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기회의 땅의 그림자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신작 '월가의 늑대'를 보았다. 이미 여러 번 좋은 작품을 만들었던 콤비라 세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임에도 다른 보고 싶은 개봉작들을 제쳐 두고 가장 먼저 선택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역시 스콜세지가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미국의 역사에 관한 또 다른 버전의 '좋은 친구들'이었고, 그의 페르소나인 디카프리오 역시 한껏 과장되고 힘이 들어간 캐릭터로 강렬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었다.




ⓒ Red Granit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는 1990년대 월 스트리트의 주식 중계인으로 큰 돈을 벌었던 조던 벨포트라는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할 만한 교훈 적인 삶을 살았거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연을 갖고 있는 경우인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에 다 해당하지 않는 작품이다. 즉,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의 흥망성쇠를 따라가지만 스콜세지가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라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한 국가이자 사회의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가의 늑대'는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다룬 '에비에이터 (The Aviator, 2004)'보다는 '좋은 친구들 (Goodfellas, 1990)'이나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에 더 가깝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이면을 그렸었다면,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곳 중 하나 인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성공과 실패를 겪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스콜세지는 또 한 번 이 기회의 땅이 어떤 꿈과 좌절을 주는지, 그리고 그 기회라는 것 이면에 얼마나 많은 추악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지를 한참이나 늘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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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최근 본 어떤 작품들 보다 도 노출이나 선정성의 빈도가 잦은 작품이었다. 강도로 따지면 제일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빈도 만을 놓고 보면 3시간의 러닝 타임 가운데 거의 2시간은 노출과 욕설, 마약과 섹스로 점철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과장과 답답함, 불편함이 섞여 있는 영화였다. 마초 적이어서 불편 하다기 보다는 이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이 농담이나 친근함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한 편으론 조롱이라고 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던 벨포트의 개인 사에 집중하기 보단 그가 본격적으로 월 가에 뛰어 들면서 부터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던 과장과 불편함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세미나 장면에서 벨포트의 얼굴이 아닌 그의 강의를 초롱 초롱 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로 끝 맺음을 지은 것은, 겉으로 보기엔 누구 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 했다. 이렇게 3시간 내내 이야기했음에도 관객 중 적지 않은 수는 벨포트가 극 중에서 누렸던 그 부를 한 번 쯤은 누려보고 싶거나, 벨포트와는 달리 폭주하지 않고 적당히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관객들을 영화가 바라보는 시점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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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확실히 과장되어 있어요. 그의 연기가 과장되었다기 보다는 이 캐릭터 자체가 과장되었다고 봐야겠죠. 그의 얼굴과 연기는 점점 더 잭 니콜슨을 닮아가네요. 다음 작품은 좀 더 힘이 빠진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작품이어도 좋을 것 같아요.


2. 매튜 매커너히는 출연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반가웠어요.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도 그랬구요~


3.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극 중 벨포트를 소개해주는 사회자가 실제 조던 벨포트 인 것 같더군요.


4. 국내 용 영화 제목은 그냥 '월가의 늑대'로 했어도 좋았을 텐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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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The Artist, 2011)

내가 사랑한 뮤지컬 영화들의 탄생기



미셸 아자나비슈스의 '아티스트 (The Artist, 2011)'는 일찌감치 해외 유수 영화제들에 노미네이트 되고 최근 아카데미를 석권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무성영화의 감성도 물론이지만 그 이야기가 결국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영화로 연결될 것만 같은 지극히 개인적 기대감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아티스트'는 그간 많은 영화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무성영화에 대한 애정, 더 나아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사랑을 계몽적인 방식 대신 아름다운(제대로 된) 무성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을 선택함으로서 진정성을 갖게 된 동시에, 그로 인해 절로 영화라는 매체와 앞서 영화를 만들었던 영화인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불러 일으키는 새로운 클래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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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무성영화가 흥하던 시절로 시작해 유성영화로 넘어오면서 영화계와 무성영화의 스타, 그리고 유성영화의 새로운 스타가 겪는 일들을 남자 주인공 '조지 발렌타인 (장 뒤자르댕)'과 여자 주인공 '페피 밀러 (베레니스 베조)'을 중심으로 들려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계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대한 작품들은 여럿 있어왔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를 들 수 있겠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이 소재를 배경으로만 활용하거나 아니면 좀 더 무성영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내려고 한 작품의 경우, 더 직접적으로 무성영화의 장점을 '설명'하려고 했었다면, '아티스트'는 아예 21세기 관객들에게 한 편의 무성영화를 그대로 내어놓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어쩌면 모험적일 수도 있었던 이 방식은 보시다시피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모든 경우에서 그렇지만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간의 정도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관객들로 하여금 '그래서 무성영화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겠구나' 라고 알게 되는 것과 '아, 아티스트, 이 영화 정말 매력적인데!'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간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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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가 시작되고 난 극장 안. 물론 대부분이 무성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극장을 찾았을 테지만 실제로는 배우들의 대사와 영화 속 소리들이 전혀 들리지 않는 무성영화를 체험해본 일이 많지는 않아 조금은 당황함이 느껴지는 초반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이내 사그라들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아티스트'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3D와 실사와 더 이상 구분이 어려운 CG에 익숙한 21세기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엇, 대사와 소리가 없어도 영화를 이해하는데에 큰 무리가 없네?' '장면으로 담아낸 것 만으로도 맥락이 충분히 읽히는데?'라는 생각을 들도록 만든다. 영화 초반에는 배우들이 대사를 할 때 아무런 소리도 자막도 나오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끼게 되지만, 조금 뒤에는 완전히 이 방식에 적응하여 더이상 소리가 나오고 안나오고를 신경쓰지 않고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완전히 집중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순간을 21세기 극장에서도 만들어냈다는 것이 아마도 '아티스트'에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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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영화의 매력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무성영화의 매력이란 것은 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가운데 가장 흠뻑 취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영화 배우의 매력이었다. 최근 작품들에서 배우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지금의 영화보다는 배우의 매력의 비중이 좀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던 '아티스트'를 보니, 영화 속 조지 발렌타인의 그 미소와 몸짓,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의 멋스러움, 과장된 듯 하지만 영화라서 멋진 동작들 하나하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조지 발렌타인은 액션 히어로도 아니고 (물론 영화 속 영화에서는 아니었지만 ㅎ), 최근 영화 속 주인공들에 비하면 굉장한 로맨틱 가이도 아니지만, 놀랍게도 그 멋진 미소 하나 만으로 액션 히어로와 로맨틱 가이를 모두 물리칠 정도의 매력을 발산한다. 가끔 리뷰를 쓸 때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라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이 영화를 위해 아껴둘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 발렌타인이라는 캐릭터, 그 미소 (그 눈물, 그 알 수 없는 마음 -_-;)는 정말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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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아티스트'가 개인적으로 더 의미 깊었던 것은,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영화들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어서였다. 물론 이 작품은 다큐가 아니니 이걸 100%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예전 뮤지컬 영화들을 보면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노래도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당시의 뮤지컬 영화는 더 무성영화에 가까운 표현 방식이 아니었나도 싶다. 왜냐하면 장면 뒤에 자막이 나왔던 방식에 비해 오히려 춤과 안무로 대사에 가까운 내용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티스트'는 당시의 뮤지컬 영화들이 무성영화의 장점과 유성영화 장점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장르라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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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유를 떠나서, 한 사람의 영화 팬으로서 영화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너무 행복한 일이다. 최근 보았던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와 더불어, 이 영화 '아티스트'는 영화라는 매체와 예술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참 행복한 작품이었다.


1. 극중 등장하는 강아지 때문에 절로 '틴틴'이 떠오르기도 ㅎ
2. 조지 발렌타인 역을 맡은 장 뒤자르댕이 너무 매력적이라 영화가 끝나자마자 사진들을 찾아봤는데, 조지 발렌타인으로 분했을 때보다는 많이 아쉬운(?) 모습이라 살짝 실망도 ^^;
3. 영화는 1.33:1로 촬영되었습니다. 즉, 와이드 화면비율이 아니라는 얘기죠. 오히려 신선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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