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 (Hugo, 2011)

마법같은 영화는 지금도 계속된다



사실 나도 오해했었다. 본래 영화에 대한 정보를 감독, 배우와 포스터 외에는 거의 접하지 않고 감상해서인지는 몰라도,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휴고 (Hugo, 2011)'를 포스터로 처음 접했을 때의 예상은 3D까지 더해졌다길래 마치 '폴라 익스프레스 3D'와도 같은 스콜세지의 3D 활용기 혹은 판타지 영화가 아닐까 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영화였다. 판타지 영화도 아닐 뿐더러 (이 영화에서 스콜세지가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단순한 추억이나 회환이 아니기 때문에 판타지로 보기는 어렵다) 가족 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관객들이 기대하는 가족 영화도 아니었고 (이 부분은 마치 이들이 기대하는 가족 영화처럼 홍보한 측의 탓이 크다), 액션, 어드벤처로 롤러 코스터를 타듯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오락 영화도 아니었다. 결국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라는 영화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팬이자 감독인 한 사람이, 영화 발명에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요즘 관객들이 잊고 있는 '영화'라는 마법과 행복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영화에 대한, 영화 사랑 가득한 영화였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의 의도를 좀 더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개인적으로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 대한 정보를 미리 더 알고 있었더라면 바로 알아차리고 나서, 어쩌면 이 영화를 멜리에스에 대한 헌정 영화 혹은 영화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겠는데, 영화사에 대한 무지가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멜리에스(=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알아차리지 못해서인지, 사실 초중반 극중 벤 킹슬리가 연기한 멜리에스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이야기의 전개가 느리다기보다는 거의 전개되는 것이 없다고 느낄 정도의 속도와 불필요하다고까지 느껴진 에피소드들까지 있다보니, 속으로는 '아, 스콜세지 영화에 실망을 하게도 되는구나..' 싶었을 정도였는데, 중반 이후 좀 더 이 작품이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부터 이런 실망감과 지루함은 눈녹듯이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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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멜리에스 이야기 자체에 주목했다기 보다는 스콜세지가 '휴고'를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끔 스스로 영화광인 감독 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 관객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 보다는, 일종의 '꿈의 실현'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와 존경의 뜻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스콜세지의 '휴고'에는 앞서 언급한 '꿈의 실현'의 것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관객에게 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상당히 직접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DP의 'nostalghia'님이 감상기에서 '스콜세지 님이라면 타란티노 라든지 안노 히데아키 라든지, 뭐 그런 애송이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영화 덕후 중에서도 상덕후이신데' 라는 표현을 보고 절로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로, 정말 스콜세지는 영화로 따지자면 덕후 중에 상덕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스콜세지가 자신의 영화 사랑을 직접적으로 투영한 작품이 바로 '휴고'라고 보면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상상을 해보라. 영화 속 멜리에스를 롤모델로 모든 것을 연구해왔던 그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콜세지가, 멜리에스의 영화들을 자신의 영화 속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었을까 말이다. 그래서 스콜세지는 이토록 소중한 기회를 자신에게만 할애하지 않고(물론 자기 만족에 충실하게만 만들었더라도 좋았을테지만)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영화라는 마법에 대해 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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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에서는 영화라는 것의 역사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면서 처음 관객들이 영화 속 기차가 기적을 울리고 달리는 장면을 보고서는 놀라서 모두 몸을 피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보는 순간, 나는 '휴고'를 3D로 보러 온 앞 좌석의 아이가 영화 시작 전 3D 예고편을 보고서는 손을 뻗어 화면 속 물체를 잡으려고 했던 장면이 바로 겹쳐졌다. 사실 스콜세지가 3D로 신작을 낸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기대도 되었지만 살짝 의아한 부분이 없지 않았었는데, 그 의문이 한 번에 말끔히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영화의 3D 효과가 아주 별로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3D 영화들에 비해서는 그 효과를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은 편이라 3D만의 쾌감은 많지 않았었는데, 영화를 처음 본 예전 관객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나니, 왜 스콜세지가 이 작품에 3D를 선택했는지를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는 3D 영화를 보러 온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많이 잊혀진, CG나 3D 같은 최첨단 기술력이 더해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 자체에 대한 놀라움과 재미, 즐거움, 행복함을 지금의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3D 입체영상으로 멜리에스 당시의 영화 제작 방법으로 만들어진 영상들을 감상할 때 느껴지는 쾌감은, 입체감 때문이 아니라 그 장면 장면이 갖고 있는 본연의 마법같은 매력 때문이라는 자신이 있었던 스콜세지는, 그리고 바로 이 원초적 매력을 다시금 지금의 관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스콜세지는, 일부러 3D를 선택해 이 메시지들을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그 결과 '아티스트'를 볼 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처음 본 당시의 관객들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영화라는 마법같은 순간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고, 스콜세지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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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조르주 멜리에스가 자신이 외면했던 아픈 과거를 인정하고 어린 두 주인공들에게 자신이 영화를 처음 접하고 만들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장면에서, 멜리에스를 연기한 벤 킹슬리는 정확히 카메라를, 즉 관객을 응시한다. 스콜세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제 영화 사랑이 이 정도입니다. 어때요, 영화 아주 매력적이죠?'라기 보다는 자신 스스로가 영화에 빠졌던 것들을 관객들에게 상세하게 풀어놓으면서 '어떻게 이런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영화의 마법에 너무 익숙해져 행복함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요?'라고 묻는 듯 했다. 농담이 아니라 벤 킹슬리가 스크린 속에서 나를 똑바로 보고 이야기하는데 마치 저렇게 내게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휴고'는 좀 더 파고들려고하면 이것저럿 해볼만한 구석이 많은 작품인데, 저런 질문을 영화에서 받고 나니 다른 것들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흐려져 버렸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예술.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해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얼굴을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얻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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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본 '아티스트'와 더불어 연거푸어 영화 사랑 충만한 작품을 보았더니 제 영화 사랑도 더 충만해졌어요 ㅎ

2. 진짜 마틴 스콜세지 옹은 덕후 중에 상덕후. 닮고 싶은 분이십니다.

3. 극 중에 '인셉션'이 나옵니다 ㅎ 그러고보니 '인셉션'도 영화에 대한 텍스트로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4. 스콜세지는 자신의 작품에 가끔 까메오로 나오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특히 나오고 싶었을 거에요. 아니 처음 영화를 맡기로 했을 때 이것부터 정했을지도 모르겠어요 ㅋ

5. 클로이 모레츠는 아직까지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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