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 (Zootopia, 2016)

편견없는 판타지아를 꿈꾸며


오래 전 우리가 보고 자랐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그 당시에는 몰랐었으나 사실 대단한 편견과 잘못된 가치관을 담은 이야기들이 많았었다. 이미 드림웍스의 '슈렉' 시리즈를 통해 풍자 되었던 것처럼 단순히 외모로 캐릭터를 판단하거나 외모를 중심으로 삶의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기도 했었고, 육식공룡은 나쁜 편, 초식공룡은 착한 편 같은 흑백 논리를 펼치거나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캐릭터는 악당이라는 선입관을 심어주기도 했었다. 이런 디즈니 스튜디오의 가치관을 그저 한 영화사의 성격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앞서도 잠시 이야기했던 것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전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 아닌 편견을 갖게 되는 샘인데, 바로 그 지점으로 미뤄봤을 때 이번 '주토피아 (Zootopia, 2016)'라는 작품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디즈니가 픽사 인수 이전부터도 아주 예전과 같은 보수성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주토피아'처럼 바로 그 잘못된 편견에 대해 근본부터 제대로 다룬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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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이런 변화가 직접적으로 드러났던 좋은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이 작품을 연출한 리치 무어 감독의 전작인 '주먹왕 랄프 (Wreck-It Ralph, 2012)'였는데, 디즈니의 세계관에서는 매번 악당 역할을 해야 만 했던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가운데로 끌여들여, 그런 편견이 옳지 않았음을 표현해낸 작품이었다. '주토피아'는 이보다 더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니까 육식동물은 위험하고 초식동물은 착하고 라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기본이요, 그것을 반대로 뒤집는 경우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어쩌면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것이 편견이나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조차 못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 주디 홉스가 처음 경찰이 되어 주토피아 경찰서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입구에서 안내하던 육식동물 경찰은 제법 편견없는 시선으로 주디를 바라보며 '정말 귀엽게 생긴 토끼네'라고 이야기한다. 정말로 사심없이. 하지만 이 때 주디는 이렇게 얘기한다. '토끼끼리 귀엽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동물이 귀엽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와! 이런 정도의 대사를 디즈니 영화에서 만나게 되다니. 크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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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영화는 텍스트 전반에 걸쳐 이 편견에 대한 풍자 혹은 뜨끔한 농담을 늘어 놓는다. 엄청나게 느린 나무늘보의 이름은 '플래시 (Flash)'이고 이름부터 큰(?) '미스터 빅'이라는 캐릭터는 다름 아닌 작은 생쥐다. 이 미스터 빅을 묘사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는데 '대부'의 돈 꼴리오네를 패러디하다 못해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딸의 결혼식까지 똑같다 ㅎ) 이 캐릭터는 작은 몸집 임에도 훨씬 큰 북극곰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있는데, 이것 자체가 편견을 뒤집는 설정이다. 쉽게 생각하면 왜 저런 큰 덩치의 곰들이 한 주먹 거리도 안되는 생쥐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나 의아해 할 수 있는데, '한 주먹 거리도 안되는' 이라는 생각 자체가 이미 크기를 기반으로 한 힘으로서 누군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설정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면 또 한 번 기존의 보수적인 설정을 뒤집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반전의 의미라기 보다는 설정을 뒤집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겠다), 기존의 영화들 특히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단순한 구조의 애니메이션 작품의 경우 착한 편인 주인공이 하는 행위는 모두 그래도 되는 것으로 넘어가는, 아니 그렇다고 믿는 경우가 많은데 '주토피아'는 그 반대의 경우도 똑같은 폭력이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걸 놓치지 않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행동하기 쉽지 않는 문제이고, 아이들에게는 머리와 가슴 모두로 새겨야 할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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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가 담아 낸 이 편견없는 판타지아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완벽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꺼내 들었기 때문에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본다면 위태위태한 부분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토피아'가 의미 있고 무엇보다 좋은 영화라는 점은 들려주고자 했던 메시지의 건강함 때문이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평소 편견이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만이 아니라, 이런 것도 편견이 될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남녀의 차별, 인종으로 인한 차별과 편견, 외모로 인한 차별과 편견, 지역, 출신 등 모든 것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들 가운데는 겉으로 드러나 잘못되었다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들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이 곱씹어 보아야만 그것이 편견이 될 수 있겠구나, 차별이 될 수 있겠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마지막 샤키라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엔딩곡의 가사 내용은 더 의미 심장하다. 내일도 실수할 거고, 또 실수할 거에요. 라는 말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노력을 멈추지 말자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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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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