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류승완 감독 인터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들어가며...


최근에 본 영화 '베를린' 리뷰 말미에 다시 한 번 류승완 감독님과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었는데, 진짜로 감독님 측에서 연락이 왔고, 지난 2월 12일(화) 외유내강 사무실을 방문하여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감독님과는 지난 2008년 (벌써 5년 전;;;) '다찌마와 리' 극장판 개봉시 역시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긴 시간 인터뷰를 나눴던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먼저 당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었는지까지 기억하고 계셔서 놀랐다.



그렇게 '오랜만이에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한 인터뷰는, 기대한 만큼 좋았던 동시에 최근 세간에서 논란 아닌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의혹에 대한 이야기도 집중적으로 나눌 수 있었다. 사실 본래 이 인터뷰 글의 제목은 단순하게 '류승완 감독님 인터뷰했어요~' 아니면 '베를린, 류승완 그리고 의혹에 대해' 정도였는데, 결국 최종 선택한 제목은 씁쓸하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였다.



'베를린'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아쉬타카 : 인터뷰 준비를 위해 주말에 베를린을 한 번 더 보고, 가급적 새로운 질문을 해보려고 다른 인터뷰들도 많이 읽어보았다.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라는 것에 대한 피로감 혹은 부담감이었다.


류승완 : 제작비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해외 로케이션, 여러 명의 스타들이 출연, 처음 해보는 장르, '부당거래' 이후 다시 액션 영화를 하는데 뭔가 다르게 해야 한다는 압박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게 맞겠다.
하지만 역시 많은 제작비의 영화라는 점이 큰 부담이었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막말로 이 영화가 안되면 실업자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다찌마와 리' 이후 겪었던 그 공포를 떠올려보자면.. ㅎㅎ


아쉬타카 : 많은 인터뷰의 말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영화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라는 식의 답변들이 많더라. 팬으로서는 조금 안쓰럽기까지 한 부분이었다.


류승완 : 정말로 하면 할 수록 영화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더라. '베를린'을 보고 난 반응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본'시리즈에 관한 것들인데, 이 영화가 '본'의 영향력 안에 있는 영화라는 점은 분명한 점이다.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최대한 '본'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흔한 예로 핸드 헬드를 쓰면 훨씬 더 거칠고 현실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쓰지 않았고, 액션의 합구성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지막 액션의 구성은 '본'이나 '007'에서 나오는 스타일이 아니라 정두홍과 내가 하는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본'과 비슷하게 보셨다면 그건 관객의 몫이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쉬타카 : '본' 시리즈나 다른 유사하다고 언급되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 다른 가벼운 질문 먼저 해보려고 한다. 윤종빈 감독과 이경미 감독도 등장하는데 류승완 영화라면 빠질 수 없는 김수현과 안길강이 안보이더라!


류승완 : 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 말씀을 하시더라. 스스로 변화를 주고자 했던 점이 작용했던 것 같다. 또 워낙에 외국 배우들도 많이 나오다보니 틈이 없더라 ㅎㅎ 승범이도 촬영장에서 둘이 없으니 뭔가 이상하다라고도 하더라 ㅎㅎ 뭔가 이전의 방식과는 다르게 해보고자 하는 것이 강했던 것 같다.


아쉬타카 : 그럼 처음부터 이번 작품은 무언가 기존과는 다르게 해보자라는 취지나 의지가 깊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까?


류승완 : 뭐가 먼저였다라고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캐스팅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조금씩 이런 무의식 등이 반영된 듯 하다. 뭔가 너무 익숙한 방식 아닌가? 계속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등의 압박이 어느 정도 작용한 건 맞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다.


아쉬타카 : 예전에 주진우 기자와 함께했던 MBC '간첩'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베를린'의 시작은 이 때 부터라고 볼 수 있을까?



류승완 : 그 때는 이미 '베를린'이라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다음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재차 확인했다. '간첩'을 보면 내용 가운데 '베를린'의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기도 하고. '베를린'을 준비하는 취재의 과정과 맞아 떨어진 프로젝트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실제로 '베를린'에 큰 도움을 주었던 분들은 '간첩'에는 공개되지 않은 분들이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카메라를 꺼놓고 만났을 정도로 실제로 정보국 활동을 하셨던 분들, 실제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던 분들의 이야기들이 '베를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쉬타카 : 북한정보원이 주인공이라는 점 등으로 베를린으로 설정했다고 어느 정도 볼 수는 있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특별히 '베를린'이어야만 하는 부분은 비교적 적은 편인 것 같다. 왜 스파이 영화에 또 다른 주인공은 로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베를린'에서는 베를린이라는 장소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로케이션 촬영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


류승완 : 그 부분은 크게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베를린으로 향한 첫 번째 이유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 중요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에서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츠담 회담, 동백림 사건, 송도율 교수, 신상옥, 최은희 부부 납치 사건 등..


실제로 최근 무기거래 등은 모로코나 중동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편이라고는 하는데, 아직도 굵직한 무기거래 등은 베를린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 중에 가장 나를 자극시켰던 부분은 역시 베를린 북한대사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북한대사관이 베를린에 있는데, 이 곳에서는 촬영이 불가능하다보니 이런 점들은 아쉬웠다. 내가 꼭 찍고 싶었던 장소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었는데,  이 곳은 촬영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팀도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 우리가 뭐라고 가능하겠나 ㅎㅎ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이야기를 서울에서는 찍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왜 베를린이었나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여러한 점들이 작용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베를린'은 스파이 영화가 아니라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영화다



아쉬타카 : 다른 분들은 대부분 '본'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더 나아가 장철 영화 같은 쇼브라더스 시절의 무협영화의 정서가 떠올랐다. 감독님이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스파이 영화 특유의 설정이나 분위기 보다는 이와 같은 정서가 더 강하게 전달되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와 관련해서 리뷰에 '류승완의 본능적인 느와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류승완 : 오히려 '정전자'하고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다른 인터뷰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의 시작은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드 몽 당테스에게 누명이 씌워지는 과정을 보면, 그가 나폴레옹의 스파이라는 누명으로 시작된다. 영향 받은 부분이라면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아쉬타카 님은 잘 아시겠지만 나는 어떤 감독이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면 그 부분을 더 말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이 아닌가 ㅎ


아쉬타카 : 아무래도 각자 개인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본인이 영향받는 작품이나 범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일텐데, 개인적으로는 '영웅본색' 등의 느와르 영화의 정서가 깊게 느껴졌기 때문에 반대로 스파이 영화로서의 세밀함은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스파이 영화로서 평가하거나, 스파이 영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류승완 : 이 영화는 스파이 영화라기 보다는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스파이 영화라면 '무간도'가 스파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첩 행위가 주가 되는. '베를린'은 그래서 카피도 액션영화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요 몇년간 진짜 스파이 영화라면 아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밖에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진짜 스파이들 세계에서 액션이 벌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보전이 주가 될테니.


결국 '베를린'은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개인간의 갈등, 관계의 문제가 더 중요했었고. 이를 바탕으로 김정일 사후의 평양의 정세가 어떻게 바뀌는가, 김정남 편을 들었던 군부의 세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등 이런 상황 속에서 정치적으로 몰린 사람 혹은 세력들이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해외 공관의 끈을 놓치 않고 장악하려고 하는 가운데,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을 파멸시키는가에 집중을 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두 번이나 영화를 본 분이 아쉽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ㅎ


아쉬타카 : 아 ㅎㅎ 하지만 지금 대답에서 정확한 답변을 들었다. 기존에 얼핏 듣기로는 '베를린'을 하면서 스파이 영화를 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에 저런 아쉬움을 느꼈던 것이었는데, 지급 답변처럼 '스파이가 직업인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전혀 다른 시각과 잣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류승완 : 내가 본질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건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아쉬타카 : 스파이에 대한 영화와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답변을 듣고는 많은 부분이 명쾌해진 느낌이다.



인상 깊었던 두 개의 대사




이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극중 표종성이 언급하고 있는 '우리는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이었다. 이 대사가 두 번 정도 반복적으로 언급된 걸 봐서, 결국 이 영화는 결정권이 없거나 결정을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던 이가 스스로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단호하게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사람이 지속적으로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결국엔 이념적인 선택까지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나. 그래서 그 첫 번째 익숙치 않은 결정들로 인해 겪게 되는 상실이나 고통 등을 다루고자 한 것이 느껴졌다.


류승완 : 맞다. 우리는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라던지, 우리는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라던지, 이런 대사들은 실제 북한사람들을 취재할 때 나왔던 말들이다. 북한이라는 시스템은 종교적인 시스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유일하게 비교할 만한 모델이라면 바티칸 밖에는 없을 정도로), 이런 시스템 가운데 교육받고 성장한 이들이라는 전제라면 시스템을 벗어난 개인의 자의적 결정이라는 점은 이야기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아쉬타카 :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전혀 의외의 것이었는데, 후반부 목숨을 잃어가는 련정희를 만난 정진수가 '고향이 어디에요?'라고 묻는 대사였다. 이전까지는 전혀 남북의 이념적이거나 분단 상황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 대사 한 방으로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독특한 정서가 불현듯 올라왔다. 혹시 어느 정도 포인트를 준 대사였나?


류승완 : 그 대사는 한석규 선배의 즉흥연기였다. 의식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깨우려는 설정이긴 한데, 이에 앞선 대사 중에 '너들하고 우리하고 요즘 쓰는 말이 다르데'라는 것에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향이 어디에요?'라는 대사는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한석규 선배가 '베를린' 시나리오를 받고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해외를 배경으로 하면서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었다. 한석규 선배는 개인적으로 남북을 소재로한 이야기에 관심이 큰데, 이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냉전이 끝난 21세기에 아직도 냉전 중인 나라는 우리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쉬타카 : 액션에 있어서는 다 소진된 상태에서 벌이는 처절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너무 제이슨 본 같은 전문가 액션만 있었다면 오히려 류승완 스럽지 않아서 조금 심심했을 텐데, 역시나 클래이맥스에서는 최고 전문가인 두 주인공이 그 기술에 근거하되 이미 본능만 남은 상태에서 벌이는, 육체적인 액션이 인상적이었다. 고통과 피로함이 느껴져서.


류승완 : 그런 점을 봐주어서 고맙다. 액션이 주가 된 영화이기 때문에 클래이맥스의 액션 시퀀스는 특별히 많은 신경을 썼다. 권총을 둔기로 사용하는 것도 그 아이디어에 도달하기 위해 정두홍 감독과 엄청난 노력과 고민 끝에 나온 장면이다. 이런 방식으로 권총을 사용하는 경우는 다른 영화에는 거의 없지 않나? 그러고보니 '다찌마와 리'에 잠깐 나오긴 했었지만 ㅎㅎ





아쉬타카 : <베를린>은 류승완 영화 최초의 멜로 드라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극중 표종성과 련정희의 관계에는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분명 애틋한 로맨스가 느껴졌다. 다시 말하자면 다음 작품에도 로맨스적인 요소를 가미해도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떤 점인가?


류승완 : 나도 모르게 그렇게 갔던 것 같다. 처음에는 냉혹한 인물과 관계들을 생각했었는데, 언제 부턴가 나도 모르게 로맨스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소설 '차일드 44'와의 표절 논란에 대하여



아쉬타카 : 조심스럽지만 팬의 입장에서 최근 굵어진 표절논란에 대해 여쭈어보겠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 부분이 가장 큰 부담이기도 했는데, 일단 몇몇 설정은 장르의 클리셰로 보기엔 너무 디테일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내를 의심하고, 광장과 지하철 역에서 추격하고 하는 것 등을 비롯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가지 중에 거의 대부분은 충분히 클리셰로 인정할 수 있고, 스탈린의 유명한 잠언을 사용한 것이나 인간이 가장 나약해지는 시간을 언급한 것도 어느 한 작품만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련정희의 속옷과 관련된 장면이나 동전으로 표현된 아이템이나, 련정희가 임신을 했었다는 디테일한 설정은 의문을 재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차일드 44'와의 디테일한 유사점과 장르의 클리셰까지 표절로 여기는 분위기까지 더해져 결론적으로 표절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류승완 : 이 질문을 해주어서 고맙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차일드 44'를 재미있게 읽었고 주변에도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장을 했던 소설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하신 분이나 이 소설을 번역하신 분이 제기하신 의혹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절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차일드 44'와 관련된 의혹들 중에 '그러면 왜 영향받았다는 얘기 중에 진작 이 작품을 보았다고 얘기하지 않았냐' 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이 작품에 영향을 끼친 50권이 넘는 소설 들을 모두 이야기해야만 하는 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의도적으로 '차일드 44'만 뺐다가 이제서야 뒤늦게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아니라는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차일드 44'는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고 리들리 스콧이 영화화 할 예정이라는 것도 '베를린' 제작 전부터 알고 있었다.


차일드 44와의 유사점 부분에 대해 이렇게 부분 캡쳐로 비교를 해서 표절로 몰아가면 억울한 부분이 있다. 본래는 이 취재파일과 취재 과정 중에 얻은 실제 인물들의 녹취 기록 등을 기자들에게 다 공개를 하려다가 이미 몇몇 함정 인터뷰도 있었고해서 차라리 여과없이 전달해주실 아쉬타카님 같은 분에게 공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뷰를 요청한 점도 있다.


(이후 제가 개인적으로 의혹을 갖고 있던 부분들을 비롯해, 세간에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부분들을 설명해줄 많은 양의 취재 자료 들과 녹취 자료등을 직접 보고 듣는 확인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KGB 교육이 구동독에서 러시아로 넘어갔고, 북한 정보원들이 받은 교육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비슷할 수 밖에는 없다. 모방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방과 표절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부분 캡쳐만 해 놓으면 내가 봐도 비슷하더라. 그렇기 때문에 의혹이 있는 것 자체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란에 휘말려 보니까 알겠더라. 사실관계를 입증하려 자료 등을 공개하려고 보니 이미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도 변명 밖에는 되지 않는 상황이라 가만히 있는 것 뿐이다. 이걸 적극적으로 해명하기 보다는 같이 일한 사람, 믿어줬으면 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알아주면 그것으로 괜찮다라는 생각이다. 이미 당사자인 내 입으로 얘기하는 것은 명백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직접 보고 들으신 분들이 전해주시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의혹을 제기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직접 보여드리고 들려드리고 싶다.



아쉬타카 : 마지막으로 <베를린>이라는 작품은 좋은 면이든 그렇지 않은 측면이든 감독님에게 어떤 전환점이 될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감독님에게 <베를린>이란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류승완 : 8번째 장편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장르 영화를 한다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쉬타카 : 개인적으로는 의혹이 완벽하게 해소되어서 너무 만족스럽고 기쁘기까지 하다. 말은 못했지만 이 인터뷰의 핵심이 이 표절 의혹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질문을 어떻게 하고, 내가 수긍할 만한 대답을 과연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부담 때문에 잠도 못 잤을 정도로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겪기도 했었다. 완전히 해소되어서 좋긴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표절로 여기고 있고 완벽하게 해결할 만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


류승완 : 어쩌겠나. 아쉬타카 님처럼 몇 분이라도 진실을 알아주신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쉬타카 : 이 광풍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류승완 : 그렇게 하자!



정리하며...


'베를린'을 보고나서 썼던 제 리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차일드 44'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커뮤니티를 통해 정리된 표절 의혹 부분을 보고서는, 이건 장르의 클리셰라고 하기엔 너무 디테일한 유사점이 발견된다는 판단을 하였고, 이 부분에 대해서 류승완 감독님이 더 명확한 답을 해주길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했었습니다. 그 이후 감독님으로부터 인터뷰 제안이 왔고, 제안을 받고서는 저도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냉정히 봤을 때 의혹을 갖기에 충분한 정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더라도 그 의혹이 명확히 해소될까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에도 있듯이 의혹을 갖는 것은 감독 스스로도 내가 봐도 비슷하다고 느낄 정도로 유사점에 대해 의혹을 갖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많은 양의 취재 자료들과 더 나아가 이 표절 의혹에 대해 하나하나 취재원과 대조하는 녹취 파일을 듣고 나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모스크바에서 정보원 활동을 했던 취재원을 다시 만나 표절이라고 의혹을 받고 있는 소설의 부분 등을 재기하며 사실 여부를 일일히 확인하는 녹취 파일 및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취재 자료들에서는, 개인적으로 클리셰를 넘어서는 디테일한 인용이라고 생각했던 동전 부분에 대한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실제 있는 정보원들 사이에서 유니크하지는 않은 일종의 소품이었고 (정보원 취재 자료에서 사진으로 직접 확인), 이 동전을 속옷에 숨기는 장면 및 련정희가 임신을 했다는 설정 모두 실제 취재원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걸 격앙된 북한말투로 이야기하는 취재원 분의 음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녹취는 표절 의혹 이후에 다시 진행된 부분이었는데, 일일히 표절 의혹을 받는 부분들을 거론하며 취재원에게 다시 한 번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만약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내 인생 자체가 표절이라는 얘기냐?'라는 식이었기에 격앙될 수 밖에는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오인된 의혹들이 그렇듯이, 이 표절 의혹에 휩싸인 감독님을 비롯한 제작진, 취재원들 모두는 억울함이나 실망을 넘어서서 이 영화 만드는 일 자체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류승완 감독님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취재 자료들과 녹취 자료 등을 통해 표절 의혹이 의혹을 갖는 것은 가능했으나 사실은 아니었음을 두 눈과 귀로 확인했다는 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저 같이 미약한 영화애호가 한 사람의 확인이 모든 의혹을 해소시키거나, 더 나아가 의혹 해소의 계기가 될 만한 신뢰성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까지도 이해하고 한계를 인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직접 보고 들었다는 것은 니 말일 뿐이지 않느냐'라고 물었을 때 '보고 들어서 아닌 것을 확인했기에 그렇다고 했을 뿐인데 어떻게 그렇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저 역시 최소한 제 주변에서 의혹을 갖던 분들이나, 제 블로그 등을 통해 제 글을 읽어주셨던 분들만이라도 이 의혹에 대한 사실을 (진실로 까지 포장할 이유가 없어 사실이라고 씁니다) 저를 담보로라도 믿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류승완 감독님 힘내세요!




* 마지막 제 의견을 정리한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더 설득 혹은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 싶어서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적었었는데, 결국 다 쓰고 보니 구차해진 느낌이 있어서 그냥 간단하게 정리를 하였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분들이 표절로 낙인찍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혹자는 출판사 측에서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데, 소송 걸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소송하면 100% 출판사가 질 수 밖에는 없어요. 이건 CJ라는 대기업 때문이 아니라 사실관계가 너무 분명히 자료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고 나올 수 있는 반론이라면 '그러면 그 자료를 공개해라' 일텐데, 아마 이 문제가 더 확산되면 공개를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타블로 때도 그렇지만 공개로 과연 해소가 될까요. 또 자료가 조작이네 이럴 텐데요. 현재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영화라는 일을 해야할까 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라, 저렇게까지 번진다면 그 보다는 영화 라는 일을 접는 편을 선택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 일인데, 그렇지 못하면서까지 해야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인터뷰 /정리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가요계의 표절 얘기가 하루이틀이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너무 성행하는 것, 특히 별로 죄의식 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 이효리의 앨범에 많은 곡을 담당했던 'BAHNUS'의 곡들이 표절인 것으로 최종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표절 의혹들 가운데는 진짜 표절이지만 의외로 이슈화 되지 않는 것들과 표절까지는 아닌데, 이른바 '그냥 던져보는' 표절들이 있는데 이번 이효리의 곡들에 대해 처음 표절 의혹이 들려왔을 때는 팬으로서 후자라고 생각했었으나 결국 전자인 것으로 최종 밝혀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무엇보다 예전 이번 이효리의 새 앨범에 대해 정성껏 썼던 리뷰글이 떠올랐다. 나는 당시에 이 앨범에 대한 리뷰 글을 통해

물론 지금까지 김도현의 곡 외에도 여러 프로듀서의 곡들을 타이틀로 내세우기도 하는 등 여러 변화를 주긴 했었지만, 어쨋든 매번 핵심에 있던 그와의 작업을 제외한 것은 분명 '과감함'이 엿보인다(무언가 결심한 듯한 부분은 영어 이름 표기 - HY0RI - 에서도 눈치 챌 수 있다). 그렇다면 여러 프로듀서들의 곡을 골고루 받은 것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곡을 'BAHNUS'라는 프로듀서의 곡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번 앨범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컨셉으로 이뤄져 있는 또 다른 이유다.

위의 글 처럼 'BAHNUS'라는 프로듀서와 함께한 이번 시도에 용감하다며 박수를 보냈었다. 기존 가요들 보다는 거칠고 이질감도 느껴지지만 좀 더 색깔있는 음악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탑에 위치한 이효리가 적극 수용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라는 측면에서 보냈던 박수였는데, 결국 이 박수는 안하니만 못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번 표절 사건은 나에게도 여러가지 의미를 갖게 했는데, 첫 번째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점점 죄의식을 잃어가는 창작활동에 대한 공포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내 최정상에 있고 가장 많은 화제와 주목을 받는 이효리에게 곡을 주면서 어떻게 자신있게 표절 곡을 7곡 씩이나 줄 수 있었는지, 그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 사실 이것은 용기라기 보다는 죄의식이 없다는 편이 맞겠다. 용기는 죄의식을 느껴서 불안한 상태에서 감행된 일이었을 때, 그 불안을 이기고 한 경우에만 성립될테니. 그러니까 그냥 '이 정도는 되겠지' '이거 뭐 설마 들키겠어' 라는 식이 아니었나 싶다. 알고보니 한 명이 아니라 유학파로 이뤄진 7명의 팀이라는데, 최근 표절의혹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라면 바로 이 '팀 작곡가'체재 일 것이다. 이 시스템이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쨋든 한 두명도 아니고 그 이상의 여러명으로 구성된 작곡팀은 이런 죄의식도 7등분 해서인지 그 무게가 너무 가벼워졌다(그것도 좀 그렇다. 7명이면 한 마디씩 각각 작곡하는건가. 이건 아이디어 제공이지 작곡은 아니잖아!)

두 번째는 이를 면밀히 살피지 못한 이효리와 그 팀에 대한 실망이다. 물론 이효리 역시 사기 당한 입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의 팬을 비롯한 대중들은
'BAHNUS'의 곡을 산 것이 아니라 이효리의 음반을 산 것이다. 그러니가 최종 책임도 이효리가 지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다면 좀 더 면밀하게 곡을 살펴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안좋은 의미로 이효리가 새 앨범을 내면 흠집을 내려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이슈 메이커들이 있는 존재라면, 더더욱 미리 이런 의혹이 없도록 잘 살펴보았어야 했다. 이효리는 물론 그녀의 음반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업계의 전문가들이 아닌가. 오히려 이런 의혹곡을 들었을 때 대중들에 앞서 자신들이 먼저 파악하고 작곡가에게 의문을 제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무개념 작곡팀인, 아니 표절팀인 'BAHNUS'는 허허실실 병법을 쓴 것인지 대놓고 표절 곡을 잔뜩 선사했고 이효리는 그냥 덥썩 걸려들고 만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그동안 많은 표절 의혹이 있어 왔다는 것을 잘 알았다면, 오히려 더 검증을 했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고스란히 그녀에게 화살로 돌아와버렸다.

세 번째는 어쨋든 나에게 돌아온 화살이었다. 처음 보는 순간 '아, 내가 칭찬했던 리뷰글이 무색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을 정도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달렸더라.

표절이 절반 이상인 앨범에 꽤나 만족하셨나 보우

말투에 기분은 상했지만 '저도 몰랐어요'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말조차 하고 싶은 의욕이 들지 않을 정도로 허탈해서 그냥 두기로 했다. 아마도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겪었을 사람은 이효리 자신인 동시에 그녀의 팬들이 아닐까 싶다. 나처럼 워낙 압도적인 채찍들 때문에 왠만하면 당근으로 임하려고 했던 팬들조차 많은 허탈함을 겪었을 것이다. 나서서 방어했던 가치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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