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 사냥꾼 (Trolljegeren, 2010)

진정성마저 느껴지는 페이크 다큐



노르웨이라는 변방에서 날아온 작은 영화. 하지만 '트롤'이라는 전설 속의 존재를 등장시킨 영화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갖게 했던 '트롤 사냥꾼 (Trolljegeren)'을 보았다. 판타지와 설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트롤'이라는 존재에 대해 한번 씩은 들어보았을 텐데, 이를 극영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더욱 기대하는 작품이었다. 물론 이 작품은 페이크 다큐이고 정색하고 진짜인 척 하는 와중에 중간 중간 귀여운 가짜 티를 내주기도 하지만, 페이크 다큐로서 가져야 할 장르적 특성은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은 물론, 페이크에 속았다고 가정했을 때 진정성 마저 느낄 수 있는 디테일과 메시지까지 담고 있는 올해의 작은 발견 같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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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노르웨이의 숲과 산에서 벌어지는 곰의 출현과 습격에 대해 정부는 별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 대학생 세 명은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취재를 나선다. 그 과정 속에서 이른바 '트롤 사냥꾼'인 남자를 만나 그를 따라가게 되면서 곰이 아닌 트롤을 그리고 정부의 음모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영화는 카메라맨 남자 한 명, 음향 담당 여자 한명 그리고 직접 리포터로 나서는 남자 한 명, 이렇게 세 명의 대학생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내용상 정부의 음모를 파해치려는 영상 취재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페이크 다큐에 녹아드는 구성이라 하겠다. 극 중 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마이클 무어'의 사회고발 다큐 같은 성격을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갖고 있는데, 이것이 트롤 이라는 다른 이야기를 만나면서 좀 더 공포감이 담긴 다큐멘터리로 진화하게 된다.


어두운 밤 숲속을 뒤척이며 공포스런 소리에 놀라 도망치는 장면은 흡사 '블레어 윗치 (The Blair Witch Project, 1999)'를 연상하게 하는데, 그 아이디어의 기발함은 그대로지만 영화적 상상력과 퀄리티는 조금 더 나아간 형태다. 연상되는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들자면, 역시 페이크 다큐라는 설정과 더불어 괴물 혹은 크리쳐 물이라는 점에서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2009)'을 떠올리게도 한다. '트롤 사냥꾼'은 이 두 작품의 아이디어를 적절히 조합해 정확히 노르웨이 문화에 녹여낸 매우 영특한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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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노르웨이의 문화와 풍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드넓은 노르웨이의 대자연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를 준다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정말로 전설 속의 트롤이 살고 있을 듯한 탁 트인 대자연의 모습은 그것 만으로도 노르웨이를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소개하는 좋은 장치가 된다. 또 트롤이라는 SF와 판타지적 존재를 주요 캐릭터로 설정했음에도 매우 효율적인 구성을 통해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비슷한 구성을 갖춘 작품들 가운데 이 페이크에 속아주기에는 너무 티나고 떨어지는 퀄리티 (그것이 아예 웃길려고 작정한 것이 아닌 경우) 때문에 몰입하기 어려운 적이 많았던 것에 비하자면, '트롤 사냥꾼'의 트롤 퀄리티는 아주 만족스럽고 속아주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이것보다 트롤이 직접적으로 덜 나왔더라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작품은 또 한 번 사운드 메이킹만으로 줄 수 있는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이지 않는 트롤의 괴성(?)을 통해 확실히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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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페이크 다큐로서 재미를 주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메시지를 담으려 한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트롤이라는 존재를 막여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공포스러움은 부족하지 않게 보여주면서도 인간의 자연파괴와 무분별한 개발을 통해 터전을 잃어버린 이전의 존재로서 그려낸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트롤 사냥꾼 캐릭터를 통해 이 '사냥'이라는 것이 악당을 물리치는 승리의 과정이 아닌 학살에 가까운 일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트롤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평가를 가능토록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もののけ姬, 1997)'를 떠올리게 했다. 고대의 존재가 인간의 자연파괴로 인해 설 곳을 잃고 그 가운데 중간자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것에서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여기에 '트롤 사냥꾼'은 정부의 음모라는 점을 은근히 깔아 놓으며 디테일한 구성을 취한 것도 설득력을 높이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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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우리나라도 전설 속에 등장하는 도깨비나 용 등을 주제로 한 페이크 다큐를 그럴 듯 하게 만들어 본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가끔씩 이렇게 턱턱 나오는 변방의 아이디어 작품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2. 트롤의 CG는 거의 완벽했는데 오히려 곰은 너무 가짜 티가 나서 귀엽더군요. 트롤의 퀄리티로 가정 했을 때 이건 감독이 대놓고 귀여운 짓을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ㅋ

3. 피판과 과천국제SF영상축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는데 소규모라도 좋으니까 꼭 정식개봉해서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나중에 블루레이도 출시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BD로서의 장점이 충분한 작품이에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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