를 보았다. 일본의 유수 영화제들을 비롯해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 및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더 주목받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던 '디어 평양 (2006)'과 '굿바이, 평양 (2009)' 두 작품의 다큐멘터리 이후 극영화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그녀가 만드는 극영화는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감으로 충만한 작품이었다. 그렇게 보게 된 '가족의 나라'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놓여 있었고,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또 한 번 다루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보편성을 갖고 있는 한 가족에 관한 영화였다. 아, 정말 '가족의 나라'라는 제목은 생각하면 할 수록 완벽하다.



ⓒ 미로비젼. All rights reserved


25년 만에 조국 북한에서 치료를 위해 일본 집으로 돌아온 오빠. 감시자와 함께 돌아온 그로 인해 이 가족은 잠시나마 기쁨과 변화를 겪는다. 정말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서로 많을 듯 하지만, 의외로 이 가족은 서로 말이 많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북의 명령으로 인해 계획되었던 일정보다 빨리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미처 서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 조차 없었던 이 가족은, 처절하면서도 고요하게 이 또 한 번의 이별을 맞이한다. 그러고는 막이 내린다.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이 남았는지는 결국 보는 이의 몫으로 남는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는 감독이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송과 남북, 북한과 일본을 둘러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감독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 영화를 하고 싶었던 점이 아닐까 싶었다. 다큐멘터리, 특히 그녀가 선보였던 두 작품은 완전히 본인이 하고 싶었던, 개인적이면서도 역사를 관통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 '가족의 나라'는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감독 스스로가 과거 혹은 현실에서는 하지 못했고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극 영화를 통해 표현해 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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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라는 것도 장르의 일종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전달한다기 보다는 감독을 통해 일정 부분 연출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양영희 감독은 다큐를 만들 때 절대 인물들에게 디렉션을 준다거나 어떠한 의도를 담지 말자라는 원칙으로 전작들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러한 감독의 원칙은 극 영화인 '가족의 나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데, 영화로 표현된 장면들과 이 장면들이 만들어진 그 뒷 이야기를 듣고나서도 쉽사리 믿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 영화의 대부분은 (다른 의미로) 만들어졌다. 배우들에게 역시 어떠한 디렉션을 주기 보다는 그저 본인이 직접 겪었던 것에 근거해서 이럴 때 이 인물은 이런 심정이었다 라는 정도만 알려주는 것에 그쳤으며, 캐릭터에 더 깊게 동화되고자 한 배우들의 노력 탓에, 그리고 어쩌면 다큐멘터리를 찍는 방식처럼 컷을 나누지 않고 긴 호흡으로 촬영한 방식 속에서 이 영화는 극 영화인 동시에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형용하기 힘든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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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는 일부러 감정을 극적으로 유도하지도 않고 실제로 그럴 수 있는 부분들 조차 절제하는 듯 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감정적으로 흔들리기 보다는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게 되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시작되는 순간, 그 동안 참고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보편성을 갖는다는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일부러 평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특별한 실제의 일화를 있는 그대로 그렸으나 그 안에서 보편적인 감정들을 이끌어 냈고, 그 감정들을 러닝 타임 내내 조심스럽게 유지시키는 것은 물론 영화가 끝난 뒤까지 오랜 여운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고나니 자연스럽게 이 영화가 놓인 특수한 상황과 이야기에도 관심을 넘어선 몰입을 하게 되는데, 그 동안 이러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사안을 다룬 작품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었기에 오히려, 이야기의 표면적인 이슈 측면이 아닌 그 내면에 있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더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즉, 북송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북한과 일본 정부 간의 정치적 이슈로 발생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또 다른 조국이라 할 수 있는 우리 (남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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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은 그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책임을 느끼고 해결을 노력해야만 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은 이들의 이야기의 관심을 갖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라 아예 그 존재조차 모르고 안다해도 부정하기 바쁜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는 더 특별할 수 밖에는 없다. 그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우선 알기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 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북한과 일본 사이 뿐만 아니라 이런 비슷한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가족들이 다른 곳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 자체를 그저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북송된 이들의 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존재는 제 3자가 아니라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고, 관심을 갖고자 하는 마음 조차 열려있지 않은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아주 좋은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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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가족의 나라'가 여러 나라의 영화제에 초대받고 호평을 받은 이유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 때문 만이 아니라, 영화적 완성도 측면에 있어서도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완벽'이라는 표현 보다는 '놀랍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재일 교포 2세에 대한 이야기나 북송된 사람들에 대해 이전에는 알지 조차 못했던 일본 배우들과 우리 배우 양익준이 연기한 극 중 인물들은, 메소드 연기를 펼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놀라운 장면과 이야기를 완성해 낸다.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익숙한 양익준을 제외한 배우들은 재일 교포 출신의 일반인이거나 배우인줄로만 알았었다 (반대의 경우로 양익준을 이전에 몰랐더라면 똑같은 오해를 했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일찍 올해의 영화를 만났다.



1. 이 날 상영은 기자 시사보다도 앞선 특별 상영이었는데 양영희 감독님과 양익준 배우의 GV까지 만나볼 수 있어서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하나 버릴 것 없이 유익했던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어요.


2. 극 중 등장하는 '하얀 그네'라는 곡 입니다. 영화를 보고 들으니 참...



3. 3월 7일 개봉예정입니다. 전 개봉하면 꼭 한 번 더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양영희 감독님과도 직접 뵙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더 많은 관객들이 '가족의 나라'를 보게 되기를 바라면서요.


4. 마지막은 GV에 참여한 양영희 감독과 양익준 배우 사진 몇 장.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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